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4vopo8NB2Aw?si=2DC_wrvRliniD9tJ
* 수행문답_담마와나선원 탁발법회(20240324)
【빤냐와로 큰스님과 수행문답】 22:20 이후부터
Q 수행자 질문 : 위빳사나 수행에서 경행을 할 때 보면 그냥 일반적인 자연스러운 속도로 해주는 게 좋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는 천천히 할 때 오히려 그게 더 자세히 보이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게 잘 보이고 하거든요.
A 빤냐와로 큰스님 답변 : 어떻게 보여요? 천천히 할 때?
Q : 천천히 할 때는 발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떨어지고 가벼움이 계속 커지고 그리고 다시 무거움이 커지고 닿고 이런 것들이 순간 순간 다 보이거든요.
A : 실제 가벼워지는 거야? 아니면 그냥 개념상으로 가벼워지는 거야? 발이 들어올려질 때?
Q : 실제 가벼워지는데요.
A : 실제 가벼워진다, 그런데 가볍고 무겁고는 개념이라 이! 그거 실재하는 거 아니야.
Q : 네. 말을 그렇게 하는 거고 느낌만 변합니다.
A : 가벼운 게 변하는 걸 가볍다고 느끼는 거라? 아니면 그냥 가볍게 쑤욱 들려지는 거라?
Q : 가볍게 쑤욱 들려지는데요.
A : 개념입니다. 자꾸 느리게 하면 그렇게 개념화가 되기 쉽기 때문에, 가벼워지는 거는 맞는데 그걸 내가 개념화시켜가지고 가볍다고 알고 느끼게 되는 거라.
가볍다고 느끼는 순간 발을 들 때는 가벼움만 있지 변하는 게 안 보여. 내릴 때는 무거운 것만 있지 이게 변하는 게 안 보이는 거라. 그걸 하지 말아라는 거라.
Q : 그런데 천천히 할 때는 이게 느낌이 쭉 이어지는 것 같지 않고 딱 딱 딱 끊어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데 그것도 개념입니까?
A : 아직은 그래요. 조금 더 지나면 가벼운 게 실제 왜 이게 가벼운 건가 하는 걸 이해를 하게끔 돼. 이게 같은 게 아닌데 가벼워지는 게 가벼워지는 것이 보여야 됩니다. 내릴 때 무거운 것도 마찬가지, 어떨 때는 내릴 때 무거운 것이 아니고 가볍다고 느껴지기도 하거든.
그리하더라도 실재하는 걸 보면 바뀌어가면서 느낌들이 와진다고.
천천히 할려면 그 상태가 됐을 때 천천히 해야 되는 거지, 그렇지 않고 지금 평균적으로 걷는 것보다 천천히 해버릴 것 같으면 본인도 몰라. 개념화시켜가지고 본인은 집중한다고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위빳사나 수행하는 것이 아니야. 그냥 대상에 몰입돼가지고 자기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거지.
Q : 그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건가요?
A : 완전히 다 만들어지는 건 아니겠지. 가벼우니까 가볍다고 하는 건데 그냥 가벼움만 있어가지고는 안된다는 얘기라.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천천히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라. 편안하게 그냥,
차라리 움직임을 보는 것이, 평상시 걸음에서 움직임을 보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되는 거라. 움직임을 볼 것 같으면 발이 들어올려지고 내려가는 것은 알 거 아니라? 들어올려질 때 나아간다 소리는 안 할 거 아니라.
그거라도 볼 것 같으면 마음이 가볍게 되면서 대상에 일치시켜나가는 훈련들을 하는데, 천천히 해버릴 것 같으면 니가 자꾸 만들잖아. 그러면 안된다는 거라.
Q : 그래서 편하게
A : 마음은 편할지는 몰라도 이거는 오히려 독이 되는 거라. 됐어요?
Q : 네. 됐습니다.
