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테라와다불교의 진심 : 담마스쿨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의 진심 (20071011)

담마마-마까 2020. 10. 18. 14:23

*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의 진심 (20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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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와다(Theravāda) 불교의 진심 부분입니다.

테라와다 불교는 무얼 말하고자 하는가? 왜 그러면 고집스럽게 하나도 바꾸지 않고, 변형되지 않고, 그렇게 2,550년간을 이어 왔느냐 하는 겁니다. 뭔가 '이 테라와다가 최고다' 하는 생각만 가지고 이렇게 온 것은 아닐 거란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 한번 생각해 본 사람 있습니까?

바꾸는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라도 변형했을 때 오는 위험들을 너무나 절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부처님 말씀 그대로, 그리고 하나도 변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상태로써 전하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다 라고 초기 때부터 판단을 내려왔던 겁니다.

 

그 빨리어로 된 테라와다 불교가 인제는 스리랑카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근데 스리랑카에서 처음으로 구전으로 전해왔던 것을 문자로 기록을 하게 되죠!

스리랑카는 옛날에는 '땀바빠니' 라고도 얘기하기도 하고 요즘도 '세일론' 그렇게 얘기하죠? 세일론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질문) 예, 실론이 아니고 세일론(Ceylon) 입니다. 실론은 영국식 발음입니다. '스리' 찬란하다는 뜻이죠. '찬란한 랑카 섬' 스리랑카 그렇게 얘기합니다. 어쨌든 남방불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해서 그것이 테라와다 불교가 전승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던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마힌다(Mahinda)를 비롯한 네 명의 비구와 추종자들이 그곳으로 넘어가집니다.

마힌다를 비롯한 네 명의 비구가 온 이유는 계를 설할 수 있는 것은 다섯 명 이상이 되어야 수계를 할 수가 있습니다. 수계조건을 갖추는 것은 물론 열 명, 스무 명 돼도 좋지만 '삼사이증(三師二證)' 입니다. 그래서 세 명의 스승과 두 명의 증명하는 비구스님이 있어야 만이 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건 부처님 당시 때부터 그렇게 형성돼갑니다. "에히 비구(Ehi bhikkhū)"라 해가지고 "이리오너라 비구여!" 그러면 출가가 됐다가,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띠사라나 비구(Tisaraṇa bhikkhū)" 라고 해가지고 삼귀의 삼창을 하면 비구가 됐다가, 그러다가 뒤에 정착된 게 "우빠삼빠다 비구(upasampadā bhikkhū)"라 해가지고 완전하게 삼사이증이 있어야 만이 출가하는 비구가 되는 것이 부처님 당시 때 형성이 돼나갑니다.

그게 쭉 바뀌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마힌다를 비롯한 네 명의 비구가 왔다는 그 다섯 명이 중심으로 해서 추종자들과 같이 건너왔다는 것은, 일단 승가가 새롭게 이어질 수 있는 근거들을 형성해나갈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때 세일론에서는 데와남삐야 띳사(Devānaṃpiya Tissa)라고 하는 왕이 도읍을 갖다가 아누라다뿌라(Anurādhapura)에다가 두고 있었습니다. 이 왕하고 대화를 통해가지고 마힌다 장로가 여기에 불교를 뿌리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최초로 사원을 세우는 게 '마하 위하라(Mahā VIhāra)'라고 하는 대사(大寺)를 건립을 하게 되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 불교가 순조롭게 발전돼나갑니다. 그런데 거의 200년간은 전통적인 테라와다 불교만 존재를 해왔는데, BC 1세기 정도가 되면 이 세일론 불교에 새롭게 문제가 생겨나갑니다.

'아바야기리(Abhayagiri)' 라고 하는 사원(Vihāra)이 생겨나면서 문제가 불거져 나갑니다. 보통 무외산사(無畏山寺)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 대사하고 무외산사하고 두 파로 나누어 가지고 치열하게 싸움을 했던 게 스리랑카 불교사입니다. 거의 약 1,300년간을 그렇게 싸우다가 결국에는 정통적인 대사쪽에서 모든 것을 장악을 하게 되고, 무외산사 쪽은 역사의 자취를 감추어버리게 됩니다. 어쨌든 BC 1세기 때도 무외산사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는데, 생겨나는 게 참 재미가 있습니다.

대사쪽은 마힌다 장로를 통해서 들어온 제자들이었는데, 처음에는 이 대사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이 불교로 이루어졌는데, BC 1세기 때 그때 세일론 왕이었던 바타가마니 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이 인도의 타밀 세력들에 의해서 침공을 받아서 몰리게 됩니다. 몰리게 되는데 왕은 급격하게 공격하자고 그러고, 대신들은 아니다 좀 시기를 두고 천천히 공격하자 이래가지고 서로 싸움박질하다가 대신들이 “에이, 저 왕을 못믿겠다” 해가지고, 대신들이 몽땅 타밀한테 항복하러 가는 때입니다.

