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대구·울주선원 수행법문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단계) (20160826.대구)

담마마-마까 2022. 3. 16. 09:00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단계) (20160826.대구)

https://youtu.be/AZyO1kDY6Ts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단계) (20160826.대구)

 

자! 오후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수행에 대한 거 연이어서 진행되는 겁니다.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하면 호흡이 보이기 시작 할 겁니다. 호흡을 쉬고 있는가, 아니면 거기에 따라서 호흡을 하고 있구나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상태까지도 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계속 진행이 되면 참 좋은데, 반드시 수행에는 여러 가지 장애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수행할 때 어떤 장애들이 많을까? 여기에는 다섯 가지 장애물이라고 해놓았습니다. 보통 여러분들은 어떤 것이 있어요? 망상하는 것, 앉아서 수행한다면서. 그다음에 조는 것, 또 뭐가 있을까? (수행자 : 통증) 통증이 있고, 또 뭐가 있을까? 그렇게 대표적으로 3개라고 칩시다.

그런 것들이 수행을 안 했을 때는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잘 모르는데 수행을 하면 그게 보입니다.

 

그러면 먼저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 아, 내가 수행을 하니까 이런 게 생기니까, 내가 뭔가 없는 걸 새로 발견한 거니까 '음, 그래도 내가 발전됐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돼! 그게 일어났다고 '아, 이것 때문에 또 수행이 안된다'고 마음을 먹어버리면 거기서 딱 닫혀버리는 거라. 그렇게 마음 먹지 말고,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도 '내가 잘하고 있었구나' 하고 관찰하고 마음을 먹도록 하고, 그러고 나서 그 대상들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볼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객관적으로 그 대상을 봤을 때 있는 그대로 보여지게 되고, 그래서 그 대상, 그 장애물이 그냥 장애물로만 있지 않고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상태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것이 딱 앞을 막는 장애물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망상 피우면 수행은 저멀리 가버리게 되고, 졸음이 오면 그냥 계속 졸다가 시간 다 보내버리게 되고, 고통스러운 것이 있으면 있으면 그걸 참아내지 못하고 다리를 펴버린다든지 이런 상태에까지 이르르게 됩니다.

그건 장애물이 진짜 장애물이 되었을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것, 이 부분은 앞으로 쭉 해나가면서 계속 이 부분이 나올 겁니다. 이걸 다시 쪼개고 쪼개고 해서 더 상세하게 계속 돼나갈 겁니다.

지금은 대표적인 것이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 알고, 대표적인 거 봅시다.

 

망상이 일어났다. 그럼 망상인지 망상이 아닌지를 먼저 확인해야 될 거 아니라?

망상하는 것과 내가 뭔가를 계획해서 하는 것은 다른 겁니다. 그래서 계획해서 하는 것은 그걸 알아차리는 대상으로 해서 계획을 쭉 해나가면 되는데, 그럼 알아차림을 유지해나갈 거 같으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망상은 그런 경우하고 다르죠. 그래서 망상인지 아닌지부터 확인을 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이것이 지금 뭔가 생각하는 것이 결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게 지금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닌지? 이런 걸 생각하지 않을 거 같으면 그것은 뭔지도 모르고 망상하는 걸 계획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계속 망상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만약에 망상일 거 같으면 거기서 망상한다고 해서 중단해야 됩니다. 알아차리든지 못 알아차릴 거 같으면 내둬버려 놓고 다른 걸 해야 되는 것이지 그걸 계속해야 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닌지 긴지부터 먼저 확인을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10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분명한 알아차림 부분에서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때 여러분들이 보면 될 겁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그걸 먼저 확인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건지, 마음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건지, 아니면 그렇지 않고 마음이 더러워지는 건지, 끊임없이 그냥 회전하게끔 만들어 주는 건지? 그걸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이걸 지금 하므로 인해서 ''라고 하는 것이 더 강해지는 건지 아닌지, 내가 훌륭하다고 하든지 아니면 내가 형편이 없다든지 이런 생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고 그거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인지? 잘 판단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내 중심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사고라고 하더라도 내 중심적인 것이 돼버리면 그것은 사고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 중심적으로 돼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이들을 중심에 두고 하는 것인지 그걸 판단 해야 되고. 그래도 누구든지 자기 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내 중심이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할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저 사람이 이런 말을 할 거 같으면 나는 듣기 싫다는 거라. 그럼 내가 이런 말을 할 거 같으면 저 사람도 듣기 싫다고 알아차리게 될 때, 아,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하고 마음먹게 될 때, 이것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되고. 자기 중심적으로 하는것인지 아닌지 잘 판단해야 되는 거고.

