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8~2022 일상수행법문

2021년 안거입재_부처님한테 칭찬받는 사람 (20210724)

담마마-마까 2022. 6. 13. 09:00

https://youtu.be/lOLRLzStEjo

* 2021년 안거입재_부처님한테 칭찬받는 사람 (20210724)

 

이번에 새로 수계받을 사람들 손 한번 들어봐요. 많네. 다들 위치가 어떻게 돼요?

(수행자들 각각 대답 : 인천이요. 저는 서울이요. 저도 서울에서 왔습니다. 충북 청주에서 왔습니다. 대구에서 왔습니다. 제주에서 왔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어떻게 왔다 갔다 하냐? 대구 하고 제주 분은 한 달에 한 번씩 오십시오. 그 대신에 매주 토요일 날은 전화로 게송을 해요. 열두시 전후로. 스님 공양이 열한시 반정도 되면 끝이 나니까 열한시 오십분부터 열두시 십분 사이에, 다른 사람 전화를 받고 있으면 통화 중일 때니까 조금 이따가 전화하도록 하고. 그 시간 동안에 전화하도록 하고.

 

나머지 분들은 서울에 가까우니까 서울에 일주일에 한번씩은 선원에 들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서울에 있는 분들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게송을 전화로 하도록 하십시오. 모여서 하면 좋기는 하겠지만 모일 형편이 안되면 개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됐죠? 다른 의문나는 사항 없죠?

수행자 질문 : 담마와나 선원에 모이면 됩니까?

예. 담마와나 선원에서 모이도록 하고, 담마와나선원 스님이 게송을 할 줄 알면 좋은데 잘 못하죠. 그러니까 그냥 스님한테 전화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모이지 못하면 집에서 그날은 불재일을 쇠도록 그렇게 해요. 아시겠죠? 그러면서 개별적으로 전화로 게송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같이 사람이 많을 때는 탁발 올리면서 꼭 삼배(三拜)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신에 테라와다에서 일배(一拜)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탁발을 올릴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고 탁발을 올리도록 하고,

그리고 시간 관계상 삼배할 시간이 없으면 그냥 반배(半拜), 손을 바닥에 대지 말고 반배만 하고 가도록 해야지, 일배만 하고 가는 법은 테라와다에는 없습니다. 그건 대승불교 식으로 작은 스님 큰스님 가린다고 하면서 일배, 삼배의 개념이 생긴 거지 테라와다의 개념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반배를 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의지할 대상은 어떤 경우든지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삼보가 여러분들의 의지할 대상이기 때문에 삼배를 한다는 것은 삼보에 의지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을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면 그냥 반배만 예를 표하면 되는 형태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자! 편하게 하고 스님 법문을 듣도록 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부처님한테 칭찬받는 사람일까? 부처님이 누구에게 칭찬을 했을까?

경전을 읽어본 사람들은 보통 표가 나죠? 누구에게 칭찬을 했어요?

(수행자 대답: 수행 잘하는 사람)

수행 잘하는 사람에게는 칭찬하지 안 했습니다. 깨달음에 이른 사람한테는 칭찬했겠죠. 수다원에 이르렀으면 아니면 아라한이 됐으면 참 잘했다 하고 칭찬을 했겠죠. 그런데 수행 잘하는 사람한테는 칭찬한다는 것보다는 더욱 열심히 해라 하고 얘기를 하지 칭찬의 영역에는 속하지 않습니다.

네 가지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는 칭찬을 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만약에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으면 부처님한테 칭찬받을 일은 없죠?

 

경전엔 어떤 부류들이 부처님한테 칭찬받았을까?

(수행자 대답 :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

정답! 어떻게 알았어? 내 이 교안을 봤어요? (ㅎㅎㅎ)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안거가 정해지면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불재일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적어도 부처님한테 칭찬받는 사람이 됩니다.

 

계를 지키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그런 게 많이 나오죠. 사슴이 나한테 와서 포수가 날 죽일려고 쫓아오고 있는데 날 좀 숨겨달라 이렇게 했을 때 여러분들은 어떤 대답을 해야 될까?

