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2023년 까티나가사 법회 「제자가 준비됐을 때 스승은 나타난다」 (231118)

담마마-마까 2023. 11. 19. 20:46

https://youtu.be/k8oymnFlgAg?si=YIzz7iFDGrxnpGkp

(35분 이후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올해도 까티나 가사, 까티나 행사를 했는데, 오늘은 여러분들한테 법문할 제목이 「제자가 준비됐을 때 스승은 나타난다」 하는 제목으로 얘기하겠습니다.

부처님이 안 계시죠? 원래 부처님이 여러분들 스승이죠? 언제 부처님이 진정한 여러분 스승이 될까?

부처님이 진정한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봐요.

야아! 수다원 이상이 이렇게 많아? 언제 이렇게들 공부들을 했대?

원래 수다원 이상이 되면 "아, 부처님만이 오직 나이 유일한 스승이구나" 하고 판단을 내리고 더 이상 흔들림이 없이 나아가게 됩니다. 야! 우리 선원에 이렇게나 많아!

손 안든 사람들은 지금은 여러분들 스승은 누구라? 앞에 있는 스님들입니다. 스님들이 여러분들 스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이 여기서 와가지고 여러분들한테 미주알고주알 법을 설할 수 없으니까 부처님을 대신해서 여러분들한테 법을 전해주는 입장이 되는 겁니다. 대리인입니다. 하나님 대리인 같이 부처님 대리인 같이 여러분들에게 법을 설하게 됩니다.

 

내일 되면 스님은 또 담마와나 선원에 갑니다. 거기 가서 또 법문을 하겠죠. 그런데 담마와나 선원에도 많은 사람들이 담마와나 선원장 스님을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 여기 있는 빤냐와로 스님을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승을 자꾸 버스 갈아타듯이 갈아타기를 합니다. 이 스승한테 갔다가 또 저 스승한테 갔다가 그렇게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걸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한 스승 밑에서 꾸준하게 그분만을 스승으로서 여기면서 수다원에 이를 때까지 쭉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뭘까?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그럴까? 오늘 제목은 뭐라고 그랬어요?

(불자님들 : 「제자가 준비됐을 때 스승은 나타난다」)

예. 제자가 준비되야만이 스승은 나타난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제자가 준비가 안 되어서 그럴까? 아니면 스승이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못해서 그럴까? 둘 중에 하나겠지.

 

스승은 어떤 역할들을 갖춰야 될까? 경전에는 4가지를 얘기했습니다.

4가지가 갖춰져야만이 스승으로서의 자격이 있다 그럽니다.

첫 번째가 '까딴뉴(kataññu)'라고 해서 특히 오늘 같은 날 까티나 가사를 비롯해서 스님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여러분들이 보시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대부분 스님들은 거기에 대해서 '감사함'을 가지게 됩니다.

아, 재가자들 덕분에 그래도 스님들이 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곳과 먹을 것과 그리고 입을 것과 그다음에 필요한 물품들, 의약품들을 비롯한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받는구나 해서 재가자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게 '까딴뉴'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승은 어떠한 경우든지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인 것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들, 4가지 공양물들을 보시해주는 재가자들에 대해서 항상 감사한 마음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할 줄 모르면 그건 스승의 자격이 일단 없다고 봐야 되는 거죠.

 

우리 선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부터 와가지고 여러분들을 위해서 준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밥도 공양도 따뜻하게 해줄려고 그러고 먹을 것들 준비도 하고 사실은 여러분들도 그런 분들한테 고마움을 표해야 됩니다. 어제 준비한 사람 누구지? 또 안에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서 있는데 두 사람한테 박수 한번 쳐주세요. (불자님 일동 박수) 고생했어요. 해마다 그래도 까티나가 되면 꼭 와가지고 준비들을 하고 스님들 공양뿐 아니라 여러분들 공양까지 다 챙긴다고 고생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오늘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오고 해가지고 스님들한테 보시도 하고 또 법문 들을려고도 하고 그래서 여러분들한테도 고마운 마음들을 가지게 됩니다. 스스로에게 박수 한번 칩시다. (불자님 일동 박수)

고맙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앗타-숫디(attāsuddhi)'라고 그럽니다.

앗타숫디는 뭐냐면 앗따(attā)는 자기 자신이죠?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스승들은 대부분 그렇죠? 청정하게 잘 살죠! 그리고 앗타숫디라는 건 뭐냐면 마음이 청정한 것들을 얘기합니다. 어떠한 것에도 마음이 흔들림이 없이 마음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유지를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설혹 만약에 오늘 같은 날 여러분들이 안 왔다고 하더라도 스님들끼리 모여가지고 까티나를 해도 됩니다. 그리하더라도 마음이 흔들림이 없어야 됩니다.

법을 설할 때도 청중이 많든 적든 관계없이 내가 법을 설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출 것, 그거는 출가한 스님들이 계속 훈련받으면서 지녀야 되는 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그마만큼 마음이 외부적인 요인들이나 내부적인 요인들에 관계없이 마음이 항상 고요하게 청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사롭게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내 신도' 하게 되고 '나에게 보시 많이 하는 사람' 이렇게 편가르기를 자꾸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거는 스승의 자격이 없게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리숫디(pārisuddhi)'라고 그럽니다.

