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사띠 위빳사나[고급반]

7. 느낌에 대한 분명한 이해1 (20071122)

담마마-마까 2020. 1. 15. 21:06

https://youtu.be/3GroKpbLSoI

7. 느낌에 대한 분명한 이해1 (20071122)

 

『위빳사나 수행입문』교재_제 3장 분명한 알아차림을 위한 수행방법

5. 느낌을 극복하기 위한 분명한 알아차림

 

이렇게 수행을 해보면 느낌도 육체적인 느낌이 있고, 정신적인 느낌이 있다 하는 것을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느낌 가지고 정신적인 느낌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는 있다 하는 겁니다.

왜? 똑같은 건데 전에는 십분 하고 나면 도저히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못견뎌 가지고 다리를 펴거든.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못 견딘다는 건 뭡니까? 내가 불안하고 그로 인해서 빨리 펴라고 마음이 명령을 내리는 겁니다. 육체가 못 견디는 게 아니고 마음이 못 견디겠다고 제발 펴주라고 해가지고 펴는 거거든.

그런데 인제는 해보니까 한두 시간 이렇게 넘어가고 해도 견딜만 하거든. 그렇다고 해가지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해서 마음에 고통을 덜 받는다는 거라. 분리를 시켜나갈 수가 있다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육체적인 고통이 오거나 육체적인 즐거움이 오더라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덜 받게 된다는 거라.

그런데 숙제하는 사람이 하나밖에 없어가지고 어떻게 하나.

한번 그대로 해보십시요. 숙제 내줬는데 안 해버리면 이거 아무 소용 없는 겁니다. 그럼 뭐 하러 내가 부처님 말씀을 얘길 해줍니까? 안 하는데 뭐 내가 할 필요가 뭐 있어? 그렇지 않아요?

 

오늘 교재 나가 있죠? 느낌에 대한 명확한 알아차림 부분입니다.

느낌은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알게 모르게 즐거운 것, 즐거운 느낌 조금 더 늘릴려고 그러고, 괴로운 느낌이 오면 조금이라도 줄일려고 합니다. 그렇죠? 그게 인생 살아가는 겁니다. 보통 보면.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조금 더 즐겁기 위해서 끊임없이 뭔가 노력을 합니다. 돈을 많이 벌려고 하든 아니면 권력을 쟁취할려고 하든 뭘 하든, 아니면 뭐 뭔가 꼼지락꼼지락 하면서 지 혼자서 뭘 만들든지, 거 뭐 하는 겁니까? 조금 더 즐겁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지금 즐겁든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 즐겁든지 그럴려고 그러는 것이지, 고통스러운 것을 받아들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뭐라 그랬느냐 하면 "세상 모든 일들은 이 느낌에 귀결된다." 하고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세상일이 느낌에 연결이 안 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느낌에 귀결돼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마만큼 이 느낌이라는 건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늘은 이 느낌에 대한 관찰을 해나가는데, 그런데 느낌에 귀결되지만 보통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느낌에서 조금 더 나아가지죠? 안 나가는 사람 있습니까? 그냥 맨 느낌으로만 알아차리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대부분 없죠!

뭔가 좋은 느낌이 들면 어떻게 해? 더 취할려고 하고, 싫은 거는 배척할려고 하고 이렇게 한 발짝 더 나아가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그치면 또 괜찮은데, 취할려고 하는데 없으면 또 어떻게 돼? 어쩌든 뺏을려고까지 한다는 거라. 안 그런 거 같애요? 말은 이렇게 무식하게 할지 몰라도 마음은 이미 그렇게 진행들이 되고 있다는 거라.

 

갈망하고 나면 집착하게 되고 그렇게 넘어가게 돼있습니다.

그렇게 갈망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을 거 같으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느낌 그 자체만으로 봤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즐거운 느낌이다. 그 즐거운 느낌 어쩌라는 얘기라? 느낌은 느낌일 뿐입니다. 그런데 즐거운 느낌에 대해서 더 원하고 그걸 집착하려다 보니까 어떻게 돼?

느낌이 증폭돼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하하하하 웃어버리게 되는 거고. 괴로운 느낌은 괴로운 느낌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안 가질려고 배척하려다 보니까 어떻게 돼? 인상 찡그리게 되고, 그게 세상의 이치라는 거라. 대부분이.

 

그래서 느낌을 관찰할 땐 그냥 맨느낌을 관찰하라.

좋은 느낌이나 싫은 느낌이나 무덤덤한 느낌들 이런 것들을 관찰하라 그럽니다.

통상적으로 수행을 하고 있으면, 앉아서 좌선을 하든지 경행을 하든지 이렇게 하면 뭐가 최고 먼저 옵니까? 고통스러운 느낌이 먼저 옵니다. 그래서 수행을 지도할 때 느낌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도 고통스러운 느낌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합니다.

 

스님이 해인사로 출가를 했는데, 해인사 가면 행자가 되면 맨 먼저 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일주일간 아무것도 안 시킵니다.

