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7 일상수행법문

2016년 붓다의 날 법회 「부처님의 출현은 행복이다」 (20160514

담마마-마까 2022. 2. 11. 09:00

 

https://youtu.be/3pMHcCgzSK4

* 2016년 붓다의 날 법회 「부처님의 출현은 행복이다」 (20160514)

 

오늘은 「부처님의 출현은 행복이다」 하는 제목으로 하겠습니다.

스님 따라서 빨리어를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합장하고,

 

수코 붓다낭 웁빠도, Sukho Buddhānaṃ uppādo,

수코 붓다낭 웁빠도, Sukho Buddhānaṃ uppādo,

수코 붓다낭 웁빠도, Sukho Buddhānaṃ uppādo.

 

예. 편하게 앉으십시오. 그 밑에 빨리어를 읽을라니까 아무래도 못 따라 할 것 같네. 스님 혼자 읽겠습니다.

 

에까 뿍갈로 빅카예 로께 웁빳자마노 웁빳자띠

Eka puggalo bhikkhave loke uppajjamāno uppajjati

바후자띠 히따야 바후자나 수카야 로까로 깜빠야.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이 부분은 아마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봤던 그런 구절입니다.

< 13. Ekapuggalo 제13장. 한사람 품(ANⅠ:13:1~) >

 

이 세상에 한 사람이 태어나면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많은 이들을 연민히 여겨서 태어난다.

하는 구절입니다.

 

부처님이 태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있고, 그런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부처님이 연민히 여겨서 법을 설하게 됐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부처님으로 출가하는 경우가 드물죠?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 만나면 “성불하십시오” 하잖아? 부처를 이루라는 뜻인데 부처가 되는 것은 여러분들한테는 불가능합니다.

 

부처가 되기 위한 여덟 가지 조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사람으로 태어날 것.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을려고 할 것 같으면 천상에 태어나서도 안 되고, 또 다른 지옥이나 다른 세계에 태어나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으로 태어나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조건이, 사람으로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선한 공덕을 쌓고 태어나야 됩니다.

그런 공덕으로 인해서 「좀 더 좋은 조건」으로 태어나야 됩니다.

담미까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이 있었는데, 이 스님은 출가하기 전에 그래도 매번 부처님의 법을 들을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주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런데도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했고, 수행할려는 마음을 내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럴 조건이 안되는 거라. 여러분들도 아마 매주 법문 있으면 매주 와서 법문 듣고 또 일주일에 몇번씩 와서 수행하고 싶지만 그럴 조건이 안 됩니다. 적어도 그럴 조건을 타고 날려면 부단하게 과거생부터 노력해가지고 좀 더 나은 상황이 돼있어야 됩니다.

 

그걸 한국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대장부로 태어나야 된다, 남자로 태어나야 된다" 그렇게 얘기해서, "여자로 태어난 것은 부처가 되지 못할 조건이다" 하고 얘기하는데, 일견 맞기는 맞습니다. 부처님은 전부 다 남성입니다. 그렇지만 남성 여성을 떠나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그것을 빨리어로 해석할 땐 좀 더 좋은 조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합당한 부분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조건이,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아무리 사람으로 태어났고 좀 더 좋은 조건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지혜가 없으면 그 진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할 수도 없고, 그래서 좀 더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모든 현상들은 무상하고, 또 나라고 하는 것이 없고, 불만족스럽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서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을 마음이 자꾸 생겨나야만이 더욱 더 수행을 할려고 하고 그로 인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여러분들이 가능한데, 이 네 번째가 안 됩니다.

 

네 번째는, 직접 부처님을 친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불할려고 할 것 같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부처님이 현존하는 시대가 아니면 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은 부처님이 안 계시죠? 2600년 전에 열반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조건이 안되기 때문에 부처가 될 상황이 아예 안되는 거라. 차단되어버리는 거라. 그래서 차선책으로 아라한이라고 하는 부처 말고 부처님과 똑같은 경지에는 이르지만, 아라한이라고 하는 조건에 해당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런 거 보면 여러분들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태어나지 못한 것이 참 안타까울 겁니다. 그래도 어떡하겠어?

 

그리고 다섯 번째 조건이, 반드시 어느 정도 수행을 하고 나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되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려고 할 것 같으면 세속을 등진 상태가 되지 않으면 그 깨달음의 성품들을 오롯하게 유지해나가질 못한다는 거라.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그다음에 생활하는 것들로부터 모든 것들로부터 청정해야 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져야 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출가자여야 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가, 선정과 신통을 구비해야 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수행에서 선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선정력과 신통이라고 하는 영역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위대한 것들은 다른 아라한 하고는 좀 차이가 많이 납니다.

