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와-다(Theravāda) (20071004)
밑에 있는 「테라와다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부분이 아닙니다. 저번 시간까지 1차, 2차, 3차 결집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부파불교는 지금 현재 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대승불교가 태동하면서 소승이라고 폄하했던 것들은 부파불교들입니다.
남방상좌부 테라와다불교 라고 하는 것은 부파불교하고는 차원이 다른 부분들입니다. 아예 애초부터 길이 틀린 부분들입니다. 그 정통적인 맥을 꼿꼿하게 이어온 것이고 부파불교나 대승불교하고는 전혀 무관하게 하나의 계통을 지금까지 쭉 가지고 내려왔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소승불교라고 하는 거하고는 개념이 다르다는 사실을 저번 시간까지 얘기를 했습니다.
어쨌든 처음 불교가 태동하고 나서 그 불교가 변형된 형태로서 나타나는 것이 대승불교입니다. 그로 인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을 하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순수한 대승불교라기보다는 범신적인 신앙인 힌두교의 신앙이 옷을 입고 불교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순수한 대승의 사상보다는 기복적인 사상들이 본질을 벗어나서 사상으로 옷을 입기도 하고, 또 하나의 맥(脈)일 수밖에 없는 선불교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전체인 것처럼 도배를 해서 "오로지 선(禪)만이 최고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면서 불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남방테라와다 불교라고 하는 것은 그런 변형이 전혀 없었고, 사상적인 면들이나, 종교적인 면들이나, 또 계통적인 면들이나 이런 변형들이 전혀 없이 빨리어 경전을 암송하면서 부처님의 수행법인 위빳사나(vipassanā) 수행을 실천하면서 이렇게 쭉 넘어왔습니다.
그런 불교를 통상적으로 우리는 테라와다 불교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처음 태동 때부터 장로들에 의해서 계승되어 왔고, 그러한 것이 맥이 끊어짐 없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지금까지 전해졌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 것이 테라와다 불교인데, 빨리어로 '상가라마(Saṅghārāma)' 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스님들이 머무는 곳이란 뜻입니다. 상가(Saṅgha) 승려들이, 라마 아라마(ārāma 승원) 해가지고 머무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테라와다(Theravāda)이든 아니면 대승 마하야나(Mahayana, 大乗仏教)이든 이런 불교가 지켜지고 계승되어 와지고 또 퍼져나가는 장소는 보통 상가라마 입니다. 여러분들이 가람(伽藍)이라고 하는 단어를 쓰죠? 가람이 상가라마라고 하는 것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런 사찰에 대한 것들을 테라와다의 의미를 보면서 여러분들이 잘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보통 이런 곳의 기능으로써는 수행하는 기능, 수행처로써의 기능이 있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법을 전하는 곳으로써의 기능입니다. 불교신도들의 궁극인 목적은 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수행이고, 그 수행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수행처입니다.
그러니까 절이라고 하는 개념은, 가람이라고 하는 개념은 수행을 하는 장소로써의 기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여기도 ‘붓다의 길따라 선원’ 저기도 무슨 선원, 무슨 선원 이렇게 합니다. 통상적으로 보면 그런 수행처로써의 기능은 번잡한 곳을 피해가지고 수행할 수 있는 곳을 얘기합니다.
보통 그걸 빨리어로 쓰면 '아란야(arañña)' 라고 그럽니다. 아란야라고 하면 인적이 드물고 하는 그런 곳들을 얘기합니다. (질문) 보통 아란야라고 할 것 같으면 수행처를 얘기합니다.
근데 수행처의 기능 뿐아니라 상가라마 라는 것은 법을 전하는 곳이라는 기능을 또 가지고 있습니다. 근데 법을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대중들하고 더 가까이 있는 곳이 되어야 됩니다. 어떻게 보면 사찰이 교육을 담당하고 문화를 담당하는 그런 장으로써의 역할을 할려고 할 것 같으면 일반 대중들하고 되도록이면 가까이 있어야 됩니다. 두 개가 어떻게 보면 반대방향인 것 같은데도 두 기능을 같이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곳이 수행처로써의 기능만 할 것이냐, 아니면 전법처로써의 기능을 할 것이냐에 따라서 장소를 달리하기도 합니다.
수행처로써의 기능만 할 것 같으면 저 멀리 인가하고 떨어진 암자에서 무슨 선방이라는 형태를 취해서 사람들 출입을 금하고 이렇게 해서 하게 되고, 전법처로써의 역할을 할 것 같으면 포교당 형식으로 도심에 사람들 있는 곳에서 있으면서 내내 법만 설하게 되고 그런 기능들을 하게 됩니다.
수행처로서의 기능을 할 것 같으면 아무래도 숲속, 고요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곳, 그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오히려 불편하니까 되도록이면 그런 곳이 아닌 곳을 찾을려고 하게 되고, 또 전법처로써의 기능을 할 것 같으면 그 반대방향으로 건물이 도심에 위치해야 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편해야 되는, 그런 주차공간이나 도로 공간이나 이런 것들이 다 확보된 그런 곳들을 갖춰야 되고, 그래서 이 두 개의 기능 중에 어떤 기능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테라와다(Theravāda)라고 하는 말 자체에서 나타나듯이 장로들을 따라가는 것이 이 테라와다 입니다.
무조건 길을 갈 때 뒤에 졸졸졸졸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당도하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장로들이 해왔던 길들을 살펴보면 이 두 기능이 복합적으로 항상 나타나있습니다. 수행은 수행대로 하고, 또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은 또 법을 설하고, 이렇게 두 기능을 동시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래서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 법을 전하지 않고, 나는 수행한다고 문을 닫아놓은 적도 없고, “내가 지금 몸이 아프니까 다음에 온나” 하면서 방문을 걸어 잠그는 일도 없다는 거라. 또 수행에 방해된다면서 사람을 내치는 경우도 없다는 거라.
그러면 사찰의 기능도 이와 마찬가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하는 곳과 법을 전하는 곳으로써의 기능을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담마를 듣는 기능을 일부를 하고 나면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수행이라는 거라.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또한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담마를 배우고 익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그걸 보고 부처님은 "수레의 양 바퀴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두 기능을 동시에 가지 않을 거 같으면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 집회가 있을 거 같으면 나가고, 또 혼자서라도 수행할려고 하는 것들을 겸해나가야 되고, 그것이 어떻게 보면 불교신도가 나아가야 될 길이고, 또 출가자들이 나아가야 될 본분입니다.
테라와다 라고 하는 것은 이와 마찬가집니다. 이런 역할들을 부처님 당시 때부터 끊임없이 변형되지 않고 해왔습니다.
그런 것들이 오래되었다 해서 낡은 것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더 순수한 것들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가르침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테라와다 불교를 배울 수 있다는 것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또 배워나가 주기를 바라겠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에 대한 것들은 그렇게 어려운 부분이 아닙니다. 그다음 시간에 해야 되는 게 「테라와다의 진심」 부분입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뭘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냐 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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