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오후 법문_담마와나선원 탁발법회(20240324)

담마마-마까 2024. 3. 26. 09:30

https://youtu.be/4vopo8NB2Aw?si=2DC_wrvRliniD9tJ

 

* 오후 법문_담마와나선원 탁발법회(20240324)

 

빤냐완따스님 법문 

우리 담마와나 선원은 세대가 그래도 젊은 세대들이 많잖아요?

제가 있는 성남에 있는 암자는 거기는 칠십오세, 75세 미만은 미성년자에요. 그래서 스님하고 어디 가기라도 하면 차를 같이 탈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노보살님은 76세부터서는 옆에 동승해도, 그것도 노보살님 혼자 태워서 모시고 갈 순 없어요. 항시 노보살님일지라도 같이 타야 돼요. 그래서 만 75세니까 요새에는 민원이 들어왔는데 스님, 80으로 올려주면 안돼요?” 뭐라드라? 좀 낮춰달라고, 낮춰달라고 민원이 들어왔는데 아직 결정은 안 났어요.

 

그래서 어찌 됐든 비구들은 계·율에 대해서 아주 사소한 거지만 뭐 이성에 대한 문제 예를 들자면 도덕적인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참 그 토대가 개념이 기본인식이 안 되어져있으면 그건 수행 못해요.

제가 태국에를 갔는데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갔는데 그 태국 방콕 시내에서 불교용품점에서 그 하나를 가져오고 싶어서 지불하고 가져올려는데, 그때 그분이 70대 후반으로 되어보이는 노보살님하고 손 터치가 됐어요. 기함을 해요 기함을.

그래서 내가 테라와다 율이라는 게 계율이라는 것이 저렇게 철저하게 교육되어져 있다는 걸 제가 그때 배웠죠.

 

저는 테라와다에 입문한지 출가한지는 여러 몇십년 됐지만 테라와다 입문해서 10년 지나서야 계율이 뭔지를 조금 알게 되고 테라와다가 뭔지를 알게 된 거에요. 테라와다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거는 20년쯤 지나니까 아, 그 테라와다 정신을 내가 이 안에 조금씩 싹이 트더라구요.

그런 의식들이 계율에 대한 의식, 테라와다의 그런 부처님의 보디삿다의 정신, 또 우리가 결국 궁극적으로는 열반을 실현해야 되는, 이 귀한 생에 태어나서 그런 의식들을 사무치게 가지고 있어야만이 이 험난한 세상에 속박되어져서 매몰되어져서 허송세월하지 않고 의미있게 이생을 마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오늘은 시간을 잘해야지. 제가 10분 하고, 떼짓사라 경주선원장 이사장스님이 10분 하고, 나머지는 또 오랜만에 올라오신 우리 빤냐와로 대장로스님께서 마무리를 해주실 거에요. 그래서 장로스님께서 우리들한테 미루셨는데 불자님들은 장로 큰스님의 법문을 마지막 순간까지 열반하시는 순간까지 새겨들으셔야 돼요.

우리 생에는 그런 법문을 듣거나 만나게 된 거를 그거를 가장 열심히 잘 새겨듣고 사무치게 듣는 것이 저에요. 옆에 있으면 한 귀절도 놓치지 않고 잘 새겨서 바로 육화가 돼야 되어서, 많은 것들이 처음 배웠던 것들이고 정리 안됐던 부분들이니까,

 

그래서 아까 법문하실 때도 육체에 대한 말씀하셨잖아요. 현대에 복잡한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전되어 있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딱 단순하게 안·····의에서 감각되어지는 모든 것들을 알아차림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가 없고 거기서 지혜를 얻어서 열반으로 갈 수가 없어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오온을 아주 특화해서 그 심리작용들을 잘 분석해서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이해해서 보는 그런 수행들이 필요하죠. 그래서 오온이나 육처나 다 똑같은 성질이긴 한데 아까 말씀하셨듯이 ", , " 할 때 나는 말이에요, 나는 딱 듣는 순간에 내가 마음만 이 지혜가 고요하면 정확하게 소리, 그걸 정확하게 판단해서 들어요. 들릴 때 듣고 안 들릴 때 안 듣고.