부처님이 위대한 것은 삼매를 자유자재로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신통이라고 하는 위력들을 분명히 갖추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석가모니 부처님뿐 아니라 과거 부처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음에 일곱 번째가, 특별한 바라밀, 열 가지 바라밀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삼십 가지 바라밀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계를 지키는 것, 보시하는 것, 자애의 마음을 지니는 것, 이런 바라밀들을 하나하나 자꾸 갖추어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여덟 번째가, 서원이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스스로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반드시 부처를 이루겠다, 그리고 부처를 이루고 나서 모든 이들을 바르게 이끌겠다는 마음들, 그런 마음들을 강하게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여덟 가지가 전부 다 갖추어졌을 때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런 조건들을 다 갖추고 부처님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부처님이 오늘 태어나시고 또 성도하시고 또 입멸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서두에 얘기했듯이 "부처님의 출현은 참으로 행복이다" 하는 것입니다.

Sukho Buddhānaṃ uppādo, 수코 붓다낭 웁빠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는 행복이다. 하는 겁니다.

 

그래도 부처님이 출현했기 때문에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해서 바르게 목표를 설정할 수가 있고, 또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른 것이다 하는 것들을 바르게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겁니다.

 

오늘은 그런 부처님을 기념하기 위한 날입니다.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이런 부처님 오신 날을 부처님 탄생한 날만으로 한정하진 않습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시고 또 깨달음을 이루시고 또 마지막 입멸하신 날이 동일한 날입니다.

올해가 불기 몇년입니까? 2559년이죠!

그런데 오늘 이후가 2560년으로 바뀝니다. 여러분들은 자꾸 서기로 계산할려고 하는데, 불기가 바뀌는 것은 오늘 날짜로써 불기 한 해가 탁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후부터는 실제적으로 2560년이 되게 됩니다.

불기가 바뀐다는 것은 부처님이 입멸한 해로부터 부처님이 입멸 후에 한해가 지났다, 두 해가 지났다 해서 불기 1년, 불기 2년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오늘이 불기가 바뀌는 날이라고 하면, 오늘이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이 아니고 부처님이 입멸하신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열반일을 따로 설정하는 것은 불기에도 안 맞고 세계적인 풍습에도 사실은 안 맞는 겁니다.

 

또한 부처님이 오늘 성도를 하신 날이기도 합니다. 깨달음을 이룬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의미들을 되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고 나서 한 게송이 있습니다.

 

키나 자띠 khīṇā jāti,

태어남은 이제 다했다, 끝났다. 지금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을 때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는 태어날 것이 없다는 거라. 그러고 나서

까땅 까라니양 kataṁ karaṇīyaṁ,

그렇게 태어나서 내가 이루어야 할 것을 전부다 이루어서 끝내겠다는 거라. 그리고

우시땅 브라흐마짜리양 vusitaṁ brahmacariyaṁ.

그래서 청정범행을 반드시 완성하겠다.

 

여러분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서 아, 내가 이생이 마지막 생이다 하고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수행하고 열심히 잘살고 있느냐는 거라. 그래서 이 몸 받아 태어났을 때 내가 해야 될 거 완전하게 이루어서 다시는 윤회하지 않도록 하겠다. 또는 살아가면서 청정범행을 완성해가지고 깨달음을 이루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거라. 그래서 그 뒤에

아꿉빠 메 쩨또 위뭇띠 akuppā me ceto vimutti,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겠다. 밖에 보고 듣고 냄새맡고 그리하더라도 그것들로 인해서 마음이 흔들리는 법이 없이 마음은 오롯이 해탈의 상태, 청정하고 고요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나가면서 살아간다는 거라. 그래서 나는

아양안띠마 자띠 낫티다니 뿌납바오 ayam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

그럽니다. 이것이 나는 마지막 생인 것을 안다. 그래서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탄생게의 의미입니다.

 

태어나면서 이 게송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이생에 태어났을 때 이러한 마음들을 가져야 됩니다. 마음에 번뇌가 물들지 않게끔 하고, 항상 마음은 고요한 상태에서 남을 원망하고 욕심을 가지고 미워하고 하는 마음 없이 청정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면서 나는 살아가겠다는 거라. 악한 행위들도 짓지 않고, 수행을 열심히 해가지고 내가 지은 행위들을 전부다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런 상태, 그러한 행위들의 과보를 받지 않는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겠다 하고 마음을 먹고 자꾸 살아가야 된다는 겁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부처님이 태어날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고 했다고 하면서, 이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것만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부처님이 태어났을 때 한 게송은 이 게송들입니다.

