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수행기초[초보수행반] 법문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 초급 과정[교재 내용]

담마마-마까 2019. 11. 5. 23:20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붓다의 길따라 선원 교재]

 

여러분들이 수행할 때는 움직임을 급하지 않게 해서,

 

1. 모든 움직임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움직임을 알 때는 움직임의 시작을 알도록 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움직임의 시작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시간을 따질 때는 12시를 기준으로 해서 오후가 시작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움직임에 있어서 멈춤을 가짐으로써 움직임의 시작을 알도록 하십시오.

 

움직임의 시작은 어디부터 일까요?

시간적으로는 물론 항상 지금이 시작이 될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알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시간 속에 항상 있는 시작을 지금 그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수행을 시작하는 수행자들은 가만히 멈춘 자세를 가짐으로써 움직임의 시작을 알도록 하십시오.

이 말의 의미는 여러분이 지금의 대상을 놓쳤을 때는 대상을 놓친 것을 알고 움직임의 멈춤을 가짐으로써 다시 현재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멈춤을 활용하지 못하면 우리의 움직임들은 습관적인 것들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움직이게 되었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수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지금의 대상에 가 있지 않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움직임의 시작을 알도록 하십시오.

 

, 멈춤이라고 하는 분명한 시작에서부터 지금을 알고자 하십시오. 우리가 이 멈춤을 잘 활용하지 않고 귀찮다고 그냥 지나치면 여러분의 마음은 현재에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포살 경전합송의 예에서도 알아차림을 놓치면 즉시 중지하고 다시 시작합니다.

 

또 다른 예에서 한 비구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스님은 걸을 때에도 절대로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스님은 하루 종일 사띠를 가지고 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또한 사띠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가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 스님은 길을 걸을 때 걷는 것을 놓치게 되면 제자리로 와서 다시 걸었습니다. 우리들은 걷다가 걷는 것을 놓쳐도 그냥 계속 걸어갑니다. 그러나 그 스님은 걷는 것을 놓치면 제자리로 와서 다시 걸었고, 또 놓치면 다시 제자리로 와서 걸었습니다. 그 때 밭에 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저 스님이 무엇인가 잊어버려서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구나하고 생각을 했지만, 사실 스님은 움직임을 놓쳤기 때문에 다시 시작을 한 것이었고 또다시 놓쳤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것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스님처럼 하지는 못하더라도 움직임에 있어 항상 시작을 갖고자 노력하십시오.

 

움직임의 시작을 갖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은 내가 얼마나 그 움직임 에 마음이 있는지 알게 됩니다.

또 움직임을 놓쳤을 때는 그 놓친 것을 알게 되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의 능력만큼 움직임을 놓치지 않다가 또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노력하는 마음과, 집중하는 마음 그리고 사띠를 두는 마음, 이 마음들의 능력만큼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또한 놓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움직임을 놓쳤을 때 그 놓친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놓쳤을 때 놓친 것을 모른다거나 또는 알고서도 습관적으로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대충 얼버무려서 가려고 하는 그 습관을 수행에서는 용납하지 말고 분명하게 인식해서 가고자 하십시오. 여러분이 놓친 움직임에 대해서는 모두 다시 시작을 갖고자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움직임에 방해가 되서 힘이 들 정도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귀찮아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은 수행처에 있더라도 마음은 거기에 있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몸이 화장실에 있으면 마음도 거기에 있어야만 되고, 몸이 문고리를 열고 닫으면 마음도 열고 닫는 그곳에 있어야만 되고, 몸이 수저를 들고 있으면 마음도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항상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 된 것을 알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니라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좌선을 하기 전에 먼저 경행을 하도록 하십시오.

 

왜 경행을 먼저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좌선을 할 때보다 경행을 할 때 더 마음의 활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좌선을 했을 때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조절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행에서는 걷는 속도로써 몸과 마음을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여 걸었을 때 경행은 마음에 활력이 생기게 해주는 좋은 자세입니다.

 

경행을 할 때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서 경행을 하십시오.

경행을 시작할 때 혼침, 다리저림, 몸과 마음의 무거움이 있는 경우에는 가볍고 좀 빠르게 걸어서 그 무거움을 해결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점점 안정되어가면서 몸과 마음의 무거움이 차츰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안정되어가면서 가볍게 걷는 것이 약간 지루해지고 변화가 필요해 지면 그 때는 점잖게 걷도록 하십시오.

 

점잖게 걷다가 움직임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더 천천히 걷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점잖게 천천히 걷게 된 후에 변화를 주어서 어떤 것을 보기위해 다시 빨리 걷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경행에서 주의할 점은 빨리 걷다가 천천히 걷고, 다시 빨리 걷다가 천 히 걷기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는 오히려 집중의 힘을 약화시키고 마음의 안정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2. 움직임의 단계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안정되어 천천히 걷게 되었을 때는 발의 움직임을 단계에 따라 정확하게 보면서 가도록 하십시오. 발을 듦, 앞으로 나아감, 발을 내림, 닿음 이렇게 움직임의 단계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구분한다는 것의 의미는 움직임의 단계들을 각각 서로 다른 하나의 과정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발을 드는 것은 단지 드는 것이고, 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과정이고, 발을 내리는 것도 또 다른 하나의 과정이고, 발이 닿는 것도 또 다른 하나의 과정입니다.

 

이것은 아침은 단지 아침으로, 낮은 단지 낮으로, 저녁은 단지 저녁으로 보면서 수행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침의 수행은 단지 아침으로 보고, 낮의 수행은 아침과 연관시키지 말고 또 다른 낮으로 보고, 저녁은 또 다른 저녁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발을 듦은 단지 발을 듦으로, 앞으로 나아감은 단지 앞으로 나아감으로, 발을 내림은 단지 내림으로, 닿음은 단지 닿음으로 이렇게 또 다른 하나의 과정으로 알아야 합니다.

 

발을 듦은 앞으로 나아감이 아니고, 앞으로 나아감은 발을 내림이 아닙니다. 발을 듦은 단지 발을 듦이고 앞으로 나아감은 또 다른 하나의 움직임의 시작입니다. 발을 내림도 또 다른 움직임의 시작이고 닿음도 또 다른 움직임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발을 듦부터 닿음까지의 한 과정에서 각 단계의 움직임을 단지 그 자체로서 볼 수 있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현재와 좀 더 가깝게 될 것입니다.

 

3. 의도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움직이기 전에 반드시 의도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경행에서 보면 여러분은 서있는 자세에서 걷는 움직임을 시작하기 전에 걷겠다는 마음을 내고 걸을 것입니다. 이렇게 걷겠다는 마음을 내고난 후 가만히 보면 발을 들겠다는 마음을 내게 되고, 그 마음이 있고 난 뒤에 발뒤꿈치부터 들게 됩니다. 이렇게 움직임이 있기 전에 의도하는 마음을 볼 수 있으면 좋습니다.

