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테라와다불교의 진심 : 담마스쿨

제2차 결집 (20070920)

담마마-마까 2020. 10. 18. 14:20

* 제2차 결집 (20070920)

https://youtu.be/Ihk9kZ2ocTo

youtu.be/3SEnUDQ2xxs

 

자, 저번 시간에 이어서 제2차 결집입니다.

2차 결집은 부처님 열반 후, 불멸 후 100년 후에 웨살리라는 마을에서 일어나지게 됩니다. 프린트물 다 보시기 바랍니다이.

십사(十事) 논쟁이라고 그렇게 얘기도 합니다. 열 가지 계율 조항에 대해서 잘잘못을 분명하게 가리고, 더불어서 경전, 경장까지도 다시 한번 더 합송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 제2차 결집입니다. 아주 소소한 겁니다. 거기에도 예를 들어놨지만 병들었을 때 적은 양의 술을 마시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 오전 중에 식사는 몇 번이라도 해도 괜찮지 않느냐 하는 거하고, 금은(金銀)은 저축해도 괜찮지 않느냐 하는 거하고, 아주 소소한 것들입니다.

 

알콜 예를 들어봅시다. 만약에 요구르트를 탁발을 받았다. 금방 이게 발효돼버립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술이 돼버리죠? 오전 중에는 요구르트를 먹을 수 있는데 이게 술이 되고 나서는 요걸 먹어도 되나, 말아야 되나? 어찌해야 돼요? 내가 분명히 탁발 받을 때는 요구르트였는데 먹을라고 보니까 요놈의 요구르트가 술이 돼있다, 우째 해야 됩니까? 먹어야 돼요? 먹어야 된다, 안 먹어야 된다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 어쨌든 먹을라 할 때는 술이란 말이라 그럼 안 된다 하는 사람도 있을 거란 말이라. 이런 거라. 어떻게 보면 아주 소소한 거라.

그러면 먹어도 된다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어? 먹지마라 할 거 같으면 어때요? “왜 안 되는데? 왜?” 할 거 아니라.

먹을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먹지마라 하는 사람들이 “왜 먹는데 왜? 그 알콜을 왜 먹는데?” 이럴 거 아니라.

 

여기서 근본 분열이 생겨나버립니다. 여기서!

금은 부분을 저축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개 부분은 아주 소소한 겁니다. 그래서 어느 부파에서도 이 아홉 개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를 않았어요. 그냥 먹어도 된다, 먹으면 안 된다, 니 마음대로 해라, 상황에 따라서 해라, 하고 거의 정리가 돼나가지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은을 저축해도 된다, 안 된다는 큰 문제거든. 개인적으로 스님이 자기 소유가 생기느냐, 안 생기느냐 하는 문제로써 직결됩니다.

 

출가할 때 뭐 뭐 가지는지 아십니까? 단순하게 예를 들어봅시다. 발가벗고 있을 수 없으니까 가사, 가사 세 벌은 있어야 되죠. 그 다음에 밥 빌어먹어야 되니까 바리때도 있어야 되고, 그럼 이 가사 세 벌을 이렇게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이 가사 보면 알지만 통입니다. 쭈르르 흘러버린다는 겁니다. 묶을 게 없으면 되겠습니까? 요즘 말로 허리끈은 당연히 있어야 되는 거라. 그다음에 옷 떨어지면 기워 입어야 되니까 바늘과 실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또 필요한 것이 뭐 있겠습니까? (대답)

그러니까 밥만 먹고 살지는 못하고 물을 안 먹을 수는 없잖아 인간이. 그럼 물을 먹으려면 그냥 물을 먹어선 안 되죠? 벌레들이 있으니까 생명을 죽이게 되니까 물거름망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물을 걸러서 벌레가 없는 상태에서 먹을 수 있게, 요즘 같으면 정수기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만, 부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천편일률적으로 요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가자들이 소유해야 될 사물 팔물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물(四物)이라 할 것 같으면 가사 세 벌하고 바리때! 팔물(八物) 하면 나머지 네 가지를 더한 겁니다. 그것만 허용이 된 상태인데, 이건 아주 엄청난 문제라. 금은을 축적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는. 우짤끼라? 상좌부 입장에서는 내가 마 그 당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거는 안 된다고 할 거라. 이거는 큰 문제로 번져나갑니다.

