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사띠 위빳사나[고급반]

2. 음식 먹기, 일상의 알아차림 (20070927)

담마마-마까 2020. 1. 12. 22:27

https://youtu.be/chSp35zoxYg

2. 음식 먹기, 일상의 알아차림 (20070927)

 

어제까지 입선하고 와선 부분, 누워서 수행하는 것까지 했죠!

그래서 마음집중이 약할 때는 명칭 붙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부분까지 했습니다.

어떠한 경우든 명칭 붙이는 것이 방해가 되지 않을 때는 명칭 붙이는 것을 그만 두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대부분이 마음에서 싫은 마음들, 조금 더 편안한 마음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명칭 붙이는 걸 중단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적어질 때, 게을러질 때 명칭 붙이기를 중단을 합니다. 그럴 때는 빨리 마음을 관찰을 하고 나서 그런 마음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나서 명칭 붙이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음식 먹기는 그런 면에서 마음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보통 어떻게 합니까? 음식 먹을 때? 맛있는 거 많이 먹죠? 맛없는 거 안 먹죠? 자기는 그러면서 애들한테는 편식하지 마라 하고 두드려 팹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탐욕이 있구나 하는 것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대상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 앉아서 물론 이 음식이 어디서 왔나,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렇게 관찰하는 것보다 오히려 마음을 먼저 관찰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먹고 싶어 하는 마음, 그로 인해서 생겨나는 마음의 들뜸 현상들, 또 그럴 때 가슴에서 느껴지는 느낌들, 이런 것들을 먼저 알아차리려고 노력을 해보십시오. 참 재미있습니다. 음식 먹을 때! 그러한 탐심이 제거가 됐다 하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나서 밥을 먹도록 한번 해보십시오. 밥 먹을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아마 모르긴 해도 한 오 분 정도는 씨름해야 될 겁니다. 스님 말이 거짓말인 거 같죠?

 

어떤 때는 밥 못 먹습니다. 탐욕이 일어나는 마음, 또 싫어하는 마음, 이런 것들 다 씻은 듯이 알아차리고 나서, 일어나지 않게끔 하고 나서 음식을 먹을려면 밥 못 먹고 굶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스님도 그렇게 경험들을 했고.

탁발하는 수행자들 뭐합니까? 바리때 하나 가지고 음식물 담아서 먹죠? 나는 참 맨 처음 부처님한테 내가 놀랬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물론 출가를 남방에서 또다시 새롭게 한 것도 있지만은 이 바리때 하나에 음식을 담아서 먹는 것이 이런 큰 뜻이 있구나 하는 걸 내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여러분들은 출가수행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음식을 먹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여러 반찬들 앞에 놓고 마음을 먼저 관찰을 하고 나서 음식을 먹도록 해야 됩니다.

 

음식을 먹을 때 수행하는 방법의 첫 번째가 그 부분이고,

두 번째 방법은 하나의 포인트를 정하도록 하십시오.

특히 아주 조그만 음식 한 조각을 포인트로 잡고 그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먹지 않도록 해보십시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무리 마음을 관찰해가지고 마음이 평등심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음식 먹는데 '손을 뻗음' '뻗음' '뻗음' '내림' '내림' '내림' '잡음' '잡음' '잡음' 하면서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관찰을 하다가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옛날 습성들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관찰 안 하고 먹게 되고 또 좋아하는 것을 또 더 먹게 되고 그럽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하나의 포인트입니다. 특히 인제 콩 같은 거 이런 것들은 좋은 포인트가 됩니다.

 

콩 하나를 예를 들어서 젓가락으로써 그 콩을 서서히 한번 잡아보십시오.

그 포인트에 얼마만큼 명확하게 젓가락이 가서 겨냥을 하고, 또 그마만한 노력을 기울여서 젓가락이 그 콩한테 가고, 그리고 그것이 집중된 상태에서 딱 거기에 맞아떨어지는가, 그리고 한 번에 그 콩을 딱 집고 다시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걸 한번 해보십시오.

마음이 자꾸 대상을 벗어나게 될 때 대상을 향해서 집중할 수 있는 게 그런 방법들입니다. 수행에서는 음식 먹는 데서는 자연스럽게 그 대상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 좋은 대상을 왜 놓치고 할 거라.

 

그 음식 먹을 때 그 두 가지만 할 수 있으면 적어도 먹을 자격은 갖추게 됩니다.