 

만약 의도하는 마음을 보는 것이 어렵다면 의도적으로 의도하는 마음을 붙인 후에 움직이도록 하십시오. ‘발을 들겠다하고 발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겠다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내려야겠다하고 내리고, ‘닿아야겠다하고 닿도록 하십시오. 또한 경행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움직임에 있어서도 움직임을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하겠다라는 의도함을 붙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움직이기 전에 의도함을 항상 붙일 수 있을 때 여러분의 마음은 현재에 있게 되고 움직임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잘 알기 위해 주의해야 할 것을 하나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불필요한 움직임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어떤 것이 불필요한 움직임인지 알고 그것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불필요한 움직임이 많을수록 여러분의 마음은 움직임을 떠나 산란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불필요한 움직임들을 알고 그것을 버리는 것만 잘 터득해도 자신이 습관적으로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움직임들을 가져 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거칠게 움직여 왔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분명히 알면서 움직임을 볼 때 여러분은 또한 느낌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움직임도 없을 때는 없습니다. 잠시라도 움직임이 없을 때는 없습니다. 움직임은 항상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항상 마음을 현재에 둘 수 있습니다.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항상 움직임을 알도록 하십시오. 내가 움직임을 알고 있는지, 움직임을 생각으로 아는지, 아는 척하고 있는지 아니면 분명하게 아는지, 이것에만 마음을 두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왜 움직임을 알아야 할까요? 몸의 움직임은 물질적인 것이어서 조금만 주의력을 두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느낌이나 마음이나 마음의 대상보다 더 쉽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이 분명한 대상에 마음을 두도록 하십시오.

 

분명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분명하게 지금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 마음을 분명하게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이것은 여러분들이 알기 쉬운 책을 볼 때와 같습니다. 알기 쉬운 책을 볼 때는 무슨 내용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지만, 알기 어려운 책을 붙들고 있으면 머리만 아프지 그 내용은 모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을 보는 목적은 그저 책을 붙잡고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얻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몸을 관찰하는 목적은 그저 몸을 붙잡고 있기 위함이 아니고 쉽고 분명한 대상인 몸을 통해서 쉽게 마음을 집중하고 몸과 마음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 몸이라는 것을 잘 볼 수 있게 되면 거기에는 몸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느낌의 움직임, 마음의 움직임, 마음의 대상에 대한 움직임 모두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중수행을 하러 온 이유는 여러분이 얽혀있는 바깥의 여러 가지 다른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하루 종일 자신을 위한 수행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말했듯이 움직임을 알도록 하십시오. 움직임이 없을 때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더욱 분명하게 움직임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수행의 진보입니다. 다른 것이 수행의 진보가 아닙니다. 여러 분이 만약 움직임을 놓치고서 다른 뭔가를 찾아 알려고 한다면 마음을 올바르게 활용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힘도 적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수행에 있어 다음의 두 가지를 찾고 해결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어떻게 하면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움직임에 마음을 둘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 성급함을 버리는 것,

- 항상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는 것,

- 멈춤으로써 움직임의 시작을 분명히 아는 것,

- 움직이기 전에 의도함을 붙이는 것,

- 움직임의 단계를 구분하여 아는 것,

- 불필요한 움직임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잘 활용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서 몰라보게 많이 알게 될 것이고, 또한 마음이 매우 빠르게 안정을 취해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일상생활과 경행에서 움직임을 잘 알게 되었을 때 좌선은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는 매우 쉬운 것이 됩니다. 마음이 분명하고 올바르게 좌선에서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오히려 너무 쉽기 때문에 자만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움직임은 항상 있습니다. 가장 큰 움직임인 걷는 것, 서있다 앉는 것, 앉아있다 일어서는 것에서부터 눈을 깜박이는 것, 침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 몸이 떨리는 것 까지 어떤 움직임도 알고자 해야 합니다.

 

또한 움직임을 알았을 때는 거기에 계속 마음을 붙여 지속적으로 알고자 해야 합니다. 움직임을 한번 알았다고 거기에 만족해하거나, ‘이렇다. 저렇다.’하는 생각을 붙이지 말고 단지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경행 또는 좌선 1시간을 할 때 한 시간 동안 계속 움직임을 아는 것을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 움직임이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경행과 좌선이 끝나고 나서 잠시 생각하도록 하고 좌선, 경행 1시간 동안은 그대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하십시오. 만약 중간에 생각을 하게 되어 무엇인가 뒤돌아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을 쫓아가지 말고 무시하고서 계속 지금의 움직임을 아는 것을 지속하고자 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한 시간 정도는 지속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수행 중간 중간에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 많이 줄어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움직임의 많은 단계들을 알게 될 것이고 또한 아침은 아침으로, 낮은 낮으로, 저녁은 저녁으로, 또 오늘 하루만 보고 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이 수행을 하러 와서 해야 될 것은 움직임을 아는 것 입니다. 가장 거친 움직임부터 가장 미세한 움직임까지, 가장 긴 시간 동안의 움직임부터 가장 짧은 시간 동안의 움직임까지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알겠다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만큼 그것이 여러분에게 집중과 지혜로써 가게 될 것입니다.

 

 

# 초급 과정

 

위빳사나 수행은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이 있는데, 어느 수행이든 다음과 같은 순서를 적용합니다.

 

1) 마음 알아차리기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지금 무슨 마음가짐인가?’하고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바라는 마음이나 근심걱정이 있으면 알아차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먼저 그 마음을 알아차려서 편안해진 마음에서 수행을 시작합니다.

 

2) 몸 알아차리기

좌선에서는 눈꺼풀, 입술, , 엉덩이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경행에서는 서있는 몸의 자세를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쭉 알아차리며 내려갑니다. 이것은 몸의 느낌을 알아 차려 마음을 현재에 두면서 몸을 이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 없이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이든지 알아차리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수행을 시작합니다.

 

3) 가장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기

현재 몸과 마음에서 생긴 가장 분명한 대상을 알아차립니다. 좌선에서는 호흡을 주로 알아차리고 경행에서는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며 일상에서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몸의 움직임에 마음을 두는 것은 마음을 몸에 붙여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과정입니다.

 

4) 대상에서 움직임과 느낌을 알아차리기

마음이 집중되면 움직임을 통해 느껴지는 몸의 감각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수행자는 느낌이 나타나면 알아차리고 느낌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움직이는 모양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느낌을 보기 위해 느낌을 찾으면 생각에 빠지고 알아차림을 놓칩니다.

 

5)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리기

수행을 하면 장애는 나타나기 마련인데, 그 장애를 없애려하거나 장애를 따라가면 알아차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이들을 나타날만해서 나타난 자연스런 법으로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의 주 대상으로 돌아와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6) 수행 중 가끔 마음과 몸의 자세를 알아차리기

이따금씩 지금 몸의 자세는 바른가?’ 하고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등으로 현재 자신의 몸의 자세와 마음자세를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알아차림을 놓쳤다가도 다시 알아차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수행은 잘하려는 마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수행을 잘하려는 마음은 몸과 마음을 긴장시킵니다. 이런 긴장은 마음을 들뜨게 해서 알아차림을 할 수 없게 합니다. 그냥 마음을 가볍고 편안하게 하고, 지금 나타난 것은 무엇이나 다 법으로 알아차린다는 마음으로 수행을 하면 점점 더 많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1. 좌선

 

좌선은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몸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립니다. 주로 들숨 날숨에 의한 현상들을 알아차리지만, 가려움, 통증, 망상, 졸음, 싫증, 의심 등도 나타나면 그것도 모두 알아차립니다. 좌선은 여기저기로 방황하는 마음을 몸 이라는 기둥에 알아차림이라는 끈으로 묶어서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으로만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불러서 몸에 붙이는 작업입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

 

1) 바른 자세로 앉습니다.

