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수행기초[초보수행반] 법문

22. 까시나 수행2. 사대요소에 대한 것

담마마-마까 2019. 12. 7. 13:41

https://youtu.be/esP2oROTAY4

 * 까시나 수행(사대요소에 대한 것) 2 (2009년 12월)

(사대요소로 선정수행하는 법을 사마타와 위빳사나수행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

 

오늘은 까시나 수행에 대한 걸 두 번째 시간으로 하겠습니다.

저번에 까시나 수행은 색깔에 대한 네 가지 부분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까시나는 열 가지라 그랬죠? 나머지 네 가지는 뭐냐 하면 지·수·화·풍 요소에 대한 것, 그다음에 빛에 관한 것, 한정된 공간에 대한 것, 그렇게 해가지고 열 가지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네 가지 요소에 대한 것들입니다.

먼저 사마디라고 하는 요소들을 조금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수행대상, 까시나에 대해서 좀 친숙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대상을 보든지 자기가 하고 있는 까시나, 만약에 흰 색깔에 대한 것이다, 집에 쟁반을 가지고 흰색깔을 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다른데 가서도 그 대상이 없더라도 흰 것들을 떠올린다든지 안 그러면 흰 것들을 보면 그걸 대상으로 해서 수행할 수 있도록, 마음을 이런 마음집중 할 수 있는 대상에 자꾸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라는 게 항상 일정하게 집중이 잘되면 좋은데 그렇질 않거든.

마음이 침체되고 이럴 때는 부처님 말씀을 자꾸 회상하든지, 그다음에 노력할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그래서 기쁨을 고무시킬 수 있는 것들을 자꾸 찾아야 됩니다.

그리고 너무 또 마음이 들떠버려도 안 되니까 들떠버릴 때는 평온하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 또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자꾸 집중할려고 하고, 그리고 평안한 것들을 자꾸 찾고,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들이 좋죠.

그래서 그런 것들로 균형을 맞추도록 하고. 마음이 좀 소심해져버리고 이럴 거 같으면 밝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공덕에 대해서 자꾸 떠올려서 그걸 자주자주 회상해줌으로 인해서 소심해져 있는 마음을 갖다가 밝게 만들어나가든지 하고.

이렇게 균형이 안 잡힐 때는 그런 방법을 하면 되고.

 

그래도 균형이 잘 잡혀져있다고 생각될 때 그때도 조심을 해야 됩니다.

그때도 이 수행을 지속적으로 계속 해나갈 것이다 하는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써 계속 유지시켜 줘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이 잘 맞춰져있는 마음도 어느 순간에 깨져버립니다. 지속적으로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로써 지속해나갈 것이다 하는 마음을 항상 염두에 두도록 해야 되고.

가장 또 중요한 거는 뭐냐 하면 주변에 수행 안 할려는 사람들은 되도록 가까이 하지 않는 것, 수행하려는 사람들을 자꾸 주변에 두도록 만들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띠하는 것! 대상에 마음을 자꾸 기울이고 그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것들로써 마음이 집중하는 것들을 자꾸 향상시키도록 해야 됩니다.

 

오늘은 그 열 가지 까시나의 두 번째 부분을 하겠습니다.

사십 가지 명상주제는 여러분들에게 몇 번 설명을 했듯이, 열 가지 까시나, 또 열 가지 몸에 대한 부정관, 또 열 가지 기억해야 될 대상, 그다음에 사무량심이라고 있죠! 사무량심이라는 것은 네 가지 성스러운 거주처라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네 가지 무색계의 상태에 대한 것들 그것에 대한 집중.

사실 이거는 이견이 좀 많이 있습니다. 사선정에서 무색계가 같이 포함돼있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기 때문에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네 가지 무색계 상태에 대한 것들, 그다음에 한 가지는 먹는 음식-음식의 혐오스러운 것에 대한 것, 또 한 가지는 물질-이 몸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분석, 이렇게 전체 해가지고 40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사십 가지 주제 중에서 열 가지 까시나 중에도 네 가지가 지수화풍 요소에 대한 집중이 있고, 그다음에 마지막에 한 가지 정의가 물질에 대한 사대요소에 대한 분석입니다. 사대요소에 대한 분별을 하는 것들이죠.