주린 배를 양껏 채울려고 하지 않고, 또한 내가 필요한 양으로써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음식을 입에 가져오고, 또 넣고 씹고 하는 그 동작을 하나하나 관찰을 하면 이때까지 잘 몰랐던 맛을 알게 됩니다. 또한 음식이 충분히 소화가 되기 때문에 영양분의 흡수도 높고, 몸의 건강도 유지시켜 주고, 그래서 아! 이 음식이 몸의 건강을 유지해서 수행을 돕기 위한 도구구나 하는 걸 절실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할 때, 음식 먹을 때 많은 걸 놓치게 되죠. 일일이 다 육체적인 동작을 관찰하고 인식해야 되지만 그렇게 못하는 경우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어떤 때 이 동작들을 놓치지 않고 계속 지속적으로 알아차려 나가게 되는가 하면 좌선 시간에 집중하는 힘이 강해져서 적어도 삼매가 뭐다 하는 것을 갖다가 어렴풋하게 알고 나면 음식 먹는 게 가장 수월해집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음식을 먹어도 거의 놓치지 않고 알아차려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돼? 천천히 먹어야 되는 거라. 천천히! 천천히! 하나씩 명칭을 붙이면서 하나씩 하나씩 하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다른 부분들은 우리 여기에 목요일 저녁에 수행모임 도반님들이 잘해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음식만 앞에 놔 놓으면 정신들이 없습니다. 그러죠? 다는 내가 하라고 얘기를 안 할게. 그렇지만 꼭 한 때 정도씩, 하루에 한 때 정도씩은 내가 한번 관찰하면서 해보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수행의 포인트를 찾는데 가장 유용한 도구입니다. 수행의 포인트를 찾는데!

 

어떤 면에서는 음식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이익을 관찰할 수도 있을 뿐아니라, 그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현상들,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들, 밖에서 소란스럽게 일어나는 소리들, 또 음식에서 나오는 냄새들, 또 여러 가지 떠오르는 생각들, 음식이 혀에 닿으면서 느껴지는 감촉-느낌들, 모든 신수심법을 통괄해서 관찰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이 음식을 먹을 때입니다. 얼마나 좋은 대상입니까?

 

자!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일단 가만히 앉아서 수행하는 자세로써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하는 걸 한번 관찰을 해보도록 하십시오. 음식물을 앞에 놔 놓고 탐심을 내고 있는가, 들떠있는가, 성급하게 먹을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가, 이런 것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나서 만약에 있다면 '탐심' '탐심' '탐심' 하면서 관찰을 먼저 시작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음식물을 보더라도 그 음식물에 대해서 이것이 어떤 음식물, 저것이 어떤 음식물이라는 개념적인 것이 떠오르지 않게 될 때,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될 때 그때 '봄' '보임' '봄' '보임' 하면서 알아차리도록 해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손을 뻗고 집고 먹고 씹고 하는 모든 동작들을 천천히 실제의 맛을 알도록 해서 먹도록 해보십시오. 맛은 실재적인 것입니다. 그 맛이 진짜 어떤 맛인가 하는 걸 탐심이나 싫어하는 마음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맛만 느끼도록 해보십시오.

 

여기에도 적어놨지만 태국에서 수행할 때 참 가슴에 와 닿았던 소리가 뭐냐 하면 "음식물에 혀를 데이지 않도록 하라."

탁발해와 점심때 한 끼 먹을려면 이미 싸늘하게 다 식어있습니다. 음식물이 다! 혀를 데일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큰스님들은 그러거든. "혓바닥 데이지 말고 먹어라." 처음엔 이해를 못했거든. 욕심에 혓바닥을 데인다는 뜻입니다. 감각적인 욕망, 또한 싫어하는 마음들 이런 것들이 음식을 먹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난다는 거라. 그래서 그거 데이지 않고 먹을려면 참 힘듭니다.

 

두 번째, 하나의 포인트를 잡아서 그 벗어난 마음을 제자리로 돌리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아까 콩이라고 하는 아주 조그마한 하나의 포인트를 잡아서 내가 순수하게 몸과 마음의 알아차림만 이어가지 못한다고 느껴지면, 즉각 밥 먹는 걸 중단하고 그 하나의 대상에 젓가락질을 하도록 한번 해보십시오. 틀림없이 손가락이 떨리든지 아니면, 그 겨냥하는 것이 벗어나든지, 집는 상태에서 명확하게 집히지 않고 떨어져버리든지, 다 그렇게 되게 돼있습니다. 벗어난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집중하고 겨냥하고 알아차리고, 이런 반복된 훈련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모르게 내 수행이 요만큼 쑥 자라있습니다.

 

수행은 간단한 겁니다.

대상이 나타날 때마다 가장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현재의 순간에 가장 두드러진 대상, 몸의 감각적인 대상이든, 마음의 대상이든, 또 정신적인 대상이든 어떤 것이든 알아차리고 마음이 그 대상에 딱 달라붙는 겁니다.

