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붓다야나선원법문

까티나(kaṭhina) 축제에 대해서 (20151023. 대구)

담마마-마까 2021. 12. 29. 09:05

https://youtu.be/yR5izwQZfM4

* 까티나(kaṭhina) 축제에 대해서 (20151023. 대구)

 

까티나 행사 어디서 누군가 본 사람? 한 분밖에 없어요? 언제 봤었어요?

(수행자 대답 : 밀양인가 어딘가 거기서...) 아, 밀양에서 봤어요?

 

사실은 각각의 사원에서는 다 까티나(kaṭhina)를 합니다. 원칙적으로 할 거 같으면 다 하게끔 돼있습니다. 한 분 스님이 거주하고 있어도 까티나를 합니다.

그런데 까티나를 하는 조건은 다섯 분 이상의 스님이 모였을 때 까티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분의 스님이 거주를 한다고 하더라도 다른데 있는 스님을 초청해가지고 그렇게 하게끔 돼있습니다. 그 대신에 초청하든 안 하든 다섯 명의 스님이 안된다 그러면 까티나 행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일단 내가 태국에 있었으니까, 태국 같은 경우에는 까티나에 동참 안 하는 일반 국민이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다 같이 까티나에 참여를 합니다. 그러니까 태국에서는 까티나 행사라는 게 전국민이 참여하는 그런 행사로 아예 자리매김이 돼있고.

태국에 대표적인 게 에메랄드 사원인데 에메랄드 사원에 가사를 갈아입히는 때가 있습니다. 일 년에 세 차례 갈아입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 까티나 행사 때 가사를 새로 갈아입히게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원들에 보면 우리 부처님하고 틀리게 우리 부처님은 금으로 그냥 해놔놓고 있는데, 다른 테라와다 사원에서는 그냥 가사를 부처님한테 입혀놓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까티나 가사 때 가사를 새로 부처님한테 입혀드리는 이런 의식들을 하기도 합니다.

태국에서는 그 까티나를 부르는 이름을 '톳 까틴' 이렇게 부릅니다. 그거는 뭐냐면 까티나에 모든 이들이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을 붙여놨습니다.

 

그다음에 미얀마 같은 경우에는 까티나를 어떤 식으로 하느냐면, 만약에 우리 여기 대구에서 한다 그러면 어제 아침부터 시작해서 밤까지 물레질을 하게 돼있습니다. 그러니까 까티나 가사를 만드는 겁니다. 경쟁이죠. 누가 빨리 까티나 가사를 만드느냐.

쉽게 말하면 물레질을 해가지고 실을 직접 만들고 그걸 가지고 옷감 짜는 거 있잖아. 옷감을 짜고, 그걸 다시 짜르고 그다음에 깁고 물들이고 말리고 다림질하고 하는 것 전체를 한 날에 다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까티나 하는 날이다 그러면 어제부터 해서 어젯밤에 다 끝내놔야 돼. 그래서 누가 빨리 하고 잘 만들었느냐 해가지고 가장 잘 만들은 걸 까티나 가사로써 사용을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포상금이 굉장히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절에 까티나 가사 만드는 게 있다고 그러면 거기에 출전 했다가, 또 저 절에서 한다고 하면 거기가서 또 출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까티나 가사 만드는 거기에서 뭐 얼마를 벌었다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는데, 그래서 어찌 보면 위법성이라고 봐야 하는데, 좀 진취적인 그런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미얀마에서는 경쟁하는 구도로써 그렇게 해나갔어요.

 

그 대신에 까티나 행사는 다 동일한데 쉐다곤 사원, 그러니까 미얀마 같은 경우에는 부처님한테 옷을 갈아입히는 것도 물론 있지만, 탑에 그 천을, 천을 짠 것은 여러 사람이 짰을 거 아니라. 그걸 잇대어 가지고 그 탑에다가 돌돌돌 가사를 둘러주는 의식들을 하는데 그게 약간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그다음에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면 까티나를 할 때 보면 항상 까티나 집을 짓게 됩니다. 바나나 나무를 가지고 바나나 나무를 잘라서 집을 짓습니다. 그래서 모든 의식들을 그 전날부터 해가지고 내내 스님들이 거기서 독경을 합니다.

한 스님이 들어가서 두 시간 했다 그러면 그다음 스님이 들어가서 두 시간 정도 하고 하다 보면 밤새 독경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게끔 합니다. 쉽게 말하면 까티나는 성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장소에서 해야 된다 해가지고 그렇게 까티나 집을 짓게 되고, 그걸 '까티나 빙까마' 그렇게 얘길합니다. 스리랑카 말로.

