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위빳사나[기초수행반]

기초수행19. 위빳사나 수행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 (20080118)

담마마-마까 2020. 1. 7. 14:35

https://youtu.be/a9k1o30apsU

* 기초수행19. 위빳사나 수행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 (20080118)

 

오늘은 초보자들이 좀 많이 왔는데, 이때까지 몸에 대한 관찰, 느낌에 대한 관찰, 마음에 대한 관찰 이 세 가지를 해왔습니다. 벌써 기간이 한 삼사 개월 흘렀죠? 이제 법에 대한 관찰만 지금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오늘은 앞에 세 가지를 아울러 가지고, 처음 들어온 분들도 있으니까 전체적으로 한번 설명을 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뚜라-낭히 까- 닛다-(Āturānañhi kā niddā) 라고 하는 빨리어 경전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병이 들어있는 환자인데, 이 병을 고치지 않고 뭘 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병이 들어있는 환자라는 거라.

여러분들 병 안 든 사람 있습니까? 한번 손 한번 들어봐. 병 없는 사람. 병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다 있어? 여기 병은 육체적인 병만 얘기하는 게 아니죠! 마음의 병들도 다 있습니다. 욕심대로 안 사는 사람 있습니까? 번뇌에 휩싸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느냐는 거라.

어제 저녁에 [위빳사나 고급반] 할 때도 얘길 했지만 알아차림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거의 번뇌로 살아가는 겁니다. 번뇌가 병입니다. 번뇌 없이 살아가지지는 잘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알아차림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보면 이런 병들을 다들 가지고 있게 된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아-뚜라-낭히 까- 닛다-(Āturānañhi kā niddā)"라 해가지고 지금 내가 환자인데 자고 있을 틈이 어딨느냐? 잠잘 시간이 어딨느냐는 거라. 만날 번뇌로 고민하고 그렇게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 왜 정작 해야 되는 것들은 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병이 들은 환자인 것을 스스로 먼저 인식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아까 내가 소래한테도 얘기했지만 내가 고칠 거 아니라. 내가 환자인데 고칠 생각을 해야 되는 거라.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그럽니다.

병원에 가면 병을 어떻게 고쳐줍니까? 진맥해가지고 처방해가지고 약을 주죠! 원인을 찾아가지고 병 처방을 해주지, 원인 없이 그냥 처방해주는 적이 없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합니까? 마음에 병이 있다, 화가 난다, 화 어떻게 다스립니까? '에잇! 참아버리지 뭐' 꼭 참는단 말이라.

참는 거는 어떤 겁니까? 스스로 마음을 속이는 겁니다. 억눌러 가지고 그게 문제가 해결될 거 같으면 간단한데 절대 해결이 안 되죠! 뭐든지 병은 억누르고 억제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인 병도 억눌러서 억제한다고 해가지고 해결이 되는 게 아닌데, 마음의 병은 더더구나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억제하거나 억눌러가지고는 항상 마음에 지게 돼있다 하는 겁니다.

 

그걸 '와짜라 담마'라고 그럽니다. 마음에 속는다는 겁니다. 왜? 좋게 포장되어 들어오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내가 욕심이 생겼다, 그건 뭐로 포장되어 들어옵니까?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자애의 마음으로 포장되어 들어옵니다. '내가 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는 이걸 해야 된다.' 이런다고. 자기 욕심이 있어가지고 너는 이만큼 공부해야 된다는 욕심이란 걸 '내가 니를 사랑하니까 너는 이마만큼 공부를 해야 되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따라와야 된다', 자애로서 이렇게 포장이 돼버리는 거라.

 

그래서 억제할려고 할 거 같으면 그것은 반드시 실패한다 하는 거라. 스스로의 마음에 속는다는 거라.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본인은 그걸 모른다는 거라.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자기 스스로의 마음에 속아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그런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의 욕심 뿐아니라 '나'라고 하는 것들을 앞세우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는 겁니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있는 그대로 '아! 병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먼저 인식을 하고 나서 그 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병은 치료되는 시작점에 도달하게 돼있습니다.

 

가끔씩 사람들이 남의 입장을 이렇게 보면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기 때문에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내 하고는 관계가 없는 거거든. '나'라고 하는 걸 관계시키지 않고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냉정하게 그 사실을 갖다가 보는 거라. 그러니까 '아! 저기서는 문제가 뭔데 왜 저렇게 하고 있는가'하고 판단을 내릴 수가 있게 된다는 거라.

