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7 일상수행법문

천상의 법 (20160630)

담마마-마까 2022. 2. 21. 09:00

https://youtu.be/zUGyQS2cgFk

* 천상의 법 (20160630)

 

오늘은 「천상의 법」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어느 대승불교에 있는 스님이 찾아왔어요. 찾아온 목적이 뭐냐면 테라와다 가사를 하나 달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뭐할거냐고 하니까 테라와다 가사를 입고 싶다는 거라. 그럼 어디 사느냐 하니까, 여기서 멀지 않는 곳인데 어디 산골 절에서 사는 거라. 그래서 주는 것은 어려운 것은 아닌데, 그럼 테라와다 가사를 입으면 테라와다 방식으로 거기서 살아가야 될 건데, 스님 그 산골에서 뭐로 먹고 살거요 하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그대로 옛날 방식대로 제사 지내고 하면서 살겠다고 그러는 거라.

 

그러면 그거는 맞지 않다 테라와다 승복을 입었으면 테라와다 방식으로 의식을 해야 되고, 그 방식대로 계를 지키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이지, 대승불교와 마찬가지로 꼭같이 그렇게 할 거 같으면 그건 차라리 대승 승복을 입지 뭐하러 테라와다 승복을 입을려고 하느냐 하면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스님은 끝끝내 이해를 못하더라고. 그냥 가사를 하나 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저렇게 뻗대느냐 이렇게 생각을 했겠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다른 데로 가더라고.

 

여러분들이 테라와다 불자라고 할 것 같으면 테라와다 불자에 맞는 행위들을 해야 될 겁니다. 가끔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처음에 여기 붓다의 길따라 선원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테라와다 불자라고 하면서 그냥 대승불교 사찰에서 무슨 기도 있으면 기도 다 접수하고 붙이고, 또 그 방식대로 따르기도 하고 이렇게들 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점차 '그런 것들이 의미가 참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들을 점차 안 하게 되고, 점 같은 거 부적 같은 거 이런 것들도 안 하게 되고 이러면서 테라와다 불자로서 어느 정도 오롯하게 살아가지게 되고, 그래서 거기에 맞는 부처님 수행법도 따라하게 되고 그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서, 그래서 인제는 어엿하게 테라와다 불자로서 성장하게 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많이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법 이게 부처님의 불교의 수행법이냐 아니냐 하고 물어보는 경우들도 있고, 저번 화요일에 그런 것들도 있고 그랬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전 자따까에 보면 그런 부분이 나옵니다.

"천상의 법이라는 게 있다"

여러분이 천상세계와 같은 삶을 살려고 한다, 또는 죽고 나서 천상에 태어날려고 한다, 그럴 것 같으면 어떤 삶을 살아야 될까 하는 그런 겁니다.

자따까에 보면 그걸 인용한 것이,

어느 스님이 출가를 하게 됐어요. 출가를 하게 됐는데 출가하고 나서도 자기 집을 절로써 사용을 하게 됩니다. 그거는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가 자기 집을 절로써 사용을 하면 그것을 테라와다의 절로써 쓰여야 되는데, 이 스님은 자기가 옛날에 부리던 하인을 그대로 부리고 그 사람들한테 공양을 지어서 올리게끔 하고, 모든 청소나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다하게끔 하고, 가사 하나도 자기가 빨지를 않고 다른 사람들이 다 해주게끔 하고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거라.

 

이 모습을 보고 다른 스님들이 부처님한테 이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 비구를 불러서 그것이 사실이냐 하고 물어봅니다. 사실이다 하니까 부처님이 조금 나무랍니다. 출가한 스님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가진 거 없이 살아야 되는데, 자기 집을 그냥 그대로 소유하면서 그 옛날에 누렸던 생활들을 그대로 한다고 할 것 같으면, 너는 그냥 일반 세속복에서 법복으로 바꿔입은 것밖에 더 되겠느냐. 그게 어떻게 출가자의 삶이냐?

출가자의 삶은 그거하고는 정반대이다. 집착하는 것이 없어야 되는 거고 소유하는 없어야 되는 것이다. 하고 얘기를 하면서, 적어도 너는 출가자의 삶을 살 것 같으면 천상의 법을 따르도록 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옛날에 너는 그래도 그 법을 따랐지 않느냐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그 비구의 과거생 얘기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이런 인연을 만난 것도 어찌 보면 과거생에 좀 더 좋은 복덕이나 공덕을 누렸기 때문에 이런 인연들을 만난 것들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할 것 같으면 급작스럽게 여러분이 지금 이런 조건들이나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비구의 과거생도 꼭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자로 태어났는데 셋째 왕자로 태어났어요. 첫째 왕자와 둘째 왕자는 첫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났고 첫 번째 부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이 왕이 두 번째 부인을 얻었는데 그 두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나게 됐어요.

