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집중 수행법에 대한 이해』
2008년 붓다의 길따라 선원 교재
- 아짠 빤냐와로(진용) 스님 법문 -
1. 위빳사나(vipassanā)의 특징
+의미
‘위빳사나라’는 단어는 '위'와 '빠사나'라는 두개의 단어가 결합된 것으로 ‘잘 본다’는 뜻입니다.‘위(vi)’라고 하는 것은 무언가 잡은 물건을 ‘짜임새 있게 상세하게 자른다’, 즉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을 뜻합니다.
첫째, 모든 존재물은 영원성이 없어서 무너지고, 사라지고, 깨지고, 부서져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둘째, 그러므로 모든 사물에는 고통이 원초적으로 내재되어 있음을 뜻하게 됩니다.셋째, 어떠한 사물이나 생명체에도 그 자체의 주인이 없다는 것, 즉 '나'라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빳사나-(passanā)’라는 것은 ‘보는 것’, ‘잘 관찰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알아차림, 꿰뚫어 봄, 자세히 살펴봄, 사물의 실상에 대한 지혜를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한마디로 줄이면 '현상관찰 수행법' 또는 '마음집중 수행법'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빳사나’라고 하는 것은 ‘명확히 구별하여 상세하게 관찰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 석가모니 부처님이 2500여년 전 인간의 과거, 미래의 번뇌로부터 해방되고자 수행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 명상 수행법의 일종입니다.* 불교 중 남방불교권에서 이 수행법을 계속 이어받아 오고 있습니다. 현재 태국, 버마 등에서는 남자의 경우 군복무대신 3개월 정도 수행하는 것이 통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빳사나의 대표적인 수행법에 좌선과 행선이 있는데 그것은 선(禪)을 해서 자신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위빳사나는 잘 보는 것이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명상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온갖 것이 다 위빳사나가 됩니다.
예를 들면 불교를 공부하는 것도 혹은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부딪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물을 보는 것도 일종의 위빳사나 실천입니다. 특히 부처님께서 손수 가르치신 경전의 내용 등을 명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위빳사나의 효력은 잘 듣습니다. 좌우지간 사물을 명확히 구별하여 상세히 보는 것이 위빳사나 입니다.
+수행에 필요한 능력
위빳사나 수행의 기본은 '집중+알아차림' 입니다. 이 때 집중이란 마음을 모아서 알아차려야 할 대상을 향해 초점을 맞추는 것을 가리키고, 알아차림이란 그렇게 한 뒤에 그 대상의 변화하는 내용을 연속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집중+알아차림'을 '관찰'이라고 합니다. 이 관찰이 잘 되어야만 수행자가 목표로 하는 수행의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러려면 먼저 다음의 능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1. 집중력: 초심자는 집중력이 약해서 관찰대상에 마음을 잘 모으지 못합니다. 그러나 집중이 되지 않고서는 알아차림도 될 수 없으므로 꾸준한 노력을 통해 집중력을 길러야 합니다. 2. 정진력: 수행에 힘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수행에 대한 열의가 없으면 초점을 관찰주제에 맞추었더라도 곧 흐려져 버립니다. 3. 알아차림: 알아차림이 없는 명상은 일반적 명상수행에 불과합니다. 관찰주제에 대해 '깨어서' 알아차려야만 합니다. 4. 균형: 이상의 세 가지의 힘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거나 기울지 않고 균형 잡혀야만 합니다. 5. 지속력: 이상의 네 가지 힘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6. 자연스럽게 주제에 따라 붙음: 관찰주제가 바뀔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변화에 응하여 새 주제로 관찰력을 옮겨가며 따라붙어 관찰하는 능력이 생겨야 합니다. 7. 건강: 신체와 정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나 몸이 약하다 하더라도 특별히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관찰 대상
위빳사나의 관찰대상은 몸의 동작, 느낌, 감정, 외부현상 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관찰대상을 자세히 나누어 보았을 때 그렇다는 말이고, 실제로는 '지금 현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관찰대상이 됩니다.마음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저절로 가장 두드러진 현상 쪽으로 향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일부러 관찰대상을 찾지 않아도 관찰대상은 저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리가 심하게 아프다면 마음은 저절로 다리의 아픔을 의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는 다리의 아픈 현상이 관찰대상이 됩니다. 즉, 이 때는 다리의 아픔이 ‘지금 현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몸의 동작: 일어섬, 앉음, 걸음, 누움, 호흡운동 등과 같은 움직임을 관찰함. 2. 느낌: 통증, 가려움, 뜨거움, 차가움, 더움 등과 같은 감각을 관찰함. 3. 감정: 기쁨, 슬픔, 좋음, 싫음, 화남 등과 같은 감정상태를 관찰함. 4. 외부현상: 6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관찰함.
+이름붙이기
관찰대상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은 초보자에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모은 마음을 유지시키기도 어려우며, 유지되었더라도 그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도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이겨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 '이름붙이기'입니다.
예를 들어 다리에 통증이 일어나 그것을 관찰할 때에는 마음속으로 '통증, 통증, 통증'이라고 이름붙이면서 관찰합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마음은 주제에 잘 밀착되고 밀착된 마음은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으며 주제의 진행사항도 잘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같이 이름을 붙이다 보면 적당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현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비록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이름을 붙이면 됩니다. 또, 현상이 복잡하게 일어나거나 너무 빠르게 일어나 이름붙이면서 따라잡기가 어려울 때에는 ‘알고 있음, 알고 있음, 알고 있음’이라고 이름붙이면 됩니다.이 이름붙이기는 집중과 관찰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므로 지나치게 이름붙이기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름붙이기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중요한 알아차림은 뒷전이 되어서 현상은 바뀌었는데도 이름은 전의 현상에 해당되는 것을 뇌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1. 호흡시: 일어남, 사라짐 2. 입선시: 일어남, 사라짐, 서있음, 닿음 3. 경행시: 걷고자 함, 들어올림, 내밀음, 내려놓음, 닿음 4. 와선시: 누웠음, 닿음, 일어남, 사라짐
+기본 원리와 효과
'지금'이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찰나를 뜻하고, '여기'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현상을 뜻합니다. 우리의 판단, 추리, 상상, 관념화, 재반응 따위는 '지금'에 속하는 마음이 아니라 과거나 미래와 연관된 마음이며, '여기'와는 관련이 없는 외부적인 어떤 것과 관련 된 마음입니다. '지금, 여기'를 떠난 그런 마음은 곧 망상이며 방황일 뿐입니다.따라서, '지금, 여기'에 마음을 집중하여 알아차리고 있으면 망상이 없어지고, 망상이 없으므로 번뇌가 없어지게 됩니다.
스피노자가 남긴 "설사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유명한 말은 위빳사나적으로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사 다음 순간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집중할 것이다."(일상생활시) "설사 다음 순간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이 순간 나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알아차릴 것이다."(명상수행시)
1. 마음을 현재(now)에 머물게 한다. 2. 마음을 현장(here)에 머물게 한다. 3. 어디에서나 쉽게 수행할 수 있다. 4. 마음의 번뇌를 제거할 수 있다. 5. 정신력이 강화되고 집중력이 향상된다. 6. 긴장이 해소되고 건강이 증진된다.
2. 명상의 종류
+두 갈래의 길(道)
모든 인간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거기서부터 시작되게 됩니다. 그러나 갖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는 쉽게 달성되지 않으며, 설령 일시적으로 달성된 듯이 보였다 하더라도 곧 변화되고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만족을 추구하는 인간의 활동은 만족을 추구하는 그 자체와, 달성된 만족의 변화, 파괴라는 양면에서 긴장과 부담을 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긴장과 부담을 지는 삶은 만족한 삶일 수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만족하기 위해서 불만족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대로부터 많은 '길'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성자라든가 현자라고 부르는 분들은 그 '길'을 제시하신 분들입니다.