부처님은 이미 계율 상으로 사물 팔물을 정해놨단 말입니다. 그럼 그걸 벗어나버리는 경우, 그럼 계율 자체를 바꿔야 된다는 얘깁니다. 봇물이라고 하는 거는 하나가 터지면 두 개가 터지고 세 개가 터지고 끊임없이 터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상좌부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겠어요? 당연히 안된다. 그럼 이때까지 취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어쩌겠습니까? 내놓기 싫으면 어떻게 해요? 그럼 그 말을 안 듣는 거지. 너는 그리 정해놓든 말든 나는 할 건 한다고 하는 거라.

 

2차 결집이 근본분열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그전까지는 합의가 다 됐는데 여기서는 합의가 안 되는 거야. 합의가! 그러니까 이 열 가지 부분은 틀렸다 하고 상좌부에서 쳐버렸단 말입니다.

나는 못 받아들이겠다. 하는 쪽이 생겨나버리게 되는거라. 당연히 못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의 무리가 많을 거 같으면 어떻게 되요? 그러면 당연히 못 받아들이겠다 하는 사람들하고 분리돼가지고, 자기들 나름대로 지금 현재는 계율이 요렇게 요렇게 돼있으니까 그걸 바꿔야 될 거 아니라. 안 바꾸고 자기들 것을 합리화시킬 수가 없잖아. 그러면 자기들이 결집을 할 수밖에 없는 거라.

결집해가지고 계율 조항도 조금씩 수정하고, 경전도 요런 요런 부분들은 조금 수정하고, 번호도 요렇게 저렇게 바꿔버리고, 시작이 애초부터 그렇게 돼버리는 거라. 그렇게 한 걸 갖다가 뭐라 그러냐면 대중부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대승불교의 모태가 되었던 대중부 계통이 이렇게 생겨납니다.

 

근데 상좌부 입장에서는 일구일언(一句一言)도 못 바꾼다. 그래서 십사(十事) 열 가지 논쟁된 거는 전부 잘못이다 하면서 탁 쳐버립니다. 쳐버리고 나선 당연히 이거 이래선 안된다. 그러니까 다시 결집을 해가지고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다시 하자 해가지고, 경전부터 해가지고 다시 결집을 합니다. 그게 제2차 결집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결집이 두 개가 생겨나버렸죠? 상좌부 계통의 결집이 하나 생겨나고, 대중부 계통의 결집이 하나 생겨나고, 그렇죠? 그게 2차 결집입니다.

그러면 상좌부 계통의 전승을 따르는 사람들은 저쪽에 대중부에서 일어난 결집은 결집이 일어났다고 적지를 않는 거지.

그러면 대중부에 있는 사람들은 십사논쟁 부분에 대한 것만 약간 언급하고 결집했다는 소리는 아예 또 안 하게 되는 거라. 이때부터 각각의 부파에서 생겨나면서 기록하는 방식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는 똑같았는데 요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을 하는 거라.

 

자, 그래서 한번 봅시다이. 거기서 부파분열이 생겨나는데 18부파라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겁니다. 나중에 3차 결집인 아소까 왕의 시대 때 결집할 때까지 18개 부파로써 나눠지게 됩니다. 각각의 지말분열(支末分裂)이 돼나갑니다. 대중부에서는 대중부에서도 예를 들면 요거는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고 해가 만드는데, 그중에 또 마음에 안 드는 놈 있으면 또 분리될 끼고, 또 분리될 끼고 할 거 아니라.

상좌부는 그러면 그렇게 해가지고 탁 쳐버리고 나서 다시 결집을 했을 거 같으면 당연히 분리가 안돼야 되거든? 근데 분리가 됩니다. 여기 대중부 같이 급격하게 분리돼 가지고 200년 이내에 전체가 싹 분리되는 게 아니고, 여기는 그렇게 2차 결집을 하고 나서 100년간 또 잠잠했어. 100년간 잠잠하고 제3차 결집을 하고 나서, 분리가 됩니다. 3차 결집이 상좌부가 분리되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를 하면 됩니다.

1차 결집 때까지는 한 뭉텅이로 오다가, 그 전에 문제가 있으니까 2차 결집을 하게 된 거고,

2차 결집을 하게 되면서 두 그룹으로 분리가 되는데, 두 그룹 중에 한 그룹인 대중부가 그때부터 막 각각으로 분리가 돼나갑니다.