 

여러분들이 환자일 거 같으면 어떻게 수행을 해야 되겠어요?

그렇게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거라.

어떤 경우든 그 대상자체를 갖다가 화가 일어나는 대상이든 아니면 몸에 대한 대상이든 마음에 대한 대상이든 어떤 대상이든지 제 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라 하는 거라.

그걸 불교용어로 뭐라 그럽니까?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있는 그대로! 가식하지 말고, 더하지도 덜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살펴보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차피 이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게 돼있습니다. 이 몸과 마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몸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의 작용으로 아는 것이지 이 몸뚱아리 하나가 지 스스로 아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마음도 이 몸이라는 것이 있어야 만이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마음이 주가 되어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러면 마음을 조금 더 성숙되게 하고 강화시켜주고 할 거 같으면 수행은 자연스럽게 무르익게 되어있다 하는 거라.

 

어느 수행법이든 육체적으로 고달프게 하는 수행법이든 아니면 육체적으로 편안하게 하는 수행법이든 육체를 다루는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마음을 다루는 것이 됩니다. 고달프게 함으로 인해서 마음도 단련이 돼나가는 거고, 또 편안하게 함으로 인해서 마음도 편안하고 릴렉스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방법들을 쓰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강화시켜주기 위해서 부처님이 얘기한 게 뭐냐 하면,

가장 먼저 한 것이 사십 가지 사마타 수행법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법을 얘기합니다.

왜 이 방법을 부처님이 얘길 했을까?

우선 하나의 대상에 집중할 거 같으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부작용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마음이 산란하게 움직여가지고는 항상 실수를 하게 돼있고 부작용이 있게 되는데. 하나의 대상-하나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말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관찰을 하면 움직이지 않는 대상은 관념, 개념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예를 들어보자.

며칠 전에 절하는 것이 나왔다, 절하는 동작에다가 마음을 이렇게 실어준다. 아니면 여기 부처님에 대해서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하면서 마음을 갖다 집중한다.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부작용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부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냥 그만두어 버리면 그만인데, 오히려 집중하면서 좋은 점은 발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부작용들은 그렇게 일어나지를 잘 않는다는 거라.

 

그 대신에 육체를 대상으로 집중하는 것은 조심을 해야 됩니다.

아까 절하는 것들도 얘기했지만. 절 많이 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관절염 걸리고 그렇게 하죠. 그래서 집중하는 대상으로는 육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부적합하게 돼있다는 거라.

 

그럼 육체가 아닌 것, 마음의 작용이라든지 아니면 이런 개념이라든지 관념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대상으로 집중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사십 가지 부처님이 말한 사마타 수행법은 전부 그런데 해당이 됩니다.

빛이라든지 아니면 수정볼이라든지 아니면 부처님 명호라든지 그다음에 자비희사라고 하는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이라든지 이런 것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겁니다.

 

그럼 육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어떤 수행법을 해야 되느냐?

위빳사나 수행! 왜? 육체는 변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육체는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거라. 그래서 변하는 것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위빳사나 수행법을 하도록 그렇게 하라는 거라.

 

그래서 이 사마타 수행은 자연스럽게 위빳사나로 이끌어주게 돼있다 하는 거라.

그리고 하나의 대상에 집중을 쭉 하다 보면 가장 먼저 깨지는 게 뭐냐면 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많고 망상이 많구나 하는 것들이 먼저 탁 떠오르게 됩니다. 그런 것들의 껍질을 탁 깨주도록 해주는 것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법이다 하는 겁니다.

 

어쨌든 이 위빳사나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대상들에 마음을 집중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나가는 그런 수행법입니다.

움직이는 대상을 수행대상으로 하다 보니까 어떻게 돼요? 움직이는 것은 굉장히 빠릅니다. 여러분들 몸도 보면 굉장히 빠르고, 마음도 굉장히 빠르게 움직인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그 빠르다고 아는 것은 마음으로 아는 것인데 마음이 그걸 따라가지 못할 경우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마음이 그걸 따라가지 못할 경우엔? 그럼 움직임을 천천히 하는 수밖엔 없다는 거라. 여기서 여기까지 달려가는데 마음이 그걸 따라가지 못한다고 할 거 같으면, 숫자를 보자. 여기 한 열 개를 써놔 놓고 여기서 여기까지를 일 초만에 휙 달리면서 봤을 경우에 이걸 다 못 읽어낸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걸 다 읽을려면? 천천히 십 초 동안에 가면서 보면 되는 거라. 천천히 가면!