1. 절대자(신)에게 의지하는 길: 기독교, 이슬람교 등 2.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길 1)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철학적인 사색과 자기 성찰로써 마음을 수양함: 공자, 노자, 장자, 소크라테스 등 2)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함 * 종교적인 믿음에 종속하는 길: 카톨릭의 묵상, 힌두교의 명상법 등 * 종교적인 믿음을 넘어서 사물의 실재(實在)로 다가가는 길: 붓다가 제시한 마음집중 수행법(위빳사나)
+일반적 명상과 위빳사나
일반적 명상은 번뇌의 줄기를 제거하고, 위빳사나는 번뇌의 뿌리를 제거합니다. 즉, 일반적 명상을 통해서는 번뇌를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는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번뇌가 일어나는데, 위빳사나에서는 이를 근본적으로 없애 줍니다.비유를 한다면, 일반적 명상수행은 더러운 연못의 물을 가라 앉혀 표면이 맑게 한 것과 같고, 위빳사나는 연못 밑바닥의 더러운 오물을 말끔히 제거함으로써 표면을 맑게 한 것과 같습니다. 표면에서 보면 두 경우가 같으나 전자는 다시 더러워질 개연성이 있고 후자는 그럴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3. 수행법에 대한 이해
+마음집중 수행법
명상 수행법은 어느 특정 종교의 도그마나 세뇌가 아니라, 인간의 심성을 개발하여 보다 더 밝고 맑으며 지혜로워져서 스스로 자신의 성품을 깨닫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성숙된 삶과 차원 높은 정신적 안정을 얻게 해줍니다.인간의 동작이라는 것이 고정된 습관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메카니즘에 의해서 조작된 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므로, 행동에 밀착시켜 집중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마음이 함께 하게 되고, 육체적 행위를 마음이 완전히 알아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명상이라 하는 것은 마음을 어떠한 대상에 묶어 하나의 흐름이 형성되게 하는 것으로서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각 종교마다 특성적으로 가르치는 방법들이 다 있습니다.그러나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차원을 약간 벗어난 위빳사나(몸과 마음의 현상관찰을 통한 인식)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빳사나는 관념적 수행이 아니라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며, 실제 수행을 통해서 체험하고 이론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실천하여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위빳사나라는 마음집중 수행법은 근본적으로 몸과 마음 즉 내부와 외부에서의 영향으로 일어나고 있는 지금 현재의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인식하여 그것들의 움직임, 기능, 작용, 자연적 성질 등을 파악하고 깨닫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찰은 자신의 심적 내부현상과 자연적 외부현상 등이 영원성 없이 순간의 현상으로서 진행되는 것이며, 조건과 상황, 인연, 원인결과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임을 체험으로 깨닫게 해줍니다.
몸과 마음의 특성을 마음집중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으로써 지나친 탐욕심, 욕망, 갈애와 분노, 진심, 악심, 질투, 시기, 혐오, 어리석음, 초조 불안, 혼침, 망상, 의심 등의 번뇌를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번뇌들을 완전히 다스려 제거했을 때 우리는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며 해탈을 이루어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어떠한 번뇌라도 남아있는 한, 갖가지 괴로움, 슬픔, 비탄, 절망, 좌절, 정신적 심리적 갈등과 사랑과 미움의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같은 괴로움은 곧 번뇌가 원인이기 대문에, 번뇌는 반드시 다스려야 하고 제거해야 한며 번뇌의 소멸이 곧 고통의 소멸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네 가지 기본요소 즉 地, 水, 火, 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땅 혹은 地라 함은 단순한 흙이라고 하지 않고, 흙 혹은 땅의 성질을 뜻합니다. 흙의 요소 본질이란 딱딱하고 부드러우며 다양한 운용상태를 갖고 있습니다. 흙의 성질을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 있는 딱딱한 성분과 육체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는 뼈와 손톱, 발톱, 머리카락 등의 기능을 이해해야 합니다.물의 요소는 우리 몸속에 갖추어진 수분이며 피, 대소변, 눈물, 콧물, 진액 등과 같이 유연성과 유동성, 팽창성 등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들의 자연적 성질을 아는 것은 그 활동에 대한 내용과 작용을 관찰하여 알아차릴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불의 요소는 물질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 내에 있는 차갑고 더운 기운의 작용으로서 이것이 우리 몸에서 작용되고 있는 불의 특성입니다.바람의 요소는 우리 몸의 움직임, 떨림, 지탱하는 작용과 힘이며 성질입니다.이 같은 몸의 기본 구성요소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몸에 대한 집착과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몸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곧 소유의 번뇌를 일으키고 이 몸을 위해 많은 시간과 정력, 재력을 소비하는 어리석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수행의 다섯 가지 요소
마음집중 수행을 위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요소를 스스로 갖추어야 합니다. 이 요소는 수행의 진전을 도와줍니다.(1) 믿음: 자신은 이 수행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 이 수행을 통해서 몸과 마음의 자연적 성품을 깨달아 더 이상 잘못된 견해가 원인인 마음의 방황과 혼돈에 빠지지 않고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 이 수행으로 모든 편견과 독선에서 벗어나 보다 더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으로 자신과 함께 하는 모든 이들과 화합하고 협조하며 밝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
(2) 건강: 수행 기간 중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닐 것. 식사를 조절하고 마음은 항상 집중시키고 깨어있게 하며, 번뇌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여 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것.
(3) 솔직담백: 자신의 수행을 진지하고 정직하며 겸허하게 이끌어나가고 가르침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것.
(4) 정진노력: 굳건한 신념으로 꾸준하고 착실하게 그리고 흔들림 없이 강하고 확고한 노력. 좌선이나 기타 수행 중 정해진 일과를 잘 따르고 마음집중력을 꾸준히 향상시켜 나가며 끊어짐 없는 정진이 될 때 마음 알아차림은 지속적이고 순일하여 깊고 강해짐. 몸과 마음의 참된 진행 과정을 바른 노력을 통하여 바르게 깨달았을 때 바른 이해와 꿰뚫어보는 지혜가 예리하게 열림.
(5) 지혜완성: 바른 정진을 통해 모든 현상은 일어남이 있으면 사라짐이 있다는 진리를 체험으로 깨닫고 어느 한 가지도 영원함이 없음을 실제로 이해함. 또한 몸과 마음, 물질과 비물질은 원인과 결과의 상호 연속적 작용에 의해서 존재 한다는 진리를 체득한 지혜(智慧). 책을 통한 간접적 지해(知解)가 아니라 현상적 진리의 체험을 의미한 지혜.
4. 무엇을 대상으로 마음을 집중할 것인가?
