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망갈라 숫따(길상경) 2. 독송방법과 서두설명 (20140729

담마마-마까 2021. 8. 2. 08:27

https://youtu.be/XNEGsoHBuW8

* 망갈라 숫따(Maṅgala Sutta, 길상경) 2. 독송방법과 서두설명 (20140729)

 

오늘은 망갈라 숫따 두 번째 시간입니다.

저번 시간에 망갈라의 의미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망갈라가 다 이루어진 상태 그걸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가는 과정에 대한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망갈라를 것은 크게 풀이를 하면

'에띠 까라(eti karaṇa)' 그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뭔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쌓아가는 조건들, 그 조건들 하나하나가 다 망갈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룰려고 하는 그게 세속적인 것들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에서 닙바나면 닙바나 해탈이면 해탈 이런 것들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가 '왓디 까라나(vaḍḍhi karaṇa)' 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성숙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될 것이 뭔가? 사마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만들어져야 되는가? 하는 것들, 또는 내가 수행에서 항상 고요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을 갖추어야 되는가? 수행만 해서 되는 건지 아니면 계율도 잘 지켜야 되는 건지, 아니면 바라밀을 닦아야 되는 건지, 만약에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것들도 다같이 해나가야 되는 것들이지 무조건 지금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수행방법만 고집해서 그것만 해서는 안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삼마 삼빳띠 까라나(samma sampatti karaṇa)'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충족상태에 이르기 위한 조건들. 완전한 목표에 이르기 위한, 번뇌를 하나도 없게 하기 위해서는 번뇌가 일어날 조건들이 만들어지지 않아야 되겠지. 또는 내가 수행하는데 어떤 장애도 없을 거 같으면 장애가 일어났으면 알아차려야 되는 것은 그 앞에서 해야 되는 거고, 장애가 일어날 조건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전부 통칭해서 보통 '망갈라다' 하고 얘기합니다.

 

망갈라가 어떤 의미에서는 의미가 굉장히 많죠. 그래도 풀어서 써보면 '그 어떤 것들을 해나가기 위한 조건들'.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 얘기를 한 것은 세속적인 것들로서는 망갈라를 이룰 수가 없다. 그게 하나의 결론입니다.

 

그러면은 불교적으로 이 망갈라를 이루어야 되는데 여기서 망갈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조건들이 뭐가 필요한가 하는 걸 부처님이 쭉 설명을 하는데, 처음엔 쉬운 것부터 '나쁜 놈하고 사귀지 말고'부터 쭉 해나가면서 나중에 결국에는 깨달음이라고 하는 해탈에 이르는 길에 대한 것들까지로 인도하는 그런 조건들을 부처님이 나름대로 설명을 해놓은 겁니다. 그게 저번 시간에 망갈라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먼저 이런 경을 읽을 때 여러분들이 주의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맨 처음에 경을 읽을 때 '아세-와나- 짜 발-라-낭(asevanā ca bālānaṁ)' 여기에는 뭐가 있어요? 장단이 있죠? 장단을 구분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 보면 줄 길게 해놓은 거 있죠? 그거는 길게 읽으라는 뜻입니다. a는 짧고 se는 길게 vanā에서 nā도 길게 읽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세-와나-짜' 이렇게 돼야되는 것이지, '아세와나짜' 이렇게 해버리면 안된다는 겁니다. 경을 읽을 때는 항상 그걸 조심해야 됩니다. 그래서 장음으로 표시해놓은 거는 장음으로 반드시 읽도록 하라는 거라. 장단을 구분해서 읽도록 자꾸 길을 좀 들여야 됩니다. 완전하게 다 하진 못하겠지만 그렇게 하도록 먼저 하고.

 

그다음에 두 번째 하는 것이 거기에 보면 '아세-와나- 짜 발-라-낭' 하고 나서 2번에 탁 넘겨보면 거기에 대한 설명을 해놨습니다. '어리석은 자를 멀리하고, 지혜로운 자와 어울리고,' 그러니까 그 캄마(,) 친데까지가 딱 뒤에 해석에도 캄마(,)를 딱 쳐놔놨습니다.