몸의 긴장을 다 풀고 편안하면서도 바른 자세로 앉으십시오.

턱을 약간만 아래로 당기고, 허리는 편안하게 펴십시오. 손은 무릎 위에 편하게 올려놓고, 발은 반가부좌를 하거나 두 발을 나란히 바닥에 놓는 평좌를 하십시오.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을 만큼 부담 없는 편안한 자세로 앉으십시오.

 

2)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지금 바라고 있는가, 하기 싫은가, 졸리는가, 들떠있는가, 의심 하는가 등을 알아차리십시오. 이것은 현재의 마음상태나 기분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이때 어떤 마음이 있든지 그냥 그런 마음이 있네!’하고 알아차리십시오. 아무 마음도 느껴지지 않을 때는 아무 마음도 없네!’라고 알아차리십시오.

 

3) 몸을 직접 알아차리며 내려갑니다.

먼저 눈꺼풀, 입술, , 엉덩이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어서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 먼저 눈꺼풀이 있는 것을 아십시오. 눈꺼풀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느낌입니다. 이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눈꺼풀이 서로 닿아있는 것을 느끼십시오. 점차 닿아있는 부위에서 따스함, 가벼움, 무거움, 떨림, 빛 등을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중 지금 경험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얼마동안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십시오.

 

이제 입술로 갑니다. 입술이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이제 입술에 있는 따뜻함, 촉촉함, 떨림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변화를 보십시오. 또 느낌이 변하는 것을 얼마동안 주시하십시오.

 

다음은 손으로 갑니다. 손이 어딘가에 닿아있습니다. 그곳에 마음을 두고 손의 모양이나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따뜻함, 쑤심, 진동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느낌의 변화를 얼마동안 주시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엉덩이로 갑니다. 엉덩이가 방석에 닿아있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닿아있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무거움, 단단함, 떨림 등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지금 느끼는 감각을 대상으로 그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얼마동안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십시오.

 

4) 현재를 알아차립니다.

현재 이 순간을 지켜보십시오. 현재 마음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현재는 소리를 듣는 마음, 호흡을 느끼는 마음, 피부의 감촉을 느끼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근심 걱정하는 마음, 때로는 편안한 마음이 지나갑니다. 얼마동안 이런 마음의 흐름을 주시하십시오. 이것은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보는 심념처 수행입니다.

 

5) 몸의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다시 몸으로 돌아와 앉아있는 자세를 전체적으로 크게 느껴봅니다. 가만히 몸 전체의 느낌을 주시합니다. 몸의 어디선가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호흡으로 일어나는 풍대의 작용입니다.

호흡은 코, 가슴, , 몸의 일부에서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그 중 가장 잘 느껴지는 곳 하나를 선택해서 그 자리에서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호흡은 자연스런 호흡 을 해야 합니다. 복식 호흡이나 단전호흡으로 호흡을 일부러 만들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배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다면, 2, 3회 정도 들이 쉬고, 내쉬고 하며 자연스런 호흡이 되도록 숨을 쉬는 것을 지켜봅니다. 이렇듯 앉아서 천천히 호흡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사마디(samādhi =삼매, 집중, 통일력)가 상당히 나옵니다. 2회 내지 3회 그런 식으로 호흡을 할 때는 명칭을 붙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호흡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렇게 호흡하는 감각, 이른바 배의 팽창 수축을 관찰하도록 하십시오.

 

배의 팽창 수축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배꼽 주위를 따라서 손을 대어 보십시오. 숨을 들이 쉴 때는 배의 팽창을, 숨을 내 쉴 때는 배가 수축되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팽창과 수축을 이해했다면 손을 무릎 위에 되돌려 놓고 자연스럽게 호흡해 주십시오. 그 호흡에 맞추어서 배가 부풀어 오를 때 일어남이라고, 수축되어 갈 때 사라짐이라고 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호흡의 움직임 중에서 일어남' 하나만을 알아차리다가 어느 정도 대상에 마음이 잘 집중되면 이제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십시오. 좀 더 집중이 되면 일어남, 사라짐, 쉼까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집중되면서 점차 배의 팽창 수축에 따라 느낌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6)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를 알아차립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중에 마음은 어느덧 망상, 통증, 졸음, 싫증, 의심에 빠집니다. 이런 장애들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장애를 없애려하거나 싫어하지 말고 나타나는 대로 알아차리고, 즉시 몸으로 돌아와서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만약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 망상’ ‘망상’ ‘생각함’ ‘생각함하면서 마음으로부터 망상이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리도록 합니다. 위빳사나 수행에서 초심자 단계에서는 배에 집중하는 것이 여간해서 잘 되지 않습니다. 호흡하여 배의 팽창 수축을 관찰하고 싶어도 곧 이 망상이 생깁니다. 그러나 배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하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빳사나에서는 지금 마음이 가장 강하게 느끼고 있는 현상을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행을 시작하자마자 곧 망상이 생겨도 망상’ ‘망상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30분의 수행 중 모든 것이 망상이라고 쳐도 그 망상 전부를 명칭 붙여 알아차림 했으면 훌륭하게 위빳사나 수행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명상이 향상되어 좌선 수행하고 있으면 점점 집중력이 늘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한층 한 순간 한 순간의 알아차림을 철저히 해나가면 사마타수행과 같은 삼매(사마디)상태로 되어 갑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돌연 수행 중에 빛이 나타나거나, 망상이 보이거나 합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흔치 않은 대상을 따르고 싶어 하지만, 이것도 망상이므로 구애받지 말고 빛이 나타났다면 ’ ‘하고, 다른 현상이 나타나도 망상’ ‘망상하며 명칭 붙여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현상과 대상이 자신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오직 현상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때로는 보살이나 부처님이 마치 살아계신 듯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단지 내 마음이 마음대로 만들어 낸 망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보고 있음’ ‘보고 있음하며 망상이 사라 질 때까지 관찰하십시오.