 

그렇게 봤을 때는 까티나를 하는 세 나라를 보면 공통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 그다음에 특별한 것, 그다음에 성스러운 것" 그런 의미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내가 문제를 하나 낼게요. 까티나의 의미가 뭘까?

 

까티나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빨리어 사전을 들여다보면은 '단단하다' '견고하다', 그다음에 천을 만들기 위해서 '거푸집', 단단하게 고정을 시켜놔가지고 천을 짜르기 위한 거푸집이 있어요. 가사가 있으면 가사 천조각이 일정해야 됩니다. 긴 건 긴 것대로, 짧은 건 짧은 것대로 그렇게 짜를 수 있는 형틀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것을 거푸집이라고 합니다. 그 거푸집을 딱 고정을 해놔놓고 거기에 맞게 천을 짜르는 겁니다. 그래서 그 거푸집을 뜻하는 것으로 얘기들을 합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넘어온 경전들, 사분율이나 오분율 이런 대승경전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거기서 까티나 가사 뜻을 번역한 것을 보면 전부다 뭐라고 그러느냐면 '공덕의(功德衣)' 라고 그렇게 돼있습니다. ‘공덕을 낳는 가사’다 하고 공덕의다 그렇게 적어놨습니다.

물론 까티나 가사에는 여러 가지 공덕, 다섯 가지 공덕을 낳기 때문에, 그것도 그 공덕이 개별적으로 하나씩 있는 것이 아니고 다섯 가지 공덕이 전부 다 한꺼번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공덕의라고 그렇게 적어놓은 겁니다. 의미상으로는 맞긴 맞습니다.

 

그럼 테라와다에서는 까티나 가사의 의미를 뭐라고 할까?

 

그냥 '까티나' 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이. 그걸 특별하게 번역을 안 합니다.

 

단지 왜 '까티나'라고 하느냐 할 것 같으면 거기에 풀이를 해놓은 게 있습니다.

 

까티나 가사도 일반 가사와 동일합니다.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다른 가사는 전부 개인의 스님에게 주는 건데, 이 까티나 가사는 그와 다르게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상가에게 주는 것입니다. 어느 특별한 스님에게 올리는 것이 아니고 상가에게 올리는 가사거든.

상가에게 올리는 가사이기 때문에,

일반 가사라고 하더라도 상가에서 받아서 상가에서 지정된 스님에게 까티나 가사를 입도록 하고, 거기에서 상가 회의 상가 갈마를 통해가지고 그 까티나 가사가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그 특권들이 미치도록 하기 때문에 그래서 까티나라고 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가사를 뜻하는 용어들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보통 가사를 얘기할 때는 찌와라(cīvara) 라고 빨리어로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빱바 찌와라, 빵수꿀라 찌와라, 그다음에 아랫가사를 얘기할 때는 안따라와사까 찌와라 이런 식으로 전부 찌와라라고 하는 가사 이름을 붙입니다.

쉽게 말하면 '분소의(糞掃衣)', 그다음에 '숲속에 널려있는 천을 가지고 만드는 가사'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는데, 까티나라는 거는 빨리어 경전을 다 들여다봐도 '까티나 찌와라'라는 이름이 없어요. 그냥 '까티나'입니다.

 

그건 왜 그럴까? 다른 거는 만약에 우기 때 안거 때 안거 시작할 때 스님한테 가사를 공양하고 올립니다. 그것은 우기, 비옷이라는 개념으로 '비 올 때 입는 아랫가사' 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런데 까티나(kaṭhina)에 찌와라(cīvara)라고 하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까티나라고 할 것 같으면 당연히 가사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랫쪽에 걸치는 가사든 아니면 위에 걸치는 가사든 아니면 스님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중으로 된 두 겹으로 된 가사든 그걸 대가사라고 그럽니다. 그 대가사이든 어떤 식으로든 가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가사가 까티나 때 쓰여진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당연히 스님들이 입는 가사이지 다른 용도로 쓰여지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겁니다.

그렇게 봤을 때 까티나는 스님들이 입는 가사를 뜻하기는 하는데, 찌와라라고 하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특별한 가사로써 지정이 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작년에 서울에서는 직접 가사를 만들어봤어요. 흰 천을 사와 가지고 염색을 우리가 직접 하고 그걸 잇대어 가지고 가사의 형식을 만들고 그러고 나서 그날 당일날 그걸 직접 염색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염색한 것은 딱 한 벌 뿐이었거든. 윗가사 하나만 만들었었거든.

 

그런데 까티나 가사는 세 벌을 줄까? 아니면 한 벌을 줄까?

