* 쌩초보 수행법문1. 「수행의 기본적인 패턴」 (20141031.대구)
어떤 경우에는 안 해본 것들은 조금 어렵게 접근하는 것도 있을 거고, 또 어떤 거는 내가 이때까지 해왔던 수행법하고는 다르기 때문에 좀 부딪치는 부분들도 있을 거고, 아마 그런 부분도 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해도 아울러 가지고 다 하는 거니까 자기 입맛에 다 딱 맞춰가지고 집어넣어 주지는 못해. 그부분은 이해를 하고 그대신에 수행문답을 하러 왔을 때는, 와서 내가 어느 수행을 치중을 하고 있다 할 것 같으면 그게 맞게끔 수행지도를 해드릴테니까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얘기했듯이 오후 시간에는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에 대한 것들을 아마 전체 다 할려면 일주일에 한번씩 일년에 한 50번 정도 하면 대충 안 끝나겠나 싶습니다. 한번은 어쨌든 전체적인 맥락을 한번 전체를 쭉 훑고지나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가장 기본적인 거, 요거는 어떠한 경우에 해도 어떤 수행을 하고 있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다, 그리고 이것 정도는 적어도 해야 수행을 지속해나갈 수 있다 하는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요거는 놔놔놓고 두고두고 자꾸 시간날 때 보고 수행하는 것들을 조금 더 체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번 물어보자. 쉐우민 수행하신 분들 손한번 들어봐봐요. 거짓말 하지 말고 손들어 봐. 없어? 나중에 공부 못했다고 뭐라하지 않을 테니까, 그다음에 마하시 수행법해오신 분? 그다음에 저 파욱쪽 수행해오신 분? 스리랑카? 태국 북부? 남부? 수행 안 한 사람? 큰일났다. 쌩초보자들이네!
쌩초보자들인데, 하나 물어봅시다. 누가 얘기할까? 저기 눈에 보이는 사람 맨 뒤에 왜 수행을 할려고 그래요? 뜬구름 잡는 얘기 하지말고, 도와 과에 이를려고 쌌고 뭐 이런 소리 해쌌지 말고.
수행자1 : 저는 불교는 잘 모르는데요, 제가 제 마음 제 의지대로 제 마음대로 잘 안되는 것 같아서 마음을 좀 향상시켜가지고 편안하고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할까, 수행을 하면 그런 것이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스님 : 뭐가 자기 의지대로 잘 안되든가요?
수행자1 : 예를 들면 대상으로부터 화가 나는 마음, 너무 기쁘고 들뜬다든지, 특히 화나거나 판단하고 그런 마음들이, 화내지 않아도 될 건데 화가 먼저 나고 뒤에 후회를 하고 그런 것들을 조절이 잘 안되서.
스님 : 그 대상은 자기 것이 아니라서 내가 내맘대로 못하니까 그렇겠지.
수행자1 : 그게 머리로는, 이성적으로는 판단이 되는데, 상황에 맞닥뜨리면 제가 뒤에 '아, 그렇게 하는게 아니고 이게 더 좋은 방법인데' 굉장히...
스님 : 그런 것도 좀 잘 조절하고
수행자1 : 평상심을 가지고 싶은 거에요. 먼저 제 자신이 편안하고 싶어요.
스님 : 본인도 좀 편하고 남한테도 좀 잘 보이고
수행자1 : 예. 가식적이 아니라 제대로.
스님 : 또 요쪽 맨 뒤쪽, 왜 수행할려고 그러는 거라? 편하게 얘기해요. 다들 쫄아가지고, 쫄지말고 수행이 즐거워야 되지 이렇게 어려워가지고 어떻게 해?
수행자2 : 지금 제가 행복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스님 : 수행을 안 하면?
수행자2 : 수행을 안 하면이 아니고, 변화된 상황에서 적응할려고 하니까 더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이게 뭔가 하고 계속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생각을 하게 됐는데 이 마음이 예전 마음하고 지금 마음하고 같지 않다는 걸 제가 알게 됐어요. 그런데 그게 어느게 참인가,
스님 : 어떤게 자기 것이 있어야 참이 있을 거 아니라?
수행자2 : 저는 이때까지 간화선을 했는데 많이 바닥 자체가 모래와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또 이부분은 제가 마음특강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마침 마음특강도 끝나고도 계속 나름대로는 한다고 하면서도 확신도 안 가고 흔들리고 이런 자체가 제 스스로가 내가 싫었어요. 내가.
스님 : 뭔 얘기하는지 뜬구름 잡듯이 막, 나도 모르겠다.
수행자2: 사실 행복해질려고 왔습니다.
그래요. 다들 좋은 뜻인데, 어떤 대상이든 대상을 만났더라도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화도 안내고 그러면 인제 수행 끝나겠다, 또는 행복해지면 진짜 행복이 뭔지 알고 행복해지면 수행 안 하겠네? 그랬으면 그거보다도 더 큰 좋은 거 얻은 부처님이나 부처님 제자 아라한들은 깨달음 이후에는 수행 안 하겠네? 그건 아니죠! 깨달음 이후에도 수행을 계속합니다.
살아있으니까 수행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수행을 안 하면 죽어있는 거와 같습니다. 내가 이 몸을 지니고 살아가고 밥먹고 숨을 쉬고 있으면서 할 일이 그것밖에 없어.
여러분들은 할 일들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 여러 가지 할 일들은 밥을 먹는 거, 운동하는 거, 요리하는 거, 이런 것들은 다 수행의 도구일 뿐인 것이지, 그건 수행의 도구로써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라. 그런 것이지 그것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되는 거라.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건 도구일 뿐이라.
무슨 도구? 수행의 도구! 살아있기 위한 수행의 도구라.