 

아무리 집중력이 강해져도 妄想(망상)이나 妄像(망상)은 생기기 때문에 그 현상을 빨리 알아차리고, 배의 팽창과 수축으로 곧바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발전되면, 배의 팽창의 시작, 중간, 끝을 알게 됩니다. 이럴 때는 배의 일어남’ ‘멈춤’ ‘사라짐이라고 명칭 붙여 알아차림 합니다. 이렇게 셋으로 나누는 관찰법은 생멸이라고 하는 태어남, 존재, 소멸의 진리를 관찰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통증과 저림, 추위와 더위 등도 그것을 느꼈을 때, 곧바로 통증’ ‘통증’ ‘저림’ ‘저림등으로 모든 것을 명칭붙이며 알아차립니다. 싫다든가, 편하다든가, 즐겁다든가, 기분이 좋다든가, 무섭다, 등의 감정도 모두 그 자리에서 명칭 붙여 알아차리십시오. 좌우간 무엇이 나타나든, 어떤 감정이 떠오르든, 마음에 와 닿은 모든 대상을 명칭 붙여 알아차릴 뿐입니다.

 

사마타 명상처럼 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대상을 명칭 붙여 알아차림 합니다. 명상을 시작해 얼마 되지 않는 사람 중에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복부에 전혀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집중하려고 해도 곧 마음이 산만해져 버려 무언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등등. 좋습니다. 마음이 산만해져도,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해도, 그 마음이 따르고 있는 대상을 한 발 빨리 알아차려 그것을 명칭붙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드디어 마음은 가라 앉아 자연히 복부의 팽창 수축을 관찰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갑니다.

 

배의 팽창 수축에 오로지 집중할 수 없어도, 나타나는 대상마다 명칭 붙여 알아차리면 위빳사나 수행은 향상되어가므로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리해서 복부의 팽창 수축을 관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음은 언제 어떤 경우에라도 반드시 무언가 자극을 얻기 위하여 대상을 구하기 때문에 앉아있을 경우 가장 관찰하기 쉬운 대상이 말하자면 배의 팽창 수축이므로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명칭 붙여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현상을 알아차리는 사띠야말로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앉아있는 경우 곤란한 일이 졸음입니다. 졸고 있으면 수행은 되지 않으므로 졸음만은 피해야 합니다. 졸음이 찾아오면 졸음’ ‘졸음하고 명칭 붙여 강하게 알아차려야합니다. 그래서 졸음이 가라앉으면 좋겠지만, 졸음이라는 것은 끈질겨서 그 정도의 명칭만으로는 여간해서 퇴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꺼풀 내려옴’ ‘눈꺼풀 내려옴’ ‘무거움’ ‘무거움’ ‘아픔’ ‘아픔’ ‘통증’ ‘통증하며 졸음이 오는 길을 따라 명칭붙이며 강 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졸음이 물러가지 않으면 신체를 움직여서 졸음을 쫓습니다. 졸음이 쏟아질 때는 대개 신체가 앞으로 기울고, 목이 굽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세를 고치려고 함하며 알아차린 후, 천천히 등뼈와 목이 똑바로 되도록 바로 잡아 주면서 허리 폄’ ‘허리 폄’ ‘목 폄’ ‘목 폄하며 알아차립니다. 그것으로 졸음은 떨어져 나갈 것이므로 그 후에 다시 배의 팽창 수축으로 되돌아갑니다.

 

또 다리가 아프거나 저려오는 것도 오래 앉아 있을 경우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 경우 통증’ ‘통증하며 관찰합니다.

통증을 쭉 관찰해 가면 통증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증은 싫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기 쉬우므로 그것도 관찰하여 싫어함’ ‘싫어함하며 알아차려 갑니다. 통증이라고 하는 현상은 대상으로서는 꽤 강한 부류에 속하지만, 관찰 대상으로서는 수행을 진보시키기에 적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증을 관찰하는 경우 주의할 것은 그 통증을 어디까지나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신체의 통증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통증과 저림을 관찰해도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앞의 졸음과 같이 신체의 자세를 고칩니다. 이 경우는 다리를 바꿔 꼬고 앉는다든지 하는 동작이 필요하기 때문에 천천히 하나하나의 동작을 명칭 붙여 알아차림하며 다리를 바꿔 앉아야 합니다.

 

가려움이 나타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려움이 나타나면 우선 가려움’ ‘가려움하며 가려움을 관찰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려움이 신경 쓰이지 않게 되면 다음의 현상을 관찰합니다. 가려움이 진정되지 않고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긁고자 함’ ‘긁고자 함’ ‘손을 올림’ ‘손을 올림피부에 닿음’ ‘닳음’ ‘긁음’ ‘긁음하며 명칭 붙여 관찰합니다. 긁어서 기분이 좋아지면 기분 좋음’ ‘기분 좋음하며 관찰합니다. 소리나 목소리가 들릴 경우도 소리’ ‘소리라든가 들림’ ‘들림합니다.

 

만일 가려움과 소리와 통증이 동시에 현상으로 나타날 경우도 마음이라고 하는 메커니즘은 하나의 대상밖에 취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결코 동시라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씩 하나씩 관찰해야 합니다. 다만 마음의 변화는 빛의 속도보다 몇 배나 빠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동시에 몇 개의 현상을 취하고 있는 것같이 생각되는 것뿐입니다. 이런 때에는 일단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고 마음을 개방합니다. 그 위에서 지금 현재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대상을 알아차림 하면 됩니다. 혹은 대상을 순차적으로 관찰합니다.

 

7) 좌선 중에 이따금씩 몸의 자세를 살펴봅니다.

좌선 중에 지금 몸의 자세는 바른가?’하고 몸의 자세를 알아차립니다. 만일 몸에 힘이 들어가 있거나 반듯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리면서 반듯하게 고쳐줍니다. 그러면 다시 몸의 긴장이 풀어지며 알아차림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또 이따금씩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하고 현재를 알아차려보십시오. 만일 알아차림을 놓치고 생각에 빠졌으면 생각하고 있네!’ 라고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와 다시 알아차림을 시작합니다. 이때 알아차림을 놓치고 생각에 빠졌다고 후회하면 다시 알아차림을 놓친 것입니다.

 

좌선 중에 나타난 대상은 무엇이든지 다 법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이 잘되길 바라거나 장애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든 나타나는 대로 모두 법으로 받아들여 알아차리십시오.

 

좌선 수행도 한 시간 앉아 있을 수 있으면 충분하므로 그 후에는 똑같이 한 시간 정도 경행을 해 주십시오. 처음부터 무리하게 좌선수행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좌선, 경행, 입선, 와선의 네 가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능숙하게 조합하는 것입니다. 좌선수행을 끝낼 때에도 확실히 명칭 붙여서 끝냅니다. 우선 명상을 끝내고자 함’ ‘끝내고자 함’ ‘끝내고자 함이라고 명칭붙이고, 거기부터 또한 천천히 일어남’ ‘사라짐2회나 3회 더 한 후 눈을 뜸’ ‘손을 뻗음’ ‘오른쪽 다리를 폄’ ‘왼쪽 다리를 폄’ ‘일어섬이라고 명칭 붙여 하나하나 꼼꼼히 알아차리며 일어섭니다. 그렇게 확실히 끝내 주십시오.

 

 

2. 경행

 

우리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움직이는데, 경행은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경행의 알아차림은 일상생활에서 가고, 서고, 눕고, 구부리고, 돌고, 허리를 펴고 등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합니다.