내가 이생에 태어났으니까 인제는 내가 부처가 될 조건들을 분명히 갖추어서 사람으로 태어나고 공덕들도 갖추고 바라밀들도 완성하고, 그리고 옛날에 수메다 부처님 밑에서 부처님 있을 때 태어나가지고 수기들도 받고, 그래서 나는 서원들도 세우고 나는 반드시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했기 때문에, 인제 그 조건들을 다 했기 때문에 이생에서 나는 반드시 부처를 이루겠다 하는 거라.

 

여러분은 그런 조건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안 태어났는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먼 과거생에 부처님을 만났는지 또는 바라밀들을 완성을 하고 태어났는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수행을 해보면서 아, 내가 이생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야 됩니다. 바른 행위들을 하고 또 청정범행을 완성할려고 하고, 그래서 열심히 수행해서 깨달음에 이르러야 된다 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상태로서 항상 생활을 해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부처님이 한 얘기가 있습니다.

"나에게 감추어진 비밀스러운 것은 없다.

담마와 위나야를 분명히 설했다.

손바닥에 감추어진 비밀스러운 것은 없다."

 

부처님은 분명하게 본인이 스스로 노력해서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여서 본인이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모든 것들을 제자들에게 설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부처님이 설하지 않고 감추어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배우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 그것들은 전부 부처님이 설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여러분들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대로 실천해나가면 됩니다.

 

이것들은 반드시 하라 할 것 같으면 그것들을 하면 됩니다. 이것들은 하지 말아라 할 것 같으면 하지 말아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이렇게 여러분들이 걸어갈 길이라고 할 것 같으면 그길을 그대로 걸어가면 됩니다. 살아가면서 아,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가, 못 살고 있는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춰보면 됩니다.

'어, 이거는 부처님이 말한 거지'

 

가끔씩 스님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다른 부처님의 제자들보다도. 가끔씩 내가 뭔가에 탁 막혔을 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리뿟따 존자일 것 같으면 이것을 어떻게 했을까?' 답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에게 힘든 일이 닥치고, 또는 뭔가 미로에 빠졌을 때는 '부처님일 거 같으면 이것을 어떻게 했을까?' 하고 자꾸 돌아봐야 됩니다. 그래서 '아, 부처님은 이렇게 하셨구나' 하고 분명하게 알 것 같으면 그렇게 따라가면 됩니다.

 

남이 아무리 모욕을 주고 아무리 모함을 하고 하더라도 "부처님은 인내하면서 그사람들에 대해서 악한 마음을 품지 않고 원한심을 품지않고 오히려 자비의 마음을 가졌다" 하고 알고 있을 거 같으면, 나도 똑같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더라도 그사람들에 대해서 내가 악한 감정 가지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자애의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야 된다는 거라. 문제에 봉착했을 때는 '아, 이럴 땐 부처님은 어떻게 했을까?'

 

그게 담마와 위나야입니다.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과 부처님이 설한 계율 따라서 도덕적인 규범을 따라서 반드시 살아갈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은 법을 설하셨습니다.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그런 중생들이 바르게 자기와 같이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노·병·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늙는 것은 분명한 것이고, 병드는 것도 분명한 것이고, 그리고 때가 되면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체적인 괴로움은 똑같이 우리와 같이 받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부처님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괴로워하고 하는 일은 없었다는 거라.

 

괴로움이 커지는 것은 정신적인 괴로움으로 바뀔 때 그 괴로움은 커집니다.

늙어가는 것들을 부정하고 늙지 않을려고 했을 때 또 세월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늙어가야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괴로움은 커지게 됩니다. 어차피 죽어야 되는데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경각심을 일으켜서 더욱더 열심히 살려고 해야 되는데,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 것 같으면 괴로움이 커지게 되는 거라.

노·병·사라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여러분들이 받아야 되는 겁니다. 단지 그것으로 인해서 정신적인 괴로움이 커지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겁니다.

 

부처님도 똑같이 노·병·사를 겪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압빠마데나 삼빠데타. appamādena sampādethā.

부지런히 열심히 노력해가지고 살아가라는 거라.

살아갈 동안에는 그 몸을 지닌 상태에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서 빨리 이 노·병·사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처님은 입멸을 했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성도하시고 열반하신 날이 바로 웨사카 달의 만월일입니다. 한 날에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성도하고 열반하신 날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아, 노·병사는 겪는 것이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되고, 그리고 우리가 또 '어떻게 사는 길이 바른 길인가' 하고 알려주는 것은 부처님이 출현하면서 그게 가능해진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은 참으로 우리들에게는 행복한 일입니다.