 

그러다가 마하 띳사 라고 하는 스님이 있는 곳에 머물게 됐는데 “어디 가시오?” 하고 물어보니까 그 타밀족한테 항복하러 간다 하고 얘기하니까 그때 마하 띳사 스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타밀은 여러분들 알다시피 힌두교도입니다. 우리들은 왕을 비롯한 우리 스리랑카 사람들은 지금 불교도들이란 말이라. 지금도 타밀(Tamil)족하고 싱할라(Sinhala)족하고 힌두교하고 불교로 나누어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역사가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이 됩니다.

 

자, 띳사 스님이 대신들한테 물어봅니다. "왕을 비롯한 우리가 이 불교를 세세생생 전할 수 있겠소? 아니면 타밀사람들이 이 불교를 세세생생 전할 수 있겠느냐?"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타밀 사람들은 당연히 불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불교를 말살해버립니다. 그러면 당신들 대신들이 타밀에게 가서 항복한다는 거는 이 나라의 정신적인 지주인 불교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냐?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할려고 하느냐? 대신들도 그때사 정신이 번쩍 듭니다.

왕이 싫어서 한 것이지만은 결과적으로는 그 나라를 유지해왔던 중심적인 것들을, 그러니까 자기를 부정하는 경우가 돼버리는 것이 됩니다. 싱할라족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와 떨어질 수 없는 민족이었고, 그런 전통적인 맥을 이어왔던 종족입니다. 아소카왕부터 해가지고 이렇게. 그런데 내나라 내땅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살 수 있겠느냐 하는 얘기하고 마찬가지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대신들과 같이 이 마하 띳사 장로스님이 왕에게 가서 잘 화합을 해서 결국은 이 타밀족들을 몰아내게 됩니다. 그래서 왕과 대신들이 마하 띳사 스님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지어준 것이 뭐냐 하면 이 ‘아바야기리 사원’입니다. 그걸 지어줄 때까지는 별로 문제가 없었어요.

 

이때까지는 사원을 지어주든 아니면 조그마한 수행처를 지어주든 개인 이름으로 지어준 적이 없습니다. 상가의 이름으로, 스님 전체에게 이 시주물을 보시하는 형태인데 이 아바야기리를 하면서 마하 띳사 스님 개인으로 지어주게 된 거라.

그러니까 이 대사파 쪽에서는 당연히 그걸 문제화합니다. 부처님이 비구들은 사유물을 가지지 마라 했는데 거기에 어긋난다, 이것은 잘못됐다 하면서 갈마(羯磨)를 해야 된다 하고 얘기를 해서, 그 스님들끼리 의논해서 갈마한 내용이 뭐냐 하면 “출사하라.” 요즘 말로 할 것 같으면 그렇게 해서 개인이 소유를 했다 하면 그거는 어긋나기 때문에 “옷을 벗고 나가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리하든 말든 간에 이 띳사 스님 같은 경우에는 워낙 성품이 온화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잘못했다”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근데 문제가 뭐냐 하면 이 띳사 스님의 제자 한 분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건 좀 너무했다 하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무리들을 이끌고 아바야기리 사원으로 가서 다시는 대사 사원쪽으로는 돌아오지 않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아바야기리 사원쪽으로 또 모이게 되고, 그러니까 마하 위하라 대사파 쪽에서는 그 상좌스님을 문책합니다.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 일일이 열거해가지고 하는 문책이 있습니다. 그 잘못만큼만 참회하도록 하는 게 있는데 그렇게 하라 했는데, 율장에 맞게끔 얘기한 겁니다. 이 스님은 “나 못하겠다”하고 튕겨버리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래가지고 결국은 이 대사파(大寺派)하고 무외산사파(無畏山寺派) 하고는 골이 깊어져서 다시는 이어질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여기까지만 되어도 괜찮은데, 부처님 말씀에 대해서 경전도 다 똑같았고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감정의 골만 깊었다는 것 뿐인 것이지.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대사는 장로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아바야기리 쪽에는 다른 파들이 막 들어옵니다.

인도에서 쫓겨난 담마루치 장로를 비롯한 독자부(犢子部)가 아바야기리 사원에 머물게 되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독자부 같은 경우에는 어떤 형태들이 있느냐면 부처님 말씀하고 완전히 다른 내용들을 얘기합니다. 부처님은 무아(無我)라고 얘기했는데, 영혼이 있다, 아(我)가 있다 하고 얘기하고. 인도에 오래도록 있다 보니까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무아사상이 엷어지면서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거라. 또 어떤 게 있냐면 아라한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이런 식의 내용들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좌부불교 대사파쪽에서 보면 참 말이 안 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다가 또 좀 있으니까 또 다른 인도에 있던 부파불교들이 넘어와서 아바야기리에 머물게 됩니다. 방광부 부터 해가지고 부피 무슨 파 해가지고 이렇게 쭉 머물게 되다가, 하도 그렇게 되니까 사상적으로 굉장히 문란한 상태가 됩니다. 아바야기리 무외산사파쪽에서는. 그래서 무외산사파에서는 또 서로 싸움박질해가지고 한 파가 분리해 나갑니다. 제따와나파가 하나 또 생겨납니다. 그래서 스리랑카에 세 개의 파가 존재를 하게 되는 상태까지 됩니다.