 

위빳사나 수행은 가장 먼저 기본이 되는 것은 슬로우(slow)입니다. 슬로우! 천천히 하라! 천천히 하라.

그래서 움직이는 것도 천천히 하고, 생각하는 것도 천천히 하고, 뭐든지 천천히 하도록 자꾸 훈련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천천히만 해서는 안 되죠? 천천히 하는 목적이 뭡니까? 그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입니다!

천천히 하면서 두 번째 명심해야 될 게 뭐냐면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뭘 알아차리느냐? 과거의 일입니까?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것들입니까? 그건 아니죠? 지금 현재입니다. 지금 현재 뭘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천천히 하면서 지금 현재의 것들을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되는데, 통상적으로 알아차리는 걸 뭐로 가지고 알아차리느냐는 거라. 느낌으로 압니다. 느낌으로!

그래서 모든 것들은 느낌에 귀결된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합니다.

 

어떤 경우든 느낌으로써 내가 마음으로 압니다. 그럴 거 같으면 천천히 하면서 지금 현재를 알아차리는데 알아차리는 가장 기준점은 뭘 알아차려야 된다고? 느낌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된다 하는 거라. 이것이 항상 기본이 됩니다.

 

그러고 나서 느낌에 대한 것들이 관찰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아! 이랬을 때 마음은 어떻다' 하고 마음의 작용들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연결이 되게 돼있습니다.

요 포인트가 기본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어떻게 합니까?

수행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동작이 수행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대표적으로 모든 동작을 구분을 짓다 보니까 통상적으로 보면 앉아있는 것, 그다음에 움직이는 것, 그다음에 서있는 것, 또 누워있는 것. 이런 네 동작으로 크게 구분을 하는 겁니다.

 

이 네 동작 외에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동작들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이 동작에 다 포함이 되죠? 잠잘 땐 어차피 누워야 되는 거고,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이럴 때는 서가지고 있게 되는 거고, 통상적으로는 가만히 있든지, 그다음에 움직이든지, 그래서 자는 때는 여러분들이 수행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 전에는 누워서 하는 수행법을 하고 또 잠에서 깨어날 때는 또 누워서 하는 수행법을 하게 되지만 그건 잠깐 있는 거뿐인 거고.

 

통상적으로는 걸어갈 때, 움직일 때, 그다음에 앉아있을 때 이게 주안점이 될 수밖에 없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할 때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수행법들을 크게 좌선할 때, 알아차리는 방법, 그다음에 경행할 때 걸어갈 때 알아차리는 방법, 그다음에 일상생활을 할 때 알아차리는 방법, 뭐 밥 먹을 때라든지 설거지할 때라든지 이런 일상생활을 할 때 알아차리는 방법 이렇게 세 가지로 통상적으로 구분을 해서 얘기를 합니다.

 

자! 그러면 좌선수행하면서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뭘 알아차린다고 그랬습니까?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거죠!

그러면 내가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으로 알아차려야 됩니다.

 

마음은 그럼 어디다 두어야 됩니까?

지금 대상에다가 두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럼 마음이 몸 있는데 가야 되는 것이지, 마음 있는 데다가 몸을 둘 수는 없죠? 내가 저저쪽 멀리 생각을 하고 있다 해가지고 거기 몸이 갈 수가 없다는 거라. 그래서 몸 있는 데다가 마음을 두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자! 그럼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을 거 같으면 이 몸에 마음을 일차적으로 두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인제 마음에 대한 관찰을 했으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탁 앉아 있을 때 한번 이 몸을 마음으로 한번 알아차리도록 해보십시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가.

그때 알아차릴 때 어떻게 알아차려야 되겠습니까? 이 몸이 전체적인 앉아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다음에 내가 지금 마음의 상태가 어떤가 하고 알아차릴려면 어디다가 주안점을 둬야 돼요? 대부분 가슴에다 두죠! 가슴이 불끈불끈 뛰고 있는가, 또 내가 흥분이 돼있는가, 아니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가, 하는 것을 갖다가 관찰을 합니다.

