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 준비단계- 뿌자(예경), 12가지 장애제거. 예비수행, 서원, 참회 (20090616)
조금 전에 스님이 뭐 했습니까?
부처님 축원을 했죠! 그걸 뭐라고 그래요? '부처님한테 예경 올렸다' 그렇게 얘기 하죠. 그걸 빨리어로 하면 '뿌자(pūjā)'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뿌자(pūj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아-미사뿌자(āmisa-pūjā)'라고 하는 것이 있고, '담마뿌자(dhamma-pūjā)'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가 장음입니다.
아-미사뿌자라고 하는 것은 조금 전에 여러분이 했던 그런 방법입니다. 여러분들 오면 잘하는 거 있죠! 부처님께 절하고, 향 피우고, 또 촛불 공양 올리고, 또 어떤 이들은 꽃도 올리고, 어떨 땐 과일도 올리고, 이렇게 하는 것, 이런 것들로써 예경하는 것을 '아-미사뿌자'라고그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한테 올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대부분 음식들을 올리죠! 마지도 올리고 과일도 올리고 음식들이 있고 또 뭐가 있습니까? 아미사뿌자 할 수 있는 거 뭐 있어요? 다른 거 물질적인 거 올리죠. 향, 초, 꽃 같은 것도 있고, 그다음에 약품 같은 것도 있을 수가 있고, 그다음에 또 뭐가 있겠어요?
부처님의 옷이 헤어졌으면 뭐합니까? 가사불사 하죠. 개금불사라고도 하고 그래서게 가사 올리는 것도 있고, 개금한다는 것이 가사를 새로 입혀드리는 겁니다. 그런 가사가 있고, 또 하나가 뭐 있습니까? 없으면 보충해가지고 놓죠.
부처님 없으면 부처님 조성해가지고 올리고, 또 부처님 조성해가지고 모실 자리가 없으면 법당을 새로 짓기도 하고 이런 절을 시주하는 거, 절이든지 아니면 부처님 앉을 좌대를 해가지고 올린다든지.
그래서 '아-미사뿌자'에는 크게 나누면 이렇게 네 가지가 들어갑니다.
음식, 가사, 좌와구, 좌와구는 앉고 자고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거죠. 그다음에 다른 물질적인 것 중 의약품을 받는 것 해서 네 가지! 이 4가지는 출가한 스님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출가한 스님들은 이 네 가지를 의지해서 살아가라 하고 얘기하거든. 결국 부처님한테 공양 올린다는 것, 예경을 올린다는 것은 스님들에게 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부처님한테 올렸는데 그게 스님들이 못 먹을 것이라 할 거 같으면 그건 안 되겠죠. 부처님한테 올리는 것이 아니게 되겠죠. 이런 것들을 아미사뿌자라고 얘기합니다.
또 뭐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오면 부처님한테 예경 올리는 거 뭐 합니까? "이띠삐소 바가와 아라항 삼마삼붓도"” 하면서 경전을 독송하죠. 경전 독송하는 것도 있고, 그리고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하면서 정근하죠. 기도하는 것 이런 것들도 있고, 그러니까 아-미사뿌자에는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들어가집니다.
왜 아-미사뿌자를 합니까? 도깨비방망이 같이 여러분들 소원 들어주라고 하는 것은 아니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왜 그럽니까? 불법이 오래도록 유지가 돼나가서 나도 좀 평화롭고, 세상도 좀 평화롭고 행복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그거 하죠! 그러기 위해서, 좀 더 좋은 조건에서 내가 수행하기 위해서 이런 도량들을 만드는 거고, 부처님을 장엄하기도 하는 거고, 내가 마음이 좀 평화롭고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아-미사뿌자의 근본적인 의미는 부처님의 법이 이 세상에 오래도록 유지되길 바라는 그런 이유에서 합니다.
그다음에 뿌자에는 뭐가 하나 있다고 그랬습니까?
담마뿌자라고 얘기했죠!
'담마뿌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아는 것하고, 실천수행 하는 것.
아는 것은 뭡니까? 지금과 같이 스님 법문 듣고, 그거에 대해서 지식적으로도 알고, 또 책을 통해서도 알고 그런 것들이 있고, 그다음에 또 아는 것은 뭐가 있습니까? 계·정·혜라고 그러죠. 불교신자라면 배워야 될 세 가지 앎! 세 가지 항목 그래서 계학, 정학, 혜학 그러죠.
