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진각지 상반부-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20170721. 대구)
오늘 프린트물은 저번 저번 달에 서울 법회에 했던 프린트물과 동일한 칠각지 중에 세 번째 정진각지 상반부 부분입니다.
저번 서울에서는 교재에 나와 있는 방법대로 칠각지가 잘되어나갈 때 사띠부터 해서 담마위짜야로 해서 그다음에 위리야 삼보장가가 잘 이루어졌을 때의 방법과, 그다음에 칠각지가 제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했을 때 정진각지를 일으키는 방법에 대한 것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을 해놓은 부분입니다.
오늘은 그것과 조금 다르게 특히 요즘과 같은 여름철이면 수행하면서 많이 조붑니다. 졸음과 수마, 혼침 같은 것을 극복하기 위한 정진 방법에 대한 것들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 당시 때 수행을 열심히 하는 스님들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계행을 아주 철저히 지키는 분들도 있고, 또 선정삼매를 이룬 분들도 있고, 나름대로 도와 과를 이룬 분들도 있고, 그분들이 부처님한테 와서 인사를 드리니까 부처님이 그 스님들한테 대뜸 한다는 얘기가 "너희들은 우안거 기간 동안에 아라한에 이르렀느냐?" 하고 물어봅니다. 대부분 스님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 그거 쉽습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아라한에 이르고자 마음만 먹으면 바로 아라한에 이릅니다. 그리고 지금 아라한에 이르고 안 이르고 하는 것은 크게 걱정을 안 합니다." 하는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왜 그런 얘기를 하게 될까? 본인이 뭔가 수행이 잘 돼나가고 잘하고 있을 때 한점 티끌도 없이 마음이 청정하게 돼 있고, 또 어느 정도 지혜가 일어나서 일어난 현상들에 대해서 무상·고·무아로써 분명하게 알고 있고, 그럴 경우에는 대부분이 그런 마음이 듭니다.
인제는 걱정 안 한다는 거라. 이대로만 쭉 해나가면 틀림없이 아라한에 이를 것이다 하는 확신들이 서기 때문에, 부처님 쓸데없이 왜 그 아라한에 이르렀느냐 하는 것을 질문하느냐는 식으로 답을 하게끔 되는 겁니다
그때 부처님이 대답하신 것이 경책이 됩니다, 지금 현재 너희들이 어떤 것을 이루었든지 간에 그것이 설혹 계행을 지키는데 완벽하다든지, 아니면 선정삼매를 자유롭게, 다섯 가지 자재를 자유롭게 해서 초선정부터 사선정까지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면서 원하는 만큼 머물고 원하는 만큼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그게 가능하다고 하고, 어떤 것들을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지금 현재 아라핫따팔라(arahattaphala)- 아라한과에 이르르지 않았을 거 같으면 정진하라. 노력하라. 거기에 머무르지 말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언젠가는 아라한에 이르른다는 확신이 들지만은 아직은 아라한이 아니라고 할 것 같으면, 거기서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더욱 더 정진하려고 하는 마음들을 내야만이 되는 것이지 거기에 머물러 버릴 것 같으면, 아라한이 되기 이전에 설혹 불환과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본능에 져버리는 경우들이 많다는 겁니다.
물론 크게 일어나는 번뇌들 그런 본능들은 이미 제거가 되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끔 되지만 미세한 것까지 다 떨어졌다고 보장하지는 못하는 거라. 본능에 져버리면 대부분은 그냥 거기에 만족해버리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가득차게 돼버립니다.
그럴 것 같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거기에서 머무르면서, 또 그것으로 인해서 즐거움이나 기쁨들을 누리면서 본인이 게으름피우고 있다는 생각들을 하지 못하고 본인은 열심히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판단들을 하게 됩니다.
일반 재가자들보다도 특히 수행을 열심히 하고 또 잘 살아가는 스님들이 이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잘하고 있어! 나는 절대 부처님이 설한 법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잘 나아가고 있어!" 하고 하는데,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기가 이런 상태에 보면 별반 차이가 나지는 않고 그대로 나아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정진각지가 사실은 필요한 부분입니다.