그래서 이게 중복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앞에 열 가지 까시나는 선정을 계발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선정까지를 계발하기 위한 것이고, 밑에 마지막에 한 가지 대상-물질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분석은 근접삼매를 계발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똑같은 물질에 대한 것들을 관찰하더라도 위빠사나 수행 쪽에 가까운 게 있고, 사마타 수행 쪽에 가까운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통상적으로 위빳사나 수행을 했기 때문에 사대요소에 대한 것들을 위빳사나 방법으로 관찰을 아마 해왔을 겁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사마타수행에 관한 것과, 위빳사나 수행에 관한 것, 네 가지 물질들에 관한 것들을 같이 아울러서 설명을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전에도 「대념처경」에서 말할 때 몸에 대해서 관찰할 때는 몸의 사대요소에 대해서 관찰하죠. 그거는 위빳사나 수행방법입니다.

또 「상적유경」 같은 경전에 보더라도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것, 이 오온을 사대요소로써 분석하는 것들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것도 위빳사나 수행방법입니다. 그다음 「육정경」이라고 하는 것들 여섯 가지 요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꼭 하나가 뭐냐면 이 사대요소 분별관을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써 관찰을 해나갈 때는 사마타 수행방법이 됩니다.

 

그런데 경전에는 보통 사대요소에 대한 것들은 선정적인 측면보다는 위빳사나 수행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대상에 오로지 집중해가지고 선정삼매를 계발하는 것보다는, 사대요소의 변화되는 성질, 무상한 성질, 무아에 대한 성질, 그리고 소멸하는 성질, 변하는 성질, 이런 것들을 지혜로써 알고자 하는 것에 중점 돼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사대요소는 되도록이면 위빳사나 수행방법으로 하는 것이 많습니다. 또 사대요소에 대한 관찰을 하더라도 사선정까지 가지 않고 근접삼매만 계발되고 나면 바로 위빳사나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들을 대부분 수행스승들이 가르칩니다.

 

어쨌든 이 사대요소, 사대분별을 하는 목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집중하기 위한, 집중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고,

또 하나는 위빳사나 수행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분들은 누구든지 이 사대요소에 대한 것들을 관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 그러면 먼저 사마타 수행에서 열 가지 까시나의 네 가지 부분에 대한 것을 간단하게 얘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바람의 요소라는 것입니다.

사대요소는 지수화풍이죠! 그 4가지 요소인데, 먼저 바람의 요소는 누르는 힘을 예를 들겠습니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그 호흡을 관찰하는 것으로써 누르는 힘들, 바람의 요소를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호흡을 들이쉬면 들이쉬는 것으로 인해서 머리 정수리까지 호흡이 간다고 생각을 해서 그것을 쫓아가서 머리 정수리에 집중을 해보면 머리에서 떨림이 있습니다. 진동을 느낍니다.

그 진동은 이 바람의 요소 중에서 누르는 힘의 요소이다 하고 알아차립니다. 머리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퍼져나가면서 장기들 근육들 이런 것에도 다 바람의 요소가 미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코끝에서 떨리는 것들을 관찰하는 것이 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얼굴 전체에서 그런 파동들을 느끼게 하고 조금 있으면 이 가슴까지 나중에는 이 신체 전체로 점점점 넓혀가게 됩니다. 그 떨리는 요소들을 보면서 '아! 이것이 누르는 힘이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것을 '누르는 힘이다' 하고 관찰을 해나가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땅의 요소 중에서, 만약에 단단함의 요소를 관찰하려면 이빨을 스윽 부딪쳐보면 압니다. 이빨은 굉장히 단단합니다. 그래서 이빨이 탁탁탁탁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그 단단함을 기억해냈다가 그 단단함이 턱의 근육의 단단한 감각을 느끼고, 그것도 다른 단단한 근육 단단한 요소들을 갖다가 얼굴 전체로 넓혀가고 그다음에 몸 전체로 넓혀가고, 그렇게 단단함이라는 명칭에 온몸 전체로 퍼져나가도록 그렇게 하는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요소는 단단함이 있으면 좀 물렁함이 있습니다. 물렁한 것은 혀로써 잇몸, 윗니의 뒤쪽을 살짝살짝 대보면 꺼슬꺼슬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것이 '물렁함의 요소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그걸 얼굴 전체로 해서 몸 전체로 쭉 넓혀가는 그런 것들, 그 느낌을 넓혀가는 그런 것들입니다.