그래서 부처님도 누군가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말해라.
"밥을 먹고 나서 고요한 숲속에 가서 왔다리 갔다리 경행을 하고, 또 나무 밑에 앉아가지고 호흡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거 관찰하고 있다고"
깨달은 자도 그와 같습니다. 살아있을 동안에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살아있는게 수행하는 거고 수행하는 것이 살아있게 되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 그래서 깨달음 이후에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될 뿐인 것이고 내가 의식하든 의도하든 그거하고는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그냥 모든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알아차리고 있으니까 당연히 행복한 것이고 여러 가지 망상들이나 화냄도 없이 고요한 상태에서 그대로 유지를 해나가는 거고,
그대신에 그런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통해가지고 아, 내가 진짜 뭐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
그게 수행이라. 왜 수행하는가는 다른 거 없어. 그렇게 마음을 잡아야만이 한단계를 지나고 나면 그다음 단계를 넘어갈 수가 있어요.
병이 나가지고 병을 고치기 위해서 수행을 했다, 병이 낫고 나면 수행을 등한시하게 됩니다.
또는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성냄을 다스릴 수 있다, 그럼 성냄을 다스리고 나면 그 위에 다른 것들을 다스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잘 안 넘어가져요. 물론 성냄도 다스려집니다. 그러면 부수적으로 성냄도 다스려지고 행복해진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이지,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을 해야지 그게 목표가 돼가지고 나아가서는 안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어찌 수행하면 될까? 어떻게 수행하면 될까?
첫 번째는 지금 죽은 자가 아닐 것 같으면 수행을 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할 일은 수행하는 겁니다. 분명하게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 그렇지 않으면 이세상에 태어날 이유가 없어.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있을 이유가 없는 거라. 그거는 스님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출가자든 재가자든 어떠한 경우든지 숨을 쉬고 있고 뭔가를 하고 있으면 그 하고 있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고 살아가라는 거라.
안 아까워요? 이 세상 태어나가지고 지금 나이들을 보면 꾸부정하게 기울어져 있는 사람들도 많고 한데, 힘듭니다.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본격적으로 출가를 할려고 한다, 60 넘으면 하지 마라 그럽니다. 차라리 그렇게 해가지고 애쓸바에야 그냥 공덕이나 많이 쌓아라고 그럽니다. 전문적으로 출가해서 하는 사람도 60 넘으면 참 힘이 드는데,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재가생활을 하면서 한다는 건 참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빨리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수행은 하나의 대상만 찰나에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거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내가 지금 알아차리는 대상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보면 보는 대상 하나만 있는 것이지 보면서 소리들린다고 착각하지 말아라는 거라. 지금은 물론 그렇게 들릴 수가 있어요. 그래도 의도적으로라도 나는 하나밖에 모른다고 생각하라는 거라. 진짜 그렇습니다. 볼 때는 볼려고만 하고 들릴 때는 들으려고만 자꾸 하도록 해야 됩니다.
하나만 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가 지속되나가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한 찰나에 보고 마는 것은 아니잖아. 그 보이는 것이 계속 보여지고, 들리는 것이 계속 들려진다는 거라. 대상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배도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이 끊임없이 돼나가는 거라. 그러면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릴 것 같으면 그걸 지속적으로 하라는 거라. 중간에 벗어나든 다른 대상으로 갔든 어찌됐든 간에 그 대상 자체는 어쨌든 처음 대상은 지속적으로 쭉 하라는 거라.
그게 수행의 포인트입니다.
마음은 하나밖에 모른다. 그래서 하나만 알아차려라.
어떠한 경우든 다 알아차리려고 하지 말고.
그리고 그 대상들은 끊임없이 따라가면서 그 대상들이 변해가는 것들을 보라. 변해간다는 사실을 모를 것 같으면 어떠한 경우든 집착이 생겨버립니다.
그래서 요 두 가지는 항상 수행하면서 머리에 딱 박아놓고 있어야 돼요. 그거 잊어버리는 순간 수행하고는 관계없는 쪽으로 벗어나서 관념화 돼버립니다.
마음은 하나의 대상밖에 모른다고 했는데,
경전에 보면 뚜쪼 뽓틸라 스님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뚜쪼 뽓틸라 스님이 500명의 스님들을 가르치는 큰 강사 스님이라. 그 스님의 연세가 60이 넘었거든, 그러니까 출가한지 40년이 넘어 된 스님이라.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수행도 조금 해보고 했는데 진척이 없거든. 40년간 수행해도 별로 도와 과하고는 관계가 없이, 그 대신에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에 경전 공부는 너무나 열심히 해서 잘 알거든. 그러니까 다른 스님들 가르치는 역할을 해주는 거라.
그런데 부처님이 뽓틸라 스님만 딱 만나면 만날 앞에다 '뚜쪼'를 붙이는 거라. "뚜쪼 뽓틸라야 이리오너라" "뚜쪼 뽓틸라야 저리 가거라" 뽓틸라 스님 앞에 뚜쪼가 붙는 게 '골비었다'는 거라. "골빈 놈아! 이리오너라" "골빈놈아! 저리 가라"
그렇게 뛰어난 대강백 스님인데 그러는 거라.
우리가 후배들을 가르칠 때 "골빈 놈아! 이리 오너라, 저리 가거라" 할 것 같으면 오지도 안 하고 저기 도망가버릴 거라. 그런데 부처님이니까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고 했는데, 어느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진짜 골비었다는 거라. 부처님 가르침을 다 알고 있는데, 이걸 실제 생활에서 응용할 줄을 전혀 몰라.
수행을 해봤으면 체험을 했을 거 같으면 다른데도 응용이 되어야 되는데 응용이 안 돼는 거라.