마음은 비물질이요. 육체는 물질입니다. 비물질인 마음의 변화하는 속도는 물질인 육체보다 몇 배나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어떤 대상에 연결시켜 묶어놓는 기능이 몸과 마음의 현상관찰 수행인 것입니다.현상관찰 수행이란 어떠한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변화나 진행상태를 개인적 관념이나 사상을 부여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는 상황 그대로 즉, 있는 모습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좌선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좌선은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서 마음을 갈고 닦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전지식 없이 무조건 좌선한다고 앉아 있으면 어떤 대상을 관찰해야 할지, 어떻게 마음을 집중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그래서 막연히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이러한 상태는 좌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좌선 시에 사용되는 집중 포인트는 다양하게 많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방법을 설명 하도록 하겠습니다. 몸과 마음은 곧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이기에 가장 가깝고 사실적이며 확실하여 다른 어떠한 관념으로부터 쉽게 분리해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세를 갖춥니다.다리를 포개거나 나란히 하거나 결가부좌 중에 자신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택하여 허리를 펴고 긴장을 풉니다. 손은 양 무릎에 덮거나 얹든지 하고 눈은 감으며 입도 다물고 혀는 윗니와 입천장 사이에 닿게 합니다. 눈을 감는 이유는 눈을 뜨고 있을 때 눈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마음을 빼앗게 되고 분별하게 하며 갖가지 망상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세를 갖춘 후에는 관찰을 합니다.앉아있는 상태에서의 몸의 현상은 앉은 모습 그 자체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의해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즉 숨을 들이쉬면 배가 불러오고 팽창되는 것을 느끼게 되며 숨을 내쉬면 배가 꺼지고 수축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에 배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상태를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서 부터 중간 진행, 끝맺음까지 완전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호흡에는 복식호흡과 흉식호흡이 있는데 혹시 흉식호흡을 하는 분이 있다면 즉시 고쳐 복식호흡을 하도록 권합니다. 흉식호흡과 복식호흡은 건강상으로나 정신적 안정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흉식호흡은 쉽게 말해서 불안한 호흡이며 혈압의 상승작용인 화(火)의 상승작용을 돕거나 불러일으키며, 이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불안과 피로감이 쉽게 따릅니다. 쉽게 흥분하고 초조해 하며 심하면 뇌졸증, 고혈압, 심장질환 등의 성인병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복식호흡은 단전호흡이 아닙니다.흔히들 복식호흡이라 하면 단전호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호흡이 진행되는 과정은 같을지라도 의미는 매우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식호흡은 횡격막의 아래 부분까지 이르게 하는 깊은 호흡이며 어떤 의도와 규칙을 정하지 않은 극히 자연스런 호흡의 진행 상태를 의미합니다. 복식호흡은 정신과 육체를 편안케 하며 안정시켜 줍니다. 또한 갖가지 성인병 발생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주며,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흡수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단전호흡은 숨을 아랫배에 이르게 하나 의도가 있으며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호흡에 의도나 규칙을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호흡은 나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호흡을 자기 스스로의 의도에 따라 진행시킨다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단순합니다. 단지 지금 현재 호흡이 진행되고 있느냐 아니냐로써 판단되기 때문에 명재경각(命在頃刻)이라 하였습니다.
호흡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신체적 조건과 산소의 존재로 인하여 진행되는 현상입니다.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 함유되어 있는 갖가지 물질(유기질, 무기질, 이산화탄소, 질소 등)의 성분에 따라 인체에서 받아들임과 받아들이지 못함이 있고, 또한 신체의 조건, 즉 질병, 심리적 상태, 육체적 활동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호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도를 부여할 수 없고 규칙을 정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호흡은 극히 자연스럽게 진행시키면서, 다만 마음을 순간순간 진행되는 호흡이나 호흡에 따라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집중시켜 인식하고 관찰하여 그것들의 자연적 성질을 깨닫는 것입니다.
호흡에 따라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 즉 아랫배의 일어나는 상태에 이름을 붙여 "일어남"이라고 인식하며, 숨을 내쉴 때 아랫배가 꺼지는 것을 "사라짐"이라고 인식합니다. 이렇게 지금 현재 일어나고 사라지는 몸의 현상에 따라 진행되는 상태의 안쪽으로의 움직임과 밖으로의 움직임, 움직임의 모양이 둥근 것인가, 네모난 것인가, 삼각형인가, 왼쪽에서만 인가, 오른쪽에서만 인가, 혹은 평면적인가, 뾰족한 상태인가 등의 다양한 변화를 아주 가까이 밀착된 상태로 관찰합니다.
이처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은 인간의 몸의 네 가지 요소 중 바람의 작용에 의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 '존재'하든지, '나'라든지, '영혼'이라든지 '내'가 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와 같은 착각은 반드시 깨져야 하고 깨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몸의 동작에 대한 현상관찰
오래도록 앉아 있다가 다리의 뻣뻣함, 묵직함 등을 느끼고 일어서서 걷고 싶을 때에는 먼저 그와 같은 의도가 존재 한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즉 '일어서고자 함'의 심적변화와 의도를 알아차리고 일어서는 동작에 따라 '일어섬, 일어섬'이라고 관찰하면서 일어섭니다. 서있을 때는 '서있음, 서있음, 서있음'이라고 관찰하면서 인식합니다. 걸을 때는 '걷고자 함, 걷고자 함' 이라고 인식한 후에 오른쪽 발을 들어올리면서 '들어올림, 들어올림'이라고 인식하며, 발을 앞으로 내밀 때는 '내밀음, 내밀음, 내밀음' 발을 내려놓을 때는 '내려놓음, 내려놓음, 내려놓음' 발이 방바닥에 닿을 때는 '닿음, 닿음, 닿음'이라고 명칭을 속으로 붙이면서 진행되는 상태를 인식합니다.
회사 출근 시에, 아침 산책 시에 혹은 시장가는 길에 '오른발-왼발, 오른발-왼발, 오른발-왼발'이라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걷는다면 다리의 움직임에 마음이 함께 하는 것이며 걷는 동작을 알아차리는 결과가 됩니다. 문을 열기 위해 팔을 뻗칠 때, 문을 밀고 열 때의 몸이 움직이는 동작, 문을 닿는 동작, 또는 옷을 입고 벗을 대, 식사할 때, 세수나 샤워할 때 등의 동작에 대해서 항상 마음속으로 알아차리고 명칭을 부여하여 관찰합니다. 화장실에 갈 경우라면 가는 동작, 앉는 동작, 앉아있는 동작과 변이 통과하는 순간을 관찰합니다. 밥상이라든가 물건을 들고 놓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관찰 인식합니다.
이와 같이 몸의 동작에 대한 현상관찰 없이 자신의 행동과 상관없는 주제에 마음을 둔다면, 예를 들어 가정의 변기에 앉아 있으면서 사업 구상이나 회사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화장실에서 배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둘 다 아닌 허수아비 놀음을 하고 있지는 않는 것입니까?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행동에 대한 감시가 없고, 알아차림이 없어져 흐트러진 행동에 대한 자제력 없이 무책임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까?
몸은 마음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항상 알아차리고 인식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움직일 때 마음은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지며 하나가 되는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며 이러할 때만이 진정 집중된 생활인이 되는 것입니다.
+느낌의 현상관찰
좌선 중에 시간이 경과되면서 포개어진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하면 일반적으로 저려옴을 빨리 해소시키려는 욕구에 의해 즉시 다리를 바꾸는 동작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여기 수행에서는 저려온 다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리의 저려옴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관찰합니다. 마음이 아랫배의 '일어남, 사라짐'과 밀착된 상태에서 면밀하게 간단없이 관찰하고 있었다면 절대로 다리의 저려옴을 느낄 수 없지만, 이미 관찰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그 틈 사이로 다리가 저려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때에 자신의 아랫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 하던 마음을 다리 저려옴으로 옮겨 '다리 저려옴, 저려옴, 저려옴'이라고 관찰하고 인식한다면 즉시 다리 저려옴이 사라지게 되거나 다리 저려옴이 약해집니다. 이 때에는 다시 아랫배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마음을 집중하면 됩니다.
