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8~2022 일상수행법문

'나'라는 것이 강화되지 않도록 하라 (20210703)

담마마-마까 2022. 6. 12. 09:10

https://youtu.be/KleNTPHRnl4

* '나'라는 것이 강화되지 않도록 하라 (20210703)

(13:08 이후부터 녹취하였습니다.)

 

24일이 테라와다 전통적인 왓사(vassa, 안거)날입니다.

대구에서는 그날 다시 올 수가 없으니까 오늘이 왓사라고 생각을 하고 마음을 다잡기를 바랍니다. 그 대신에 왓사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토요일 낮 12시에 스님한테 전화를 해서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을 뜻하는 빨리어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와나-(bhāvanā)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또 하나는 깜맛타-(kammaṭṭhāna)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와나-(bhāvanā) 라고 하는 거는 어떤 의미냐면 계속해서 닦아서 숙련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끊임없이 계속 닦는다는 그런 의미로써 쓰입니다.

 

태국에서는 바와나라는 용어도 쓰이지만, 수행센터를 지칭할 때는 깜맛타나라는 용어를 많이 씁니다. 그래서 "깜맛타-나 위빳사나 무슨 무슨 센터", "깜맛타-나 사마타 무슨 무슨 센터" 이런 식으로 씁니다. 앞에 반드시 깜맛타나를 붙이는데,

 

깜맛타-(kammaṭṭhāna)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냐면 쉽게 설명하면 숙제라는 뜻입니다.

아이들 길러봤죠? 학교에서 숙제내주면 어떻게 해야 되요? 숙제를 해야, 하고 학교를 가야 되지 숙제를 안 하면 엄마가 되게 혼냅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해야 될 숙제가 있다는 거라. 부처님이 봤을 때.

그런데 계속 숙제를 자꾸 미루는 거라. 나중에 해야지, 지금 먹고 살기 바쁘니까, 뭐 어떤 다른 이유 때문에 자꾸 숙제를 미루고 하다가, 죽음에 이르러가지고는 숙제를 안 했다는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아! 내가 참 잘못 살았구나. 좀 더 열심히 수행할 걸 하는 후회들을 합니다.

깜맛타-나라는 것은 숙제라는 의미들이 강합니다. 특히 이런 안거 기간이 다가오면 밀렸던 숙제들을 조금 많이 진도를 빼놔야 돼. 공부들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간들을 자꾸 가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며칠 전에 서울에 공양청이 있어가지고 올라갔었습니다. 그래서 오전에 간단하게 법문하고 오후에 문답을 받았는데, 문답을 받은 것 중에 하나가 뭐가 있었느냐면,

내 주위에는 수행을 참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수행을 많이 하니까 아만심이 자꾸 높아지더라. 그 사람이" 하는 얘기들을 듣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만심이 높아지니까 무조건 나를 따라라 하는 식으로 되어간다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 수행을 열심히 했는데 왜 그렇게 되는 걸까?

두 가지로 나눠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사마타 수행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수행은 열심히 했는데 ''라고 하는 것들이 더 강해지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사마타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거죠?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다보면 되게 좋습니다. 평온하고 어떨 때는 새로운 체험들도 하게도 되고, 그리고 그렇게 수행할 동안에는 성냄도 안 일어나고 욕심도 안 일어나고 그렇게 잘돼나갑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그러고 나서 문제입니다.

 

수행을 잘하다 보면 특히 여러분들이 빠지는 병 중에 하나가 뭐냐면 그걸 확인할려고 합니다.

스님한테 와서 그걸 확인하려고 하든지 그럽니다. 얼마 전에도 전화를 받았는데 누가 그러더라고. “스님, 아무래도 내가 예류과에 든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니까 이렇게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그냥 수행 체험한 거라. 체험한 건데 본인은 그걸 비춰보니까 예류과 경지하고 비슷하거든. 뭐 의심도 그렇게 안 일어나고, 집착하고 하는 이런 것들도 없고, 그리고 아만심도 없는 것 같고 이렇게 생각이 드니까 ‘어, 내가 예류과에서 떨어지는 번뇌 세 개는 없는 것 같다. 의심하는 것도 없이 이 법대로 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하는 거라.

병 중에 하나가 뭐냐면 수행이 잘 될 때 항상 그것을 확인할려고 그러는 거라.

 

확인하는 것은 좋은데 확인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게 "나가 개입" 돼버리는 거라. 누가 확인하느냐면 '내가 확인'한다고 생각하는 거라. '내가 예류과에 들었다', '내가 선정을 체험했다', 이렇게 판단을 하는 거라. 수행이 잘되면 잘될수록 그런 과정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는 거라.

 

수행은 어떤 경우든지 '나'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되는 건데,

왜? '나'라고 하는 것은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면 안 되는데 그것에 더 견고해지는 거라.

사마타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특히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내가 수행을 잘하고 있고, 그러니까 수행은 이런이런 방법으로 해야 돼 하고 무조건 그 방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일려고 하는 거라.