계율을 잘 지키기 위해서 계율을 배워야 하는 것이고, 뭐가 할 것이고 뭐가 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 거고, 그래서 맨처음에 우리가 법회 시작하면 오계를 반드시 하죠. 그래서 오계를 받아지니고.
그다음에 정학이라 해가지고 어떻게 하면 마음을 깨끗하고 맑고 고요하게 하는가? 해서, 스님 법문을 통해서 내가 참 마음이 고요하고 좋다 하면 그 법문을 통하기도 하고, 아니면 책을 통하기도 하고, 안 그러면 사마타 수행을 통하기도 하고 이렇게 해나갑니다.
그다음에 혜학, 지혜를 계발해나가는 것. 계학, 정학까지는 알겠는데 혜학은 잘 모르겠다 싶으면 혜학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고 위빳사나 수행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지혜를 계발해나가는 것. 어떤 것이 닙바나에 이르게 하고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행해나가고 실천해나가는 길을 해나가는 것.
그래서 이렇게 담마뿌자에는 첫 번째가 앎이라는 법이 있고, 두번째는 실천하는 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계학, 정학, 혜학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걸 실제 실천해 나가지 않으면, 계를 지키는 것도 내가 실천해야 되는 것이고, 사마타 수행하는 것도 내가 실천해야 하는 것이고, 위빳사나 수행하는 것도 내가 실천해야 되는 것이고, 실천하지 않으면 담마뿌자는 완성이 안 되겠죠. 담마뿌자에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앎, 배움이라는 것하고 실천하는 것하고.
어쨌든 이 담마뿌자라는 것도 왜 담마뿌자를 합니까? 왜 배우고 왜 실천합니까? 이 세상에 부처님의 진리가, 부처님의 담마가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뿌자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담마뿌자만 강조하다 보면 아-미사뿌자는 좀 등한히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살아가다 보면 물질적인 거 아예 없이 살 수는 없죠? 아무리 정신적으로 고요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밥은 먹고 살아야 되는 거라. 그래서 뿌자에도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눴습니다.
담마뿌자가 오히려 더 수승하고 그게 더 따라가야 할 길인데도, 틀림없는데 아-미사뿌자도 필요한 부분이다 하는 겁니다. 담마뿌자를 하면서 아-미사뿌자하려는 마음을 더 낼 수가 있고, 그래서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게 뿌자의 의미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담마뿌자를 하든 아-미사뿌자를 하든, 담마뿌자를 할 경우에는 아-미사뿌자를 할 마음을 내야하는 거고, 아-미사뿌자를 할 경우에는 담마뿌자를 할 마음을 내야 되는 겁니다.
부처님한테 그냥 예경만 드리고 내가 수행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수행실천을 하기는 하는데 내가 오히려 마음이 더 고집스럽고 남에게 베풀 줄도 모르고, 예경할 줄도 고개숙일 줄도 모른다고 할 거 같으면 그건 또 아무런 이익이 없는 거라. 그래서 서로 자꾸 보완적인 관계로 해야 됩니다.
그리하더라도 담마뿌자의 실천하는 법으로 인해서 자꾸 이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앞에 것이 우선이 되다보면 실천하는 것이 등한시되더라도 겉모습만 자꾸 따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을 잘 해나가야 됩니다.
어쨌든 여러분들은 지금 담마뿌자를 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수행을 시작하는 분들도 있고, 조금 더 수행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행이 좀 잘 안 될 때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들은 수행 안 해버립니까? 그렇다고 안 해버릴 수도 없고, 수행은 계속 해나가야 되는데, 수행이 조금 더 진전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까?
가끔씩 수행이 안 될 때 답답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뭐합니까? 절에 가서 스님 만나거든. 만나고 나서 몇 마디 말 듣다 보면 '아! 그래도 내가 공부 좀 해야지'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수행이 진전이 안 될 때 대부분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게 그래도 먼저 수행하신 분, 스님들이나 아니면 훌륭한 분들을 가서 만나 뵙는 것. 이것을 최고 우선으로 합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틀림없이 여러분들 중에 수행을 하다 장애를 만난 사람들도 있고, 또 수행이 잘 안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그래도 먼저 수행했던 도반들 중에 내보다 조금 나은 사람들한테 가서 만나가지고 얘기를 하는 거라. 안 그러면 스님한테 와서, 올 형편이 못되면 전화라도.