Q 수행자 질문 : 스님, 발이 내려지고 뒤에서 저절로 들어지는 것도 같이 느껴지거든요.
A 빤냐와로 큰스님 답변 : 어느 발이? 뒷발이?
Q : 예. 뒷발이
A : 그러면 안 돼.
Q : 아, 그래요?
A : 몸이 완전하게 착 착지가 안 돼있는데 뒷발이 들려버리는 거라. 그거는 본인이 신경써야지. 두 개가(두 발이) 동시에 되면 안 돼. 일단은 발을 디디고 억지로라도, 그러고 나서 뒷발을 들려고 해서 몸무게를 이쪽으로 이동한다 하고 알아차리고 그다음에 뒷발이 들리고.
Q : 그러면 빨리하면 잘 안되는데...
A : 그래서 빨리할 때는 모든 동작을 다 볼 수가 없으니까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하는 것만 보라는 거라.
Q : 아, 빨리할 때는
A : 빨리하는 게 아니고 일반적인 걸음을 걸을 때는
Q : 헷갈렸어요.
A : 걸을 때는 두 개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틀림 없거든요. 닿을 때 뒷발은 들려지는데 하나는 포기를 해야 되는 거라. 마음은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Q 수행자 질문 : 스님 그리고 명칭을 붙이는 거에도 그렇게 계속 명칭을 붙여야겠다 이런 마음도 크게 내지 않는 게 좋은 건가요?
A 빤냐와로 큰스님 답변 : 자네 상태에서는 지금은 붙여라.
Q : 지금은 붙여요?
A : 안 그러면 달아나버리게 돼.
명칭을 붙이지 않으면 대부분은 마음은 거기에 안 머뭅니다. 그래서 처음 수행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수행이 될 때까지는 명칭을 붙이는 게 좋습니다.
스님은 명칭 붙이는 걸 되게 싫어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거는 수행하는 요령을 어느 정도 알고 나서 하는 사람들이고, 이분 같은 경우에는 억지로 지금 하고 있거든. 보이지? 억지로 하는 게. 억지로 할 경우에는 무조건 (명칭을) 갖다 붙여야 돼.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수행하는 것조차도 안 해. 너무 뭐라 했나?
그래서 명칭은 평상시에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알아차려지는 사람들은 일부러 명칭을 붙이지 말고, 좌선할 때는 몸과 마음이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요해지고 나면 대상이 일어나는 걸 보면 돼요.
그러고 나서 좀 깊이 들어갈 때 그때 명칭을 붙여도 되는데,
그렇지 않고 일상생활은 그냥 다 무시해버리고 놓쳐버리고 수행할 시간만 가지고 좌선, 경행을 한다 그러면 무조건 붙여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일상생활의 패턴들을 그냥 그대로 가져와서 습관지우고 다 합니다.
Q 수행자 질문 : 저는 초보인데 좌선하고 와선이 있잖아요. 저도 와선이 좀 더 맞는 거 같은데, 그건 어떤 정해진 그런 게 있나요?
A 빤냐와로 큰스님 답변 : 없어요. 와선을 지금 어떻게 하고 있어요?
Q : 누워서 관찰하고
A :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것을?
Q : 네.
A : 그런데 손을 대고 하고 있어요?
Q : 아니요.
A : 안 대고? 그러면 느낌을 보는 게 아니고 그냥 불러지고 꺼지고 하는 것만 보고 있는 거라요?
Q : 네. 초보라서 망상이 떠오를 때마다 계속 ‘자애 자애’를 떠올리고 그러면서 다시 정신이 돌아오는 게 ...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래서 와선도 해보고 좌선도 해봤는데 좌선은 얼마 안돼서 그런지 훨씬 와선이 뭔가 집중도 잘되고 그래서
A : 잠에 떨어지지는 않아요? 와선에서?