또 하나는 굉장히 힘이 들고 몸이 또 아프고 할 때 본인의 상태가 설혹 수다원에 이르렀든 불환과에 이르렀든 또는 아라한에 이르렀든 그 어떤 경우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필요한 것이 그리고 돌이켜서 회상해야 되는 것이 이 정진각지라.
경전에는 서너군데에 칠각지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그 칠각지가 나오는 것들이 공통된 것들이 있습니다. 본인이 아플 때 주변 사람들에게 그 칠각지를 들려주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아플 때 이 칠각지를 들려주라고 했을 경우. 그런데 경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복주석서 같은 경우에는 그 칠각지 중에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느냐면 바로 이 정진각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빨리어 경전은 아니지만 대승경전 중에 대지도론 같은 경우나 아니면 잡아함경 같은 경우에는 보면은 그와 같이 설하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사띠 삼보장가나 담마위짜야 삼보장가를 설할 때는 그냥 그대로 듣고만 있다가 이 위리야 삼보장가를 설할 때는 벌떡 일어나서 다시 아난다에게 물어봤다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너는 정진각지가 그렇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느냐? 예!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세 번이나 반복해서 물으면서, 그래 맞다 칠각지 중에 이 정진각지 하나만 놓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다른 각지들은 다시 되살려낼 수가 있다. 그리고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하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빨리어 경전엔 그런 부분은 안 나옵니다.
그런데 빨리어 경전에 복주석서를 보더라도 정진각지 부분에선 굉장히 강조를 해놓았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오히려 정진각지에 대한 비중을 훨씬 많이 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본인이 뭔가 하고 싶어하는 욕구·본능, 본능에 저항하는 것이 정진각지의 출발점이다" 하는 생각을 하면 됩니다.
지금 현재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다섯 가지 욕망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감각적인 것들, 육근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들, 뭔가 그 사람을 보고 예쁘다고 하고 싶고, 저 사람을 보고 싶다고 하고 싶고, 아니면 좀 더 즐거운 소리 듣고 싶고 하는 이런 것들이 본능입니다.
이 본능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이 이 정진각지의 출발점이라는 겁니다.
또 하나는 수행을 하면서 일어나는 갖가지 장애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처음에 일어나는 다섯 가지 장애, 그 뒤에 수행이 어느 정도 되고 나면 또 일어나는 게 다섯 가지 장애들입니다. 쉽게 말해서 수행에서 일어나는 장애 대표적인 것이 졸음에 떨어지든지 망상을 부리든지 하는 것들이 처음에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 대해서 저항하는 것들이 정진각지에 해당됩니다.
또 하나는 아까 처음에 인용했듯이 자신의 상태에 머물러서 '아, 나는 언제든지 아라한에 이를 수 있어' '난 언제든지 뭐가 될 수 있어' 하고 마음을 먹게 되는 것. 쉽게 말하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으름 부릴려고 하는 마음들 그것들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이 정진각지다 하는 생각을 반드시 해야 됩니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세 단계의 정진에 대한 얘깁니다.
수행자의 측면에서 한번 봅시다.
수행하면 사띠들을 해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걸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합니다. 끊임없이 사실은 해야 됩니다. 그게 끊어지는 순간에 뭔가 망상이 튀어오르든 아니면 게으름 부리든 아니면 졸음에 떨어지든 어떤 식으로든 마음은 튀어나가게 돼있고, 장애들을 겪게 돼있습니다.