스님들은 아랫가사(antarvāsaka), 윗가사(uttarāsaṅga), 대가사(saṃghāti) 해가지고 세 벌이 있습니다. 세 벌이 한 조가 됩니다. 세 벌 다 줄 거 같애요? 까티나 가사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까티나 가사는 어떠한 경우든지 하나, 하나만 만들게 돼있습니다.

 

대부분 윗가사를 만듭니다. 하나를 만들어서 그걸 까티나 가사로 지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 두 벌을 주는 것은 뭘까? 그건 까티나 가사가 아니고 일반 가사를 주게끔 됩니다.

까티나 가사로 지정된 것은 내가 직접 천을 가지고 만든 것들이든, 그렇지 않고 그냥 시중에서 사가지고 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까티나 가사로 지정될 수 있는 것은 딱 한 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까티나 가사 행사를 할 때 까티나 가사를 펼칠 때는 세 벌을 펼치는 법이 없습니다. 딱 한 벌, 한 벌만 펼치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까티나 가사 때 보면 다른 스님들도 다 가사를 받거든. 한 벌 받는 사람, 두 벌 받는 사람, 어떤 사람은 세 벌 받는 사람 각각 다 다릅니다. 가사가 많으면 많이 받을 거고, 그래도 세 벌 이상 받을 수는 없고, 그렇게들 받는데 그 가사들은 일반 가사이지 까티나 가사는 아닙니다.

 

단지 까티나 가사를 받는 것은 한 스님이 딱 한 벌만 받는 것이지만,

그 대신에 스님들이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 가사를 누구 재가자들이 가사를 올렸습니다." 천을 올렸든 아니면 일반적으로 사가지고 올렸든 어쨌든 올렸습니다.

"이 올린 것을 상가에서 까티나 가사로써 받아들이겠습니까?" 하고 스님들한테 묻습니다. 그러면 상가 스님들이

"예. 까티나 가사로써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합니다.

그러고 나면 이 가사가 까티나 가사로 쓰여지게 됩니다.

그 까티나 가사를 받은 스님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 까티나 가사를 5개월 이내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반드시 입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버리게 될 때는 까티나 가사의 특권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은 항상 소지를 하게끔 돼있습니다. 그렇게 스님들한테 물어보고 나서,

 

"이 까티나 가사를 어느 스님에게 주는 것이 합당합니까?" 하고 스님들한테 상가에서 물어봅니다.

그럼 "올해는 어느 스님이 받기에 적당하니 어느 스님한테 까티나 가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까티나 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이 열거가 됩니다. 그러니까 가사를 받을 줄을 모르고, 가사를 버릴 줄을 모르고, 가사를 입을 줄을 모르고 이럴 거 같으면 그 까티나 가사 받을 자격조건이 안 되는 거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조건 중에서 그래도 적당하다 싶을 경우에 그걸 스님에게 까티나 가사를 받도록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까티나 가사를 받은 스님이 있다. 그럼 까티나 받은 스님은 대중들 한테, 상가 스님들한테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 까티나 가사를 내가 받았습니다. 까티나 가사 받은 것을 일반 상가에서 용인해 주십시오. 상가에서 허락을 해주십시오." 그럽니다. 그럼 다른 스님들은

"예. 당신이 까티나를 받은 것을 상가에서 허락을 합니다." 하고 이렇게 얘기를 할 것 같으면 그 까티나 가사 받은 것이, 까티나 가사는 한 벌을 받았지만 까티나 가사를 받은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특권들은 상가 스님 전체에게 미치게끔 됩니다.

 

그래서 다른 가사 하고는 의식이 차이가 납니다. 다른 가사는 그 스님한테 주면 그 스님이 고맙습니다 하면서 아누모다나라고 해서 축복게송을 해주면 끝나버리는데, 이 까티나 가사는 절차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빈두' 라고 해서 까티나 가사에 점 찍는 의식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축복 의식들도 해야 되고, 그다음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사를 버리는 의식도 해야 되고, 이런 여러 가지 의식들을 같이 다 겸해야 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복잡하긴 한데,

 

