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정진/위빳사나 수행과 알아차림

법 관찰 - 오장애 관찰

담마마-마까 2018. 3. 1. 20:15



5. 법 관찰

                       http://cafe.daum.net/satisamadhi/8mRV/12 사띠사마디카페

                                                         

오늘은 법념처, 법 즉 마음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법념처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법념처는 다섯 가지 즉 (1) 다섯 가지 장애(五蓋), (2) 오취온, (3) 12처(10종 번뇌, 10結), (4)칠각지와 (5)사성제입니다. 몇 가지는 이미 우리가 공부하기는 했으나 여기서는 깊이 공부하겠습니다.


5.1 오장애 관찰


우선 오개(五蓋/오장애)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장애는 5가지뿐인가 의아해 하겠지만, 여러 가지 장애들을 분류해 보면 결국 이 5가지로 분류됩니다.

오개는 감각욕망, 악의(惡意, 瞋心, 성냄, ill will), 나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우울), 의심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이러한 장애가 일어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수행하는 순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러한 장애가 "일어날 때 있는 그대로 본다."입니다. 둘째, 사라지면 그것들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셋째는 어떻게 일어나지 않았던 장애가 일어나는가, 넷째, 어떻게 이 장애를 버릴 수 있게 되는가, 입니다. 마지막이 더 이상 장애가 미래에도 나타나지 않게 장애를 버리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자, 여기 제일 앞의 문장을 보십시오.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말이나 관념이나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알아차리게 되는 정신적인 과정입니다.


① 감각욕망


제일 앞의 감각욕망은 빠알리어로 까마찬다가 됩니다. 까마는 세속의 즐거운 것, 욕망을 말하고, 찬다는 서원 또는 갖고 싶어 하는 것, 그래서 까마찬다는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이 됩니다. 여기서 까마찬다 중 까마는 항상 복수로 사용됩니다. 까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나중에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까메수(sensual desire)를 잘못 이해하면 성적인 것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까마는 항상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오는 오욕락과 관계됩니다. "까메수"는 성적인 것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기관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까마찬다의 까마는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좋아하게 되는 마음이고, 찬다는 의지로 욕망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 말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좋아하고자 하는 마음, 의도 내지는 욕망이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이 욕망은 우리가 어떤 특정 자세를 취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자세, 어느 장소에서나 일어나는 욕망입니다. 대념처경 강의를 시작할 때 우리가 지금하고 있는 수행은, 단순히 앉아 있는 수행이 아니고 일상생활의 모든 활동에 관련되는 활발한 수행이라고 내가 말했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어떤 환경이 조성되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그러한 욕망입니다. 어떤 특정하게 탐욕이 강한 사람에게만 일어나거나 혹은 화가 많은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욕망입니다.


어떤 때는 사람들이 특히 이 집중수행에서 인터뷰할 때나 혹은 질의응답 시간에, 사람들이 "아, 방석에 앉아서 수행하는데 갑자기 성적인 욕망이 올라오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질문하곤 합니다. 이에 대해서 스승들이 답을 해 주기는 하는데 대개는 방석 위에 앉아 있을 때는 해결되지만, 밖에 나가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주곤 합니다.


그러면 실제 생활에서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여러분들이 이제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갑자기 맛있는 아이스크림 생각이 날 때 사띠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그것은 자기자신을 가만히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먹고 싶은 욕망이 생겨서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고, 흥분하고, 들떠서 부엌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보니 아이스크림이 없으면 밖에 나가서 사서 먹습니다.


잠자기 전과 마찬가지로 좌선할 때에도 감각욕망이 일어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일어났을 때 관찰하고, 사라지고 없을 때 관찰하는데, 다만 일어날 때 그것을 관찰하기만 하면 되느냐 하면,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고 뭔가 방도를 취해야 합니다.


왜 그러한 욕망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분이 그 욕망이 일어나도록 부채질합니다(nourish). 욕망이 일어나도록 사띠를 하지 않는 상태를 자신이 조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띠하지 않고 아이스크림 맛을 생각하는 것, 그것은 맛을 생각함으로써 다시 사띠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황을 자신이 만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맛을 생각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쁜 것인데, 그 기쁨이 사실은 깊은 기쁨이 아니고 아주 피상적인 순간적인 기쁨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그 피상적인 기쁨을 추구하고, 그것을 사띠했을 때 나오는 진정한 기쁨, 그리고 깊고도 오래가는 기쁨을 여러분이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사띠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기는 욕심이 있을 때, 사띠로 사띠하지 않은 마음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되풀이하면, 사띠하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 사띠한 상태가 싸워 이겨서 소멸시키는 방법입니다.