첫 번째는 저쪽으로 가라 하고 그 포수가 왔을 때 다른 방향을 가르쳐주는 경우가 있을 거고, 또는 어떤 경우는 포수가 왔을 때 못봤다 할 경우도 있을 거고, 그런 경우에는 '거짓말'에는 해당이 되겠죠?

 

그럼 살생을 안 하는 대신에, 본인이 살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살생'을 안 하는 대신에 거짓말하는 죄를 지을 것인가 하는 게 하나가 있고,

또 하나는 계율을 곧이 곧대로 따지다 보니까 거짓말할 수가 없으니까 저쪽으로 갔다 하고 정확하게 얘기를 해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또는 논리적으로 또는 아비담마적으로 살펴보니까 살인보다는 거짓말하는 게 더 죄가 가벼울 거 같다 하고 판단해서 논리적으로 따져가지고 거짓말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부처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수행자 대답 : 타일렀을 거 같습니다.)

경전에도 그런 게 나오죠? 유녀가 젊은이들과 놀다가 물건을 훔쳐서 도망쳐왔어요. 그래서 그 젊은이들이 그 유녀를 쫓아와가지고 부처님 있는데 오니까 부처님이 한 말이 있죠? 뭐라고 했어요?

(수행자 대답 : 유녀를 찾는 것이 중요한가, 너 자신을 찾는 것이 중요한가?)

그렇지! 경전을 좀 읽었네! 그게 정답입니다. 불교적인 정답은 그겁니다.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긴 한데, 그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청정하게 되도록 하는데 목적이 돼야 됩니다. 거짓말을 하든 아니면 경중을 따져서 취사선택을 하든 아니면 간접적으로 살인하는 것이 되든 다 마음속에 찌꺼기가 남습니다.

 

그럼 불교적으로 바른 것은, 그 사람들에게 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하든지 마음이 청정하고 깨끗하게 되게 해서 해탈에 이르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지혜가 일어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계율을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

그 원칙을 어겨버리면은 자꾸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시시비비에 자꾸 휘말려 든다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든지, 아니면 사회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한다든지 이런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도 칭찬했는데, 그 계율을 잘 지킨다고 하는 것은 전제조건이 항상 있습니다.

그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 인해가지고 내가 수행이 잘 돼나가는 형태를 지키는 것인지, 그 계율을 잘 지킴으로 인해서 자기 스스로 아! 내가 참 행복해지는구나. 탐진치에 빠지지 않는구나.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구나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항상 따져야 됩니다. 그렇게 됐을 경우에는 그 사람을 부처님이 칭찬을 하십니다.

 

적어도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은 될 수 있잖아. 그렇죠? 계율을 하나 잘 지키더라도 부처님이 칭찬할 뿐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도 아! 내가 이것으로 인해가지고 수행을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데 마음이 청정해지고 깨끗해지는구나.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구나. 하는 것들을 스스로 체험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나가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인제 어느 정도 수행을 열심히 했으니까 수행하는 사람들이 사띠하는 것은 어느 정도 돼나갈 겁니다. 사띠 잘 하고 있죠? 사띠가 안되면 다른 답이 없습니다.

설혹 사띠의 힘이 약해가지고 자꾸 놓치기도 하고, 또는 어떤 사람들은 사띠가 잘 되나가는데 대상이 변하지 않고 뭉뚱그려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대상은 알아차리고 있는데 그것이 변하는 속성이 안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할 겁니다. 그랬든 저랬든 어쨌든 사띠는 하고 있는 겁니다.

사띠를 하고 있다는 것은 마음이 나쁜 방향으로 흐르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고 적어도 선한 마음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단지 그것은 사띠의 깊고 얕음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뿐입니다.

 

적어도 거기까지는 어느 정도 되고 있다고 치고,

그럼 사띠가 어느 정도 잘 되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떻게 해야 돼?

그냥 대상이 변하지 않는데도 사띠는 하고 있으니까 대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보면서 깨끗한 마음의 상태로써 한시간 동안 보내야 돼? 또는 가끔씩 사띠를 놓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쁜 방향으로 가지를 않으니까 그냥 두리뭉실하게 알아차리고 그냥 시간을 보내야 돼?

사띠가 어느 정도 돼고 나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라.

선등님 얘기해봐요.

(수행자 대답 : 무상·고·무아를 체험하도록 해야 됩니다.)