 

부드러움 같은 경우에는 이빨로써 아랫입술을 잘금잘금 깨물어보면 아주 부드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이 느낌을 기억했다가 이 느낌을 '부드러움' '부드러움' 하면서 입에서 얼굴 전체로 그다음에 몸 전체로 넓혀가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매끄럽다는 걸 느낄 때는 그 아랫입술을 갖다가 침을 묻혀서 살살살살 혀로써 굴려보면 아주 매끄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그 매끄러운 느낌들을 몸 전체로 넓혀가는 것들입니다.

 

다음에 가벼움의 요소 같은 경우에는 손가락 같은 걸 살큼 들어보면 아주 가벼운 느낌이 있습니다. 이 손가락의 가벼운 느낌을 잘 기억해놨다가 그것을 몸 전체로 넓혀가는 것들이 있고.

 

그다음에 뜨거움 같은 경우에는 손바닥에 다른 손 손등을 요렇게 대보면 뜨거운 느낌이 탁 듭니다.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느낌이 있죠. 그 뜨거운 느낌을 기억해놨다가 손바닥에서 몸 전체로 넓혀가는 것들입니다. (불의 요소)

 

차가움 같은 경우는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숨을 들이쉴 때 들이쉬는 숨이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걸 기억했다가 얼굴 전체로 몸 전체로 넓혀가는 방법. 그런 것들의 방법을 씁니다. (불의 요소)

 

그다음에 지탱하는 것들은 가만히 멈춰서 있을 때 몸을 지탱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그걸 쉽게 발견할 때는 졸음이 올 때! 졸음이 올 때는 몸이 구부정해지는데 그 몸을 지탱할려고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걸 탁 기억해놨다가 그것을 몸 전체로 넓혀가는 그런 것들입니다. (바람의 요소)

 

그다음에 물의 요소 같은 경우에는, 응집성 같은 경우에는 팔을 손으로 탁 잡아보면 단단한 느낌 말고 탁 잡히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걸 손으로 살짝 풀어보면 싹 풀리는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이 감각을 기억해서 '아! 압박받는 느낌이구나.' '압박감' '압박감' 하면서 알아차리면서 몸 전체로서 넓혀가는 그런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물의 요소에는 흐르는 요소도 있습니다. 흐르는 요소 같은 경우에는 특히 겨울철 같은 때 콧물이 흐른다든지, 따가운 것들이 있어서 눈물이 흐른다든지 이것들을 기억해서 이 느낌들을 몸 전체로 넓혀가는 그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를 대상으로 해서, 어떤 것 하나이든 괜찮습니다. 그것을 집중적으로 그것만 관찰을 하는 경우들입니다.

예를 들면 뜨거움의 요소를 관찰한다. 그러면 뜨거움의 요소를 관찰하고 나서 그것이 몸 전체로 퍼져가지고 그 뜨거움이 온몸 전체에 가득 차게끔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 뜨거움은 뜨거움의 강도도 변할 뿐 아니라 뜨거움이라는 것들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도 변해갑니다.

변해가더라도 그 변해가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뜨거움이라는 요소, 그 개념, 개념에다가만 집중하게끔 하는 거라. 그러면 그 뜨거움은 한 시간 동안 계속 하더라도 실제로 뜨거운 것이 아니고 뜨거움이라는 개념에 마음이 완전하게 밀착을 해버리게 되는 거라.

 

그럴 것 같으면 뜨거움이 변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그리고 또 색깔이나 이런 것들로써 변형되는 것도 없이 오로지 뜨거움이라는 요소에 집중하면서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아버리게 되는 거라. 그 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해나가는 방법이 사마타 수행방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집중력이 점점 더 좋아지게 되고 그로인해서 일어나는 니밋따(nimitta, 표상) 라고 하는 것들이 보이게끔 되더라도 그 니밋따라는 것에 마음이 향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집중하고 있는 대상, 뜨거움이면 뜨거움, 가벼움이면 가벼움 이런 데 그대로 집중해서 그 뜨겁고 가볍고 하는 요소들이 변함없이 오롯이 하나가 돼서, 마음이 고요하게 거기에 탁 가라앉게 될 때까지 쭉 해나가면 됩니다.

