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수행이 잘될 때의 체크포인트 & 번뇌의 체크리스트 (20231007)

담마마-마까 2023. 10. 7. 16:30

https://youtu.be/gsC7kvC_g1Q?si=q6wFTuAZpnG621eq 

* 수행이 잘될 때의 체크포인트 & 번뇌의 체크리스트 (20231007)

 

안거가 끝나는 게 다음 달 첫째 주로 하기로 했죠?

요즘 전화로 문답하는 사람들 중에 수행이 좀 잘돼가지고 전화가 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수행이 좀 잘됩니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는데, 수행이 잘되면 빨리 거기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되는데 못 넘어가고 계속 몇 달째 거기 정체돼있는 걸 봅니다.

어떤 경우에는 오래도록 거기에 정체돼있는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 대상을 알아차리면 즉각적으로 사라지고, 일어나면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그대로 보이고,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보이면서, 몸에서는 오히려 기쁨의 현상들이 자꾸 일어나지고 마음은 평온하고 고요한데 깨달은 것 같지는 않고, 그런데 사띠를 놓치지는 않고 있거든.

그런데 거기에 몇 달간 아니면 몇 년간 계속 그 상태에 있다? 그럼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거 아닌가?

 

한번 서서히 자기 자신의 수행들을 복기를 한번 해보십시오.

처음에는 겨우 대상을 알아차리는 상태입니다. 그게 명칭을 붙였든 안 붙였든 간에. 그래서 배가 불러오면 불러온다고 알고 꺼지면 꺼진다고 알고.

겨우 그거 하다가 인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고 나면 불러오고 하는 것들이 육체적인 현상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정신적인 현상이다 하는 걸 구분하는 상태가 됩니다.

조금 그렇게 하다 보면 수행이 조금 순조롭게 되어나갑니다.

 

그래서 움직임보다는 보통 그럴 때는 (육체적인 현상들에 대한) 느낌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온 데가 쑤시기도 하고 통증이 일어나는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바쁩니다. 그것을 사띠하는 마음들이 계속적으로 옮겨가니까 바쁘기는 합니다. 그리해도 그걸 잘 넘기고 나면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들이 분명하면서도 그 느낌들이 분명하게 보이게 됩니다.

그때는 분명하기는 분명한데 아직은 그렇게 빠르게 퍼뜩퍼뜩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수행이 재미는 있어요. 조금 즐겁습니다 여러분들은. 대상이 잘 관찰되어 나가지니까.

 

그래서 ‘그냥 뭐 그렇다’하고 생각을 하고 계속적으로 하다 보니까,

이제는 육체적인 현상들에 대한 느낌들이 많다기보다는 정신적인 현상들에 대한 느낌들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자기의 마음을 ‘무슨 생각하고 있나’ 하고 기울여보면 생각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것이 보여집니다. 그러면 그거 따라가다 보면 엄청 힘듭니다. 육체적인 느낌보다도 정신적인 느낌이 많이 관찰되어나가질 때는 대상들이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수행자들이 그 속도를 못 따라가니까 거기서 중단하는 경우들이 대부분 허다합니다.

 

그런데 그 단계를 탁 넘어서고 나면 그다음에는 대상을 분명하게 따라가니까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빠르게 정신적인 현상들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별로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됩니다. 그냥 그대로 따라가지게 됩니다.

그대로 사띠가 되어 사띠가 자동적으로 되어나가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면 몸에서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정신적인 느낌들을 관찰하는 것들을 완전하게 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사마타 수행을 하더라도 금방 삼매에 폭 들어가거든.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있다가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 전에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기쁨들이 일어나니까 그것들을 그대로 또 사띠를 하면서 가니까 너무 좋거든.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거기 머무르고 싶은 마음들이 강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더라도 성냄도 없고 욕심도 없고 그냥 편안하게 잘 사띠를 해나가거든. 그러면서 몸에는 평온하고 고요한 것들이 계속 있으면서 기쁨들이 자꾸 일어나니까.

 

그래서 수행에서 요 근래에 문답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거기서 머물러있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거기서 평온하고 고요함을 즐기고 있고, 거기에 「나」라고 하는 것들이 딱 드러나져서 ‘아, 내가 이렇게 좋구나’ 하는 생각들이 일어나있는 것을 자꾸 무시를 해버립니다.

 

조금 전에 육체적인 느낌들이 먼저 관찰되고, 나서 정신적인 것들이 관찰되는 것들이 많아진다고 그랬습니다. 그 정신적인 느낌들도 분명하게 사띠가 다 되어있는 상태인데 더 또 뭐 할 게 있을까? 있습니까? 있겠죠!

