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7 일상수행법문

2016년 우안거입재_안거와 안거물품과 공양할 조건 (20160717.경주)

담마마-마까 2022. 2. 22. 09:00

https://youtu.be/rUiku0GvFQE

* 2016년 우안거입재_안거와 안거물품과 공양할 조건 (20160717.경주)

 

오늘 안거 결제날입니다. 안거 결제날 목욕가사 올리는 건 처음이죠?

사실은 스님들이 안거를 할려면 목욕가사를 반드시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가진 가사는 안거기간 동안만 사용을 하는 겁니다.

 

보통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스님들이 입고 있는 3가지 가사 그걸 '한 조'라고 그럽니다. '대가사, 윗가사, 아랫가사' 요거는 하나씩밖에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거는 어떠한 경우든지 새 가사가 마련이 되면 헌 가사는 반드시 상가에 반납을 해야 됩니다.

 

그런 가사인데, 오늘 올리는 목욕가사는 이 가사들하고 차이가 나게 조의가 없습니다. 그거는 보면 밑에 요 조의가 보입니까? 다른 박음질 한 것으로 인해서 쪼가리를 이어붙였다는 표시내는 건데, 그런 조의가 밑에 가사에도 있고, 위에 가사에도 있고, 대가사에도 있고 다 있는데, 오늘 받은 것은 그냥 천쪼가리 입니다. 그래서 그거는 몇개를 가져도 관계가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 출가하고 나선 나한테는 하나밖에 안 줘. 다른 큰스님들한테는 열개 스무개씩 주고 그렇게 되는데, '아, 내가 빨리 큰스님 되야지' 이런 적이 있었어요.

 

그 목욕가사를 반드시 지참을 해야만이 안거에 들어가게끔 되는 것입니다.

목욕가사 없이 안거에 들어간다, 그럴 것 같으면 샤워할 땐 뭐를 입고 해야 돼요? 스님들은 중요 부위를 드러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대중목욕탕에 절대 가면 안됩니다. 대중 목욕탕에 스님들이 들어갔다면 이미 그거는 '돌길라(突吉羅)' '둑까따(Dukkaṭa)'라고 해서 돌길라 죄를 저지르게 되는 형태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목욕가사를 지참하지 않았다고 할 것 같으면 아무리 스님들만 있는 곳이라고 해도 목욕가사를 착용 안 하고 샤워를 할 경우에는 그건 둑까따-돌길라 죄에 해당이 되기 때문에, 청정하게 3개월 동안 수행하고 또 자기 자신을 정화하고 그럴려고 안거를 들어가면서 들어가는 처음부터 죄를 짓고 들어가는 형태를 띠는 것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항상 그 목욕가사를 반드시 지참하고 안거에 들어가도록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게 계율 규정상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스님들이 보통 하는 것이 큰스님한테 “마하테라 빠마데나 드와랏따예나 까땅 삽방 아빠라당 까마투노 반떼” 게송을 합니다.

"스님, 나는 삼개월 동안 결제 들어가는데, 삼개월 동안 몸과 마음 잘 닦고 청정하게 잘 지내겠습니다. 그전에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스님 용서해주십시오." 이렇게 참회하는 게송을 합니다.

그러고 나면 스님이 "그래. 인제 안거 잘 지내라." 하고 덕담해주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전에 스님들이 그랬잖아. "이마스밍 아와세" "이번 석달 동안 결제 들어가겠습니다." 하는 걸 대중들에게 공고하는 그런 의식을 하게끔 됩니다.

그렇게 해서 결제를 들어가게 됩니다. 지내놓고 보니까,

 

스님들이 보통 갖추어야 되는 열 가지 물품이라는 게 있습니다.

 

지금 스님이 앉아있는 이 '아사나(āsana)' 방석, 조그만한 좌복 있죠? 그것도 규정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 스님에게 하나씩 밖에 안 줍니다.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상가 소유로 하게끔 됩니다.