 

오늘은 그런 행복한 날입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을 단지 감각적인 행복으로만 느끼고, 또는 육체적인 행복으로만 느끼라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가져오는 행복은 가장 큰 겁니다.

감각적인 것으로 인해서 오는 행복은 육체적인 즐거움으로 인해서 오는 행복보다도 못한 것이고, 정신적인 즐거움으로 인해서 오는 행복은 육체적인 즐거움보다도 더 큽니다.

거기에다가 마음이 어떤 대상으로부터 벗어나는 행복은 그런 정신적인 행복보다도 더 큽니다. 고요하게 삼매에 빠졌을 때의 즐거움은 또한 더 큽니다.

 

수다원에 이르렀을 때 '아, 내가 인제 이러한 번뇌는 사라졌구나' 하고 분명하게 아는 것으로 인해서 오는 즐거움은 그보다 더 큽니다.

마찬가지로 점차적으로 그 즐거움은 더 커져서 아라한이 됐을 때 '아, 이제 드디어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전부다 마쳤다' 하고 분명하게 알게 됐을 때 오는 행복은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겁니다.

태어났으면 이 마지막 행복을 얻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걸 부처님이 태어나고 성도하고 열반하면서 그대로 보여준 겁니다.

행복이 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그런 날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법을 설할려고 바라나시로 가면서 만났던 수행자가 있습니다. 우빠까 라고 하는 수행자입니다. 우빠까가 부처님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고요하고 너무나 마음이 안정되어있고, 밝게 빛나거든.

그래서 물어봅니다.

당신은 누구를 스승으로 하여 수행을 해서 그렇게 성숙된 모습들을 보입니까?

부처님은 그때 그렇게 얘기합니다. 다섯 가지를 얘기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넘었다.

나는 모든 것들을 알았다.

나는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는 것이 없다.

나는 모든 것들을 버려버렸다.

나는 갈애를 소멸해서 해탈했다.

 

그렇게 다섯 가지를 얘기하고 해서,

이것은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깨달음을 이룬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나보다 더 뛰어난 스승은 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부처님의 위대하심은 여기에서 드러나집니다.

 

첫 번째, 삽바비부(Sabbābhibhū). 모든 것들을 이겼다.

오온과 싸워서 이겼다는 겁니다. 색·수·상·행·식이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습니까? 느낌이 일어났으면 좋은 느낌 싫은 느낌이 있으면 그것과 싸워서 여러분들이 이길 수 있습니까? 맛있다는 느낌이 있다, 그것과 싸워가지고 그냥 맛본다고만 알 수가 있느냐는 거라. 여러분들 몸이 아프고 할 것 같으면 그것과 싸워서 이겨서 정신적으로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할 수 있느냐는 거라.

부처님은 분명하게 색 · 수 · 상 · 행 · 식 다섯 가지와 싸워서 분명하게 이겼다는 거라. 어떤 그 다섯 가지들로 인해서 내가 그것들로 인해서 마음의 괴로움을 받는다든지 아니면 내가 그것들에 휘둘리는 일은 없다는 거라.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죽을 때까지 항상 존재를 합니다. 존재를 하지만 그것들의 노예가 자꾸 되어나간다는 거라. 노예가 되지 말아라는 거라. 그것과 싸워서 이겨나가라는 거라. 그것들에 집착해서 그것들의 노예가 될 것 같으면 여러분들은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 삽바위두하마스미(sabbavidūhamasmi). 그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모든 것들을 알았다.

나의 생명이라고 하는 모든 것 이것들을 알았다는 거라. 나의 생명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체적인 것들이 뭔지, 정신적인 것들이 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거라. 육체적인 괴로움이 오더라도 정신적인 것들을 관찰하면서 육체적인 괴로움을 받지 않을 수가 있는 거고, 정신적인 번뇌가 많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정신적인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거라.