그거는 뭐냐면 '아세-와나- 짜 발-라-낭' 여기에는 해석이 그대로 '어리석은 자를 멀리하고' 요까지가 딱 들어가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딱 대응하도록 해놓은 거니까,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면서 경을 독송하도록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잘하는 다라니 같이 아무 의미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거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미를 모를 것 같으면 그것은 반감돼버립니다.

두 번째로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그 의미를 반드시 알아라.

그래서 나중에는 '아세-와나- 짜 발-라-낭' 요렇게 읽기만 하더라도 이미 나는 의미를 알아. '아, 어리석은 자와 가까이 하지 말아라 하는 거지' 하고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빨리어를 독송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글로써 이해를 하게끔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고.

 

그다음에 세 번째 해야 되는 것은, 경을 독송할 때 항상 마음에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해야 될까? 내가 이 경을 독송하면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만났다. 그러면 처음에 대부분 인사하죠? "안녕하세요?" 특히 외국사람들은 그거 잘합니다. 그냥 지나가면 "헬로우!" "하이!" 하면서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참 못하는 게 이렇게 만나면 서로 어색 해가지고 인사하는 법이 잘 없어. 사실은 그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말을 실천하는 것은 인사하는 것들입니다. 그게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일단 말을 하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럼 내가 일단은 망갈라경을 독송을 한다, 그럼 망갈라경을 독송을 할 때 반드시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실천은 자비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 자비가 없을 거 같으면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들은 자애로운 말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와 같이 말도 자애로운 말이 될 수가 없을 뿐아니라 실천하는 것들도 그 자애로운 말이 나왔으면 내가 뭔가 실천하는 몸으로 하는 일들도 남을 도와줄려는 그런 것들이 되지 않고, 자기방어 하거나 아니면 남들 해꼬지 하는 거라. 그래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도와주는 것들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 가장 기본적인 것이 마음에서 자비의 마음이 없을 거 같으면 차라리 아예 독송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럴 것 같으면 적어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남을 해치지는 않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 번째, 경을 독송할 때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먼저 마음으로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경을 독송하라.

 

이게 보통 경전을 독송할 때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장단을 구분할 줄 알아야 되고, 그다음에 그 의미들을 분명하게 파악을 하고 의미들을 알려고 해야 됩니다. 알고 나서 해야 되는 겁니다. 그다음 세 번째 경을 독송할 때는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경을 독송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자비의 마음이 잘 갖추어진 사람들은 잘하게 되는데 안 갖춰진 사람들은 자기 흥에 겨워서 하게 됩니다. 자기 흥에 겨워서 어떤 사람들은 다라니 같은 거 하면서 사람이 막 돌아버립니다. 어떤 면에서는 방언이라고 그러나? 뭐라고 그러지? 막 자기도 모르는 말하고 무슨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와서 그 말을 해주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럽니다. 그건 아닙니다. 흥에 겨워 그러는 겁니다. 자기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돼버리면 안 됩니다. 노래방 많이들 가봤을 거 아니라? 노래방 가면 신나놓으면, 나도 지금 노래방 가본지가 오래돼가지고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하여튼 뭐 별걸 다 할 거라. 그런데 그렇지 않고 노래 잘하는 사람들은 그 노래 잘하는 걸 듣기만 해도 신은 나지 않을지 몰라도 아, 참 좋다 하는 마음은 든다는 거라. 여러분들이 독송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감각적인 것에 빠지도록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거라. 그걸 듣고 정신이 없다든지 아니면 너무 지나치게 경전을 독송하는 것처럼 보인다든지 할 것 같으면 안 돼.