다리에 통증이 일어났을 대나 차가움을 느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모든 느낌을 통해서 일어나는 현상을 빨리 알아차리고 관찰하면 그 느낌들은 곧 사라지게 됩니다. 이처럼 느낌이 일어나는 '그 곳'에 '나'라는 주관을 부여하지 않은 채 객관화시키고 관찰하면, 느낌은 곧 마음의 위치에서 밀려나가고 느낌을 관찰하는 마음이 현재가 됨으로써 느낌의 상태가 더 이상 존속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정신적, 감정적인 현상관찰
좌선 중에 모든 상황이 좋아져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하나의 마음이 되는 듯 해질 때는 행복함을 느끼게 되고 거기에 집착이나 선호하는 분별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는 곧 망상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니 행복함을 느낄 때는 '행복함, 행복함, 행복함'하고 관찰인식하고, 불행함을 느낄 때나 유감스러울 때, 슬픔이 일어났을 때, 화나는 상태일 때도 마찬가지로 즉시 감정상태에 명칭을 부여하여 관찰인식하고 다스림으로써 슬픔이 확대되기 전, 불(火)의 요소가 확대되기 전, 감정의 노예가 되기 전에 평온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좌선 중에 현상에 대한 일념 집중이 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머리가 아플 때는 즉시 '머리 아픔, 머리 아픔, 머리 아픔'이라 관찰인식하고, 이런저런 생각들로 방황할 때는 '망상, 망상, 망상' 혹은 '방황함, 방황함, 방황함' 이라 관찰인식합니다. 이 때 매우 예리하게 주의력을 기울여 확실하게 관찰한다면 망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게 되며, 어떠한 망상이라도 절대 오래감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이 정신적 감정상태를 관찰할 때는 예리한 주의력으로 정확하고 확실하게 포착하여 관찰함으로써, 관찰하는 마음이 지속적이고 끊어짐 없이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망상이나 감정상태를 알아차리는 마음이 강할 때에는 관념이나 사고가 즉시 사라지고 오직 순수한 관찰만이 오롯하게 진행되어 사물의 진실한 모습, 지금 현재 진행되는 순간의 적나라한 모습만이 남게 됩니다.
+대외적 현상관찰
대외적 현상이란 인간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하여 받아들이게 되는 인체 외부의 자극이나 현상을 의미합니다. 즉 눈, 귀, 코, 혀, 몸, 마음 등을 통칭하여 여섯 문이라 하고 빛(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사상 등을 여섯 현상이라고 하며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등을 여섯 인식기관이라 합니다.
대외적 현상에 대한 관찰이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알며, 접촉하고, 생각 내지 인식하는 여섯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에 대해 각각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독특한 방법으로 알아차리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분별판단이며, 안식의 작용과 눈의 창문이 열려 있음으로 해서 물체의 존재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이 아니요, 또한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합니다. 안식의 기능 그 자체는 '나'라는 주체가 아니며, 마음 역시 '나'라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의식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빛, 소리, 냄새, 몸의 느낌, 맛 등이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하나의 현상이 연속적으로 느껴져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 '나'라는 자아 관념이요, 고정된 의식속의 '나'인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을 관찰하고 소리를 관찰함으로써 의식의 빠른 변화를 깨닫게 되며, 모든 현상이나 의식은 단순히 일어나고 사라지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함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소리나 냄새 등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지 않으며, 싫어함 혐오감도 일으키지 않으며 소유의 욕구도 솟아나지 않게 되어 물질적 감각적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고, 모든 현상에 대한 실체적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대외적 현상에 대한 관찰은 '나'라는 것에만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외부현상에도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함으로써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체험케 하고 정신적 물질적 갈등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이처럼 대외적 현상을 관찰을 통해 바르게 이해하면 실제의 생활에서 현명하고 편견 없는 원만한 태도를 갖추게 되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게 됩니다.
즉 행위는 남되 행위자는 없다는 사실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자신의 위치에서 지금 이 순간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알아 적은 실수라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되고 이미 시작된 일은 책임감 있게 완성시켜 갈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정한 행위를 묵과하는 조건으로 뇌물을 받아 착복했다면 법은 그 행위에 대해 형벌을 내립니다. 그러나 인간 자체에 대해 형벌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이 외부의 현상에 대한 관찰은 외부현상 및 자아에 대한 집착을 없앨 뿐 아니라, 물질적 욕구도 억제해줌으로써 분노, 시기, 질투 등이 가라앉게 되고 어리석음으로 인한 독선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해줍니다.
5. 수행의 실천적 모습
어떠한 이론도 실천적 수행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생명력을 잃게 되고 하나의 궤변이나 공론에 불과해집니다. 진리는 가장 보편적으로 만인이 받아들이고 실천을 통해 확인될 수 있을 때 진리로서 생명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집중 수행법도 몸과 마음, 느낌 등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실제로 실천 수행하여 체험을 얻고 사실 확인이 될 때 비로소 그 이론이 수긍이 될 것입니다.
마음집중 수행법의 실천방식은 다양하고 여러 형태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틀을 설정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앉았을 때의 수행
우선 먼저 장소가 선택되어야 합니다.마루나 온돌방일 경우 옷을 편안한 것으로 입고 실내온도는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야 합니다. 옷은 얇은 것으로 가볍게 입는 것이 좋으며 될 수 있으면 피부노출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자주 출입하는 곳이라든지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 근처라든지 혹은 부엌이 너무 가까워 조리시의 시끄러움이나 냄새로 방해되는 곳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소를 선택한 다음에는 약간 두꺼운 방석을 깔고 앉습니다. 결과부좌를 할 경우에는 왼쪽 발이 오른쪽 허벅지 위로 올려지고, 오른쪽 발이 앞쪽이 되면서 왼쪽 정강이를 가로질러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집니다.
손은 자신의 배꼽 부분 앞에 왼손이 먼저 놓이고 왼손바닥 위에 오른손 등을 얹어놓거나, 양손이 양쪽 무릎을 덮을 수도 있고, 아니면 손바닥을 위로하여 벌려 놓을 수도 있으며, 주먹을 가볍게 쥐어 양 무릎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손의 위치에 따라 수행이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아니므로 크게 신경 써서 모양새 있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가부좌가 여러 가지 형편상 불가능할 경우에는 오른쪽 다리위에 왼쪽 다리를 포개어 얹든지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다리를 포개어 얹든지 하면 됩니다. 반가부좌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왼쪽 다리를 안으로 구부려 넣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나란히 하여 편안하게 앉아도 됩니다.
어떠한 자세로 앉았든 간에 허리는 펴고 어깨는 힘을 빼서 편안케 하며 고개도 역시 힘을 빼서 긴장을 풀어야 합니다.눈은 지그시 감고 입은 다문 채 오직 자연스러운 호흡과 호흡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마음이 호흡에 밀착되어 한순간 한 동작도 놓침 없이 섬세하고 정확하게 관찰합니다.
요즘에는 주거생활 패턴의 변화로 의자를 사용하는 입식생활이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의자에 앉는 습관에 더 익숙해진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급적 의자사용은 피하고 바닥에 다리를 포개고 앉는 습관으로 좌선 연습을 하여 익히는 것이 수행이 진행되는 과정에 좀 더 효과를 가져다줍니다.의자에 앉았을 때도 허리는 펴되 긴장하지 않아야 하며 느슨히 풀려서 기대앉지 말아야 합니다.