살아가는 것은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몸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되는 것이고, 걸어가고 있으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되는 것이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으면 생각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것이면서도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항상 모든 것들을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그러한 모든 것들을 분명하게 알았을 때는 아, 내가 인제는 모든 것들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선언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삽베수 담메수 아누빨릿또(sabbesu dhammesu anūpalitto) 그렇게 얘기합니다.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떠한 것들에도 내마음은 청정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지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거라. 누군가가 나를 칭찬해줬다 해가지고 마음이 그것을 좋아할 것 같으면 마음은 더러워져버립니다. 뭔가를 보고 욕심이 일어날 것 같으면 그것도 마음이 더러워져버립니다. 뭔가 나에게 많은 이익들이 있을 거 같으면 명예가 있을 거 같으면, 나는 내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할 거 같으면 마음은 더러워져버린다는 거라. 어떤 것에도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마음이 더러워지면 그 즉시에 다시 윤회할 수 있는 업이 생겨나버리게 됩니다. 선한 일을 했을 때도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해야 되는 거고, 악한 일을 했을 때도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을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됩니다.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항상 힘써야 됩니다.

 

그래서 네 번째 얘기하는 것이 삽반자호(sabbañjaho) 그렇게 얘기합니다. 모든 것들을 버려버렸다. 모든 집착을 버려버렸다는 겁니다.

갈애가 일어날 건덕지를 만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감각적인 갈망들, 더 뭔가를 소유하고 가져야 된다는 갈망들, 그리고 어리석어서 뭐 하기 싫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그런 것들도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겁니다. 모든 집착을 그냥 그대로 버려버린다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 지금 현재 일어나는 대상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때 그러한 집착은 벗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가 딴학카예 위뭇또(taṇhakkhaye vimutto) 그렇게 얘기합니다. 해탈에 이르른다. 갈애로부터 벗어나서 해탈에 이르른다. 하는 겁니다.

마음은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상태라는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은 오온을 가지고 살면서 몸과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고 그러한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마음이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를 하고,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며 나갈 때, 그러한 상태가 지속돼나가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돼나갈 때 '아, 나는 인제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일어난 것들은 일어났다고 분명하게 알고, 사라졌으면 사라졌다고 분명하게 압니다. 내가 그 길을 걸어갔으면 내가 그 길을 걸어갔다고 분명하게 알고, 그리고 내가 그 길에 이르렀으면 그 길에 이르렀다고 분명하게 압니다.

 

경전에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리야 삿짜나 닷사낭, 닙바나삿치끼리야

(Ariya saccāna dassanaṁ, Nibbānasacchikiriyā). 그렇게 얘기합니다.

"성스러운 부처님 가르침 따라서 그것을 끊임없이 알아차려 나가는 것, 그렇게 하면 그사람은 닙바나에 이르르게 된다."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거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분명하게 나아갈 때 그 사람은 닙바나에 이르게 된다.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에게 담마가 드러난다. 생겨난 것들은 반드시 사라진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본 사람들은 모든 의심이 사라져버립니다.

변하지 않는 성품은 없습니다.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집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 아닌 것이든 어떤 것이든 반드시 조건 따라서 생겨나는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생겨나는 것들은 반드시 사라지게 돼있습니다.

여러분도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음을 맞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미워했으면 그 미워하는 마음도 반드시 사라지게끔 돼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집착할 것들은 없습니다. 그것이 담마의 성품입니다.

그 담마의 성품들을 분명하게 봐서 그것이 드러나버리면 다시는 의심을 하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이 태어난 것은 이러한 진리를 사람들의 이익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설하신 겁니다.

그것을 따라서 실천할 것 같으면 설혹 내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결과를 냅니다. 결과를 내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1만큼 내가 분명하게 그 가르침을 따라갔으면 1의 결과를 분명하게 내게 됩니다. 2만큼 내가 분명하게 그것을 실천하고 따라갔을 거 같으면 2의 결과를 내게 되는 겁니다. 그 결과를 내지 않고 사라지는 법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거라. 여러분이 행한 만큼 반드시 여러분이 거두어야 되는 것들입니다.

 

따타따 아위타따 아난냐타따 이답빳자야따.

(tathatā avitathatā anaññathatā idappaccayatā.) 그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이 말한 것들은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것들이 진리인 것이고, 결과를 내지 않고 사라지는 법은 없다 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인해서 무수한 성자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윤회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고, 앞으로 미래에도 그럴 겁니다.

 

오직 한 분의 부처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함으로 인해서 이런 경사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경사스러운 사건의 해당자가 되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런 날을 기해서 "아, 부처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은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하는 걸 자꾸 되새겨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똑같은 조건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부처님과 같이 완전하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태어나시고 성도하시고 열반하신 것이 같은 날에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몸을 받아 태어났으면 반드시 깨달음을 이루어야 되는 거고, 그리고 윤회로부터 반드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 내가 이 몸을 받아서 태어난 것은 참으로 잘했구나' 하는 마음을 되새기고, 그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준 부처님에 대해서 "고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하는 그런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그런 날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