그래서 먼저 이 몸에 마음을 두도록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몸의 상태가 어떤지 마음으로 알아차리도록 먼저 해야 됩니다.

 

수행을 할 때는 가장 기본이 뭐냐 하면 몸 있는데 마음을 두는데,

몸도 마음도 고요하게 가라앉아서 평온하지 않으면 수행을 못해나갑니다.

헐레벌떡 해가지고는 어떤 일도 정상적으로 행하지를 못합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또 평온하게 가라앉아있지 않으면 수행을 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금방 뛰어와가지고 좌선을 한다고 앉아있는 경우들도 있을 거고, 아니면 평온하게 앉아가지고 있을 경우들도 있을 겁니다.

그럴 거 같으면 가장 먼저 고요하게 만들어주고 또 힘들지 않게 수행으로 연결시켜 나갈려면 지금 현재의 상태를 마음으로 알아차릴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앉는 자세를 했다 그럴 거 같으면,

아! 지금 내가 마음의 상태가 어떤가 하는 것들을 가슴으로 알아차리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서 호흡이 뛰는 걸 한번 보고, 아니면 어떤 아픔들이 오는지 한번 보고, 그렇게 알아차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대상에 고요하게 가라앉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당연히 몸도 가라앉게 돼있다는 거라. 그게 먼저 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더라도 자세가 불편할 거 같으면 수행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서 꼭 주의해야 될 것은 뭐냐면 너무 자세에 신경쓰다 보면 실제 관찰해야 될 것을 관찰하지 못합니다.

실제 관찰해야 될 것은 뭡니까? 여러분들 몸과 마음입니다.

그런데 자세가, 너무 가부좌에 얽매인다든지 아니면 손을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아니면 허리를 똑바로 펴야 된다 어째야 된다 하는 것에 신경쓰다 보면 어떻게 돼? 인위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마음을 왜곡되지 않게끔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관찰해야 되는데 이미 변형을 시켜갖고 하게 된다는 거라. 그럴 거 같으면 자세가 안 될 거 같으면 그냥 평발로 하라는 거라. 평발로 하고 손이 이렇게 하기 힘들 거 같으면 그냥 이렇게 위로 올리라는 거라. 안 그러면 앞으로 축 내리든지. 가장 편한 자세로써 하다가 나중에 가서 아! 이게 수행하는데 좀 방해가 된다 싶으면 자기 스스로 바꾸게 된다는 거라.

 

손가락을 붙이다 보니까 마음이 고요해지고 하면 오히려 호흡을 '일어남' '사라짐'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맥박 뛰는 소리 때문에 딱깍딱깍 하는 소리가 신경쓰인다 그러면 손을 지가 떼게 돼있는 거고, 자기 스스로 알게 돼있다는 거라.

그래서 처음에 수행을 할 때는 그런 자세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런데 눈은 여기 앉아있는 부처님 같이 저렇게 반은 뜨고 반은 감고 할 것이냐? 그렇진 않죠!

여러분들 수행할 때는 일단은 눈은 살포시 감도록 해야 됩니다. 감지 않을 거 같으면 왜? 앞의 대상이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보면 번뇌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대상을 보고 끄달려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면 되도록 대상들을 스스로가 차단하는 방법을 해라. 그래서 눈은 되도록 살포시 감아라.

 

그렇게 해서 고요하게 몸도 마음도 가라앉아있을 거 같으면,

위빳사나는 뭘 대상으로 한다고 그랬습니까? 움직이는 대상입니다.

몸에서 움직이는 게 뭡니까? 호흡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호흡을 관찰하면 되는 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 지금 현재 사라지는 것을 대상으로 하라. 그래서 호흡을 대상으로 하다 보면 어떻게 돼? 코끝을 관찰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또 배를 관찰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란 말이라.

 

단지 코끝을 통해서 가슴을 통해서 배까지 내려가는 것을 전체적으로 관찰할려고는 하지 말아라는 거라. ? 대상을 따라가는 거기 때문에! 수행은 대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내 쪽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대상을 따라가 가지고는 절대 수행을 못합니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들을 안으로 끄집어들여야 됩니다. 대상을 볼 거 같으면 대상에 마음이 끄달려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보는 대상을 갖다가 눈에다가 알아차림을 할 거 같으면 그 대상이 눈으로 들어오게 돼있다는 거라. 그래서 밖으로 향하는 마음들을 안으로 끄집어들이게 돼있다는 거라.