근데 상좌부는 2차 결집부터 3차 결집 때까지 근 100년간을 넘게 그냥 또 쭉 이어져 나갑니다.

그러다가 3차 결집 때부터 이 상좌부도 분리가 돼 나가집니다.

요렇게 정리하면 이해하기가 쉽죠?

 

자, 그러면 왜 이렇게 부파분열이 급속도로 진행이 돼나갔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왜 그렇겠습니까? 출가자 위주였기 때문에! 출가자 위주! 1차 결집 때부터 재가자는 배제된 상태에서 출가자로서 결집을 하죠. 그래서 내가 저번 1차 결집 법문 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이, 문제점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게 나중에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하고 얘기를 했죠? 그게 뭐냐 하면 출가자 위주로써 진행이 쭉 되어 나간다는 거라.

그러니까 출가 못 하는 사람들은 부처님 제자도 아니고 깨달음에 이를 수 없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반감을 가지게 되는 거고, 근데 출가자들이 잘하면 전혀 반감이 없는데 세월이 가다 보니까 다 잘할 수는 없단 말이라. 그럼 잘못될 거 같으면 “머리 깍은 중 니가 무슨 깨달음을 이를 것이냐” 하고 얘기하는 그런 꼴들이 생겨나버린다는 거라.

 

또 중요한 문제가 뭐냐 하면 출가자들 위주인데 출가자들이 잘해나갈 거 같으면 문제가 없는데, 이 출가자들이 한결같이 자기 공부하는데 바쁜 은둔생활적인 역할들을 합니다. 대중들을 위해서 법을 설하거나 하는 거는 생각도 못합니다. 근데 그거는 내가 이해를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경과 율이 전해져왔단 말입니다. 그걸 갖다가 끊이지 않게끔 상속시켜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죽어라고 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거 외워가지고 그다음 대에 넘겨주기도 바쁜데 언제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법을 설하고 그래. 못해.

스님들도 지금도 무슨 시험을 치잖아요. 무슨 맛지마니까야 하나 통과하는 시험을 친다. 우리말로 할 것 같으면 중부경전을 외우는 자격을 하나 따고 싶다. 일 년 내내 공부합니다. 아무 것도 못해요. 일 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는 거라. 중부경전 하나 하는데도 그런데 어쨌든 그놈의 거 다 외워야 되는데 머리 좋은 사람이면 이렇게 할 수 있다하지만 안 되는 거라. 그러니까 이 승원 자체가 은둔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거라. 출가자 집단인데다가 또 은둔적인 생활들을 하니까 대중들에게는 자꾸 점점 더 괴리되는 거라.

 

그런데다가 우왕들이나 신흥세력들, 상인계급들이 생겨납니다. 마 불교는 평등사상이라, 상인계급들에게는 불교의 평등사상이 얼마나 좋습니까? 진취적이고, 그리고 상인들이니까 어떻게 합니까? 내가 바라문 계급이라고 바라문하고만 얘기하고 장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상인들도 만나야 되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야 되는데, 이 바라문 사회내에서는 그게 안 되거든.

근데 불교에서는 계급타파를 했잖아. 그러니까 아무나 만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거라. 그러니까 상인들은 얼마나 좋은 종교라? 그러니까 불교에 물질적인 후원을 아낌없이 하는 거라.

왕은 안 그런 것 같아요? 왕도 자기가 왕인 것을 갖다가 내세우기 위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요? 종교집단을 이용하는 거라. 그때는 불교뿐만 아니라 자이나교, 무슨 다른 종교 다 그렇게 모셔주는 거라. 그러니까 땅도 주고, 보시물도 주고, 뭐도 주고 이렇게 하는 거라.

왕도 자기가 하는 위치를 용인해주기 위해서 땅이고 뭐고 주게 돼있는 거라. 그러니까 많이 생겨나니까 당연히 스님들은 나태해질 수밖에 없는 거라.

 

그런데다가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에 내가 죽고 나거든 사리들은 사대문에 탑을 세우고 모시라 그랬단 말이라. 그러니까 부처님이 열반하고 나서 여덟 등분으로 나눠진 사리들 어떻게 해요? 각 지역으로 배분되면서 사대문에 탑을 세우고 부처님 사리를 모셨단 말이라. 그러면 사찰 안에 존재해 있던 것이 아니란 말이라.