 

일상에서 어디를 갈 때 마음이 몸의 움직임에 있지 않고 대부분 목적지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근심걱정을 합니다. 이것은 알아차림이 없는 것으로 번뇌의 마음상태입니다. 그러나 경행을 하여 알아차림이 숙달되면, 생활 속에서도 항상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가 있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깨어있는 상태가 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센터에서는 좌선과 경행을 같은 비율로 합니다. 좌선과 경행을 교대로 하는 것은 움직일 때나 움직이지 않을 때나 모두 알아차림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위빳사나 수행의 비밀은 경행에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합니다. 경행은 움직임의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므로 찰나를 보는 힘을 길러줍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좌선과 경행을 같은 비율로 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이 건강을 위한 특별한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오직 경행으로 다리의 근력을 키우고, 소화를 돕고, 혈액순환을 돕고, 체력을 길렀으며, 탁발이나 전법여행을 할 때도 경행을 하면서 항상 알아차림을 유지했습니다. 그만큼 경행은 좌선과 함께 실천해야할 중요한 수행입니다.

 

*경행의 규칙

 

경행도 좌선과 마찬가지로 단계적으로 하는데, 처음에는 알기 쉬운 것부터 가볍게 알아차리다가 점차 자세하게 알아차립니다. 경행의 순서는 서고, 가고, 서고, 돌고, 가고를 반복하면서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1) 수행자는 먼저 왕복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서 몸의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정면을 향하여 섭니다. 몸의 긴장을 풀고, 두 손을 모아서 앞으로 잡거나 뒤로 잡습니다.

 

2) 경행을 하려는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바라는 마음, 하기 싫은 마음, 들뜬 마음, 아무 것도 없는 마음 등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3) 현재 서 있는 자세에서 얼굴, 어깨, , 종아리, 발바닥의 느낌을 직접 알아차리면서 죽 내려갑니다. 마음이 발까지 내려오면 발이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립니다.

 

4) 이제 한발 한발 걸으면서 발바닥이 닿는 것만 알아차립니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하고, 앞으로 갈 때는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걷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발뒤꿈치가 들리는 것부터 알아차려 발을 들어서 놓는 것까지 다 알아차립니다. 그 다음 단계로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5) 끝에 가면 반드시 서서, 서있는 몸의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어깨의 긴장을 알아차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6) 정면을 향해 돌면서 몸이 돌아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돌 때는 천천히 돌면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거나, 혹은 어깨에 마음을 두고 어깨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다시 서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가려는 의도에 의해 발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7) 경행을 할 때 처음에는 발의 움직임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다가 점차 무겁고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잡히면 그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어서 그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또 경행 중에 망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망상이라고 가볍게 알아차리고 다시 발의 움직임으로 돌아와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8) 눈은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서너 걸음 앞의 바닥을 봅니다. 처음에는 약간 빨리 걷다가 차츰 적당한 속도를 유지합니다. 경행을 할 때 지나치게 천천히 걸으면 몸이 긴장되어 알아차림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적당한 속도로 걸으면서 계속 발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9) 길이나 운동장에서 빠르게 걸을 때에는 발이 닿는 것만 알아차리거나, 몸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크게 주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이 나타나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설명은 이론이고, 실제로는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 또 알아차려 지는 만큼 알아차리게 됩니다. 수행자가 많은 대상을 완벽하게 다 알아차리려고 힘을 주면 안됩니다. 완벽하게 보려는 마음이 몸을 긴장시키고 마음을 들뜨게 해서 마음이 몸에 붙어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알아차려지는 만큼만 꾸준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것입니다.

 

*경행 수행의 실제

 

우선 걷는다 라고 알아차립니다. 자신이 오른쪽 다리부터 걷기 시작한다면 오른쪽 다리의 움직임에 의식을 두어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이라고 명칭을 붙여서 자신이 걷는 다리의 감각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반드시 명칭을 붙여서 확인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망상과 혼란을 피해 집중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다면 들어올림이라고 명칭을 붙이는 것이 위빳사나 수행의 숙달에는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약속입니다.

명칭을 붙여 확인한다고 해도 소리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손은 뒤나 앞으로 서로 살며시 잡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한 걸음의 거리는 그다지 크게 띠지 않도록 자연스런 걸음이면 됩니다.

한 걸음 걷는 것이 종료되면 다음의 한 걸음으로 옮겨갑니다.

 

주의할 점은 오른쪽 다리를 내리는 것과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을 연속하지 않도록 하는 것 즉, 오른쪽 다리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왼쪽 다리의 뒤꿈치를 들어 올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른쪽 발바닥이 확실히 지면에 닿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도록 해야 합니다.

 

경행할 때 처음에는 발을 들고 내릴 때 들어올림’ ‘내려놓음이라고 2단계로 나누어 알아차리십시오. 이렇게 2단계로 구분하여 5분 정도 한 다음 마음이 가라앉은 단계 에서 3단계로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이라고 3단계로 구분하여 알아차리면 좋겠지요.

 

집중이 한층 잘 되어져서 다리의 움직임을 확연하게 알아차리게 되면 6단계로 나누어 갑니다. , ‘뒤꿈치 들어올림’ ‘앞꿈치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닿음’ ‘누름으로 더욱 세밀하게 알아차려 갑니다. 더 더욱 마음이 움직이는 발에 집중되어 예리해질 때는 발을 들어 올릴 때는, ‘들어 올림’ ‘발바닥 떨어짐’ ‘올라감이라고 구분하고 발을 옮길 때는, ‘나아감’ ‘나아감’ ‘나아감이라고 구분하고 발을 내릴 때는, ‘내려놓음’ ‘닿음’ ‘누름이라고 9단계로 나누어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수행자 마음의 가라앉음 정도에 따라 다르게 구분하여 실천하도록 하십시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너무 느리게 걸어 알아차림이 흩어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태에 따라 걷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경행만으로도 위빳사나 수행법의 알아차림, 사띠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예를 들어 매일 한 시간 위빳사나 집중 수행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30분은 먼저 경행을 하도록 하십시오.

 

 

3. 입선(入禪)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들은 서있는 시간이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서 있으면 신체도 건강해지기 때문에 스님은 입선을 자주 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 집중수행을 한다고 결심했다면 5분 정도 입선을 합니다. 그 경우에도 양 손은 앞이나 뒤로 부드럽게 마주잡고 안정감이 있도록 어깨 넓이 정도 다리를 벌리고 섭니다.

 

서 있으면서 발바닥이 지면에 닿아있는 감각을 먼저 느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서있음’ ‘서있음이라고 명칭을 붙입니다.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정말로 간단합니다. 서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이것만큼 간단한 것은 없습니다.

 

단지 서서 발바닥으로 아 과연 서있구나 라고 느끼며 그것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런 후 마음이 안정되어 알아차림의 힘이 강해지면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배가 불러오고 꺼질 때 일어남’ ‘사라짐하며 호흡의 들이쉬고 내쉼을 알아차리십시오.

