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수행기초[초보수행반] 법문

21. 까시나 수행1. 네 가지 색깔에 대한 것 (20091202)

담마마-마까 2019. 12. 6. 13:40

https://youtu.be/-c9Hh-lsc4U

* 까시나 수행(네 가지 색깔에 대한 것) 1 (20091202)

 

지난 시간에 아라한 부분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인제 아라한에 대한 것은 정립이 됐죠? 성문연각과 아라한 보살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이해가 됐을 거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바라밀의 차이로 인한 것이지 수행의 과위에서의 차이는 없다 하는 부분이었고, 보살을 행하게 되는 시기는 언제라고 그랬어요? "상카루뻭카냐나든지 테라담마 10가지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됐다고 판단이 될 때 바라밀을 행하라." 그전에 하는 것은? "스스로의 공덕행을 쌓는 것들이다" 하고 얘기했습니다.

공덕행을 쌓는 방법들은 여러 가지죠. 바라밀을 실천하는 것들도 공덕행을 쌓는 것이고, 계·정·혜 삼학을 지키고 닦는 것들도 공덕행을 쌓는 것이고, 보시 지계라고 하는 것들도 꼭 마찬가지고 그런 것들에 해당이 됩니다. 그렇게들 정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사마타 수행 중에 10가지 까시나에 대한 얘기를 이번 시간부터 한 두세 시간에 걸쳐서 나눠서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전에 무명(無明)과 무지(無知)의 차이점에 대해서 한번 누가 얘기해 봐요. 어떤 차이점이 있어요? (대답) 이렇게 보면 됩니다.

무명을 아윗자(avijjā)라고 그러죠. 무지를 모하(moha)라고 그렇게 빨리어로 얘기합니다.

물결을 만드는 것을 무명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물결 중에 포함이 되는 것, 그중에 하나가 무지라고 보면 됩니다.

그 물결은 탐·진·치 이런 것이 포함이 되는 거죠. 그 물결 중에 하나가 무지라고 보면 됩니다. 그 물결을 만드는 것은 무명이라는 거라.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됩니다. 그 물결은 탐·진·치의 물결입니다.

 

그 탐·진·치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집니까?

물결을 잠재우기는 쉽죠! 물결이 이렇게 일면 어떻게 해요? 그 물결을 고요하게 탁 뭐로 막아버리든지 할 거 같으면 물결은 잠잠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화가 일어난다. 참아버리면 화가 일어나는 걸 잠재울 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게 어리석음이 포함된 것들입니다. 탐·진·치! 그렇게 조정이 가능한데, 이놈의 무명이라는 것은 물결을 만드는 것이 무명이라고 했으니까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 여러분들이 어떻게 알아?

 

어떻게 그러면 무명을 없애야 되겠어요?

무명을 없애야 뭔가 윤회의 고리를 끊든지 할 건데 어떻게 없애야 돼? 어떻게 없애야 될까? 무명의 반댓말이 뭡니까? 지혜지! 지혜롭게 되면 무명은 내가 없애려고 해서 없애지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없어져 버리는 거라. 내가 지혜롭게 되면 어리석지 않게 되는 거고, 지혜롭게 되면 화도 안 내게 되는 거고, 지혜롭게 되면 집착하는 것들도 없어지는 거고, 욕심부리는 것도 없어지는 거고.

 

그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뭐겠느냐는 거라.

그걸 알면 적어도 무명을 이해하고 무명을 없앨 수가 있을 거 아니라. 그렇죠! 그게 인제 집착입니다. 집착!

보통 보면 우리가 탐·진·치가 일어나는 것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들 때문에 탐·진·치라고 하는 물결이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집착하는 것들이 없으면 당연히 지혜롭게 되기 때문에 무명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라.

 

여기 앞에 있는 이 불상, 우리는 이 불상을 보고 부처님이라고 인식을 합니다. 그런데 새가 날아와서 이 불상을 볼 때는 어떻게 볼까? 새의 눈에 접하는 정보는 어떻게 보여질까? 우리가 보는 정보하고 새가 보는 정보는 똑같은 정보입니다. 이 불상이라는 정보 자체가 다른 게 아닙니다. 그런데 분명히 달리 보거든. 그래서 이것을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아! 저게 불상이다' 하고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상한 성품으로 봐야 되는 거라. 무상한 성품으로! 어떤 것들도 조건지워진 것이기 때문에 조건지워진 것들은 변화하는 무상한 것이다 라고 봐야 만이 이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다는 거라. 그게 탐·진·치를 벗어나는 길이라는 거라. 그게 지혜롭게 돼서 무명의 고리를 갖다가 끊어버리는 것이다 하는 거라.