그것도 규정이 돼있기를 전에 쓰던 헌 방석을 네 귀퉁이를 오려가지고 새 천에다가 딱 붙이게끔 돼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 아사나를 보면 색깔이 두 가지 색이 딱 되게 돼있습니다. 안에 색하고 밖에 색하고. 그 이유가 뭐냐면 밖에는 헌 천을 덧댔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그 규정에 맞게끔 나라별로 만들게 돼있습니다.

그것도 언제 안거 들어갈 때 사실은 이 아사나 보시를 많이 합니다. 주구장창 삼개월 동안 수행해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걸 가지고 나무 밑에 가서 하든지 어디 가서 하든지 수행 열심히 해가지고 도와 과를 이루라 하는 그런 뜻으로써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 안거 때는 '목욕가사'하고 '아사나' 하고 스님들한테 많이 올립니다.

참고했다가 내년에 만약에 안거를 할 경우에 스님들한테 올리면 됩니다. 그대신에 아까도 얘기했지만 목욕가사는 여러 벌 올려도 되지만 아사나는 반드시 한 스님에게 하나만! 그리고 그 규정에 맞게끔!

그게 아마 『테라와다 불교의범』인가 언젠가 제가 책을 나눠준 것에 “아사나에 대한 규정"을 적어놨던 것 같기도 하고 한데, 그 규정에 맞게끔, 그거는 아무 데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규정에 맞게끔 만들면 스님들에게 공양올리기 참 좋은 그런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오늘 목욕가사를 올렸는데 목욕가사를 올리면 어떤 이익이 있을까?

경전에 아라한의 깃발이라는 경에 보면 그런 것이 나옵니다. 목욕가사를 올린 분들은악처에 떨어지지 않고 예류과와 같은 효과를 가진다 하고 얘기합니다.

성인의 첫째 길인 예류과는 아니고 예류과와 같은 효과를 가진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경전 그대로 믿어야죠? 여러분들을 만약에 윤회를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악처에는 떨어지지 않고, 그래도 선처에 날 수 있는 조건들은 갖췄다 그렇게 믿으시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그 목욕가사를 받으시는 스님들이 이걸 안 하면 여러분들이 예류과와 같은 조건들을 갖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면 경전 그대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 51번 게송에 나오는 그대로를 내가 읽어드릴게요.

"자애를 닦고, 연민심을 닦고, 같이 기뻐함을 닦고, 평온함을 닦는다면, 사무량심을 닦는다면 그 가사를 보시한 분들에게 공덕이 넘치는 것이 한계가 없게끔 돼서 예류과와 같은 상태에 이른다" 하고 앙굿따라 니까야에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 가사를 받은 스님들이 이번 안거기간 동안에 사무량심을 안 닦고 있다고 할 거 같으면 여러분도 공덕이 도루묵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스님들도 목욕가사를 받은 의미들을 잘 알고, 올해는 그래도 조금 더 별다르게 사무량심을 잘 닦도록 그렇게 해야 될 겁니다.

 

안거 날에는 원래 스님들이 어느 나라든지 탁발을 안 나갑니다.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고, 사원구역내에서 탁발을 하든지 아니면 누군가가 스님들한테 공양을 올립니다. 그러니까 다 준비해놓고 상위에 가서 밥을 먹는 그런 형태들을 취하게 됩니다. 물론 안거 날 아침 일찍 스님들이 할 일들이 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데는 특별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경전에 보면 그게 나옵니다. 오늘 여러분들 '삼귀의' 하고 '오계' 했죠? 그리고 '대중공양' 오늘 스님들한테 올리죠? 그리고 오늘 '보름' 맞죠? 그리고 '목욕가사' 올렸죠? 그리고 이렇게 '물' 스님들한테 올렸습니다. "그걸 올리는 것, 이런 것들은 언제나 보시하는 이들이 보시의 공덕이 넘쳐난다" 하는 내용이 경전 구절에 있습니다.