그렇게 해서 반드시 먼저 수행했던 이들이나 스님들을 만나도록 해야 됩니다. 그게 첫 번째 조건이 됩니다.
두 번째는 뭐가 해당이 됩니까? 아무리 그리하더라도, 그 훌륭한 도반들이나 스님들을 만나더라도 뭐합니까? 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듣죠! 바른 법을 들을 수 있어야 됩니다. 바른 법을 자꾸 듣도록 해야지 바른 법이 아닌 것을 자꾸 들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조건은 바른 법을 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바른 법을 듣더라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무리 바른 법을 듣더라도 내가 마음이 잘못되어 있으면 안 되겠죠.
그래서 바른 마음가짐을 지녀야 됩니다. 듣는 것하고 지니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듣는 것은 외부적인 곳에서 들려주는 거지만, 지니는 것은 내가 만들어가야 되는 거라. 그래서 바른 마음가짐을 지녀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리 바른 마음가짐을 지녔다 해도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바른 법을 수행해야 됩니다. 올바른 담마를 실천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 네 가지가 같은 형태로써 이루어져야 만이 수행의 진전을 가져오게 되고, 수행에 장애가 있을 때 반드시 갖추어야 되는 것이 이 네 가지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한국에도 그렇지만 태국이나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도 처음에 출가하면 뭐 하는지 아세요? 각각의 소임을 준단 말이라. 최고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소임을 맡깁니다. 가만히 앉아서 비질하고 이런 것만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거 안 시킵니다. 저 화장실 청소라든지, 아니면 공양하고 남은 그릇들을 싹 씻는 거라든지 그래가지고 그 공양간 청소하는 거라든지 이런 소임들을 맡깁니다.
그런데 그 소임이 조금만 하다 말면 되는데 보통 그게 한 1년은 갑니다 그 소임을 맡으면. 1년 동안은 그 일 하기에 바빠요. 왜 그러냐면 큰 대중처소에는 화장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하루 종일 화장실 청소해도 이거 다 끝내기도 힘들 판이라. 그리고 부엌일 그릇 닦고 하는 것도 이거는 닦았다 싶으면 또 밀려있고 밀려있고 이래요. 그러니까 하루종일 하다시피 하거든. 그러니까 참 하기 싫은 거라. 생각이 내가 출가해가지고 이런 허드렛일 하려고 출가한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자꾸 듭니다.
그럼 스님한테 가서 '나 다른 소임 좀 할 수 없습니까? 나 이거 할라고 한 게 아니고 수행하고 싶어서 출가했다고, 내가 이거 안 하고 수행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스님들이 뭐라 하는 줄 아세요? 뭐라 할 거 같애요? “수행해라” 할 거 같애요? 그렇지! "사띠하라!" 사띠하라 그럽니다.
다른 도리가 없는 거라. 내가 출가해가지고 처음에는 누구든지 그 소임을 맡는데 단, 사띠를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이 하고 있는 일이 어차피 1년을 채워야 되는데 즐겁느냐 안 즐겁느냐 차이가 나버리는 거라. 그걸 빨리 캐치한 사람들은 요놈의 솥 닦을 때도 즐겁게 솥을 닦아. 화장실 청소할 때도 즐겁게 화장실 청소하는 거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1년 내내 고생했다고 생각하는 거라.
솥을 닦을 때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고 들뜨고 합니다. 그 마음을 사띠해서 알아차릴 것 같으면 마음이 진정된다는 거라. 그러면 솥을 닦으면, 여러분들도 접시 같은 걸 닦아봐서 알겠지만, 닦다 보면 접시도 없어지고 이 몸이라는 것도 없어져 버립니다. 오직 두 가지 밖에 없죠. 닦는 것하고 아는 것하고 이 두 가지만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불결하다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솥을 닦는다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거라. 그러니까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거라. 내가 닦는 것하고 내가 아는 것, 이 두 가지만 딱 일치가 됩니다. 얼마나 좋아.
수행이 잘 안 되나갈 때
큰 스님한테 가서 '나 수행 좀 하게 해주시오' 덕 높은 스님들이나 더 먼저 배운 도반을 찾아가는 것.
그 도반들이나 스님들에게 바른 법을 듣는 것.
그래서 그 스님이 “사띠 하라” 하면, 바른 법을 들었으면 그 바른 법을 바르게 마음가짐으로써 지니는 것.