이제 무명과 무지는 이해가 좀 됩니까? 얼마 전에 누가 와서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때 간단하게 얘기해 줬던 것들인데 혹시 여러분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 모를까봐 얘기를 좀 했습니다.

 

오늘은 수행 중에 10가지 까시나 부분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얘기를 해줄께요.

사리불 존자의 제자가 사리불에게 와서 수행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 수행주제가 죽음에 대해서 자꾸 생각을 하라 하는 것이었어요. '누구든지 죽게 돼있고 죽음이 언제 나에게 닥칠지 모른다.'라는 그런 경각심을 일으켜서 그것으로 인해서 수행을 해나가는 방법입니다. 그걸 배웠는데 숲속에 들어가서 세 달 동안 수행하고 와도 진척이 없거든. 그래서 사리불 존자한테 와서 물어봅니다. “아! 진척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스승일 거 같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열심히 해라. 더 열심히 해라. 열심히 하다 보면 된다. 사띠를 항상 가지도록 하고 더욱더 열심히 정진하라.” 사리불 존자가 얘기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더 있겠어? 그렇게 다시 또 보냈어. 또 삼개월 동안 했는데도 진척이 없거든. 또 왔어. 또 물어보는데 사리불 존자는 또 똑같이 대답해. 그렇게 세 번이나 했는데도 진척이 없는 거라. 그래가지고 세 번째가 지나고 나서 제자가 왔는데 사리불 존자가 가만히 보니까 아, 이거는 아닌 것 같거든.

 

아수바, 시체를 보는 수행을 했는데, 시체는 어떻게 됩니까? 시체는 보통 죽고 나면, 호흡이 끊어지고 나면 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리죠. 식어버리고 차가워지고 뼈에 가죽이 자꾸 달라붙으면서 진물이 나오게 되고, 그렇게 수분이 증발해감으로 인해서 몸에 가죽에 색깔이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멍든 것처럼 자꾸 변해나가고 그래서 아주 보기가 흉해집니다. 그런 과정도 다 지나고 나면 뼈에다 가죽만 딱 달라붙게끔 됩니다.

그러면서 부패하면서 각각의 구더기들이 생겨나고 구더기들이 결국은 이 가죽까지 다 먹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중에 남는 거는 뼈만 남는다는 거라. 뼈만 남으면 어떻게 돼요? 밖에 버려져 있으면 발에 채이기도 하고 짐승이 물어가기도 하고, 그래서 팔뼈는 저쪽에 뒹굴고 머리뼈는 요쪽에 뒹굴고 그러다 그게 부서지고 그래서 결국에는 가루만 남게 되고 다 날려가지고 하나도 형체가 없게 됩니다. 그걸 수행하는 것이 '아수바 바와나' 거든. 근데 그걸 해봤는데도 진척이 없었다는 거라.

 

사리불 존자가 가만히 생각을 해봅니다. 과거를 보는 능력은 나는 없다. 제자의 과거를 보는 능력은. 적어도 이 제자가 과거에 뭘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라. 습관되어져 온 것들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수행주제를 가르쳐주더라도 그게 안 맞을 수가 있다는 거라.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사리불 존자가 이 제자를 데리고 부처님한테 가는 거라.

“부처님! 이렇게 이렇게 지도를 해줬는데 도저히 안 됩니다.” 부처님이 가만히 보니까 그 제자는 그 수행주제를 해가지고는 안 되거든. 제자를 놔두고 가라 그럽니다. 그래서 그 제자에게 새로운 수행주제를 줍니다.

 

그 수행주제가 뭐냐면 오늘 여러분들한테 얘기하려고 하는 열 가지 까시나 중에 하납니다. 이 제자에게는 붉은색의 연꽃을 하나의 수행주제로 줍니다.

 

색깔에 대한 것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흰색, 붉은색, 노란색, 그다음에 스님이 입고 있는 이 갈색, 이 네 가지 색입니다.