 

그러다가 인도에서 새롭게 대승불교가 태동되니까 대승불교가 스리랑카로 넘어와 가지고 아바야기리파 하고 제따와나파에 같이 섞여서 있게 되니까, 이쪽 대사파 쪽에서는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이것은 어떤 것이 부처님이 말한 원래의 가르침이고 어떤 것이 틀린 가르침인지 분간을 못할 상태까지 이르르게 돼버리게 됩니다. 하도 정신이 없게 되니까 아, 이래선 안되겠다. 다시 결집을 해가지고 분명하게 다시 부처님 말씀을 고정해둬야 될 필요성이 있겠다 하던 찰나인데, 이 나라에 큰 기근이 듭니다.

 

비가 안 와가지고 온 초목이 다 말라비틀어지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이 스님한테 탁발 올릴 것은 둘째 치고 자기들도 먹을 게 없어지니까 서로 잡아먹는 형태가 돼버립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눈이 뒤집어져버리면 스님이라 해서 못 잡아먹을 이유가 없게 됩니다. 스님도 잡아먹는 경우가 생겨버리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요즘도 그러죠. 버마 얼마 전에 민주항쟁 일어났는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님도 필요 없으니까 스님도 쏴 죽여야 되는 거라. 기근이 들어서 그런 상황까지 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많은 스님들이 죽음을 당하고 경전을 전승해서 내려오는 것이, 스님들이 전승해서 오는 방식은 틀립니다이. 어느 한 부분을 전승해서 넘어가고 넘어가고 넘어가고 이런 식으로 돼나갑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그 파들이 없어져버릴 것 같으면 그 경전은 사라져버리게 되는 거라. 전승 경전의 형식은. 그래서 율장 중에 어느 한 부분이 그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그 율장을 외우고 있는 스님이 한 분밖에 안 남은 상황이 돼버린 거라.

 

이 스님이 죽어버릴 것 같으면 인제는 삼장(三藏)이 제대로 구전전승 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르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닥칠 위험을 갖다가 감지를 해내고 아, 이제는 구전전승의 방식이 불가능해졌다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여러 가지 앞의 사정하고 겹쳐지면서 제4차 결집을 하게 됩니다.

 

그 4차 결집은 뭐냐 하면 바로 필사(筆寫) 하는 것!!!

경을 기록하는 방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스리랑카의 맛달리 라고 하는 곳에 알루위하라 라고 하는 사원이 있습니다. 거기 모여서 정법의 보존을 위해가지고 주석서를 포함한 삼장 전체를 필사합니다. 경(經) 율(律) 론(論)을 비롯해서 앗타띠까(Attha tika)까지 그 주석서, 복주석서 까지를 전부 필사를 합니다.

근데 참 재밌는 게 경율론(經律論)은 빨리어를 싱할라어로 기록하고, 주석서는 그냥 싱할라 말을 그냥 싱할라어로 기록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경율론 외에는 부처님 말씀은 아니다 하고 분명하게 표시를 해놓은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5세기 때 붓다고사라는 스님에 의해서 주석서까지 빨리어로 표기를 하게 되기는 됩니다. 어쨌든 분명하게 부처님 말씀과 부처님 말씀이 아닌 것을 이렇게 구분을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근데 원래 빨리어라고 하는 것은 글자가 아닙니다. 말입니다.

말이기 때문에 기록을 할 때는 글로써 기록을 해야 됩니다.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싱할라 말로 기록을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기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싱할라 말로 기록을 해놓더라도 그거는 빨리어 말이기 때문에 어떻게 됩니까?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죠?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예를 들어봅시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빨리어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럼 한글로 [ 나 모 땃 사 바 가 와 또 ] 이렇게 적어놨다. 빨리어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압니까? 읽기는 읽겠죠 한글로 적어놨으니까. 근데 이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잖아. 그렇죠? 이와 같이 빨리어를 기록을 했다는 겁니다. 싱할라말로 적었더라도 싱할라말로 해석을 해가지고 [그 분, 존귀하신 분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신 분] 이렇게 적어놓는 게 아니고 그냥 부처님 때 쓰던 언어 그대로 [나모땃사] 이렇게 적어놨단 말이라. 경율론 삼장은 그렇게 적고 주석서 같은 경우에는 그걸 해설해가지고 자기 나라말로, 쉽게 말하면 [그 분, 존귀하신 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렇게 기록을 하게 됩니다. 인제 이해가 됩니까?