그래서 네 번째, 중요한 것이 뭐냐면 어떤 경우든지 경전을 독송할 때는 흥에 겨워버려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경을 독송하는 것이든, 수행을 하는 것이든 어떤 것이든 불교를 공부하는 기본적인 자세는 이성이 우선인 것이지 감성적으로 빠져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마음에서 항상 이 경전을 독송하면서 '아, 이게 내가 이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기쁜가, 이런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마음이 들어야 되는 것이지, 그 기쁨이나 행복들이 없이 그냥 거기에 빠져버려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는 경을 독송할 때 조심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경전의 본문 부분으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맨 처음에 '에-왐메- 숫땅 에-깡 사마양 바가와-(Evam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하는 부분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뒤에 본문 부분이 사실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번에 '에왕메 숫땅' 부분은 설명을 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이 경을 알게 되는 것들은 참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그것뿐 아니라 '이것들은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보존해야 될 것들이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바꿀려고 하지도 말아야 되는 거고, 그리고 이것들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편집해서 쓸려고 해서도 안된다는 거라. 경은 그 가치들은 있는 그대로 있을 때 가치들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쭉 전해져와가지고 지금 우리가 알게 된 이 경이라고 하는 것들이 참 소중한 것이구나. 그래서 원전 그대로 원어 그대로를 보고 내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마음들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여러분들 꼭 한문 경전 접하듯이 아니면 오역된 경전을 접하듯이 잘 이해를 못하게 됩니다. 사실은 부처님이 그렇게 말할 리가 없거든. 부처님이 똑 여러분들에게 말하듯이 말한 건데 뭘 그렇게 어렵게 얘기했겠어? 그렇지는 않다는 거라. 그래서 아, 이게 참 소중한 것이구나. 그래서 변형되지 않고 전해져왔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다는 거라.

그럼 여러분들도 해야 될 것은 당연히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를 알아야 되는 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가 가장 좋은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뒤에 적어놓은 게 '바가와(bhagavā)' 라고 하는 것, 부처님 10대 명호 중에 하나에 대한 얘기들을 했습니다. 그거는 다른 것들로서 참조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바가와' 라고 하는 것은 '그 세존 존귀하신 분이 가르쳐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들을 여러분들이 이해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아, 이걸 내가 알다 보니까 아, 참 있는 그대로 알게 되고 내가 즉시 내 생활 패턴들이나 아니면 내 마음 상태가 바뀌어지는 것이구나. 그래서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도 아, 잘살고 있구나 하는 말을 듣게 되고, 이런 작용들을 하는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이해할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배우고 익혀야 됩니다. 있는 그대로 배우고 익혀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배우고 익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반드시 실천되어져야 됩니다. 실천되어져서 내 자신이 바뀌어져야 되는 것들입니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배우는 것이 적다, 아니면 내가 또 실천하는 것이 적다, 아니면 내가 바뀐 것이 없다, 할 것 같으면 이 자리에 올 이유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도 1년 전보다 지금 내가 마음도 많이 바뀌고 많이 너그러워지고, 나쁜짓 안 할려고 자꾸 하고 있다, 그렇게 많이 바뀌었다 할 거 같으면 계속 공부할 이유가 있는 거라. 그럼 나는 배우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려고 했고, 그러고 나서 내 자신이 바뀌었다는 거라.

그게 인제 이 '바가와'라는 의미들을 알 때에 여러분들이 반드시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되는 그런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것이 사위성과 제따와나 하고 아나타삔디까 급고독장자라고 하는 것, 이걸 보면서 사원을 건립할 때의 조건들을 분명하게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절은 누구 소유입니까? 누구 소유라? 여러분들 거라? 여기 우리 선원이 있는데, 선원운영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합니다. 재가자들이 합니다. 그럼 재가자들인 여러분들 거라? 아니죠? 그렇게는 말하기가 좀 곤란할 거 같지? 그렇다고 해가지고 여러분들 것이 아니라고 해서 여러분들이 사용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스님이 여기 있으면서 여러분들에게 법문 전해주고 수행지도 한다고 해가지고 스님 겁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죠? 내 거일 거 같으면 내 맘대로 해야 되지. 니 나가 하고 쫓아내버리고, 뭐 아니면 여기 있는 것 팔아먹어 버리고 할 수 있는 건데,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죠? 내가 여기 있는 것 요거 하나 연필 하나라도 남에게 함부로 줄 수 없어. 그리고 여러분들이 보기 싫다고 해가지고 나오지마 소리 하지도 못해. 여기에 속한 모든 것들은 이 스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럼 누구 거라? 이 절은 누구 겁니까? (수행자 대답)

상가 소유입니다. 상가 소유. 그것도 그냥 일반 상가가 아니고 '사방 상가'.