가르침은 다 알고 있는데, 누가 물어보면 삼법인은 뭐, 뭐, 뭐! 사성제 하면 뭐, 뭐, 뭐, 뭐! 이렇게 하긴 하는데, 이걸 사성제가 고·집·멸·도다 이걸 응용할 줄을 모르는 거라. 이게 어디에도 적용이 돼야 그게 진리일 거 아니라. 삼법인도 어디에도 다 적용이 돼야 진리일 건데, 이거는 전혀 실제 생활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이 돼버리는 거라.
아마 여러분도 꼭 마찬가지일 겁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머릿속에서 뭔가를 망상하고 있다. 사성제의 진리는 이것에 대해서 원인, 이것이 있다는 그 원인, 그것이 사라지고 난 결과, 사라지게 하기 위한 길, 이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러면 망상이 있다, 수행자인데 어떻게 망상 처리해요? 망상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
(수행자 : 마음을 돌려야 되지요. 알아차려야 되요.)
망상을 알아차려야 되는 거지? 돌린다는 거는,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어 망상이 있네' 하고 알아야 되는 거라. 그게 쉽게 말하면 고(苦)라. 그러한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망상이 있네' 알고, 그리고 대부분 수행자들은 어떻게 해요? 그 망상을 '망상' '망상' '망상' 하면서 알아차립니다. 그러죠? 그러다 보면 그 망상이 점점 줄어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망상이 탁 사라지고 나면 망상했을 때는 굉장히 힘들고 복잡했는데, 망상이 사라지고 나니까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탁 되는 거라. 수행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사성제의 진리를 수행에서 그대로 하고 있는 거라.
그런데 가르치기는 고·집·멸·도로 가르치는데, 자기한테 일어나는 망상이나 아픔이나 뭐 있어도 이걸 다스릴 줄을 모르네. 그럼 사성제를 알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거라. 아무런 소용이 없어. 입으로 앵무새 같이 떠들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느날 보따리를 싸짊어들고 수행하러 갑니다. 스님들 있는데서 공부를 하는데 다 안 가르쳐줄라고 하는데 마지막에 있는 어떤 사미가 가르쳐주는 거라.
저기 오소리가 있는데 저 오소리 굴에 가서 오소리를 잡을려면 어떻게 잡느냐? 물어봅니다. 오소리 잡는 거 알죠? 오소리는 들어가는 문하고 나오는 문하고 다 다릅니다. 그러면 잡을려면 나오는 문들을 다 막아야 됩니다. 찾아가지고 그걸 다 막아버리고 들어간 문 하나에다 대놓고 거기에다 연기를 피우는 거라. 그래야만이 오소리가 갈 데가 연기나는 그쪽밖에 없으니까 그리로 쫓아 나올 거 아니라.
나오더라도 맹하게 있을 거 같으면 놓쳐버립니다. 튀어나오는 즉시 탁 잡아야 됩니다. 잡는 게 빨라도 안되고 늦어도 안 돼. 그러면 놓쳐버려. 일어나는 즉시 탁 잡아야 되는 거라. 그 한 곳만 그것만 딱 보고 있다가. 일어나는 즉시 탁 잡아야 그 오소리를 잡을 수가 있다는 거라.
수행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다른 것들은 다 닫아야 됩니다. 다 닫아라. 걷고 있더라도 보인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걸어야 되는 거고.
그래서 경행할 때 좀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눈감고 걸어가라" 그럽니다. 그러다가 집중력이 조금 더 어느 정도 되고 나면,
그 뒤부터는 "눈감고 뒤로 걸어가라" 그럽니다. 뒷걸음질 해라.
그렇게 해가지고 수행이 어느 정도 되고나면 "난간에다가 한쪽 다리 올려놔놓고 눈감고 가만히 서있어라" 그럽니다.
그게 어느 정도 되고 나면 아, 인제 얘는 위빳사나 수행해도 되겠다 싶어서 "위빳사나 수행 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눈을 감고 걸어가든 아니면 뒤로 가든 아니면 난간 위에 한쪽다리로 딱 서가지고 있든 하나의 대상을 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보이든 들리든 뭘 하든 간에 내가 지금 수행하고 있으면 수행 대상 그 하나만 알려고 해냐 돼,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다, 그럼 호흡만 알아차릴려고 해야 되는 거라. 그리 해도 오만 것들이 다 일어나는데 이미 처음부터 산만하게 돼가지고 수행할 방법이 없어.
경행할 때는 발바닥에만 집중을 해야 되는 거라. 걸어가는 데만. 그리해도 지금 알아차릴게 엄청 많아진다는 거라. 마음을 거기 두라는 거라. 대상에다가. 다른 건 다 닫아버리고. 그리고 그 대상 자체가 즉시 일어나는 그 즉시 바로 알아차려야 돼.
발은 들어올리면서 들어올린다고 그 즉시 알아차려야 되는 거지, 발은 들어올리고 나서 이미 나가면서 '들어올림' 자꾸 이럴 것 같으면, 그거 이미 다 놓쳐버리고 아무것도 몰라. 그냥 그속에 자기가 개념에 빠지는 것밖에 없어.
즉시 알아차려야 됩니다. 호흡도 불러오고 꺼지고 할 것 같으면 불러오고 할 때 같이 불러오는 걸 알아야 되는 거고, 꺼질 때는 꺼진다는 걸 알아야 되는 거라, 즉시!
수행 그렇게 하면 돼. 아주 간단합니다. 뭘 하고 있든지, 밥을 먹고 있든, 보고 있든, 아니면 냄새를 맡고 있든, 냄새맡는 즉시 그것을 알려고 하는 거라. 보는 즉시 그것을 알려고 하고.