 

어쨌든 그 기록으로 인해가지고, 그리고 세일론에서의 그 극한적인 상황에서 전혀 왕이나 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수하게 불교도들이 발의해서 이루어진 결집입니다. 1차, 2차, 3차 결집은 외부적인 요인들이나 아니면 굉장한 후원들을 입고 결집을 했지만, 제4차 결집은 그런 것하고는 판이하게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아마 이렇게 기록이 되지 않았으면 지금 여러분들이 이렇게 스님을 통해서 부처님 말씀을 배울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여러분들은 스리랑카에 다 빚을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그 부분에 대한 얘기를 여러분들 (프린트물에) 적어놓았습니다.

 

아, 그러다가 아까 무외산사 하고 제따와나파 하고는 나중에 하도 자꾸 이설들이 섞여나가고 하니까 4차 결집 때 이미 떨어져 나갑니다. 인도에서 상좌부에서 대중부로 떨어져 나가고 해서 대중부가 나중에 대승불교로 발전된 것과 마찬가지로 스리랑카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집니다. 그래서 떨어져나가고 하다가 결국에는 11세기 때 완전하게 다 자취를 소멸해버립니다. 그렇지만 이 상좌부불교의 흐름인 대사파는 지금까지도 쭉 그대로 유지를 해나갑니다.

물론 대사파 쪽에서 세력이 약해서 승려들이 없을 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버마로 가서 스님들 초청해 와서 다시 또 잇고, 아니면 태국으로 가서 스님들 초청해 와가지고 또 하나의 파를 잇고, 이렇게 해가지고 결국에는 지금 스리랑카에는 세 개의 파가 존속을 하고 있는 상태가 됩니다. 세 개의 파가 있다는 건 다 대사파 쪽의 갈래들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빨리어 삼장을 지금까지도 이어지게 됩니다.

 

그게 가능했던 게 버마 같은 경우에는 12세기 때 가서 불교를 다시 또 전해왔단 말입니다. 그러면 버마 같은 경우에는 12세기 이전에 이미 불교가 들어가 있었고 그렇습니다.

물론 붓다고사라고 하는 분을 버마에서는 버마 사람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타톤 지방이라 해서 버마의 남쪽 지방에 있던 스님이 스리랑카로 넘어가서 그렇게 일을 했다 하고 얘기를 하는데, 보통 통상적으로는 인도 남부쪽 사람이라고 그렇게 얘기들을 하죠. 어쨌든 버마도 부처님 입멸 후에 아소까왕 때 많은 전도사들이 파견되면서 불교가 이어졌고, 태국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가면 그때 당시 전법지들이 각각 나라마다 다 있습니다. 스리랑카도 마찬가지고.

 

근데 어쨌든 그 계통을 계속 이어왔고 역사에 등장한 것은 스리랑카 쪽이라고 봐야됩니다.

그 부분에 대한 것을 쭉 얘기를 했는데, 그렇게 해가지고 남방불교는 하나의 계통으로 쭉 다 통일되어 있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빨리어 경전을 보더라도 빨리어로 얘기할 거 같으면 다른 나라 스님들이 다 알아듣습니다. 쉽게 말해서 스리랑카에서 "나모 땃사 바가와또" 빨리어로 써진 것을 읽는다고 해가지고 저쪽 버마에 있는 스님들이 그것을 다르게 읽는 게 없는 거라. 거기서도 똑같이 "나모 땃사 바가와또" 읽습니다. 왜 그러냐면 기록을 할 때 빨리어라는 말로써 기록을 해놨기 때문에. 버마어로써 기록을 해놨지만 빨리어라는 말로써 기록을 해놨기 때문에.

태국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태국에서도 자기나라 란나 타이어(LanNa Thai)가 있습니다. 계통이 다 다릅니다. 버마 같은 경우에는 티벳 계통이고, 글자의 언어속으로 볼 경우에, 이 태국 같은 경우에는 중국계통이란 말입니다. 요쪽은 인도 계통이고 그러니까 계통적으로는 글자들이 언어적으로만 봤을 때는 다 틀립니다. 지금도 자기나라 말로 할 것 같으면 다른 나라 스님들이 하나도 못 알아들어요. 못 알아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록들을 각 나라에서 기록을 할 때 자기나라 언어로 기록을 한 게 아니고, 자기나라 언어로써 기록을 하지만, 자기나라 언어로써 풀어 쓰는 게 아니고 빨리어 그 자체로써 기록을 해놨기 때문에 그것이 똑같이 나온다는 거라. 그래서 나중에 이것을 취합해가지고 로마나(romanize) 한다고 해가지고 영문화시켜가지고 기록을 하게 되는데 유럽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그렇게 역사가 오래돼가지고 지내왔지만 비교해보니까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거라.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빨리어를 어떤 거로 공부했느냐 하면 요즘은 로마나빨리어를 공부했다 하고 얘기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그런데 스님 같은 경우에는 로마나빨리어로 배우는 게 아니고 란나타이빨리어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니까 태국에서 옛날에 썼었던 방식입니다.