있으니까 지금 사띠가 잠시라도 끊어질 거 같으면 그건 다 사라져버립니다. 사마디가 탁 깨어지고 나면 다시 또 일상생활로 탁 돌아와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다시 처음부터 해야 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부터 다시 해야 됩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정신적인 기쁨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면 거기 머무르고 있는 것들을 빨리 빠져나오지를 못하는 거라.

제발! 그럴 때는 빨리 거기서 다시 처음의 1단계로 돌아와버려야 됩니다.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이 단계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게 시간이 단축되어져야 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 또 다른 느낌이 있다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어떤 느낌일까? 정신적인 느낌들이 즉각즉각 나타나면 사라지는 것들이 보여지니까, 사띠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가 돼버립니다.

분명히 사띠는 하고 있는데, 그게 사띠를 하고 있는지를 몰라!

왜 그럴까? 사라지는 것만 계속적으로 보이거든!

대상을 사띠만 하면 그냥 사라져버리는 거라. 뭐든지 찰나 간에 자꾸 사라져버리는 거라. 계속적으로 그런 현상들만 일어나니까, 본인은 사라지는 것은 틀림없이 '일어나는 것이 있어야만이 사라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뭔가 내가 대상을 놓쳤다고 자꾸 생각을 하는 거라. 특히 그게 정신적인 느낌이면 더구나 그렇게 돼버립니다.

 

그 상태가 계속적으로 진행이 되어야 됩니다.

'사라짐'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냥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그냥 보고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단계 더 나아간 상태를 자기가 경험했으면서도 그걸 놔둬버리고 다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완전하게 사띠가 돼나가면서 몸에서 기쁨들이나 정신적인 기쁨들이 일어나는 그걸 자꾸 갈구를 하게 되는 거라. 그전의 단계로 자꾸 돌아가려고 하는 거라. 그리고 거기에 자꾸 머무를려고 그러는 거라.

그러니까 몇 달 지나도 문답하는데 또 똑같은 현상이 되는 거라. 또 똑같은 현상이 되고 계속적으로 그러고 있는 거라. 물론 그런 상태가 지속이 되면 사띠는 강해지고 집중력은 강해지는 것은 틀림없는데 수행의 끝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을 해야 된다는 거라.

 

마음이 어떠한 경우든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거기서 오는 느낌들에 대해서 평온한 마음이 될 때까지 계속 진행을 해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에, 열반을 잠깐이라도 체험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지를 못한다는 거라.

 

수행이 잘될 때 한번 보십시오, 본인들 상태를.

몸이 지멋대로 움직이든지, 아니면 자세는 구부정하게 돼있고, 마음은 견고하게 고정돼있는 게 항상 들떠있는 모습들이 보여질 겁니다. 그거는 본인이 그것들을 집착을 하고 있고, 그것들에 대해서 갈구를 하고 있고, 「나」라고 하는 것들이 개입돼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가 지속이 됩니다.

빨리 본인이 자기 자신의 상태를 알고, 대상이 빨리 사라지는 것들이 보여지도록 자꾸 돼야 됩니다.

쏟아지듯이 계속적으로 사라지는 것들이 보이고 나면 그다음에는 고요해져버립니다. 대상이 안 일어나지게 됩니다. 대상이 사띠는 있는데 대상 자체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수행이 잘 될 때 본인이 체크를 해야 될체크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 몸의 자세가 정립된 상태인가.

한시간 전에 시작할 때, 아니면 두시간 전에 시작할 때의 몸의 자세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한번 체크를 해봐야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열반에 다가갈 때는 몸은 변함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두 번째, 열반, 닙바나의 상태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알아차릴 대상은 점점 더 없어져버립니다.

빠르게 사라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대상 자체가 없어. 마음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돼있는데도 사띠는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마음이 바쁘게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대상은 많아집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대상은 일어날 수 있는 대상들은 없습니다. 그게 두 번째 부분입니다.

 

-세 번째, 닙바나를 경험하는 단계까지 가면 갈수록 어떤 걸 보든지 어떤 걸 듣든지 그것들에 대해서 알지를 못합니다.

사람을 보고 있어도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보이는 것뿐입니다. 들리면 들리는 것뿐이지 거기에 어떤 작용들도 일어나질 않습니다.

땅을 디디고 있으면 그 땅을 밟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고 뭔가 쑥 꺼지듯이, 땅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허공을 걷는 듯한 느낌들이 들기도 합니다.

형태와 색깔이나 이런 대상들이 사라지는 상태의 사띠가 있을 경우엔 그렇게 돼버립니다.

 

이런 단계들을 경험을 해야만이 그다음에 평온함의 단계로 넘어가지는데,

왜 자꾸 대상들에 대해서 사띠가 잘되고 있으면 일어나는 기쁨들에 만족하고 그냥 거기에 머물러있느냐는 거라.