그럼 처음에 여러분들이 해야 될 때는 어떤 식으로든 사띠는 절대 놓치지 않을려고 해야 됩니다. 사띠를 놓쳐버리면 나는 죽은 목숨과 같다 하는 생각을 자꾸 일으켜야 됩니다. 그게 수행에서 정진각지를 일으키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사띠 없이 뭔가를 행할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태국에서 스님이 처음에 수행을 할 때 어느 정도 수행이 좀 무르익고 나서 택법각지는 분명하게 알겠는데, 정진각지에서 탁 막힌 적이 있어요. 그때 스승이 한 것이 뭐냐하면 알아차림이 일어나기 전에는 걷지도 말아라. 뭔가를 알아차리기 전에는 손 하나도 내밀려고 하지 말아라. 쉽게 말하면 알아차림이 없이는 어떤 것도 하지 말아라 하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게 이해가 안 갔어요. 왜 나는 잘 알아차리고 있는데, 화가 나면 화가 나고 있다고 알아차리고,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이 일어났다고 알아차리고, 그러다 보면 금방 망상은 사그라들고, 화가 일어난 것도 내가 조절이 가능하고 하는데 그걸 왜 하라고 할까?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지나다 보니까 이해가 되는 거라.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사띠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고 할 것 같으면 망상이 일어날 틈이 없습니다. 또는 내가 게으름 부릴 틈이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 대상에서 망상이나 아니면 성냄이나 이런 불선한 것들이 일어날 틈을 주지 않게끔 됩니다. 그런데 나에게 그 틈을 줬기 때문에 졸음에 떨어지고 망상이 일어나고 또 성냄이 일어나고 하고 있다는 거라.
그런데 나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거라. 지속적으로 사띠 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분명히 끊어진 건데 끊어진 줄을 모른 거라.
스승님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뭐냐 하면 그 끊어지는 것 없이 지속해 나가도록 노력을 하라는 거라. 그리해야만이 정진각지가 올바르게 열려 나간다는 거라. 나중에 안되니까 강제적으로 해요. 강제적으로! 오만 간섭 다 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화가 요만큼 올라왔다가도 가라앉히고, 또 이만큼 올라왔다가 가라앉히고 이런 경험들을 참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그거 어떡하나. 그게 다른 부분에서 수행을 해나가다가 막혔을 때 정진각지에서 풀지 못할 경우에는 풀어야 되는 숙제인데 어떡할 거라.
대부분 사람들은 수행을 하면서 망상도 알아차리니까 망상이 사라지고 하니까 무상한 것으로써 이해를 하게 되고, 또 통증이 일어나면 통증을 알아차리면은 통증을 알아차리는 것이 옛날에는 그냥 '통증' '통증' 하고 알아차렸다면 지금은 '쑤심' '쑤심' 하고 알아차리고, '무거움' '무거움' 하고 알아차리고, 따가우면 '따가움' '따가움' 하고 알아차리면서 각각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강도가 다르다는 것도 알고, 그러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 불만족스러운 것에 대해서도 무상한 성품을 분명하게 알게 되고, 그리고 본인 자신도 뭔가를 내가 실제로 의도하지 않을 거 같으면 어느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의도 없이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는 있는데, 또 정진각지에서 막혀서 거기서 계속 헛발질을 하고 있는 상태인 거라.
정진각지를 일으키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어떠한 경우든지 사띠없이 행할려고 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그게 안 되면 강제적으로라도! 특히 집중 수행처에 갈 거 같으면 말하고 책보고 또 자기 전에 눕는 거 그런 거 전부 금지를 시킵니다. 그 이유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든지 사띠를 유지하라는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앞에 첫 번째 사띠 삼보장가 그다음에 담마위짜야 삼보장가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정진각지 부분에서 앞에 부분을 되살리려고 하는 방법은, 어떠한 경우든지 사띠를 놓치지 않으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됩니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위리야 삼보장가를 일으키는 두 번째 단계는, 장애가 일어나는 대상들을 대상으로 자꾸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졸음이 오고 갖가지 가려움이나 통증들이 있고, 또는 망상이 일어나고 그것들을 특별한 것으로 인식해선 안됩니다.