 

만약 경행을 하다가 돌아서기 위해 멈추어 섰을 때나, 돌아서고 나서 멈추어 있을 때도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합니다. ‘서있음’ ‘서있음하며 서있는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다시 호흡의 들이쉬고 내쉼을 일어남’ ‘사라짐하며 알아차리고, 다시 서있음’ ‘서있음하며 서있는 상태를 확인하도록 해야 합니다.

 

 

4. 와선(臥禪)

 

와선은 누운 자세를 알아차리는 것인데, 주로 아침에 잠에서 깨었을 때, 또는 저녁에 잠을 잘 때, 누운 채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잠들기 전에 알아차리는 것은 그날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며, 이런 알아차림을 통해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우면 몸이 최대한으로 이완되기 때문에 호흡이 잘 나타나서 호흡을 보기가 쉽고, 또한 자려고 누웠을 때는 다른 할일이 없기 때문에 몸에 마음을 집중하기가 좋습니다.

 

이렇게 매일 잠들기 전 정신이 혼미해질 때 알아차림을 하면 죽을 때도 알아차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에 알아차림으로 깨어있으면 다음 생을 결정하는 재생연결식이 깨어있어 지혜롭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상태와 같은 파장의 몸과 마음이 생기므로 그 삶은 지혜와 함께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와선에서 생긴 알아차림은 다음 생의 질을 결정하는 원인이 됩니다.

 

*와선하는 방법

 

1) 아침에 일어날 때 알아차리기

누운 자리에서 잠을 깬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누운 상태에서 일어남, 사라짐의 호흡을 얼마간 알아차리다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음을 보면 편안하거나, 들떠있든가, 어떤 걱정을 합니다. 이때 그 마음을 보아주고 잠깐이라도 호흡을 알아차리면 그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청정한 마음이 됩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아차림으로 출발하면 그 좋은 파장이 하루를 좋게 이끌어 갑니다.

 

2) 저녁에 자기 전에 알아차리기

잠자리에 누운 상태로 잠을 청하는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침대에 닿아있는 몸의 부분 부분을 알아차려 내려갑니다.

그 다음 얼굴, , 가슴, 배를 알아차리다가 배에서 호흡이 잡히면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알아차리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듭니다.

와선을 하면 금방 잠이 드는데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잠이 들면 숙면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잠들기 전 알아차림으로 마음이 깨끗한 상태에서 잠들었기 때문에 악몽을 꾸거나 선잠을 자지 않습니다.

 

만일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잠을 못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앉아서 좌선을 합니다.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면 자연스럽게 누우면 됩니다. 불면증이 있을 때 잠을 못잘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자꾸 여러 생각을 일으켜서 더욱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불면증일 때는 반드시 불안한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그 다음 호흡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자가 낮 동안에 알아차림이 잘 이어져 의식이 명료하게 깨어있었으면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이때는 아침까지 와선을 하면 좋습니다. 이 경우 잠을 자지 않았어도 모든 피로가 풀려있기 때문에 가볍고 상쾌한 하루를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밤새 깨끗한 마음의 작용인 알아차림을 했기 때문에 몸도 깨끗한 상태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3) 일상적인 와선 수행법

와선은 몸이 피로해 있을 때나 병이 났거나 혹은 취침 전이나 깨어날 때에 합니다. 똑바로 누워서 배 위에 손가락을 포개어 살며시 내려놓고 우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어 주십시오.

 

맨 먼저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 어느 쪽을 먼저 관찰하든 발뒤꿈치가 방바닥에 닿아 있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알아차렸으면 그 의식을 엉덩이를 향하여 엉덩이가 방바닥에 닿아 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하나씩 천천히 알아차림 하면서 엉덩이 다음은 무릎, 손등, 어깨, 머리를 차례대로 알아차려 나갑니다.

 

의식이 머리까지 도달하면 다음은 역으로 머리로부터 어깨로 내려가서 차례차례로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아 있는 상태까지를 알아차립니다.

 

한 바퀴 몸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면 자신이 누워 있는 전체 모습으로 마음을 옮겨 서 누워 있음’ ‘누워 있음’ ‘누워 있음이라고 3회 정도 명칭 붙여 알아차림 한 후 에 배의 호흡을 관찰합니다.

 

배의 팽창 수축에 맞추어 일어남’ ‘사라짐하며 3분 정도 관찰한 후, 다시 발뒤꿈치로부터 시작하여 마음을 신체의 위쪽으로 향해 알아차려 나갑니다. 도중에 망상이나 가려움이 나타나는 경우는 그것을 알아차림 합니다. 졸음이 찾아오면 졸음’ ‘졸음’ ‘졸음하며 알아차려 졸음 같은 것은 날려 버립니다.

 

이것은 잠자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누워서 위빳사나 수행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을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밤에 그대로 잠들고 싶을 때에는 실제로 졸음에 역행하지 않고 잠이 듦’ ‘잠이 듦’ ‘잠이 듦이라고 관찰하고 그대로 자 버려도 됩니다. 아침까지 푹 잠들 수 있습니다.

 

 

5. 일상생활에서의 알아차림

 

1) 일상생활이 모두 수행할 기회입니다.

우리들은 보통 하루 15시간 이상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활동하는 자신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면 수행이 빠르게 발전합니다. 다행히 위빳사나 수행은 알아차릴 대상이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이므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알아차림이 가능합니다. 알아차림에는 돈이나 시간이 들지 않고, 단지 알아차리겠다는 의지와 실천만 필요합니다.

 

수행자에게 일상의 알아차림은 매우 중요합니다. 생활 속에서 자신이 하는 모든 일들을 되도록 많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말을 할 때도 말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말을 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차립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도 무슨 마음으로 하는지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행동합니다. 일상생활은 대상에 휘둘려 알아차림을 놓치기가 쉽기 때문에 더욱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일상에서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항상 알아차리면서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 행동을 하는지, 무슨 마음으로 하는지, 이런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이익이 있는가, 없는가를 아는 지혜가 뒤따라옵니다.

 

알아차림을 많이 한 사람은 지혜의 힘이 좋아져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선업이 됩니다. 그래서 아직 위빳사나의 지혜가 높지 않아도 스스로 나쁜 행동을 하지 않게 되고, 나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나쁜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계를 어길 정도의 불선업을 짓지 않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려 이익이 되는 생각은 하고,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항상 마음이 먼저 생각을 하고 그 뒤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을 알아차리면 그 일이 옳은가 그른가를 알아서 적절하게 행동하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행위를 알아차리기

아침에 잠에서 깨면 먼저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어서 호흡을 몇 번이라도 알아차린 뒤에 일어납니다. 이때 몸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방문을 열고 닫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 세면장에서 양치질과 세수를 하는 것, 목욕을 하는 것 등을 모두 알아차립니다. 또한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주위를 둘러보거나 할 때 알아차립니다. 옷을 입거나, 말을 하거나, 침묵하거나, 먹거나, 마시거나, 대소변을 볼 때까지도 모두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자는 매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려야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알아차림을 놓칩니다. 그때 지금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현재로 돌아와서 알아차림을 다시 시작합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든지 일하는 현장에 마음을 두면 됩니다. 저녁에 잠을 잘 때도 아침에 일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호흡을 주시하면서 잠을 자야 합니다.