그거는 일차적인 느낌을 관찰하고 있으면서 그것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그게 육체적인 느낌이든 정신적인 느낌이든 그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몸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반응일 뿐입니다. 그거는 아주 기초적인 거라고 생각을 해야 되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본인이 점점 더 닙바나에 다가가고 있는가 하는 것들을 체크를 하고 나서 아니다 싶을 때는 그걸 놓아버려야 됩니다.

그걸 놓아버리고 다시 대상을 처음부터 배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 일어나고 사라지고, 그러고 나서 일어나는 육체적인 현상 그것을 사띠하는 정신적인 현상, 이렇게 구분하면서 서서히 다음 단계를 서서히 다시 또 밟아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야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온한 상태에 이르르지, 그렇지 않고 그 상태에 그냥 기쁨의 상태에서 머물러 있어버리면 점점 더 '아만'은 강해집니다. 수행은 진보하지 못하고 딱 정체를 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수행을 해나갈 때 수행이 잘 돼나간다고 해서, 그리고 그런 잘돼나가는 것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현상들을 경험한다고 해가지고 만족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아주 기초적인 거라고 생각을 하고 빨리 거기서부터 탈출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단계에서는 사띠가 지금 잘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얼마만큼 나에게서 번뇌가 떨어져나갔는가 하는 것을 본인이 체험하는 겁니다.

그 이상의 단계에 이르르면 번뇌가 떨어져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중부경전 삭감경(削減經 Sallekha Sutta. M008)에 보면 번뇌의 체크리스트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거는 지금 수행이 잘될 때 기쁨의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번뇌를 체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한번 잘 체크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쭉 적어놓은 것들이 기초단계부터 해서 쭉 번뇌가 떨어져나가야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읽어드릴테니까 잘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남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생명체들을 얘기합니다. 다른 생명체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것들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들을 본인이 체크를 해봐야 됩니다.

이게 가장 기초적인 겁니다.

-두 번째, 다른 생명에 대해서 살생을 하는 것은 아닌가.

대부분 앞에 부분은 계(戒)부분입니다.

-세 번째, 남의 물건을 훔칠려고 하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훔치는 행위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마음을 품는 것조차도 해당이 됩니다.

-네 번째, 잘못된 성적인 관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섯 번째, 거짓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섯 번째, 남을 이간질시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곱 번째, 남에게 험한 말, 욕설 같은 험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덟 번째, 무의미한 말, 전혀 수행이나 공덕을 쌓는 일이랑은 관계없는 무의미한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홉 번째,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열 번째, 화내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가.

-열한 번째, 바른 견해는 확립되어 가고 있는가.

-열두 번째, 바른 방향으로 사유를 하고 있는가.

-열세 번째, 바른 말을 하는 것을 완전하게 지키고 있는가.

-열네 번째, 생활하는 수단으로서 바른 생계수단을 확립하고 있는가 아닌가.

-열다섯 번째,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열여섯 번째, 노력하는 에너지가 선한 행위를 하는 것으로서 향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아닌가.

-열일곱 번째, 사띠를 하고 있는데, 바른 견해를 확립하고 사띠를 하고 있는가.

-열여덟 번째, 올바르게 집중해서 수행하고 있는가.

-열아홉 번째, 정직하고 있는가 아닌가.

-스무 번째, 내가 아직 도와 과에 이르지 않았는데 자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와 과에 이르렀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물한 번째, 게으름부리는 것에 당하고 있지 않는가.

-스물두 번째,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기쁨의 현상이나 이런 것들로 인해서 들떠있는 것은 아닌가.

-스물세 번째, 지금 내가 가는 방향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고 그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스물네 번째, 강한 성냄 같은 것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스물다섯 번째,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스물여섯 번째,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스물일곱 번째, 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스물여덟 번째, 질투하는 것이 있는가.

-스물아홉 번째, 인색한 것이 있는가.

-삼십 번째,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른한 번째, 남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른두 번째, 「나」라는 견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것이든, 지금 수행을 잘하고 있다, 이런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른세 번째, 자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깨달음에 이르지 않았는데 깨달음하고 진배없다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서른네 번째, 도와 과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서른다섯 번째, 자기 자신이 부처님과 같은 선우가 될 자격이 있는가.

-서른여섯 번째, 어떠한 경우도 조금이라도 방일하는 때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는가.

-서른일곱 번째, 자신이 가는 것들에 대해서, 불법승 삼보에 대해서 믿음이 확고해졌는가.

-서른여덟 번째, 악을 짓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있는가,

-서른아홉 번째, 악을 짓는 것에 대해서 무서워하고 있는가. 악을 지은 상태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짓기 전에도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있느냐는 거라. 히리와 옷땁빠 라고 하는 겁니다.