가끔씩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스님! 청색을 하면 안 됩니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게 만약에 보라색이다 그러면 그 보라색을 하면 안 됩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까시나 색깔에 대한 수행은 네 가지로써 정해놓았습니다. 그래서 네 가지로 한정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라색을 해서 안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은 어차피 색깔은 똑같은 형태들을 나중에 띄게끔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이 네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 하고 판단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붉은색에 해당이 되는 게 뭐가 있겠어요? 부처님은 이 제자의 습성을 보고 연꽃을 보여줍니다. 붉은 연꽃! 색깔이 붉고 예쁘니까 혹하고 마음을 거기에 기울이기가 쉽거든. 붉은 연꽃 보여주고, 흰 연꽃 보여주고, 노란 연꽃 보여주고 이런 식으로 연꽃을 주제로 하게끔 하거든.

금세공사의 몸으로 과거 생을 살아갔던 분은 이렇게 색깔에 대해서 아주 예민하다는 거라. 아주 빨리 반응을 하는 거라. 금은 노란색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원색적인 것들에 아주 집착하는 경향들이 있다는 거라. 그렇게 해서 색깔을 가지고 집중을 하게끔 합니다. 당연히 집중이 잘되겠지.

 

그런데 그 색깔을 가지고 집중을 한다 해서 그것만 무조건 바라보라는 것은 아닙니다. 집중할 때의 방법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얘기했던 방법입니다.

 

색깔을 바라볼 때 주의해야 될 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에 연꽃을 놔놓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붉은색을 띄는 쟁반, 아니면 흰색 쟁반이라든지 노란색 쟁반을 놔놓고 수행주제로써 삼아야 됩니다. 수행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이 색깔에 마음을 오롯하게 집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색깔이 눈에 꽉 들어찬다는 느낌이 들 때, 그때 이 색깔이 점점 퍼져나가는 형태들을 띄게 됩니다.

 

여기서 사람마다 차이가 납니다. 색깔이 퍼져나갈 때 빨리 퍼져나가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고 거의 퍼져나가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한번 판단들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어떤 차이냐 하면 바라밀의 차이입니다. 내가 얼마만큼 많은 선근공덕을 쌓았느냐? 선근공덕들을 안 쌓은 사람들은 이게 퍼져나가는 것이 더뎌! 지금 생애서만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근 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은 이것이 눈에 꽉 들어차가지고 완전하게 희게 되고 나서는 그다음에는 이게 퍼져나가. 안 퍼져 나갈 수가 없어. 어떤 것이든 차면 넘쳐나게끔 돼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수행을 해보고 나서 아! 내가 바라밀이 부족하구나 하면 조금 더 선근공덕을 자꾸 쌓을려고 노력들을 해야 되는 거고.

 

그래서 자꾸 사방으로 퍼져나가거든. 눈에 이것이 꽉 들어찰 때는 그런 행복감을 잘 못 느낍니다. 그런데 이게 퍼져나갈 때는 마음에서 굉장히 행복감을 느낍니다. 보통 보면 행복감을 느껴야만이, 여러분들도 수행을 해서 기뻐야만이 수행주제에 더욱더 달라붙습니다. 더욱더 수행을 할려고 한다는 거라.

그런데 그게 없으면 어떻게 돼요? 보통 대상을 놓쳐버린다는 거라. 놓쳐버리고 딴 대상을 찾는다든지 안 그러면 아예 무기에 빠져버린다든지 이렇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게 그렇게 차이가 납니다. 퍼져나가는 것이 더뎌버린다든지, 아니면 퍼져나가는 것이 없는 사람은 흰색을 대상으로 꽉 들어찼던 것들을 놓쳐버린다는 거라. 분명히 마음이 산란하지도 않고 대상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도 뚜렷하게 흰 색깔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거라.

 

그게 뭐냐면 바왕가에 빠져버린 거라. 대상 자체를 놓쳐버리는 거라.

보통 여기서 착각을 하는 거라. 바왕가에 빠져버리면 아주 고요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거든. 인식할 대상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거라. 오! 내가 삼매에 빠진 거 아닌가? 그런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떤 경우든 사선까지는 분명하게 대상을 인식하게끔 됩니다. 인식하는 대상이 없으면 그것은 바왕가에 빠져버린 거라.

그래서 여기서 조심을 해야 됩니다. 퍼져나가는 것이 있음으로 인해서 행복감을 느껴야만이 대상에 더욱더 달라붙는다는 거라.