+좌선(坐禪) 방법
(1) 외부로부터 격리된 조용한 곳에 방석을 깔고 앉는다. 방석은 얇은천 한 장을 까는 것이 좋으나 초심자의 경우 약간 뒷부분을 두텁게 깔아도 좋다. (2) 다리는 결가부좌나 반가부좌 등이 좋으나 이런 자세를 앉아 있기 어려운 초보자는 두 다리를 = 모양이 되도록 나란히 하는 자세를 취하면 된다. (3) 허리는 반듯이 편다. 그러나 초심자는 허리가 구부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는 억지로 펴려 하지 말고 조금만 세운다는 정도의 자세를 취한다. 수행이 진전되면 굽었던 허리가 자연스럽게 펴지게 되며, 또 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수행력과 직접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 (4) 목은 자연스럽고 가볍게 세우고, 어깨도 힘을 빼서 편안하게 한다. (5) 두 손을 모아 앞에 놓는다. 손을 놓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이 중 어느 것도 좋지만 자기의 신체 조건을 고려하여 좌선 중 손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자세를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손이나 발이나 무릎에 닿는 면적이 넓을수록 좋다. (6) 전신의 긴장을 푼 상태에서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입을 다물며 혀는 윗니와 입천장 사이에 닿게 한다. (7) 호흡에 의해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관찰한다.(일어남, 사라짐) (8) 호흡관찰 중 다른 현상을 인식하게 되면 즉시 그 현상을 관찰한다.(통증, 망상, 졸림, 걷고자 함 등)
+걸을 때의 수행
오랜 시간 좌선에 몰두하여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고 집중력이 생겨, 호흡과 마음 혹은 일어남과 사라짐의 현상과 이를 관찰하는 마음이 마치 한 쌍처럼 되어서 면밀히 연결될 때는 다리의 아픔도 저려옴도 느끼지 못합니다. 마음이 완전히 지금 현재 순간의 작용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순간 마음과 관찰하는 동작 사이에 공간이나 틈이 생기면 그 사이로 다리의 아픔이나 저려옴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할 때도 '일어서겠다'는 마음의 의도를 관찰하고 일어서는 동작에 마음을 집중시키면서 천천히 일어선 다음 '서있음, 서있음, 서있음'을 관찰해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다시 걷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을 알아차린 후 '걷고자 함, 걷고자 함, 걷고자 함' 하고 관찰한 다음 오른발을 들어올리기 시작하면서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하고 관찰합니다.
앞으로 내밀을 때는 '내밀음, 내밀음, 내밀음', 내려놓을 때는 '내려놓음, 내려놓음, 내려놓음'이라고 관찰하면서 마음의 모든 집중력을 지금 현재 움직이고 있는 다리의 동작, 변화하는 모습 등에 집중시킵니다.(그림 5 참조)
장소는 특별히 만들 수 있다면 너비 50cm, 길이 약 20m에 부드러운 모래를 깔고 주위의 장애물 즉 나무나 돌, 바위, 건물 기타 구조물로부터 떨어져 있는 곳이 좋습니다. 이와 같은 장소 마련이 불가능하다면 어느 공간이든지 자기 자신이 걷는데 불편함이 없는 장소를 이용하면 됩니다.
걸을 때의 마음집중 수행은 수행환경에 변화를 주고 통증으로부터 벗어나며, 활동을 통한 정신적 쾌적함을 확보케 함으로써 혼란이나 나태함에서 벗어나 보다 강한 노력의 힘을 배양시켜 줍니다. 명상수련원에서 집중적으로 수행할 때는 1시간 좌선 1시간 걷기를 계속하여 7시간 걷고 8시간 좌선하는 경우가 일상 일과로 되어 있습니다. 너무 오래도록 앉아만 있어도 의식이 침체되고 혼란이 오며 나태해져 망상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할 때 일어나 허리와 다리를 펴고 몸을 움직여 새로운 정신을 가다듬는 것입니다.
마음을 집중하면서 천천히 걷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어색하고 마치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것 같지만 냉철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걸을 때 마음의 소재나 방향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걷고, 서고, 앉고, 눕고 하면서 마음은 항상 어느 곳 자신의 현실이나 현재와는 상관없는 곳에서 방황하고 배회했을 뿐입니다. 이제 이러한 애매한 생활에서 벗어나 몸의 움직임에 마음이 항상 함께하는 생활습관을 길들이기 위한 첫걸음을 배우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걷기수행은 아침 일찍 좌선 전이나 식후 혹은 운동 후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하면 몸 전체의 혈액순환이 잘되며 근육이 유연해지고 원할해져 건강증진에 도움이 됩니다.
걷기수행의 이점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먼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게 해 줍니다. (2) 마음집중력을 키워줍니다. (3) 좌선과 걷기의 균형을 잡아 건강에 도움이 되고 수행의 진도가 빨라집니다. (4) 식후에는 소화에 도움을 주고, 새벽 좌선 전에는 잠을 깨우는 데 도움을 주어 좌선 시에 졸음을 없애줍니다. (5) 좌선에서 얻어진 집중력은 고요 속의 집중이며, 걷기에서의 집중은 움직임 속의 집중이기에 서로간의 상승효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명상수련원에서 실시되는 걷기수행은 여러 단계로 구분됩니다. 예로서 발꿈치를 드는 순간에서부터 완전히 발을 들어올려 앞으로 천천히 내민 후 내려놓는 것까지를 구분으로 하면 한 발자국 옮기는데 시간이 약 30~40초 정도 소요됩니다. 그러나 바쁠 때는 '왼발, 오른발'이라고 관찰하고 좀 더 빠를 경우는 '좌, 우, 좌, 우'라고 하면서 짧고 빠르게 관찰합니다. 아주 느릴 때는 한 발자국 옮기는 것을 세분화하여 그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합니다.
속도를 어떻게 하든 간에 시작에서 끝까지 진행되는 상태를 자세히 관찰함으로써, 마음이 오롯하게 동작에 집중되고 집중된 마음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걷는 것을 관찰하면서 삼매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자신의 다리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걷기수행을 할 때 눈을 감아서는 안 됩니다. 눈을 약간 아래로 뜨고 자기 앞의 거리 1~1.5m정도를 응시합니다. 머리는 반듯하게 하고 몸의 긴장을 빼는 것은 좌선과 같습니다. 고개를 너무 수그리면, 목과 어깨에 긴장감을 느끼게 되고 등이 구부러져 현기증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현기증이 일어나면 즉시 '현기증, 현기증, 현기증'이라고 관찰하여 알아차려야 합니다. 걷기 중 주변의 환경이나 물체에 신경이 쓰여 바라보게 될 때는 걷기를 멈추고 '바라봄, 바라봄, 바라봄'이라 관찰한 다음 다시 걷는 동작에 마음을 집중시킵니다.