그런 대상이 없을 때는 여러분들은 코끝이든 배든 그냥 순일하게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그게 사띠의 힘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것들을 알아차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사띠하는 데서 무상·고·무아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띠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하고는 있습니다. 그건 일반적으로 그 대상에 대해서 붙잡거나 또는 밀쳐낼려고 하지 않고 대상을 대상으로써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대상이 나타나면은 그 대상을 그냥 일반적인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대상을 특별하게 자꾸 생각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잠이 온다든지 아니면 망상이 일어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거 물리칠려고 자꾸 노력을 하게 되고 또는 그것을 없앨려고 자꾸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물리칠 수가 있고 없앨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대상이 다시 안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조건만 맞아지면 다시 또 그것들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내가 대상을 대하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 모든 대상들은 설혹 내가 아주 고요한 상태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하나의 대상으로 봐야됩니다. 대상이 변하는 것 없이 오롯하게 그냥 멈춰있는 것들만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들도 하나의 대상으로 봐야되는 것이지 그 대상 이상이나 이하로 봐서는 안 된다는 거라.
정진각지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두 번째 단계에서는 사띠하는 대상들은 대상으로서 자꾸 알아차려릴려고 해야 됩니다.
가끔씩 지금 현재 배를 관찰하고 있는 분들은 배를 관찰하다가 깜빡 놓칠 때도 있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졸음을 알아차리다가도 졸음을 깜빡 놓쳐버리면 졸음에 톡 떨어집니다. 그럼 톡 떨어진 거 그냥 알아차리면 되는 거라. 톡 떨어진 것도 하나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러고 나서 다시 또 졸음을 알아차리든지, 아니면 그렇게 툭 떨어지고 나서는 졸음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또 주대상이 일어난 것들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문제는 본인의 사띠의 강약에 있는 것이지, 대상 자체가 특별하다든지 아니면 이것들을 반드시 내가 물리쳐야 되는 대상이라든지 해서 그것만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현재 일어나는 대상이 주대상인 것이고 그것들이 일반적인 대상일 뿐입니다. 본인에게는 가장 일반적인 대상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단계의 정진에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대상으로서 자꾸 알아차릴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사띠를 끊어짐 없이 계속 할려는 노력이 있고, 또 대상을 어떠한 대상이든 그것을 그냥 단지 일어나는 대상일 뿐이라고 그리고 내가 알아차리고 있는 대상일 뿐이라고 동일하게 놓게 되어서 그렇게 알아차리게 될 것 같으면 수행은 순일하게 잘 이루어져 나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순일하게 잘 이루어져 나가면 반드시 부딪치는 것이 이 정도에서 만족할려고 하는 것. 아! 이 정도 했으면 됐어! 나는 사띠를 잘하고 있고 대상을 대상으로서만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그냥 이 정도에서 기쁨들도 일어나지고 마음도 평온하고 고요해지는 상태에 있고 그래서 어떠한 외부적인 장애에 부딪치더라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냥 이 상태로 그대로만 해나가면 돼 하는 마음이 항상 일어나게끔 됩니다.
그때 중요한 게 이 마지막 세 번째 정진각지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럴 때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어? 내가 수다원에 이르렀는가?'
수다원에 이르렀으면 본인이 압니다. 불환과에 이르렀으면 본인이 압니다. 수다원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작은 수다원에 이르게 돼도 본인이 작은 수다원에 이르렀다는 걸 압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내가 상카루뻭카냐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아! 나는 지금 상카루뻭카냐나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압니다.
그 전의 단계에서는 어떤 것은 일어나고 어떤 것은 안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분간하기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상카루뻭카냐나 이후에, 그다음 내가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초입에 들었다는 상태, 그다음에 작은 수다원에 이르렀다는 것, 이런 것들은 분명하게 본인이 그 상태를 알고 있게 됩니다.
본인에게 물어봐야 됩니다. 내가 지금 수행이 순일하게 잘 되고 있는데 어느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는가? 아직 멀었다 할 거 같으면 더 분발할려는 힘을 내야 됩니다.
이정도 가지고 내가 해탈에 이르려 한다든지, 윤회로부터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그걸 경전 주석서에서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물고기가 땅 위에 올라와가지고는 실제적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가 땅 위에 올라와 보니까 물속에 있는 것 말고 희한하고 좋은 것들이 새로운 것들이 많거든. 풀도 있고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여러 가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있다고 해가지고, 그것들이 좋다고 그냥 그것에 취해있을 거 같으면 그 물고기는 당연히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얻은 경지가 그것이 완전한 닙바나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아라한과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할 거 같으면 거기서 더 나아가는 것을 멈춰버리는 물고기와 마찬가집니다. 더욱 자신을 진화해가지고 물 밖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상태까지 이르도록 극심한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리해야만이 그 아름다운 꽃들이나 나무들을 지속적으로 볼 수가 있게 됩니다. 그 정도 상태에 그 정도의 노력 없이 내가 아라한에 이르른다? 그건 사실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정진각지는 어떠한 경우든지 열반에 이를 때까지 이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 하는 것들입니다.
