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20160527)
우리들 마음의 사고패턴은 언제나 대립적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할 때에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면 「별것 아니다」라고 생각하여 가르쳐 주는 내용을 경시합니다.
조금 깊이 있게 가르치면 「지나치게 어렵다」라고 생각하여 집중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깜박 좁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모순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이렇게 모순에 근거하고 있기에 고민·괴로움·실패·대립 등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착성 없이 불안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순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기 싫으므로, 모두들 필사적으로 모순이 안 되는 것처럼 노력합니다.
그런데 다른 이의 행동에서 모순을 찾으면 그것을 심하게 나무랍니다.
이해하기 쉽게 하면, 「나는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모두와 대립하는 꼴입니다.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을 만나 뵈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의 생각도 결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부처님이 답하시기를 「당신은 누구의 생각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생각도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순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은 한사람만의 힘만으로는 무리입니다.
혼자서 열심히 해도 결국 자기 자신은 모순된 태도를 취해버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생명의 제일가는 선우입니다.
또한 수행을 실천하여 성공한 선우입니다.
부처님은 절대적이고 유일한 신과 같은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들을 연민히 여기시는 선우입니다.
이 점을 잘 기억해 두고, 부처님을 친밀하게 대하도록 해야 합니다.
불교의 세계에서는 선배가 항상 후배들을 가르치고 지도합니다.
자애의 마음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거나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사제관계로 성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사람의 스승에게만 의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스승도 제자에게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가르치고,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지도자에게 부탁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불교도들은 서로 경쟁하거나, 경쟁의식을 가지거나 하면 안 됩니다.
형제의식을 가지는 것, 평화와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조건입니다.
불교의 세계에서 사제관계가 나타난 것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모순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서 해탈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모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를 설명하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루 만에 완전한 성자가 되는 것을 무리한 일입니다. 물론 경전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단시간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순의 문제를 이미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순의 정도에 맞춥니다. 모순의 정도가 매우 낮은 사람에게는 직접 진리를 말합니다. 모순의 정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차례로 마음이 서서히 맑고 깨끗하게 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모순의 정도가 낮은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고 생각될 만큼 적습니다. 우리 모두 모순의 정도는 매우 두껍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조언한 것은 작고 선한 것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비유가 있습니다. 「순은으로 만든 장식품이나 그릇을 갖고 싶다면 우선 은맥을 파고, 광석을 채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광석으로 바로 그릇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단념하지 않고 여러 절차를 거쳐 순은을 만든다. 처음에는 단순한 광석에 은이 숨어 있다고 이해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면 금속 덩어리가 나타난다. 그러나 아직 동이나 철, 납 등이 섞여 있다. 한층 더 작업을 진행시키면 불순물은 서서히 줄어들어 간다. 마지막으로 순수한 은이 만들어진다. 순은이 생기면 뜻대로 장식품이나 그릇을 만든다. 이와 같이 지혜 있는 사람은 조금씩, 순간순간 노력하여 완전한 해탈에 이른다.」
위빳사나 수행에서 순간순간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지금, 여기서, 이 순간」을 알아차려 보면, 노력한 만큼 확실하게 결과가 나타납니다.
부처님 시대에 어느 마을 근처에 숲이 있었습니다. 그 숲 속에는 수행에 힘쓰는 비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탁발하기 위해 숲에서 마을로 향하면서 가사를 몸에 감싼 채 마을 부근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을 통과해야 했기에 풀 위에 내린 아침 이슬에 가사가 젖었습니다. 이를 본 어느 바라문은 생각했습니다. 「이 수행자들의 소중한 가사가 젖어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그는 풀을 베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날 비가 와서 땅이 질퍽거렸기 때문에 탁발 나온 비구들의 가사에 진흙이 잔뜩 묻었습니다. 「소중한 가사에 진흙이 묻어서야 되겠나.」 그는 며칠 노력하여 진흙탕에 자갈을 깔고 평평하게 하였습니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 당분간은 보기가 좋았습니다. 매일같이 비구들의 진지한 삶의 방법과 가사를 몸에 감고 탁발하는 모습을 보고 기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구들은 가사를 입은 채 흠뻑 젖게 되었습니다. 바라문은 또 「이것은 안 될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쪽에 건물을 만든다면 비구들이 비가 내려도 젖지 않고 탁발하여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고생하여 그 장소에 건물을 지었습니다. 모처럼 만든 건물이기에 부처님도 초청하여 공양 올리는 보시를 행하고, 비구 상가가 사용할 수 있게 이 건물을 기증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사를 실천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끝마치시자, 바라문은 감격해서 자신이 이 정도 큰 규모의 선행이 생기게 된 순서를 부처님에게 보고했습니다. 「처음은 대단한 일을 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부처님! 다만 이 탁발 나온 비구들이 측은하여 풀 정도 베어줄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다보니 어느새 비구들이 머물고 수행하며 법을 설하는 장소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의 행위를 칭찬하시며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하나의 좋은 행위는 다음의 좋은 행위로 연결되느니라. 작지만 선한 일을 해서 마음의 기쁨을 느낀 사람은 잇달아 선한 일을 계속하느니라. 시간이 지나면 처음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단히 크고 좋은 일도 가볍게 할 수 있게 되느니라. 」
「선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가 키워드입니다. 사람은 서서히 향상되어갑니다. 본래의 모순을 찢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하루 만에 선인이 되는 것은 성립되기 힘듭니다. 그것은 포기하는 편이 좋습니다. 인스턴트 주의의 현대인들은 버튼을 누르면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겠지만 오늘 태어난 아기를 일주일 뒤에 유치원에 보낼 정도로 성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선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불도를 완성하는 길입니다.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완전한 조언은 「선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라는 것입니다.
● 이번 포인트
• 생명은 기본적으로 모순입니다.
• 모순은 성장을 방해합니다.
• 지혜 있는 사람은 모순의 벽을 넘습니다.
• 선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 사람은 서서히 성장해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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