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념처경 법문 - 구나라타나 스님
5.2 오취온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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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인 오취온(五取蘊)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오온(五蘊)은 몸, 느낌, 인식, 의지, 의식 즉 색수상행식이 오온입니다. 두 가지의 그룹이 있는데 하나는 오온이고 다른 하나는 오취온입니다. 도대체 이 두 가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오온이란 우리 몸의 다섯 가지 존재의 요소입니다. 그것에 집착하는 순간 오온이 오취온이 됩니다. 부처님도 아라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온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것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의 오온은 오취온이 아니고 오온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훌륭하신 모습, 공덕, 가르침을 보고 우리 제자들이 거기에 매달리게 될 때 우리 제자들에게는 오취온이 됩니다.
사람들에게 오온을 집착하지 말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그러면 오온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오해해서, 오온 다섯 가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붙여야 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집착이 없으면 오온이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100% 확실한 것은 우리가 오온에 집착하지 않으면 미래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온에 집착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고 윤회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집착을 완전히 버리면 바로 그 순간이 우리가 해탈하고 미래에 다시 윤회하지 않는 순간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온에 대해서 다른 몇 가지를 덧붙여서 말씀하셨는데, 삼온, 오온, 고온(苦蘊) 즉 ‘고의 덩어리’란 표현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12연기를 설하실 때 마지막으로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에서 “이리하여 이것이 모든 고온, 고의 덩어리가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링(ring, 반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공유하고 있는 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퍼링(고통 suffering)이라는 링입니다. (웃음)
오취온 때문에 우리는 항상 우리의 몸, 우리의 느낌,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의식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 오온을 다시 분류하면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몸, 그리고 나머지 네 가지를 하나로 합해서 마음, 이렇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몸을 물질적인 요소로서 루빠라고 합니다. 나머지 느낌, 인식, 의지, 의식 이 네 가지는 나마라고 합니다.
① 물질
여기서 몸은 사대와 그에 연결되는 네 가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질인 몸은 그 특성이 단단하거나 부드럽고, 공간을 차지하고, 팽창하거나 수축하고, 작은 것으로 다시 분리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네 가지 사대에서 파생된 또 다른 네 가지는 무엇인가? 그것들은 색깔 맛 냄새 영양소입니다. 몸은 영양소에 의해서 유지됩니다. 영양소는 네 가지 몸의 물질적인 영양소로 이루어집니다. 단단하거나 액체나 고체가 다 포함됩니다.
사실은 영양소보다 자양분이 더 적합한 표현입니다. 빠알리어로 아하라(āhāra)인데 그것은 자양분으로서 뭔가를 가져와서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명사일 때는 자양분이지만 동사일 때는 “가져오다”입니다. 자양분이라는 것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뭔가를 덧붙여 가져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은 음식을 계속 소모합니다. 몸은 순간적으로 세포가 죽고 세포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음식을 요구하게 됩니다. 음식이 소모되면 또 새로운 음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몸에는 자양분이 꼭 필요합니다. 몸에는 사대 및 그와 연관되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항상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소비된 영양소를 다시 공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에 자양분이 되는 것은 접촉입니다. 우리에게는 대상인 무엇인가가 항상 접촉하게 됩니다. 그리고 접촉을 하면 그 접촉에서 무엇인가가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접촉은 다시 느낌을 일으킵니다. 접촉이 ‘즐겁거나 즐겁지 않거나’에 따라서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감각기관과 대상이 만나면 접촉이 일어나고, 이 접촉은 그 안에서 느낌을 발생시킵니다. 그래서 접촉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의 자양분은 상카라(行, mental formation)입니다.
또 하나의 자양분은 의식(윈냐나 아하라)입니다. 다섯 가지 중에서 자양분에 속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식(想)입니다. 왜냐하면 인식은 상카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수행자는 몸에서 몸이 일어남, 그것이 사라짐을 알아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느낌도 느낌이 일어남 사라짐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식도 일어남 사라짐을 아는 것입니다. 상카라(행)의 일어남 사라짐, 의식의 일어남 사라짐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물질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예를 들어 식사할 때, 마음속에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의욕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음식 앞에 앉을 때 갑자기 배가 고픔을 느끼는 고통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은 소화기관 안에 있는 소화액이나 침이나 가스 등이 내장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음식이 내장기관 속으로 들어가면 장 속에 액체가 음식과 혼합되어 서서히 배가 고픈 고통의 느낌이 사라집니다. 왜냐 하면 위 내부에서 새로운 물질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물질의 변화를 여러분들은 아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손으로 젓가락을 잡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서, 음식을 입으로 가져오는데, 이것이 모두 물질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음식을 입에 넣으면 음식은 입속에서 접촉을 하여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 느낌은 차고 따뜻하고 침이 나오고 하는 느낌, 씹고 맛이 생기고 삼키고 하는 여러 가지 느낌이 생깁니다.