 

그다음 다섯 번째는 이것이 쭉 진행되어서 결론을 맺어지는 것인지, 결론이 없는 것인지? 잘 판단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이것을 하므로 인해서 내가 뭔가 실체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형태가 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잘 판단해야 됩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뭔가 말을 했다. 그럼 그걸 내가 들었단 말이라. 그러면 내가 망상을 생각을 하면서 '아,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지' 이렇게 했을 때 그걸 내가 믿어버리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망상이 돼버리는거라. 내가 확인이 될 때까지는 그걸 믿어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해버리는 거라. 그건 망상하면서 믿음이 강해져버리는 거라. 이런 것들은 피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미래를 걱정해서 미래에 대해서 뭔가 알려고 하는 것인지, 아닌지? 눈앞에 있는 것들을 분명하게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미래에 대한 걸 계속적으로 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아무리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실행되지 않을 거 같으면, 내가 좌선해서 일어나고 나서 그걸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 같으면 그건 망상의 영역에 속해버리게 됩니다.

 

그다음에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상··무아의 법칙에서 어긋나는지, 아닌지? 무상·고·무아의 법칙에서 어긋나버린다고 할 거 같으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생각들이 되는 거라. 그래서 무상한 성품에서 비춰봐가지고 이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하는 것들을 잘 판단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이 마음을 산란하게 해서 마음의 병을 키우게 되는 것인지, 아닌지? 그렇지 않고 그것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인지? 하는 것을 잘 판단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 내가 부처님 가르침 따라서 진리를 체험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그렇지 않고 그거하고는 관계없이 그냥 사고의 패턴으로 끝나는 것인지? 잘 판단해야 됩니다.

 

이렇게 보통 열몇 가지로 판단해가지고 바른 것이다 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해도 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망상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망상은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망상은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합니다.

일어나면 '망상' '망상' '망상' 하면 망상이 금방 사라져버립니다. 그것은 알아차림이 굉장히 뚜렷할 때 그게 가능한 것이지 알아차림이 강하지 못할 것 같으면 '망상' '망상' '망상' 한다고 해서 망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 사라지지 않을 때는 그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라.

나둬버리고 다른 대상으로 갈 것이라? 그 망상에 마음을 두는 마음을 '아, 이것은 필요 없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리게 될 때 그 망상으로부터 마음이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그럴 때 이 지금 11가지 12가지 항목들을 반드시 떠올려보라는 거라.

그럴 경우에 여기에 적합한 것이 아닐 거 같으면 '아, 망상이구나' 하는 마음을 먹게 되면은 그 대상이 떨어지는 모습이 근거가 됩니다. 그렇게 망상이 일어났으면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 자꾸 여기게 될 때 그 망상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이 잘 안될 때는 보통 뭐가 있느냐면, 탐심과 진심이 있을 때 수행이 잘 안됩니다.

뭔가 막 열심히 해볼려고 할 때, 아니면 대상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내가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들일 때 이럴 때 밀쳐낼려고 할 때 이럴 때 수행은 잘 안됩니다. 그거는 탐·진이라고 하는 마음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수행이 수행대상으로써 그대로 보이질 않게 됩니다. 그럴 때는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여기서 경전에는 탐욕과 성냄이라고 돼있습니다.

 

탐욕은 보통 언제 일어나느냐면 욕심부릴 때 일어납니다.

수행에서 내가 대상을 알아차리는 게 요것 밖에 안 되는데, 그게 아니고 전체를 다 알아차릴려고 하다보면 욕심을 부리다보면 탐욕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과도하게 마음을 쓰게 되기 때문에 긴장도 일어나게 되고 또 마음도 더 뭔가를 자꾸 집착하게 되고, 호흡하는 것도 자꾸 느려지게 되고, 집착하게 되면 붙들기 때문에 느려지게 됩니다. 그러면 상기(上氣)도 일어나게 되고 그렇게 됩니다.

대부분 보면 수행에서 처음에 실패하는 것이 이 탐욕의 마음이 일어났을 때 욕심부리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수행은 실패를 하게 됩니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거는 중간중간에 자꾸 체크해야 됩니다. 호흡이 지금 자연스러운지 아닌지? 자연스럽지 않다고 할 것 같으면 거의 대부분이 처음에는 보면 호흡이 느려져있습니다.