• 위리야삼보장가를 일으키는 법
1. 어떠한 경우든지 사띠를 놓쳐선 안됩니다.
2. 대상을 대상으로 알아야 됩니다.
3. 어떠한 경우든지 열반에 이를 때까지 이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 하는 것.
이게 보통 정진각지를 세 단계로 나누었을 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첫 번째 한번 봅시다. 사띠가 끊어지지 않고 찰나찰나 간에, 찰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1초 1초 간에 사띠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어져나가고 있다.
어떤 이익이 있을까? 마음은 대상에 얽매이질 않습니다. 마음은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현재 1초밖에 모르기 때문에 지나간 1초는 모릅니다. 앞으로 다가올 1초도 모릅니다. 그럼 마음은 항상 청정한 상태를 유지해나가게 됩니다. 사띠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고 할 것 같으면 적어도 마음은 항상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청정한 상태에서 가벼워져 있게 됩니다.
처음 수행할 때 이 상태를 유지해나가지 않으면 사띠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립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뭔가 불편한 것이 있다. 아니면 알아차리는 힘이 둔해져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즉시 지금 현재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될 필요가 그래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나서 다시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하고.
그래서 적어도 위리야 삼보장가의 첫 번째 단계를 지속적으로 해나가서 잘해나간다고 할 것 같으면 마음의 청정의 상태는 어느 정도 이루어나가고 있는 겁니다. 마음은 항상 고요하고 가볍고, 그리고 맑다 하는 생각들을 하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어떠한 대상이든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 대상으로써 알아차리게 되면 얻어지는 것들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에게는 틀림없이 그러면서 어떤 지혜들을 얻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대상을 어떤 경우에는 아, 이거는 물질적인 현상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정신적인 현상이다든지, 아니면 물질적인 현상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든지 그런 앎들은 분명하게 알 수 있게끔 됩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가벼워져있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그런 앎들은 일어나지 않게끔 됩니다.
위빳사나 지혜가 일어나는 것들이 이 단계에서 일어나집니다.
대상을 어떠한 대상이든 대상으로써만 그대로 알아차려나갈 때. 그 대상들은 반드시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럼 나는 그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그냥 알면 되는 겁니다. 어, 저게 무상한 것이구나 하고 압니다.
정신적인 현상이든 육체적인 현상이든 아니면 밖에 존재하는 대상이든 또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대상이든 그것은 똑같은 대상으로써 알아차리게 되면 그 대상들은 반드시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것들을 알아차리면서 나에게는 위빳사나 지혜의 단계들이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일어납니다. 그래서 대상을 동일한 대상으로써 자꾸 볼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물론 수행이 잘 안 되어나갈 때는 자기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들은 자꾸 개발을 해야 됩니다. 그 부분들은 그것이 개인적인 부분이든 아니면 집중하는 힘이든 어떤 것이든 그것들이 부족하다 싶으면 그것들은 개발을 해야 됩니다. 그것들에 대해서 힘을 맞춰야 됩니다.
그것을 "오력에 대한 균형을 맞추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내가 뭔가 노력하는 부분이 부족하다든지, 아니면 집중하는 힘이 부족하다 싶으면 거기에 맞게끔 균형을 잡을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됩니다.
설혹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상은 대상으로써 자꾸 알아차리게 될 때 지혜는 늘어난다 하는 부분을 반드시 이해를 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그것이 잘 되어나갈 때 노력하는 3단계 부분,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현재 내가 이르른 상태를 알아차리고 자신이 가야 될 길이 멀다하는 사실을 알고 더욱더 노력하는 힘이 있게 될 때는 사띠의 힘은 굉장히 강해져 있을 겁니다. 그러면 번뇌가 침입할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망상하는 것도 없어져버리고, 졸음에 떨어지는 것도 없어져버리고, 갖가지 번뇌가 나에게 일어나는 것들도 없어져버리고 하는 걸 알게 됩니다.