 

그럴 거 같으면 대상을 관찰하는 포인트를 어디로 두어야 됩니까?

하나의 초점에다가 관찰 포인트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상을 따라가면서 관찰할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어떤 경우든 따라가 버리면 실패합니다.

그래서 코끝이면 코끝, 아니면 배면 배 한 곳에만 집중을 하도록 해서 관찰하도록 해야 됩니다. 왜? 그리해도 대상은 끊임없이 그곳을 스치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게 돼있다는 거라. 그래서 대상이 자기한테 와서 부딪치도록 해야 되는 것이지 내가 대상을 따라가지 않도록 해야 된다 하는 거라.

 

수행할 때 호흡을 관찰할 때는 하나의 포인트에다가 관찰을 할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서 코끝이면 코끝을 스치고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호흡을 관찰을 하고, 아니면 배를 관찰할 거 같으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이 하나의 점에 알아차림을 두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아까 수행은 어떻게 하라 그랬습니까? 모든 것은 느낌으로 귀결된다고 그랬습니다.

코끝이든 배든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고,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이렇게 할 때 이 움직임을 먼저 사람들이 봅니다. 움직임을 모르면 느낌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이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움직임을 봅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걸.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재빨리 움직일 때 일어나는 느낌들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들을 알아차릴려고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그리해야 만이 내가 인위적이 되지를 않습니다.

 

대부분 실패하는 것들이 뭐냐 하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관찰한다, 그러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그 형태를 자꾸 보는 거라. 형태를 보는 것은 뭡니까? 이거는 개념입니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거라. 실재하는 걸 자꾸 볼려고 해야 된다는 거라. 그러니까 형태나 모양이나 이런 것들을 볼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거라.

 

그 움직임에서 일어나는 느낌들, 숨을 들이쉴 때 숨이 쑥 들어오면서 그런 움직임에서 어떤 느낌이 듭니까? 시원한 느낌이 들면 시원한 느낌이 있다는 사실만 알아라. 숨을 내쉬면서 호흡이 빠져나가는 움직임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느낌들, 텁텁한 느낌들, 그래서 시원한 느낌 텁텁한 느낌 이걸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된다는 거라.

 

배도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배가 불러올 때 압박감이나 팽창하는 느낌들이 있고, 수축할 때 또 물컹한 느낌들이 있고, 이런 느낌들을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라.

그렇지 않고 움직임만 따라간다든지 형태만 따라갈 거 같으면 변하는 것들을 모르게 된다는 거라. 실제 모든 것들은 변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듯이. 그런데 변하는 것들을 모르고 수행을 할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그거는 수행 하나마나라는 거라.

 

변하는 사실을 일차적으로 알려고 할 거 같으면 느낌들을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팽창하고 수축하면서 일어나는 느낌들, 그 느낌들을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그 느낌들도 알아차리다 보면 어떻게 돼요? 그 느낌들이 증가하기도 하고 느낌들이 감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느낌들이 증가하고 감소했을 때 어떤 마음들이 일어나는가? 내가 그것을 알아차릴 때 틀림없이 마음에서 작용들을 합니다. 기쁨이 일어나든지 아니면 '아! 알았다' 하는 것들이 일어나든지, 이런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이 있다 하는 거라.

그 작용들이 일어나면 그 작용들을 즉각적으로 보도록 해야 됩니다. '아! 내가 기쁨이 일어났구나' 기쁨도 어떻게 됩니까? 항상 기쁘지는 않죠! 그것도 변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의 작용들이 일어나면 마음의 작용이 일어난 사실을 갖다가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것도 변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좋은 현상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좋은 느낌들에도 끄달려들어가지 않게 됩니다.

 

대부분 수행을 해나가다 보면 싫은 것들 이런 것들은 잘해나갑니다.

그런데 수행이 잘돼나가면 고요해지고 또 기쁘고 행복하고 하는 그런 느낌들이 일어나면 거기에 폭 빠져들어가 버립니다. 왜? 그 일어나는 느낌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을 갖다가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끄달려들어가 버린다는겁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대상에 끄달려들어가 버린다는 거라. 대상을 갖다가 내가 알아차리고, 내가 대상을 안으로 끄잡아들이기만 하더라도 빠져들어가지 않는데 대부분 거기에 빠져버린다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고요하니까 고요함을 더 즐기려 그러고, 또 수행이 잘되면 수행이 잘되는 것에 더 빠져들어가서 거기에 자꾸 매달리게 되고.