그 기본적인 테마는 뭐냐면 다른 가사하고는 차이나게 까티나 가사는 반드시 상가에게 올리는 가사라는 겁니다. 상가에서 용인한 가사이지 다른 개인적으로 받는 가사가 아니다 하는 걸 반드시 그 행사에서 나타내주도록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어떤 면에서는 까티나라고 하는 의미는 '특별하다'라는 그런 의미들을 가지게끔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받는 가사이기 때문에 공덕을 많이 낳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상가라고 하는 것은 지금 있는 스님들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상가가 없어지기 전에는 언제든지 새로운 스님들이 출가할 것 같으면 그 분들도 상가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래에 일어날 그 상가도 그 상가에 다 포함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 때문에 거기서 얻어지는 공덕들은 굉장히 많아져버리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 가사를 올렸을 경우에는. 그런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까티나 가사를 할 때는 스님들은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과거 부처님인 연등불 같은 경우에도 그 까티나 가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까티나 가사의 마지막에 바늘에 실 끼워주는 거 그걸 연등불께서 직접 하고 그리고 자기의 제자였던 수자타 스님에게까지 까티나 가사를 받도록 그렇게 한 기록이 있고, 지금 현재 석가모니 부처님도 꼭 마찬가집니다. 까티나 가사 물들일 때 석가모니 부처님은 뭐 했을까? 기록에는 다림질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가사 만들고 나서 직접 다림질을 하고,

 

그게 까티나 가사가 처음 실시된 게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 37년째 될 때, 말년이죠? 45년 기간 중에 37년째이니까 거의 말년입니다.

 

그때 처음 까티나 가사를 처음 실시하게 됩니다. 그전에는 까티나 가사라는 것이 없이 지내게 됐는데, 사실은 부처님은 크게 어려움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생활 패턴들을 보면, 예를 들면 이번에 내가 어디에서 안거를 들겠다 할 거 같으면 일반 스님들은 유월 보름에 안거 지내러 가서 안거를 시작하면 되는데, 부처님 같은 경우에는 그때 가가지고는 안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부처님이 어디에 계신가 알 거 같으면 일반 재가자들이나 스님들이 거기 가가지고 부처님 이번에는 내가 어디서 안거를 지낼려고 하는데 수행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물어보러 사람들이 온다고.

 

그러면 적어도 부처님이 안거 지역에 가 있어야 되는 것은 통상적으로 일반 스님들이 안거를 지내러 가는 시기보다도 훨씬 앞에 한 2개월 전에 그 안거 지역에 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안거를 마치고 나서라도 일반 스님들이 안거를 마치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부처님 나 이번에는 어떻게 수행했습니다." 하고 보고하고 부처님한테 다시 또 이에 대해 점검도 받고,

또 그동안에 부처님이 설한 법문이 없는지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가지고 듣기도 하고, 계율이 바뀐 조항이 있는가 하는 것도 알고, 그렇게 가야되기 때문에, 안거가 끝난다고 해서 부처님이 그 지역을 벗어나가지고 다른 데 만행을 다닐 수 있는 형편도 못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까티나 가사를 받고 나서 다른 스님들이 이동을 하게 되면, 까티나 가사 기간이 지나고 나서 약 두 달 정도는 내내 그 장소에 부처님이 계시게 됩니다.

 

그렇게 봤을 때는 안거 석 달, 그다음 안거 전 두 달, 그다음 까티나 가사 기간 한 달, 그다음 까티나 가사 기간이 지나고 나서 두 달, 그렇게 되면 8개월 적어도 8개월은 한 곳에 머물러 있게 되는 거라.

나머지 많아 봐야 한 4개월 정도 부처님은 유행을 다녔다고 봐야 되는데, 그렇게 봤을 때는 사개월, 짧을 때는 삼개월 정도 되겠죠. 그렇게 만행을 다니게 될 때는 시자들도 있고 하니까 크게 불편한 것은 아닙니다. 시자들이 있을 경우에는 시자들이 상가띠를 들고 다니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경전에도 보면 아난다야, 내가 피곤하다. 그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가지고 깔아라. 그렇게 하면 그 접은 자리에다가 부처님이 앉아있기도 하고 좀 누워있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경전에 나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아닌 일반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안거가 끝나고 나면 이걸 내내 갖고 다녀야 되는 거라. 쉽게 말하면 3개월 빼고 나면 9개월 동안은 내내 이걸 갖고 다니려면 너무 힘들어.

빱바 지역에 있던 스님들이 부처님이 있는 곳에 가서 안거를 지낼려고 오다가 안거 시간이 딱 되버렸거든. 안거는 어떤 경우든지 전안거는 유월보름에 시작이 되는데, 유월보름이 지나야 부처님이 계신 급고독 장자가 있는 곳에 죽림정사에 갈 수가 있게 되었거든.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가지고 거기 빱바 지역에서 안거를 지내게 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계신 곳에서 거의 60km가 떨어진 지역이라.

 

안거가 끝나고 나더라도 대부분 인도나 동남아시아 지역 대부분은 그때까지도 아직 비가 오는 때입니다. 그래서 안거가 끝나고 나서 부처님한테 가려고 하는데 이 가사를 들고 그 60km를 걸어갈려고 하니까 온데 진흙탕이 다 돼갖고 이렇게 가게 된 거라.