그런데 두 번째 부인이 아들을 낳으면서, 왕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십시오 하니까, 그 왕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들어줄게 얘기해봐라 그러니까, 지금 얘기할 게 아니고 나중에 얘기하겠습니다. 그럽니다.

 

사실은 그 부분도 나중에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지만, 욕구나 기쁨으로 인해서 뭔가를 약속하게 될 때 그것을 과연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어떻게 처리해야 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되는데,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일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 번째 왕자가 성장하고 나니까 그 어머니가 왕에게 약속한 것들을 얘기합니다. 내 아들을 다음 왕이 되게끔 해달라. 첫째 왕자와 둘째 왕자가 있는데도 그걸 뛰어넘어서 자기 아들인 셋째 왕자가 왕이 되도록 해달라 그럽니다.

왕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으니까 들어줄 수도 없고 안 들어줄 수도 없고 그럽니다. 그래서 첫째 왕자와 둘째 왕자에게 내가 사실은 이렇게 해가지고 약속을 안 지킬 수가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살아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첫째 왕자와 둘째 왕자가 떠날려고 하니까 이때까지 뭣도 모르고 같이 뛰어놀던 자기 형들이 떠나니까 셋째 왕자도 같이 그냥 떠나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숲에 들어갔는데, 이 숲에는 빨리어 용어로 '약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야차라고 알고 있죠? '야차'는 신의 영역에는 속하지만 좀 더 나쁜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겁니다. 기쁨이 많이 솟아나는 신이라기보다는, 나쁜 일들을 좀 많이 하고 인간에게 해로움을 많이 주는 그런 영역에 속하는 분들입니다.

그런 야차가 있는 곳인데 야차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나에게 기쁨이 일어나게끔 하고, 그리고 내가 좀 더 이 몸으로부터 벗어나서 좀 더 좋은 조건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서 그 숲의 호수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다 물어봅니다.

 

"천상의 법이 무엇이냐?" 하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답을 제대로 못하면 잡아먹어버립니다. 그런데도 한 번도 천상의 법이 뭔지를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 '천상의 법'을 빨리어로 '데와담마(Devadhamm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담마는 법이고, 데와는 천상이라는 뜻입니다. 천상이라는 데와는 육도윤회로 볼 것 같으면 인간세계보다도 더 뛰어난 겁니다.

그래서 데와라는 의미는 인간보다도 우수하다, 오히려 인간이 존중해야 될 대상이다 하는 그런 의미가 있고, 또 그 천상은 항상 빛나고 있기 때문에 빛난다 또는 더 넓다 하는 그런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천상의 법이라고 할 것 같으면 대부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 뛰어난 세상의 법칙이다. 아니면 더 넓고 훌륭한 곳에 법칙이다" 하는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첫째 왕자와 둘째 왕자는 잡혔는데, 셋째 왕자는 그 사실을 정확하게 얘기를 합니다.

 

뭐라고 얘기를 하느냐 하면,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추고, 맑고 깨끗한 법을 힘써 행하고, 마음이 고요한 상태로 있는 것, 이것을 하늘의 법이라고 하고 이것을 하늘의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그런다" 하고 얘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늘의 법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것들을 아는 것이 첫 번째와 두 번째다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천상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은 이 히리와 옷땁빠입니다. 그래서 악행 짓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만이 이 세상도 잘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 세상은 항상 증오와 다툼이 끊이지 않게끔 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막대기가 있는데, 하나의 막대기는 똥이 묻어있는 막대기이고, 또 하나의 막대기는 불에 달구어진 막대기이다."

똥이 묻어있는 막대기는 더럽습니다. 더럽기 때문에 그걸 안 만질려고 그럽니다. 또는 불에 달구어진 다른 막대기는 뜨거운 줄 알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워서 그것을 만지지 않을려고 합니다. 그래서 두 개의 막대기를 다 만지지 않을려고 한다는 거라.

더럽고 부끄럽기 때문에, 하나는 두렵고 하기 때문에 만지지를 않는다는 거라.