스리랑카 스님들은 뭐로 가지고 배우겠습니까? 싱할라빨리어를 배우게 됩니다. 버마빨리어를 배우게 됩니다. 캄보디아에 있는 스님들은 캄부자빨리어를 배우게 됩니다. 근데 이런 쪽에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대한 언어들을 모르니까 영어로 적어놓은 거, 여러분들 빨리어 책을 한번 보십시오. 그 영문으로 적어놨는데 읽기는 읽는데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죠? 그와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했으니까 그걸 갖다가 2,500년이 지나고 나서 유럽 사람들이 취합을 해가지고, 그게 전부 패엽경 형식으로 써졌거든. 패엽경이라고 하는 게 뭡니까? 야자나무 잎에다가 철필로 씁니다. 써가지고 긁힌 부분에 먹 같은 얻은 천연염료가 있습니다. 자연에서 나오는 것들 돌가루 같은 것도 있고 나뭇잎 가지고 하는 것도 있고, 그걸 가지고 잎에다 놔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들어간 부분만 글자가 딱 새겨지게 되겠죠. 그렇게 해가지고 보존을 해왔단 말이라. 그런 걸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다 모아가지고 똑같이 로마나로 써보니까 틀린 부분이 없는 거라. 그렇게 돼버린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남방불교권에서는 하나로써 통일되어 있습니다. 경전이 하나로써, 빨리어 삼장으로 통일되어있는 상태인데, 우리 대승불교 같은 경우에는 조금 틀리죠. 중국 경전하고, 우리나라 경전하고, 일본 경전하고 각각입니다. 다 틀립니다. 권수도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고 합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자꾸 더해지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처님 말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말씀보다는 조사스님들의 말씀에 의존하다 보니까, 이 조사 다음에 다음 제자가 그걸 사사 상속했다 그럴 것 같으면 여기에서 또 좀 더해지고 세월이 지나면서 또 더해지고 이런 식으로 이어져나간 게 불교경전으로 형성돼나갑니다.

물론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하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뜯어놓고 볼 것 같으면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 하는 거하고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배경들로 봤을 때. 대승불교는 그런 역사를 겪어와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걸 보면 되있죠.

 

'불교가 혼란스러워진 배경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 것이 아니라 조사들의 해석을 기본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일어난 필연인 것이다.' 하면서 스님이 적어놨습니다. 스스로 이해한 자신의 불교를 제자들에게 전하고 또 그다음 제자들에게 전하고 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근데 부처님은 '상가를 지도해나간다. 상가를 통제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데와닷따가 상가의 권한을 나에게 넘겨주시오 하고 얘기했을 때도 부처님이 그럽니다. “내가 언제 상가를 지도해나갔냐? 상가는 지도자라는 것이 없는 것인데, 뭐 물려주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느냐? 물론 내가 그런 지도자가 존재할 필요성이 있다고 할 거 같으면 내가 너한테 물려주겠느냐? 위대한 제자들 사라불이나 목련 존자들도 있고 그런데 데와닷따 너에게 물려줄 수 있겠느냐?” 하고 얘기를 한 부분도 있습니다.

어쨌든 부처님은 상가를 인도해 나간다, 상가를 통제해서 하는 스승이라는, 지도자라는 생각을 안 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상가도 자기자신 부처님을 의지해서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부처님 가르침이 누구에게 전해지고, 누구가 또 누구에게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얘기입니다.

 

앗짜리야뭇티(ācariyamuṭṭhi) 라고 그럽니다. 사권(師拳)! '스승의 손바닥에 쥐어진 비밀스러운 것들은 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감춰진 게 없는데 내가 니한테만 살짝 전해줄게 하고 전해주고 할 수 있는 게 있느냐는 거라. 그건 있을 수가 없다는 거라. 그래서 몰래 감추어진 것은 없다 하는 뜻입니다.

아난따랑(anantaraṃ) 이라고 그럽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것, '한량이 없다' 하는 것,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아바히랑(abāhiraṃ) 이라고 그럽니다. '제외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 무외라고 그럽니다.

한량이 없다는 것은 뭡니까? 내가 요만큼만 가르치겠다 하는 생각이 없다는 거라. 다 가르친다는 거라.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라고 할 것 같으면 다 가르친다는 거라. 어느 부분은 딱 감춰놔 놓고 안 가르쳐주고 하는 게 아니고 다 공개하고 다 가르쳤다는 거라. 그리고 나는 요 그룹 중에서 요 사람들한테만 요걸 가르치겠다. 너는 듣지 마라. 이런 적이 없다는 거라. 무외 누구는 제외하고 누구는 끼워주고 하는 것이 없다는 거라.