Q : 그런데 스님 말씀 중에 잠에 떨어져서 초반에 잠에 떨어지고 나중에 수행하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 말씀하시는 게 있으셔서, 초반에 살짝 잠에 떨어졌다가 나중에는 그냥 맑더라구요. 그때 뭔가 어디에 붕 어디에 가있는 느낌이 들고, 삼매인지 뭔지 저는 초보자이니까 저는 모르겠는데 저는 제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 같지 않고 뭔가 그런 게 되게 많이 와선 때 훨씬 많이 와닿더라구요.
A : 어디 가 있는데?
Q : 아주 느낌이 현실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제가 어디 아주 우주공간 같이 그런데
A : 막 상상을 불어넣어서? 지금 꿈 깨 이!
그건 삼매하고 전혀 관계없는 거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한순간 즐겼다 하고 그냥 돌아오고, 되도록이면 와선을 할 때는 손바닥을 살큼 (배 위에) 올려주고 하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지금 상태에서 잠에 많이 떨어지는 법이 없다 할 것 같으면 느낌을 보라고!
불러오고 꺼지는 것보다는 (호흡이) 편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느낌을 보는 것이 와선에서 훨씬 이익입니다. 금방 변하는 게 보여요. 손은 (배에) 살큼 올려놔놓고, 왜 그러냐하면 호흡이 아주 자연스럽거든 지금은, 와선에서는.
그런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보다는 느낌을 볼 것 같으면 느낌도 여러 가지가 보여진다고. 그러면 게으름에 빠지는 것도 좀 덜하고 잠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덜하고 그리고 느낌이 분명하게 보인다고. 그런 이익이 있으니까,
그대신에 손을 안 올리면 그걸 잘 몰라. 그렇게 손을 살큼 올리고 그렇게 느낌의 변화를 자꾸 볼려고 하고, 그러면 수행이 좀 더 빨리 진척이 될 거라.
Q : 그러면 방법이 꼭 좌선이 맞는 방법이 아니고 저한테 맞는 방법을 맞게끔
A : 관계없어요. 그거는 관계없고, 그대신에 만날 누워만 있을려고 하면 안되는 거고, 그것만 안 하고 와선을 좀 했으면 경행을 반드시 하라고. 지금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꾸 와선을 하게 되면 느낌을 보다가도 다시 또 움직임을 보게 되요. 그러면 계속 고정되게 돼버리거든. 그러면 천상으로 나가요. 구름 타고 간다고. 그렇게 하면 안되니까 어느 정도 하고 나면 경행을 반드시 해야 돼요.
Q : 구름 타고 간다는 게 잔다는 건가요?
A : 오늘 본인이 얘기한 거. 그거는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 그리하지 마요.
Q 수행자 질문 : 스님, 전에 스님께서 법문하신 것 중에 거기서 설명을 안 하시고 "위목카(vimokkha)하고 위뭇띠(vimutti)가 다른 점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빨리어를 모르니까 그 차이점이 궁금해서
A 빤냐와로 큰스님 답변 : 본인이 찾아봐봐. 그거는 수행에서 찾아보라는 거지.
어느 정도 삼매를 경험하고 나서, 어느 정도 삼매를 이해하고 나면 그 부분이 보여요. 한번 해봐.
Q : 스님, 수행이 다 고요해지고 와찌상카라 까야, 몸은 몸 호흡은 처음에는 외적인 호흡이라면 나중에는 이 몸 안에서 하다가 그 호흡이 굉장히 미세해서 들숨인지 날숨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내면에서 일어나는 거를 느끼고,
그다음에 어느 순간에 그냥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 같으면서 느낌은 있어요.
느낌이 어떤 느낌이 있느냐 하면 그냥 일종의 에너지들이 에너지의 흐름 같은 느낌이 온 몸으로
A : 그게 상카라라고.
Q : 아, 그게 상카라에요? 그것까지 끊어져야 된다는 거에요?