 

이 주제를 주고 보니까 당연히 이 제자는 붉은색 흰색 노란색 이런 것에 대해서 금방 반응을 하게 되고 거기 대상에 밀착하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그 대상이 환하게 자꾸 퍼져나가는 거라. 바왕가에 빠지지도 않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더욱더 대상을 뚜렷하게 알게끔 되고, 대상도 색깔이 흰색이었다가 흰색에서 색깔이 조금 더 투명해지고 밝아지고 이런 형태들로 바뀌고, 그러고 나서는 아주 뚜렷하게 되거든. 변하지 않는 대상으로써! 너무나 재밌거든. 붉은색을 해도 꼭 마찬가지거든.

 

집중하는 것은 그러면서 일선정부터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자유롭게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부처님이 판단하기에 아! 인제 이 제자가 이제 선정을 계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 됐다 하고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선정에서 벗어나서 아라한에 이르는 길을 갖다가 가르쳐줘야 되겠다 하고 판단을 합니다. 뭘 가지고 해줬을까? 아라한이 될려면?

 

선정을 계발하고 나서 아라한이 될려면? 무상한 걸 가르쳐주는 수밖에 없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연꽃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연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고, 아주 예쁜 붉은색 연꽃이 점점 더 시들어가서 색깔도 아주 거무튀튀해지고 형태도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서 탁 죽음을 맞는 과정, 이 과정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색깔에 대한 까시나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색깔에 대해서 뚜렷하게 되어서, 마음을 집중하는 상태에서 선정이 어느 정도 계발이 되고나면,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그다음에는 이것이 변하는, 무상한 성품을 자꾸 볼려고 해야 된다는 거라. 왜? 왜 그렇겠어요?

그것이 자연적인 성품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거라.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을 해버리면, 선정이 최고라고 생각을 해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속세를 떠나서 선정을 할 수 있는 것, 있는 장소, 그리고 그런 조건이 되는 것만 자꾸 찾을려고 한다는 거라. 그렇게 해서 평생을 살려고 하는 거라. 그거는 좋아. 개인적으로는. 그렇지만 그것에 계속 있을 수는 없는 거라.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사회로 돌아와야 하는 거고, 승려생활을 하던 사람들도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 혼자만 누려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법을 갖다가 대중에게 누려지게 해야 되는 거라. 그러면 자기의 선정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그걸 갖다가 설할 수 있는 조건이 안돼. 다른 방법이 없는 거라.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어느 정도의 선정력이 계발되고 나면 그다음에 계발해야 되는 것이 뭐라고 했어요? 지혜를 계발해야 돼.

그럼 지혜를 어떻게 계발해야 돼? 아까도 무명과 무지 얘기를 하면서 했지만 무상한 성품을 보지 못하면 지혜가 계발이 안 돼! 붉은 연꽃이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시들어버린다 라고 여러분들이 이미지를 한번 해보십시오.

스님이 가끔씩 앞에 있는 저 꽃 누가 공양올리면 시들시들해져도 되도록이면 버리지 마라 하는 게 뭣 때문에 그러는지 알아요? 무상한 성품을 보라는 거라. 사람들은 자꾸 좀 시들어졌다 그러면 빼버리고 또 새것 생생한 것만 넣고 그러는데 저것은 수행하기 위한 수행 대상입니다. 내 자신도 그렇게 늙고 병들어서, 시들어서 죽음을 맞게 된다고 생각을 해보라는 거라.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 참 무상하구나 하는 성품들을 알아차려야 된다는 거라.

 

대부분 선정을 계발하고 나서 선정에서 그다음 단계, 무상한 성품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보면 그게 집착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흰 색깔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 선정에 대한 집착, 이런 여러 가지 집착이 있기 때문에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를 못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집착입니까? 가만히 스스로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한번 보십시오.

 

내가 집착하는 것이 뭐가 있는가? 몸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는가? 없다. 그러면 마음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는가? 없다. 마음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은 그런 고요한 것을 찾을려는 마음, 고요한 곳에 있고 싶어 하고 즐길려고 하는 마음이 다 포함이 됩니다. 집착하는 것은 머무른다는 뜻입니다.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변화하는 것인데!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이 있는지? 그것도 없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 대한 집착이 있는가? 나하고 틀린 다른 사람을 나의 견해로써 집착하고 내 생각으로써 집착하고 이런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과거에 대한 집착, 이미 지난 것들 '과거에는 좋았는데 니는 와 안 해주노.' 또 미래에 대한 집착, 그리고 마지막에는 윤회를 끊겠다는 집착, 생에 대한 집착, 이런 집착들 때문에 무상한 성품들로 넘어가지지를 못합니다.

 

어떤 것이든지 그런 집착을 자르는 방법은 위빳사나 수행 밖엔 없습니다.