 

3) 음식을 먹을 때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는 대부분 탐심을 가지고 먹습니다. 그래서 먹을 때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먼저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알아차립니다. ‘지금 무슨 마음으로 먹는가’, ‘탐욕으로 먹는가’, ‘성급하게 먹는가’, 아니면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가를 알아차린 뒤에, 만일 탐심이나 성급한 마음이 있다면 일단 먹는 것을 중지하고 그 마음이 가라앉을 때 까지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다시 지금 무슨 마음으로 먹는가를 알아차려서 탐심이나 급한 마음이 사라졌을 때 먹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탐욕을 먹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 먼저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알아차린 뒤 우선 먹을 것을 ’ ‘’ ‘하며 알아차리면서 명확히 대상을 잘 관찰합니다.

그리고 젓가락을 잡으며 젓가락 잡음’, ‘옮김하며 젓가락을 옮기고, ‘잡음하며 먹을 것을 잡습니다.

그러고 나서 음식을 가져 옴’ ‘입에 넣음’ ‘손 내림’ ‘씹음’ ‘씹음’ ‘씹음’ ‘맛을 봄’ ‘씹음’ ‘씹음’ ‘맛을 봄’ ‘삼킴’ ‘삼킴이라고 모두 알아차리면서 먹습니다.

 

만일 무슨 소리가 귀에 들리면 소리 들림’ ‘소리 들림이라고 알아차립니다. 입에 넣은 것을 다 먹고 나면 다시 젓가락을 쥐고, 옮기고, 잡고, 옮기고, 입을 열고, 넣고, 손 제자리로 돌아오고, 씹고, 맛보고, 삼키고.. 라고 알아차림을 계속해 나갑니다. 행위를 모두 명확히 순서대로 알아차려 나갑니다. 꼭 식사 시간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음식을 보았을 때, 과자를 먹을 때, 그럴 때마다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때마다 성급한 마음이 있는가!’, ‘탐심이 있는가!’, ‘배가 부른데도 많이 먹으려고 하는 가!’ 등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먹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알아차리는 힘은 약하고 탐심은 아주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마음을 알아차려서 급한 마음이 없어지고 편안해졌을 때 먹어야 알아차리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에 마음을 두지 말고 자신의 눈과 코와 혀에 마음을 두고 먹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여러 반찬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자꾸 탐심이 일어나서 급하게 먹게 됩니다. 젓가락을 들고 이것저것을 탐색하며, 음식을 흘리고, 몇 번 씹지도 않고 급하게 삼키거나, 아직 삼키지도 않았는데 다시 음식을 입에 넣기도 합니다. 또한 남의 몫까지 먹습니다. 이 모두가 탐심을 가지고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탐심을 먹기 때문에 탐심은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음식은 탐욕으로 먹지 말아야 하고, 또한 음식을 이름으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닭고기, 돼지고기, 과일 등 음식의 모양이나 이름에 빠져 먹지 말고, 그 음식의 고유한 맛을 먹어야 합니다. 음식의 모양이나 이름은 관념이고 음식의 맛은 실재입니다. 음식의 이름은 변하지 않지만 그 맛은 순간마다 변합니다. 만일 고급요리라는 모양에 빠지면 알아차림을 놓치고 과식하게 됩니다.

 

수행자는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맛을 먹어야 합니다. 음식은 각각의 고유한 맛이 있으므로 수행자는 음식의 고유한 맛을 알아차리고, 그 맛의 변화를 알아차리면서 먹어야 합니다.

 

음식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냐 싫어하는 음식이냐에 따라 탐심과 성냄이 일어나는데, 그때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먹어야 합니다. 단지 알아차리기만 하면 좋거나 싫거나 하는 마음 없이 차분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행을 하면서 먹게 되고, 적당히 알맞게 먹게 될 것입니다.

 

4) 낮에 활동하면서 알아차리기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자신의 발걸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생각하면 생각한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발걸음을 알아차립니다. 직장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 할 때는 말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또한 다른 직원들의 언행에 대해서 시비 분별하는 자신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어, 직장에서 가장 바르고 적절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실수가 적어지고, 일의 능률도 높아집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없다면 매순간 일어난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속아서 자신도 모르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없는 순간이 많으면 그만큼 실수도 많아집니다.

 

5) 평소 걸을 때의 알아차림

일상생활에서의 위빳사나 수행법 중 중요한 다른 하나는 평소 걸을 때의 알아차림이 있습니다.

집중적 수행법에서도 경행을 설명했지만 그것은 확실히 수행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 그 시간에 중단 없이 상세하게 관찰하며 걷는 수행입니다.

 

일상의 걷는 수행은 가벼운 기분으로 평소 걸을 때에 언제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걸을 기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대인이라고 걷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지하철 등의 교통기관이 매우 발달해 있지만 정류소에서 자신의 아파트까지 혹은 집에서 슈퍼마켓까지 등등 걷는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렇게 걸을 때에 이 시간은 위빳사나 실천에 사용하도록 정해 놓으십시오.

어떤 식으로 하는가 하면, 그저 단순히 발의 움직임에 맞추어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하고 명칭붙이며 걷기만 하면 됩니다.

 

걸을 때 맞은 편에서 누군가 사람이 오면 사람이 다가옴’ ‘다가옴’ ‘왼쪽으로 비킴’ ‘왼발’ ‘오른발하며 왼쪽으로 비켜 주십시오. 그 사람이 왼쪽으로 비키면 오른쪽으로 비킴’ ‘왼발’ ‘오른발하며 계속 걸어갑니다.

 

신체의 감각을 맛보면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하고 걸으면 매우 즐겁습니다. 마치 디스코에서 춤추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디스코든 어디든 무엇이든 여러분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을 떠올려 주십시오. 그런 식으로 대단히 즐겁습니다.

 

걸으면 곧 피로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그런 사람은 걸으면서 어두운 생각을 합니다. 걸을 때 나라는 사람은 늘 바보 같은 짓만 하고, 어쩌고 저쩌고 투덜투덜 후회하면서 걸으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매우 피로해집니다. 그러므로 피로한 것입니다. 혹은 걷는 것도 싫어집니다. 그러지 말고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하고 걸으십시오. 그러나 무언가 주문을 외우듯이 그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하는 것은 안됩니다. 수행은 주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움직임에 대한 명확한 확인이므로 왼발이라고 하면 왼쪽 발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끼고 신체도 그에 응해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오른발이라고 하면 확실히 오른쪽 발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신체도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하며 걸으십시오.

 

그 때 소리가 들린다면 소리 들림’ ‘소리 들림이라고 알아차림 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소리의 종류를 찾지 않도록 하십시오. 쓸데없는 것은 혼란만 될 뿐이므로 어떤 소리이든 들리고 있다고 알아차림만 하면 됩니다.

그편이 자신을 느긋하게 해줍니다. 하나하나 소리를 추적하지 말 것. ‘들리고 있음만으로 끝내십시오.