A : 아니요. 상카라는 끊어질 수가 없는 거고, 그대신에 상카라가 폭발을 하고 대상이 선명하게 보일려면 그 느낌을 보든 뭘 보든지 간에, 삼매를 체험했든 어쨌든 간에 망상이 딱 끊어지고 나면 그게 분명하게 보이고 확 폭발하는 것처럼 보여진다고.
Q : 근데 그 알아차림이 더욱 더 그렇게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A : 그게 좋은 거라고. 망상이 엷어지고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선명하게 보인다고.
Q : 아, 숙제네요.
A : 그럼. 평생 해야 되는 숙제지. 만약에 일부러라도 차에 확 뛰어들어봐봐. 그럼 확 보일테니까. 그렇다고 실제로 뛰어들진 말고. 그 정도로 이 순간이 아니면 없다고 마음을 먹고 해봐요.
Q : 스님께서 상카라우뻭카 정도에 가면 열반을 체험하기 위해서 어떤 서원을 세워서 열반의 상태를 5분 10분 이렇게 늘리도록 하라고 그러셨잖아요. 그 서원조차 세우는 것이 혹시 욕심에서 뭔가를 체험할려고 하는 뭔가 그런 생각 때문에 감히 그런 마음을 내기가 힘든
A : 욕심을 내는 게 아니고, 쉽게 말하면 내가 해탈을 체험하고 싶다 이렇게 서원을 내고 하는 것은 그러기 위한 준비단계에서 어느 정도 형성이 됐을 때 그게 가능한 거고, 그러면 그거는 내도 괜찮아요. 그거는 냈을 때는, 왜 그러냐 하면 수행을 하다보면 대상이 희미해질 때가 있거든. 그리고 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걸 받쳐주는 것이 그런 서원의 힘이라. 그래서 그거는 해주는 것은 괜찮아요.
Q : 갑자기 숨에 진폭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때 그 마음도 없어지면서 훅 진공상태에 있다는 그런 순간적으로 그런 경험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다가 다시 알아차림이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이 오면서 단계가 내려가는 느낌, 처음보다
A : 떨어지는 거라. 그게.
Q : 그래서 다시 올라가고 그런 거를 한 수행 시간에 몇번씩 체험하는 것이 옳은 가요? 혹은
A : 많이 체험해보는 것은 좋기는 좋은데, 자꾸 떨어지는 것은 안 좋아.
Q : 그런 상태를 계속
A : 오롯한 상태에서 그게 쭉 조금 이어져야 되는 것이지, 다시 또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숨으로 왔다는 것은 다시 돌아갔다는 얘기라.
Q : 찰나적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고 보통 한 2~3분 4분 5분 가고, 더
A : 한시간이면 한시간 동안 계속 되도록 하는 게 좋고
Q : 근데 그게 아직까지는 서툴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생멸을 보다가 멸을 보다가 이렇게 쭉 올라가다가 그런 상태에 갔다가 몇분 정도 있다가 다시 내려오는 게 느껴지거든요.
A : 내가 그랬잖아. 안 죽으니까 그냥 하라고. 두려움이 일어나면 안 돼.
대부분 사람들이 그래요. 그냥 오롯하게 대상만 보이고 있을 거 같으면 마음이 뭘 해야 될지를 몰라요. 방황을 해버리는 거라. 그러면 거기서 좀 있다가 다시 떨어지는 거라. 괜찮아. 관계 없으니까. 보고 있어요.
Q : 마음을 찾지는 않는데 찾지 않는다기보다는 그런 상태에 있다가 다시 마음이 다시 작용하는 것은 보게 됩니다.
A : 보면 되요. 다시 작용하는 걸 알면서 왜 자꾸 거기서 머뭇거려? 그냥 냅두고 있지. 그냥 그대로 두라고. 마음이 고정되어 있으면 고정되어 있는 대로 고정되어 있다고만 알아차리면 돼.