수행이 잘 되면 '나'라고 하는 것이 점점 떨어져 나가야 되는데, 오히려 더 강해지는 형태가 돼버리는 거라. 그러다보면 이게 점점 더 도가 지나치게 되는 거라.

 

수행이 잘될 때 저지르기 쉬운 두 번째 부분이 뭐냐면, 망상이 강해진다는 겁니다.

대상을 알아차리는 게 아주 단조롭고 고요하거든. 그럼 그냥 그 고요한 걸 그대로 알아차리고 있으면 되는데 마음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마음은 항상 번뇌를 일으킵니다. 그러면 본인이 자꾸 망상을 하게 됩니다. 고요해지고 단조로워지니까 본인이 생각을 일으킵니다. 아,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본인이 하늘을 나는 것, 본인이 아라한이 된 것, 이런 것들을 자꾸 상상을 합니다. 망상이 점점 더 강해질 거 같으면 그것도 '나'를 강화시켜 줍니다.

 

사마타 수행에서는, 수행이 잘될 때 여러분들이 조심해야 되는 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조심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을 했는데도, 저 사람을 보면 생활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거고, 수행을 할 때는 삼매에 든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남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자꾸 넘어가버립니다.

그런 것들은 참 조심을 해야 된다 하는 얘기입니다.

 

두 번째,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자아가 강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안거가 됐습니다. 뭔가 좀 열심히 해볼려는 생각이 일어나고 동기가 있어야 되는데, 그걸 잡는 거라. 본인이 평소에 잘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 잘 안되는 부분들을 이번에는 이걸 다스려보겠다 해가지고 마음을 먹습니다.

예를 들어서 성냄이 많은 사람이다. 하면 이번 안거 석달 동안에는 나는 성냄이 없이 살아보겠다, 성냄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살아보겠다 하고 서원을 세웁니다.

 

그런데 본인은 지금 성내는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은 잡을 생각을 안 하고, 일어나는 현상 중에 성냄만 자꾸 누를려고 하면 그게 뿌리가 뽑힐까?

예를 들어봅시다. 이 집을 지을려고 할 것 같으면 땅을 먼저 잘 파고, 그 밑에다가 습하지 않게끔 하는 것들을 넣고, 그다음에 기단이 될 세멘 공구리를 넣고, 그다음에 기둥을 세우고, 그다음에 지붕도 올리고, 그러고 나서 옆에 벽을 하고 창문을 달고 안에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식으로 합니다. 기둥은 어떠한 식으로든 바닥이 안 되어있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밖에 인테리어도 잘 꾸며 놓을려고 하더라도 다른 것이 돼 있지 않으면 그걸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표출된 분노·성냄 그것은 여러 가지가 겹겹이 쌓여가지고 그 성냄이 일어났을 건데, 밖에 성냄을 아무리 눌러놔 놓고 뭐하고 하더라도, 조건만 다르면 또 다른 형태로써 일어나게 돼있다는 거라.

 

스님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뭐냐면 수행의 동기 부분입니다.

물론 수행할 때 아, 이번에는 내가 뭔가 잘될 걸 바라고 아니면 내 자식들이 뭔가 시험이나 뭐가 잘되기를 바라고 수행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거는 욕심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은 일체 용납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고 나서 저지르는 게 뭐냐면 조금 전에 얘기하듯이 근본 원인을 잡을려고 안 하고 자꾸 지금 현상이 나타난 것들을 잡을려고 한다는 거라.

 

수행의 동기 부분이 문제가 돼서 자아(自我)를 강화시켜 주는 것들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 밖으로 표출되는 것들을 자꾸 잡을려고 하지 말고, 수행에서는 서원이 굉장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깜맛타나 라고 해가지고 결정심을 가지고 서원을 냈을 때 수행은 좀 더 빠르게 진행이 되기도 하고, 한단계 한단계 넘어갈 때 쉽게 넘어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게 필요한데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 싫기 때문에 마음에 더러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또는 "계속적으로 변하는 이것들이 참 괴롭고 힘들기 때문에 괴로움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겠다" 하는 그런 것들이 동기가 돼서 수행을 하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성냄도 마음의 더러움 부분입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 일어나는 마음에서 더러운 것들은 성냄 뿐아니라 여러 가지들이 있다는 거라. 그 여러 가지들, 마음에 어떤 경우든지 더러움에 물들지 않게끔 자꾸 노력을 하라는 거라.

탐심이 있으면 탐심을 알아차리고, 성냄이 있으면 성냄을 알아차리고, 게으름이 있으면 게으름을 알아차리고, 그것들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들은 참 많이 일어난다는 거라.

그러면 그것들 모두를 아, 지금 이것이 일어나면 마음이 더러워져서 나는 악행들을 자꾸 짓게 된다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 마음의 더러움을 없애기 위해서 수행을 자꾸 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행하는 것이 지금 조그만한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행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그 문제가 잠깐 수면 아래로 잠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해결할 수도 없을 뿐아니라 다른 것들은 더더구나 해결하기가 힘들어져 버립니다.