 

내가 여기 들어오는 순간에 뭘 봤냐 하면 여기 화분에 꽃을 봤거든요.

두 가지 현상을 봤어요, 짧은 순간인데도. 짧은 순간에 두 가지 현상의 꽃을 봤는데 순간적으로 뭘 봤느냐면 , 노랗네. 노랗고 화사하니 이쁘네라는 게 순간적으로 딱 들어왔어요.

이게 딴 생각하다 들어오면 요 모양이 돼. 다시 돌아서서 보는데 안 보여요 그게. 아주 찰나 지간에. 아주 찰나 지간에 마음이 알아차림과 알아차림도 의도적으로 알아차림 할려면 그런 것들이 구별되어서 잘 안돼요.

 

그런데 어느 정도 익어지고 지혜가 성숙되어져 있으면 자동으로 알아서 현상이 그대로 접촉되어서 흘러가는 것들이 보여요. 그러면 저기에 아름다움이나 노랗다 빨갛다 꽃이다 라고 하는 그런 개념이 들어가지 않아요. 노랗다 아름답다 하면 거기에는 다 반드시 거기에는 '갈애, 딴하'라고 하잖아요.

 

중생이 가장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게 뭐에요? 갈애라고 그러죠. 갈애!

갈애- 감각적인 욕망의 대상을 찾아서 여기저기서 헤매다니는 거!

그래서 우리는 보면은 끊임없이 듣고 보고 말하고 냄새맡는 데서 이 세상은 다 안·····의 안에 다 들어와 있어요. 그걸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것을 떠나서 어디서 수행을, 그러니까 법당은 여기(머리쪽)가 법당인 거죠.

그래서 이 안에서, 그런데 문제는 그냥 단순히 아는 거하고 얼마나 갈애가 달라붙는지, 이 스님의 요새 주제는 그거에요.

 

지금 여기 법문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요, 오늘 올릴려다가 못 올렸어요. 주제가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고 조금 작은 주제가 아니에요. 제목은 그냥 '갈애와 집착'이라고 할려다가 그냥 짧게 애착이라고 제목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처님께서 고통의 근원이 갈애라고 했는데 갈애가 어떻게 달라붙어서 그걸 소멸해서 열반에 이르셨는가? 나는 그거를 무시무시하게 봤어요.

여기 앞부분만 한번 읽어드릴게요. 이걸 미리 일곱 차례나 봤는 거니까 아직 마무리 3분의 1밖에 안됐어요.

 

애착에 대하여

요즘 이 승의 이 소승의 주요 관심사는 고통 불만족의 근원인 갈애와 집착에 대한 추적 관찰 사유입니다. 그 찰거머리 같은 애착을 심도있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봄으로써 그 실체를 다시 한번 파악하여 그 사슬의 길을 끊어내는 일입니다.

안으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밀착시켜 관찰하고 밖으로는 고민 상담자와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인간의 심연에 달라붙어 있는 애착이 인간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조명해보는 일입니다.

출가(... ...) 출가해 지금까지 오온에 대한 관찰수행을 통해 고통 불만족의 심연을 끊임없이 들여다보았고 그로 말미암아 그토록 들끓던 젊은 날의 마음이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마침내 평정에 이르렀다고 확신했었습니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10년 전 여실히 보았다 분명히 이해했다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번뇌도 다 사라지고 화도 안나고 욕심도 안내는 이건 뭐지?

 

이렇게 되면 수행 많이 한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번뇌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확신했었는데 근데 조건이 딱 되니까 팍 치고 올라와요. 감각적인 데 탐닉하게 되고, 그래도 여러분들하고 차원이 틀리겠죠. 그래서 이 세상에는 확신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저는 깨달았어요.

저렇게 방심하면 안돼요.