 

그래서 그 대상 자체가 실제로 뜨겁고 가볍고 차가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다이아몬드 같이 가만히 뜨거운 요소가 빛나는 상태, 움직이지도 않고 빛나는 상태가 될 때까지 집중을 해나가도록 그렇게 해나가면 선정삼매의 초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삼매에 들어가기 위한 근접삼매에 도달하게끔 됩니다. 그 상태가 될 때까지 오로지 그것만 대상으로 하게끔 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대상이 변하지 않고 집중이 잘되면 당연히 기쁨이 일어나게 되는 거고 기쁨의 요소도 관찰대상이 됐다가 그 기쁨의 요소가 완전하게 알아차려지고 나면 마음이 고요하게 다시 가라앉습니다. 그평온해지고 하는 상태까지 도달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선정을 일선정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까지 올라가게끔 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오로지 그 대상, 근접삼매에 이를 때까지는 그 수행주제만 대상으로 하는 경우를 얘기합니다.

이게 인제 사마타 수행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위빳사나 수행방법으로 전환할 경우에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띠 하는 것을 보통 호흡으로 시작을 합니다. 호흡은 항상 되풀이돼서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호흡을 주대상으로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지속되는 게 호흡입니다. 이게 신체적인 현상인데 마음이 어떤 다른 데로 벗어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 호흡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호흡은 누구에게든지 적용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리고 또 이 호흡은 위빳사나 수행대상으로써 적합한 것이 뭐냐 하면 변화하거든. 호흡은! 들이쉬고 나면 내쉬게 돼있고 변화하게 돼있고 움직이게 돼있다는 거라. 숨을 계속해서 들이쉬고 내쉬고를 해줘야 된다는 거라.

 

위빳사나 수행대상은 먼저 변화하는 것들을 관찰해줘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 이 호흡이라는 거라. 그래서 들이쉬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쉬는 것을 알아차리는 방법으로써 씁니다.

그래서 숨을 들이쉴 때 호흡을 한번 가만히 지켜보십시오. 호흡이 와 닿는 곳이 있습니다. 코끝에서 와 닿았다가 그다음에 콧구멍 안으로 들어가서 가슴을 통해서 와 닿고 배에서 와 닿고, 그다음에 내쉴 때는 배를 통과해서 가슴을 통과해서 코끝을 통과해서 나오고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숨을 들이쉴 때 쭉 그렇게 와 닿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쉴 때 와 닿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리는 호흡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되도록 하는 상태에서 마음은 아무리 집중할려고 해도 그 숨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걸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마음은 한곳에 머물려고 합니다. 코끝을 통해서 가슴을 통해서 배까지, 다시 배에서 가슴을 통해서 코끝을 나오는 이 과정을 갖다가 따라갈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마음이!

? 자연스럽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에 마음이 그마만큼 빨리 움직여주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보통 보면 호흡을 어느 정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면 마음은 반드시 하나의 점에 머물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호흡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의 관심이 오직 하나의 대상에 딱 머무르게 됩니다. 그게 어디냐면 코끝이든지 배의 한점이든지 이렇게 머무르게 됩니다.

요때에 만이 위빳사나 수행을 하게끔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앞에 그네가 이렇게 왔다갔다 왔다갔다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고 목에 기브스를 하고 있는 사람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습니다. 눈동자도 돌릴 수가 없고. 그럼 어떻게 해요? 그네를 보는 것은 그네가 이리 갔다가 요리 와서 여기에 딱 멈출 때 그때 하나만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요리 갔다가 요리 올 때 딱 하나 볼 수가 있고, 그와 같이 되게 됩니다.

하나의 대상에 마음이 집중하고 있지만은 실제로는 이 대상은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거라. 이게 인제 위빳사나 수행방법이고.

 

사마타 수행방법은 이 대상을 갖다가 움직이는 대상 전체를 뭉뚱그려가지고 요걸 전체로 봐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실제로 그네가 움직이고 있고 하는 것은 전혀 관심사항 밖입니다. 쉽게 말하면 여기서 움직임이 있으면 '움직임'이라는 명칭 하나만 딱 붙잡고 있는 거라. 그게 인제 사마타 수행방법입니다.

 

그걸 갖다가 이 하나의 대상, 눈앞에 보이는 대상 하나에서 그네가 좀 더 넓은 데로 넓혀가고 그다음에 더 넓은 데로 넓혀가고 전체로 넓혀가고 이런 방법으로 하는 게 사마타 수행방법인데 반해서,

위빳사나 수행방법은 그네 전체! 그런데 그네 전체를 갖다가 대상으로 하지 않고 하나의 점에 딱 대상으로 하면 실제로는 그네 전체가 왔다갔다하는 것들을 전체를 파악하게 되거든. 이 방법을 씁니다.