부처님이 그 모습을 보고 너무 안타깝거든. 적어도 저렇게 비오는 때는 피하고 또 만행을 다니는 시기 때는 그래도 이 무거운 대가사는 안 가지고 다녀도 될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 하고 마음을 먹고, 그때 이 까티나 제도를 시행을 하게 됩니다.

 

까티나 가사를 받아서 그것으로써 젖은 옷들이 있고 더러워진 옷들이 있을 때는 빨 수 있도록 하고 갈아입을 수 있도록 하고, 그러고 나서 그 까티나 가사를 받았을 경우에는 이 대가사는 5개월 동안은 안 가지고 다녀도 된다 하고 유예기간을 주게 됩니다.

그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은 어떠한 경우든지 내가 밖에 가서 잘 상황이 된다 할 것 같으면 항상 이 가사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도 스님들 입장에서는 그게 어디야? 갈아입을 옷이 생겼다는 거하고, 그리고 이 무거운 대가사를 안 가지고 다녀도 된다는 것 그것만 보더라도 굉장한 혜택인 거라.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안거가 끝난 스님들은 반드시 까티나 행사에는 참여해야 됩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자기는 어떠한 경우든지 여벌 옷을 받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가사 딱 세 벌, 그중에 아랫가사는 딱 하나거든. 자기가 씻으려 가려해도 갈아입을 옷이 없어. 윗가사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까티나를 지내지 않고는 스님들이 이 옷이 아무리 더러워지더라도 이걸 세탁할 방법이 없어져버리는 거라.

그리고 어디를 가더라도 이 대가사를 지니고 다녀야 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해.

 

솔직히 스님도 어떨 때는 서울 가고 할 때는 반드시 이걸 가지고 가는데, 이거 가지고 가지, 바리때 가지고 가지, 어떨 때는 이 겹가사 이거는 두 겹으로 된 건데 되게 무거워요. 힘들어 죽겠어. 그래서 부처님이 제정하는 김에 까티나 가사를 받는 스님들은 일년 내내 이 대가사를 안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했으면 좋을 건데, 딱 오개월로 해놨으니까.

5개월 지나고 나머지 기간들은 또 가지고 다녀야 돼. 그래도 5개월 안 갖고 다닐 때는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는 거라. 그래서 만행을 다니고 할 때, 법을 설하러 다니고 할 때 편의를 그렇게 부처님이 많이 도모를 해놓았구나.

 

그 대신에 부처님이 또 훌륭한 게 뭐냐면 그렇게 가사를 받았더라도 딱 5개월만 제정을 해놓은 이유는 뭐냐면,

이걸 아예 안 가지고 다닌다고 할 것 같으면, 지금도 그 까티나 가사 특권 기간 5개월이 지나고 나서도 안 가지고 다니는 스님들이 허다하거든. 습이 돼버리는 거라. 가지고 다니기 너무 귀찮고 힘들거든. 그래서 아예 안 가지고 다니는 거라. 그런데에 빠져버리는 거라.

그것만 그렇게 되면 좋은데 대부분 보면 하나의 게으름에 빠지면 또 다른 게으름이 또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게으름이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어 주고, 또 힘든 기간들은 부처님이 편리하게끔 만들어주고 그런 것도 있어요.

 

그대신에 가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을 반드시 정해놨습니다. 그게 언제냐면 안거가 끝나고 나서 한 달 이내에.

아마 일년 열두달 이 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할 거 같으면 아마 스님들 방에 가사가 요만큼 쌓일 거라. 언제든지 받으니까. 내가 여기 가서도 받고 저기 가서도 받고 시시때때로 가사를 받게 될 거 같으면 여름에 입는 옷, 겨울에 입는 옷, 봄·가을에 입는 옷, 아마 시시때때로 바꾸게 될 거라. 아마 스님들이 원하지 않아도 재가자들이 다 그렇게 스님들한테 가사를, 옷을 입혀줄 거라. 한국 스님들 다 그렇게 하고 있는 거라.

 

그런데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가사를 받을 수 있는 게 딱 한 달로 한정돼 있습니다.

 

그때 못 받으면 일년 동안 받을 수가 없어. 그러니 여러분들이 까티나 가사 때 올리는 그 일반 가사도 굉장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스님들은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게 되고 까티나 가사 말고 일반 가사를 받을 수 있는 시기에 그 가사를 받는 것들이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가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까티나 가사를 받은 스님과 마찬가지로 특권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고, 그래서 까티나 가사 할 때 가사 보시들을 많이 하게끔 합니다.