스님들이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안거 당일 날은 탁발을 나가지를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차려주는 밥상을 그냥 받아먹게끔 그렇게 합니다. 여기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지 안거 당일날은 동일합니다. 대부분 보면 안거 당일날 자기들이 스님들한테 공양올릴려고 참 많이 준비들을 합니다.

 

보통 안거 때가 되면은 출가한 스님들이 원래의 스님에서 거의 두 배 정도 늘어납니다. 그 삼개월 동안 자기들도 청정하게 지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덕을 나눠주려고 하는 의미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단기출가들을 많이 하게끔 됩니다.

우리 교단도 앞으로 어느 정도 자립할 때가 되면은 안거 당일이나 그전에 한 보름 전부터 해가지고 출가하는 제도를 확립을 하도록 하는 것이 참 좋을 겁니다. 안거 때는 여러 스님들이 모여서 있는 모습들이 되면 참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안거 기간동안 여러분들이 또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안거는 스님들이 자기들이 원한다 해서 거기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거는 어떠한 경우든지 재가자들이 “스님, 이번 안거는 여기서 좀 지내주십시요” 이렇게 청해가지고, “그래. 이번에는 내가 여기서 지낼게” 허락을 해가지고 그 스님이 거기에서 안거를 지내게끔 됩니다. 원래 규정이 그렇습니다.

부처님 당시 때부터 부처님부터 그렇게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 그렇게 전통이 쭉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안거 기간 동안에는 내가 초청해서 스님을 모셨기 때문에 그 초청한 스님에 대해서는 그래도 굶지는 않게끔 해줘야 됩니다.

어떨 때는 경전에 부처님도 말이 먹는 먹이를 먹고 안거를 지낸 적도 있고 하지만 굶은 것은 아닙니다. 형편이 안 될 때는 아주 형편없는 음식이라도 스님한테 자꾸 올려야 되는 거고, 또 그러다 보니까 스님들이 밥을 먹을 때 바리때를 항상 지참을 해서 먹게끔 됩니다.

 

비구들 물품 중에 바리때가 있고, 또 바리때를 지금 여기와 같이 감싸고 있는 주머니가 있습니다.

이 주머니도 보통 안거 기간 중에 마련을 해서 올리기도 하고 그럽니다.

경전에는 '필수물품을 싸는 천'이라고 빨리어 용어가 돼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바리때를 쌀 것 같으면 바리때를 싸는 천이 될 거고, 스님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품들을 쌀 것 같으면 걸망 형태가 될 것이고, 그런 것들이 됩니다.

그래서 '걸망'과 이 '바리때 천'은 반드시 이 안거기간 중에는 스님들이 보유를 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가지고 있어야 되고, 또 하나가 뭐냐면 지금 스님들이 대부분 안 가지고 있는데, 안거기간 동안에는 재가자들이 스님들을 방문을 많이 합니다. 여러 가지 물품을 올리기도 하고 공양을 올리게 되는데, 그러면 규정상 스님들은 절대 손으로 그걸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뭘로 받아야 되요?

그래서 보통 가지고 있는 게 스님들이 손수건. 그래서 손수건을 탁 펼쳐놓으면 그 위에다가 물품들을 올려놓으면 됩니다. 남자들일 경우는 바로 받아도 되는데, 여성이 올리는 거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조심을 해야 됩니다. 안 닿도록 해야 되는데, 혹시라도 닿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바로 손으로 받지 못하고 그 천에 받게끔 됩니다.

그래서 안거기간 중에 또 갖춰야될 물품이 스님들 '손수건'입니다.

그걸 가지고 땀을 닦기도 하고 어떨 때는 샤워하고 나서 몸을 닦는 용도로도 쓰기도 하고, 그렇지만 원래의 용도는 스님들이 공양물을 받을 때 그것에 받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가 구비돼야 되고, 또 안거 중에 여러분들이 생각을 해야 되는 게 뭐냐면 경전 용어에는 '침상 깔개'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 대부분의 스님들이 그럴 겁니다. 지금은 여러분들 같이 침대에서 자지를 않습니다. 스님들은 반드시 자는 곳의 위치가 넓고 높은 침상에서는 잘 수가 없습니다. 요즘 말로 싱글침대는 스님들이 하면 그것은 계율위반이 되는 겁니다.

