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7 일상수행법문

2017년 우안거 입재_모아두는 것에 대해서 (20170706)

담마마-마까 2022. 4. 28. 09:00

https://youtu.be/WPp9igAW8VI

* 2017년 우안거 입재_모아두는 것에 대해서 (20170706)

 

오늘은 안거 시작하는 날이고 그렇습니다.

「모아두는 것」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모아두는 것 많죠? 대부분 왜 모아두는가 하고 물어보면은 "미래가 확정된 게 아니라서, 내가 불안하기 때문에 모아둔다" 하는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모으고 하는 것은 괜찮은 방법일 수 있는데, 이게 지나쳐버리면 모아두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을 하게 됩니다. 그게 집착으로 연결되고 또 그것이 원인이 돼서, 성냄이라든지 불안이라든지 아니면 들뜨는 것이라든지 후회라든지 이런 악감정을 가지고 스스로 고통을 받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르게 됩니다.

 

그래서 "모아두는 것에도 윤리와 도덕이 있고 불교적인 관점이 있다" 하는 것을 좀 분명하게 정립을 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 모아두는 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들은 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집니다. 시간도 변하는 겁니다.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측 가능하다고 누가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에 내가 어떤 상황에 닥칠지 모르고, 또 나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누구도 모릅니다. 흐르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점쟁이라 하더라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언할 수 있다, 그건 사실은 불가능한 겁니다. 하물며 일반 대중들은 그런 미래가 걱정이 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모아둘려고 하는 것들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아둘 때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4가지,

첫 번째는 뭘 모아둘 것인가? 하는 겁니다.

재산 아니면 명예, 무엇을 모아둘 것이냐 하는 겁니다. 불교적으로 모아두어야 하는 부처님의 유물이 있습니다. 그걸 모아둘 필요가 있는 것인지, 혹은 사회생활을 할 때 필요한 것들을 모아둘 것인지, 무엇들을 무엇을 모아둘 것인가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그 모아두는 것들은 무엇을 위해서 모아두는 것인가?

재산을 모아두면 무엇을 위해서 모아두는 건지, 부처님 재산을 유물로써 모아둘려고 할 것 같으면 그것들은 또 무엇을 위해서 모아둘려고 하는 건지.

 

그다음에 세 번째가 어느 정도의 양으로 모아둘 것인가?

그것이 이 방을 채울 만큼인지, 아니면 내 마음을 채울 만큼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양으로써 모아둘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모을 것인가?

평생 모아야 될 것인지, 아니면 평생 모으지 않고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만 모아둘 것인지, 하는 것들을 잘 결정을 해야 됩니다.

 

이 4가지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모아두는 것이든, 아니면 부처님 가르침에 맞는 것들을 모아두는 것이든 모아두는 것들에는 항상 적용해야 되는 기준입니다.

 

무얼 모아두고, 무엇을 위해서 모아두고, 어느 정도의 양으로 모아두고, 어느 정도의 기간으로 모아둘 것인가?

보통 이걸 본인 스스로 질문할 것 같으면 답이 안 나옵니다.

뭘 모아둘 것이냐 하면, 대부분 뭐든지 좋다고 합니다. 뭐든지 다 모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아두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 뭣 때문에 모아두느냐 하면 대부분 모릅니다. “아무튼 뭔가 도움이 되겠지요” 하는 그 얘기만 합니다.

그다음에 어느 정도의 양으로 모아둘 것이냐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기간동안 할 것이냐? 기간은 정해진 게 없는데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내가 만약에 재산을 모은다, 그럴 것 같으면 내가 벌어서 일을 해서 모을 수 있는 기간 동안에는 계속 그걸 모으겠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보면 이 4가지를 한정을 하지 않습니다.

뭘 모아둘 것인지도 한정을 하지 않고, 언제까지 모을 건지도 한정을 하지 않고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자꾸 그곳들에 대해서 집착을 하게 됩니다. 아까 서두에서 얘기했지만, 집착을 하면 그 물건이 문제가 되는 것이나 모아두는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집착하는 것들로 인해서 자꾸 마음은 병들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괴로움의 상태로 끊임없이 바뀌어나간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게 됩니다.