 

그러니까 위빳사나 수행방법을 할 경우에는 마음이 돌아다니지 않게끔 해야 됩니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끔 하는데 실제로는 변화되는 현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변화되는 성품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마음이 그렇게 집중하고 있으면 그 대상이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호흡은 점점 더 가늘어지고 그 움직임을 거의 알아차릴 수 없게끔 됩니다.

그래서 그 호흡에서 느끼는 것은 오로지 집중하고 있는 자리에서는 일어나는 느낌밖에는 없습니다. 코끝을 통해서 들이쉬는 느낌 내쉬는 느낌 이것만 알게 됩니다. 코끝에서 스치는 느낌만 알게끔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호흡은 실제로는 아주 미세해지고 가늘어졌지만 느낌은 점점 더 강해집니다. 들이쉬는 느낌과 내쉬는 느낌을 오히려 분명하게 더 알아차리게 됩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서 호흡의 느낌의 변화를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호흡도 일정하게 쉬던 것이 집중을 하므로 인해서 호흡이 변합니다. 가늘어지고 약해집니다. 그에 따라서 느낌도 점점 더 강해지든지 아니면 집중력이 없으면 느낌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느낌이 점점 더 사라져 버립니다. 이렇게 느낌도 변해갑니다. 호흡도 변하고 느낌도 변한다는 사실을 탁 내가 알아차리는 거라.

아! 이것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호흡이구나. 일 분 전에 들이쉬고 내쉬는 실재적인 호흡하고 일 분 후에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은 이렇게 달라졌구나. 그것을 알아차리는 느낌도 일 분 전과 일 분 후의 느낌이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고 분명하게 아는 거라. 그렇게 인식하는 이걸 갖다가 상카라(saṅkhāra) 라고 그럽니다.

 

그 상카라도 일 분 전에 상카라하고 일 분 후에 상카라하고 또 다르구나. 변화되고 있구나 하고 인식을 하게끔 됩니다.

그것에 마음을 자꾸 실을려고 하는 의도도 일 분 전에 의도와 일 분 후에 의도도 달라졌구나 하는 것을 알게끔 됩니다.

호흡도 변하고 느낌도 변하고 그러한 인식도 변하고 그러한 생각도 변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아는 인식하는 것도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호흡을 시작함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방법이 위빳사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위빳사나 방법 중에 사대요소를 관찰 할 경우,

호흡이 들이쉬는 호흡에 촉촉한 느낌을 감지합니다. 그래서 시원한 느낌을 감지하죠. 그리고 내쉬는 호흡에서 따뜻한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시원하고 따뜻한 느낌은 불의 요소다 하고 알아차리는 거고,

호흡에서 들이쉴 때 촉촉하고 내쉴 때 건조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물의 요소를 알아차리는 거고,

그리고 호흡을 할 때 들이쉴 때 팽창하는 느낌을 알아차리고 내쉴 때 수축하는 느낌을 알아차리면 이거는 흙의 요소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것은 이것은 바람의 요소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호흡에 사띠를 하게 되면 사대요소의 대상뿐 아니라 오온 전체를 알아차릴 수가 있다는 겁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이것이 몸의 현상이다(色), 이것이 느낌의 현상이다(受), 이것이 생각의 현상이다(想), 이것이 의도의 현상이다(行), 이것이 인식의 현상이다(識), 하는 오온을 갖다가 그 호흡 자체에서 알아차린다는 겁니다.

오온 뿐 아니라 사대요소에 대해서 알아차리게 되고, 사대요소를 오온으로써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렇게 호흡을 알아차려나가면 호흡이 딱 자기의 하나의 포인트 거기에서 고요하고 시원한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변화되고 있는데도!

그래서 이 코끝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주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코 전체로 퍼져나가고, 얼굴 전체로 퍼져나가고, 그리고 머리 전체로 퍼져나가고, 몸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그래서 미세한 떨림까지도 경험합니다. 사마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위빳사나수행으로도 충분히 경험합니다.

 

여러분들 수행 잘될 때 어떤 현상들이 있습니까? 아주 맑고 깨끗하죠. 그리고 어떨 때는 몸이 떨리기도 하고 그런 상태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몸 전체의 수축과 팽창하는 것들을 전체를 다 경험하게끔 됩니다.

 

그런데 사마타 수행에서 경험하는 것하고 위빳사나 수행에서 경험하는 것은 차이가 납니다.