 

욕심을 가져서, 뭔가를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그건 탐욕의 부분입니다. 그래서 호흡이 느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상기들이 일어나는 거라.

그래서 호흡이 자연스러운지 아닌지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처음에 수행할 때 스님들이 배울 때 뭐부터 했느냐면, 우리 성냥개비를 손에 가득 담아놓고 1분 동안 호흡하면서 성냥개비를 떨어뜨리라고 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 하나 톡 떨어뜨리고,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 하나 톡 떨어뜨리고, 그래서 편안한 상태에서 성냥개비가 몇개 떨어졌는지를 나중에 체크를 하는 겁니다.

이번에는 내가 만약에 16개 떨어뜨렸다, 이번에는 19개 떨어뜨렸다, 이번에는 15개 떨어뜨렸다, 체크를 하는 거라. 그걸 가지고 호흡을 해보라는 거라.

호흡을 하면 대부분은 보면 실제 떨어뜨리는 게 만약에 16개인데, 대부분은 보면 그거보다도 적어. 거의 대부분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아, 내가 수행을 열심히 해볼려고 하는 마음이 탐욕으로 나타나가지고 호흡이 느려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알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집니다. 처음에 수행할 때 요즘은 잘 되는 거 있잖아. 타임워치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스탑워치.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한번 톡 눌러주고,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한번 톡 눌러주고 하면서 한번 체크를 해보라는 거라. 실제로 여러분들 호흡하는 게 여러분들 나이일 거 같으면 보통 1분에 16번 17번 해야 되는데, 그거보다 적게 하고 있어요. 훨씬 적게 하고 있어요. 그마만큼 느려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호흡이 안 되고 있는 거라. 그럼 빨리 그걸 알아야만이 '어, 내가 자연스러운 호흡을 해야 되겠다' 싶어가지고 그다음부터는 인위적으로 호흡을 알아차리려고 안 한다는 거라.

그게 첫 번째고,

 

두 번째 잘못하는 것중에 하나가 뭐냐면 명칭을 붙이는 걸 잘 못합니다.

처음에 자연스러운 호흡하는 방법을 모르고 명칭을 붙여버리면 대부분 호흡은 느려져버립니다. 자연스러운 호흡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는, 그다음에 거기에다가 명칭을 붙여야 되는 것이지, 그냥 호흡을 자기가 어떻게 쉬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명칭부터 먼저 붙일려고 할 것 같으면 대부분 호흡은 느려져버립니다.

 

이 두 가지 경우에는 보면 탐욕이 항상 거기에 포함이 돼있는 상태에서 수행을 하게끔 됩니다. 그리하면 수행을 해봐야 그건 헛일입니다.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 무상한 건 어떻게 알 것이고,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 대상들이 드러나지지를 않습니다.

그거는 맨 처음에 굉장히 조심을 해야 됩니다.

 

경전에도 다섯 가지 장애물 중에 첫 번째가 이 탐욕 부분이라고 명시해놓은 겁니다.

이 탐욕이 여러분들이 뭔가를 욕심부린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수행에서는 반드시 이게 그런 식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욕심부리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은 수행하면 이런 것들이 더 강해져버립니다. 수행에서 더 열심히 할려고 그러고 더 남보다 잘 할려고 하고 이런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물론 그런 패턴들을 없애줄려고 해야 되겠지만, 수행에서는 반드시 이 두 가지 부분은 탐욕의 부분에 들어간다 생각을 하고 굉장히 경계를 해야 됩니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먼저 호흡이 자연스러워야 됩니다.

호흡이 자연스러워지도록 만들어서 어, 내가 자연스러운 호흡에서는 적어도 1분에 몇 번 정도를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만이 그다음부터는 그 패턴대로 따라갈려고 그럽니다. 자연스럽게 그냥 내가 알아차리든 모르든 그냥 자연스럽게 호흡이 될 수 있는 상태에서 거기에다가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을 계속 지속해나가다 보니까 거기에다가 명칭을 붙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거라.

그 명칭을 안 붙여도 돼. 그걸 신경쓰면 안 되는 거라. 밖에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쉽게 말하면 수행의 '기술' 이런 것에 신경을 써버리면 안 된다는 거라. 먼저 자연스러운 호흡을 분명하게 파악을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인제 수행을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물 중에서 첫 번째 부분에 해당이 됩니다.

 

두 번째는 성냄 부분입니다.

