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감각기관을 수호하라. 위급한 상황에서도 슬로우 모션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황까지는 되도록 (20240316)

담마마-마까 2024. 3. 17. 15:01

https://youtu.be/3HOoL99bCD4?si=hStpaXKuoOKhH8vY

 

* 감각기관을 수호하라. 위급한 상황에서도 슬로우 모션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황까지는 되도록 (20240316)

 

(수행자들을 둘러보신 후) 공부한 게 안 보이는데 어떡하노?

태국에서 한국 돌아올려고 인제 나오는 길에 거기 선원장 스님이 (공항까지) 너댓시간 걸리니까 모시고 가겠다 해가지고 어느 거사님이 차를 운전하고 선원장 스님하고 둘이서 타고 왔어요. 오다가 차가 사고가 나가지고, 트럭하고 부딪쳐가지고 거기서 차가 탁 부딪치면서 옆에 있는 개울가로 떨어져가지고 몇번 툭툭 치면서 차가 전복이 됐거든.

운전하시는 분은 팔이 부러지고 얼굴이 손상이 좀 많이 가고, 선원장 스님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그런데 나는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허리가 좀 처음에 탁 부딪쳤을 때 휘청하면서 허리가 삐끗한 것 외에는 괜찮았거든.

 

그런 위급한 상황에 혹시 슬로우 모션(slow-motion)을 경험해 본 사람 있어요?

(수행자 대답 : 말은 많이 들었어요)

말은 많이 들었어? 위급한 상황을 안 만나서 몰라요?

(수행자 대답 : ... )

아마 경험해보신 분들은 시간이 천천히 가죠? 천천히 가고, 그런 거 아마 경험해보았을 건데, 어릴 때 많이 해봤을 건데 팽이치기, 탁 탁 탁 칩니다. 한번 치고나서 팽이가 돌다가 힘이 약해지면 또 한번 탁 치고 하잖아.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또 사그라드는 게 보이고 다시 또 탁 치니까 또 싹 돌아가고 사그라드는 게 보이고, 계속적으로 그런 게 보이는 게 슬로우 모션을 경험하면서 보통 경험하는 것들입니다. 대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주 천천히 그냥 가닥가닥으로 보여요.

 

왜 그럴까? 왜 대부분 그런 경험들을 할까?

(수행자 대답 : 집중이 되니까)

집중돼있기는 하겠지 뭐.

망상할 시간이 없죠? 그때는. 전혀 망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다 그런 망상할 여유가 없었는데 왜 다친 건 다 틀릴까?

선원장 스님도 나하고 똑같이 뒷좌석에 있었고, 운전기사는 앞에 있으니까 조금 더 많이 다친다고 하지만 왜 그런 차이가 날까?

(수행자 대답 : 업의 조건이 다 달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렇게 뭉뚱그려버리면 업이 이해하기 곤란한데 뭐 답이 없어져버리는데.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보면 그뒤에 얘기들을 들어보면 그러고나서 바로 병원에 갔는데 얘기들을 한 것들을 들어보면 운전기사는 무서워 죽을 거 같았다는 거라. 탁 부딪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한 데다가 차가 밀려서, 태국은 도랑이 이렇게 좀 넓어요. 넓고 좀 깊어요. 그래서 탁 떨어지면 그래가 죽는 사람들이 참 많거든. 떨어지면 충격이 굉장히 크니까. 그래서 그냥 두려워서 아무것도 뭘 해야 될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방비로 그냥 맞아들이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는 거라, 상황을.

 

선원장 스님은, 태국은 선원장 스님은 많이 좀 어립니다. 여기 같이 육십대가 되는 게 아니고 보통 삼십대 사십대 이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선원장 스님 같은 경우에는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하더라는 거라. 생존욕구가 그때 확 일어나는 그러한 거라.

 

그런데 스님 같은 경우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죽고 살고 관한 거는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닌데 적어도 그렇게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기 때문에 그냥 내가 그 상황을 받아들여서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거뿐인 거라. 그러니까 최대한 몸을 수그리고 그냥 앞에 의자를 꽉 잡고 있는 수밖에는 없었어요. 다른 할 수 있는 게 없고 단지 그러고 나서 차가 뒹굴고 나서 가장 먼저 내가 먼저 빠져나오고 나서 선원장 스님을 끄집어내고, 운전기사 끄집어내고 하는 거는 내가 했거든.