 

그걸 '찌와라 깔라'라 해서 '정시', '까티나 가사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나머지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가사를 받을 수 없는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이 원한다고 해가지고 맘대로 어느 때든지 가사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거라.

그런 의미에서는 이 까티나 가사는 불교 행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들을 하게 됩니다.

 

가끔씩 스님이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만약에 불교행사 중에서 까티나 행사가 없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모르긴 하더라도 출가한 스님들이 계율하고는 관계없이 맘대로 재가자들로부터 가사 보시를 받았을 거라. 여러분들은 과연 일년에 한 벌만 옷을 살 수 있다. 그럴 것 같으면 한 벌을 사가지고 그걸 일년 동안 입는다. 가능할 거 같애요? 여러분들 그리 안 하죠? 여름 옷도 따로 있고 겨울 옷도 따로 있고 합니다.

 

그런데 스님들은 이거 그냥 하나 뿐입니다. 추우면은 안에 따뜻한 걸 뭘 입는다고 하더라도 이건 가사가 아니라는 거라. 가사가 아니기 때문에 가사의 흉내를 낼 수가 없는 거라. 한국 같이 이렇게 한복 형태로 해서 가사 비슷하게 만들 수도 없어.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그렇게 만들면 크게 혼납니다. 이게 가사냐? 합니다.

몸을 보호하고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위에 티 같은 걸 입는 것이지 그 이상을 허용을 안 하는 거라.

 

밑에도 마찬가집니다. 밑에만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냥 개량한복 같이 밑에 입도록 하면 따뜻하고 좋을 건데 왜 그걸 못 입도록 하느냐고 내보고 뭐라 하거든. 내가 뭐 입지 마라해서 안 입나? 부처님이 그렇게 정해놓은 거라. 그래서 겨울인데 이렇게 어떨 때는 여자들 스타킹 그거 사고 간다는 거라. 안에 보온하기 위해서 그렇게 입을려는 거라. 그런데도 그게 보기 싫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라.

가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대신에 일 년에 한 차례 가사를 받기 때문에 적어도 갈아입을 옷은 생깁니다. 그게 한 몇 년만 지나면 가사 몇 벌이 생겨납니다.

 

실제적으로는 나머지 가사는 전부 상가 소유입니다. 상가 소유인데 자기가 임의로 사용을 하고 있는 거라. 상가의 허락을 얻어가지고. 그렇게 하더라도 사실은 스님들은 몇 벌 안 되요. 그래도 그렇게라도 되는 게 까티나 가사 행사가 생겨난 후에 그게 가능했다는 거라.

 

그래서 최소한의 것으로서 사용을 하라는 거라. 욕심부리지 말고. 아마 그걸 안 해놨으면 지금의 한국스님들 짝이 딱 나게 되는 거라. 가사 올리는 사람들도 부담스러워지고, 입는 스님들도 그 가사의 소중함을 모르는 거라. 그러니까 의식이 있을 때만 그냥 입는 거라. 의식이 있을 때만.

실제로는 항상 입고 다녀야 되는 것인데. 가사의 소중함을 몰라. 절에 가면 가사가 널렸잖아요. 가사를 하도 많이 아무 때나 받아가지고.

 

그래서 까티나 가사는 일 년에 딱 한 차례만, 그 한 달 기간이라 하더라도 까티나 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딱 한 차례 밖에 없어요. 그 이외에는 한 달 기간 내에라고 하더라도 다시 또 할 수가 없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참 현명하시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최소한 스님들이 욕심 부리지 않게끔 하고,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마련된 것들이기 때문에, 그 가사를 올리는 일반인들에게는 굉장히 공덕이 되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게 까티나 가사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사실은 우리 테라와다 교단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해마다 그 까티나 행사를 해왔습니다. 요번에는 부산에서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되도록이면 다른 때는 몰라도 까티나 행사에는 동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면서 물질적인 보시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동참하는 것이든, 아니면 다른 정신적인 마음을 쓰더라도 까티나 행사가 있을 때는 반드시 동참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게 상가가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한 스님이 뛰어난다 하더라도 상가가 없는 상태에서 그 스님이 존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스님은 개인의 역량으로 한정돼있게 됩니다. 그런데 전체 상가라고 하는 것은 그 개인에 한정된 것을 뛰어넘는 겁니다. 그게 거기게 포함되서 더 큰 역할들을 하게 되고 더 큰 일들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마하빠자빠띠가 부처님한테 까티나 가사를 올릴려고 하니까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나한테 올리지 말아라. 상가에 올려라. 상가에 올릴 것 같으면 그것은 까티나 가사가 된다.