 

거기에 매달리면 어떻게 돼요? 그런 느낌들이나 그런 경험들은 과거의 일인데 과거의 일들을 자꾸 회상하게 된다는 거라. 과거든지 미래든지 수행을 하는 데는 적입니다. 나에겐 동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수행의 포인트는 천천히 하고,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 그리고 느낌을 관찰하고, 느낌이 일어났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을 관찰하도록 하라.

그게 수행의 기본 포인트입니다.

 

앉아있을 때는 호흡이 일어나는 것들만 관찰하도록 일차적으로 해야 됩니다.

호흡을 하다 보면 어떻게 됩니까? 수행이 잘 되다 보면 호흡만 계속 관찰하게 되는데, 그게 대부분 안 되죠? 그럼 다리에 통증이라는 느낌들도 일어나게 되고, 또 여러 가지 생각들도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일어나더라도 느낌을 관찰하고, 그 마음을 관찰할 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따라가 버리면 안 됩니다.

 

느낌이 일어나면 느낌의 한 점에다가 알아차림을 두도록 해야 됩니다.

느낌을 따라가 버리면 그 느낌에 끄달려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지고 그걸 못 참게 됩니다. 못 참게 되면 이건 실패하게 돼버리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느낌이, 만약에 통증이 일어났다, 통증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알아차리기만 하라. 그걸 갖다가 내가 용을 써가지고 이걸 관찰을 해봐야지 해버릴 거 같으면 이미 느낌에 끄달려들어가 버립니다.

 

자연스럽게 객관적으로 이 느낌을 본다 하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요걸 주시만 할 거 같으면 느낌이 변합니다.

변하는 사실을 내가 알 거 같으면 '아! 저거 크게 신경 안 써도 된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라. 그럴 거 같으면 느낌에 끄달려 들어가지 않는데,

 

대부분 보면 아프니까 어떻게 돼? 자꾸 밀어낼려고 하다 보니까 느낌에 끄달려들어가 버립니다.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아니면 화나는 게 일어나더라도 그걸 부정할려고 자꾸 하다 보니까 끄달려들어가 버린다는 겁니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그걸 알아차릴려고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그럴 때는 호흡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호흡을 중단을 해야 되죠!

호흡을 중단하고 그런 느낌을 보든지,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을 보든지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 작용들이 완전하게 사라지고 나면, 다시 움직이는 대상이 뭡니까? 호흡이라는 거라. 호흡으로 다시 돌아와야 된다는 거라.

 

그게 앉아서 수행할 때의 기본적인 방법들입니다.

 

그다음에 경행을 할 때의 방법입니다.

경행을 할 때도 꼭 같은 방법이 해당이 됩니다.

 

천천히 하라!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 지금 현재 움직이는 것들을 관찰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 느낌들을 관찰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 느낌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을 관찰하도록 하라.

이것이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손을 한번 여기 바닥에 대어보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한번 올려 보십시오. 다시 바닥에 천천히 한번 내려 보십시오. 바닥에 닿고, 바닥에서 또 떨어지고 할 때 닿은 줄을 알고, 떨어지는 줄을 알겠습니까? 그건 분명히 알겠죠? 이거는 뭘 하는 겁니까?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게 하는 겁니다. 마음이 일을 하게끔 하는 겁니다. 그와 같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수행을 할 때는!

 

조금 높게 들어 올릴 때의 느낌하고 내려갈 때의 느낌들은 다릅니다. 혹시 그거 알겠습니까? 손을 한번 쭉 천천히 들어 올리면서 느낌들을 보고, 손바닥을 바닥쪽으로 천천히 내리면서 느낌들을 한번 보십시오. 닿기 전에! 들어 올릴 때 하고 내려갈 때의 느낌이 똑같습니까? 다르죠? 분명히 다릅니다! 느낌들이.

숨이 들이쉬는 숨하고 내쉬는 숨하고 느낌이 달랐죠? 그와 마찬가집니다. 움직이는 것에는 어떤 경우든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발을 들어 올릴 때 하고 내릴 때의 느낌들은 틀림없이 다릅니다. 그 느낌들을 명확하게 관찰하도록 해야 됩니다.