'아! 내가 사띠해야 되겠구나. 다른 도리가 없구나. 1년 동안은 어차피 해야 되는 것. 그래서 아! 사띠 하자!' 하고 마음을 먹고 사띠를 해가지고 수행을 실천하는 것.
그렇게 하다 보니까 진짜 솥도 없어지고 접시도 없어지고 더러운 것들도 없어지고 불편한 마음도 없어지고 들뜨는 마음도 없어져버리고, 오로지 닦는 행위와 아는 것 두 가지만 남아 있게 되는 거라. 결국은 깨달음의 과위에 이르게 되는 거라.
수행이 안 되갈 때는 반드시 이 네 가지를 구비를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나가는 것이 수행을 해나가는데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을 갖출려고 해도 수행해나가는데 장애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아마 그런 장애들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을 거라.
청정도론에 보면 대략적으로 한 12가지 장애들은 제거를 하고 수행을 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집안일!
여러분들 중에 가정 일을 하는 분들 같은 경우에는 많이 해당이 되겠지. 집안일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려야 수행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하고 있으면서 '아! 저거 오늘 해야 되는데, 이거 수행하다가 오늘 다 하겠나?' 그런 마음을 내면 수행 못하는 거라. 그러니까 애초부터 수행하러 딱 온다 하는 날에는 조금 일찍 일어나더라도 그 집안일을 싹 해놔버리고 와버리는 거라. 그러면 해놔버릴 거 같으면 그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거라.
장애가 될 만한 것들을 제거를 하라는 거라. 그중에 가장 큰 게 뭐냐면 그런 집안일들! '이거 해야 되는데, 저거 해야 되는데, 시장 봐야 되는데, 뭘 해야 되는데' 그걸 아예 제거를 하라는 거라. 장애를 없애버리라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면 가족들에 대한 겁니다.
가족들에 대한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애가 아프다든지, 학교를 보내야 된다든지 여러 가지 가족에 대한 것들이 있습니다. 집안일만 있는 게 아니고 어차피 사회생활 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것들을 정리는 못 하겠지. 그렇다고 가족을 내버릴 수도 없는 거니까. 수행을 하면 가족에 대한 거는 일단은 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것들을 완전히 잊을 수 있도록 만들어라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뭐냐면 대부분 대소사들.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사사공양이라고 그럽니다. 네 가지 필요한 물품들, 그런 것들을 수행하면서 '아! 탁발 나가서 탁발해 와서 공양해야 돼. 공양시간 다돼가는데' 이런 생각 일으키면 수행 못하는 거라. 그래서 이런 사사공양에 대한 생각들을 갖다가 미리 다 해가지고 마무리를 지어라. 세속의 일들도 만약에 오늘 오전에 수행한다면 오전에 해야 될 일들을 다 처리를 하라는 거라. 돈을 갚는 일이라든지 은행에 가는 일이라든지 이런 세속적인 일들을 대부분 처리하든지, 안 그러면 아예 오늘 안 할 수 있게끔 일을 만들어라는 거라. 그렇게 일처리를 해놔 놓고 수행을 시작하라는 거라.
네 번째는 가르치는 사람들, 특히 우리 아란야 같은 사람들 '오후에 내가 뭘 가르쳐야 되는데', 앉아서 수행하면서 그 생각이 들면 수행 못 해. 가르칠 걸 미리 다 해놔 버리라는 거라. 이미 오늘 가르칠 건 다 준비를 해놔 버리고 끝내버리고 나야 수행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거라.
특히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이 붓다고사 스님이 쓴 청정도론 같은 경우에는 스님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율장을 가르친다든지 경전을 가르친다든지 가르치는 스님들한테 그날 미리 가르치라는 거라. 수행을 하기 전에. 안 그러면 다음 날로 미루라는 거라. 가르치는 부분에 대한 것들을 다 해 놔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내가 어디 가야 되는데' 하는 여행하는 일, 그다음 여러 가지 일들, 이런 것들이 쭉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 있는 것 친족 가족들이 장애에 대한 것들 이런 것들도 해결하고, 병이 있는 사람들은 병에 대한 장애들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수행을 하라는 거라.