 

그러면 사람들이 부처님을 보려면 어디로 갔겠습니까? 그 탑으로 가게 돼있는 거라. 사찰로 가는 게 아니고. 그럼 그 탑에는 스님들이 존재한 게 아니란 말이라. 그리고 부처님이 아예 딱 잘라놨어요. 사리탑을 관리하고 하는 것은 출가자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하고 딱 잘라버립니다. 근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데에는 어쨌든 먹을 것도 생기고, 돈도 생기고 할 거 아니라. 그럼 당연히 그걸 관리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단 말이라. 그럼 관리하는 사람들은 출가자는 아닌데 그렇다고 재가자라고도 얘길 못하는 거거든. 근데 어쨌든 돈하고 조직하고 권력들이 생겨나니까 출가한 집단들이 쉽게 말하면 이게 보이기 시작하게 되는 거라. 이러면서 자꾸 문제가 발생되어 나가는 거라.

 

그런데다가 아소까 왕 때 이르게 되면 워낙 사원 경제가 윤택하다 보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출가를 하게 되는 거라. 내가 무슨 큰 뜻이 있어서 출가를 하는 것이 아니고, 옛날 우리 6.25 겪고 나서 어쨌든 절에 가면 먹을 것도 주고 공부도 시켜주고 하니까, 그래가지고 우리 조계종 역사가 왜곡된 게 굉장히 많이 안 있었습니까? 지금도 그런 문제들을 가지고 있고, 똑 그 식으로 돼나갔거든. 그렇게 된 상태에서 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거라.

그러니까 결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점점 더 만들어집니다. 그게 부처님 열반하고 나서 100년 이후에 그런 일이 생겨나고, 그게 십사논쟁이라는 형태로써 벌어져 나갑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지나고 나서 또 한 100년 지나고 나서는, 또 다른 문제로써 결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자, 어쨌든 2차 결집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

 

3차 결집을 한번 봅시다.

 

근데 참 3차 결집은 이것을 인정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부분을 가지고 참 말들이 많았습니다. 거기 보면 '2차 결집으로부터 아소까 왕이 나올 때까지 근 100년간 부파분열은 더욱더 분열이 돼버렸다.' 이렇게 돼있죠.

대중부는 부파분열이 심화되어 버렸고, 상좌부는 분열은 아닙니다. 분열은 아니고 서로가 헤어져 있는 상태가 됩니다. 설일체유부는 지금의 간다라, 페르시아쪽으로 북서쪽으로 가버린 상태고, 남서부 인도에 있는 상좌부는 그냥 상좌부의 맥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데칸고원 쪽들, 서쪽 바닷가 있는 쪽 그쪽으로 가서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리적으로도 떨어져버리면서 변질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상좌부가 분열된 것은 아니었고, 어쨌든 대중부는 더욱더 분열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게 됩니다.

 

근데 이 아소까 왕은 왕이 되고 나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합니다. 아소까 왕의 동생이 있습니다. 야사라고 하는 분인데 이분이 아소까 왕한테 가서 물어봅니다. “출가자들은 왜 출가를 하고 근심 걱정이 없게 됩니까?” 출가를 하면 왜 근심 걱정이 없게 되느냐는 거라. 그때 아소까 왕이 그럽니다. “내가 너한테 이 전인도 국토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일주일간 줄게.” 이 큰 인도 대륙을 갖다가!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에 내가 그 답을 말해줄게. 그 답을 말하는 대가로 난 널 죽여 버리겠다.

일주일 뒤에는 여러분들은 죽습니다. 지금은 전륜성왕 같은 큰 대왕이 되었지만. 어쩌겠어요? 여러분들 같으면? 누구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하지만 여러분들 같은 경우에는 내일이 아니라 일주일 뒤에 할 거 같으면 어떻게 해요? 마음껏 먹고 일주일 뒤에 죽을 거예요? 마음껏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우짤거라?

 

사람이라는 게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안 두려운 사람이 없습니다. 일주일 되기 전에 도망가버립니다. 지가 살길은 그것밖에 없어. 일주일 뒤에 분명히 답을 해주고 죽여 버린다고 했는데, 안 죽을라면 지가 일주일 전에 도망을 가는 수밖에. 도망을 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인도를 통치하고 있는 대왕인데 어디로 도망을 가? 출가하는 수밖에 없는 거라. 아소까 왕이 답해줄려고 했던 게 그거라. 생로병사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출가하는 거라. 그 답을 해줄려고 한 거라. 지가 그대로 찾아간 거라. 어쨌든 그래가지고 자기 동생도 출가를 하게 되거든요.