 

넓은 것들, 손을 이렇게 펼쳤을 때 양쪽 손이 펼쳐지는 데서 그거보다 더 넓어버리면 그것은 '넓은 것'에 해당이 됩니다. '양쪽 손을 펼친 것보다 작은 것' 그래서 더블침대가 아니고 싱글침대가 반드시 되야 되고.

높이도 지금의 기준으로 할 것 같으면 60센치, 그것도 엄격하게 보는 데는 그걸 '핫타사' 라고 이렇게 빨리어 용어로는 45센치라고 합니다. 45센치에서 60센치를 넘지 않는 높이가 되야 되고, 대부분 낮아요. 그러면 그거는 한 요정도 됩니까? 요정도 이상 높은 침상은 계율위반입니다. 평상시 때는 그렇게 하도록 돼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침상 위에 깔 덮개가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 그걸 침상 깔개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안거기간 중에 재가자들이 침상깔개를 보시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에 이곳이 스님들이 거주하는 곳일 거 같으면 침상깔개를 보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 대신에 두께가 안에 솜이 들어간다든지 그렇게 용도를 써서는 안됩니다. 스님들이 입고 있는 가사천 두 개를 겹쳐놓은 두께니까, 두께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두겹으로 만들어도 안에 충전재나 이런 것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겹쳐진 형태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누벼가지고 된 싱글침대 형태로써 보시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그다음에 또 안거 기간 중에 공양을 올릴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냐면, 안거 기간은 비오는 때 안거를 하는 거죠? 그래서 '왓사와소(Vassavaso)' 라고 그렇게 빨리어 용어로 얘기합니다. '비오는 기간 중에 안거에 들어간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비가 오다 보니까 몸이 많이 쳐지고 몸에 부스럼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런 몸에 진물이나 부스럼들이 있을 때 입는 옷이 있습니다. 그 빨리어 용어를 한자로 풀이하면 '복창의'라고 얘기합니다. 복창났을 때, 진물 났을 때 그걸 방어하기 위해서 입는 옷, 그걸 안에 입고 그 위에 가사를 입도록 합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복창의를 입었다고 해가지고 가사를 안 입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테라와다 스님들이 아파가지고 병원에 갈 경우에는 어떨 때는 환자복을 입어야 됩니다. 그런데 환자복을 입어도 반드시 입어야 되는 것이 그냥 아랫가사를 손에 쥐고라도 있든지 아니면 여기에다가 끈 식으로 하든지, 해가지고 자기 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복창의'를 준비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아픈 스님들을 대비해가지고 어느 사원에든지 복창의는 항상 준비를 해두도록 그렇게 합니다. 복창의는 특별한 규정이 없습니다. 아픈 곳의 피가 가사에 묻지 않게끔 하는 용도로써 쓰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 환자복 같은 형태라고 보면 됩니다. 그대신에 아래는 지금의 바지 형태가 아니고 치마 형태로 된 것입니다. 그런 형태로만 돼있을 거 같으면 복창의로써는 손색이 없게 됩니다.

 

이게 보통 우안거 기간 동안에 스님들이 구비해야 될 조건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잘 참조를 하도록 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은 스님들이 우안거 목욕가사(vāssikasāṭika cīvara)를 한 벌씩 다 받았습니다.

 

스님들이 다 같이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목욕가사를 잡고, 스님들만 따라서 하십시요.

[ 이망 / 이망

왓시까 사띠깡 / 왓시까 사띠깡

아딧타 미 / 아딧타 미 (3번 반복)

나는 이 목욕가사를 우안거 기간동안에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됐습니다. 항상 안거 기간 동안에 생기는 이러한 물품들은 '아딧타 미' 라고 해서 '이것을 내가 사용하겠다.' 하고 결정을 하게끔 돼있습니다.