사띠하는 마음에는 5단계가 있습니다.


1. 이러한 욕망이 가져오는 것이 얼마나 사소한 기쁨이고 얼마나 피상적인 기쁨인지 사띠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2. 감각욕망이 가져오는 위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위험이란 것은 사실상 감각욕망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감각욕망에 완전히 만족할 때까지는 계속 괴로움이 따르고, 마음이 들뜨고 안정을 취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감각욕망에 관련된 것들은, 아이스크림을 예로 들면, 몸에 좋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설탕도 많고 고혈압이 되게 하는 요소도 있는 등 자신의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3. 지금까지 해 왔던 수행이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열심히 수행을 해 왔어도 꼭 필요한 때에 사띠하지 않으면, 바로 그 순간에 사용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해 왔던 자신의 고귀한 수행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4. 그러한 욕망은 여러분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지 않고 부정하게 하는 장애가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장애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5. 그러한 감각욕망을 버렸을 때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감각욕망이란 마치 여러분이 빚을 진 것과 같습니다. 빚을 계속 갚으려면 얼마나 힘이 들고 피곤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감각욕망이 빚이 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신용카드 빚을 다 갚고, 집 살 때 융자받은 것 다 갚는 등 갚아야할 빚을 모두 갚았을 때의 그 편안하고 행복함, 비록 순간적이나마 그러한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 그런 것을 여러분들은 항상 사띠로 새겨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감각욕망에 관해서 수행자 여러분들은 항상 내가 사띠하고 있는지 혹은 아닌지 항상 점검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예를 들은 것은 음식에 관한 것이었지만 다른 것들에도 적용이 됩니다.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감촉하는 것, 예를 들어 음악을 듣고 싶어 하거나 말하고자 하는 욕망, 이런 것들에 집착이 될 때 등 이런 모든 상황에 이것이 적용됩니다.


처음에 그러한 장애가 일어났을 때, 첫째는 우리가 제일 먼저 이야기했던 5가지 수행 방침으로 이를 극복하는 단계입니다. 정진의 첫 번째, 일어난 것을 극복해서 없어지게 해야 하고, 두 번째, 없어지게 되면 그것을 알게 되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계속 사띠하지 않으면, 세 번째 다시 일어나지 않은 장애들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장애가 없어졌을 때, '그 장애가 어떻게 없어졌는가?'를 사띠로 살펴서 아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서 그 장애가 없어졌을 때,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미래에는 다시 그와 똑같은 장애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수행자가 알게 되는 단계입니다.


② 악의(惡意)


그 다음에 악의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없어지고, 버리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들 5가지 장애는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고 어떤 때는 욕망이 일어나고, 다른 때는 악의가 일어나는데, 하나하나 따로따로 일어날 때 그 순간마다 일어난 것을 아래에 있는 5가지 방법으로 소멸시켜 나갑니다.


악의가 실은 감각욕망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장애입니다. 욕망은 우리가 잘못된 견해(邪見)로 대상을 잘못 볼 때 일어납니다. 즉 좋지 않은 것을 좋다고 왜곡해서 보게 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은 영원하다고 왜곡해서 보기 때문에 욕망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대상을 만났을 때 느낌이 일어나는데, 자신의 왜곡된 느낌으로 '이것이 즐거운 것이다, 이것이 괴로운 것이다'라고 결정을 내릴 때 욕망이 일어납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뭔가를 갖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느낌이 좋으면 그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납니다. 반대로, 싫어서 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악의입니다. 감각기관이 대상을 만났을 때 괴롭거나 싫은 느낌이 일어나면 그것을 버리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악의에 속합니다.


우리가 싫은 것이나 더러운 것을 볼 때 싫어하는 악의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앞에서 공부한 부정관, 사대 및 묘지 수행 등을 할 때에는 아주 조심해서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는 자칫 잘못하면 싫어하다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을 보거나 말하거나 생각할 때 마음속에서 싫어하는 마음, 악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그 상대를 똑바로 보지 않고 왜곡해서 자신의 느낌으로 보기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 악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달린 겁니다.