그런데 문제가 보는 즉시 그걸 알려고 그러면 아니면 맛보는 즉시 그걸 알려고 그러면 '맛있다' '예쁘다' 이래버리는 거라.
그 즉시 아는 걸 쫓아가기에는 우리가 마음이 이미 너무 더러워져 있어요.
보는 즉시 번뇌가 일어나. 맛보는 즉시 번뇌가 일어나고.
안 그런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봐봐? 없어! 여기 있는 스님 보면서 그냥 '보인다' 하고만 알아차리는 사람 있어? 없어. '어, 오늘 스님이 얼굴이 짜부라졌네' '뭐 어쨌네, 표정이 어떻네' 이러면서 보는 거야 그냥. 이미 그렇게 기울어진 상태에서 보게 되는 거라. 보는 즉시 그렇게 되는 거라.
자, 한번 봐봐. 잘생긴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보다가 보면서 딱 명칭을 넣어보십시요. '보임' 하면서 스님을 한번 보아 보십시요. 조금 틀립니까? '보임' 한번에 안 되면, '보임' '보임' '보임' 하면서 한번 보라고. 그냥 대상은 그대로 있는데, 그 대상으로 인해가지고 내가 마음을 어지러운 쪽으로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냥 보이기는 보여. 내가 진용스님으로 보이지 이걸 갖다가 해피스님으로 보기야 하겠어? 그냥 진용스님으로 보기는 하는데 '보임' '보임' 하면서 보고 있으면, 적어도 보이는 것으로 인해서 '아, 스님이 어디 아픈가' '뭐 어쩐가' 이런 상념들을 더이상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거라. 일단 거기에서 끝난다는 거라.
그러면 이 보이는 게 진용스님이 아니고, 진짜 보이는 대상으로만 볼 수 있게끔만 만들어주면 돼. 쉽게 말하면 나를 보든지 우리 석화행 보살을 보든지 똑같은 대상 똑같은 하나의 물체로써 볼 수 있으면 더욱 좋은데, 그것까지는 힘들고. 우선에는 이 대상으로 인해서 알음알이를 더이상은 일으키지 않도록은 먼저 만들어라는 거라.
그게 인제 수행의 첫 번째, 여러분들이 해야 될 일입니다.
자! 지금부터 한번 해보십시요.
코끝을 통해서 숨이 들어오고 내쉬고 할 때, '들이쉼' 하면서 들이쉬고, '내쉼' 하면서 내쉬고. '들이쉼' '내쉼' 하면서 그 호흡을 하는 거하고, 그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명칭을 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
어떤 게 알아차리기가 쉬워요?
명칭을 안 붙이고 그냥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들이 알아차리기가 더 훨씬 쉽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런데 문제는 명칭을 안 붙이고 들이쉬고 내쉬고 할 것 같으면 요게 한두번 하고 나면 마음이 호로록 그냥 사라져버린다는 거라. 도망가버려요.
가장 좋은 거는 명칭을 안 붙이고 들이쉬고 내쉬고 지속만 쭉 해나갈 수 있으면 참 좋은데 요게 안 되는 거라.
이게 되는 사람,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적어도 다른 데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5분 이상 할 수 있다, 그럼 명칭이 붙일 필요 없어.
안 된다, 그러면 무조건 붙여라. 무조건 명칭을 붙이고 '들이쉼' '내쉼' 하면서 호흡을 알아차리라는 거라.
배도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하고, 걸어갈 때도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하면서 명칭을 붙여서 하라는 거라.
5분 이상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지속할 힘이 없다, 그러면 나는 아직 명칭을 붙일 단계라. 수행이 아직 그정도 무르익지는 않았어.
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만이 이게 변하는 현상들을 분명하게 쫓아갈 수가 있는데, 못 쫓아가니까 어쩔 수 없이 그거라도 마음을 붙여놓기 위해서 명칭이라도 붙여놔야돼. 그래야만이 거기에 붙어있기라도 하지.
그런데 붙어있으면 문제가 뭐냐면 붙어있는 것은 좋은데, 실재하고는 관계가 없이 돼버린다는 거라. 마음이 거기 붙어있기는 있는데, 그런데 뭐 때문에 붙어있는지조차도 모르고 그냥 붙어있게 되는 거라.
꼭 어린 아이가 엄마한테 매달려가지고 어딘가로 가기는 가는데, 매달려있기는 있는데 지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어디로 갔는지 뭐 얼마만큼 갔는지 전혀 모릅니다. 붙어가지고 가긴 갔는데.
명칭을 붙이면 그런 폐단이 있는 거라. 붙어갔기는 갔는데.
그럼 명칭를 붙이고 있는 동안에는 실제 위빳사나 수행하고는 관계없이 가게 된다는 거라. 어떤 수행하고 관계가 있을까? 사마타 수행하고 관계있는 거라, 하나의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
위빳사나 수행하는 사람들이 사마타 수행은 필요 없다? 그건 어불성설입니다.
어느 정도의 집중력이나 힘들이 없을 거 같으면 위빳사나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갖춰질 동안에는 같이 가야 된다는 거라. 집중하는 힘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 힘들을 키워나가야 됩니다. 키워나가야만이 인제는 명칭을 붙이지 않고 그냥 대상 자체를 관찰하더라도 대상을 그대로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대상이 분명하게 일어났으면 딱 끝나는 걸 알고, 끝났으면 다시 또 뭔가를 마음이 할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또 뭔가가 일어나고,
이런 상태까지 가야만이 인제는 명칭없이 수행이 자연스럽게 돼. 대상 자체를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거라.
그게 수행의 본궤도에 오르게 되는 거라.
지금 현재 만약에 그게 안 되면 다른 말 하지마.