지금 사띠의 영역에서는 그게 안 되는데 어떻게 체험할 거라?

(수행자 :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수밖에)

예.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그걸 계속 한 시간 동안 하고 있는데, 안되는 걸 하루하고 이틀하고 열흘하고 일년동안 하고 해도 내내 계속 똑같은 패턴이 되풀이되고 그대신에 마음은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인데 그러고만 계속 시간을 보낼거냐는 거라.

(수행자 : 대상을 바꿔서 마음관찰을 해야 됩니다.)

음. 지금 상태에서 그렇게 계속 알아차리고 있으면 대상을 바꿔도 마음관찰을 하더라도 마음도 동일한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런 방법보다는 지금 스님이 얘기하는 세 가지 방법들을 동원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이거는 수행이 다 끝나고 나서 그날 마무리 단계에서 해야 되는 겁니다 이.

그런데 칠각지의 사띠각지 다음에는 무슨 각지라요? (수행자 : 택법각지)

택법각지죠? 택법각지를 응용하면 됩니다.

택법가지가 저절로 일어나면 참 좋은데, 그 칠각지에 스님 프린트물 몇십장 되죠? 그거 좀 자세히 읽어본 사람 있어요? 사띠가 잘 될 때 해야 될 사람하고, 사띠가 잘 안될 때 택법각지를 일으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적어놨습니다. 좋은 자료들이 있을 때는 그것들을 응용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을 어느 정도 하고 나서 본인이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경험한 것들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편한 마음의 상태를 경험했든 아니면 니밋따를 경험을 했든 아니면 망상이 일어나는 것들을 잠재웠든 뭘 했든 아무 상태없이 스물네시간을 계속 보낼 수 있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면 그날 생활하면서 사띠를 해가면서 대상을 알아차렸을 때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첫 번째는 우선 안 좋았던 기억, 한번 곰곰이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수행을 해나갈 때 안 좋았던 것들, 만약에 통증이 있었다. 통증이 굉장히 강해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참 힘이 들었다. 예를 들면은.

그러면은 사띠를 잘 해나갔으면 통증을 금방 극복할 건데 통증이 사라지는 현상들이 분명히 보여야 되고 통증이 각각의 느낌들이 변화하는 것들이 보여야 되는데 그걸 못 봤으니까 통증만 계속 안고 그것을 관찰하고 있다고 하고 있었던 거라.

왜 그랬을까? 안 좋았던 기억 상황 중에서 그것들이 왜 그렇게 이 통증이 빨리 사라지지 않고 변하는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됐을까? 왜 그래요?

 

라고 하는 것이 거기에 딱 개입돼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개입돼있지 않으면 어떤 경우든지 통증은 변하게 됩니다. 느낌들이 각각의 현상들로 변하고 결국은 사라지고 다른 통증들이 일어나는 것이지 똑같은 통증이 연속되는 법은 없다는 거라.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났든 나라고 하는 생각이 강했든 내가 거기에 결합이 돼있으니까 통증이 그냥 통증으로써 계속 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거라.

안 좋았던 것들 중에서 반드시 원인을 찾아내라. 그게 첫 번째 부분입니다. 통증의 예를 들었지만은 망상도 마찬가지고 다른 각각의 현상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좋았던 부분.

좋았던 영역에는 마음은 깨끗한 거 같은데 대상은 변하지 않고 한시간 내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는 것도 거기에 포함이 됩니다.

또한 여러 가지 현상들, 부처님이 보였다든지 빛이 보였다든지 이런 것들도 다 포함이 됩니다. 좋았던 경험들 쉽게 말하면 긍정적인 것들에 대한 것. 안 해본 경험들을 했기 때문에 본인이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하겠죠.

그 경험들을 반드시 기억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경험들도 가만히 보면 그 경험들을 한 것까지는 좋은데 경험을 하고 나서 그대로 남아있어 버릴 거 같으면 아니면 계속적으로 유지를 하고 있을 거 같으면 그게 문제가 됩니다. 경험한 것은 경험한 것으로 딱 끝내야 됩니다.