 

조금 전에 얘기했지만 손바닥을 들어올리고 내리고 할 때 관찰하기가 수월하듯이, 경행을 할 때도 발을 들 때 가벼운 것이 증가하는지 아니면 무거운 것이 증가하는 것인지, 발을 내릴 때 무거운 것이 증가하는 건지 가벼운 것이 증가하는 건지, 그런 느낌들이 어떻게 변하는 건지 관찰할려면,

일반적으로 경행할 때보다도 멈춰섰을 때, 발을 돌 때,

발을 돌 때 어떻게 됩니까?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못하는 게 뭐냐면 멈춰서고 나서 180도 돌 때 대부분 놓쳐버립니다.

느낌을 관찰할 때, 느낌이 증가하고 감소하는 것들을 가벼운 건지 무거운 건지를 가장 알기 쉬운 게 뭐냐면 경행에서 멈췄을 때 180도 돌 때입니다.

그때 주의해서 관찰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처음에 발이 들어올릴 때는 대부분 보면 이렇게 들어올려지기 때문에 그게 가벼움이 증가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발을 내려놓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앞발(앞꿈치)이 먼저 닿든지 뒷발(뒤꿈치)이 먼저 닿든지 이렇게들 대부분 내려옵니다. 그러면 이게 무거운 건지 증가하는 건지 뭔지도 잘 모릅니다. 처음에 수행할 때는.

 

그래서 처음에는 발을 들 때는 되도록 그냥 바로 들도록 하라. 그리고 나아가고 나서 내릴 때도 바로 내리도록 하라. 왜? 이 느낌들을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 대부분 이렇게 비스듬하게 들어지고 비스듬하게 내려질 거 같으면 그 느낌들을 관찰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바로 들고 나아가고 나서 바로 내리도록 하라. 그럴 거 같으면 관찰하기가 용이해진다 하는 겁니다.

 

움직일 때도 어떻게 움직이라고 했습니까? 천천히 움직이라고 했습니다. 천천히!

일반적으로 이마만한 속도로 움직였다면 수행을 할 때는 일단 슬로우 템포로,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움직여라. 왜? 움직임을 따라서 마음이 알아차리는데 일치시켜주고 그마만큼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 천천히 움직이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느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려고 할 거 같으면, 경행할 때 가장 먼저 기본적으로 마음에 두어야 될 것은,

발을 들어올릴 때는 되도록이면 동시에 들어올리고 동시에 내리도록 먼저 훈련을 하라. 그래서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음' 이렇게 하면서 관찰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야 느낌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천천히 하고 지금 일어나는 것에 관찰을 하고 있는데 가장 하기 힘든 게 그때의 느낌들을 관찰하라는 거라. 느낌들을 그렇게 해서 관찰합니다.

 

느낌을 관찰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보통 보면 내가 수행 잘했다는 어떤 환희심들이 일어납니다. 그럴 거 같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발이 들렸으면 그대로 내려놔 놓고 그때의 느낌들을 관찰하라, 마음의 작용들을 관찰하라.

 

몸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게 뭡니까? 몸을 관찰하고,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을 관찰하고, 다 이어줄 수 있습니다. 좌선할 때도 마찬가지고 경행할 때도 꼭 마찬가지라는 거라.

이렇게 경행을 해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좌선하고 경행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를 해나가야 됩니다.

수행의 포인트는 뭐냐 하면 알아차림을 항상 깨어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집중력하고 노력의 힘이 균형을 맞춰줘야 된다 하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있는데 힘이 더 많이 들겠습니까 아니면 걸어가는데 힘이 많이 들겠습니까? 당연히 걸어가는데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있을 거 같으면 힘은 덜 들지 몰라도 집중하는 건 생긴다는 거라. 가만히 있을 거 같으면 마음이라는 것은 어디에든지 머물르게 돼있다는 거라. 어디든지 자꾸 대상을 찾게 돼있다는 거라. 그러면 대상이 그마만큼 적으면 어떻게 돼?

마음은 집중하게 돼있다는 거라.

 

그럼 앉아있을 때는 집중력은 많아지고, 경행을 할 거 같으면 노력의 힘은 많아지게 돼있다는 거라.

그럼 이 두 가지를 균형을 맞춰줘야 되는데, 자칫 사람들이 좌선만 자꾸 할려고 할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집중력만 자꾸 키워주는 거라.