이거는 마음이 방황하는 것에 대해서 짜증나는 거라. 쉽게 말하면 그냥 계속 알아차렸으면 좋겠는데 이놈이 자꾸 도망가니까, 다른 데로 달아나버리고 또 다른 대상을 알아차리게 되고 이렇게 되니까, 그게 인제 짜증나는 거라.

그런데 그거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수행에서는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돼있는 겁니다. 마음은 찰나 간에 수만 번 바뀝니다. 바뀌는데 그걸 어떡하라고. 그걸 내가 다 알고 있을 거 같으면 수행할 이유가 없게. 당연히 그렇게 돼있는 거라고 생각 하고 그거는 그냥 포기를 해야 됩니다. 포기해야 되는 것이지 수행 잘 될 거라고 마음을 먹을 거 같으면 아예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냄 부분은 그렇게 자꾸 해결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 세 번째 나태와 졸음.

변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호흡은 단순하기 때문에 호흡이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게으름에 빠지게 됩니다. 원래 재미없는 걸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 생각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는 들뜸과 후회.

이거는 긴장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긴장해있으면 항상 마음은 들뜹니다.

 

그다음 다섯 번째 의심.

'아이고, 이걸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들을 말합니다.

 

지금 이런 것 다섯 가지는 장애물인데 그 장애를 장애로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이런 것이 있다' 하는 정도로만 알고, 이런 것이 있으면 '아, 내가 또 괴로움이 일어났네' 하고 마음을 먹고.

처음에는 그냥 놔둬 버리십시오. 내가 이런 것이 있으면 '아, 내가 호흡을 또 내가 조절하면서 할려고 하는 탐욕심이 일어났네' 하고 마음먹도록 하고, 이런 식으로 하면서 그냥 넘겨버리도록 해야됩니다. 수행 처음부터 해서 이거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해가지고 뭔가를 할려고 할 것 같으면 그거는 안 돼.

그런데 이거는 장애인데 장애가 안 될려고 할 것 같으면 처음에는 '수행하니까 당연히 일어나는 거다' 하고 묻고, 단지 '이게 뭐다' 하는 것만 알고 있을 정도가 되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 수행을 지속해나가도록 해야 되고, 놔둬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수행 초기에 할 때는 이런 장애물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스승들은 보면 "이것들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나중에는 그게 알아차릴 대상이 되지만, 처음에는 수행 초기에는 '그것이다' 하고만 알고나서 냅둬버려라는 거라. 크게 무슨 다른 대상이 다가오지 않으면 무시해버려라는 거라. 무시해버리고 그냥 호흡만 자연스럽게 만들려고 해서 호흡하는 것만 분명하게 알아차리도록 하라. 그게 사실 정답입니다, 수행 초기에는.

 

그런데 지도를 잘못하는 사람은 처음 수행 초기부터 요걸 다 알아차리라고 그럽니다. 그것이 있으면 그것을 알아차려야지 왜 안 알아차리고 사라질 때까지 보지 못했느냐고 그럽니다.

안 보이는 걸 어떡하라고. 안 보이는 걸 어떻게 그걸 알아차릴 거라? 사라지는 걸 볼 재간이 없는데. 그럼 거기에 매달리다 보면 자기가 사라지게 만들든지 아니면 자기가 만들어가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거라.

그거는 수행을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아, 내가 수행 잘하고 있으니까 요게 또 나타났네' 하고 그냥 놔둬버려야 됩니다.

 

나중에 수행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되면 요 부분은 명확하게 잡는 법을 다시 가르쳐주도록 하겠습니다.

요런 장애물들은 어떤 때 일어난다고? 수행이 잘 될 때! 마음이 고요하게 자연스러운 호흡이 되고 있을 때 나타나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그렇게 장애물들은 놔둬 버리고 나서, 그러고 나서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 것은 그게 아니고 수행에서 균형이 잡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균형이 잡힌 수행의 다섯 가지 원리」라고 되어있습니다.

신심, 노력, 알아차림, 마음집중, 지혜이 다섯 가지.

 

신심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과 지혜는 균형이 맞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으로 쏠려버리게 됩니다. 지혜는 여러분들이 개발한다고 해서 개발되는 것이 아니죠? 드러나지는 거죠! 수행이 잘 진행이 되면 갖가지 16단계의 지혜라든지 아니면 도와 과의 지혜라든지 이런 것들이 드러나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는 지혜 부분은 여러분들이 크게 신경을 안 써도 됩니다.