 

근데 ‘아소까 라마’라고 절을 하나 지어줬더만 이놈의 스님들이 만날 앉아가지고 싸움박질을 하네. 니가 옳네. 내가 옳네 하면서. 그런데다가 경제적으로도 풍요하고 하니까 아무나 출가를 하고 들어오는 거라. 그 사원에 육만 명이 운집해 있는 거라. 육만 명이 많은 것 같죠? 근데 태국에도 어느 한 절이 백만 명이 있는 절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거짓말 같죠? ‘담마까야’라는 절이 큰 행사 한번 하면요 백만 명이 넘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어느 종교를 떠나가지고, 종교뿐 아니라 다른 것을 다 떠나가지고도, 한 행사에 그렇게 모이는 것은 없습니다.

어쨌든 육만 명이 있는데 거기서 싸움 안 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만날 싸움만 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출가자들의 생명은 뭡니까? 포살입니다. 보름에 한 번씩 모여가지고, 다 모이게 돼있습니다. 다 모여가지고 부처님 계율에 대한 것, 이런 것들을 암송하게 돼있습니다. 저번에 1차 결집 때도 얘기했죠?

그렇게 하게 돼있는데, 만날 싸움박질만 하고 해싸니까 가기가 싫은 거야. 그러니까 한 그룹은 만날 싸움박질만 하니까 안가. 안가고 따로 자기들끼리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지내고.

 

그러니까 아소까 왕이 보기에는 미치고 환장하겠는 거라. 그래서 공고문을 내립니다. 한곳에 모여갖고 포살을 안 하면 다 쥑이뿐다. 그러니까 한곳에 모여가 해라. 그래가지고 공고를 해가지고 대신들을 안으로 보냅니다. 그러니까 두려운 사람들은 다 모이게 돼있을 거 아니라. 그러니까 죽일려면 죽여라. 나는 절대 못 어울린다. 저놈들 하고 어울리라면 내는 죽어버린다. 그래가지고 안가는 무리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니까 대신이 당연히 죽여버리는 거라. 막 죽이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탁 칼이 멈췄어. 어디서 멈췄겠어요? 아소까왕의 동생을 죽일려고 칼을 들고 보니까 아, 이거는 못 죽이겠는 거야. 왕한테 가서 대왕님 이렇게 이렇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아소까 왕이 그렇다고 지 동생을 죽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러면은 내가 죽일 수는 없으니까 나룻배에 태워가지고 귀향살이 보내버려라. 그 사람들 전부다 보내버려라. 그 대신에 가면서 빠져죽게 밑에다 구멍을 뚫어놔 버려라.

 

실제로 만약에 그분들이 아라한일 거 같으면 지가 공중을 날아가지고 살 거고, 그놈들이 진짜 나쁜 놈들일 거 같으면 죽어도 괜찮다. 그냥 나둬뿌라. 실제로 거기에 가서 그렇게 했는데 그 500명이나 되는 무리들이 한결같이 하늘을 날아서 다 가버립니다. 한 사람도 안 죽고. 그때사 아이고, 내가 안 죽여야 될 놈들은 죽여버리고 죽여야 될 놈들은 살려놔 버린 거라. 아첨해가지고 이거 해라 하니까 “아 예 하겠습니다.” 한 놈들 이놈들을 다 죽여야 되는데, 엉뚱한 사람들을 다 죽인 거라.

 

아소까가 죄책이 들거든. 아, 이걸 우짜면 좋느냐? 그래가지고 부른 분이 누구였냐면 목갈리뿟따 띳사라고 하는 자기가 옛날부터 왕자 때부터 스승으로 모셨던 분입니다. “스승님 내 이랬는데 이걸 우짜면 좋습니까? 내 잘못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때 이 목갈리뿟따 띳사가 그럽니다. “당신에겐 잘못이 없다. 당신은 이것을 이렇게 해라 하고 화합하라 한 것이지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부담가지지 마라.”하고 아소까 왕을 달랩니다. 그리해도 아소까 왕은 마음에 남아있는 거라.