 

'위빳사나(vipassanā)'의 '빳사나(passanā)', 알아차린다고 하는 것은 '아누빳사나(anupassanā)' 뒤에서 딱 달라붙어서 알아차린다. 알아차리는 마음이 대상의 바로 뒤에 붙어서 일어나야 된다는 뜻입니다. 명칭을 붙여서 알아차릴 때는 '손을 뻗음' 할 때 손을 뻗음과 동시에 바로 명칭이 달라붙어서 나타나야 된다는 거라. 이게 갭이 있을 거 같으면 어그러져 버린다는 거라. 바로 붙여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훈련할 때는 항상 마음이 앞설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는 마음이 앞서서 현상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에 수행할 때는 절대 마음이 대상을 앞서나가지를 못합니다. 그리하더라도 최대한 대상에 마음을 바짝 뒤에 붙여가지고 따라갈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런 마음이 없으면 대상을 자꾸 놓쳐버립니다. 쉼 없이 바로 대상 뒤에 밀착해서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나에게는 정신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아따삐(ātāpī)'라고 하는 얘기 들어봤죠. 열정적이다. 그 아따삐라고 하는 것은 대상을 바로 쫓아가면서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생겨나집니다. 여러분들도 가만히 한번 보십시오. 열정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자꾸 움직여야 되고 뭐든지 찾아나서야 됩니다.

대상 뒤에서 바로 붙여서 나갈려면 이런 열정적인 부분이 없으면 대상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대상은 아주 잠깐 일어났다가 사라져버립니다. 아주 잠깐 일어났다가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니까 잠시라도 알아차리지 않으면, 알아차림을 놓쳐버리면 대상을 놓쳐버린다는 겁니다. 바로 찾고 뒤에 붙어서 따라갈려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대상을 놓쳐버립니다.

어린아이가 한눈 팔다가는 엄마 뒤에 붙어서 못가. 엄마 뒤꽁무니만 자꾸 보고 따라가야 만이 엄마 안 놓치고 그 많은 사람들 틈을 헤치고 나아갈 수가 있는 겁니다. 딱 꽁무니만 자꾸 볼려고 해야 됩니다. 하나의 마음은 하나의 대상만 알아차려 나가야 되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마음을 항상 민첩하게 빠르고 활발하게 현상들을 알아차릴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애써서 내가 노력한다는 마음이 일어날 때 이때 인제 수행이 시작이 되어나갑니다. 그때야만이 나타나는 대상을 바로 그 순간순간 알아차려 나갈 수가 있게 됩니다.

마음이 활발하게 작용하지 않고 또 '아! 내가 오늘 그만두고 내일하지' 그럴 거 같으면 어떻게 돼? 금방 식어버립니다.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리고 대상도 놓쳐버립니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 당장 내 꽁무니에 불이 붙어있는데 그 불을 꺼야 된다는 생각을, 시급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아따빠' 열심히 열정적으로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대상을 알아차려 나가야 만이 잡스런 것들이 일어나질 않는다는 겁니다. 근심 걱정이나 불안이나 이런 것들이 수행의 장애 요인으로써 작용을 하지 않고 오히려 수행을 도와주는 정신적인 힘들이 더 생겨나가게 됩니다. 대상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분투하는 마음을 자꾸 길러야 됩니다. 자신의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 줄려고 해야 됩니다. 자꾸 북돋아 주는 마음들이 있어야 됩니다.

 

언젠가 스님이 그랬죠. 알아차림은 간단한 것이다.

약간의 떨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하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 떨림이 뭡니까? 바로 대상을 붙여서 알아차려 나갈려고 하는 것들이 떨림의 현상으로 나타나지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해야 만이 마음이 식어버리지 않고 알아차리는 마음으로 인해서 노력하려고 하는 마음들도 생겨나고, 그 마음이 사띠-알아차리는 것을 강화시켜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띠가 벗어나지 않게끔 해줍니다.

그리해야 만이 마음챙김이 갖춰지지 때문에 집중하는 것이 생겨납니다.

그런 집중으로 인해서 나태나 게으름이나 여러 가지 번뇌가 침입하는 걸 갖다가 막아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뭡니까? 집중력, 겨냥하는 것, 노력하는 것, 또 붙여서 나아갈려고 하는 열정적인 것, 이 모든 걸 계발시켜줄 수 있는 대상은 하나의 포인트에 젓가락질을 하는 것! 이거 이상 좋게 빨리 계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속적이고 안정된 알아차림을 지니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거는 필수불가결하게 갖춰져 나가야 됩니다. 그 노력의 힘을 쭉 유지시켜 나갈려고 할 거 같으면 내가 바르게 대상을 겨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어난 대상 대상,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그 대상을 든든하게 겨냥해주는, 받쳐주는 힘이 없으면 또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만이 내가 충분히 알아차림을 계발시켜 나가줄 수 있다는 겁니다. 떨어지지 않게!

그걸 뭐라 그럽니까? '사띠마(satimā)'라고 그럽니다. 벗어나지지 않고 충분하게 필요충분하게 사띠가 계발되어나가는 상태! 그거는 그런 하나의 대상으로써 충분히 가능한 겁니다.

 

수행은 어떤 면에서는 간단한 부분입니다. 이런 대상들을 여러분들이 놓치지 않도록 그렇게 하면 됩니다.

다음 시간에 일상생활에서 하는 것 중에서 중요한 부분에 대한 것들을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상생활 부분이 끝나고 나면 그다음에는 여러분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삼빠자나(sampajāna)!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