그래서 그뒤에 내가 해야 될 게 뭔가 하는 것은 분명하게 보여야 되는데.

 

그런 차이가 나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해봤을 건데 아마 여러분들에게 “암에 걸렸습니다” 하고 얘기할 거 같으면 크게 두려운 생각은 안 나는데 “앞으로 살날이 한 달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두려움이 확 일어납니다.

그런데 한 달이라는 기간이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그 한 달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당장 죽을 거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두려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한번 가만히 한번 봐보십시요.

두려움이 일어나는 거는 그것도 어찌 보면 망상의 일종입니다. 두려움이 일어나니까 망상을 하게 됩니다.

생존욕구는 그럼 언제 일어날까? 두려움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납니다. 생존욕구는.

그래서 사실은 여러분들이 존재욕구, 살고자 하는 존재욕구, 죽고 싶지 않은 마음들 이런 마음들이 일어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닌데, 적어도 그게 없는 상태가 될려고 할 것 같으면 어느 정도의 성자의 경지에는 도달해있어야 되는 것은 틀림이 없는데, 그것까진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급작스럽게 뭔가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슬로우 모션으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상황까지는 돼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지금 당장 죽음이 눈앞에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좋은데 태어나는 거고, 어떤 사람들은 지가 어디에 태어나는지도 모르고 죽고, 그게 뭐냐면 마지막 순간에 그것들을 인식하는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을 무상하게 받아들여야 되거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수행 그렇게 많이 할려고 하는데 그게 인식할 정도가 될려면 내가 얼마만큼 빨리 마음이 움직여야 되겠어요?

쉽게 말하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아주 천천히 일어났다가 아주 천천히 사라지는 것이 보여버립니다.

인제 죽음의 순간인데 집착하는 것은 당연히 없겠죠?

 

그래서 그 정도의 상황은 되도록 수행들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 앞에 언제 그런 위험한 상황 급박한 상황이 닥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되면 참 수행하기 좋은 타이밍이 또 도래를 하게 됩니다.

경전에도 그런 것들이 나오죠? 목을 탁 그었는데 아라한이 됐다, 절벽에서 자살을 하는데 떨어지기 직전에 아라한이 됐다, 그렇지 않으면 낙숫물이 떨어지는걸 보고 톡톡 떨어지고 하는데 그 아주 짧은 찰나에 아라한이 됐다 하는 그런 구절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실은 그럴 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도달한 건데 그 기회를 놓쳐버리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앞에 가다가 돌부리에 탁 걸렸다, 몸이 앞으로 탁 기울어질려고 하는데 그때 잘 관찰하면 어쩌면 넘어지지도 않고 뭔가 무상·고·무아의 성품들을 확연하게 탁 볼 수 있는 기회인데 대부분은 안 넘어질려고만 합니다. 그게 생존욕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탁 부딪치면 아픈 통증을 느낀다든지 아니면 자빠질까하는 겁이 나는 마음이 탁 든다든지 이렇게 돼버립니다. 그러면 수행하고는 끝이 나버립니다.

 

탁 부딪쳤어요. 부딪치는 줄은 뒤에 있는 스님하고 선원장 스님하고 운전기사도 처음에는 몰랐거든. 뭐가 탁 부딪치니까 그때사 인제 부딪치는 줄을 안 거지. 그러고 나서는 차가 옆으로 쏠리면서 떨어지는데,

여러분이 만약에 그런 상황에서 보이는 대상만 그냥 그대로 관찰하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보여. 떨어지는게. 그럼 저쪽에 탁 부딪치고 하는 것이 그냥 보이는 거라. 요쪽에 부딪치는게 보이고 차가 구르는게 보여. 그러면 적어도 크게 몸을 다치지는 않을 거라. 그런데 탁 부딪치고 차가 떨어지니까 겁이 나버리면 그게 안 보여. 떨어지는 것이 안 보이는 거라. 안 그러면 살려고 뭘 꽉 잡고 안 볼려고 하는 거라.

 

"감각기관을 수호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적어도 감각기관을 잘 수호하고 있으면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보이면 보인다고만 분명히 알아차리고만 있어도 충분했고 오히려 깨달음에 이를 단초를 갖다가 끼울 수가 있는 거라.

참 쉽죠? 감각기관 수호하기는!