 

지금 이 순간에도 법문 들을 때, 밥 먹을 때, 오며 갈 때, 오늘 제가 수서에서 왔는데요, 서울 공항에서 수서에서 내려서 그다음에 요기 굴다리 건너오잖아요? , 오늘따라 횡단보도가 착착 파란불이고 착착 지하철이 충무로에서 갈아탔죠. 착착 오는데요 수서에서 바로 오고 그래가지고 내가 시간을 너무 임박하게 빡빡하게 왔는데 여유있게 왔어요. 그런데 딱 여기까지 횡단보도 마지막 건너는 순간 불이 파란불이 탁 들어오더라구요. ‘, 오늘...’ 그러면 남들은 뭐라 그러겠어요? 남들은 운수 좋은날이라고 그러잖아요. 딱 거기에 바로 집착이 들어가요.

 

수행은 뭐냐하면 그런 걸 봐야해요. 바로 그안에 갈애라고 하는 것, 집착이라고 하는 것, 집착은 뭐냐하면 취착이라고 하잖아요. 아주 끊임없이 갈애를 일으키면서 그런 거에 대해서 결국은 자기 소유화해서 끊임없이 집착하는 거, 그런 운 좋은 현상들 그런 것들은 수행자들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에요.

중요한 거는 뭐냐 하면 외부 현상이 우리를 괴롭히는 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부처님 당시 때 난다라고 하는 수행자가 있었는데요, 난다가 부처님을 너무나 존경해서 젊은 청춘을 다 부처님께 공양올리는데 헌신했어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어느날 문득 딱 보니 지금까지는 법문을 안 해주셨는데 난다가 드디어 때가 됐구나. 이제 내가 법을 설하면 저 난다는 법을 이해하리라.

그래서 마지막 그날 공양을 받으시고 법을 설하셨는데 바로 그자리에서 수다원을 성취했어요. 수다원을 성취하고 그날 부처님이 공양을 받았으니까 부처님 바리때를 들고 제자들하고 부처님을 기원정사까지 모셔다드리고 오는 길에, 오는 길에 어떻게 됐냐면 사냥꾼이 쏜 화살에 정통으로 맞아서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놀래서 부처님, 어떻게 이렇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이렇게 평생을 산 사람이 이런 과보를 받냐고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그 화살 쏜 사람은 전생에 자기하고 원수졌대요. 난다가 전생에 악업을 지어가지고 다음생에 잘못 쏜 화살이 자기한테 들어온 거에요. 난다한테.

 

그러니까 수다원 성자가 화살을 맞고 쓰러졌는데 부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시각으로 보시는 거에요. 복을 그만치 지었으면 아주 행복하게 죽어야 되고, 근데 불교는 그런 거하고 관계가 없어요. 사리뿟따, 마하목갈라나, 다 비참하게 돌아가셨어요. 불교를 잘못 이해하시면 안돼요.

중요한 거는 뭐냐면 화살 맞아 죽은 게 문제가 아니고 내 법문을 들은 자라면 수다원을 성취한 자라면 임종의 시간 때 그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에요.

 

어떤 삶에 대한 집착, 괴로움, 원한, 누가 이렇게 오늘 기분좋게 깨달았다고 좋아했더니 누가 화살로써 내 생을 마감하는구나, 뭐 원망 저주가 있을 수가 있잖아요. 살고 싶은 욕망도 있을 수가 있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때 인과에 의해서 생겨난 것은 사라지게 되어져 있구요,

그러면 난다는 어떻게 했을거 같애요? 집중했어요. 자기 알아차림으로 마지막 호흡에 집중하고 이생을 마감한 거에요. 그러면 다음생에 잘하면 아라한으로서 다음생에 태어남이 없을지도 몰라요.

 

중요한 것은 원수가 아무리 총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 달려들지라도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만약에 그런 원한 가진 게 있으면 다음에 비참한 곳에 태어나요. 그러나 내가 지금 해야 될 여러분들이 해야 될 수행자가 해야 될 일은 뭐냐면 그 마음이 악한 쪽으로 향하고 있느냐 수행쪽으로 향하고 있느냐에요.

중요한 것은 수행! 알아차림으로써 내 몸과 마음이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이 좋은 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고,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알아차림이에요.

 

어디에다가 알아차리면 좋을까요? 호흡!

딱 호흡이라는 법은 없어요. 마지막에 남아있는 갈애에 대한 그런 거에 대한 욕망을 무엇이든 통찰력을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에 발휘를 해야 해요.

그래야 다음 생이 다시 태어남이 없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할게요.