 

이와 같이 안거 때는 일반 때 스님들을 모시는 것보다도 훨씬 재가자들이 할 일이 좀 많아집니다. 그 대신에 스님들도 안거 기간 동안에는 더불어 할 일이 많아집니다. 재가자들이 오면 뭐 해줘야 돼요? 법문 해줘야 되는 거라. 법을 설해주고 수행을 지도해주고 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됩니다.

나중에지만, 처음에는 출가한 스님들이 안거 때 할 일이 없습니다. 자격을 안 갖췄기 때문에. 자격이 갖춰지고 나면은 인제는 안거 때는 법문 다녀야 될 곳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조금 전같이 마하보디 선원 스님들이 안거한다 했는데 다른 데는 안거 안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요? 안거 기간은 전국이 동일한데.

 

그때는 거기도 마찬가지 안거하는 스님들이 파견돼가지고 가서 거기서 법문을 하고. 그래서 안거 기간 동안에는 각각의 곳에서 스님들을 초청해서 법문을 청하고 수행지도를 받을려고 하는 곳들이 많아집니다.

그러다 보니까 스님들이 나가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아집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번거롭습니다. 경전상에는 안거기간 동안에는 고요하게 앉아서 수행하라고 그러는데, 이거는 만날 불려다니고 법문하러 다니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많이 번잡하게 되고, 그래서 나중에 되면 안거 때만이라도 내가 외국 좀 나가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그렇게 많아집니다.

 

그래서 규정이 스님들은 안거 기간 동안이라고 하더라도 7일을 경과해서는 안된다 하는 규정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7일 이내에 법문하러 갔다고 하더라도 7일 이내에 반드시 돌아와야 되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안거를 파한 것이 돼버립니다. 파결제가 돼버린다는 형태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마하보디 선원 말고 다른 곳에서 온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럼 거기에서는 몇명이라도 모일 거 같으면, 스님 우리 이번에 마하보디 선원에서 법문요청 할 거 같으면, 쉽게 말하면 교단에 요청했다면 교단에서 반드시 거기에 법문을 청하는 곳에 스님들을 파견을 해줘야 되는 형태들을 띠게 됩니다.

그래서 법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이 참 좋은 때가 안거 기간 동안이라는 겁니다.

 

다른 곳에서 안거를 하는 것은 단지 두 가지 조건 때문에 안거를 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그때는 비가 많이 오는 때이기 때문에 농작물들이나 이런 것들이 자라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농작물들을 밟는 것으로부터 피해주는 역할들을 합니다. 출가한 스님들이 그것들을 밟고 하는 위험성으로부터 그 농작물들을 지켜주기 위한 목적이 하나가 있고, 또 하나가 뭐냐면 비가 많이 오고 할 것 같으면 이동하는 것이 많이 불편합니다.

특히 인도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릅니다.

 

그런데 불교의 사원들이 보통 거주한 곳은 남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고 동서로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 거 같으면 계속 강을 건너야 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러면 어느 곳에서 거주를 하다 보면 강도들이나 짐승들로부터 피해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거는 불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도 꼭 마찬가집니다.

옛날 16대국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형태로써 존재를 했습니다. 그런 위험들이 있기 때문에 다니면 그 출가한 스님들이 위해를 당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한 조건 이 두 가지 조건 때문에 다른 종교에서는 안거를 실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원래 스님들은 다니면서도 풀은 안 밟고 다니려고 노력들을 해왔고, 또 스님들은 다니다가 설혹 죽는다고 하더라도 전법을 위해서 다니다가 죽는 것같이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없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다른 종교가 다 안거를 하더라도 안거를 안 하고 계속 유행을 다니면서 전법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외부에서 너무 그래도 다른 데는 다 안거를 하는데 불교에서 그래서는 되겠느냐 해가지고 안거를 정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까 불교에는 불교 자체적인 독특한 안거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조금 전에 스님이 얘기했던 그런 조건들, 안거를 하면서 스님들이 거주하면 스님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조건들을 마련하게 되고, 또 안거하는 스님들한테 찾아가서 열심히 법을 들을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야 되고,

 

그래서 법을 듣고 수행하기 좋은 조건을 불교에서는 안거라는 형태로 정착을 시키게끔 됩니다.