그냥 스님이 하는 대로 따라해. 그게 가장 빨라.
어떤 경우든지 기본적인 패턴을 잘 이해를 해야 됩니다.
먼저 수행을 할 때 두 가지 패턴으로 하십시요. 아까 첫 시간에 할 때 "하루 중에 한시간 아니면 두시간은 반드시 수행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라"고 그랬습니다. 없다고 구라치지 말고, 있습니다. 없으면 잠시간을 쪼개십시요. 그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지 하루에 두 시간은 오로지 수행만 하는 시간을 마련하라.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좌선이면 좌선 경행이면 경행 딱 그것만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라는 거라. (집중해서 하는 수행 시간)
한시간 동안 앉아있기 힘든 사람은 30분 해도 돼. 30분 좌선하고 30분 경행하고, 그리해도 됩니다. 오전에 한번 했으면 저녁에나 시간 될 때 또 한번하고, 이런 식으로 해서 하루에 두 시간은 반드시 만들어라.
그때 하는 수행법이 있고, 그다음에 똑같은데도 다른 일상생활을 하면서 하는 수행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집중수행을 하고 하루 동안에 시간 낸 동안에 경행을 하는 패턴이 있습니다. 30분간 오로지 그것만 하는 것! 그거는 할 때 여러분들 산보가듯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죠. 그때는 좀 더 천천히 해야 되고, 경사진데도 없어야 되고, 그리고 일정한 거리를 왔다갔다 왔다갔다 해야 되고 어쨌든 그런 패턴들을 가지게끔 됩니다.
그런데 어디 시장보러 갈 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걷는 건 똑같은 걷는 건데도 틀리죠. 그거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도 있고 높낮이도 있고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걸을 때하고 저기서 걸을 때하고는 분명히 달라진다는 거라.
그리고 어디가서 잠시라도 앉아있는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하는 좌선수행법하고 내가 집중해서 30분 냈을 때의 수행하는 방법하고는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는 거라.
요걸 혼동하면 안돼!
요걸 혼동해버릴 것 같으면 그냥 일상생활 자체를 일반적인 집중수행 할 때와 같이 해버리게 되고, 또 집중수행하는 것을 일상생활 할 때 할려다 보니까 어디 하나 박고 이러는 거라. 그거 절대 혼동하면 안 됩니다.
그 두 가지 패턴은 반드시 구분하라는 거라.
• 처음에 집중할 때,
집중수행을 할 때는 4가지 포지션으로 합니다. 행·주·좌·와!
행은 걷는 거죠. 걷는 걸 빨리어 용어로 '짱까마'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짱까마(Caṅkama)'라는 의미는 뭐냐면, 선을 이렇게 쭉 그어놔놓고 선 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짱까마라고 합니다. 이 선을 벗어나는 것은 짱까마가 아니야.
엣날에 줄타는 사람 있잖아. 줄타는 사람이 그 선을 벗어나버릴 것 같으면 그 사람은 떨어져버리게 되는 거죠. 이 선, 저 선을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거라. 이 선을 안 벗어나려면 얼마나 조심해야 될 거라. 조심하기도 해야 될 뿐 아니라 아주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 살살살살 가야 됩니다. 그게 경행이라.
경행(Caṅkama)은 항상 원칙이 있어. 짱까마라는 것은. 그래서 나는 풀이를 하기를 '경행'이라고 합니다. 경상도 사람이 되니까 자꾸 '갱행' 이렇게 발음을 하니까 서울사람들이 '갱행'이 뭐야 이러는데, 경행입니다.
그걸 다른 사람들이 그걸 행선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행선은 아닙니다. 짱까마의 원어 자체의 의미는 '행선'이 아닙니다.
행선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길을 가면서 하는 것들을 얘기할 때, 일상 수행할 때 가는거리에 따라서 가는 것들을 갖다가 그걸 굳이 명칭을 붙여놓으면 행선이 될 수가 있는데, 집중수행할 때는 어떤 경우든지 경행이 되어야 됩니다.
• 경행의 원칙
첫 번째, 경행을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천천히 하라.
천천히 안 하면 그것을 알아차릴 재간이 없다.
오늘은 전체적인 맥락을 얘기해야 되니까, 천천히 하라 하는 이유들은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똑바로 해야 됩니다. 한 줄로만 왔다갔다 해야 됩니다.
어느 수행처를 가든지 경행처가 따로 있습니다. 이 좌선실에서 할 것 같으면 그 좌선실에서 일어난 자리에서 그대로 쭉 일직선으로만 왔다갔다 해야 됩니다. 좁다고 해가지고 요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는 법이 없습니다. 경행은 그렇게 해가지고는 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일직선으로만 왔다갔다 해야 됩니다.
그리고 경행은 보이는데까지만 해야 됩니다.
내가 보이는 위치를 벗어나는 곳은 경행을 하면 안 돼. 그것은 경행이 아니고 행선이 되는 거라. 시장에 갈 때는 시장이 안 보이잖아. 여기는 저 끝이 보이거든. 그러면 보이는 데까지만 왔다갔다 해야 돼. 딱 저기까지라고 위치를 잡아두고나면 저기까지 왔다갔다 해야 돼.
그래서 보통 이 거리를 갔다가 20m 아니면 아무리 길어도 30m, 그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몇 에이커가 되는 그런 수행처라 하더라도 경행처는 그 이상의 거리를 하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해보니까 20m 정도를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거기를 일직선으로 왔다갔다 왔다갔다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경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세 번째, 경사진 데는 하지 말아라.
경행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똑 바른길, 평행된 곳에서 하라. 경사진 데는 어떠한 경우든지 하지 말아라.
네 번째, 경행을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옷자락을 흩날리는 상태가 되면 안 됩니다.