그리고 손 입 혀 이빨 하나하나마다 그때그때 새로운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음식이 목구멍을 지나서 위로 들어가면 그때 있던 느낌은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인식이 몸을 느끼고 또한 인식이 느낌을 느낍니다. 인식은 그렇게 일어납니다. 음식이 바뀔 때마다 인식이 그 음식에서 오는 느낌으로 바뀌게 되고 그리고 음식이 사라질 때마다 인식 또한 사라집니다.
그리고 모든 동작에는 의도(상카라)가 있는데, 한 가지 일이 일어났다가 다른 것으로 바뀔 때마다, 각각의 일 하나하나에는 그에 해당하는 의도가 일어났다가 바뀌고 사라지곤 합니다. 그 의도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여러분들이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의도는 순간순간 바뀝니다. 예를 들면 숟가락을 들려고 하다가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들고, 또 그 대신에 칼을 드는 등,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계속 바뀝니다. 이것이 의도의 일어남과 사라짐입니다.
의식도 마찬가지로 순간순간 대상에 따라서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바뀌게 됩니다. 의식은 안이비설신의 육문을 통해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의 모습으로 그때그때의 대상에 따라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이 한순간 한순간의 의식의 변화를 지켜보게 됩니다. 이는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요소들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이 여섯 가지가 항상 따라 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오온이라는 것을 개에 줄을 매어서 기둥에 묶어 두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줄의 길이에 따라서 개는 그만큼만 갈 수 있고, 앉을 때에도 줄의 길이 한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온이란 우리들을 매어 놓은 일정한 길이의 줄과 같아서, 우리들은 오온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온이라는 한계 속에서 모든 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앉을 때에도 오온과 함께 하며, 설 때도 오온과 함께 하고, 갈 때도 오온과 하는 등,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오온과 함께 하게 됩니다.
오온은 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전생이나 미래의 내생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도 항상 오온과 관련됩니다. 전생에 우리는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느낌을 가졌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를 생각하는 등 오온과 관련시켜서 생각하며, 내생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어떤 모습으로 어떤 느낌을 가지며 어떤 생각을 하며 태어날 것인가를 생각하는 등 이 모든 것이 오온을 떠나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는 법사는 오온을 아는 사람 즉 오온이 어떻게 일어나며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오온에 관련해서 실질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엌에서 냄비를 떨어뜨렸을 때, 그 냄비 소리에는 오온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언가를 만지거나 생각을 할 때 오온은 전부 활동합니다.
아까 예를 든 소리로 돌아가면, 쨍그랑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에는 색수상행식 중 색(물질적 요소)에 들어갑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듣는 것은 상(인식)에 들어갑니다. 소리를 들으면서 아찔한 느낌을 가질 때, 수(느낌)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 그 느낌을 가지므로 주의가 그 소리에 쏠리게 됩니다. 그것이 상카라(行, 생각, thought, volitional activity, mental formation)에 속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이 일어났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여러분이 알게 됩니다. 그것이 식(의식)에 해당합니다. 지금 막 시계가 3시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시계 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짧은 순간에 오온의 모든 것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행을 하면서 마음을 호흡에 둘 때 즉 배가 올라오고 내려가는 모습에 마음을 둘 때, 오르고 내리는 변화는 물질의 요소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오르고 내리는 것을 느끼는 것이 느낌의 요소에 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르고 내리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인식 작용(상)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 바로 상카라에 해당하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의식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행을 할 때 항상 알아차리는 마음으로 현상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때 알아차림 즉 사띠(sati, mindfulness)가 바로 행에 속합니다.