그냥 보이면 보인다고 해야 되는데.

 

또는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런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수행이 잘 돼나갈 때 아주 예리해지고 할 때 대부분 보면 이게 뭘까?’ 이래버립니다. 그거는 감각기관을 수호하는 게 아니라. ‘이게 뭘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면 보이는 대로 그것도 대상으로서 그냥 알아차리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하고 ‘이게 뭐지?’ 하면서 탁 깨져버리는 거라. 발란스가.

그것도 마찬가지로 감각기관을 수호하는 과정입니다.

 

수행이 잘될 때도 한 단계 탁 뛰어오를 수 있는, 그것도 한 단계가 그냥 한 단계가 아니고 상당히 큰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상황에 왔는데 스스로 팽개쳐버리게 되는 거라. 또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자신이 해야 될 일을 분명하게 하게 되고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이 되는데도 그걸 팽개쳐버리게 되는 거라.

 

앞으로 여러분들은 그렇게 해보십시요.

앞에 사람이 보인다.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남자라고 인식하고 누구라고 인식하고 예쁘다고 인식하려고 하지 말고 '보인다'고만 인식해보라는 거라. 들리면 '들린다'고 인식하고 맛보면 '맛본다'고 인식을 할려고 자꾸 해야 된다는 거라.

 

감각기관을 수호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근데 아주 기본적인 그것들을 자꾸 놓쳐버리는 거라.

왜 두려움이 일어났을까? 감각기관을 수호를 못하니까 당연히 보이는 것이 그냥 보인다고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그 보이는 것에 대해서 형태와 색깔을 보게 되는 거라. 형태와 색깔을 보게 되니까 거기서 뭔가 접촉이 탁 있게 되면 고통스러운 느낌들이 탁 일어나게 됩니다. 그 고통스런 느낌들을 받아들이면서 이걸 벗어날려고 하는 마음이 착 일어나게 되면서 두려움이 생기는 거라.

뭐 하러 그럴 때 형태하고 색깔을 구분할려고 해야 돼요?

 

그마만큼 사고의 작용은 빠릅니다. 빠르게 망상이 일어나는 구조로 바뀌는데 그냥 보인다고만 알아차렸으면 아주 간단했을 것을 갖다가 두려움이 일어나게 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살려고 하는 마음이 탁 일어나게 된다는 거라.

두려운 마음이 일어난다고, 아니면 살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그 사고를 모면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거든. 차는 자기의 방식대로 자기의 속도대로 와서 부딪치고 뒹굴고 멈추게 돼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그것을 있는 그대로 그냥 알아차리는 것뿐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상황들이 왔을 때는 적어도 두려움은 일어나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오늘도 나가서 한번 발부리에 탁 걸려봐봐. 일부러라도. 그래서 탁 부딪치는 걸 부딪쳤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몸이 기울어지면 기울어진다고 분명히 알아차려 보라는 거라. 적어도 그렇게만 알아차리면 설혹 넘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알아차리는 상태에서 넘어진 상태가 되는 거라.

그럼 덜 다칠 수밖에 없다는 거라. 또 그 과정들을 갖다가 돌이켜보면 ‘아, 그래도 내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려고 했구나’ 하는 것들이 스스로에게 만족감이 오게 됩니다.

 

수행을 해나간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마음이 성장해나간다는 뜻입니다.

어제 돌부리에 부딪친거나 오늘 돌부리에 부딪친거나 똑같은 반응이 일어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거는 그 하루 동안은 수행을 안 했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특히 수행이 잘 돼나갈 때 사람들이 실패하는 요인 중에 하나가 구분할려고 하는 것! 구분하는 것은 형태와 색깔로써 보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인식하는 것을 자꾸 구분할려고 합니다. ‘이걸 어떤 카타고리에 넣어야 되지?’ 그걸 왜 하고 있는데?

이미 그것은 망상의 작용이라는 거라.

 

사고의 작용과 망상의 작용을 자꾸 구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고하는 것은 수행하기 위한 과정인 거고, 수행이 좀 더 잘되기 위한 과정인 거고,

남들에게 그 깨달음의 길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 사고이지, 자기 스스로 이것저것 끼워 맞출려고 하는 것은 사고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행이 잘될 때든 또는 위급한 상황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두려움이나 생존욕구 없이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릴려고 노력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