만약에 야외에서 한다, 바람이 분다고 하더라도 옷자락을 싸매고 아니면 옷자락을 딱 잡고, 그래서 손과 발이 흔들리게 걸어서는 안 된다는 거라. 어딘가는 반드시 붙이고 그리고 옷도 몸에 딱 붙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가지고 경행을 하라.
경행의 마지막 원칙은, 경행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누가 알아차립니까? 내 마음이 아는 거죠. 마음이 향하는 곳이 반드시 경행하는 곳이 되어야 됩니다.
마음이 향하는 곳이 반드시 경행하면서 움직이는 곳이 되어야 된다는 거라.
오른발이 움직이면 마음이 향하는 곳이 오른발이 되어야 되는 거라. 왼발이 움직이면 마음이 향하는 곳이 왼발이 되어야 되는 거라.
쉽게 예를 들면 경행대가 여기 요렇게 되어 있다, '들어올림' 할 때 마음이 어디로 향해있어야 돼? 여기(右)에 가있어야 돼. 여기(左)에 가있으면 안 돼. 여기(左)는 1%도 가있으면 안 돼요.
그러면 들어올리는데 마음이 100% 가야 되는 거라. 그리고 들어올리고 나서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면서 여기(右)에다 마음이 가있어야지 여기(左)에 가있으면 몸이 흔들려버려.
그래서 여기(右)에다 가서 딱 디디고 나서 '디뎠다' 하고 나서 마음이 여기에 딱 가고나서, 완전히 디뎌진 걸 무게중심이 이쪽으로 이동했다는 걸 알고 나서, 요쪽(左)으로 마음이 가야 되는 거라.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마음이 향하는 곳이 분산돼버리는 거라.
디디고 나서 완전히 누르지도 않았는데 이미 뒷발이 들려버리는 거라.
마음이 향하는 곳은 항상 경행하는 데 움직이는 곳에다가 마음이 가있어야 돼.
그게 경행의 기본 원칙입니다.
경행할 때는 이 원칙을 벗어나버리면 안돼. 이 원칙을 벗어나는 동시에 경행은 흐트러져버립니다.
자! 그럴려면 경행을 어떻게 하면 될까?
처음에 수행할 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5분 이상 지속이 안 된다, 명칭 붙이라고 그랬죠? 그렇게 안 되는 사람은 명칭을 붙여라. 붙여가지고 발이 이렇게 돼있다 그러면 명칭 붙이면서 들어올림' 해야 됩니다.
일단 세 단계로 나누어 봅시다. 나중에 경행에 대해서 할 때는 자세하게 나눠가지고 설명해드릴게요. 일단 3단계만 할게요.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이럴 때 어떻게 알아차려야만이 가장 알아차리기가 쉬울까?
보통 들어올려질 때 보면 뒷발(뒷꿈치)이 먼저 들리죠? 그러고 나서 발이 들립니다. 요렇게 하는 것이 가장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왜 그러냐면 무게중심이 여기에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일절 신경을 안 쓰고 여기에만 마음을 두어야 되기 때문에 '들어올림' 하면서 있는 그대로 올라가는 것이 가장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나중에 느낌에 대한 관찰을 할 때 분명하게 그거는 드러나집니다.
요거를 그대로(수직으로) 올라가도록 하라. 들어올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마라.
대부분 보면 끌듯이 이렇게 쭉 나갑니다. 절대 금지입니다. 그대로 그냥 올라가도록 하십시요.
그러고 나서 다시 그대로(수평으로) 이렇게 나아가라.
수평이 되게끔 이렇게 내려오지도 말고 올라가지도 말고 그대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십시요.
움직일 때의 풍대에 대한 현상들을 나중에 이해할 때는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내려놓을 때는 발을 그대로(수직으로) 요렇게 내려놔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어느 정도 하고 나면 힘이 떨어지면 앞이 조금 기울어지면 기울어진다는 것을 알고 요렇게 해서 앞발(앞꿈치)이 먼저 닿고 뒷발이 닿고, 이렇게 해주고,
그런데 처음에 힘이 있을 때는 그대로 나아간 상태에서 그대로 내려놓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발을 그대로 착지를 해줍니다.
경행을 할 때 그 방법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하나씩 하나씩 구분해서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그렇게 명칭을 붙이면서 하십시요.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 발을 '들어올림' 이렇게 했습니다.
명칭은 언제 붙이는 것이 좋을까?
자! 예를 들어봅시다. 요렇게 됐습니다. 이게 '들어올림'입니다. 언제 명칭을 붙이는 것이 좋을까? 여기서부터 '들어올림' 이러는게 좋아요? 아니면 중간에 이렇게 하면서 '들어올림' 이런게 좋아요? 아니면 발을 요렇게 들어올리면서 거의 끝나갈 때 '들어올림' 하면서 들어올렸다고 아는게 좋아요?
손으로 한번 해봐. 들어올림 하면서
명칭을 붙일 때 손을 현재형으로 할 건지, 아니면 완료형으로 할 건지 분명하게 구분해야 돼. 자기한테 어떤 게 맞아?
'들어올림' 하면서 마음이 향하는 것이 어디에 둬야 돼?
만약에 손을 들어올려 볼 때, 움직이는 손바닥의 감각을 느끼기 좋은 게 어떤 때 명칭을 붙이는 게 가장 좋아? 시작하면서 '들어올림' 하면서 끝날 때까지 '들어올림' 하고 있어야 돼요? 그게 가장 좋아요? 다시 해봐.
'들어올림' 어떤 게 좋아요? 집에 가서 연습해봐요. 발을 가지고.