그리고 그걸 그렇게 오롯하게 봐야만이 거기에서 폭발하는 것들이 보여져요.
그럴려면 거기에서 다시 또 돌아와버리면 안돼.
그렇게 자꾸 반복되면, 물론 그 속도는 조금씩 빨라지겠지만, 진행되는 속도는,
계속적으로 반복을 하면 나중에는 싫증이 나게끔 되어서 수행을 안 할려고 하는 마음이 커지는 거라.
Q : 그러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가 이것을 뭘 하겠다 뭐 하겠다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자기 스스로가 마음 그런 상태에 있다가 또 내려가는 상태로 보니까, 이것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되는 건지, 뭔가를
A :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두고 그냥 그대로 오롯하게 사띠만 할려고 자꾸 해야 돼요. 설혹 떨어질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마음을 자꾸 먹고 사띠만 할려고 해야만이 거기서 오롯하게 붙잡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떨어진다고.
어쩔 수 없어 지금은. 그런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 전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생존욕구가 집중하는 힘보다 커. 그래서 그것만 나중에 조절이 되면 괜찮아요.
또 질문 있는 사람?
오늘 처음 오신 분? 질문?
Q 수행자 질문 : 저는 화가 되게 많던 사람인데 지금은 위빳사나 수행을 좀 하면서 화가 일어나기 한참 전에 자극이 있으면 그 자극되는 마음이 흔들리는 동요가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거기에 계속 덕지덕지 붙으면서 그것들을 밀어내는 그런 느낌이 보이고,
거기서 그때되면 그때대로 아, 그런 마음이 있어서 일어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조금 그런 것들이 보이니까 실제로는 밖에 화내는 것은 거의 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보는 화는 더 많아진 거 같아요.
그리고 욕심 탐심 쪽으로 보면은 탐심 쪽에서는 계속 뭔가 같이 있는 것같이, 그 화에서 봤던 것처럼 처음 시작하는 그런 동요시키는 것은 뭔가 잘 안보이거든요.
A 빤냐와로 큰스님 답변 : 그렇지.
Q : 그게 제가 수행을 이쪽 방향으로만 하고 있어서 잘못된 건지 아니면 어떻게 좀 나아갈 수 있는지 하는 것들을 모르겠습니다.
A : 지금 수행을 어떻게 하고 있는데?
Q : 호흡을 관찰하는 수행 쪽으로 오래 있었고, 한 오년 전쯤에 꼬살라 사야도 책을 보고 그때부터 마음을 보는 쪽으로 하고 있습니다.
A : 그래요. 성냄하고 탐욕하고 부분은 물론 일상생활 하면서 조건을 안 만드는 것이 가장 좋기는 좋지. 그렇다고 그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 언제든지 그 조건만 생겨나면 다시 일어나게 돼있으니까.
그런데 본인은 탐욕하고 성냄이 일어나면 그거 일어나는 거는 알죠?
Q : 예. 압니다.
A : 심념처를 했으면 그거 일어나는 줄은 알 거라고 봅니다. 일어나는 원인은 알고 있어요? 밖에서 찾지 말고.
Q : 예. 성냄 쪽은 어느 정도 처음 일어나는 것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탐욕 쪽은 그냥 같이 있다가 항상 같이 있다라는 느낌이 와서
A : 그럼 원인을 먼저 알면은, 성냄은 예를 들어보면 성내는 원인이 있을 거 아니라. 그럼 그게 원인으로 해서 일어나면 성냄이라고 알아차릴 거 아니라. 그럼 성냄이 가라앉아요. 그럼 돼요.
그거는 그렇게 반복하는 수밖에 없어요. 원인을 알아채면 일어난 것은 금방 가라앉아요. 그러면 그렇게 계속 수행을 해나가면 되요. 단지 원인을 모르면 문제가 되는 거고.