대상이 변한다는 사실, 그것으로 인해서 그 집착들을 끊게 됩니다. 고요한 상태 그것도 변한다는 사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고요함이 변하는 성품을 봐야 하는 거라. 그 고요함 속에도 틀림없이 끊임없이 변하는 성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지 못하니까 뭉뚱그려서 붙잡고 있는 거라. 고요함을 붙잡고 있는 거라.

 

이렇게 수행하는 것이 까시나 수행법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도 네 가지 색깔 중에 하나를 선택을 한번 보십시오.

흰색, 붉은색, 노란색, 갈색 이 네 가지 색 그중에서 여러분들이 평소에 좋아하는 색이 틀림없이 하나는 있을 겁니다. 그 색을 상정을 해야 됩니다. 만약에 내가 평소에 흰색을 좋아했다. 그러면 흰 쟁반을 갖다가 앞에다가 놔놓고 그 흰 쟁반을 계속 알아차립니다.

모든 사띠를 이 흰 쟁반을 알아차리는 것에다가 두어야 됩니다.

흰 쟁반이 변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흰 쟁반이 더럽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오직, 오로지 흰색, 흰색이라는 개념으로써 잡아야 됩니다. 이게 쟁반이라는 생각을 해버리면 안됩니다. 희다는 것, 희다는 것이 눈에 꽉 들어차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대상을 처음에 할 때는!

 

그렇게 해서, 그 대상 자체에서 꽉 차서 변하지 않는 느낌이 들 때까지 그 수행은 계속 해야 되는 거라. 그래서 눈을 감고 있어도 흰 까시나가 가득 머릿속에 들어차도록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움직이면서 하지는 못하겠죠. 가만히 앉아라는 거라.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로지 그것만.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거와 꼭 마찬가지로. 그래서 그 흰색이 가득차게 되면 그 흰색에서 넘쳐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 그래서 흰색을 내가 알아차렸다 하는 마음이 되게끔 됩니다.

 

그렇게만 했을 경우에는 까시나 수행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걸 위빳사나 수행하고 겸해질려고 할 거 같으면

흰색을 선택할 때 흰색이라는 이미지를 다른 것으로 선택을 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해골! 실제적으로 스님들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해골을 보면서 수행을 합니다. 그래서 두타행을 할 때 공동묘지, 뼈가 널브러져 있는 곳에 가서 수행을 합니다. 그때는 이 해골 같은 것들이 뒹굴어 다녔어요. 실제로. 그걸 수행대상으로, 까시나로 삼는다는 거라. 흰색이라 하더라도 해골을 대상으로 하고 자기의 머리도 결국에는 이 해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는 깨닫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 하다 보면 이 해골 자체가 전체가 안 보입니다. 어떨 때 보면 구멍 뚫린 것만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보기 싫은 마음 때문에 한쪽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거 신경쓰지 말고 그 해골을 자체를 갖다가 그대로 관찰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땐 아까 흰색이라고 하는 쟁반을 관찰했을 때 하고는 분명히 차이가 납니다. 해골에서는 해골의 흰색에 대해서 집중하다 보면 여기에 대해서 염오감을 느낍니다. 가득 차게 되면 염오감을 느끼게 됩니다. 벗어날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나도 저렇게 변한다는 무상한 성품을 알게 되는 거라. 이 머리도 결국은 저런 해골이 된다는 거라. 그래서 무상한 성품을 알기 때문에 삼매로 빠지질 않고 무상한 성품을 알아차려나가게 됩니다.

 

두 가지 길이 있기 때문에 어느 길을 선택해도 관계가 없습니다.

흰색 쟁반을 하든 아니면 흰색 해골을 상정을 하든 어떤 걸 하더라도 처음엔 어떻게 돼요? 선정삼매가 어느 정도 계발돼야 만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넘쳐납니다. 넘쳐는 나서 삼매를 자유롭게 왔다갔다는 하는데 단, 그것이 바왕가에 빠지는 횟수가 거의 없어져 버립니다. 그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선정을 즐기는 것들을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빨리 빠져나와서 이 대상 자체의 성품을 볼려고 자꾸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런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해골 뿐아니라 자기의 갈비뼈 아니면 다리뼈 이런 것들을 대상으로 해도 됩니다.

 

얼마 전에 스님이 그 영화 한번 보여줬습니까? 비디오로 된 시체 나오는 것.