병이 있든, 아니면 다른 잡다한 일이 있든 마음을 먼저 뭘 두어야 하느냐면 내가 지금 현재 걸어 다닐 수 있다, 그러면 수행할 수가 있다는 거라. 그 정도 될 거 같으면 내가 이 몸이 있는 한은 항상 병이 있게 돼 있다. 내가 이 몸이 있는 한은 항상 여러 가지 일들이 따라오게끔 돼 있다. 지금까지 나는 내 몸을 돌보는데 많이 시간을 허비해 왔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데 많이 시간을 허비해 왔다. 지금 이거 안 한다 해가지고 큰일 나는 거 아니다. 병으로 인해 죽는 것도 아니고, 하지 못한 일로 인해서 크게 어그러질 일은 없다는 거라.
그럴 거 같으면 그런 것들을 놓아버리고 수행해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탁 가지라는 거라. 앞에 여러 가지, 여덟 가지 넘게 예를 든 것을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마무리를 지어버리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수행할 때는 수행하는 마음을 먼저 가지도록 딱 만들어야 된다는 거라.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되는 게 뭐냐면 배우는 것!
대부분 수행처소에는 보면 책도 못 읽게 하고, 텔레비전도 못 보게 하고, 글도 못쓰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법회를 하더라도 스님 법문을 안 하면 수행 안 할라 그럽니다. 그런 마음을 버려야 됩니다. 배울려고 하는 마음을 버려야 됩니다.
수행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거라. 내가 실천해야 하는 거라. 물론 어느 정도 배우는 것이 있어야 만이 실천해나가는 토대가 되겠지만은 이미 여러분들은 그 토대들은 마련해놓았다는 거라. 그래서 배울려고 하는 마음들을 먼저 버려야 한다는 거라. 그 마음을 버려야 만이 오롯이 수행해나갈 수 있다는 거라.
지식적인 것들, 이런 것들과 관련된 것들, 그런 마음들을 많이 내면 반대되는 작용들을 할 수가 있다는 거라. 법문 안 해주면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떨어져 버리고, 책을 통하지 않으면 내가 수행하는 것들을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된다고 할 거 같으면 그건 장애가 된다 하는 거라. 그래서 그런 마음들을 버리도록 하고.
또 하나는 여러분들 중에 많이 가지고 있는 것, 신통을 얻을려고 하고, 삼매를 얻을려고 하고, 하는 이런 마음을 버려버려야 됩니다.
부처님도 수행할 때 그거 버리라고 분명하게 얘기했거든. 왜 버리라고 했겠습니까? 그것이 수행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부분을 버려버려라 하는 거라. '반드시 내가 뭘 이루겠다. 내가 이 시간에는 삼매를 이뤄보겠다. 내가 다른 사람들이 체험하지 못한 아주 미묘하고 오묘한 것들을 한번 체험해 보겠다.' 이런 생각 자체를 일으키지 말아라는 거라.
그다음에는 뭐냐면 보통 수행할 때 몸을 청결히 하라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물론 마음을 깨끗이 닦는 거지만 몸이 청결하지 않으면 마음을 닦는데 하나의 장애요소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여러분들 밖에 나갈 때 어떻게 합니까? 우선 깨끗이 씻고, 여자분들 같은 경우에는 뭐 좀 찍어바르고 이래가지고 나갑니다. 그래가 다른 사람 만났을 때는 뭐 그냥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씻지도 않고 화장도 안 하고 부시시하게 나가서 다른 사람들 만나면 왠지 꺼려진다는 거라.
수행에서도 그렇게 장애가 온다는 거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닦는 일인데도 몸을 청결히 하지 않으면 그런 장애를 가져오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몸도 깨끗하게, 그러니까 다음에는 여기 올 때 세수들 다 하고 좀 깨끗하게 해가지고, 그렇다고 해가지고 너무 찍어발라가 화장품 냄새 진동하도록은 하지 말고, 깨끗하게 하고 해서 손톱 발톱이라든지,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머리카락이 길면 머리도 자르고 단정하게 하도록 하고 그게 인제 수행을 할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반드시 수행하기 전에 구비를 하도록 하라 하고 청정도론에서 보통 12가지로 얘기를 해놔 놨습니다.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뭡니까?
수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해가지고 들어가는데 준비단계, 저번 시간에 준비단계에 대한 얘기를 했죠! 수행의 예비단계! 4가지를 통상적으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 4가지 단계를 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그 4가지 어느 단계를 하든지 마음속에서 서원을 세워야 됩니다.