 

그런데 경험한 것들을 자신이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하루종일 부처님이 보인다. 하루종일 빛이 내 주위를 감싸는 것 같다. 하루종일 사띠를 하고 있는데 분명히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만 계속적으로 보이고 있다.

왜 붙잡고 있는데 그걸? 부처님이 할 일이 없어가지고 여러분들한테만 스물네시간 붙잡혀 있어야 돼? 마음이 다른 거 할 것이 없어서, 그냥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만 계속적으로 그러고 있을 거라? 얼마나 바삐 움직여야 되는데!

 

그걸 왜 붙잡아? 붙잡고 있으니까 그대로 그냥 유지를 하고 있는 거 아니라? 좋은 경험 할 때도 반드시 본인이 스스로 자꾸 그것들을 깨쳐나가야 됩니다. 좋은 경험도 나쁜 부정적인 경험과 마찬가지로 순간적인 것뿐입니다. 조건에 의해서 일어났다가 조건이 사라지면 그것도 사라져야 됩니다. 사라지지 않는 원인들을 찾아라는 거라.

 

그다음에 세 번째, 내일도 수행할 겁니까? 오늘도 수행했으니까. 그럼 내일은 어떻게 수행할 건데? 오늘과 똑같은 패턴으로 수행할 거라? 좋은 경험들 나쁜 경험들이 있고 하더라도 뭐 그냥 계획 없이 내일도 똑같은 형태로 할 거라 수행을? 어차피 지금 사띠는 지금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내일 할 것들을 목표를 세워야 됩니다. 그런데 너무 무리하게 하면 안됩니다. "내일 나는 수다원에 이르겠다." "내일 나는 상카루뻭카에 이르겠다." 허무맹랑한 소리 하지 말아라는 거라.

내일 가능한 것들, 오늘 부정적인 것이 통증에서 부정적인 것이 잡혔다 할 것 같으면 "내일은 적어도 그 통증이 1분 안에는 사라지게 하겠다!" 가까운 목표를 잡아라는 거라.

오늘 내가 좋은 경험을 한 것이 계속 적으로 이어졌는데, 그것이 황홀하고 좋은 경험인지는 몰라도 무상한 성품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나는 좋은 경험을 하더라도 집착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겠다!"

자신이 잘 걸리는 부분,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그 잘 걸리는 부분들에 대해서 목표들을 조금 조금씩 단축할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사띠가 잘 돼나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택법각지들을 응용을 해나가도 조금 조금씩은 향상이 되어나갑니다.

 

수행은 왜 하죠?

(수행자 : 행복해질려고 합니다.)

행복해질려고? 행복해지는 것들은 많습니다. 수행 안 해도 됩니다.

그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행복인지 몰라도 그냥 단순하게 행복해질 것 같으면, 꼭 전통적인 방법의 위빳사나 수행을 하지 않고 뭐 MBMR 인가 뭐 하는 그런 것들을 응용을 해도 좋습니다. ※ MBSR

 

그런데 수행하는 목적은 그게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게끔 지혜롭게 살기 위한 것이고, 또 수행을 해서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고, 사띠하는 목적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 똑같은 선한 행위를 하더라도 어제는 3정도의 공덕을 쌓았다고 할 것 같으면 오늘은 조금 더 사띠가 잘될 것 같으면 5정도의 공덕을 쌓게 됩니다. 왜 그럴까?

조금 전에 여러분들은 탁발 올렸습니다.

탁발 올리면서 걸어오는 하나하나 알아차리면서 탁발 올리고 탁발하고 가서까지 사띠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했느냐는 거라. 그럼 그 시간이 한 30초라고 하더라도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속에는 기쁨도 있을 거고, 평정한 마음도 있을 거고, 행복한 마음도 있을 거고, 훨씬 많은 공덕들을 쌓고 있게 되는 거라.

 

조금 더 지혜롭게 행동한다고 하는 것은, 지혜롭게 산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들입니다. 사띠를 해서 얻어지는 이익들은 그런 것들입니다.

지금 당장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세든지 아니면 지금 현재에서도 조금 더 바르게 살기 위한 방법들이 지혜롭게 사는 것들입니다. 사띠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그래서 해탈에 이르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조금 더 지혜롭게 되기 위한 것들, 지혜가 개발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해야될 것들이 있습니다.