 

일전에 그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그런 식으로 걸으면 사람과 부딪치거나 차에 부딪치거나 하는 것은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사띠를 하고 있다가 차에 부딪쳤다는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와 보십시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차에 부딪친다고 하는 것은 사띠가 없기 때문입니다. 혼란되어 마음이 망상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차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사고를 당하거나 사고를 일으키거나 하는 사람은 위빳사나를 하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술에 취했거나 사띠가 없는 상태의 사람입니다.

 

사띠를 하니까 천천히 걷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글쎄요. 천천히 걷는 쪽이 꼼꼼히 사띠를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매우 빨리 걸어도 사띠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빨리 걷지 않으면 안 될 때야 말로 나는 철저히 사띠로 걷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피로해져서 걸을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사띠를 하지 않고 걸으면 아무리 빨리 걸어도 망상이 생깁니다. 나는 걸을 때는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꼼꼼히 들어 올림’ ‘나아감’ ‘내려놓음이라고 알아차림 하지만, 빨리 걸어도 사띠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걸을 때에는 언제나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하고 걸어 주십시오.

 

그 외에도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모든 행위를 알아차리고 있으면, 그때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과 의도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이렇게 현재를 알아차리는 노력으로 하루 종일 일과 수행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선원에서 좌선이나 경행으로 알아차림이 숙달되면,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할 수 있고, 이렇게 알아차림이 이어지는 수행자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현상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힘이 생깁니다. 이 힘이 수행자를 안락하고 평화롭게 살도록 이끌어 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자주 알아차리려는 의도를 내어, 실제로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알아차려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실제 알아차리는 행위가 없다면 이는 망상이지 수행이 아닙니다. 이때라도 생각을 알아차리고, 즉시 몸으로 돌아와 알아차리면 다시 위빳사나 수행이 시작됩니다.

 

6) 일상의 알아차림이 주는 이익

일상생활의 수행법도 진지하게 하면 집중적 수행법과 동일한 정도의 효과가 있습니다. 집중수행법은 일주일간 진지하게 계속하면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의 수행법으로는 한 달 정도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정말로 한 달간 이 수행법을 확실히 실천한다면 인간이 변화합니다.

 

수행자가 일상에서 모든 행위를 알아차림과 함께하면 번뇌가 일어날 틈이 없습니다. 안정된 마음은 정신과 물질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품을 보게 합니다.

이처럼 일상에서 항상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에 주의를 집중해서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은 바로 괴로움을 소멸하는 팔정도를 닦아가는 것입니다. 팔정도는 수행자를 언젠가는 불사不死의 문,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7)일상의 알아차림은 분명한 앎과 함께

일상의 알아차림은 대념처경의 분명한 앎을 닦는 것입니다. 대념처경의 분명한 앎 편에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앞으로 나아갈 때나, 뒤로 돌아갈 때나,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앞을 볼 때나, 주위를 볼 때나,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팔 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대가사와 다른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가고, 서고, 앉을 때도,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도, 말하거나 침묵하고 있을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분명한 앎은 일상의 행위에 대한 네 가지 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첫째, 지금 자신의 이 행위가 이익이 있는가?

둘째, 지금 자신의 이 행위가 시기 상황이 적절한가?

셋째, 지금 대상이 적절한가? 지금 적절한 수행 주제를 지니고 있는가?

넷째, 지금 대상을 어리석지 않게 보는가? 대상을 나와 연관시켜보는가? 대상을 무상, , 무아의 측면에서 보는가?

이것이 네 가지 분명한 앎입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차려서 마음집중하여 관찰합니다. 이것은 모든 수행의 대상에 대한 관찰에 적용됩니다.

 

라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

라는 현상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립니다.

’ ‘라고 명칭을 마음속으로 붙이며 그 현상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의 현상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그 현상이 사라질 때까지 관찰합니다.

의 현상을 관찰하는 동안 의 실재적인 성품인 를 알게 되면 그 현상을 알아차립니다.

의 실재적인 현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라고 명칭을 붙이며 그 현상에 집중합니다.

의 현상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그 현상이 사라질 때까지 관찰합니다.

가 실재적인 현상이며 고유한 성품임을 이해합니다.

그 현상을 이해하고 나면 주 관찰대상인 배의 일어남’ ‘사라짐현상관찰로 즉시 돌아옵니다.

 

이와 같이 의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관찰하는 동안(~ ) 그 관찰을 통해 관찰의 순간마다 반드시 그 현상 의 실재적인 성품인 가 드러나서 그것을 이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자의 알아차림이 성숙되면 언젠가는 자연적인 실재하는 담마의 참 성품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통의 경우에는① ⇒②⇒③⇒④의 순서로 알아차리면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무릎에 통증이라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

무릎에 통증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립니다.

통증’ ‘통증이라고 명칭을 붙이며 그 통증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그 통증이 변화하는 과정을 관찰합니다.

대개 알아차림 하면 통증이 증가하다가, 지속하다가, 그리고는 서서히 사라집니다. 수행자의 관찰이 면밀히 진행된다면 통증이란 실재하는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빤냐띠)이며, 사실적으로 실재하는 것(빠라맛타)혹은 쑤심혹은 저림혹은 땡김이라는 현상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자가 알고 이해하게 되는 담마 중의 하나입니다.

통증의 내용이 만약 쑤심이라고 알았다면, ‘통증에서 쑤심으로 명칭을 바꿔서 관찰해야 합니다.

실재하는 현상으로 쑤심이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쑤심’ ‘쑤심이라고 명칭을 붙이며 그 쑤심의 현상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그 쑤심이 변화하는 과정을 관찰합니다.

쑤심이 처음에는 약하게 진행되다가 점점 강해졌고, 열이 발생하였고, 한참 후 서서히 약해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쑤심이 일어난 그 부위가 뻐근하였는데 쑤심이 사라짐에 따라 점차 뻐근함도 사라졌다는 사실을 실제로 확연하게 알았다.

그래서 쑤심이 실재적인 현상이며 고유한 성품임을 이해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행관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렇게 하여 쑤심의 통증이 사라지면 즉시,

배의 일어남’ ‘사라짐현상관찰로 돌아옵니다.

 

뻐근함, 단단함은 ()(응집성)의 요소입니다.

열의 발생은 (열기)의 요소 입니다.

쑤심은 의 요소입니다.

 

수행자는 쑤심이 일어나는 부위가 의 몸이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단지 그러한 요소들의 작용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쑤심이라는 존재가 그곳에 실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변화를 이루면서 결국에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수행자는 아직은 거칠지만 무상이라는 성품의 단면을 경험한 셈이 됩니다. 담마란 오묘하고 애매모호한 초월적인 그 무엇이 결코 아님을 안 것입니다.

 

결국 수행자가 현재 자신의 행위를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이어가면 거기에는 분명한 앎이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스스로 괴로움을 소멸하는 행위를 선택합니다. 그러므로 알아차림(正念)과 분명한 앎(正知)은 새의 양 날개처럼 함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