그럼 뭘 신경을 써야 될 거라? 지혜와 신심이 균형이 맞을려고 할 것 같으면 뭘 신경쓰면 되요? 신심만 일으켜주면 돼. 신심만 일으켜주면 자연스럽게 지혜는 따라와지게끔 돼있는 거라.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이걸 균형 맞춘다고 해가지고 무상·고·무아에 대한 이해가 가도록 하고 나서 신심 부분을 같이 키워준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지혜는 여러분들이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보통 수행 초기에 할 때 맨 처음에 붓다눗사띠, 멧따바와나 이런 예비수행을 먼저 하라고 그럽니다. 그중에 가장 많이 시키는 것이 붓다눗사띠 입니다. 부처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있는 그대로 그냥 계속 알아차리고, 아라항, 삼마삼붓도, 윗자짜라나삼빤노, 이렇게 쭉 나누어서 낱낱이 훑어하면서 그것에 대해서 회상하는 거라.

'아라항 하면서 아, 번뇌가 없으신 분, 부처님은 번뇌가 없는 분이시고, 그래서 저렇게 번뇌가 없을 때는 얼마나 마음이 깨끗하고 좋을까? 나도 번뇌가 없도록 해야 되겠다.' 하면서 '아라항'이라고 하는 거 하나만 떠올리더라도 부처님에 대해서 존경하는 마음이 확 일어나지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확 또 일어나지고, 마찬가지로 삼마삼붓도에 대해서 쭉 하면서 하고,

 

저기 불교의범인가 책에 보면 그 부분에 대해서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걸 보고 그걸 자꾸 떠올리면서 이렇게 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아라항 삼마삼붓도' 해가지고 했다가 나중에 또 거꾸로 다시 또 돌아오고, 이런 식으로 지속적으로 쭉 해주면 부처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더욱더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수행을 할 때 그 힘만 있어도 수행을 할 때는 대상을 알아차리기 참 좋습니다.

 

맨 처음 수행할 때 여러분들은 여기 선원에 탁 들어오면 대부분 사람들은 뭐부터 하느냐면 좌선부터 합니다. 그건 틀린 겁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처음에 선원에 들어오고 나면 맨 처음 하는 것이 경행부터 먼저 해야 됩니다. 경행을 먼저 해서 마음에 활력을 키워줘야만이 좌선에서 그 힘으로 인해서 알아차릴 대상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게 바른 방법입니다.

그래서 경행 먼저 하고 좌선하고, 설혹 경행하다가 끝나버리고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점심먹고 나서 다시 좌선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다시 경행부터 해야 되는 거라. 경행이 먼저가 되고 좌선이 되도록 해야 되는 것이지 좌선이 먼저가 돼버리면, 순서가 거꾸로 되면 이게 발란스가 깨져버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 힘을 키워야 되는 것 중에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은, 마음에 활기가 생기도록, 수행할려고 하는 마음들이 생기도록 하는 것들이 우선입니다.

그럴려면은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이 이 붓다눗사띠라든지 이런 것들 해가지고 신심의 힘들을 키워주도록 해야 됩니다. 신심의 힘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나중에 지혜의 힘이 뒷받침이 됩니다.

그래서 대상을 알아차리기가 좀 더 수월해지는 거라.

그런 의미에서 이 2개가 균형이 맞아야 된다고 하는 것이지, 지혜를 따로 찾아가지고 '아, 이것은 무상한 것이지, 그래 내가 덧없는 것이구나' 하고 그걸 고려하고 있으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을 착각을 하면 안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노력의 힘과 마음집중의 힘이 균형이 맞아야 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보통 노력은 처음에 수행을 할 때 수행하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 그다음에 수행 대상을 끊임없이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 그다음에 그 대상들이 변하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알려고 하는 마음들, 이런 것들을 노력의 힘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마음집중은 뭘까? 그거 하고는 반대죠! 하나의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2개가 균형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노력의 힘들을 키워야될까? 아니면 집중하는 힘들을 키워야될까? (수행자 : 집중하는 힘들이 커져야 됩니다.)

 

집중하는 힘들이 커지면은 집중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될 거 같으면 노력이 뒷받침이 됩니다. 이걸 잘못 알고 있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대상을 알 때 대부분 보면은 위빳사나 방법으로 한다고 할 것 같으면 대부분 집중하는 것은 그냥 놓쳐버리고 계속 ‘대상만 끊임없이 알아차리면 되지’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집중하는 힘이 없을 거 같으면 알아차리면서도 노력의 힘들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 방법이 바른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좌선할 때 맨 처음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맨 먼저 하라고 하는 것이 붓다눗사띠, 멧따바와나 이런 것들,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들을 자꾸 하라고 그럽니다.