아까 앗타숫디 하고 다르게 빠리숫디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청정하게 해주는 것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그럽니다. “그냥 스님 보고만 있어도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도 이끌어 주는 겁니다. “스님을 보고 있으면 꼭 부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다 이끌어 주는 것들입니다. 꼭 법을 설하고 수행을 지도해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고 청정하게 있음으로 인해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끔 해주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만 있을 것 같으면 아무 법도 설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참 좋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지는 않거든. 뭔가 수행지도를 해줘야 되고 잘못된 것은 또 바로 잡아줘야 되고 또 부처님 가르침은 이런 것이다 하면서 살아가는 지표들을 제시를 해줘야 되고,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아, 이거는 나쁜 거고 이것은 선한 것들이다' 하는 것들을 판단해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주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불사 많이 있는 데는 가지마라" 그럽니다. 스님도 되도록이면 불사를 안 할려고 그럽니다. 밑에 땅이 있어도 아직 조건은 안되지만, 뭐 꾸띠라도 하나 놓으면 되긴 되겠지만 그게 싫어. 일이 많으면 괴로운 것은 여러분들입니다. 그걸 누가 지어야 되는데? 그래서 마음을 청정히 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잘 따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되지 일이 많은 것들이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좋긴 좋습디다. 뭘 하나씩 만드니까. 그렇죠. 오늘도 보니까 저기 경행대가 설치돼있습니다. 우리 선원에 없던 경행대가 설치되어서 스님도 이제 저기서 경행을 자주 하고 그럽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해보십시요. 방해받지 않고 딱 일자로 돼있기 때문에 그냥 경행만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있습니다. 경행대 보시한 사람 누구지?

(사회자 : 윗자야님 하고 루삐니님 입니다.)

두 분에게 고맙습니다. 하여튼 경행대가 설치돼 있는데 좋기는 좋은데 한편으로는 이러다가 뭘 자꾸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해서 두려운 생각도 들기는 해요. 인자 요만큼만 합시다이!

 

어쨌든 사람들이 수행하기 좀 더 편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도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뿐 아니라 여러분들의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져야 된다는 겁니다. 스승은 그걸 이끌어 줘야 되는 것이지 다른 것을 이끌어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상가하(saṅgaha)'라고 해서 어떤 의미냐 하면 상가의 공덕이라고 하는 것이 있죠? 상가 스님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쉽게 말하면 테라와다 교단이 성립이 돼있습니다.

테라와다 교단이라고 할 것 같으면 가끔씩은 사람들이 신비적인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은 대부분이 보면 그래도 아, 청정하게 잘 살아가는 스님들이 있고, 그것을 배워가서 직접 수행을 해서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 같이 깨달음에 이를려고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는 것들을 압니다. 그냥 한국 절같이 기도하고 매달리고 이런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노력해가지고 그길을 부처님 가신 길을 따라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사회적인 영향들입니다. 그게 스승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상가하(saṅgaha)'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를 지닙니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들이 그리고 불교에 미치는 영향들이 틀림없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의식 많이 하고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마음이 바뀌어나가고 자기 스스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될 때 그건 종교를 떠나서 이 사회가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다워지게 된다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스승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이 4가지가 갖춰지면은 적어도 스승으로서의 자격이 있다 하고 얘기하게 됩니다.

모르긴 해도 여기 있는 스님들은 다 그런 조건들을 갖췄을 겁니다. 그러면 그 조건들을 갖췄으면 그냥 그 스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면 됩니다. 이 스승, 저 스승 자꾸 옮겨 다닐 필요 없이. 그냥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데, 스승들이 그런 조건들을 갖췄는데, 그러면 여러분들은 왜 안 될까? 왜 그럴 것 같아요?

 

뭐가 부족해요 여러분들은?

첫 번째가 '바라밀(pāramī)'입니다.

과거부터 행해온 바라밀들이 그래도 많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런 자리에 와있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바른 법을 들을려고 그래도 노력들을 하게끔 되고 그럴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생기는 거고, 또 수행이 되든 안 되든 어쨌든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그 길을 갈려고 노력을 하게끔 됩니다. 그거는 바라밀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길을 갈려고 할 것 같으면 어쩔 수 없이 여러분들은 바라밀을 행해야 됩니다. 바라밀들이 행해지지 않으면 이 스승에서 저 스승으로 자꾸 옮겨 다니게 됩니다. 본인이 부족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스승이 부족한 것들만 자꾸 찾고 생각을 하게끔 됩니다. 실제로는 보면 자기 자신이 부족한 것들이 있습니다.