『 내가 이 수행을 하는 공덕으로 도와 과에 이르기를
내가 이 수행을 하는 공덕으로 닙바나 · 깨달음에 이르는 조건이 되기를 』
하는 그런 서원들을 세우고 탁 자리에 앉아서 수행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자리에 탁 앉고 나서 뭘 해야 되느냐면, 먼저 참회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 살아가면서 잘못 없이 살아가는 경우는 대부분 없을 겁니다. 간혹 그중에는 스님들을 향해가지고 '에잇 나쁜놈의 자식' 하면서 욕을 하는 경우들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크게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성인을 비방한 죄는 나쁜 과보를 받을 뿐 아니라 일정한 수행력 이상을 높여주지를 못합니다.
부처님 당시 때 60넘은 스님이 인제 갓 출가한 스님하고 같이 탁발을 나갔어요. 탁발을 나가갔는데 탁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나이 드신 스님이 너무나 배가 고픈 거든. 그래서 선원까지, 절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중간에 남의 집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가지고 밥을 먹었어요. 인제 출가한 스님이 보니까 참 가당찮거든. 그 나이 드신 스님이 저렇게 있는 게 참 보기가 싫단 말이라. 그래서 '에이! 참 다른 사람들 지나가고 하는데 내가 부끄러워 죽겠네' 하는 그런 마음을 냈거든. 그리고 그 스님이 하는 행동을 비난하는 마음을 낸 거라. 그러고 나서 다시 절로 들아온 거라.
노스님이 인제 갓 출가한 스님에게 물어봅니다.
“스님! 뭔 공부를 얼마만큼 했습니까?”
“예! 저는 부처님 말씀을 잘 배우고 열심히 수행해 나갔습니다.”
“그래요? 어느 정도의 수행에 이르렀습니까?”
“저는 그래도 수행 중에 수다원 정도는 이르렀습니다.”
“그래요. 그럼 스님 인제는 수행 안 해도 됩니다.”
“스님 제가 왜 인제 수행 안 해도 됩니까?”
수다원에 이르렀으면 아라한까지 이르도록 노력해야지 왜 스님은 수행 안 해도 된다고 하느냐는 거라. 왜 그렇겠습니까? 성인을 비난한 죄!
스님은 인제 아무리 수행해봐야 성인을 비난한 죄로 인해서 수다원 이상 이르지 못한다는 거라. 그래서 수행 안 해도 된다는 거라. 그 스님 보고.
그때서야 이 스님이 퍼뜩 뉘우칩니다. 평범해 보이고 아무 보잘 것 없는 스님 같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거든. 이 스님한테 그럽니다.
“스님! 내가 그러면 그렇게 비난하는 마음들을 낸 것들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참회하십시오.”
참회를 해야 만이 스님이 수행을 해가지고 더 높은 과위에 이르를 수가 있습니다.
“참회를 어떻게 합니까?”
『 내가 알고 저질렀거나 모르고 저지른 것들
몸과 말과 뜻으로 마음으로 알든 모르든 저지른 크고 작은 나쁜 행위들을
부처님과 담마와 상가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빕니다.
나의 허물을 용서해주십시오. 』
하고 참회하십시오. 그렇게 참회를 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참회하고 나서는 그렇게 수행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아직 하나 더 남았습니다.”
『 다른 중생들이 알든 모르든 몸과 말과 마음으로 나에게 저지른 행위들을
나는 부처님과 담마와 상가에게 참회를 구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 다른 부류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고 참회합니다. 』
하는 마음을 내라.
“내가 저지른 것들을 삼보에게 참회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저지른 것들을 내가 용서하고
하는 행위들을 반드시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수행을 하십시오.”
그렇게 수행을 하고 나서는 깨달음에 이릅니다.
여러분들도 수행을 시작할 때는 수행의 예비단계 네 가지 중에 한 가지, 아니면 네 가지를 다 하고 나서 서원을 세워야 됩니다.
'내가 이 수행한 공덕으로 도와 과에 이르기를
이 수행한 공덕으로 닙바나에 이를 조건이 되기를' 하는 마음을 내고 나서,
바로 마음속에서 '내가 저지르고, 남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들을 참회하고 용서합니다' 하는 마음을 탁 내고 수행을 시작하는 겁니다.
간혹 그럴겁니다. 여러분들 중에 앞에 앉아있는 스님들을 비난하는 경우들도 있을 수가 있고, 내 말고 또 다른 사람들한테 하는 경우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 스님들이 어떤 경지에 있는지를 모릅니다. 설혹 그런 경지에 있을 경우에는 여러분들은 그게 장애가 돼버린다는 거라.