그것은 예비수행에도 나와 있을 뿐아니라 수행을 할 때 좌선하려고 탁 자리에 앉으면 먼저 그것부터 한 5분 정도 먼저 하는 것이 가장 순서에 맞습니다. 그걸 해서 어느 정도 집중하는 힘이 있어야만이 그다음에는 알아차리는 게 수월해지고, 노력은 뒤따라오게 되는 거고, 다마와 마찬가집니다.

내가 다마 하나를 가지고 요 다마를 탁 맞출려고 할 것 같으면 이걸 집중하는 것이 없을 거 같으면 아무리 노력을 정확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빗나가버리게 됩니다. 포인트가 맞지 않는데 어떻게 할 거라? 그럼 이걸 맞출려고 할 거 같으면 먼저 집중하는 것이 딱 생기고 나서 그러고 나서 정확하게 거기에 던지는 힘이 있어야 되는 거라. 이게 요령입니다.

그래서 집중하는 것들이 먼저 탁 되도록 만들어주고 나서는 그다음에는 노력을 자꾸 배가시켜 주는 거라.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됩니다.

 

처음에는 균형이 안 맞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어느 정도 시작을 해나가면 균형은 자연스럽게 맞춰지도록 돼있습니다. 하다가 보면 '아, 내가 집중이 강해가지고 내가 대상을 자꾸 놓치는 구나'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집중하는 걸 자꾸 줄여줍니다. 자기 스스로. 그러면 발란스가 또 맞아집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아, 내가 그냥 또 맹목적인 것에 빠져가지고 대상이 드러나지 않는구나' 알 거 같으면 자기가 그걸 스스로 조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조절하는 능력이 생겨겪을 때 이미 발란스가 맞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것을 다 조절할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대신에 단지 어떤 경우든지 알아차림은 있어야 됩니다.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에서 이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놓치면 '아, 내가 알아차림을 놓쳤네' 하면서 스스로 '아, 이거 내가 또 공부 잘못했다' 하고 스스로 자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자책을 하라는 것은 아니고, 그런 마음이 될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노력을 하라는 거라. 그래서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을려고 해야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럴려고 할 것 같으면 가장 중요한 게, 좌선 경행 때 알아차림을 유지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으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하는 것 어떠한 경우든지 '보인다, 듣는다, 냄새 맡는다, 먹는다', 하면서 자꾸 그것들을 알아차릴려고 해야 되는 거라. 그런데 그 훈련들이 되지 않을 거 같으면 일상생활이 안 될 거 같으면 집중수행에 들어와가지고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해져버립니다. 그래서 그걸 잘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것이 「다섯 가지 힘」 입니다.

 

이 힘은 수행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것은 강해집니다. 강해지고 발란스가 맞아집니다. 완전하게 어느 순간 딱 이게 맞아떨어질 때 그때 대상은 드러나는 겁니다. 대상의 자연적인 성품이 착 그때 드러나게 됩니다.

'아! 이게 무상한 것이구나!' '아! 이게 고구나!' 하는 것이 탁 드러나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무상·고·무아를 알려고 할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훈련되어 왔을 때 그게 딱 균형이 맞아졌을 때 착 드러나지는 겁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다 보면은 어느 순간에 탁 한번씩 그렇게들 옵니다. 처음에.

 

그러면 ', 이게 그거구나' 하고 그럴 때 기쁨이 착 일어나는 거라. 그래서 그런 기쁨들이 자꾸 생겨나야 수행을 자꾸 하게끔 됩니다. 만약에 그런 기쁨들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 전에 말한 균형을 맞추는 것들을 자꾸 할려고 해야 됩니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그렇게 해야만이 수행에서 대상이 드러남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기쁨들을 맛보게 되는 거라. 그러면 수행을 지속해나가는 것이 좀 수월해지게 됩니다.

그리하더라도 "알아차림은 끊임없이 있도록 하라"는 얘기는 반복해서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에 26페이지 보면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부분입니다.

 

첫 번째 모든 움직임을 알려고 해야 됩니다.