 

경전에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비밀로 간직해서 알려지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는 있느니라." 하고 얘기합니다. 보통 뭡니까?

 

스님도 아직 이 부분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인데, 여자의 일은 비밀스럽다고 그럽니다. 뭘 가지고 비밀스럽다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경전에는 여자에 속한 비밀스러운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성직자의 지혜도 비밀스러운 것이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그럽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보십시오. 어느 스승이 있고, 어느 스승이 있고, 그 스승의 지혜가 얼마나 있는지 깨놓고 얘기하는 적이 있느냐는 거라. 없죠? 다 내가 최고다 라고 얘기들은 할 수는 있겠지. 최고는 한 사람밖에 없는데. 부처님 당시 때도 그런 여러 가지 스승들이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그 성직자의 지혜는 어쨌든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물론 같은 성직자들끼리,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들끼리는 뻔히 압니다. 요놈은 어느 수준, 요놈은 어느 수준 하는 게 다 드러나지는데 일반인들은 그게 안 되지. 그래서 그거는 어떤 면에서는 똑 여자의 비밀 같이 그렇게 알려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잘못된 교리인지 아닌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그럽니다. 가르치는 것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바른 건지 일반인들은 모른다는 거라. 그래서 지금 한번 보십시오. 어떤 스님은 뭘 해라. 어떤 스님은 뭘 해라. 각양각색입니다. 어제도 전화가 왔어요. “스님 이렇고 저렇고 하는데 우째야 됩니까?” “나도 모르겠습니다.” 뭐라 할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잘못된 가르침은 알려지지 않는다"는 거라. 모른다는 거라.

 

그렇지만 "여래(如來) 부처님에 의해서 선언된 법과 율은 감춰진 것이 없느니라" 하고 부처님이 분명하게 딱 선언을 해놓았습니다. 모든 세상에 드러내 놓아버리고 감춰놓은 비밀은 없느니라. 하고 얘기합니다. 근데 무슨 스승의 사권(師拳)이 어딨어? 누가 누구에게 전하고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거라.

 

부처님은 원래 말씀하신 것이 이렇게 비밀스럽고 신비적인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후대에서 부처님을 자꾸 신격화시키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뿐인 것이지, 원래의 부처님 가르침은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전하고 하는 그런 것들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가만히 앉아서 보리달마 같이 면벽좌선하고 있으면 스승님 찾아오면 어 그래 내가 니한테 전해줄게 하면서 전해주고, 이런 놈의 법일 거 같으면 그거 어따 쓸 거라?

 

본의 아니게 부처님 뜻과 부합하지 않고 정반대의 주장이나 주의나 행동들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거는 적나라하게 비판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잘잘못을 따져서 잘못된 건 잘못됐다 하고, 바른 거는 바른 거다 하고 얘기를 해야 됩니다. 부처님 자신도 잘못된 부분은 분명하게 얘기를 했는데, 뭐라 그랬어요 부처님이? "내가 입으로나 행동으로나 생각으로 잘못한 것이 있으면 나를 지적해 주라"고 했습니다. 나를 지적해달라고. "그럼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바로 참회하겠다"고 그랬습니다. 부처님 자신도 그랬는데 왜 조사스님들이 그걸 못하느냐는 거라.

불교 교단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도 그 교단 안에 일원이었기 때문에 예외라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상가라고 하는 구조 내에서는. 조사스님들도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참회해야 되는 게 부처님의 상가의 전통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지, 어디까지가 부처님 가르침인지 모호해버려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쭉 적어놨습니다.

문제의 뿌리가 뭐냐 하면 대승불교와 테라와다의 차이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스승! 여러분들은 스님보고 뭐라고 합니까? "스승님!" 그러죠? 근데 이 스승이라는 개념이 다릅니다. 테라와다 불교는 스승은, 아짜리야(ācariyā)는 부처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조건하에서도 그리고 어느 때라도 스승은 딱 단 한 사람 부처님뿐입니다.

 

단지 여기 존재하는 스님이라는 스승은 어떤 분입니까? 예를 들어봅시다. 그 큰 스승에게 갖다 붙여주는 역할 밖에는 못해.

그 부처님의 말씀을 지금 부처님이 안 계시니까 내가 대신 전해주는 역할밖에는 못하는 거라. 그래서 일반인들이 여기 있는 스님을 볼 때 어떻게 봅니까? 그냥 스님으로 안 보죠? 부처님과 같이 봅니다.

왜? 부처님이 지금 전할 수 없으니까, 부처님의 말씀을 내가 대리적으로 그냥 녹음기 같이 왕왕왕왕 읊어주니까!

왜? 한 치도 자기의 사상을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니까! 그냥 부처님 말씀만 전해주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으로 봐버리는 거라. 이 스님 자체를.

그러니까 테라와다 불교권에서 스님 대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한국하고는 확연하게 다르죠? 그게 이 사상에서 나오는 겁니다.