Q : 성냄 쪽은 약간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종을 땡 치면 처음 땡 치는 순간 아무리 작은 소리로 약하게 쳐도 치기 전과 친 다음에 확실히 보이는 것처럼, 성냄에서는 그것 때문에 자극되는 마음이 흐르는 게 명확히 보이는데, 탐심 쪽은 종 쳐갖고 그냥 은은하게 퍼지는 그런 상태로 그게 약하면 거의 잘 안 보여서, 그냥 마음이 정말 힘이 좋을 때만 간혹 보이고, 그래서 탐심에 많이 젖어있다라는 그런 느낌이 계속 들거든요.
A : 탐심이 많을 수밖에 없어.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리하더라도 그걸 일상생활에서 자꾸 잠재우는 반대적인 작용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서 남한테 자꾸 베풀려고 하고 져줄려고 하고 그렇게 자꾸 노력을 해봐요.
그러면 탐심이 일어나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사소한 것들이라. 사소한 것들로 폭발을 하기 때문에 그 사소한 게 보여지는 거라.
마음이 어느 정도 고요한 상태가 돼있지 않으면 탐심은 모릅니다. 그 생활 자체에 젖어있기 때문에. 그러면 마음이 반대적인 작용으로써 베풀고 고요해지고 하는 상태가 돼있지 않으면 발견을 못하는 거라 원인을. 그러니까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만들어야 돼요.
탐심도 탐심의 원인이 사소한 게 뭐였는지 아는 게 보이도록 자꾸 만들어야 돼요.
성냄은 자애로써 해결할 수가 있는 거고, 또 (질문자 본인은) 성냄이 그렇게 많은 성향은 아니라. 성냄이 많은 성향은 아니기 때문에 성냄은 금방 관찰하기가 수월한데, 탐심은 그거하고는 틀린다고.
왜 그러냐면 성냄이 자아하고 결합하는 게 많겠어? 탐심이 자아하고 결합하는 게 많겠어요? 탐심이 훨씬 많다는 거라. 자아하고 결합이 되면 그걸 분리하기가 힘들어져 버리는 거라. 그래서 자꾸 자신을 내려놓고 베풀고 하는 훈련들을 해주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Q : 스님, 고맙습니다.
A : 쉐우민에서도 그렇게 얘기할 거라. 그 자체가 나하고 아니면 무명하고 결합하는 걸 자꾸 분리하라고 얘기할 거라. 이게 원인을 찾기 위한 훈련이 되는 거라. 그렇게 한번 해봐요.
또?
Q 수행자 질문 : 저는 수행에 관련된 질문이 아니라서
A 빤냐와로 큰스님 답변 : 괜찮아요. 해봐요.
Q : 제 이름은 박정배라고 하는 데요, 수행에 대한 질문은 아닌데, 예전부터 제가 스님한테 꼭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는데 쑥스럽고 민망해서, 법회 때 뵌지는 몇년 전에 뵀는데 말을 한번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계기나 ... 있어도 꼭 말씀을 올리고 싶어서.
제가 한 2년 정도 전에 마음이 분노와 포효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때 검색을 하는데 빤냐와로 스님의 성냄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듣게 되어서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법문인데 그 법문을 듣고 제가 여러 가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젠가는 스님을 만나뵙고 꼭 감사를 표현하면 참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말을 못했어요.
A : 내가 도와준 게 아니고 유튜브가 도와줬네? 그러면 됐잖아.
Q : 그리고 스님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테라와다 상가가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절절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재가 운영위원분들이 계셔서 제가 법회에도 참석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때마다 스님 초청을 받아서 보시공양 올릴 수 있는 기회도 갖고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애요. 그래서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서
대중 일동 : 사-두 사-두 사-두
큰스님 : 솔직히 저는 유튜브가 어떻게 올라가는지도 모르고 누가 올리는지도 모르고, 그냥 스님은 스님 할 일만 하는 것뿐이라. 다른 거는 할 줄도 몰라요. 그래서 그거 올려주는 분들한테 감사해야 되고,
그리고 하나 더 당부드리고 싶은 거는 스님들을 편애하지마.