 

 

떼짓사라스님 법문 14:48 이후부터

반갑습니다.

미얀마는 몇번 다녀왔는데 태국에는 이번에 처음 다녀왔습니다. 여러 불자님들 덕분에 이번에 잘 다녀올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미얀마와 태국이 같은 테라와다 국가이긴 하는데 방식이 또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수행처에 있다가 일반 사원에 있어보기도 처음이고, 그런데 가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여러 가지를 느꼈고, 태국에도 가서 보니까 장례 사원이 존재를 하더라구요. 화장터도 있고 나중에 바라보니까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죽음에 이르기까지 불교하고 인연이 닿는 거에요. 태어나는 걸 보니까 갓난 아기를 데리고 안고 와가지고 스님한테 "태어났습니다" 하면 스님이 그 아기를 위해서 그 부모와 아기를 위해서 찬팅을 해주더라구요.

이게 불교구나, 또 그러한 모습을 처음 봤잖아요. 그러한 모습도 보니까 한국 테라와다도 수행도 좋지만 아, 이것도 필요하구나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스님들은 대부분 받기만 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보니까 사원에서는 재가자들에게 뭔가 더 줄려고 하고, 또 재가자들은 스님께 뭘 해줄라고 서로가 해요. 상생이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스님들을 믿고, 또 스님들은 계율을 잘 지켜야 되죠.

그리고 또 태국에 가면서 어떤 한 수행자님이 가사 보시를 한다고 보시금을 좀 넣어줬어요. 그래서 빤냐왐사 스님하고 가사를 구입을 하려고 여기저기 좀, 많지 않더라구요. 미얀마 같이 사원 옆에 있고 하는 그런 불교용품 가게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물어서 갔는데 시장에 갔어요.

 

시장에 갔는데 보통 우리가 가면 사람들 하고 부딪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 가니까 길이 만들어지더라구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데도 그 가운데 길이 쫙, 몇명이 아니라 길이 쫙 갈라지더라구요. 그거 보고 아, 불자들이 계율을 아는구나, 스님들의 계율을 지키기 위해서 비켜주는구나. 그런데 되도록이면 안 가는 게 낫겠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가사를 구매를 해야 되는 입장이었고.

또 전철을 타게 됐는데 전철을 탔는데 3분의 1 정도가, 그러니까 중간에 탔잖아요. 3분의 1 정도가 다 일어서는 거에요. 스님들 자리에 앉으시라고.

그런 걸 보고 아, 이게 불교국가 맞긴 맞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쉐우민에 있다 보니까 거기는 행사는 아니지만 신심에 의해서 탁발공양을 스님들께 올리잖아요. 거기는 줄도 많이 서고 하는데, 이번에 가니까 집집마다 다 나온 게 아니라 한집 가다보면 한참 가다가 또 한집 나오고, 또 한참 가다보면 또 한집 나오고, 탁발을 올리시는 분들이.

그러다가 그분들이 탁발을 올리신 분들이 절에 와요. 사원에 와요. 사원에 와가지고 스님들이 한 여덟시쯤 되면 아침 공양을 합니다. 아침 공양을 하는데 공양을 이쪽에서 다른 쪽에서 찬팅 마치고 공양을 합니다. 그리고 출근을 해요. 그리고 탁발을 못 올리실 분들은 사원에 음식을 가지고 와가지고 그렇게 공양을 또 올려요.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 한국 테라와다도 보니까 비교를 한 건 아니지만 지켜봤죠. 잘하고 있습니다. 신심도 있어지고 믿음이 있어지고 또 수행력도 좋아지고 그런 부분이 있고,

그리고 또 법회도 참 좋긴 한데 찬팅을 하는 거라든가 경전독송 하는 것도 그것도 수행자님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리고 또 경전 독송을 거기서는 좀 외우지는 못했습니다. 경전내용이 있는데 태국어로 돼있다보니까 아쉬운 거는 며칠 했는데 좀 몇가지 들으면 배우기는 해놔야지요. 나중에 법회되면 4월달 봐서 4월달부터라든지 해서, 짧게라도 한가지라도 경전독송을 할려고 합니다. 같이 수행자님들하고.

어쨌거나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