+경행(經行, 行禪) 방법
(1) 이 수행은 '걸으면서 하는 좌선'이라고 보면 된다. 졸음이나 망상이 심할 때 극복하는 효과가 있고, 몸이 굳어 있을 때 푸는 효과도 있다. (2) 주위에 장애물이 없고 바닥이 고른 공간 앞에 선다. 자세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거나 뒷짐을 지거나 늘어뜨린다. (3) 머리를 반듯이 하고 몸의 긴장을 푼다. (4) 눈을 뜬 채로, 혹은 감은 채로 서있는 자세를 관찰한다.(서있음, 서있음, 서있음) (5) 걷고자 하는 의도를 관찰한다.(걷고자 함, 걷고자 함, 걷고자 함) (6) 눈은 가볍게 내리뜨려 전방 1~1.5m 앞을 보면서 걷는다. a. 1분절로 걸을 때: 왼발과 오른발이 나갈 때마다 '좌, 좌, 우' 또는 '왼발, 오른 발, 왼발, 오른발'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관찰한다. b. 2분절로 걸을 때: 각 발걸음마다 '(왼발) 들어서 놓음, (오른발) 들어서 놓음 '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관찰한다. c. 3분절로 걸을 때: 각 발걸음마다 '(왼발)들어올림, 내밀음, 내려놓음, (오른발)들어올림, 내밀음, 내려놓음'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관찰한다. d. 4분절로 걸을 때: 들어올림, 내밀음, 내려놓음, 닿음 (7) 걷다가 서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그 의도를 관찰한다.(서고자 함, 서고자함, 서고자함) (8) 멈추어 서서 돌고자 할 때도 요령은 같다.(섬, 섬, 섬, 돌고자 함, 돌고자 함, 돌고자 함) (9) 걷는 동안에 옷을 바로 잡거나 땀을 닦거나 소리를 듣거나 몸에 다른 두드러진 현상이 일어나면 그 또한 이름을 붙이면서 관찰한다. (10) 걸을 때의 발의 관찰은 주로 발 복숭아뼈 아래 부분만을 관찰한다. (11) 관찰은 주로 발의 움직이는 흐름을 보되, 발에서 딱딱함이나 부드러움, 차가움이나 뜨거움, 가려움 등 다른 두드러진 현상이 나타나면 그것을 관찰하면 된다. (12)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좌선에 앞서 경행을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하면 좋다. 경행은 처음 10분은 1분절, 다음 10분은 2분절, 그 다음 10분은 3분절로 하면서 점차 속도를 느리게 하다가 적당하다고 생각될 때 좌선으로 바꾼다. (13) 졸음에 대해서는 보다 빠른 걸음걸이가, 망상에 대해서는 보다 느린 걸음걸이가 효과적이다. (14) 경행으로 얻어진 집중력과 고요함을 흩트리지 말고 고스란히 잘 보호하여 조용하게 앉아서 좌선함으로써 마음 집중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서 있을 때의 수행
좌선 중 마음집중력이 약해지면서 졸음이 밀려 올 때 졸음을 쫓는 한가지방법이 서서하는 마음집중 수행입니다. 고개를 바르게 하고 목과 팔, 어깨의 긴장을 빼며 손은 앞으로 차수하거나 뒤로 마주 잡습니다. 두 발은 가지런히 혹은 약간 사이를 두고 서 있으면서, 서있는 동작 자체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래로 또는 발바닥에서 머리 위까지 위로, 쓸어내리고 올리는 듯 '서있음'과 서있는 자세를 관찰합니다.
서있을 때의 관찰은 우선 '서있음, 서있음, 서있음'이라 이름 붙여 알아차리고 가끔씩 '서있음, 서있음, 닿음, 일어남, 사라짐'등으로 관찰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서있게 되면 힘이 들고 피곤해져 정신이 몽롱해지고 쓰러질 염려가 있습니다. 또한 다리나 발목 등에 부담이 되어 통증을 일으키게 되니 무리한 긴 시간의 정진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차, 버스, 택시정류장 등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괜히 서성거리며 좌우를 살피는 불안한 모습을 보일 필요 없이 자신의 서있음과 몸이 접촉되는 부분을 관찰해 알아차림으로써 마음이 안정되고 태도는 조용해져 마치 큰 바위가 흙 속에 묻힌 듯 할 것입니다. 모든 일에 이처럼 의지가 곧고 안정되며 침착하고 조용한 모습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입선(立禪, 住禪) 방법
(1) 좌선 중 졸음이 밀려올 때 일시적으로 졸음을 쫓기 위해 실시한다. (2) 고개를 바르게 하고 목과 팔, 어깨의 힘을 뺀다. (3) 손은 앞으로 마주잡거나 뒷짐을 진다. (4) 양발은 가지런히 하고 약간 사이를 두어 서 있는다. (5) 서 있는 자세를 머리에서 아래로, 발끝에서 위로, 쓸어내리고 올리듯 관찰한다.(서있음, 서있음, 서있음) (6) 가끔씩 발끝의 상태와 호흡을 관찰한다.(일어남, 사라짐, 서있음, 닿음) (7) 입선은 오래할 경우 정신이 몽롱해져 쓰러질 염려가 있으며, 다리나 발목에 부담을 주어 통증을 일으키게 하므로 긴 시간 정진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누웠을 때의 수행
이 수행은 두 가지 경우에 실시합니다.
누울 때의 자세는 오른쪽 옆구리가 방바닥에 닿고 발은 아래위로 가지런히 포개어 정돈된 자세를 취합니다. 첫째는 좌선 중에 졸음이 와서 갖가지로 졸음을 퇴치하려 노력하다가 도저히 졸음을 이겨낼 수 없을 때 몸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약 15~30분 정도를 누워서 행하는 것입니다. 앉은 자세에서부터 일어나는 동작을 자세히 관찰하고 자리에 눕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관찰한 후 졸음이 완전히 가시는 경우 다시 좌선으로 돌아갑니다.
누울 때 다음과 같이 마음속으로 약속을 정해두면 매우 효과적입니다. '내가 졸음에 지쳐 잠들기 위해 눕는 것이 아니라 몸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잠시 마음을 집중하여 눕는다'라고 마음을 먹습니다.
자신의 호흡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아랫배의 현상을 관찰하면서 '일어남, 사라짐' 그리고 '누었음, 닿음'이라고 알아차리며 집중된 자세로 누워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제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안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잠자리에 드는 경우입니다. 이때도 될 수 있는 한 의도적으로 몸의 모든 동작에 마음을 집중하여 관찰하고 알아차린 후 잠에 들면 잠들기 전의 갖가지 고민으로 인한 마음의 긴장이나 불안, 초조, 망설임, 서성거림들 등의 심리상태가 말끔히 사라지고 극히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집중된 마음으로 잠들게 되면 잠이 깊이 들게 되어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모두 풀리고 나쁜 꿈같은 것을 꾸지 않으며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도 가볍고 정신이 맑아져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잠에서 깨었을 때는 즉시 '깨었음, 깨었음, 깨었음'이라고 관찰해 알아차리고 마음의 다음 동작에 대한 준비와 일어나기 위한 몸의 동작을 천천히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이름 붙여 인식합니다. 이렇게 되면 잠들기 전에서부터 숙면, 잠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되는 새로운 일상생활이 단절됨 없이 계속 이어지는 연속성을 갖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어제의 수행이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의 수행이 내일로 이어져 지속적인 삶이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항상 새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흐름, 공기의 흐름, 시간의 흐름 등 모든 주변 환경의 연속적인 변화가 새롭게 나타나고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변화성은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게 하고 보다 더 유연한 생활의 적응력을 키워줍니다.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을 잔다는 것은 지난 시간의 활동에 대한 멈춤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조용히 이어지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생활의 연속인 것입니다. 보다 평화로운 휴식은 보다 알찬 다음의 행동에 대한 준비이듯이, 항상 깨어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와선(臥禪) 방법
(1) 좌선 중에 밀려오는 졸음을 도저히 물리치지 못할 때, 몸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약 15~30분 정도 실시한다. (2) 또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실시한다. (3) 자세는 오른쪽 옆구리가 방바닥에 닿고, 발은 아래위로 가지런히 포개 놓는다. (4) 오른쪽 손은 머리를 받치고, 왼쪽 손은 대퇴부에 올려놓는다. (5) 먼저 누워 있는 자세를 관찰한다.(누웠음, 닿음) (6) 다음은 호흡을 관찰한다.(일어남, 사라짐) (7) 잠에서 깨었을 때는 즉시 '깨었음, 깨었음, 깨었음'이라고 관찰하면서 천천히 다음 동작을 관찰해 나간다. (8) 좌선하다가 와선을 실시하였든 또는 수면을 전후해서 와선을 실시하였든 중요한 것은 연속적인 흐름을 깨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6. 일상생활 속에서의 수행
인간은 생각하고 생각에 따라 움직이며 여럿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기능적 사회생활인입니다. 여럿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각자가 지닌 기능을 발휘하여 자신과 사회에 이익 됨이 있도록 하기 위해 교육, 기술, 종교, 직장, 법, 국가 등이 필요합니다. 즉, 여러 사람의 공동생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각자가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다스려 행동에 규제를 가하고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행동의 규제는 외부적 법칙이나 어떤 율법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충동을 다스리고 행동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대체로 행복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행복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해왔지만, 명쾌한 대답을 얻고 이를 차지한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 보면 인간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행복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공존하면서 이를 억누르는 요인이 있으니 그 요인을 제거한다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성취되거나 나타날 수 있습니다. 행복의 상대는 불행, 고통입니다. 이 고통을 다스릴 수 있다면 남는 것은 행복뿐이니 행복은 자연히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모든 존재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의해서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고통이 있다는 것은 고통이 있게 만든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인 고통이 없어지게 되고 고통이 없으면 행복만이 남습니다. 그러면 고통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고통의 원인은 물질, 비물질에 대한 과도한 애착, 탐욕, 갈애, 갈망, 욕정, 소유욕입니다.