아까 부정적인 것하고 긍정적인 것들을 체크를 분명히 하라고 그랬죠? 그런데 체크를 해야 될 때 지혜가 일어나기 위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걸 좋아해야 됩니다.

부정적인 게 일어나더라도 그거는 왜 체크하고 있는 거라? 조금 더 나아가기 위한 겁니다. 괜히 어두운 것들, 안 좋은 것들 기억해가지고 좋을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억하는 이유가 뭔데요?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겁니다.

그럼 부정적인 것들을 하든 긍정적인 것들을 하든, 그건 거기에 빠진다든지 거부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걸 좋아해야 됩니다.

그게 조금 더 지혜를 개발하기 위한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아까도 얘기했는데 부정적인 거하고 긍정적인 것이 일어날 때 그 원인이 뭔가 하는 걸 조사를 해봐라는 겁니다.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들에 대해서 납득이 될 때까지 계속 그것들을 관찰을 하라는 거라. 의문점이 있으면, 못 푸는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완벽하게 이해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지 문제에 부딪치는 것들에 대해서는 본인이 납득할 때까지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라고 하는 것은 전제조건이, 그걸 할 때 마음이 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느냐는 거라.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자꾸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견해를 가지지 않고 원인 결과를 가지고 자꾸 살펴보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집에 가족들이 있죠? 그 문제를 가지고 대화할만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없으면 도반을 찾으라는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 쌍방향으로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는 겁니다.

설혹 그런 사람이 없어도 가족 중에서 뭔가 얘기를 할 때 가족이 일으키는 반응이 있습니다. 나는 거기 관심이 없는데 왜 이런 얘기를 자꾸 꺼내느냐 든지, 그럴 때 자신의 마음에 반응이 있습니다. 설혹 가족이 그렇게 반응한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그것에 대해서 다시 반응하는 것이 없을 거 같으면 편안하게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돌려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롭지 못하니까 본인의 영역에서만 그것들을 자꾸 얘기를 할려고 한다는 거라.

 

요 근래에는 스님이 대부분 법문하는 것들을 보면 일상생활에서 하는 것들을 자꾸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지혜롭다고 할 거 같으면 가족이 거부반응을 가지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것들을 얘기를 해서 그것들에 대한 반응들을 자꾸 살펴보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쌍방향에서 오는 반응들을 반드시 살펴볼 수 있는가?

본인 스스로를 체크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뭔가 가족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 얘기들을 탁 했다.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 본인이 즉각적으로 뭔가 반응을 한다든지 화가 난다든지 할 것 같으면 그러면 이미 쌍방향의 대화는 깨져버립니다.

오늘은 설혹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도 내일은 조금 더 자신을 지켜볼 수 있는 힘들이 생길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좀 더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방향들을 스스로 자꾸 찾아가야 됩니다.

혼자만 지혜로울 거 같으면 그거는 그냥 산속에서 자기 혼자 살아도 됩니다. 그런데 어차피 여러분들은 사회 속에서 살아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지혜롭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들을 잘 무마해서 같이 나아갈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쌍방향의 대화법은 본인이 좀 더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 그게 조화롭게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될 일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좀 더 지혜롭게 되기 위한 방편들입니다.

 

오늘은 사띠가 잘 될 때 택법을 해야되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한 것과,

좀 더 지혜롭게 되기 위한 세 가지 방법에 대한 얘기들을 했습니다.

 

만약에 그게 안 되면 어떡할까?

사띠가 잘 안 되고 있는 사람이다. 뭘 해야 될까? 다른 생각하지 말고

첫 번째, 계는 지키려고 해라.

두 번째, 몸이라도 깨끗하게 해라.

옷 입는 것 씻는 것 이런 거라도 깨끗하게 해야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마음을 자꾸 선한 방향으로 끄잡고 들어가라.

이 세 가지는 적어도 해야만이 사띠가 잘 안될 때라도 본인에게 이익이 생깁니다. 그것도 안 되면 뭐 할 수 없는 거지. 그거는 부처님이 와도 끌고 갈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부처님한테 칭찬받는 일들을 해야 됩니다. 내가 부처님한테 칭찬받는 사람인가 하는 것들을 자꾸 체크를 하도록 그렇게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자!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