부처님도 부처님 위신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만 상가의 위신력과 비교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가사를 올리는데, 상가에 올릴 수 있는 가사는 이 까티나 가사가 유일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상가의 여러 가지 의례를 볼 수 있는 것도 까티나행사 때만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다른 때는 여러분들이 그 상가 행사들을 보고 싶어 하더라도 갈 수가 없어.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계를 받는다. 사미계 받을 때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 데서 하지만, 비구계 받는다 할 거 같으면 그 시마홀 안에 들어가서 스님들끼리 옹알옹알옹알 하고 일반인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럼 비구계를 상가 스님들이 아니면 직접 볼 수도 없고, 그리고 상가 스님들이 포살을 한다, 보름마다 포살을 하지만 그거 어디 재가자들이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하나? 못 봐! 마찬가지로 스님들 잘잘못에 대해서 회의를 한다. 일반 재가자들은 못 들어가는 거라.

그래서 상가의 의식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여러분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지금 현재 결집을 6차 결집까지 했습니다. 결집할 동안에도 재가자들이 일체 들어갈 수 없어. 비구니 스님도 못 들어가는 거고, 사미 스님도 못 들어가는 거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상가의 여법함들을 의식을 통해서 볼 수 있는 행사도 까티나가 유일합니다.

 

보통 그렇게 얘기합니다. 까티나가 왜 좋은가 하고 물어볼 거 같으면, 상가 스님들이 모여가지고 상가 행사들을 하면서 그것들을 재가자들에게 화합된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래서 재가자들은 좋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여기 처음에 적어 놓은 게, "가사를 보시하는 믿음이 환희로 바뀌는 큰 법요식이다" 그냥 전에는 볼 수가 없으니까 그냥 믿는 것뿐이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까 그것이 너무 기쁘다는 거라. 그렇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행사가 까티나 행사라고 하는 겁니다.

 

딱 한 번, 일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행사이기 때문에, 그리고 불교에서는 4대 명절이 있다고 하더라도, 붓다의 날, 담마의 날, 상가의 날, 까티나의 날 그렇게 얘기합니다.

스님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날이 이 까티나의 날입니다.

붓다의 날, 담마의 날, 상가의 날은 여러분들이 설혹 그것을 잊어먹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참여 못한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 까티나의 날은 여러분들이 참여를 하지 않고 공덕을 쌓지 않을 거 같으면 그 공덕은 여러분들 것이 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얻어지는 공덕은 상가에 인해서 증명되고 상가에 공덕들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크고, 큰 의미들을 가지게 됩니다.

 

까티나 행사가 그마만큼 소중한 것이고, 그래서 이러한 것들은 계속적으로 이어져야 되는 것들이라. 상가가 존재해야만 그게 가능하다는 거라.

아무리 한 스님이 뛰어난다고 해도 그러한 상가를 당한 재간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개개인의 스님에게 자꾸 믿음을 가지고 그 스님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보다는, 그걸 없애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가에 대한 것들을 항상 믿음을 같이 두어야 되는 거라. 그래서 상가의 소중함을 자꾸 알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상가가 존재해야만이 불교가 존재를 합니다. 그리고 그 불교가 존재해야만이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바른 법들을 바르게 전해들을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 문 답 >

수행자 질문 : 스님 까티나 하는 날 있잖아요. 보통 가사보시도 올리고 물품이라든지 필요한 것들도 재가자들이 준비해서 하잖아요. 그럼 스님이 열 분 계시면 개별로 다 드립니까? 아니면 상가에 한꺼번에 올리면 상가에서 나누어 줍니까?

스님 답변 : 상가에서 나누어 주는 게 있고, 또는 개인이 가져왔을 경우에는 그 개인이 열 분의 스님에게 주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그걸 정해줍니다. 그러니까 열 분의 스님한테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스님한테 주고, 나머지 물품들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 다른 스님들에게 전해주도록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행자 질문 : 그러면 이번에 까티나에 참여하시는, 테라와다 스님들은 인원이 어느 정도 됩니까?

스님 답변 : 한 열 분 된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 한국에는 통틀어가지고 해봐야 열 분 내외입니다. 왜 열 분 내외라고 하느냐면 상가를 구성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하는 스님들이 좀 있고, 그런데 그분들은 아직 상가의 소중함을 몰라.

그래서 그럴 경우에는 그분들은 빼고, 또 어떨 때는 테라와다 승복을 입었다가 어떨 때는 한국 승복 입었다가 이럴 경우 왔다리 갔다리 하는 스님들은 아예 다 배제를 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경우든지 테라와다의 율에 따라 테라와다의 법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계속 살아가면서 상가에 소속돼있는 스님들만 해당되기 때문에 그런 스님들은 열 분 내외라고 보면 됩니다.