사람이 죽고 나서 구더기 나오고 하는 그걸 상상을 해도 됩니다. 그렇게 해서 뼈만 뒹굴고 하는 그걸 갖다가 대상으로 해도 됩니다. (질문)

그렇죠. 지금은 뭐 해골을 볼 수 있으면 좋은데 갖다 놓을 수가 없으니까.

태국 같은 경우에는 출가한 스님들이 일 년이 지나고 나면 맨 처음 하는 게 뭔지 알아요? 병원에 가는 거라. 병원에 견학가는 건데, 죽고 나서 하루 된 사람, 이틀 된 사람, 삼일 된 사람 이렇게 순차적으로 그걸 갖다가 박제를 해놓은 게 있어요. 그 모습을 보는 거라. 처음에는 아무리 스님들이라 해도 다들 구역질이 납니다. 진짜 충격적인 거라. 내가 저렇게 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살아왔다는 거라. 결국에는 나중에 뼈만 뒹굴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걸 보고 나면 정신이 확 돌아옵니다. 아! 이렇게 무상한 것이구나. 그래서 뭐 죽고 나서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는 생각, 이런 생각조차도 잘 안 하게 됩니다. 오로지 무상한 것을 빨리 봐서 깨달음에 이르러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자꾸 일으키게 됩니다.

한국에는 그런 것은 없지만 저번에 그 시체농장을 여러분들에게 보여 준 것도 그럼 의미들입니다. 빨리 이 무상한 것을 깨달아서 경각심을 일으켜서 빨리 수행하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까시나를 할 경우에도 위빳사나 까시나를 하는 방법을 스님은 추천을 합니다. 사마타 까시나를 하는 것도 이익이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그래도 위빳사나 까시나를, 까시나를 할 동안에는 어차피 사마타 수행을 하게끔 됩니다. 삼매를 계발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걸 빨리 벗어나서 무상한 성품들로써 위빳사나로 전환할려면 대상 자체를 흰색이라도 흰쟁반을 하는 것보다 흰 해골을 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는 그런 뜻입니다. 알겠습니까?

 

(수행자 질문) 그렇게는 관찰이 안 됩니다.

흰 것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단, 변한다는 것은 어떻게 변하는 것이냐 하면 마음의 작용 때문에 변하는 겁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색깔이 흰것에서 회색으로도 되고 색깔이 좀 엷어지기도 하고 투명하게도 되고 이렇게 변하는 것들입니다. 그거는 마음의 작용 때문에 변하는 겁니다. 그것은 선정이 아직 무르익기 전에 그렇게 변합니다. 그리고 형태도 변해지는 거고, 점점 넓혀지는 거라든지 아니면 줄어드는 거라든지, 이 형태가 쟁반형태에서 더 큰 쟁반형태로 아니면 이 전체를 감싸는 형태로 자꾸 변하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선정이 계발되기 전에 일어나집니다. 초선정에 들어가기 전에!

 

그러고 나서 그다음에 되는 것이 뭐냐면 초선정에 들 때가 되면 이미 그 형태는 흰색이든 아니면 붉은색이든 어떤 것이든 아주 투명하게 된다는 거라. 투명하게 되고 형태도 변하지 않게끔 탁 고정이 돼버립니다. 그게 뭐냐면 마음이 완전히 대상에 탁 달라붙어버려서 움직이지 않게 되면 그렇게 돼버립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이선정 삼선정 그렇게 넘어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마음의 작용에서 변하는 것들이고, 그것 말고 그것이 되고 나면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무상한 성품을 볼 수 있도록 자꾸 만들어야 되는 거라.

 

그래서 의도적으로 해골이라고 하는 것을 상정해줄 거 같으면 나도 저렇게 해골같이 변하게 된다 하는 마음을 자꾸 일으키게 되는 거라.

그래서 마음이 바왕가에 빠지는 것들을 막아주고, 한 대상에 계속 머물러서 그것을 집착하는 것들도 막아주고, 그래서 마음이 선정에는 들어 있지만, 그것이 깊은 선정에는 넘어가 있지 않고 근접적인 선정에 들면서 자꾸 마음을 활기차게 해서 대상을 빨리빨리 알아차리게끔 만들어 주는 효과들을 가져온다는 거라.

 

왜? 마음에는 항상 아! 변하고 무상하구나 하는 사실을 갖다가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거기에 깊이 빠져들어 가지지를 않는 거라. 그래서 되도록이면 흰색을 하더라도 해골을 상정을 해가지고 하는 것들이 좋다는 겁니다.

(질의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