해결법은 첫째, 잘못된 것을 사띠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띠로 자기가 잘못 생각했음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악의가 사실은 아주 작은 의견 충돌(disagreement)에서 일어납니다. 그 작은 의견 차이가 바로 그 자리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좀 더 심한 의견 충돌과 못마땅해 함(irritation)으로 번지고, 또 거기서 해결하지 않으면 아주 싫어하는 마음(dislike)으로 변하고, 그것은 더 나아가서 화(anger)로 나아가고, 화는 더 나아가면 분노(resentment), 아주 원수 같은 생각으로 나아가고, 더 나아가면 악의(ill will)로 정착하는데, 이것이 나쁜 의도입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의도입니다. 결국은 작은 의견 차이에서 타인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나쁜 의도가 나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그 사람이 실패하기를, 실직하기를, 경제적으로 손해 보기를, 때로는 죽기를 바라는 등 그러한 모든 극도로 나쁜 것이 바로 악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한 의도의 반대, 악한 의도입니다. 여기서 악의는 영어로 '일 윌(ill will)'인데 여기서 '일(ill)'은 병을 의미합니다. 악의는 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병에 걸리면 아무리 맛있는 것이 있어도 맛을 알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의도가 병이 들면 모든 것이 나빠집니다. 의도가 건강하고 좋으면 그것이 바로 선한 의도가 되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갑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의도에 병이 났으면 그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화나 나쁜 의도가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몸에 병이 났는데 다른 사람 탓을 할 수 없습니다. 영어로 번역해서 아주 잘 된 예이니까 기억해 두십시오. 악의는 병든 마음이니, 병을 치유해야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이 병이 나면 그는 온갖 이상한 생각이나 행동을 취합니다. 이는 마치 끓는 물과 같습니다. 물이 뜨겁게 끓으면 여러분은 그 옆에 가지 않지요? 이와 같이 화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나쁜 의도는 마치 전염병과 같습니다. 악의를 가진 사람 옆에 있으면 악의가 전염됩니다. 그러니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가급적 그 옆에 가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나쁜 의도는 공동묘지의 나무 같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그 나무의 양끝은 타다가 말았기 때문에 만지면 손이 더러워지지요. 가운데 부분도 역시 흙이 묻어 있기 때문에 만지면 손이 더러워집니다. 또 그것을 집에 가지고 가서 땔감으로도 쓰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손이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항상 불행하고 항상 화가 나기 쉬우므로, 그 옆에 가면 내 몸이 더러워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가급적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악의는 사띠하지 않으면 새로운 나쁜 의도가 생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띠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나쁜 의도를 정당화시키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개가 나를 이렇게 화가 나게 만들었으니 내 탓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잘못이다."라고 정당화시키므로 또다시 악의가 생기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악의가 생겼을 때는 5단계로 그것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1. 악의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합니다. 악의가 마음속에 있을 때 자신이 즐기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악의를 즐기는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의 수단으로서 즐기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타인을 상대하지도 않고 자기만 옳다는 방향으로 나가게 됩니다.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2. 악의가 가져오는 위험성을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악의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악의를 가진 사람을 보면 그들이 마치 아픈 사람처럼 보입니다. 얼굴색도 좋지 않고 아무 것도 즐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밤에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비판하고 즐기지 않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사띠해야 합니다.


3. 악의를 가지고 있으면 수행을 잘 하다가도 진보하지 않고 퇴보합니다. 그것이 악의가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항상 사띠해야 합니다.


4. 악의가 있으면 마음이 악업을 일으키는 마음으로 더럽혀지고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 중에서 감각욕망과 악의 두 가지는 뒤의 세 가지에 비해서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뒤의 세 가지는 타인에게까지 해가 되지는 않는 장애이지만, 앞의 두 가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크게 해가 되는 장애이고, 이들 두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균형이 잡히지 않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특히 요즈음에 일어나는 균형이 잡히지 않은 사례, 예를 들면 성폭행, 살인 이런 모든 것들이 앞의 두 가지, 감각욕망과 의도와 관련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방석에 앉아서 수행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일어납니다. 좌선할 때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는 곳곳에서 악의가 일어나는데, 악의가 일어나면 참으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악의 즉 화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항상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특히 이 방법들은 일상 중에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기억하고 미리 조심하는 방법입니다. 화가 났을 때에는 어쩌면 아무런 방법도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내가 일러 주는 방법으로 공부하십시오.