 

아, 그렇게 간 사람들이 다들 어디로 갔냐는 거라. 카시미르고 어디고 다 흩어져갑니다. 그러니까 북서인도 쪽으로. 그래서 설일체유부가 형성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아쉬울 거 아니라? 이 사람들이 포살을 같이 하지 않으면 죽인다 했을 때 말했던 게 뭐냐 하면 분별설, 내가 가야 될 때, 안가야 될 때는 분명하게 구분한다 하고 얘기들을 합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그러고, 잘된 것은 잘됐다고 얘길 해야 되는 것이지 그것조차도 없이 하는 거는 아니라는 거라.

부처님은 분명하게 분별을 했다. 잘잘못을 분별했다는 것이 아니고 말해야 될 때와 하지 말아야 될 때, 행해야 될 때와 행하지 말아야 될 때 이런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을 했다, 분별을 했다는 거라. 알음알이를 일으키는 게 아니고. 그런데 지금 이거는 내가 화합할 때가 아니기 때문에 화합하지 않는다고 얘기한 것이지다. 그래서 그 무리들을 분별설부라고 얘기합니다. 이게 상좌부의 원류입니다.

 

그래가지고 아, 이거는 안 되겠다 해가지고 목갈리뿟따 띳사 장로를 비롯한 다른 분들에게 이 스님들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오사(五事) 논쟁이라고 해가지고 마하데와 부터 해가지고 논쟁이 되는 부분들을 갖다가 깨끗하게 정리를 좀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이 장로가 보기에 인제 그런 때가 된 것 같거든. 하도 분열돼갖고 불교 아닌 게 판을 치고 있는 거라. 왜? 아까 대중부 얘기했죠? 대중부가 100년간 여러 무리로 부파분열 돼가지고 자기 것이 서로 옳다고 싸움박질을 하고 있는 거라.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이 이거다 해도 안 먹히는 거라. 그런데다가 아소까 왕의 후원도 있고 하니까, 그래가지고 제3차 결집을 하게 됩니다.

 

3차 결집을 하게 되면서 이 대중부의 논지를 갖다가 낱낱이 조목조목 반발을 하면서 쳐버립니다. 전부 잘못됐다고! 그게 논사(論師)가 생겨난 계기가 됩니다. 이때까지는 경율(經律)만 존재를 했단 말입니다. 논장(論藏)이 성립이 안 된 상태라.

 

이때 처음으로 논장(論藏)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왜? 대중부의 여러 문제가 됐던 논쟁들을 갖다가 정리를 해서 이렇게 이렇게 해서 부처님 말씀에 틀렸다 하면서 싹 정리를 한 게 뭐냐면 이 논사(論事) 카타 왓투(Kathāvatthu)가 성립됩니다. 이미 그전부터 논장이 칠론(七論)이 있습니다. 칠론이 쭉 존재를 해왔지만 경율(經律)에는 포함을 안 시켰었어요. 부처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근데 이 3차 결집을 하게 되면서 인제 경·율·론(經律論)으로 정립이 되게끔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대중부가 부파분열을 해가지고 지말(支末)로 분열이 돼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철퇴를 맞는 격이 되거든. 지금 대중부의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설일체유부에 한두 개, 경량부에 하나, 이런 정도지 자료들이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 영향이 어디에 있느냐면 제3차 결집으로 인해서 철퇴를 맞아버리니까 당연히 세력이 약화 될 수밖에 없는 거라. 그렇다고 해가지고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걸 모태로 해가지고 대승불교가 흥기가 돼나갑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불탑신앙과 결합되면서. 그러니까 철퇴를 맞은 사람들은 어떻게 돼요? 이때까지 지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옷을 벗고 나가야 되는 거라. 그러니까 재가인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중이 재가인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할 일이 뭐 있겠어요? 뭐하고 살겠어요? 불교 가지고 먹고 살아야 되는 거라. (질문)

환속을 해도, 불탑에 의지해가지고 살든지, 아니면 불교 팔아가지고 요즘 말로 할 거 같으면 점쟁이 해가 살든지, 아니면 뭐 불교 가르친다고 하면서 강사질 하면서 살든지, 뭐 어떤 식으로든 살 거 아니라? 그런 걸 얘기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지고 출가생활 못지않게끔 명성도 얻게 되고, 내가 옛날에 출가생활 다 해봤는데 하면서 출가생활하는 사람들을 깔보게 되게 돼있고 안 그렇겠습니까? 대승불교가 그래서 생겨나가집니다.

 

시간이 오늘은 넘어서 불멸전도는 다음 시간에 얘기를 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