이 같은 과도한 애착과 탐욕, 갈애, 욕정 등은 곧 자아관념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이것을 꼭 필요로 한다. 저것은 꼭 내 것이 되어야 한다. 나는 꼭 이같이 되어야 하고, 저같이 되어야 한다'라고 집착하면 이러한 자아관념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탐욕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탐욕에 맞추어 현실이 이루어지는 바가 없을 때는 고통이 따르고 이 고통이 있는 한 자신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탐욕심을 버리면 모든 고통이 없어지고 행복만이 남습니다.
여기 마음집중 수행은 곧 이 세상 모든 것에 '자아'라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해주고 모든 구성물체들은 영원성이 없음을 깨닫게 해주어 집착과 애착, 애욕, 갈애, 갈망을 다스리게 함으로써 행복과 평화스런 마음으로 모든 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직장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문제되는 것이 있다면 대인관계와 상하의 구조적인 심리적 갈등일 것입니다. 상하의 분별 내지 차별이 어디에서 비롯됩니까? 바로 자아관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아가 있으므로 해서 모양새에 신경 쓰고, 상대방의 언어와 언성에 신경 쓰게 되고, 명령과 복종의 태도, 업무수행 태도 등에 신경이 쓰여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아란 무엇인지 그 실체를 찾을 수가 없다면 굳이 자아관념에 사로잡혀 그토록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누가 누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입니까? 만약 주는 자가 있다면 이를 슬기롭게 피하거나 떠넘겨 버리면 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가령 박이사가 김부장에게 업무상 야단을 쳤다면 김부장은 스트레스라고 생각하기 전에 박이사가 왜 그렇게 했는가를 생각합니다. 그 원인이 예를 들어 자신의 지시불이행일 경우라면 깨끗이 승복하고 다음부터 새로운 원인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만약 김부장에게 특별한 원인이 없다면 박이사의 지금 감정상태가 흥분되어 있어서 그러니 곧 가라앉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또한 '진정 나라는 것이 없는데 누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인가'하고 스스로 반문해 봅니다. 이렇게 되면 김부장은 박이사로부터의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게 되고 오히려 순간순간 변화되는 현상관찰을 통해서 감정상태와 사물의 실상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 지금 진행되는 업무에 마음을 두고 단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몸을 떠나 방황함이 없도록 맹렬히 알아차리어 일에 몰두하면 업무는 향상되고 생산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업무수행에 하자가 생긴다거나 제시간에 완수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몸을 떠나 방황하거나 업무와 관계없는 일에 신경을 써 비생산적인데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업무 태도가 원인이 되어 상사의 질책이 있을 때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저항감이 일어나고 불평이 나오면서 소위 자신은 위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괴로움을 토로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이 몸과 함께 조화를 이루지 못했음을 생각지 않은 어리석은 짓이라 할 수 있습니다.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는 것이 몸과 마음의 현상관찰을 통한 깨어있음입니다. 마음에 따라 몸을 둘 수는 없습니다.
다음의 시(게송)를 보겠습니다.
게송 33
마음은 실로 변덕스럽고 요사스러워
이를 보호하고 다스리기 매우 어려운 것
지혜로운 사람만이 그것을 다스려 바르게 한다.
마치 화살 만드는 사람이 굽은 화살 펴듯이
게송 35
마음은 가볍게 움직여 다스리기 매우 힘든 것
어느 곳이건 좋아하는 곳에 쉽게 머문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진정 훌륭한 것
잘 다스린 마음이 행복을 가져온다.
게송 36
마음은 섬세하고 미묘하여 보기 힘든 것
어느 곳이건 즐거움을 따라 움직인다.
현자는 그런 마음을 잘 지키나니
잘 지켜진 그 마음이 행복을 가져다준다.
게송 37
마음은 끝없이 방황하고 홀로 움직이며
물질이 아니면서도 물질 속에 숨는다.
어느 누구든 간에 그것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염라대왕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리.
(巨海 스님 譯 -법구경- 에서)
시에서 보듯이 마음은 매우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몸이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도록 노력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이 원리를 잘 적용하면 스스로 평화롭고 행복해지며 기쁨 속에 생활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온갖 갈등 속에 열화가 북돋치는 불행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마음집중 수행은 인간을 매우 사려 깊고 현명하게 처세하도록 해줍니다. 예를 들어 조립공장의 사원이 전자제품을 조립하면서 습관적인 손놀림으로 조립하고, 옆 사람과 대화를 한다거나, 지난날에 본 영화이야기 아니면 집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손에서 조립된 물품을 우량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직장이나 가정에서 행하는 모든 일상적인 일들 속에서 진정자신의 마음은 어디에 두고 있었던가를 냉철히 살펴본다면 마음속에 느껴지는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에 대한 바른 이해 즉, 몸은 구조물로서 계속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는 연속선상에 있으며, 마음은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조건과 상황에 따라 계속 움직이며 변화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곧 사회와 조직이 그리고 개인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원자와 단세포로 구성되어 성립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원자와 세포조직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명체든 비생명체든 복합적 원자와 세포로서 구성된 것들은 계속하여 운동 작용을 하고 있고 이 운동 작용이 진행되는 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즉, 모든 물체는 영원성이 없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끊어지고 모이고 흩어지는 연속적 특성을 완전한 한 덩어리로 착각하여 '나' 혹은 '그'라고 판단 내려 집착하고 욕구를 일으킬 때 고통이 따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계속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도 예외가 아니며 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원리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변화의 원리를, 고통의 원인을, 무아(無我)의 개념을 파악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바른 견해, 바른 이해 ,바른 판단, 바른 빛을 보게 되니 이를 곧 혜안(慧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慧眼을 갖출 때 이 세상이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고 투쟁이 없으며 전쟁이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평화와 고요 속에서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보살피고 협조하며 살아가는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생활의 관찰 방법
(1) 앞의 좌선, 경행 시와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즉 일상생활 중에 그때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알아차리면 됩니다. ex) 침대에서 눈을 뜰 때는 '눈뜸'을 일어나고자 할 때는 '일어나고자 함'을 일어날 때는 '일어남'을 관찰한다. 칫솔질을 할 때는 '(이를) 닦음'을 세수를 할 때는 '(얼굴을) 씻음'을 관찰한다. 물을 마실 때는 '(손을) 뻗음-(컵을) 잡음, 들어올림, 가져옴, 입을 벌림, 마심, 삼킴'등으로 관찰합니다.독서를 할 때는 책을 읽는 상태 즉, 책읽기에 마음을 집중하여 읽으며,잡념이 일어날 때는 잡념이 일어났음을 관찰한 다음 호흡을 관찰합니다.(일어남, 사라짐) (2) 한편 복잡한 현상이 일어나 정확히 이름을 붙이기가 어려울 때는 그 현상을 알아차리면서 '알고 있음, 알고 있음, 알고 있음'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됩니다. (3) 특히 집중 수행 기간 동안의 일상생활 관찰은 모든 일상생활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관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보다 집중된 경행을 할 수 있고, 보다 집중된 경행을 해야만 보다 집중된 좌선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일상생활에서 마음집중을 흐트러 버린다면 경행이나 좌선을 통해 어느 정도 집중되었던 마음은 금방 이완되어 버릴 것이고, 또한 다음의 좌선이나 경행에 있어서 새로이 마음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7. 수행의 효과와 얻음
누구나 마음집중 수행을 열심히 행하면 자신에게 큰 이익 됨이 있습니다. 이는 수행자가 바르게 실천함으로써 체험한 만큼 얻어지는 이익입니다.