그래서 상가 소유이기 때문에, 여러분 소유도 아니고 스님 개인소유도 아니고, 모든 스님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게끔 만들어 낸 공간이 이 절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스님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재가자들이 운영한다고 해서 재가자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이 절이라는 겁니다.

 

그게 인제 이 아나타삔디까가 처음에 이 절, 자꾸 나는 제따와나가 우리말로 뭔지, 아! 기원정사. 기원정사가 왜 자꾸 생각이 안 나가지고... 기원정사를 만든 계기가 되는데,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사위성은 꼬살라국이라고 하는 인도의 양대 강국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결국에는 마가다국에게 망해서 합병되는데, 이 꼬살라국의 수도가 있는 곳이 사왓티라고 해서 사위성입니다.

여러분들 지금도 인도 성지순례 가면 '사헤뜨-마헤뜨' 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 지명이. 그게 이 사왓디에서 따온 것입니다. 사위성에서. 지금도 사위성 유적이 사헤뜨-마헤뜨 라고 해가지고 그 지역 일대에 퍼져있습니다. 사위성에 뭐 왕궁만 있겠어? 집터도 있을 거고 감옥터도 있을 거고, 각각 이렇게 많이 있습니다.

 

저기에 처음으로 절 다운 절을 만들게 됩니다. 그전에는 스님들이 머무르는 공간들이 절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뭐 나무 아래서도 머물고, 동굴에서도 머물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때 당시 부처님이 있었던 데가 이 꼬살라국이 아니고 마가다국이었어요. 빔비사라왕이 있는 마가다국. 그래서 부처님 처음 성도 후에 14년 간을 거의 그쪽 지역에서 있었습니다.

아나타삔디까가 거기에 무역을 갔다가 친구가 전에는 자기가 올 거 같으면 되게 반겨주었는데, 반겨주지도 않고 막 밥한다고 음식 한다고 바쁜 거라. 그래서 뭐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어보니까 부처님을 내일 초청해가지고 공양 올리기로 해서 나는 준비해야 된다. 그러니까 너는 저기 가만히 있어라 하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이라는 말을 듣고 이 아나타삔디까가 깜짝 놀랩니다. '아, 내가 과연 이 세상에서 '붓다'라는 명호를 들을 수가 있구나' 하는 거라. 그거에 깜짝 놀랍니다. 과연 내가 그 복을 타고 났는가 하는 거라. 나도 그 복이 있을 거 같으면 내일 부처님 만날 수 있는가? 그런 마음이 딱 듭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얼마나 마음이 설랬겠어? 내일 부처님 본다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그다음날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좋거든. 그리고 부처님이 혼자 오시는 게 아니고 각각의 제자들이 같이 와서 앉아있는 모습들이 너무 좋은 거라. 그래서 자기는 여기 무역하러 왔지만 언젠가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부처님 초청해가지고 부처님이 거기서 머물게 하면서 거기서 법을 설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납니다.

그래가지고 부처님 한테 물어봅니다. 부처님! 나 사실은 여기 이 나라 사람이 아니고 다른 나라 사람인데 내 고향인 사위성에 가거든 내가 부처님을 초청할려고 하는데 부처님이 와서 머물러 줄 수 있겠느냐 하고 물어봅니다.