사마타 수행에서는 오로지 그 대상자체를 명확하게 집중함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써 알아차리는 건데,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변화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라는 거라. 그런 차이가 납니다.

 

실제 변화되는 현상들을 '아! 이렇게 변화되는구나' 하고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들로써 연결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알아차리면 '모든 것은 변화된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없구나' 하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모든 것들, 몸에서 일어나는 호흡이라는 것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느낌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생각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그런 인식하는 것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의식하는 것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변화되는 것이구나, 변화의 연속이지 그 어떤 것도 아니다 하고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마음이 아주 기쁨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렇게 기쁨에 휩싸이더라도 그러한 현상을 뚜렷하게 자꾸 알아차려나가면 몸도 마음도 고요하고 편안해집니다. 평온하게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몸이 불덩어리 같고 하던 것들이 점점 더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더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들이 강하게 일어나집니다. 그래서 평화로움을 오히려 더 알게끔 됩니다. 일시적으로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하는 것을 탁 얻게끔 되는 거라. 그것이 뭐냐면 일선정입니다.

 

그때는 세상 모든 평화롭고 행복한 것보다도 더 좋아. 사띠를 계속적으로 이어가게끔 됩니다. 대상이 바뀌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일선정이 더욱더 계속해나가면 계속해서 변하는 경험을 주목하게 됩니다. 사띠하게끔 됩니다. 계속 사띠를 하므로 인해서 그다음에는 이선정 삼선정으로 쭉 넘어가지게 됩니다.

 

사선정까지 갈 때까지 사띠, 그러니까 대상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 대상이 있습니다. 그 행복감이 대상이 되고, 그다음에 고요한 상태가 대상이 되고, 고요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느낌도 일어나고 사라지게 돼있고, 의식도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는데 단지, 기쁜 상태에서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행복한 상태에서 알아차리는 것, 고요한 상태에서 알아차리는 것, 이런 것만 차이가 나는 것뿐이라는 거라.

 

사람들은 그걸 자꾸 착각을 하는 거라. '일선정, 이선정에 들면 의식조차 안 하게 된다' 하는데 그것은, 의식을 안 하는 상태가 된 것은 이미 바왕가에 떨어져 버린 상태라는 거라. 대상을 놓쳐버리게 되었을 때 바왕가에 떨어져 버립니다.

선정이 있더라도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은 항상 일어나게끔 돼있다는 거라. 그게 인제 위빳사나 수행방법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마음이 평온해지고 평등한 상태, 그러니까 몸을 알아차리는 것뿐 아니라, 말을 할 때는 말을 알아차리는 것, 그다음에 생각하는 것까지도 전체를 다 평등한 상태를 가지게 되고, 그것을 알아차려나가게 되고, 점점 더 마음은 대상에 몰입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일선정까지 가는 방법을 사마타수행으로 하는 방법과 위빳사나 수행으로 하는 방법 두 가지로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마타 수행을 하더라도 사성제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일선정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위빳사나 수행방법으로 전환을 합니다. 위빳사나 수행방법으로 했을 경우에는 계속해서 해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사마타 수행을 일선정에서 위빳사나로 전환하는 경우와 사선정에서 위빳사나로 전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선정 삼선정에서 전환하는 경우도 있죠. 그 차이점은 뭐냐면 깨달음의 과위를 얻는데 시간의 차이가 납니다. 사선정에서 위빳사나로 전환을 했을 경우에는 빠릅니다. 그런데 일선정에서 했을 경우에는 아직 명확하지 않고, 선정을 자유롭게 자유자재로 조절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더디게 나간다는 거라.

그래서 사마타 수행하는 사람은 일선정이 되버렸으면 위빳사나로 뛰어들지 않고 사선정까지 계속 계발합니다. 사선정까지를 자유자재로 하게 되면 위빳사나로 전환하게 되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입니다. 그렇지 않고 일선정에서 바로 위빳사나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는 그런 차이가 나는 것뿐입니다.

 

어쨌든 선정을 일선정을 계발하든 사선정까지를 마음대로 계발하든 간에 어떤 경우든지 위빳사나로 전환을 해야 만이 사성제를 이해하고 사성제에 대해서 통찰하게끔 됩니다.