그런데 통상적으로 대부분 보면 시작을 함과 동시에 '들어올림' 할 것 같으면 감각을 알아차리기가 힘이 듭니다. 수행하는 목적이 뭐라? 실재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지금은 마음을 여기에다가 갖다 붙이는 거라.
그러면 마음이 적어도 70% 이상은 실재하는 감각을 알아차리고 있어줘야 돼. 나머지 30% 정도만 명칭을 붙이는데 쓰여져야 되는 거라.
그래서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나서 '들어올림' 하고 '들어올림'의 명칭이 끝나면 실제 들어올리는 것이 딱 끝나질 때가 가장 좋아. '나아감'도 마찬가지고.
처음에는 그렇게 훈련을 해요.
그러면서 앞에 내가 실제 들어올려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돼.
명칭붙이는 것과 실재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만이, 이게 내 마음대로 명칭가지고 실재하는 걸 좌우하지 않는다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명칭가지고 실재하는 걸 좌지우지해버려. 그냥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데 호흡을 자기가 명칭가지고 조절해버린다니까.
'들이쉬-임' 하면서 명칭 길이만큼 들이쉬어버리는 거라. '내쉬-임' 하면서 그대로 (길게) 내쉬고. 부작용이 반드시 생깁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돼.
그래서 명칭과 실재하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면, 초보자들은 처음에 어느 정도 들려진다는 느낌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들어올림' 하고 명칭을 붙이라는 거라.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 명칭을 붙이는 것이 들어올리는 게 예를 들어서 요정도(높이)다 그러면 반 이상 돼서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이렇게 할 것 같으면 급해. 처음에 초급자들은.
그래서 어느 정도 들어올려지고 나서 3분의 1 정도 지나고 나서 '들어올림' 하면서 명칭을 붙여주는 것이 가장 좋아. '나아감'도 마찬가지고 '내려놓음'도 마찬가지고. 명칭을 붙일 때의 포인트를 분명하게 알고, 명칭을 왜 붙이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이게 주가 돼버리면 안 돼요. 됐죠?
경행수행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 그 부분은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다음에 경행을 하면 아까 일직선으로 한다고 그랬죠? 일직선으로 왔다갔다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그러면 경행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 여기에 벽이 있습니다. 이렇게 쭉 가면 벽에 탁 부딪쳐야 돼? 아니면 벽에 부딪치기 전에 딱 서야 돼? (수행자들 : 서야 돼요.) 서버리면 어떻게 해? 앞이 보이는 게 없는데, 눈을 감아라고 했는데, 뭐라 그랬어? 마음은 발바닥에 있어야 되는데, 앞에는 보지 마라고. 부딪쳐 그냥 가서. 가서 머리가 먼저 닿던 아니면 발이 먼저 닿던 부딪쳐. 그러고 나서 '닿음'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렇게 훈련을 하지 않으면 내가 인위적으로 조절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기 전에 '어. 멈춰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아직은 의도가 먼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데도, 이미 멈춰야 되겠다고 하면서 멈춰버려요. 지금 현재는 의도가 먼저 일어나고 나서 행위가 있다는 걸 모릅니다.
그럴 때는 그냥 가서 부딪쳐. 부딪치는 게 최고 좋아. 그러고 나서 적어도 일어나는 현상 자체는 알도록 하라는 거라. 부딛쳤으면 '부딪침' 부딪쳤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발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음' 하면서 내려놓으라는 거라. 안 그러면 뒤로 물린다면 '뒤로 물림' 하면서 발을 뒤로 물리고 '내려놓음' 하면서 내려놓으라는 거라.
예를 들어서 발이 요렇게 돼있을 거 아니라 부딪쳤으면.
그러면 '부딪쳤음' 하고 알고, '뒤로 물림' 하면서 물리고, '내려놓음' 하면서 내려놓아라는 거라. 발 두 개를. 그러면 여기서(벽에서) 떨어질 거 아니라.
그러고 나서 딱 서있으면 '서있음'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라는 거라.
나중에는 '서있음' 하는 것도 일일이 구분해서 '서있음'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지금 현재는 초보자이기 때문에 그냥 '서있음' 하면서 딱 서있는 것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라는 거라.
그리고 '서있음' 하면서 발바닥에서 일어나는 감각, 뭐 압박감이 있든지 뭔 감각이 있을 거 같으면 그 감각을 분명하게 알아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일직선으로 가라고 했으니까, 180도 돌아야 되죠?
발을 한발씩 '돌림' '돌림' '돌림' '돌림' '돌림' 하면서 180도로 딱 돌아라는 거라.
돌고나서 또 '서있음'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런데 '서있음' 하고 처음 초보자들이 알아차릴 때는,
'서있음'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1분 이상 넘어가면 안 돼. 1분이 뭐야, 아마 한 10초만 넘어가도 망상이 확 생겨버립니다. 그래서 1분 동안에 '서있음' 하고 나서 명칭을 두번 아니면 세번 아니면 다섯번 정도 딱 붙이고 나서는,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해야 돼? 그 1분 나머지 동안은, 마음이 가만히 있으면 튀어나갑니다. 그러면 지금 서있는 상태에서 움직여지는 것이 뭐라? 호흡입니다. 배.
그럼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려야 돼. 그래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마다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그냥 그대로 알아차리면 됩니다.
좌선했을 때 알아차리는 거하고 서있을 때 알아차리는 거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실제로 보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좋을 때가 누워있을 때, 그다음에 서있을 때, 그다음이 앉아 있을 때 입니다.
한번 실제로 해보면 그렇습니다. 앉아있으면 그걸 제약하는 조건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서있는 상태에서는 다른 것들이 쭉 펴져있기 때문에, 장기가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흡을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눈을 딱 뜬다고 생각하고 눈을 뜨고 앞에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거라. 가고자 하는 방향이 딱 있습니다. 그대로 180도 돌았으니까.