 

그때 부처님이 얘기하기를 '빈 집'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의미는 뭐냐 하면 지붕만 이렇게 있으면, 비만 피할 데가 있으면 나는 언제든지 거기 간다는 거라. 거기 가서 머물면서 법을 설해주겠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절이라는 개념이 꼭 보온되고 이렇게 더울 때 시원하게 하고 이런 개념이 아니고 비바람을 피해줄 수 있는 공간이면 절이라는 말을 처음에 썼다는 얘깁니다. 그게 인제 부처님 성도 후 14년 후에 그거라도 지어졌으니까 그전에는 얼마나 힘들게 부처님도 사셨을 거라?

 

그 얘기를 듣고 이 아나타삔디까가 급히 자기 집에 가서 부처님 머물만한 공간을 찾는데, 옛날부터 이 사위성 주변에는 선인들이 머무르는 공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이나교라든지 여러 가지 종파의 성인들이 머무르는 곳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일대를 뭐라고 하느냐면 '이시 상가'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선인들의 무리가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찾다 보니까 거기가 제따와나 라고 하는 지역인 거라. 기원정사! 그런데 그 동산의 소유가 제따왕자가 소유하고 있던 땅이거든. 그러니까 남의 땅에 할 수가 없잖아. 자기가 그걸 사야 되니까 제따왕자한테 이 땅, 이 동산 팔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따왕자가 돈이 없어서 팔 거라, 뭐가 아쉬워서 그걸 팔려고 할 거라. 그러니까 안 파는 거라.

 

민가에서도 좀 떨어져 있고 어디 멀지도 않으면서 숲에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 땅이라. 안 팔려고 하는 거라. 그러면서 이 제따왕자가 안 팔려고 말을 "이 땅에다가 전부 금을 깔면 내가 팔게" 그렇게 얘기합니다. 옛날에는 그게 그렇게 비쌀 수가 없는데, 금덩이 하나가 얼만데 돈이? 그런데 진짜 아나타삔디까가 그 말을 듣고 땅에다가 금을 깔기 시작합니다. 금덩어리를. 그걸 보고 제따왕자가 기가 찬 거라. 그래서 물어봅니다. 뭐 때문에 이걸 살라고 하느냐는 거라. 저 금덩이를 깔았는데, 별로 그렇게 돈 많이 안 들어도 다른 데 같으면 살 수 있는데 왜 이 땅이 필요하냐는 거라.

 

그러니까 그때 이 아나타삔디까가 부처님을 모시려고 그런다. 내가 이때까지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인제는 나는 부처님 말씀 듣고 바르게 좀 잘 살라고 그런다. 바른길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저런 성인들이라는 거라.

그것도 그전에는 사람들이 '붓다'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못했어요.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도 없었을 뿐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 저분이 붓다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거든. 그런데 누구든지 "저분은 붓다다" 하고 얘기를 하는 거라. 그리고 부처님도 "나는 붓다다" 하고. 자기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도 누구든지 다 '붓다'라고 칭하는 분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데 그 분을 모시겠다 하니까 그때사 제따왕자도 그래 그럴 거 같으면 내가 나머지 땅은 기증할게. 이때까지 깔아 놓은 금은 줘라. 그 땅은 니가 산 것으로 하고 나머지 땅은 내가 주겠다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따왕자가 소유했던 원림(園林)'이라 해서 '제따와나'라고 그럽니다.

그 '제따'를 한자로 '기타'라고 하니까 우리나라에서는 '기타왕자의 원림'이라는 뜻으로 '기원', 그다음에 '정사 - 아라마'라고 해서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하는데, 사실은 기타왕자가 아니고 제따왕자입니다. 빨리어로 하면.