아라한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상태에 이르르게 됩니다.
실제로 출가해가지고 어른 스님들한테 참 많이 듣는 소리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너는 출가를 했으면 출가하자마자 부처님과 같다" 하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니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과연 부처님이 그렇게 행동했을까?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자꾸 되새기라고 그럽니다. 자꾸 되새기라고 그럽니다.
좋든 싫든 부처님과 같은 행위를 하게끔 자꾸 유도를 하게끔 됩니다. 실제로 그 경지에 안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집니다. 본인이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직은 내가 부처님과 같은 상태에 이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처럼 느껴집니다. '오, 내가 부처님과 같구나'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본인은 본인의 상태를 딱 돌아보니까 '아, 나는 아직 수다원에 이르렀구나' 본인이 알고 있거든. 그럼 더욱더 노력을 하게끔 되는 거라.
번뇌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될 거 같으면 결국에는 번뇌가 탁 떨어져 나갑니다. 발붙일 곳이 없으면 더 이상 그 번뇌는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이 됩니다. '아, 이 번뇌는 적어도 나에게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구나' 하는 사실을 본인이 탁 알게 됩니다. 최고 먼저 유신견이라는 것부터 더 이상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구나 하는 걸 본인이 알게끔 됩니다.
번뇌가 얼마만큼 떨어져나갔느냐, 남아있는 번뇌가 무엇이냐를 가지고 '아, 내가 더욱더 노력해나가는 것이 얼마만큼 더 남았구나' 하는 것을 본인이 스스로 체크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르게 됩니다.
그리했든 어쨌든 간에 번뇌가 지금 현재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있구나 하는 것은 분명하게 압니다. 남아있는 번뇌가 무엇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 현재는 그것들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거라. 그리고 떨어져 나가고서 다시 일어나지 않는 번뇌들은 무엇이다 하는 것은 분명하게 아는 상태라는 거라.
이게 일반적으로 정진각지를 일으키게 하는 세 가지 방법들입니다.
앞에 사띠 부분도 많고, 그다음에 택법각지 부분도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정진각지의 중요성은 그에 못지 않습니다. 실제적으로 칠각지라고 하는 것은 엄밀하게 따지면 정진각지에서 끝납니다. 나머지 부분들은 순일하게 이루어져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각지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안 그러면 첫 번째 각지 아니면 두 번째 각지, 첫 번째 각지 아니면 세 번째 각지를 일으켜가지고 앞에 각지들을 일으키는 방법, 이런 방법들을 줄기차게 계속 해나가야 됩니다.
자! 그것이 칠각지의 정진각지의 상반부 부분에 해당이 되는 겁니다.
맨 첫 서두에 그렇게 적어놨습니다.
"위라낭 바오" 끈질기게 관찰대상을 계속적으로 향해서 노력을 일으키는 것, 그러한 것들이 영웅적인 사람의 상태이다. 그렇게 알아차리면 나에게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 거고, 마음의 청정을 얻게 되는 거고, 지혜는 일어나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은 영웅적인 상태입니다. 결국에는 해탈에 이르는 큰 영웅이 되는 겁니다. 그러한 영웅적인 상태를 얘기할 때 이 정진각지라고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정진은 어떠한 경우든지 얼마만큼 강조를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정진각지는 자꾸 일으킬 수 있도록 그렇게 해나가야 됩니다. 한번 쭉 읽어보면 택법각지가 순일하게 됐을 때의 방법과, 순일하게 돼지 않았을 때의 방법에 대한 것들을 이 장에서는 적어놓았습니다.
다음 장에선, 좀 더 레벨업시켜서 정진각지가 일어나게끔 해서 다음 단계의 각지가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정진각지는 그마만큼 폭이 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 부분은 여러분들이 해나가야 되는 그런 부분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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