-사십 번째, 도와 과에 이를 수 있는 담마를 많이 들을려고 하는가.

-마흔한 번째, 사띠가 완전해졌는가. 잠시라도 놓치는 법이 없이 사띠가 완전해졌는가. 놓친다는 것은 게으름부린다는 겁니다.

-마흔두 번째, 그 사띠가 지금 현재에 분명하게 일어나고 있는가 아닌가. 생각이나 아니면 다른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 있는 대상에 사띠가 머물러있느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마흔세 번째, 지혜가 성숙되고 있는가.

-마흔네 번째,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없이 번뇌가 떨어지는 것들을 경험했는가.

 

이게 「번뇌의 체크리스트」입니다.

 

처음에는 계(戒)부분으로 해서 정(定)으로 해서 그다음에 지혜(慧) 부분으로 쭉 넘어가면서 점점 더 여러분들이 생각하듯이 따라가기 힘든 것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지금 이 44가지 번뇌가 다 안 일어나져야만이 닙바나를 경험해집니다.

그런데 아직 닙바나를 경험하지 못했으면서 본인이 지금 수행 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삼매가 한시간 두시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뭘 그렇게 부러워들하고 있느냐는 거라. 뭘 그렇게 만족하고 있느냐는 거라.

 

아직은 두 번째 느낌도 관찰하지 못하는 상태인데, 그 두 번째 느낌들이 완전하게 관찰되어져야만이 평온한 상태로 넘어가질 건데.

평온한 상태에 이르지도 못했으면서, 평온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그거는 깨져버릴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리고 자극에 대해서 반응들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태인데 거기에 만족하지 말아라는 거라.

 

수행이 잘될 때는 ‘아, 내가 이마만큼 그래도 열심히 달려왔구나’하고 생각하고 빨리 자신의 상태를 체크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싶으면 빨리 그걸 놓아버리고 다시 1단계부터 자꾸 밟아나가도록 해서, 그래서 그게 속도가 빨라지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이 잘 돼나갈 때는 나중에는 이게 필요 없어져버립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보이는 단계부터 시작되도록 돼야 되지, 계속적으로 일단계부터 다시 또 밟고 올라가고, 다시 또 떨어지고, 다시 또 밟고 올라가고,

속도는 빨라질지 몰라도 나중에는 사띠가 자동적으로 돼나가면 이것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됩니다. 지금은 기쁨의 상태들이 일어나고 수행이 잘될 때는 다 필요 없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 버려야 될 것들을 집착하고 있으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수행을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질의응답]

-수행자 질문 : 생멸단계에서 그다음에 사라지는 단계로 넘어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라지는 단계가 방가냐나입니까? 그때는 공포심이 일어난다고 돼있는데 책에서는,

-스님 답변 : .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안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면 사라짐의 단계가 되면 그게 사라지는 정신적인 느낌만 계속적으로 보이거든요. 그러면 내가 이것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보면 두렵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두려움이 일어나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앞에서 느낌들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느낌들이. 앞에서는 대상을 관찰하기만 하면 계속적으로 고통스러운 느낌들만 일어나는 그걸 경험을 많이 했던 사람들은 두려움이 잘 안 일어나집니다.

그런데 그걸 많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백프로 그것이 일어나집니다.

 

-수행자 질문 : 그럼 바로 평온의 단계로 들어가질 수도 있네요? 냐나 단계에서.

-스님 답변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는 대부분은 일어나게 됩니다.

두려움이 안 일어나더라도 다른 작용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벗어날려고 하는 마음들이 일어나든지, 그래서 도와과를 이루겠다는 마음들이 일어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복기하는 단계가 일어나집니다. 자기 수행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수행을 해나가면서 그걸 다시 복기를 해나갑니다.

그런 단계들이 없이 바로 상카루뻭카냐나에 가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대부분들은 보면 이 단계들을 계속적으로 반복을 하게 됩니다. 어떨 때는 두려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복기하는 것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벗어날려고 하는 마음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계속적으로 이 단계들을 1단계부터 해가지고 2단계까지 계속적으로 반복을 하게 됩니다. 그런 단계로 이르르지, 그거 없이 바로 그냥 상카루뻭카 냐나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됐습니까? (예)

 

-수행자 질문 : 상카루뻭카 냐나와 그냥 멍하게 알아차림 하고 있는 것하고 차이는 뭡니까? 그냥 알아차림을 하는데 아무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다, 이걸

-스님 답변 : 멍하게 알아차림을 하고 있는 것은, 상카루뻭카 냐나에서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든 대상은 분명합니다. 대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