알아차림이 끊임없이 이어질 거 같으면, 알아차림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움직임을 다 압니다. 손을 요까지 뻗어있으면 손을 여기까지 뻗은 것을 다 압니다. 이 모든 움직임은 같이 따라가도록 하면서 알아차려야 됩니다. 사띠가 이렇게 같이 따라가지지 않으면 안 돼! 수행에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을 끝까지 다 따라가야 되는 것이지, 어느 순간에 내가 그걸 중지를 해버리면 안 된다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그걸 그대로 모든 움직임을 끝까지 따라가도록 하는 훈련들을(따라가면서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강제적으로 숨을 쭉 들이쉬었다, 그러면 들이쉬는 걸 쭉 알아차림을 하고 나서 탁 탁 탁 확인하는 훈련들을 가끔씩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또 숨을 쭉 내쉬었다. 쭉 내쉬고 나서 숨이 끝나면 끝났다 하고 알아차리면서 탁 못 박아주는 거라. 그래서 움직임을 처음부터 해서 끝까지 따라가고, 다시 또 처음부터 해가지고 끝까지 따라가고 하는 것을 반복할 필요가 있다는 거라.

만약에 손을 이렇게 하는데 몰랐다, 그러면 다시 하라는 거라. '시작한다!' 하면서 천천히 해가지고 탁 끝났다, 이걸 그대로 천천히 하면서 따라가보라는 거라. 그래서 자꾸 천천히 하라고 그러는 거라.

그렇게 자꾸 훈련하는 것들을 하도록 그렇게 하라는 거라.

 

그다음에 그게 기본이 돼서 쭉 하면은, 예를 들면 여기 책의 글자를 읽는다, 그러면 만약에 <좌선을 하기 전에 먼저 경행을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하나씩 읽는 부분이 아닙니다.

끝까지 따라가면서 읽는다는 것은 <좌 선 을 하 기 전 에 먼 저 경 행 을 하 도 록 하 십 시 오.> 하고 점이 톡 찍혀있다는 거라. 끝났다는 거라. 상태가. 그거를 그냥 그대로 따라가버리는 거라. 그럼 따라갈 것 같으면 어떻게 돼요?

앞에 한 건 그대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거라. 만약에 <좌 선 을>에서 <선>을 읽었다고 그러면 <선>을 알고 있지 <좌>는 모릅니다. 그다음에 뒤에 나오는 <을>도 모릅니다. 그냥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선> 밖에 없어. 그렇게만 알도록 하고 그냥 쭉 쭉 따라가서 마지막에 점이 탁 찍혀있으면 '점이 딱 찍혔다' 라고 알고 딱 끝났다는 거라.

이런 식으로 쭉 따라갈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글을 읽을 때라든지 아니면 뭔가 들을 때 그런 식으로 자꾸 하도록 노력을 해보면 좋습니다.

 

가끔씩 그걸 훈련을 하다 보면 이게 스타카토 식으로 탁 탁 끊어집니다.

그런데 그게 굉장히 재미가 있습니다. 수행에 재미를 붙일려면 알아차림은 있는데, 알아차리는 것이 탁 탁 탁 탁 끊어지면서 아는 것들 그런 것들이 드러나지게 될 때, '아, 이게 하나의 대상이구나' '하나의 마음은 하나의 대상밖에 못 알아차리는구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가장 좋은 것이 들을 때와 내가 글을 읽을 때 훈련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스님이 지금 법문하고 있다, 그러면 그냥 한자씩 듣는다고 마음먹고서 한번 들어보면, 처음에는 알아차림이 강하지 않을 경우에는 내용이 안 들어옵니다. 그냥 글만 소리로써 탁 탁 탁 탁 와서 부딪치게끔 됩니다. 그런 경험들을 해보라는 거라. 그게 안 되면 글을 하나씩 읽어보고, 그렇게 한번 연습을 해보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끝까지 따라가는 훈련들을 계속적으로 지속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그렇게 끝까지 따라가는 훈련들이 어느 정도 되면은, 그 움직임의 단계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것.

구분한다는 것은, 하나가 끝나고 그다음이 시작이 되고, 또 하나 끝나고 그다음이 또 시작이 되고 하는 걸 구분할 수 있는 거라. 조금 전 같이 소리 들리는 것이 하나씩 탁 탁 탁 탁 끊어진다든지, 그리고 글을 읽을 때 하나씩 탁 탁 탁 탁 하고 앞에 읽은 것이 전혀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그 글자만 알 게 된다든지 이게 구분하는 단계라. 그렇게 진행이 되도록 해야됩니다. 그게 두 번째 단계 부분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그것이 진행이 되고 나면, 그다음에 해야 하는 것이 내가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거라.