똑같은 의미라도 윤회라고 하는 것도 불교에서 하는 의미하고 인도 다른 종교에서 하는 의미가 다르듯이, 안거라고 하는 의미도 불교적인 의미와 다른 종교에서 하는 의미가 이렇게 구분이 되게끔 됩니다.

그런 안거가 계속 부처님 당시 때부터 시행되어서 지금까지 쭉 지켜져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안거가 어떤 건지 하는 것은 이해를 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여기 마하보디 선원 재가자들 있어요? 마하보디 선원 재가자들 안거 안 할 거라? 스님들만 안거 해야 될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없으면 할 수 없다. 하기야 뭐 재가자들이 안거 한다고 해서 스님들같이 법납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쳐주는 것도 아니고, 내세울 것도 하나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재가자들이 안거를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냥 스님 따라 하는 겁니다. 스님들이 앉아서 수행하면 같이 앉아서 수행하고, 법문하면 가서 법문 듣고, 내내 사원에 머물면서 스님들이 하는 일상생활을 그대로 따라 하게끔 하는 것이 재가자들의 안거 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재가자들은 안거 기간 동안에는 사원을 떠날 수가 없다 그렇게 규정을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만약에 마하보디 선원 식구들 중에서 안거를 나는 분이 있으면 3개월 동안 꾸준하게 여기서 머물면서 안거를 하는 것도 자기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또는 집안에 아주 애먹이는 사람이 있다. 남편 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우리 애 중에 만날 게임에 빠지는 애가 있다, 그러면 일부러 안거하는 곳으로 보내버립니다. 나올 수가 없으니까. 정신병동 갇히듯이 보내가지고 안거기간 3개월 동안 하도록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마만큼 안거는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자들에게도 굉장한 이익이 있습니다.

 

이왕 마하보디 선원에서 교단 차원에서 안거를 했으니까 안거 기간 동안에는 반드시 마하보디 선원 스님 뿐아니라 다른 스님들을 초청해서 법문을 듣고 수행지도 하는 것들을 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거는 합법적인 거기 때문에, 안거 기간 동안에는.

그래서 조금 더 자기들 삶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안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그 프린트물에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을 겁니다.

 

그다음에 스님이 여러분들한테 얘기해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 매일 밥먹죠? 밥 안 먹고 살지는 못할 겁니다.

 

밥 먹을려면 밥을 먹을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어야 밥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세 가지를 얘기할 테니까 여러분들이 밥 먹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지 생각을 해보고 조건이 안 된다 싶으면 오늘부터 단식을 하시면 됩니다. 알겠죠?

집착함이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

두 번째 늘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있다!

아까는 집착하는 것이 재물이든지 자식에 대한 이런 것들인데,

세 번째는 나에 대한 집착을 버려버린다.

이 3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이 공양할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밥 먹을 자격!

또 이런 세 가지를 잘 갖춘 자에게 공양을 올릴 자격이 있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숫따니빠따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세 개 중에 하나라도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없어요? 음, 그럼 이번 안거기간 동안에는 여러분들은 모두 단식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수행자 질문 : 지금부터 하면 됩니까?)

네. 지금부터 하면 됩니다. 스님도 할 말 없게 딱 만드네.

어제까지는 그리했으면 이미 먹은 걸로 칠게요. 뱉어내라고 할리 없잖아. 오늘부터 반드시 이 3가지는 실천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자 질문 : 다시 한 번만 밥 먹을 자격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요.)