어쨌든 제따와나를 그렇게 해서 마련을 하게 돼서, 그날 하루 동안에 80채의 집을 지었다고 경전에는 나와있습니다. 하룻밤에 80채를 지었다고 할 것 같으면 잘 지은 건 아니겠지. 부처님 말마따나 딱 그냥 지붕만 있는 집일 거라. 비바람 피할 정도를 만들었다는 거라. 그러고 나서 부처님을 초청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따와나는 부처님이 성도 후 14년째에 제따와나에 있으면서 그 뒤에 20년 넘어 그쪽에서 쭉 머물면서 법을 설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그런 곳이 됐습니다. 그게 제따와나라고 하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불교의 역사에서 이 제따와나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역할들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경전들 특히 중요한 경전들이 여기서 많이 설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비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는 곳에 있으므로 해서 안정되게 스님들이 머물 공간들이 생겨나니까 당연히 법을 설할 수 있는 조건들이 더 많이 갖추어지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만들고 나서 이 사원을, 제따와나라고 하는 곳을 사방 상가에 기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절의 의미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절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 소유도 아니고, 여러분을 가르치고 있는 스님 소유도 아닙니다. 그것은 상가의 소유입니다. 그 개념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항상 절을 만들 때는 어느 스님이든 와서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 꼭 법을 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머물 수 있는 곳을 제공을 해주어야 됩니다.

어제 같은 경우 두 사람인가 세 사람인가 수행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해피스님이 내한테 대념처경 번역할 게 있어가지고 그거 물어본다고 왔어. 두 스님이 앉아서 얘기할 자리가 없는 거야. 내 방은 덥고 쏘물제. 그러니까 여기 할 수 없이 차 먹는 데서 얘기를 해야 되는데 처음에는 소근소근 얘기할라 해도 그게 소근소근 되나?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되겠다 싶어서 수행하는 사람들한테 그때 점심 때가 조금 넘었을 때 한시 반이나 됐을 때 너그들 밥좀 먹고 온나 그랬어. 그래 쫓아냈어. 쫓아내고 나서도 속으로는 참 미안한 거라.

 

아, 이거 스님들하고 같이 앉아갖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방해받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거야. 그래서 참 여기를 옮기긴 옮겨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오는 사람 오는 스님들이 와서 편하게 머물 수 있어야 되는데 이거는 눈치 봐야 되는 거라. 그래서 이것도 참 큰일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더라고. 어쨌든 누구든지 또 어느 스님이든 밤늦게 부산에 도착했다. 그럼 어디 가서 잘 거라? 그럼 여기 와서 자야 되는 거라. 그러면 와서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이 항상 마련이 되어 있어야 되는 거라.

 

그래서 절을 만들 때 맨 먼저 짓는 게 뭔지 알아요?

스님들 공간! 법당 먼저 짓는 것이 아니고 스님들 공간 먼저 항상 먼저 짓게끔 돼있습니다. 스님들 공간을 먼저 짓고,

두 번째 하는 것이 뭔지 알아요? 우뽀사타를 할 수 있는 공간, 그러니까 스님들이 모여서 포살을 할 수 있는 곳을 먼저 짓습니다.

그다음 세 번째 짓는 것이 쉽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수행할 수 있는 공간,

그다음에 맨 마지막에 네 번째 짓는 게 부처님 모시는 법당이라.

그런데 우리는 지금 거꾸로 하고 있지. 그마만큼 스님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항상 유지가 돼야 된다 하는 겁니다.

그게 인제 절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음에라도 선원을 옮긴다든지 아니면 땅에다가 뭘 지어야 될 때 항상 유념해야 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수행할 공간이 물론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수행을 지도하는 사람들은 스님입니다. 그러면 스님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그 수행하는 공간도 오래도록 유지할 수가 없다는 거라. 그게 항상 기본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머물고 또 한 스님이 아니고 여러 스님이 모이면 항상 포살을 해야 되기 때문에 포살을 할 수 있는 곳이 만들어져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수행할 수 있는 공간,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예경 올리면서 할 수 있는 부처님 모시는 공간, 이런 것들이 순차적으로 지어야 되는 것들입니다.

 

자! 그게 서두 부분인데 서두 부분 말미에 보면 그런 게 있습니다.

신들도 한참 이 망갈라가 뭔지 싸우다가 결국에는 답을 못찾고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 망갈라가 뭔지 우리한테 설명 좀 해주십시오" 하고 얘기합니다.