+청정
스스로 청정함을 보고 느끼게 됩니다. 몸과 마음의 현상관찰 수행을 통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에 마음을 집중시키면 마음은 자연히 모든 번뇌에서 멀어지고 오직 관찰하는 순수한 마음, 고요한 마음, 깨끗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마음집중이 되지 못하면 다음의 열 가지 대표적인 번뇌에 사로잡혀 마음이 무겁고 어두워지며 어리석어져 끝없는 암흑의 길을 헤매이게 됩니다. (1) 탐욕심: 물질과 비물질을 포함한 모든 것을 욕심내고 갈망하며 애착을 갖고 애욕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이러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 마음은 곧 더럽혀지고 어두워지며 무거워집니다. (2) 성내는 마음: 자신의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일으키는 분노, 증오, 악의와 시기, 질투, 혐오감 등을 말합니다. 이는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위력으로 자신과 남을 파멸에 몰아넣는 장본인입니다. (3) 무지, 무명: 어리석음으로 사물의 참다운 모습을 보지 못해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입니다. 즉 자아관념과 그 원인결과를 깨닫지 못해 스스로 무책임해지고 무능력해지는 것입니다. (4) 사견: 자아에 집작하고 원인결과의 현상을 불신하며 올바른 원리를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5) 자만심: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스스로를 완성자라 믿으며 진리를 수용하지 않고 스스로의 교만과 집착에 빠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6) 의심: 진리에 대한 의심, 스승에 대한 의심, 자신의 수행능력에 대한 의심, 자신은 이러한 수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의심을 말합니다. (7) 혼침과 수면: 정신이 맑게 깨어있지 못하고 흐려서 혼수상태, 취한 상태, 졸음에 떨어져 자신의 제어를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8) 초조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 과거에 대한 후회스러움, 자신의 생활을 점검했을 때 완성되지 못함에 대한 불안, 떳떳치 못한 생활에 대한 후회 등을 말합니다. (9) 참외심 없음: 도덕적 참외심이 없어 자신이 저지른 그릇된 행동,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조금도 뉘우침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10) 두려움 없음: 일상생활 속에서 행하는 언어, 행동 등에 대해 두려움 없이 행하는 뻔뻔스런 태도와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위와 같은 것들은 마음집중 수행을 면밀히 수행해나가면 자연히 다스려지게 되고, 잠시라도 마음에 빈틈을 줌으로써 이러한 번뇌가 스며들어올 기회를 주지 않게 되니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입니다.
+슬픔과 근심 걱정
마음집중 수행은 수행인의 마음을 다스리게 함으로써 슬픔이나 근심걱정이 일어나지 않으며 항상 고요해집니다. 모든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다면 예를 들어 자신의 사업이나 모든 일이 뜻하는 바대로 성공되지 못했을 경우 슬퍼하고 비탄에 잠기며 괴로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집중 수행을 통해, 모든 사물이나 구조물은 그것들이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간에 일어나면 사라진다는 원리를 확실히 터득했다면 어떠한 재난이나 사고를 당하여도 슬픔과 비탄, 절망에 빠짐없이 침착하고 조용하게 사태를 수습하여 다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소멸
이 고통의 소멸은 진정 누구나가 바라는 바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쉽게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들을 더욱 슬프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집중 수행을 통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일어났을 때 그 고통의 존재를 즉시 알아차리고 '통증, 통증, 통증'이라고 관찰하면 고통은 순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이 같은 체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계속 수행해 나가면 마침내 고통의 끝을 보게 되니 이것이 곧 대자유의 성취요, 열반(깨달음)의 경지입니다.
우리 모두 이 고통의 소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기원합니다.
8. 정신집중이란?
+잡념, 번뇌, 희노애락, 고통
인간은 생각하고 활동하는 존재입니다. 꿈꾸듯이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고, 잠 못 이루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울고 웃기도 하며, 고통을 피하고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속성이기도 한 잡념, 번뇌, 희노애락, 고통. 이것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정신집중이요, 이것이 제거된 상태가 곧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精神一到 何事不成이란 말에서 보듯이 정신집중 상태는 무한한 힘과 가능성을 내재 하고 있어 하고자 하는 일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배가시켜 줍니다.
+인간의 6가지 감각
인간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느끼며, 감촉하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6가지의 감각활동 중 1가지라도 부족하면 불구자가 되고, 6가지가 다 부족 하다면 뇌사상태의 식물인간이 됩니다.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6가지의 감각활동에 의해서 가능한 것 이며, 또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도 6가지의 감각활동이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6가지 감각과 정신집중
인간은 자연적으로 끊임없이 6가지의 인식활동을 계속해나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활동은 곧 잡념, 번뇌, 희노애락, 고통의 출발점이 됩니다. 따라서 인간은 의도적으로, 일시적으로 6가지 인식기관의 문인 감각기관을 일부 또는 전부를 닫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또는 6가지 현상으로부터 격리된 곳을 찾아 6가지 인식활동을 멈추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문은 닫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는 날개가 달려있기도 하고, 사방으로 큰 문이 열려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닫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가능한 것은 마음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즉 눈, 귀, 코, 혀, 몸의 5가지 문을 닫고 격리시켜 그 인식활동을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마음의 문은 오로지 그 활동을 통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정신집중, 명상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마음의 문을 통제하여 1가지 인식기관의 활동이나 특정 한 마음상태에 의식을 밀착시키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 > 수행기초[초보수행반] 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수행 개념정리, <사마타, 사마디, 에깍가따, 자나> 용어구분 (20090621) (0) | 2019.11.08 |
---|---|
2. 수행 준비단계- 뿌자(예경), 12가지 장애제거. 예비수행, 서원, 참회(20090616) (0) | 2019.11.07 |
1.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수행하는 이유, 예비수행 네 가지 (20090609) (0) | 2019.11.06 |
경행(經行, 行禪) - 걸을 때의 수행[교재 내용] (0) | 2019.11.06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 초급 과정[교재 내용] (0) | 2019.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