 

집착이 없는 것을 빨리어 용어로 '사찌마나' 라고 그렇게 합니다.

집착 없이 사는 것은 참 힘듭니다.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하다가 보면은 여러 가지들을 집착을 하게끔 됩니다.

그런데 집착하는 것과 그것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만약에 예를 들어서 여기에 물이 하나 있는데, 이 물에 대해서 집착할 것 같으면 이 물이 없어질 것 같으면 나에게는 괴로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물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 사람일 거 같으면, 물이 없어지더라도 이것으로 인해서 정신적인 괴로움은 받지를 않게끔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다 변하는 것들입니다. 사실은 집착할만한 대상은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아는데 그걸 못하는 거라.

그래서 사찌마나라고 하는 것은 뭔가를 소유하고 뭔가를 하지 마라는 것이 아니고, 소유하고 이용을 하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증감이 있다든지 아니면 없어진다든지 했을 때 그것에 대해서 정신적인 괴로움은 받지마라 하는 그런 의미가 더 강합니다.

 

돌아가신 분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서 슬퍼해도 돌아오지 않는 것을 우리는 안다는 거라. 누군가가 나에게 비난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비난에 대해서 바르게 대응만 할 줄 안다고 할 것 같으면 비난으로 인해서 내가 마음에 괴로움은 일어나지를 않는다는 거라.

그런데 그 비난을 그대로 받아버릴 것 같으면, 나는 그것으로 인해서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라.

여러분들은 집착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외부적인 조건들 그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여러분들 수행의 대상은 될지언정 그것이 여러분들이 집착할 대상은 되지 못한다 하는 겁니다. 변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상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들은 집착할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호흡만 무상한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집착하는 대상들을 대상으로써만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내가 그것을 누리고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괴로움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반드시 대상으로써 자꾸 보도록 해서 집착이 없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가 알아차림 '사다사따' 라고 빨리어 경전에는 되어있습니다. 항상 '사띠' 알아차려라 하는 뜻입니다.

뭘 알아차려야 될까? '사띠빳타나' 사띠해야 될 대상이 뭐라?

신·수·심·법 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걸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호흡하고 있으면 호흡하고 있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뭔가 느낌이 있으면 느낌이 있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마음이 일어났으면 마음이 일어났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어떤 현상들이 일어났으면 어떤 현상들이 일어났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이 4가지가 여러분들이 사띠가 머물 곳이고, 사띠해야 될 대상입니다. 늘 알아차려야 될 대상들입니다. 그 대상들을 놓쳐버리고 할 것 같으면 항상 실수를 하게 되는 거라. 그래서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경전에 오죽했으면 똥 쌀 때 똥 싸는 것까지 알아차리라고 했을까? 모든 것들을 여러분들은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알아차림 없이 살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알아차림이 없는 것을 불교에서는 뭐라 그러느냐면 "방일하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게으름 부리고 있다" 하는 뜻입니다. 게으름 부리는 삶에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도와 과에 이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항상 불선한 마음들이 일어나게끔 되는 겁니다.

그 부분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놓쳐도 관계없습니다! 놓쳤으면 놓쳤다고 알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우리 조금 전에 호잔님 같이 “오늘부터 하면 안됩니까?” 놓친 걸 어쩔 거라? '아, 또 놓쳤네' 그러면 '아, 놓쳤네' 할 동안에 또 놓쳐버리게 되는 거라. 또 그마만큼 후회라는 불선한 마음이 또 일어나게끔 되는 거라.

 

화살을 두 번 맞지 말고, 놓쳤으면 놓쳤다고 분명하게 알고, 다시 또 계속 알아차림을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안 될 때는 될 때까지 해야 되는 겁니다. 밥숟가락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떠한 경우든지 어릴 때는 훈련들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알아차림이 자연스럽게 돼서 인제 내가 알아차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알아차림이 항상 여러분들과 붙어다니게 될 때까지는 계속적으로 알아차림을 유지를 해나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라(māra)가 항상 여러분들을 덮쳐버린다는 거라. 여러분들을 언제 잡아갈지 모릅니다.