의도를 내지 않으면 뭔가 한 글자도 읽을 수도 없고 한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라. 내가 의도가 있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주의해야 됩니다. 처음 시작할 때.

발을 움직일려고 할 때도 그냥 그전에는 무심코 탁 움직였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발을 움직일려고 할 때도 마음을 탁 보라는 거라. 갈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래서 '의도가 있구나' 하는 걸 알고 나서 발이 움직여주는 거라. 찰나 간에 그렇게 의도가 있고 나서 발이 탁 움직여진다는 것을 아는 단계까지 알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럴려면 앞에 단계가 되지 않으면 이게 되지 않습니다.

숨을 예를 들어볼게요.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숨을 들이쉬면 들이쉬는 처음부터 해가지고 들이쉬는 끝까지 따라갈려고 하는 거고, 내쉬는 것도 내쉬는 처음부터 해서 내쉬는 끝까지 쭉 따라갈려고 하라는 거라. 쭉 그대로 따라가는 훈련들을 하라는 거라.

그러고 나면 숨을 들이쉴 때 들이쉬는 숨이 동일하지 않고 탁 탁 끊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게끔 자꾸 하라는 거라. 그래서 숨을 쭉 들이쉬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떨 때는 파도를 치듯이 숨이 들이쉬어지고, 어떨 때는 탁 탁 탁 탁 끊어지듯이 숨이 들이쉬어지고, 하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자꾸 하라는 거라.

 

그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쉽게 말하면 숨을 들이쉴 때 하나의 구간에 끝나는 것이 있고 나서, 그것이 멈추고 나서 새로운 것이 시작 된다는 사실이라. 요게 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끝나고 멈추고 나서 새로 시작될 때 의도가 있지 않으면 일어나지지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숨을 들이쉰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의도가 탁 끊어져버릴 것 같으면 숨이 여기서 끝나버리게 된다는 거라. 알아차림도 여기서 끝나버리는 거라.

그런데 실제적으로 자연스럽게 숨을 쉬는 것은 그냥 그대로 진행이 되는데 내가 알아차리는 것은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라.

그래서 그 단계까지 되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의도가 먼저 있고 숨을 들이쉬는 걸 알고. 그래서 그게 안 되면 숨을 들이쉴 때 의도가 있는지부터 먼저 보라고, 처음 시작할 때. 그래서 의도가 있고 나서 숨을 들이쉬고 숨이 딱 끝나고 나서 다시 또 의도가 끝나는 것을 알고 나서 의도가 있고 나서 다시 또 숨을 내쉬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요 훈련들을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반복하도록 해야 되는 거라.

 

이게 수행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이 세 개만 잘 연습을 할 거 같으면 위빳사나 수행은 무르익어 나가게 됩니다.

그게 인제 기본적으로 수행을 해나갈 때 여러분들이 가져야되는 이해력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안 될 거라. 그런데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거라.

 

그래서 30페이지에 적어놓았습니다.

성급함을 버려라.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도록 자꾸 하라.

멈추고 나서 움직임의 시작을 분명히 알도록 자꾸 노력하라.

움직이기 전에 의도를 붙이도록 하라.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라.

움직임의 단계를 구분하도록 하라.

그러고 나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하지 않도록 하라.

 

요것만 자꾸 마음에 두면 조금 조금씩 발전돼나갑니다.

너무 그렇게 어렵게만 마음을 먹지 말고 수행을 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평생 해나가야 되는 일들입니다. 지금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해나가야 되는 것이고, 깨달음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해나가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살아갈 수는 없는 거 아니라?

이때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면 그 시간을 메꾸기 위해서라도 더욱더 열심히 해야 되는 거라. 인제부터는 그래도 알아차림을 유지는 하면서 살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만 마음 먹으면은 수월하게 이 부분을 해나가게 될 겁니다.

 

오늘은 수행의 기본적인 단계에 대해서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기본적으로 집중을 기르는 사무량심부터 해서 쭉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집중하는 힘들이 커지면 당연히 그것을 알아차리는 힘들도 강해지고, 또 그것을 이해하는 힘들도 강해지고, 분명하게 아는 힘들도 생겨나고, 노력의 힘들도 생겨나고 그럴 겁니다. 그런 식으로 진행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질문 있는 사람 질문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