 

부처님 당시 때 자따까, 자루다빠나 자따까라 그러는데 「오래된 우물」 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거기에서 어느 상인들이 장사를 하기 위해서 떠날 때, 부처님한테 가서 예배드리고 부처님한테 공양 올리고 나서, “부처님 우리 장사하러 갔다 와가지고 어느 정도 이윤이 생기고 나면 부처님과 상가를 위해서 보시를 하겠습니다. 그때 다시 와서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하고 나서 장사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가다가 어느 지역에서 쉬게 됐는데 인가도 없기 때문에 목이 말라서 우물을 찾다 보니까 아주 오래된 낡은 우물이 하나 있었어요. 그래서 그 우물을 퍼올리다 보니까 거기에 옛날에 누군가 도둑놈들이 감추어두었던 아주 오래된 보석들이 발견되었어요. 보석을 한참 퍼올리다 보니까 양이 좀 많아졌어요. 그래서 그 상인들의 우두머리가 그랬어요.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다. 이 정도 했으면 우리가 충분히 일정 기간 동안 사는 데는 지장이 없고 또 부처님한테 약속한 보시하고 또 공양 올릴 수 있는 것은 되니까 그만하자” 하고 얘기합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다른 상인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더 파낼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 자체를 계속 파내다가 결국에는 여러 가지 재앙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에 와 같이 일정하게 그것을 모으고 나면은 멈출려고 하지를 않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그대로 계속적으로 모으고 하는 것들을 신경을 쓰게 됩니다.

 

경전에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지나친 탐욕은 파멸의 원인이다" 하고 나옵니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 더 가질려고 더 얻을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이 오히려 원인이 되어서 스스로를 파멸하는 원인이 된다 하는 뜻입니다.

 

가끔씩 스님이 공양을 밖에서 할 때가 있었습니다.

식사하러 가면은 어느 집은 장사가 잘되고 어느 집은 장사가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장사가 안 되는 사람들은 물어보면은 장사가 잘 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본인이 조금 더 이윤을 많이 내기 위해서 양을 줄이든지 아니면 좀 더 값싼 것들을 쓰든지 이렇게 하면서 그 맛이 변하니까 사람들이 안 오게 되는 거라. 조금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이 오히려 장사를 망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들을 가끔씩 보게 됩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도 "재가 생활을 하기 위해 욕심부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탐욕을 부리는 것은 자 기자신을 망치는 파멸의 원인이 된다" 하고 경고를 하게 됩니다.

이 오래된 우물도 꼭 마찬가집니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서 그 재물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또 스스로 목숨을 잃는 그런 결과들을 가져오게 됩니다.

 

인도에 옛날에 갔을 때 그런 적이 있습니다. 옛날 90년 초반이나 이럴 때의 인도는 유적지들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적지에 가면 유물 조그만 것들이 널려져 있고, 조금만 파보고 하면 그런 옛날 물건들이 나오고 했었어요. 그런데 대부분 수행자들은 그걸 보고도 거들떠도 안 봅니다. 가끔 어떨 경우에는 ‘어, 이런 게 있네’ 하고 만져보기는 하지만 그것에 욕심을 내가지고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재가자들하고 같이 가보면 재가자들은 거기에 넋이 빠집니다. 뭐 하나가 나왔으면 계속 그것을 팔려고 그럽니다. 확실히 출가한 사람과 재가자가 저런 차이가 있구나 하는 것들을 옛날에 느낀 적은 있습니다.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여러분들이 실제로 지녀야 되는 것들이 뭔가 하는 것들을 자꾸 잊어먹는 경우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모아두는 것"들에 따라서 항상 얘기하는 것들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소욕, 지족! 2가지를 항상 얘기를 하게 됩니다.

"이 2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이 지나친 탐욕으로 연결되어서 스스로 파멸에 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소욕(少欲)'이라고 하는 것은 '압삣체따'라고도 얘기를 하는데, 잘못 해석하면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욕심이 적다는 그런 뜻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소욕은 욕심이 적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압삣차따(appicchata)라고 하는 것은 '요구하는 것이 적다'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고 내가 요구하고 하는 것들이 적다는 겁니다.

 