이렇게 할 경우에 사마타 수행을 하든 위빳사나 수행을 하든 바른 선정을 얻게 됩니다. 근접삼매도 바른 선정입니다. 근접삼매가 연속해 나갈 때는 그것은 일선정과 사선정의 차이가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바른 선정이라 하고, 바른 선정을 얻었을 때는 항상 행복감이 있게끔 됩니다.

 

행복감이 있으니까 어떻게 돼요? 항상 사띠할려고 하고, 남을 배려할려고 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다음에 연민심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불선한 생각들 그런 생각들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딱까(vitakka)가 있더라도 꾸살라위딱까인 것이지 아꾸살라위딱까는 일어나지지를 않는 거라.

 

그래서 경에서는 뭐라고 해놔요? 불선한 생각, 의도들을 제거해야 만이 선정에 든다. 내가 제거할려고 해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한 생각들 선한 마음들을 계속적으로 일으키기 때문에 불선한 생각들, 의도들을 일으키지 않게끔 된다는 거라. 자연스럽게 제거가 돼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위딱까도 마찬가지고 위짜라(vicāra)도 마찬가지고. 그런 식으로 꾸살라위짜라가 되는 것이지 아꾸살라가 되지를 않는 거라.

 

이렇게 해서 계속적으로 해나가다 보면 인제는 수다원으로 들어가게끔 됩니다.

수다원은 뭐라고 그랬습니까?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이 방법으로 인해서 깨달음에 이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거라. 왜? 이미 불선한 것들이 제거가 된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수행을 해나가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의심이라고 하는 불선한 마음을 일으키질 못하게 되는 거라. 그리고 다른 나쁜 견해를 가질 여력이 없어져버리는 거라. 그리고 이 수행 말고 다른 것으로 인해서 깨달음에 이른다 아니면 다른 방법을 해보겠다 하는 그런 생각조차도 일으키를 않는 거라.

? 지속적으로 사띠와 사마디가 계속적으로 계발돼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단지 선정에 들어가서 수다원에 들어가는 데까지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습니다.

한량없이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고, 어쩌면 이생에서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거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거는 선근공덕의 차이니까!서 여러분들이 과거전생에 선근공덕을 많이 지어놨기를 바라는 수밖에는 없는 거라.

 

그래서 관념적인 것들을 버려버리고 실재적인 것들을 지속적으로 사띠사마디를 하면서 수다원에 들게 되고, 수다원에서 점점 더 확신을 가지고 더욱더 닦아나가면서 사다함에 들게 되고, 사다함에서 더욱더 나아가면서 아나함에 들면서 인제는 화를 내고 하는 것들, 감각적인 욕망을 가지는 것들까지도 버려버리는 상태에 들게 되고, 그래서 그런 상태가 또 지속되고 나면 인제는 나머지 '아! 내가 색계에 태어나고 싶다, 무색계 선정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까지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착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나함까지는 그런 착각을 합니다.

무색계 선정이라고 할 거 같으면 무슨 형태도 없이 아무 그냥 빛도 없이 이렇게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데 그거는 아니라는 거라.

감각적인 욕망을 버려버리는 상태가 색계의 상태가 되는 거고, 감각적인 욕망뿐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 대한 것까지도 버려버리는 상태, 이 상태가 무색계 선정을 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일선정부터 사선정까지를 하면서, 사실은 색계 무색계까지를 다 겸해서 하게끔 됩니다. 사선정까지 가면 이미 사무색계 선정을 닦아나가게끔 됩니다. 자동적으로 되기 때문에 사실은 사선정 안에 사무색계 선정을 포함을 시키는 경우입니다. 스님 입장에서는 따로 두지 않고!

 

그러다가 아라한에 이르러서 완전하게 그런 번뇌들이 일어날 자리를 두지 않게끔 되는 상태가 됩니다.

이게 인제 성인의 도()에 드는 건데 대상은 항상 있죠! 사띠 할 대상은 아라한이라도 있게 되는 거고, 아나함이라도 있게 되는 거고, 그리고 선정에 들어도 있게 돼있는 겁니다. 그걸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자! 시간이 다 되었는데 이것이 인제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사마타수행과 위빳사나 수행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방법으로 수행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선택을 하면 됩니다. 단! 두 개가 나중에 만나야 됩니다.

그래서 사띠라고 할 때는 '사띠사마디'가 되는 것이고, 사마디라 하더라도 사띠 없이 사마디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상 없이 사마디가 있을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대상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띠하게끔 된다는 겁니다.

이해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