 

지금 변하는 것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괴로움을 넘어서기 위해서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 수행을 한다, 그래서 수행의 동기가 바르게 되도록 자꾸 해야 만이, 그속에 '나'라고 하는 것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대상이 참 많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것이 안 생길 것 같아도 자칫 잘못하면 이렇게 '나'라고 하는 것들이 생겨나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르게 자꾸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수행을 하면서 "나라는 것이 강화되지 않도록 하라" 하는 의미에서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안거 때는 이걸 명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수행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의 상태에서 수행 대상을 알아차리느냐 하는 것들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됩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고 가벼워진 상태가 될 거 같으면 마음은 대상을 향하게 돼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대상을 자꾸 찾아갈 거 같으면 대상은 나에 의해서 바뀐 형태로 다가와지게 됩니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있는 그대로 상태로 관찰할 수 있도록 자꾸 만들고 대상을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은 그것이 설혹 사마타 수행을 하든 아니면 위빳사나 수행을 하더라도 '나'라고 하는 것이 강화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문답 할 사람 있으면 지금 와서 하시기 바랍니다.

 

[문답]

Q 수행자 질문 : 스님! 수행을 할 때 보통 보면 오늘은 수행이 '잘됐다' '안됐다' 에 마음이 많이 치우치는데, 저는 항상 결과보다는 계획한 과정을 완수했느냐 안했느냐 과정을 중시를 항상 하고 결과는 그렇게 안 합니다.

내가 오늘 수행은 세 시간 하기로 했으면 그 계획대로 그대로 잘되든 안되든 자기 수행을 한 걸로 오늘 수행은 만족스럽다고 자꾸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스님 답변 : 그것도 중요합니다. 내가 일단 결정을 했으면 세 시간 수행을 하겠다 했으면 세 시간은 수행을 채우도록 하는 것이 나중에 수행을 해나가는데 뒷받침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필요한 부분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그 시간을 채웠다고 해가지고, 수행이 잘 안된 상태에서 그 시간을 채웠다고 할 것 같으면 본인이 문제점이 있는 것들을 점검을 해봐야 됩니다.

 

수행자 질문 : 점검은 하되, 잘됐다 안 됐다에 대해서 집착은 하지 않는다는 그런 뜻입니다.

스님 답변 : 집착은 하지 말아야 돼. 그건 어쨌든 지나간 시간이기 때문에 잘됐든 못됐든 어쨌든 시간입니다. 그 대신에 안 됐을 경우에,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안 되는 것들을 그냥 계속한다 할 거 같으면 그거는 좀 어리석은 겁니다.

왜냐하면 하다가도 수행이 잘 안될 때는 일단은 스톱을 하고, 다른 방법으로 그 시간 동안을 채워줘야 됩니다.

수행이 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 것이지, 만약에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고 있는데 잘 안된다 그러면 '어, 이게 아닌갑다' 해가지고 '일어남' '사라짐'을 딱 멈추고 마음을 알아차린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일어남' '사라짐' '앉음' '닿음'을 한다든지 이렇게 방법을 바꿔가지고 그 나머지 시간들을 채우면서 수행이 잘되는 방향으로 넘어가야 되는 것이지, 그냥 그 시간만 채운다는 생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Q 수행자 질문 : 저는 대상이 일어났을 때 보니까 알아차리는 마음이 어딘가 모르게 미세하게나마 탐심과 진심이 섞여가지고 있더라고 예. 그래서 그걸 떼낼라고 애를 썼는데 이게 우짜다가 떨어져 나갔어예. 나갔는데 보니까 대상이 더 많이 이렇게 막 나타나더라고 예.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막 퍼붓듯이 나타나 예.

그걸 하니까 어느 정도 되면 그쳐져야 될 건데, 계속되는 거라 예. 그래서 결국 괴로움으로 되더라고 예.

스님 답변 : 괜찮아요. 괴로움이 되더라도 대상이 일어났으면 그냥 그대로 바라보면 되니까. 탐심과 진심이 없는 상태가 될 거 같으면, 대상을 떨어트려서 있는 그대로 지금 보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보고 있으면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서 대상이 굉장히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만약 호흡이면 호흡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그럼 그냥 그대로 그걸 바라봐야 돼.

 

수행자 질문 : 그게 계속 소나기 퍼붓듯이 퍼부어도 예?

스님 답변 : 그리하더라도 그걸 해야만이 그게 나중에 잠잠해집니다.

호흡도 하다 보면 호흡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들이 보이다가도 나중에 보면 호흡이 아주 느려지고 그게 또 점점 멈추어가는 거고,

생각들이 일어나는 것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점점 많아지다가, 편안한 상태에서 그대로 멈추지 않고 관찰하다 보면은 그것도 어느 순간에 특정한 크게 일어나는 것들만 일어나게 돼있고, 나머지들은 관심을 안 가지면 사라져버립니다.

그와 같이 진행이 되기 때문에 그거 그냥 멈춰서는 안 돼. 탐심과 진심이 떨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 거 같으면, 그러고 나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그냥 그대로 관찰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