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정진/위빳사나 수행과 알아차림

팔정도..

담마마-마까 2013. 5. 13. 22:48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고귀한 진리(道聖諦)>


그러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고귀한 진리란 무엇이냐?

그것은 여덟가지의 성스러운 길이니.

즉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 그것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정견이란 무엇이냐?

괴로움에 대한 바른 견해․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바른 견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바른 견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한 바른 견해,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바른 견해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정사유란 무엇이냐?

욕심이 없는 생각, 분노가 없는 생각, 해함이 없는 생각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바른 생각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정어란 무엇이냐?

거짓말을 멀리 하는 것, 험담을 멀리 하는 것, 거친말을 멀리 하는 것, 잡담을 멀리 하는 것,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바른 말이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정업이란 무엇이냐?

살생을 멀리 하는 것, 도둑질을 멀리 하는 것, 삿된 음행을 멀리하는 것,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바른 행동이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정명이란 무엇이냐?

잘못된 생활 방식은 버리고 올바른 생활 방식을 영위하는 것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바른 생활이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정정진이란 무엇이냐?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행이나 선하지 않은 법은 일어나지 않도록,

의욕적으로 노력하고 매진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악행이나 선하지 않은 법을 버리기 위해,

의욕적으로 노력하고 매진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법이 일어나도록 의욕적으로 노력하고 매진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선한 법들을 계속 머물게 하고 흩어지지 않게 하고 더 자라나게 하고

무르익게 하며 계발하여 완전히 성취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노력하고 매진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바른 노력이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정념이란 무엇이냐?

여기서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해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하고 분명히 이해하며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에서 벗어난다.


느낌에 대해서는 느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하고 분명히 이해하며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에서 벗어난다.


마음에 대해서는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하고 분명히 이해하며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에서 벗어난다.


법에 대해서는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하고 분명히 이해하며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에서 벗어난다.

신․수․심․법에 대해서 바로 보고 지내며,

분명한 이해와 염처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없앤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바른 마음챙김이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정정이란 무엇이냐?

수행자는 감각적인 욕망에서 벗어나고 착하지 않은 현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사색과 사려, 기쁨과 즐거움을 동반한 초선을 구족하여 지낸다.


사색과 사려가 적정해지고 안으로 고요함을 얻어서 사색과 사려가 없이 안온함을 얻어

집중되어 기쁨과 즐거움을 동반한 제2선을 구족하여 지낸다.


기쁨에 대한 탐착을 떠나서 담담함을 얻으면 지속적인 주시과 명확한 이해를 행하면서 지낸다.

그러면서 몸으로 묘락을 체함한다.

성인은 이것을 일러 ‘담담함을 얻은 자는 지속적인 관찰로 묘락을 즐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제3선을 구족하여 지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즐거움도 떠나고 괴로움도 떠나서 마음의 기쁨과 마음의 슬픔도 이미 소멸되어

불고불락(不苦不樂) 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 4선을 구족하여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바른 선정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고귀한 진리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에 대해서는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그래서 이해의 정도와 관찰의 정도에 따라서

‘이것이 법이다’라고 명확한 알아차림이 확립된다.

그는 세상의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초연하게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사성제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