그래서 마음으로 '가고자함' 하고 마음을 내서,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하면서 걸어가는 거라.
이게 경행하는 기본 형태입니다.
이 형태는 반드시 유지를 하라.
이걸 유지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나중에는 걸음이 점점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이 나머지 부분들을 점점 제거해버리게 됩니다.
또는 걸음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이 될 거 같으면 빠르게 진행되는 것에 따라서 멈추는 것들을 모르고 그냥 홱 돌아서버립니다.
실제로 경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요렇게 하면서, 멈추고 나서 돌아야 되는데, 가면서 이렇게 돕니다. 가면서 픽 픽, 일상생활에 이미 그렇게 습관돼지는 거라.
멈춤고 돌아라. 그리고 돌고 나서는 서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그리고 호흡을 하고 다시 경행을 하라는 거라. 처음부터 그렇게 훈련을 해.
경행을 얘기하면서 시간이 너무 가버렸는데,
• 그다음 호흡.
그냥 다른 거 하지 마십시요. 코끝이면 코끝, 배면 배, 두 가지 중에 하나만 선택하십시요. 왔다갔다 하지말고.
코끝이나 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데, 자연스럽게 되는 위치를 분명하게 파악을 하라.
여기가 자연스럽게 알아지면 여기, 여기가 자연스럽게 알아지면 여기, 아니면 배의 여기가 자연스럽게 알아지면 여기, 여기 밑이면 밑, 자연스럽게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지점을 분명하게 하나 딱 상정해 두라.
그게 첫 번째 포인트입니다.
두 번째, 호흡을 코로 할 것이냐, 배로 할 것이냐 하는 것은, 호흡을 1분 동안 몇번을 하는지를 측정을 해보라.
코끝으로 해서 호흡을 '들이쉼' '내쉼' 해서 명칭을 붙일 때하고, 배로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명칭을 붙일 때, 1분 동안 몇번 하는가? 체크를 하라.
그래서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한번으로 했을 때 그걸 1분 동안 몇번 하는가?
16번 하든, 17번 하든, 18번 하는지 그걸 분명하게 체크해가지고, 물론 밥먹고 나서든 어디 뜀박질 하고 나서 그때 하면 안 되고, 고요하게 쉬고 있을 때 그때 측정을 해가지고 자연스럽게 호흡이 안정돼있는 곳들을 포인트로 잡아라는 거라. 둘 중에 하나는 먼저 잡아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다른 거 하지 말고 한 곳에만 집중을 하고, 포인트가 잡혔으면 배의 어디 포인트에 마음을 딱 거기에 두라는 거라.
쉽게 말하면 여기 바이올린이 있다, 그러면 이 바이올린은 가만히 두라는 거라. 활만 왔다갔다 하라는 거라. 바이올린은 움직이지 말고. 내가 마음을 두고 있는 포인트는 마음을 거기서부터 벗어나지마. 딱 그대로 있어. 그걸 통해서 호흡이 왔다갔다 하는 것만 그 포인트에서만 알아차리라는 거라.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옮겨갈 필요도 없고, 그리고 그 포인트를 일부러 인위적으로 팽창할려고 할 필요도 없고,
그것은 마음속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볼려고도 할 필요도 전혀 없어요. 그냥 마음속으로 그 포인트에 마음을 두고 있다 하고 딱 생각을 하고 호흡이 왔다갔다 하는 걸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것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그 포인트를 잡는 게 1차적인 의무.
시간이 다됐는데 나머지 부분은 다음 시간에 또 하도록 하고,
우선 하루 중에 집중수행하는 시간은 몇 시간? (수행자 : 두 시간)
반드시 두 시간은 잡아라.
그리고 가르쳐주는 방법대로 그냥 하십시요. 그대로 수행을 일주일간 지속하십시요.
그렇게 지속하고 나서 다음 시간부터는 보고를 해야 됩니다.
수행 안 하고 책본 것 가지고 와서 보고할려고 절대 하지 마십시요. 그거 모를 것 같죠? 다 압니다. 나도 옛날에 그렇게도 해봤기 때문에.
그냥 있는 그대로.
수행은 자기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고 자기를 감추려 해서도 안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지금은 늦을지 몰라도, 스님하고 둘이서 비밀스럽게 얘길하는데, 그걸 책에 나온 걸 가지고 할 게 뭐 있어? 딱 점검을 받고 계속적으로 할 것 같으면 그냥 속이고 한 것보다 훨씬 빨리 나가게 됩니다. 그걸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거라.
처음에는 수행을 하다가 법문하고 나면 그다음에 아마 경행을 해야 될 겁니다. 경행을 하고, 여기서 몇분 몇분씩 할 거라? 그걸 빨리 정해.
적어도 30분 이상씩은 (수행자 : 처음이니까 30분 30분 하죠)
아... 좀 늘릴려 했더만 딱 가로채버리네. 음, 30분 30분씩 하십시요.
그럼 30분 30분씩 할 거 같으면 두 타임 해야됩니다. 두 타임 가능해요?
"경행 - 좌선 - 경행 - 좌선", 적어도 수행은 두시간은 해야 될 거 아니가, 여기서. 그렇게라도 30분 30분 처음에는 그렇게 합시다. 나중에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더라도. 그래서 "경행 - 좌선 - 경행 - 좌선" 요렇게 하는 동안에 처음에는 스님이 여러분하고 같이 앉아가지고 수행지도를 조금 할 겁니다. 그러다가 스님이 어느 순간 슉 사라질 거라. 그러면은 여러분이 교대로 한 사람씩 와서 수행문답을 하도록 그렇게 하면 됩니다. 됐죠?
자! 오늘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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