 

악행은 그와 같다는 거라. 쉽게 말하면 막대기를 만지는 것이 아니고, 악행하는 그 자체를 행하는 것이 그마만큼 두렵고 부끄럽기 때문에 행하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행한 것에 대해서 두렵고 부끄러워하라는 것이 아니고, 악행이라는 자체는 그와 같이 두렵고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행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런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지만이 악행을 행하는 것들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움직이는 두 개의 기둥과 같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천상도 꼭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이 히리와 옷땁빠가 잘 갖추어졌을 때 천상은 행복한 세상이 된다는 거라. 천상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세상이라고 할 것 같으면 적어도 이 두 가지는 갖추고 있어야 된다는 거라.

 

그다음에 세 번째 얘기하는 것이 선행을 행하는 것, 그걸 담마라고 합니다.

보통 열 가지 불선한 행위들을 아담마(adhamm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열 가지 선한 행위들을 담마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삿담마(saddhamma) 또는 담마(dhamm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열 가지 불선한 행위를 하는 것을 둣짜리야(duccariya) 괴로움을 가져오는 일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마찬가지로 열 가지 선한 행위는 숫짜리야(succariya) 즐거움을 가져오는 행위다 하고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하는 선한 행위, 또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하는 악한 행위들 이것들을 얘기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몸으로 남을 해치거나 도둑질하거나 하는 것들, 말을 함부로 하는 것들, 또 악한 생각들이나 나쁜 마음을 가지는 것들, 이런 것들은 하지 말아라는 거라.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하고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 반대되는 것들을 항상 하라는 거라. 남에게 어쨌든 배려해주고 선한 말들을 자꾸 할려고 하고, 몸으로 짓는 것들도 평화롭고 항상 공존하고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할려고 해야 되는 거고, 마음으로도 항상 자비희사의 마음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들, 이런 것들을 해야 만이 바르게 된다는 거라. 그게 세 번째 해야 되는 선행을 행하는 것들입니다.

 

당연히 천상세계는 이런 선행을 행한 자들이 태어나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이 습관화돼있기 때문에 항상 기쁨을 가져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숫짜리야 기쁨을 가져오고 행복을 가져온다는 겁니다.

이 세상도 꼭 마찬가집니다. 둣짜리야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숫짜리야, 자기 자신에게 항상 행복이 오고 기쁨을 가져오는 행위들을 스스로 자꾸 행할려고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얘기하는 것이 침착한 것들.

침착하지 못할 이유들은 없습니다. 침착할려고 할 것 같으면 지금 뭔가에 대해서 이것을 할 수 있는 것들인지 할 수 없는 것들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것 같으면 아예 하지 말아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것들인데도 게으름피우고 하지 못하는 것들이 태반입니다.

그런 것들을 했을 경우에는 마음이 고요해지게 됩니다. 침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못할 경우에 후회하게 되고 또는 원망하게 되는 마음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이것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오고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고, 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할 것 같으면 반드시 행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침착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침착하게 되는 것들에는, 집착하는 것들이 없도록 해야 됩니다. 집착으로 인해서 침착하는 마음들이 깨져버립니다. 나에 대한 집착, 가족에 대한 집착, 물건에 대한 집착들이 평화로운 마음들을 깨버린다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변화하는 것들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됩니다. 모든 것들은 변화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침착한 마음들이 깨져버립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당연히 태어났으면 돌아가게 돼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니까, 침착한 것들이 깨져버리게 되는 거라. 내 물건을 잃어버렸다, 당연히 잃어버릴 조건들이 돼있을 때 잃어버리는 건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슬픔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라. 지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들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평화로운 것들은 깨어져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네 번째 얘기하는 것이 침착하는 것.

 

이 "네 가지가 데와담마-천상의 법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천상은 이러한 네 가지를 갖추고 있는 세계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천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천상의 삶이 되어야 됩니다. 부끄러워할 줄 알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되는 것이고, 또 열심히 노력하면서 선한 행위들을 해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마음은 항상 고요하고 침착한 상태를유지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들이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길이고, 천상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이러한 것들을 지닌 사람들은 다른 것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게 설혹 미신적인 것들이고 또는 테라와다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들은 하지를 않습니다.

천상의 법을 지니는 자들은 적어도 좀 더 편안하게 좀 더 평온하게 이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조건으로 인해서 설혹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음 세상에서는 천상에 태어나는 법이 됩니다.

그게 천상의 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마음을 거기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