 

가끔씩 그럴 때가 있습니다. 가서 보면 계를 지킬려고 하는 것들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계를 지키는 바라밀들을 자꾸 쌓고 나서 수행을 할려고 해야 되는데 그거 필요 없대요. “가서 그냥 스님 법만 설해주십시요” 그럽니다. 법을 설하고 나면 그사람들은 마치고 나면 술 먹고 다 잊어버립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법을 설해달라니까 가서 설해주고 그랬는데 인제는 그런 데는 갈려고 안 해요. 의미가 없어지는 거라. 자신이 그 법을 듣고 그 법을 실천을 할 수 있게끔 돼야 되는데 실천은 안 하고 그냥 한 귀로 흘려버리고, 그리고 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마음이 청정하게 되지 않고 지혜가 일어나지 않는데, 계는 아예 안 지킬려고 그럽니다. 잠깐 그냥 스님 법문 듣고 마음이 좀 청정해지면 그것으로 그냥 족해 버릴려고만 합니다. 그거 어디다 쓸 거라 그거?

 

지계뿐 아니라 오늘 같은 보시하는 것들,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수행할려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 모든 바라밀들이 자꾸 성숙되도록 해야만이 스승을 믿고 따라가게끔 됩니다. 그 스승이 설혹 조금 수행력이 뒤지고 법을 전하는데 좀 미숙하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게 됩니다. 그 스승을 믿고 따르게끔 됩니다.

왜? 결국은 본인이 수행을 해야 되는 거고 본인이 바라밀을 쌓아야 되는 것이지 스승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자꾸 바라밀 쌓는 것들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 '무디따(muditā)'라고 하는 겁니다.

만날 바라밀만 쌓을 수 있는 조건은 안 되죠? 그러면 다른 사람이 바라밀을 쌓으면 그걸 기뻐할 수 있는 마음들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내가 바라밀을 쌓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쌓는 것에 대해서 ‘아, 참 잘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만약에 수행을 한다 그러면 ‘아, 참 잘한다. 그러면 내가 방해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기쁜 마음을 낼 수 있어야지 자꾸 그걸 트집 잡고 “아, 여기서 뭐 한다고 그래?” 이러면서 해버리면 안 된다는 거라. 그래서 마음에는 항상 기뻐하는 마음들을 가져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쁜 일 할 것 같으면 그걸 갖고 기뻐해서는 안 되겠지만, 착한 일 하고 좋은 일 하는데 기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뻐하는 마음들을 항상 가질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항상 스님이 강조하는 게 뭐죠? '멧따(mettā)' 입니다.

"자애가 없이는 어떠한 말도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쉽게 말하면 마음에서 선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말하고 행동하는 걸 중단하라는 거라. 왜? 자기 자신이 다치고 다른 사람이 다치기 때문에!

자애는 수행으로 이끄는 밑거름이 될 뿐 아니라 여러분들 삶에서 급작스러운 일들이 없이 평온하게 세상을 살다가 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다른 것은 못해도 수행은 못해도 괜찮아. 그런데 자애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항상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본인이 행복하고 괴로움이 없는 마음을 자꾸 지니도록 하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기를 바래야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앞에 세 개는 본인이 하는 것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들에 대해서 기뻐하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자애를 가지고, 본인이 스스로 바라밀을 행하고 하는 건데,

네 번째는 '깔르야나밋따(kalyāṇamitta)' 라고 해서 좋은 도반 좋은 선우의 조건을 갖추어라는 거라.

내 옆에 좋은 선우들이나 좋은 도반들이 있으면 좋겠죠? 그런데 본인이 좋은 도반이나 선우가 되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좋은 선우나 도반들이 여러분들 곁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자꾸 좋은 선우들이 될려고 해야 되지, 다른 좋은 선우들을 자꾸 가까이 할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같은 행사도 좋은 선우 좋은 도반들이 서로 모였기 때문에 이런 행사들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건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좋은 선우이고 좋은 도반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4가지 조건들이 갖추어지면 그런 사람은 수행을 해서 도와 과에 이를려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분들, 이 4가지 조건들을 갖춘 분들은 스승이 보이면 그냥 그 스승을 믿고 따라가게끔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 얘기했죠? 자신이 준비가 됐으면 스승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여러분 앞에 스승이 있는데도 스승인 줄을 모른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거 같이 어처구니 없는 일은 없다는 얘깁니다.

지금은 수다원에 이르기 전일 거 같으면 좋은 스승을 의지해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 삶이 바뀌어 나가고 조금이라도 더 지혜롭게 살아가게 되고 그래서 깨달음에 더 나아갈 수 있게끔 돼야 되는 것이지, 자꾸 이 스승 저 스승 바꾸어 나가고 본인의 마음에는 계속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자꾸 생겨난다고 할 것 같으면 의미가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선업의 조건들이 갖추어졌을 때 적어도 부처님이 나의 스승이 될 때까지는 출가제자라고 하는 스승을 의지해서 자꾸 나아갈려고 해야 됩니다. 이미 여러분들에게는 좋은 스승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스승을 믿고 여러분들이 나아갈 수 있는 조건들을 자꾸 갖추도록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더 얘기하겠습니다.

제자가 준비가 되면 여러분 앞에 스승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스승을 의지해서 결국에는 부처님이 스승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될 때까지 더욱 더 노력을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짯따로 담마 왓단띠 아유 완노 수캉 발랑"

(cattāro dhammā vaḍḍhanti, āyu vaṇṇo sukhaṁ balaṁ.)

모두가 담마따라 살아가면서 건강하고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