여러분들 어려운 것이 있으면 부처님한테 빌죠? 그런데 이 경전대로 할 거 같으면, 부처님이라고 하면 안되겠다. 어쨌든 여러분들이 관세음보살이라고 치자. 관세음보살님한테 빈다고 할 거 같으면 그 관세음보살도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한테 해결을 부탁하는 거라. 그게 이 경전의 처음 서두에 나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될까? 신들도 삼계 - 욕계, 색계, 무색계에 있는 신들도 윤회하는 존재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거기서 편하게 놀고 즐긴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수명이 다해서 다시 또 죽음을 맞이해야 되고, 또 다시 태어나야 돼. 어디로 태어날지 몰라도. 그런데 이 윤회하는 세계를 뛰어넘은 사람은 오직 유일하게 그 당시에는 부처님밖에 없다는 거라. 그런데 이 신들보다, 하느님이든 알라신이든 관세음보살이든 뭐든 간에 그런 신적인 존재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존재가 부처님이라는, 붓다라는 존재라는 거라. 그러니까 당연히 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부처님한테 와서 해결을 부탁을 합니다.

 

또 하나, 이 대목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뭐냐면 신들이 아무리 머리를 짜내가지고 문제의 답을 찾으려 하더라도 답을 못찾는 이유가, 인간은 더할 나위 없고, 왜 그러냐 하면 감각적인 것들로 인해서 이 답을 찾을려고 한다는 거라.

그러니까 나한테 이익이 되는 것, 내가 좀 더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한 것, 아니면 내가 좀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위한 것, 이런 것들로 이 문제 해결을 할려고 하니까 답이 안 나온다는 거라.

쉽게 말하면 그건 답을 잘해줍니다. 여러분들이 무당집에 가서 점보듯이 내 돈 많이 벌라면 어찌해야 됩니까? 그런 거는 무당이 잘해줍니다. 쉽게 말하면 이리이리 하라 할 거 같으면 돈 잘 벌어. 내가 무슨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 애가 공부를 안 하는데 그거 공부 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럼 그런 분들은 그것들은 잘 얘기를 해줄 수 있다는 거라. 물론 어떨 땐 틀리기도 하겠지만, 그것까지는 다 봐줄 수가 있다는 거라. 그것들은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리고 인간의 뛰어난 사람들도 그걸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거라. 그런데 딱 그것뿐이라는 거라. 그 존재들은 그거 이상은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라고 하는 거는 쉽게 얘기하면 돈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방법대로 하면 돈 많이 벌 수가 있어. 그런데 그 돈 그것들은 안 없어지는 것들이라? 언젠가는 돈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없어질 때 그럼 안 슬퍼져요?

 

그런데 이 방법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부처님밖에 없다는 거라.

그러니까 문제의 포인트 자체가 틀려져 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딱 이 사람이 진짜 돈이 생기든 돈이 안 생기든 관계없이 이 사람이 항상 이익되고 행복할 수 있게끔, 더 좋은 일이 항상 일어날 수 있게끔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부처님밖에 없다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이 망갈라에 대한 답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신들한테 가서 기도하지마 그거는 세속적인 답밖에 해줄 수가 없어. 세속적인 것은 어떤 경우든지 무상한 성품에 속하는 거라. 자기도 윤회하면서 무상한데 답 찾는다고 그 무상한 거 속에서 답을 찾을려고 하느냐는 거라. 참 어리석은 거라.

 

자! 그러면 인제는 부처님이 답한 첫 번째 부분입니다.

"발라세와나. 어리석은 자와 친하게 지내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발라'라고 하는 것은 '자신보다 아래'라는 뜻입니다. 문자 그대로 할 것 같으면 나이가 적다는 그런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나이가 적다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세속적인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전에 담마빠다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좋은 도반을 만나지 못하면 쉽게 말하면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들이 버글버글 옆에 있을 거 같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했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가라. 무조건 혼자 걸어가라는 것이 아니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말고 혼자서 가라 하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은 어울리지 말아라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걸 착각하면 안 됩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거하고 어울릴 것 같으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라.