스승은 오직 한 분밖에 없다는 생각, 결코 부처님을 신으로서는 인정을 안 해놓습니다. 원래 안 올려놓습니다. 먼저 가신 큰 스승으로서 그렇게 해놓습니다.

 

테라와다 불교가 왜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쭉 내려왔는지 인제 그 진심을 알겠습니까?

 

자, 그 밑에 보면 '4번 모든 것은 스스로 확인해라' 하는 부분에 대한 것들을 얘기해보겠습니다.

빨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가 만들어져서 불교가 유럽으로 쭉 퍼져나가는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아마 1881년이었을 거라. 리즈 데이비스(T.W. Rhys Davids)라고 하는 분에 의해서 빨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가 창설됐는데 세일론, 지금의 스리랑카의 한 공무원으로서 근무를 했죠. 그래서 스리랑카 역사나 이런 빨리어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되면서 나중에 영국으로 돌아가서도 변호사를 하면서 결국 거기에 대한 관심을 끊지 못합니다. 끊지 못하고 결국에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빨리성전협회를 일구고, 세계 각국의 석학들을 초청해서 조직을 만들어나가게 됩니다.

그런 계기가 됐던 거는 뭐냐 하면 어떤 면에서는 자승자박입니다.

 

이 영국이 스리랑카를 통치할려다 보니까 정신적인 뿌리가 불교거든. 이놈의 부처님 말씀 중에 어디가 잘못되었는가 한번 조사해보고 나서 고놈을 다 비판하려고 했단 말이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안 나오는 거야. 안 나와.

그래서 "파아나두라 논쟁"이라고 해서 논쟁도 벌여보고, 스님은 한 분이 나가서 하고 기독교 목사는 다섯 번인가 바뀌었습니다. 이 목사가 스님하고 대면해가지고 싸워보니까 한판에 깨져버리니까 이거 안되겠다 다른 목사님이 와서 또 붙고 또 깨지고 또 깨지고 전부 다 깨져버렸어요. 상대가 안 돼.

그게 지금 파아나두라 대논쟁이라 해가지고 출판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영국인들 중에서도 이놈의 불교를 까부술려고 하다가 불교화 되어버리는 경우가 되어버린 거라. 그래서 리즈 데이비스를 비롯한 그 무리들이 그렇게 해서 빨리성전협회가 만들어지면서 지금 세계적으로 빨리어가 알려지게 된 거는 이 사람들 영향이라.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지놈들이 파놓은 무덤에 지놈들이 그냥 넘어가버린 경우가 돼버리는 상태가 됩니다.

 

물론 서양인이다 보니까 우리하고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불교를 자이나교하고 같은 맥으로 생각을 해서 막 조사연구를 한다든지, 그다음에 반복되는 것들, 지금도 빨리어성전협회에 보면 반복되는 것은 생략해버립니다. 점점점‘(...)’ 그렇게 해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될 부분이 아닌데도 그렇게 해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산문체 같은 거는 어쨌든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축소를 해버린다든지 이런 부분들은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유럽 쪽은 정신적인 부분보다도 학문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경전 자체를 거의 학문적으로 풀이를 했습니다. 수행하고 연관시킬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성전협회에서 삼장을 영역으로 출간을 해놓았지만 요즘은 그거 안봅니다. 처음에 공부할 때는 그걸 다들 공부했거든. 근데 아, 이거는 우리의 사상하고는 다른 서양적인 사상이 가미됐구나 하고 다들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걸 안보고 다른 부분들을 봅니다. 스리랑카, 버마, 태국 이런 데서 나온 경전들을 근거를 해서 해나가고 그렇게 합니다. 어쨌든 그런 덕으로 여러분들이 지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테라와다 불교는 빨리어 경전이 근간입니다. 빨리어 경전이 없으면 테라와다 불교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빨리어 경전은, "부처님 가르침의 진실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밑에 깔라마경을 소개를 해놨습니다. 뭐라고 해놨습니까?

 

"스스로 확인하라!"

불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꼭 마찬가지 입장을 견지하면서 믿음이나 신앙이라고 보지를 않았습니다. 보고, 이해하고, 알고, 깨닫는 것!

어떤 사람들은 그러겠죠. 신해행증(信解行證) 그렇게 얘기하죠. 믿는 것이 우선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그냥 믿으라고 얘기하는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어떤 분인데? 아주 당당한 분이라!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들 몫이지 내가 너희들한테 이걸 믿어라 말아라 그렇게 말할 사람 같습니까?