어떤 때는 사람들이 문득 그냥 화가 납니다. 그로 인해서 의도가 나빠집니다. 숲 속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속에서 화가 치미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밤에 기분 좋게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 갑자기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사람에게 말을 붙이기도 힘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토굴에서 12년 수행했는데, 그는 토굴에서 수행할 때에는 가장 깨끗하고 모든 것을 잘 지키고 화의 실오라기도 보이지 않는 수행자였습니다. 12년 수행 후 마을로 내려와서 12년 전에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났는데, 만나는 순간 갑자기 화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버스나 전철 안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발을 밟히면 그 순간에 화가 납니다.


우리는 수행이라는 이름 아래서 하루 종일 호흡을 보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계속 봅니다. 그리고 수행이 잘 되어서 이번 수행 정말로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터뷰를 했는데, 스승께서 “잘 되고 있습니다.”라는 말도 듣고 해서, 이번 수행 정말로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실제 생활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내는 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남편은 아내와 싸우게 됩니다. 이런 일이 허다합니다.


왜냐하면 수행처에 있는 동안에는 수행하면서 마음이 편안하고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해져 있었는데, 실제로 집으로 돌아가면 집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산란하고 정결하지 않습니다. 음식도 여기서와 다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집에 가 보니 지불해야 하는 청구서들이 잔뜩 밀려 있고, 청소도 안 되어 있는 등 여러 가지 현상이 다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기서 했던 수행이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방석에 앉아 있을 때 화가 일어나도 그냥 화를 보기만 했지 실제로 아무런 적극적인 방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면 화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①첫째, 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해야할 것입니다.


② 일단 화가 나면 숨을 크게 내쉬고 크게 들이쉬면서 호흡을 약 5분 정도 집중하십시오. 그렇게 심호흡 한 다음에 마음이 편안해지면 화를 객관적으로 관찰하십시오.


③ 그리고 화를 정당화하지 마십시오. 나아가서 화로 인해서 일어나는 상황 즉 화가 불러온 결과를 가만히 보십시오.


④ 그 다음에 자리에 앉았을 때 화가 일어나면 스스로에게 말을 하는 수행을 합니다. 이는 자신과의 대화 수행(Talking Meditation)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습니다. 지금 내가 여기와 있는데, 수행조건이 아주 이상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요리할 필요가 없고, 빨래도 할 필요가 없이, 고요 속에서 수행처 밖에서 할 일도 다 단절시키고, 그야말로 1~3주일 동안 가장 수행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여러분들은 여기에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을 허비하지 말고, 그 동안 나를 괴롭혀 온 화를 이번 수행에서 해결해보자. 그런 결심을 하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보십시오.


⑤ 누군가 자기 주위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면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는 화가 많은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화가 가져오는 여러 가지 단점, 파괴적인 여러 가지 결과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또 화가 많은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화를 전염시키기 때문입니다. 화가 전염되지 않도록 그런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화내는 사람과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면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화난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그들을 구해 주어야할 것이 아닌가? 그런 얘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부처님께서는 그런 것을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선 우리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깨끗하게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화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화가 나 있는 사람 주위에 가면, 화가 전염되어 그 사람과 같이 화가 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⑥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은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걷는다든지 정원에서 일한다든지, 청소를 한다든지 하면, 화가 나 있는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⑦ 다음에는 정신적인 운동인데 그게 바로 정진 즉 노력입니다.