여기 있는 스님은 조금 있으면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다시 태국 가서 살아야 돼. 다른 스님들을 대체할 수 있고 그 스님들이 더 훌륭한 스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되는 거지. 여러분들이 자꾸 그런 스님들을 자꾸 초청할려고 해야 돼.
짠디님 알겠죠?
짠디님 : 예. 그런데 스님이 계시는 동안은 저희들이...
큰스님 : 그러면 진짜 지금 다른 데는 법회를 거의 끊어버렸거든요. 초청하는 거는 안 갈려고 해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가야되는 데는 어쩔 수 없이 가는데, 거기에 여기 담마와나도 해당이 되는 수도 있어요. 그래서 다른 스님들 초청하고 자꾸 해요. 가끔은 올게.
짠디님 : 물론 모든 스님들을 다 우리가 존경하고 또 계속할 거지만 스님이 계실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었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스님이 계실 동안에 아까 박정배 거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스님이 하신 법문을 어떤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됐든 간에 그것이 수행자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고 이 길을 계속 해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저는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스님이 계시는 동안 또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자주 뵈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
사실 스님께서 오시는 중에 사고가 있고 그래서 참 마음이 한편으로는 좀 불편했어요. 그런 스님을 먼 길을 오시라고 하는 거 '조금은 이기심을 내자, 우리도 가야할 길을 바로 가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스님을 초대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큰스님 : 그래도 뭐 내가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면 못 오는 거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니까 왔는데, 계기는 언제든지 올 수 있거든 여러분들한테. 그런 계기들이. 그래서 여러분들도 순간순간을 자꾸 헛되이 보내지 말고 어쨌든 사띠할려고 해야 돼. 그런데 그게 탁 아구가 맞는다고 해야 되나? 시기와 때가 딱 맞아떨어지는 때가 되면 그게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그런 체험들을 자주자주 좀 했으면 좋겠어요. 사고를 체험하라는 게 아니고.
그래서 수행이 확 뛰어오를 수 있고 완숙하게 되고, 또 스님이 이번에 체험한 거는 진짜 그 여러 가지 성숙된 조건들이 싸악 눈에 스치듯이 지나가면서 그대로 보여지는 것이 조건들이 보이는 게 참 힘들거든. 그런데 그 조건들이 보이더라고. 그런 것들이 수행을 놓치지 않으니까 가능한 거라. 어느 정도 공부가 돼있어야 되는 거고.
그래서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을 잃지 않도록 자꾸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스님들이 공부를 안 해.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좀 안타까운 부분인데, 어쨌든 앞으로 한국의 테라와다는 그 스님들이 책임을 지게 될 거라. 무책임하게 내가 툭 떠날 수는 없으니까 어거지로 지금 버티고 있는 건데 공부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도 자꾸 스님들을 채찍질을 좀 해줘요.
그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스님이 자꾸 얘기를 해보면 잔소리 밖에 안되니까, 여러분들이 자꾸 스님한테 가서 자꾸 수행 같이 할 수 있도록 하고, 법에 맞게끔 잘 좀 만들어줘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자꾸 테라와다가 무너질 수가 있다는 거라.
테라와다는 무너지지 않지만 한국의 테라와다는 무너진다는 거라.
알겠죠?
짠디님 : 스님 한가지 질문을 할게요. 예를 들어서 생멸이 아주 빠르게 일어났다 사라지고 해서 사라지는 게 보이다가 굉장히 마음이 조용할 때 그게 슬로우모션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그게 맞는 건가요?
큰스님 : 맞아요. 생각이 없으면 되는 거라. 아예 생각이 없어야 되는 거라. 사고는 있되 생각이 없어야 되는 거라.
됐죠? 자, 오늘은 4시까지 하고 가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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