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법문 교재(프린트물)

자신이 만든 그물에 스스로 걸리지 마라 (20150522)

담마마-마까 2021. 11. 15. 09:00

* 자신이 만든 그물에 스스로 걸리지 마라 (20150522)

 

■ 불교 사상과 죄의 개념 ■

 

종교는 「죄」라는 말을 중심으로서 자신의 가르침을 펼치지만, 불교는 「집착·속박」이라는 말을 중심으로 진리를 말합니다. 죄의 개념은 불교 사상의 중심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속박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죄를 범한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속박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선도 실천합니다.

 

■ 집착의 두목 ■

 

그러면 속박이란 무엇인가라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속박하는 것·속박의 대상은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나 가족에게 집착하고, 재산에 집착하고, 지식에 집착하고, 권력에 집착하고, 일에도 집착하고, 음식이나 오락에도 집착합니다. 무수한 집착 속에서 최강의 집착은 자기 자신의 신체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에 집착하기 때문에 다른 집착도 일어납니다. 집착의 두목은 자신의 신체입니다. 다른 집착은 부하입니다.

 

■ 케마왕비의 일화 ■

 

부처님 시대에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에게는 케마라는 왕비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절세의 미녀였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에 케마는 자신의 신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빔비사라왕의 궁전의 사람들은 부처님과 친했기 때문에 그녀의 귀에도 붓다의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그녀는 「붓다는 아름다움을 비난하는 사람이다」라는 오해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오해라고 단언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붓다는 모든 현상은 무상이라고 말합니다. 육체는 부정하다고 관찰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자신의 미모로 오만하게 되어 있는 그녀에게 붓다의 가르침이라며 사람들이 신체의 부정함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붓다는 절대 만나지 않는다!」라고 결정했습니다.

 

빔비사라왕은 「궁전의 모든 사람들이 삼보에 귀의한 불교도인데, 소중한 왕비만 사악한 견해에 빠져 있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인에게 부탁하여 죽림정사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노래를 만들게 했습니다. 음악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에 케마왕비는 감동했습니다. 아름다운 그 사원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죽림정사 사원이라고 알아, 그곳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과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사건을 부처님도 알고 있었습니다. 죽림정사 사원을 방문한 케마왕비는 부처님과 비구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더구나 선녀와 같이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부처님의 옆에 서서 부채로 바람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부처님께서 케마왕비에게만 그런 현상이 보이도록 신통을 일으켰습니다.

 

케마왕비는 「아름다움을 비난하는 사람이라면, 미인을 선택해서 부채질을 시킬 리는 없다. 나의 오해였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붓다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의 옆에 서 있던 여인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름다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미모였습니다. 케마의 눈은 부채질하는 여인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케마의 머릿속에서 말마저도 없어진 상황을 가늠한 부처님께서는 만든 현상이 서서히 바뀌도록 했습니다. 16세 여인에서 20살이 되고, 25살이 되고, 30살이 되고 하는 식으로 그 미인은 빠르게 나이가 먹어 갔습니다. 더 나이를 먹어 늙은 노파가 되고, 더 늙어 추악한 신체가 되어, 넘어져 죽어 버렸습니다. 육체도 썩어가서, 뼈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빠르게 변하는 현상에 못 박혀 있던 케마의 마음은 어느새 바뀌어 버렸습니다. 「아름다움은 덧없는 것이구나!」라고 알았습니다. 자기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웠던 여인이 나이를 먹어 추악한 신체가 되어 버린 것을 보고, 자신의 육체에 대한 애착과 자만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케마여! 신체는 부정한 것을 모아 구성된 것이다. 신체로부터는 항상 부정한 것만 흘러나온다. 어리석은 자는 부정한 육체에 집착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케마왕비는 예류과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출가하여 아라한의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일화는 모든 속박·집착의 두목은 자기 자신의 육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속박의 굴레 ■

 

속박의 굴레를 이해합시다. 이 육체에 「감각(vedanā)」이 있습니다. 감각이 있기 때문에 느낍니다. 안·이·비·설·신으로 느낍니다. 속박·집착은 이 감각에 의해 일어납니다. 아름다운 것을 눈으로 느끼면 욕구가 생깁니다. 추악한 것을 눈으로 느끼면 보고 싶지는 않다는 분노가 생깁니다. 동시에 보고 싶은 것을 찾아 구하는 의욕도 일어납니다. 이것을 정리해서 「갈애(tanhā)」라고 말합니다. 갈애(tanhā)라고 하는 충동을 원인으로 슬픔 비탄 고민 괴로움 등이 계속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있는 생명은 감각으로부터 일어나는 갈애의 함정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생명의 괴로움의 원인이 갈애라고 발견하셨습니다.