⑧ 그 다음은 좋은 친구를 갖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런 친구는 사랑과 자비, 인내심을 가진 사람, 항상 부드러운 말을 쓰고, 또한 진실을 말하고, 항상 내가 말하는 것을 인내심과 지혜를 가지고 잘 들어주는 그런 친구가 주위에 있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좋은 친구를 갖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그 친구와 같이 말도 부드럽게 하고, 인내심을 갖고 남의 말을 듣고, 또 자비심을 갖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⑨ 그리고 법문을 듣고, 법문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요즈음에는 CD, 테이프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고, 또 인터넷에 들어가면 좋은 법문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예전과 달리 좋은 법문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나 법사의 법문을 듣는 것도 화를 없애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⑩ 그 다음에는 부처님 경전을 독송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경전을 고요히 독송하는 것은 자신의 화를 다스리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불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불같은 성질을 사띠하고, 때때로 자신의 성격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 번 화가 나기 시작할 때, 예를 들어서 입으로 어떤 불같은 말이 나가면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일단 입 밖으로 말이 나가면 이미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난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려야 상처가 아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격을 알고, 항상 그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론 이것들은 여러분들이 오랜 기간 항상 수행과 더불어 이런 노력을 해야 닦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내가 말한 것을 기억한다고 그렇게 된다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항상 수행하고 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그것을 사띠하고 적용하는 수행을 오래 동안 해서 자신의 마음을 장기간에 걸쳐서 새로운 마음으로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리컨디셔닝(reconditioning), 새로 다른 마음으로 조건을 바꾸어 주는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이 일어날 때 강하게 바로 그것을 정지시킬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는 마치 운전하다가 어떤 물체를 발견했을 때 그 순간에 즉시 차를 멈추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완전히 사띠하면서 집중하면 우선 일어나는 화를 볼 수 있고, 화가 없어졌을 때 화가 없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화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고 화도 무상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우리의 이상형으로 바라보는 모델이 부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부처님의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인내가 얼마나 훌륭하셨는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 시절에 브라만 중에 아꾸살라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의 의미는 ‘화가 없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화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화를 아주 잘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가서 성질을 돋워서 화를 내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착한 사람을 보면 그가 자기에게 화를 안 내는 것에 대해 화가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꾸살라는 모든 사람에게 화를 내게 하면서 다녔고 마지막으로 부처님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부처님을 화나게 만들어 볼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꾸살라가 부처님을 찾아가서 갖은 욕설을 하고 능멸하는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인내하시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온갖 욕을 다 해서 이제는 더 이상 욕할 단어가 없어서 가만히 있을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

"네, 있습니다."

"그대는 그들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네, 자주 방문합니다."

"그때 그대는 선물을 가지고 가는가?"

"아, 물론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간 선물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물론 도로 집으로 가지고 가서 가족에게 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대가 나에게 선물을 주었지만, 나는 그대에게 도로 돌려주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분이시니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야 보통 사람이 아닌가? 그러므로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완성시킨 분이십니다. 그분도 우리와 같이 점진적으로, 점진적으로 수행을 해서 그와 같이 청정한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도 부처님과 같이 점진적으로 닦아 나아가야 합니다.


다섯 가지 장애 중 앞에 있는 감각욕망과 악의를 모두 소멸시키면 아나함이나 아라한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나함에 이르면 악의가 완전히 소멸합니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길에 이르겠다는 목표를 가진 여러분들은 이 두 가지들을 반드시 소멸시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분들이 하셔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그 사람이 옳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다른 문제가 있어서 이와 연결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등의 생각을 하면서 여러분의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이 화가 나면 사실은 화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못 듣기 때문에 화가 더 나고, 화가 나면 수행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화가 없으면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가 있고 상대방에게 “미안하다, 화를 내서 미안하다, 화가 나면 서로 이야기가 안 되니 화를 가라앉히고 얘기하자”라고 하면서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노력을 해서 자신이 바른 생각을 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화가 나면 진실이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화를 없애고,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화가 없을 때는 아무도 여러분을 화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시고, 자신의 마음속에 화를 없애는 그런 수행을, 앞서 말한 그 다섯 가지, 항상 되풀이되는 여섯 가지, 부지런히, 분명히 알고, 사띠하면서 등을 항상 기억하시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화를 없애는 것부터 먼저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은 화를 내면서 죽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죽음에 관한 얘기를 간단히 했었지만, 화가 많은 사람은 항상 화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화에 젖어 버립니다. 죽을 때 잠시 일어나는 바로 그 마지막 순간에 화에 겹친 마음을 보기 때문에 죽을 때 아주 고통스럽고, 다시 태어나는 것도 고통과 더불어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 것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화는 왜 일어나는가? 대상이 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육문을 통해서 보는 것, 느낀 것, 또는 기억하는 것 등 육문을 통해서 대상을 접촉할 때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육문을 통해서 대상이 생길 때 갑자기 화가 난다면, 실은 그 화가 기억될 때는 마치 지옥으로 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대상을 만날 때, 무언가를 볼 때,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그리고 기억할 때 항상 그것을 감사하고, 그것을 고맙게 여기고 그리고 마음이 편안하면, 그것이 바로 항상 자신과 같이해서 천상이 다른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행복하고 천상에 가는 것이 바로 이와 더불어서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육문을 지켜보시고 그때 대상을 만날 때마다 화를 내지 마시고 감사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남을 탓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대개 화가 날 때는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화를 내게 됐다. 내가 아니고 저 사람이 시작했다’라고 하면서 항상 남을 탓하곤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자신은 올바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정당화시킵니다. 그런데 화를 내는 사람은 결코 정당하거나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릴 때 내 부모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여우 두 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한 마리는 성질이 아주 착한 여우이고, 한 마리는 항상 싸우기를 좋아하는 여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마리가 같이 있을 때, 싸우기를 좋아하는 여우가 “야, 싸움 좀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착한 여우가 “싸울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싸울 이유를 만들면 되지 않으냐?”고 하면서 돌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건 내 것이다.’ 라고 하면 네가 ‘아냐, 이건 내 꺼야’라고 하면서 싸우자”라고 싸우기 좋아하는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먼저 “이건 내 것이다”라고 하자, 착한 여우가 “그래, 네 것이면 가져가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싸움을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없습니다.