② 느낌 여러분이 느낌을 알아차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느낌이 일어났을 때 그 느낌은 방석이든 바닥이든 뭔가에 접촉을 했기 때문에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때 접촉이란 것은 바로 물질의 요소를 말합니다. 그리고 느낌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인식하는 작용이 인식에 해당하고, 그 쪽으로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 상카라의 요소, 의도의 요소에 해당하고, 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의식의 작용에 해당합니다. 작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오온의 모든 것을 접촉하게 하고 모든 것을 일어나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냄새를 느낄 때, 콧속에 냄새를 맡는 어떤 부분은 물질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 냄새를 맡음과 더불어서 냄새에 관한 어떤 느낌,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냄새를 향해서 주의가 그쪽으로 향해 갈 때 이것이 바로 상카라(행)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무슨 냄새인가 인지할 때 이는 지각(상)에 해당하고,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전부 아는 것이 의식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상카라에 해당하는 것은 어디선가 뚝 떨어져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 우리가 들었던 것, 보았던 것, 무언가 일어났던 것, 뭔가 일어났던 대상을 통해서 상카라가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추상적인 생각도 모두 그와 더불어 오온의 작용이 함께 합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이라는 것은 우선 머리에서 뇌와 신경 시스템 같은 물질적인 것이 있어서 생각이 일어납니다. 뇌와 신경 시스템이 바로 생각을 일으키는 물질적인 기반(physical base)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상카라, 생각이라는 것도 항상 물질, 느낌, 지각 등의 오온과 같이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식은 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눈이라는 감각기관이 있어서 대상이라는 형상과 만나서 접촉을 할 때, 눈의 의식인 안식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안식은 아주 빨리 일어납니다. 그뿐 아니라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이 색성향미촉법 육경(六境)을 만나서 서로 접촉을 할 때 의식이 일어납니다. 눈에서 일어날 때는 안식이 되고, 차례로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이 여섯 가지 의식이 육근과 육경이 접촉할 때 일어납니다. 자, 그러면 형상을 보고 우선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본다는 것, 그것은 아까 예로 든 냄비가 떨어져서 소리를 낼 때 바로 오온이 전부 한꺼번에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어떻게 오온이 모두 일어나는지 그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 그리고 계속 주의 깊게 관찰해서 소리가 조용히 사라질 때 오온도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차림으로써 집중해서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여러분이 일어나는 소리가 무엇인가 인식해야 합니다, ②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지켜봅니다. ③ 그것이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지켜봅니다. 이러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아는 것은 아비담마를 공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비담마를 공부해서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공부할 때 얘기했던 바로 우리 앞에서 현재 여기서 깨어있는 마음으로 지금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띠가 약하게 되면 물체를 딱딱하고 견고한 커다란 하나의 물체로 인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마음으로 자세히 보면 딱딱하지도 않고 항상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변화는 아주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색이나 수, 상, 행, 식 이런 짧은 말이라도 할 겨를이 없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진행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주 깨어있는 마음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첫 번째 것이 물질, 나머지 네 가지는 정신의 요소로 분류됩니다. 물질은 모양과 크기가 있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서 변하지만 일시적으로는 우리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루빠(rūpa), 물질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네 가지는 이름(nāma)뿐입니다. 정신적이고 관념적이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이것을 구체적으로 쥘 수 없는 것들입니다. 루빠라고 하는 이유는 그 변화를 우리가 목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물질의 특성 중의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피부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변하고 머리카락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가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물질의 특성이 됩니다. 물질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라는 물질을 ⓑ라는 물질 안으로 가져갈 때 ⓐ에 의해서 ⓑ가 변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방질이 많은 음식을 먹게 되면 우리의 몸이 지방질로 인해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음식을 전혀 먹지 않으면 우리 몸이 떨리게 되는 등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물질적인 것을 흡수함에 따라서 물질이 변화하게 됩니다. 이것이 물질의 특성입니다. 느낌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이지요. 차고 뜨겁고 시고 쓰고 달고 부드럽고 딱딱하고 거칠고 그리고 멀리 느껴지고 또 가까이 느껴지는 등,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느낄 수가 있습니다. 몸 없이는 느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안이비설신의 없이는 느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느낌은 몸과 연결됩니다. 느낌이 눈을 통해서 일어나는 느낌은 그 이름이 눈의 접촉을 통해서 일어나는 느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일어나는 느낌은 모두 그런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코의 접촉을 통해서 일어나는 느낌, 혀의 접촉을 통해서 일어나는 느낌, 이러한 모두 하나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낌이 일어나면 그것이 어떤 접촉을 통해서 일어나는지 여러분들은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을 하실 때 여러분들은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혀를 통해서, 그리고 생각을 통해서 어떠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가 알게 됩니다. 다음은 인식입니다. 인식도 안이비설신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인지하게 됩니다. 