당당하게 한번 선언을 해보십시오.

알아차림이 항상 여러분들에게 붙어있다고 할 것 같으면 자기 자신이 압니다. 나는 어떠한 경우도 나쁜 상태로 급작스럽게 나는 안 죽어. 하고 자신이 압니다. 내가 알고 있는데 왜! 알고 있으면 방어를 할 수가 있는데! 그런 상태까지는 항상 이르도록 늘 알아차림을 유지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

앞에 거 두 개는 하기 쉬울지 몰라도 이거는 참 어려운 겁니다. 존재욕구이기 때문에! 살려고 하는 것들.

이렇게 한번 보십시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를 1년 지속을 했다 해보면, 그 사람은 그냥 아무것도 없이 사는 것에 대해서 익숙해져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뭔가 더 가져야 된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버립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1년 지나고 나서 뭔가가 하나 딱 생겼다. 밥숟가락이라도 하나 생겼다, 그럴 것 같으면 밥숟가락 만큼 나는 두께가 요마만큼 두꺼워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 두께(ghana)는 반드시 여러분들에게 뭔가를 원하게끔 됩니다. 밥숟가락이 있으면 밥을 먹을려고 하게 된다는 거라. 그러면 당연히 그릇을 원하게끔 된다는 거라. 그렇게 두께는 점점 더 두꺼워지면서 생존욕구는 점점 더 많아지게 되는 거라.

생존욕구라는 것은 그런 겁니다.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더 살고 싶어하고 그마만큼 나에 대한 집착들은 더 강해져버리게 됩니다.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들을 해야 됩니다. 지금 보니까 나이들이 50, 60 된 분들도 있고 한데 인제 살면 얼마 살 거라고,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안 가지더라도 내가 가진 것이 없이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마만큼 나는 두께가 얇아지면 얇아질수록 생존욕구는 점점 없어져 버린다는 겁니다.

 

수다원부터 아라한에 이르는 것은 그 생존욕구가 점점 엷어지는 것이 관건입니다. 엷어지면 엷어질수록 더욱더 도와 과에는 다가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완전히 생존욕구가 없어져버렸을 때는 아라한이 되게 되는 겁니다.

반대로 얘기하면은 여러분들이 점점 더 가진 것들이 없어져버릴 것 같으면 여러분들은 점점 더 출가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게 되고, 수행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것들입니다. 지금은 당장 아무것도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가지고 자꾸 더 가질려고는 하지 말아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3가지, 안거 때는 그래도 밥 먹을 짓은 하자.

 

여러분들이 적어도 밥을 먹고 살아간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런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굉장히 귀한 인연입니다. 아주 어려운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난 겁니다.

가장 어려운 것 4가지 중에 하나가 여러분들은 성취를 한 겁니다.

인간의 조건으로 태어난 것! 지금은 부처님을 만날 수도 없고 부처님에게 법을 들을 수도 없고, 그렇지만 여러분은 적어도 정법을 들을 수가 있고, 정법을 실천할 수가 있고, 그럴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나있습니다. 그럼 인간답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거듭 나도록 해야 됩니다.

뭐 뭐 하라고요? 세 가지? (수행자들 대답) 예. 3가지!

 

그래서 밖의 대상과 내 자신에 대한 집착들을 하지 말고, 또 항상 알아차림을 유지해나가면서 그렇게 하루 보내고 나면 안거 기간 동안 '오늘 안거 하루가 지났네' 하고 생각할 때 '나는 밥 먹을 자격을 갖췄다' 하고 마음을 먹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또 훈련들을 하고, 안거기간 동안은 안거기간은 90일입니다. 90일 동안은 그 훈련들을 자꾸 해나가서, 인제는 자연스럽게 밥 먹을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춘 사람들이 되도록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됐죠? 자! 여기서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