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정진/위빳사나 수행과 알아차림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

담마마-마까 2013. 5. 7. 21:27



우리는 마음과 물질의 전체, 그 미묘한 본성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마음과 육체의 표면적인 움직임이나 사고에 주의 집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는 신체의 모든 부위에 걸쳐서 느낌을 자각하는 것과 더불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만약 마음의 평정 없이 느낌을 자각하기만 한다면,

내부의 느낌을 보다 잘 의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예민해지고

그것에 습관적으로 반응함에 따라 고통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마음의 평정만 있고 내적 느낌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이때의 마음의 평정이란 마음의 심층에서 진행되고 있는 습관적 반응을 감추고 있어

단지 표면적인 안정일 뿐이다.


래서 우리는 각성(慧)과 평정(定)의 양자를 동일하게 깊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내부에 발생하는 모든 것을 자각해야 하고 동시에 그것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그것에 습관적으로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지혜다.

자신의 성품을 이해하는 것, 자신의 내부에서 직접 진리를 경험하여 성취한 이해력,

이것이 붓다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얻은 지혜”(yatha-bhuta naan-dassana)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혜로 인하여 사람들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발생되는 모든 느낌은 무상(無常)의 이해 안에서 일어나고

모든 탐욕과 혐오의 습관적 반응, 행(行,sankhara)은 멈춘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 내는 부질없는 짓거리를 멈추게 된다.


 “보는 곳에서는 오직 보기만 해야 한다.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하는 곳에서는 오직 냄새만 맡고 맛만 보고 만지기만 해야 한다.

인식이 있는 곳에서는 오직 인식만이 있어야 한다.”


여섯 감각의 접촉으로 느낌이 일어날 때 아무런 평가도 조건지어진 지각도 없어야 한다.

일단 지각이 경험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게 되면

그는 맹목적인 습관의 반응으로 세계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모든 조건지어진 것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과거의 습관적 반응이나 평가를 멈추고 무의식의 반응도 없이 깨어있어야 한다.


위빠사나 수행의 목표는 느낌에 대한 특별한 경험에 있지 않고

마음을 모든 조건지어진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

 

만약 우리가 어떤 느낌에 다시 반응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고통을 증가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느낌을 따르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 채로 남아 있다면 조건지어진 것들은 곧 사라지고

느낌은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수단이 된다.

불쾌한 느낌들에 반응하지 않고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혐오감을 제거한다.

쾌락을 주는 느낌에 반응하지 않고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탐욕을 제거한다.

애매하고 멍한 느낌들에 반응하지 않고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무지를 제거한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느낌이나 경험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만약 수행자가 균형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선이다.

그러나 수행자가 마음의 균형을 상실하면 그것은 악이다.

이런 이해를 가질 때 우리는 모든 느낌을 조건지어진 것들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고엔카의 가르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