대개 화가 나는 데는 원인이 있습니다. 자신이 화가 나면, 그 원인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어쩌면 그 원인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 속에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화가 난다고 하여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화의 원인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십시오. 항상 완벽하게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③ 나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

                      

나머지 세 가지 장애는 나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입니다. 여기서 의심은 수행에 대한 의심, 불법승 삼보에 대한 의심, 12연기에 대한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고, 수행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입니다. 이러한 장애가 일어날 때 앞서 말씀드린 다섯 단계로 관찰하면 통찰지혜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렇게 법들 안에서 법을, 안으로, 밖으로, 그리고 안과 밖으로 명상합니다. 여기 우리가 앞서의 다섯 과정을 보면서 장애가 어떻게 일어나고, 일어난 장애가 어떻게 사라지며, 사라진 장애가 어떻게 다시 일어나는지 등등의 과정을 자신 속에서 본 후에 타인에게서 보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장애를 없앱니다.


여기서 “법들 안에서 법”이라고 할 때, 앞의 법은 복수로서 많은 장애들 중에서 이 특정한 장애가 일어났을 때 ‘나’ 안에서 관찰하고 명상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뒤의 법은 단수로서 일어난 하나의 특정한 장애를 ‘나’ 안에서 관찰하고 명상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 법들은 여러분들이 완전히 집중할 때에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법들은 “일어나는 현상들”이라는 뜻입니다. 법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진리 그리고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도 법입니다. 여기서 법들이라는 단어는 “자연 속의 현상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장애가 일어날 때 장애가 일어나는 현상을 본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단어는 “abide”인데 이는 “와 같이, 지킨다, 이를 지키면서 따르면서 함께 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띠가 나중에 일어나거나 미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 일어나는 현상과 같이 함께 일어난다.”라는 의미에서 “abide”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abide”라는 말은 “산다.”는 말입니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그것을 사띠하면서 24시간 동안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욕심이 일어날 수도 있고 나쁜 의도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장애 하나하나는 방석에 앉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아무 때나 일어납니다. 일어날 때 바로 사띠하면서 24시간 내내 그 현상을 지켜본다는 말입니다.


어떤 때는 대화중에도 졸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얘기 중에 화가 올라올 때가 있는데, 그런 때에는 바로 사띠해서 일어나는 현상을 지켜봐야 합니다. 또 우리가 식사할 때 감각적인 욕망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도 사띠로 지켜봐야 합니다.


이와 같이 매일 24시간 항상 자신을 지켜보다가 수행하러 오면 수행이 아주 잘 됩니다. 보통 때는 전혀 하지 않다가 집중수행하러 오면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면담 시간에 여러분들이 집중수행하면서 방석에 앉았을 때 온갖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하는데, 사실은 여러분들이 매일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관찰하고 지켜보면 그것이 수행처에서 하는 수행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수행처에서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숙제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집에 가시면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항상 지켜보시고 그때 어떤지 비교해 보십시오.


일어날 때마다 여러분들이 항상 사띠하고 주의하면 그것이 사라집니다. 사라질 때 사라지는 현상을 바라보면 됩니다.


장애가 존재하는 것은 앞서 몸, 느낌, 마음이 존재했던 이유가 앎(지혜)과 깨어 있는 마음(자각, 사띠)을 얻기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오개가 존재하는 이유도 우리가 앎을 얻고 깨어있는 마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제일 마지막 구절 “의존하지 않고 세상의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의지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출처:  http://cafe.daum.net/satisamadhi/8mRV/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