노력의 힘이 떨어지니까 어떻게 돼? 앉아서 좌선만 했다 그러면 할려는 노력이 없으니까 어떻게 돼? 폭 잠에 떨어지는 거라. 안 그러면 잠에 떨어지지 않고 마음이 깨어 있을려면 어떻게 해야 돼? 노력의 힘이 없으니까 어떻게 돼? 막 딴 생각들만 하는 거라. 막 생각을 굴리고 앉아있고 한 시간 내내 딴 생각하는 거라. 자는 거 아니면 딴 생각하는 거라.

 

그래서 처음 수행할 때는 반드시 좌선과 경행을 1 1 비율로 해라.

한 시간 좌선을 했으면 한 시간 경행을 하라. 반드시 이것을 맞춰주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뭘 그럼 먼저 해야 되느냐? 좌선을 먼저 해야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경행을 먼저 하도록 해야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집중력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강합니다. 더 강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 위리야(vīriya)라고 하는 노력의 힘입니다.

노력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더 훨씬 수행하는데 용이합니다.

그리고 좌선할 때 집중력이 없어도 노력의 힘이 있을 거 같으면 어느 정도 수행에서 알아차림을 이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노력의 힘이 없으면 좌선을 할 거 같으면 알아차림을 금방 까먹어버린다는 거라. 대상을 놓쳐버린다는 거라. 대상을 놓쳐버리고 앉아있으면 그거는 백날 앉아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시간이 나면 되도록 앉아서 좌선할려고 하지 말고 걸어가면서 경행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거꾸로 하고 있죠? 시간 나면 무조건 앉을라고 그러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경행을 해야 됩니다. 오히려 경행을 하는 것이 사물의 현상을 발견하기에는 더 용이한 방법이다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주면 됩니다.

 

그다음에 하나 더 유의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의도입니다. 의도!

마음의 작용에는 뭐가 있다고 그랬습니까? 수·상·행!

느낌과 생각들 그다음에 의도! 느낌도 알아차리고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나는 것도 알아차리고 하는데, 의도는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의도를 가장 알아차리기 쉬울 때가 언젭니까? 동작이 바뀔 땝니다. 동작이 바뀔 때!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불러오고 나서 그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끝나고 나면 꺼지는 것이 있게 되고, 꺼지고 나서는 다시 또 불러오는 게 있고. 이렇게 한 동작이 끝나고 나서 그다음 동작으로 이어지기 전에 의도를 관찰하기가 수월하다는 거라.

 

그런데 좌선수행 할 때는 어떻게 됩니까? 일어남 사라짐 겨우 해봐야 3초 좀 넘습니다. 거기서 의도를 관찰하기가 참 힘이 들죠?

그럼 의도를 관찰하기 가장 쉬울 때가 언젭니까? 경행을 할 때라는 거라. 경행을 천천히 할 거 같으면 한걸음 떼는데 적어도 5초 10초 가까이 걸린다 하는 거라. 그럴 거 같으면 발을 들어올리기 전에 발을 들어올리려고 한다는 의도를 관찰하기가 쉽고, 발이 나갈 때 발이 나갈려고 한다는 의도를 관찰하기가 쉽다는 거라. 마음이 예리하게 깨어있을 때 그런 의도를 관찰하기가 쉽다는 거라.

 

그래서 경행을 할 때 조금 더 수행이 잘되면 기쁨의 현상들이 만약에 일어났다. 아! 내가 경행이 잘 돼가지고 이런 느낌들을 분명하게 안다고 해가지고, 기쁨의 현상들이 일어났으면 그 마음의 현상들을 관찰하고 나서는, 그다음 해야 되는 게 뭐냐면 의도를 관찰해야 됩니다. 의도를!

그렇게 해나가면 좌선, 경행을 할 때 크게 불편하지 않고 해나갈 수가 있을 겁니다.

 

오늘은 우선 좌선, 경행하는 법에 대한 것들을 했는데 처음 오신 분들은 잘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은 옆에서 조금 설명을 듣고.

 

그런데 이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한번 사띠가 있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사띠가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사띠가 이어지지 않을 거 같으면 끝나버립니다. 알아차림은 끊임없이 자꾸 계발시켜 나가고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럴려고 할 거 같으면 노력과 집중력이 항상 팽팽하게 균형을 맞추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된다 하는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