미간디야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 아버지 이름도 미간디야이고, 어머니 이름도 미간디야이고, 딸 이름도 미간디야입니다.
아주 아름답게 생겼거든.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이 미간디야라는 딸하고 결혼하려고 막 청혼을 하는데도 다 물리쳤는데, 부처님을 보고 이 부모님이 마음을 내서 “부처님! 제발 내 딸을 데려가서 내 사위가 되어주시오” 합니다.
부처님이 가당하기나 하겠어요? 요즘 말로 할 거 같으면 “내가 한참 수행할 때 당신 딸보다 훨씬 예쁜 마라들이 와서 나를 유혹하는 데도 그거 다 물리치고 내가 깨달음에 이르렀는데, 당신 딸이 내 눈에나 들어오겠습니까?” 요즘 말로 할 거 같으면 그렇게 얘기했겠죠.
그런 육체도 반드시 썩고 문드러지고 늙고 병들고 죽게 돼있는데, 내가 몇 십년 잘 살자고, 예뻐할 거라고 당신 딸하고 결혼할 수 있겠느냐 하고 얘기합니다.
그 소리에 이 미간디야의 엄마 아버지는 깜짝 놀래가지고 '아! 그렇지. 누구든지 늙고 병들고 죽게 돼 있지.' 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수행을 하게 되고, 그래서 어느 정도 수행의 과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똑같이 들었는데 미간디야는 오히려 증오심을 가집니다. '지가 뭐라고' 부처님한테 감히 부처님한테 '니가 잘나봐야 얼마나 잘났다고 나를 이렇게 무시하느냐, 내 같이 예쁜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느냐' 하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 비난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런데 미간디야는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왕하고 결혼하죠. 왕하고 결혼해가 아주 호화롭게 삽니다. 그런데도 결국은 그 미간디야 보다 먼저 결혼을 했던 왕비를 죽이는 그런 잘못까지도 저지릅니다. 독살하게 되죠. 아, 독살한 건 아니고 여러 번 그 왕비를 죽이려고 시도를 하게끔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한테도 여러 번 부처님을 모욕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또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하는 행위까지도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합니다. 그렇게 됐거든.
그런데 결국은 죽어서 지옥에 갔는데, 부처님이 아무리 법을 설하는 자리에 있어도 그 소리가 안 들어오는 거라. 나중에는 자기가 잘못을 깨닫고 '아! 내가 참 잘못했구나'하는 생각을 일으켰는데도 불구하고, 그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은 다 수행을 하고 또 어느 정도 과위에 이르렀는데, 미간디야만 안되는 거라. 결국에는 지옥에 가는 변고까지 당하게 되죠.
왜 그렇게 되느냐는 거라. 성인을 비방한 것 때문에! 앞서 수행하는 잘 나아가는 사람들을 비난한 죄 때문에, 그걸 참회할 줄 몰랐다는 거라. 잘못이 있으면 참회를 하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 용서를 하는 마음이 있어야 만이 수행의 마음이 돼나가는데 그걸 못했다는 거라. 그래서 아무리 내가 법을 들을려고 하더라도 그게 안 된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수행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내도록 해야 됩니다.
내고 수행을 할 때와 내지 않고 수행을 할 때는 마음의 차이가 많이 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른 시간에 또 수행을 하겠습니다.
*** 이 법문 글은 붓다의 길따라 선원장이신 아짠 빤냐와로(진용)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입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의 육성을 그대로 담고자 노력하면서 법문을 듣고 옮겨적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법문내용을 잘 담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제대로 전달이 안된 부분이 있다면 옮겨 적은 이(담마마-마까)의 불찰일 것입니다.
그럴 경우 부디 법문내용의 속뜻을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 모두 평온하길 _()()()_
'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 > 수행기초[초보수행반] 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수행과 업 (20090623) (0) | 2019.11.09 |
---|---|
3. 수행 개념정리, <사마타, 사마디, 에깍가따, 자나> 용어구분 (20090621) (0) | 2019.11.08 |
1.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수행하는 이유, 예비수행 네 가지 (20090609) (0) | 2019.11.06 |
경행(經行, 行禪) - 걸을 때의 수행[교재 내용] (0) | 2019.11.06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 초급 과정[교재 내용] (0) | 2019.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