여기서 자기보다 못한다는 것은 계정혜(戒定慧)가 나보다도 떨어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계행(戒行)을 지키는 것이 여러분들 잘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오계, 나는 오계를 잘 지키는데 나보다도 오계 안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은 나는 오계를 잘 지킬지는 몰라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오계를 잘 못지키는 사람의 꾀임에 빠져들어가게 된다는 거라. 야! 누구야, 오늘 우리 술 한잔 할까? 그러면 자기는 술을 잘 안 먹고 잘하는데도 홀라당 빠져가지고 가버린다는 거라. 누구야, 어느 엄마는 뭐 어쨌더라 저쨌더라 막 고자질 해쌌고 옆에서 할 거 같으면 자기는 듣기 싫은데도 어느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나중에 보니까 남들 고자질하고 있다는 거라. 자기보다 못한 사람 자꾸 어울리다 보니까 그렇게 딱 바뀌어버린다는 거라. 그게 인제 계행 부분입니다.

 

그다음에 정() 부분도 수행 안 하고 만날 농땡이 치는 사람 옆에 있을 거 같으면 수행 안 하고 항상 빈둥거릴려고 합니다. 게을러지게 됩니다. 아, 오늘 수행하러 가고 싶은데 그런 조건들이 자꾸 생겨나니까 수행하러 갈 수 있는 조건이 안돼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잘 나오는 날이 화요일 목요일이다. 그날 가려고 하는데 뭔 일이 탁 생겨. 그 친구가 뭐 어짜고 저짜고 하면서 뭔 일이 생겨가지고 못 와. 나는 수행을 하고 싶은데 할 시간이 안 되는 거라. 그건 뭐 때문에 그런 거라? 나보다 못한 사람을 주변에 가까이 두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내가 바른 판단을 가지고 지혜롭게 살고 싶은데, 그런 사람들 옆에 있을 거 같으면 지혜롭게 되지 못해. 그러니까 만날 시어머니하고 싸우고 뭐하고 싸우고 이런 일만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만들고 있는 거라.

 

그렇다고 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걸 버려두라는 것은 아닙니다. 연민과 자애의 대상으로 삼아야 되는 것이지 '아, 참 저 사람이 불쌍하다, 저 사람이 행복하게 되고 바르게 살아가기를'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이지, 너는 내보다 못한 사람이니까, 너 내 친구 안 해. 너 저기 가. 이래버리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경에서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길을 걸으면 오래도록 비탄에 빠진다. 오래도록 고통속에 살아간다" 하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마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그사람이 연민이나 자애의 대상이 될지는 몰라도 같이 어울려서 다녀야 될 사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만 처음에 잘 정리해도 그래도 인제 첫 단추는 끼울 수가 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뒤에 한번 쭉 읽어보십시오.

두 종류의 나쁜 친구, 세속적으로 말하는 나쁜 친구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나쁜 친구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그걸 구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세속적으로 이 나쁜 놈 하는 거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나쁜 놈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알고,

그리고 나쁜 친구를 가까이하지 말고 어울리지 말아라 하는 의미는 뭐냐 하면 자기도 나쁜 쪽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다는 거라.

그 나쁜 놈이 진짜 나빠해야 될 대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것은 연민의 대상인 것이지만, 내가 나쁜 쪽으로 갈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내가 죄를 지으면 그 결과를 누가 받아? 자기가 받아야 되는 거라. 왜 자기가 악의 구렁텅이에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거라.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과 나쁜 친구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선우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나쁜 친구가 있을 수가 있는 거고,

싫어하는 사람 중에서도 선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걸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됩니다.

감정적인 것에 따라서 좋고 싫은 것이 일어나는 것인데 그 감정적인 것에 따라가지고 아, 너는 내한테 좋은 친구다. 너는 내한테 싫은 친구다 하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거는 구분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을 적어놨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어떤 게 그러면 '발라'에 해당이 되는가, 어리석은 자들에 해당이 되는가 하는 것들을 좀 더 풀어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