대부분은 이것을 갖고 싶어 하면 저것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것까지 가지고 난다고 해가지고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 적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어떤 것들을 요구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요구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이것에 만족해버리고 이것들에 대해서 더이상 다른 것들을 요구하는 것들이 없어져버릴 것 같으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해버립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지족(知足)'이라고 하는 단어는 '산뚯티(santuṭṭhi)'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만족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것의 원래의 뜻은 기쁨을 의미합니다. 기뻐하고 있다, 기뻐하는 것들이 있는 상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만족했으면 기쁨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요구하는 것이 적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서 그냥 기쁨을 얻고 만족하게 돼버립니다. 그래서 '소요지족'은 잘 분리를 안 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그것들을 따로따로 분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뭘 목표로 해서 살아가는가? 괴로움을 없애고 행복을 목표로 해서 나아간다고 할 것 같으면 반드시 구족해야 되는 것이 소욕지족이라rh gk는 겁니다. 요구하는 것들이 적어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 가진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고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버려버려야 됩니다.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불만족이 더욱 더 증대합니다.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괴로움이 더욱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까 서두에 얘기했듯이 무엇을 내가 모을 것이냐? 돈을 모으는 것들도 괜찮은 방법중에 하납니다 재가자들은. 그런데 그 돈을 모으는데 돈을 모으는 것들도 어느 정도까지 모을 것이냐는 거라. 내가 그 돈으로 인해서 그것이 적게 있든 많이 있든, 그것들에 대해서 더 원하는 것이 없고,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생활하고 또 보시하고 하는데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으로 족한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버릴 것 같으면, 그래서 소욕지족이라는 개념을 자꾸 잊어버리게 될 것 같으면, 무엇을 가지든지 그것들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고 그것들로 인해서 괴로움은 끊임없이 받게 된다는 거라.

 

왜 그런가 하면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은 탐진치 쪽으로 흐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마음이 병들어지기 쉽습니다. 대부분 그것들에 마음에 병이 들면 어떤 식으로 나타나냐면 '육체에 주의한다'는 방향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됩니다.

내가 이것이 있어야만이 좀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고, 좀 더 건강하게 될 수 있고, 좀 더 남들보다도 늙는 속도를 줄일 수가 있고, 육체에 마음이 속아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지게 됩니다.

 

실제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앞에 놓인 지뢰들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경쟁해야 되는 것, 또 마음에서 일어나는 질투심들, 또 어리석은 것으로 인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들, 곳곳에 지뢰밭인데 마음이 육체가 원하는 대로 그냥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면은 문제가 심각해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게 거식증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밥을 먹었는데도 계속 배고프다고 달라고 그럽니다. 육체가 마음을 속입니다. 그러면 계속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육체가 속이는 대로 그냥 마음이 속아넘어가 버리게 되는 거라. 실제로는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마음인데 반대적으로 지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명령하는 것들이 대부분은 보면 더러워진 마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명령을 하게 됩니다. 그것들에 대해서 정당하다고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됩니다.

몸은 그때도 반드시 거기에 따르는 윤리가 있어야 되는 거고, 거기에 따르는 도덕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마저도 팽개쳐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조금 더 불교적으로 다가간 사람들은 마음을 자꾸 제어하려고 해야 됩니다. 마음을 제어해서 신체를 관리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마음이 관리가 돼 나가지면 소욕지족이라는 것들을 이해를 하게 됩니다. "아, 내가 요구하는 것들이 적어져야 된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그것들에 대해서 만족하고 기쁨을 누리도록 해야 된다."

그 2가지 아래에서 모으는 것들이나 여러 가지 경제활동들을 영위해야만이 살아가는 것들이 행복하게 돼나가지는 것이지, 행복을 목표로 해서 살아나가면서 반대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경전 주석서에는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소욕지족이 빠진 경제활동은 암세포와 같이 늘어난다" 하고 얘기합니다. 암세포가 증가하듯이 자기 자신을 점점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나에게 뭔가가 하나 더 생겼다고 해서 그것들에 대해서 기뻐하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생긴 것들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더 요구하는 것들이 없고, 그것으로 인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을 자꾸 생각을 해야 됩니다.

 

생긴 것에 대해서 행복해하는 마음이 없을 거 같으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집에 산더미 같이 재산을 쌓아놔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야 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봅니다. 마지막에 후회한다고 해가지고 그 시간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스스로 어떤 것에 대해서든 기쁨을 누리고 만족하는 삶들을 살아갈 수 있을 때 그 삶은 행복한 삶이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모을 때 항상 기준점을 두어야 되는 것이 소욕과 지족입니다.

요구하는 것이 적어야 되는 것이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느끼지 않아야 되는 것, 이 두 가지가 기준점입니다.

 

대부분 살아갈 때 맑은 공기는 필수적인 것이다. 또 깨끗한 물은 필수적인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와 같이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소욕과 지족이다 하는 것들을 잊어버려서 안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요구하는 것들이 자꾸 적은 생활들을 만들려고 해야 되는 것이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불만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만족하면서 그것으로 인해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으는 것에는 반드시 불교적인 윤리와 도덕이 있다" 하는 기준점을 잘 잡아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