 

■ 붓다는 속박을 다 알고 말했다 ■

 

집착·속박 등은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고 당시 인도의 다른 종교에서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이해나 분석은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우리도 속박을 끊는 것을 말한다. 붓다도 속박을 끊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양자는 같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종교의 사람들도 속박의 하나나 두 개는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속박을 다 알지 못한다라는 것이 논의의 포인트입니다. 「속박은 전부 몇 개 있습니까? 속박은 어떠한 원인에 의해 일어납니까? 속박의 단점과 장점은 무엇입니까? 속박을 완성시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라고 비구들이 질문을 던지면, 상대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악의 주축 ■

 

안․이․비․설․신․의라고 하는 육근에서 일어나는 감각이 속박(갈애)을 일으키는 범인인 것입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발견입니다.

악의 주축에 대해서 다른 종교는 여러 가지를 말하지만 대부분 신비적인 이야기입니다. 또는 신화를 원인으로 가리킵니다. 붓다는 매우 구체적으로 「(악의 주축이란) 육체의 감각이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종교는 수행으로서 고행을 추천합니다. 다양한 예의범절을 추천합니다. 단식해라, 오락을 버리라, 알몸으로 수행해라, 전 재산을 버리라, 성전을 소리 내어 읽어라, 침묵행을 수행해라, 숲에 숨어 살아라, 등을 말합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경우 악의 주축은 「밖의 세계」가 됩니다.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성욕이 생겼다.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맛좋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욕구가 생겼다」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더럽히는 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수행이 됩니다.

 

■ 종교적인 수행도 하나의 속박 ■

 

그러나 불교에서 보면 이것은 착각인 것입니다. 사람은 지루하면 놀거나 음악을 듣거나 합니다. 함께 있으면 싸움이 되면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져,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이러한 일은 일반인은 누구라도 행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의 해소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가 말하는 고행 등의 수행 방법도 같은 사고 패턴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말하면 욕구·분노·혼란 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침묵행을 한다든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면 욕구가 일어나기에 숲에 숨는다는 수행 시스템은 일반인의 스트레스 해소법과 같습니다. 일반인이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여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해소했지만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행을 실천해도 같은 속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종교의 수행 방법은 「계금취(sīlabbataparāmāsa)」라는 하나의 속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자승자박을 넘어라 ■

 

악의 주축은 자기 자신의 육체에 있는 감각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거미집에 비유해서 이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거미는 육각형으로 실을 쳐 둥지를 만듭니다. 자신이 만든 그물의 한가운데에 삽니다. 그물에 다른 벌레들이 걸리면 그 실을 통해 그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거미의 생활입니다. 자신이 친 그물로부터 빠질 수 없습니다. 그물을 만드는 실은 자신의 신체로부터 나옵니다. 누군가가 실로 그물을 쳐 준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육근의 감각 기관으로부터 밖의 정보를 느낍니다. 그 정보에 의존해 살아갑니다. 6개의 감각은 당연히 자신의 신체로부터 발생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 6개의 감각으로 짠 그물에 걸쳐 있는 것입니다. 이 그물은 자기 자신이 만듭니다. 자신이 만든 그물이지만 자유자재로 그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안․이․비․설․신․의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의해 밖의 세계에 대한 속박이 생깁니다. 그것에 따라 슬픔, 고민, 괴로움 등이 생깁니다. 윤회하는 생명은 이 그물 안에서 살아

갑니다.

 

현자는 찢기 어려운 이 그물을 찢습니다. 감각에 대한 집착·의존을 버립니다. 그것에 따라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육체도, 감각도, 감각에 들어오는 정보도, 항상 변화하는 무상인 현상입니다. 어느 하나도 집착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모든 현상은 무상이라고 발견하는 것으로 집착이 없어집니다.

 

● 이번 포인트

 

• 죄의 개념은 불교 사상의 중심축은 아닙니다.

• 속박·집착(갈애)은 불교의 중심축입니다.

• 집착의 두목은 자신의 육체입니다.

• 집착은 감각으로부터 일어납니다.

• 괴로움을 넘어서기 위해서 집착을 끊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