 

조금 더 늘어날 것 같으면 지금 한국 테라와다 불교에는 소속돼있지 않지만 상가의 구성원으로 있는 외국인 스님들이 있습니다. 그 스님들은 똑같이 테라와다 상가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분들은 올 경우에는 포함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받을래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안거를 지낸 스님들에게만 까티나 가사를 받을 수가 있도록 되기 때문에 더 제한이 되게 됩니다. 테라와다의 승복을 입고 있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다 자격을 갖추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한 열 분 내외라고 보시면 맞을 겁니다.

 

수행자 질문 : 대가사는 언제 입으시며 그것은 계 받을 때 받으면 평생을 지니십니까?

스님 답변 : 예. 이 대가사는 추울 때 위에 덮쳐 입는 거, 그다음에 잘 때 요걸 펴가지고 덮어서 이불 대용으로 쓰고 그렇게 합니다. 또 의식이 있을 때, 계를 받는 의식이라든지, 상가 갈마를 한다든지 할 때는 반드시 대가사를 지참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보름마다 하는 포살을 할 때도 대가사를 지참해야 되는 거고.

 

수행자 질문 : 지금 입으신 그거는 까티나 때 받으신 겁니까?

스님 답변 : 이거요? 이거는 아닙니다. 까티나는 내가 지금 까티나 가사를 받은 게 한국에서는 딱 한차례 밖에 없어요. 다른 때는 다 다른 스님들에게 양보하고 했는데, 올해는 내가 받습니다. 우리 선원에서 하다 보니까, 그때가 되면 까티나 가사로 갈아 입어야 됩니다. 됐습니까?

 

각각의 가사는 용도가 있습니다. 이 윗가사는 안 입어도 되요. 또 이 윗가사는 화장실 갈 때는 벗어야 되는 거고. 잘 때 입고 자기도 하고 벗고 자기도 하고 그건 관계가 없는데, 하루 종일 몸에서 떠나지 않아야 되는 것은 뭐냐면 이 아랫가사입니다.

 

아랫가사의 의미가 뭐냐면 안따라와사꼬(antarvāsako) 라고 그럽니다. 안따라는 아래라는 뜻입니다. 와사꼬 라고 하는 것은 그속에 쏙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자기 집안에 쏙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에 항상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게 안따라와사까 라고 그럽니다.

 

그다음에 윗가사는 웃따라상고(uttarāsaṅgo)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웃따라는 위를 뜻하고, 상고는 위에 걸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윗가사는 걸치는 것이기 때문에 걸치는 것을 벗을 수는 있는데, 지 몸에 쏙 들어가 있는 거는 그거는 벗지 못하는 거라. 그래서 아랫가사는 항상 입어야 되는 거고.

 

대가사, 상가띠(saṃghāti)라고 하는 것은, 상은 두껍다는 뜻이고, 이중으로 된 것이고, 가띠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만든 가사라는 뜻입니다. 대가사는 항상 이중으로 만듭니다. 이중으로 아니면 이중보다도 더 많이, 이렇게 막 누비식으로 이렇게 된 거 있죠? 그것도 상가띠에 해당이 됩니다. 두 가지의 상가띠가 있게 되고, 각각의 가사들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스님들이 외출하고 할 때는 이 상가띠를 안 가져가도 됩니다. 이것은 용도가 추울 때 덮쳐 입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행사있을 때 가지고 가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잠잘 때 머리맡에 두어야 되는 거고, 그런 용도로 쓰는 거지 이거는 입는 용도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입는 것은 아랫가사 하고 윗가사 입니다. 그대신에 아랫가사는 반드시 입어야 되는 거고. 그래서 대부분 스님들은 이 두 벌만 입고 옵니다.

그런데 다니는 건 괜찮은데, 밤을 지새워야 될 경우에는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 됩니다. 밤을 지새울지 안 새울지 의심이 된다고 하더라도 가지고 다녀야 됩니다.

스님 같은 경우에는 멀리 가는 경우, 그러니까 서울을 간다 그러면 서울에서 내가 어떤 일이 생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럴 경우에는 까티나 가사 제외한 기간에는 반드시 이걸 가지고 다녀야 됩니다. 왜 그러냐하면 잘 때는 반드시 이것이 머리맡에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보면 "삼의(三衣)는 몸으로부터 떠나서는 안된다" 하는 것이 나옵니다. 몸에 다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부터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팔을 뻗을 때 팔이 닿는 위치에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항상 스님들은 이걸 머리맡에다 놔놓고 잠에 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됐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