삿다(saddhā)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나 신앙의 부분이 아니고 확신입니다. 확신! 그래서 그걸 뭐라고 하느냐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그럽니다. 어떤 경우에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을 삿다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냐면 "에히 빳시까(ehipassika)! 와서 조사해보라. 확인하라!" 와서 믿으라 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해서 조사해봐라. 내 말이 틀린가 맞는가 한번 조사해봐라. 그렇게 해보니까 어떻게 돼요? 아, 맞구나. 그래서 진리에 눈을 떴다. 법안을 얻었다 그렇게 얘기하죠? 담마짝쿵(Dhammacakkhuṃ 法眼) 법의 눈을 얻어서 다시는 의심을 하지 않게 됐다 할 때 그때의 ‘의심하지 않게 됐다’는 부분을 삿다(saddhā)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 진리를 보고 진리를 깨달아서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전체지, 믿음이나 신앙을 강조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한마디로 표현하라 할 것 같으면 "야타부따(yathābūta)!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안다." "있는 그대로 내 스스로 알아차리고 내 스스로 이해한다" 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지혜롭게 되고, 또 그 지혜를 통해서 바르게 나아가지는 방향이라고 부처님이 봤기 때문에 그렇게 얘길 하는 겁니다.

 

그 밑에 깔라마경에 대한 얘기들을 스님이 쭉 써놓았습니다. 밑에도 한번 쭉 읽어보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이 깔라마 경은 믿는 부분을 모두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면서 권위에 대한 것도 부정하고, 역사가 오래된 것이라고 하는 것도 부정하고, 경전에 쓰여졌다, 아니면 경전 독송하면 공덕이 있다, 아니면 경전을 사경하면 공덕이 있다 이런 것에 대해서 믿는 것, 이것은 아니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스스로 찾아라는 거라. 스스로 진리를 찾아라.

금덩이를 갖다 놔주면 현명한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금을 가져와서 깨물어보기고 하고 사포질을 해보든지 문질러보든지 해서 이게 진짜 금인가 아닌가 확인해봅니다. 근데 어리석은 사람은 멀리서만 보면서 저게 맞나, 안 맞나 요러고만 있다는 거라. 적어도 니가 현명한 사람일 거 같으면 그걸 조사해봐라. 내가 이게 맞다 하고 부처님이 말해놨으니까, 내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조사한 후에 받아들이라는 거라.

 

이 깔라마경에서 그랬거든. 내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지마라 그랬거든. 부처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지마라 라는 거라. 부처님이 존경할 분이라고 해서 나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그 말을 받아들이지 말아라라는 거라. 니가 스스로 확인해보고 스스로 그 진리를 찾아라는 거라. 그게 이 깔라마경입니다. 경전의 모든 것들이 이런 형태들을 띠고 있게 돼있습니다.

 

왁깔리가 병이 들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 부처님 내가 꼭 한번 부처님을 뵙고 죽음에 이르렀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부처님이 왁깔리한테 가서 그럽니다. 야! 이놈아. 내 이 썩어문드러질 이 몸뚱이를 보아서 뭐 할거냐? 니가 부처님을 존경한다는 게 이 몸뚱이를 존경한다는 것이냐? 나를 존경한다고 할 것 같으면 진리를 깨달아라. 진리를 보아야만이 나를 존경하는 것이지, 그러면서 부처님이 얘기합니다.

"왁깔리야! 이 허물어져가는 이 몸을 보아서 무얼 하겠느냐? 법을,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느니라. 참으로 니가 나를 존경한다고 할 것 같으면 진리를 보아라. 진리를 깨달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예배하는 것조차도 거부했던 분이라. 부처님이.

그래서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오기 때문에 상좌부불교에서는 의례나 의식이 아주 간소화되어 있습니다. 아주 세분화되어가지고 되어있는 법이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보십시오. 아침저녁 예불하고 몇 개만 하고 나면 없습니다. 없어요. 그거 변형해가지고 법회 때 양식 만들기도 하겠죠. 근데 거기 있는 내용 그대로 일부 들어오는 것들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삼보에 대한 예경을 다 못한다 그러면 그냥 [아라항 삼마-삼붓도-바가와- 붓당 바가완땅 아비와-데-미. 스왁-카-또-] 하면서 절 세번하고 끝낸다는 거라.

그게 여러분들이 배워나가야 될 불교일뿐입니다.

밑에 한번 보십시오. '신앙이 아니라 내가 들은 것, 본 것, 배웠던 것들을 스스로 그것을 실천하여 거기에 따라서 자신의 진심으로 탐욕이나 분노의 마음이 사라져 없어져 가는 것을 체험하고 그것을 실증해나가는 것이 테라와다 불교이고 여러분들이 해야 될 몫이라는 겁니다.'

 

자, 이제 빨리어 결집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테라와다 불교쪽으로 넘어와졌습니다. 그래서 테라와다가 말하는 것들이 뭔가 하는 것들은 대충 감이 잡혔을 겁니다. 인제는 본격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넘어가질 겁니다. 그 밑에 부분에 두 개의 게문으로 넣어놓은 부처님 가르침이 있죠? 가장 기본적인 것 두 개를 가지고 먼저 시작을 해나갈 겁니다.

다음 시간부터 한번 잘 배워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