인식이라는 것은 퍼셉션(perception) 인지 즉 알아보는 것, 알고 있던 것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아는 것 또는 알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 이것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또는 개인가 새인가, 어떤 특성을 통해서 인지하게 됩니다. 그것이 인식(상)에 해당됩니다. 마찬가지로 색깔을 볼 때 빨강 파랑을 분별할 수 있는 것, 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높낮이를 분별할 수 있는 것, 냄새를 맡고 이것이 몸의 냄새인가 입의 냄새인가 대변의 냄새인가 여러 가지 다른 냄새들을 특성을 통해서 그것을 알아보는 것, 또한 맛도 마찬가지고, 만질 때도 딱딱한 것 부드러운 것을 구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식의 역할입니다. 또한 정신적인 인식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할 때 친근한 형태로 이야기를 하는가 아니면 나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하는가, 또한 그 내용이 진지한가, 아니면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지의 작용인 인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작용 하나하나는 전부 마음으로 연결됩니다. 그 다음에 상카라(행)에 관해서인데, 멘탈 포메이션(mental formation)이라는 영어는 참으로 잘 표현한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멘탈은 마음이겠지요. 그리고 포메이션, 마음이 그냥 형체 없는 것이지만 무언가를 형성시키는 작용을 하는, 그래서 이것을 형성시키고 폼(form)을 만드는 것, 이것이 상카라의 작용입니다. 빠알리어의 쩨따시까 [(cetasika): 마음부수. 심소(心所). 수(느낌, 웨다나)와 상(인식, 산냐), 그리고 행(형성, 상카라, 50가지)을 합쳐서 마음부수(모두 52개)라고 한다.]는 마음 부수 혹은 마음의 작용이라고 번역합니다. 이는 "마음속에 있는 것, what is in the mind"입니다. 또한 쩨따나[의도. 50개 상카라 중의 하나]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의 활동으로 만들어 주는 작용(forming of citta into formation),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인해서 어떤 활동이 일어나도록 해 주는 것이 쩨따나의 역할입니다. 다음은 의식입니다. 의식에 관해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알 때 우선 먼저 아는 것, 다른 특징 없이 그 대상을 아는 것, 다시 말해서 인식이 일어나기 전에 아는 것이 의식입니다. 이것은 아주 짧은 순간 일어나고 그 다음에 인식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에 빠알리어로 세 가지 단어가 의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산냐(saññā)는 지각입니다. 두 번째 윈냐나(viññāṇa)는 산냐 이전에 아는 것, 세 번째 빤냐(paññā)는 지혜인데 그것은 가장 끝에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이 세 단어의 마지막에 있는 ‘냐, 냐나(ñāṇa), 냐’는 모두 단어의 뿌리가 ‘냐’ 즉 ‘아는 것’에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전부 아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지각과 의식, 지혜의 차이를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린 아이가 금덩어리를 보고서 그냥 금의 색깔만 알 것입니다.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의식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같은 금을 어른에게 주면, 어른은 금을 보는 순간 “이것은 금이구나. 이것은 보석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고, 값이 얼마나 나가겠다.”라고 압니다. 이것이 지각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그 금을 금세공인에게 주면 그는 그 금에 관한 모든 것, 금의 구성 성분은 무엇이고, 어떻게 가공해서 무엇을 만드는 등 금에 관한 한 아주 작은 자세한 내용까지 다 압니다. 이는 빤냐, 지혜입니다. 모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가지를 구분하는 방법입니다. 물질(form)은 거품(foam: 거품의 집합체)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앞의 물질은 form 이고, 나중에 거품은 foam 입니다. 발음이 비슷하지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거품은 아주 작은 분자로 만들어져 있고, 보기에는 아주 크지만 그것은 금방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물질의 특성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물질은 마치 거품과 같습니다. 위빳사나 수행자가 알아차려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세계가 공하다(The world is empty)."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바로 오온을 말합니다. 이 오온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위빳사나 수행자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직관적 지혜로 그것이 공한 것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 소리가 날 때 그 소리를 만든 물질이 있습니다. 그 소리는 다시 우리의 뇌로 들어와서 느낌이 되어, 느낌은 인식되고, 인식으로 인하여 새로운 의지로 작동되고, 의지는 의식으로 연결되어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느낌이나 인식이나 상카라나 의식이라고 하는 것들 중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거품과 같이 비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행자들은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주의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느낌은 물방울에 비유되는데, 인식보다 훨씬 더 금방 사라지는 이슬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느낌이 일어나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대개 느낌은 빨리 일어나고 빨리 사라지는데 여러분들이 수행 중에 통증이 올 때 느낌이 빨리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사띠가 아주 강해진 다음에 집중해서 그것을 지켜보면, 한 순간 한 순간마다 계속해서 작은 통증이 일어나고, 그것이 아주 짧은 순간에 다음의 작은 통증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띠가 강하지 않을 때는 통증이 하나의 커다란 몸체를 가지고 있는 듯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깨어있는 마음을 아주 강하게 해서 매 순간마다 느낌이 변화하는 것까지 보아야 합니다. 지금 거의 시간이 다 되어 길게 자세한 설명은 못하겠지만, 오온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께서 아셔야 하겠습니다. 사성제의 모든 것, 팔정도의 모든 것, 12연기의 모든 것, 그리고 사념처 수행의 모든 것이 오온을 관찰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오온의 관찰을 면밀한 사띠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사념처뿐만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바로 오온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과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번뇌의 소멸도 오온을 완전히 아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일은 오온 중에서 마지막 세 가지인 인식, 상카라, 의식을 공부하겠는데, 지금 내가 하는 것들은 여러분에게 말로 설명할 뿐이지 여러분에게 통찰지혜를 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경험하셔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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