아무것도 안 시키고, 딱 공양간 문에 서가지고 차수하고 가만히 서 있으라고 그럽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합니다. 환장합니다. 한두 시간 서 있는 거는 오히려 편할 거 같죠? 나중에 시간이 지나 보십시오. 차라리 나를 때려죽이십시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편한 자세가 그것이 시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건 편한 게 아닌 거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질 겁니다. 밤에 잘 때 편하다 해서 이렇게 누워 잘 거란 말입니다. 뭐 이렇게 자든지 저렇게 자든지 옆으로 자든지 잘 거란 말이라. 한 자세로 쭉 아침에 깨어날 때까지 자는 사람 있습니까? 아마 비디오로 촬영한 사람 있으면 그대로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은 다들 약간씩은 움직입니다.

왜? 편한 것처럼 보이지만 편한 것도 오래가면 불편해지기 때문에. 그 불편한 것도 또 오래가면 어떻게 됩니까? 불편한 것도 오래되어 가면 적응이 돼가지고 편해요 인제. 그래서 열심히 막노동하는 사람들은 막노동할 때가 오히려 편하다고 그럽니다. 오히려 쉬어라 그러면 죽겠다고 그럽니다.

 

이렇게 우리 몸 안에는 항상 느낌들이 잠재해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고통스런 느낌이든 즐거운 느낌이든 그냥 무덤덤한 느낌이든 그런 것들이 잠재해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를 바꾸는 거는 뭡니까? 그 느낌은 오래도록 지속해 있을 수는 없는 것이고, 그게 어떤 느낌이든지. 그래서 괴로운 것도 즐겁게 바꾸고, 즐거운 것도 다시 또 괴로운 것으로 바꾸고. 이렇게 자꾸 바꾸게 돼있는 겁니다.

그래서 앉아있으면 앉아서 좌선만 쭉 할 수 없는 거고, 경행 수행했다가, 또 좌선했다가, 아니면 와선했다가, 입선했다가 이렇게 자꾸 자세를 바꾸는 겁니다. 그 이외에는 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건데, 앉아서 좌선 수행을 할 때 가장 먼저 오는 것이 고통스런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교재를 조금씩 보면서 하십시오.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알아차리기 위한 전제조건"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느낌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려고 할 거 같으면 전제조건이 뭐겠습니까? 일단 그 느낌을 끝까지 봐야 되겠죠. 고통스러운 느낌이면 고통스러운 느낌을 끝까지 봐야 되고, 즐거운 느낌이면 즐거운 느낌을 끝까지 봐야 됩니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고통스러운 느낌이 끝날 때까지는 움직이지 말아야 됩니다.

그래서 저번 시간에 뭐를 숙제 내준 겁니까? 세 시간 동안 꼼짝하지 말라고!

적어도 느낌이라는 건, 고통스런 느낌이라는 건 통상적으로 봤을 때 여러분들로 봐서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가 죽을 만큼 고통이 오지 두 시간 넘어가버리고 나면 세 시간대에 올 거 같으면 아주 평온해집니다. 한번 넘어보라는 거라. 끝까지. 그래서 숙제를 내준 겁니다.

 

자세를 절대 꼼짝하지 않고 무너뜨리지 말고, 누가 모기가 와서 탁 쏜다 하더라도 모기 쫓을 생각도 하지 말고 지가 빨아먹든 말든지 냅두고, 일단은 모든 것을 움직이지 말고, 그게 맨 먼저 전제조건입니다.

 

그다음에 눈을 감고 호흡하고 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똑같은데 호흡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호흡하는 방법이! 고통스런 느낌을 아! 이게 고통스러운 느낌이구나 알려면 호흡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코 막고 숨 안 쉬어버리면 고통스런 느낌 금방 옵니다. 맞습니까? 일 분도 안 가서 당장 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숨을 길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고 하는 방법이 있을 거고, 또 하나 방법은 뭡니까? 반대로 아주 짧게 들이쉬고 짧게 내쉬고 하는 방법이 있을 거고.

 

느낌을 관찰하기 위해서 호흡하는 방법은 이런 방법들을 동원을 합니다.

왜? 통상적으로 느낌을 관찰하면 여러분들 어떻게 합니까? 느낌은 참 관찰이 안돼지죠? 느낌만을 관찰하는 것이.

보통 몸의 현상에 알아차림을 하기 때문에 그러다 보면 대부분 한 시간 좌선을 할 거 같으면 그런 느낌들은 강하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대부분 무시해버리죠? 조그마한 느낌들 오는 거 '지까짓거' 하고 다 무시해버립니다.

한 번도 느낌에 대한 관찰을 못 하고 끝나버리는 거라. 경행할 때도 꼭 마찬가지고. 왜? 사람들은 느낌이 오면 처음에 얘기했지만 고통스러운 거는 즐거운 거로 바꿀려고 그러고, 즐거운 거는 고통스러운 거로 바꿀려고 하는 거라. 이렇게 항상 그렇게 되게 돼있다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그 느낌들을 관찰할 것 같으면 인위적으로 호흡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에 호흡을 길게 들이쉬고 길게 내쉰다. 하나씩 천천히 '쑤우우욱' 들이쉬고, 꼭 여러분들 복식호흡하는 거하고 마찬가지죠. '쑤우우욱' 내쉬고 이렇게 계속 한번 해보십시오. 아마 5분이 안 가서 굉장한 느낌들이 올 겁니다. 경련들이 먼저 일어나죠? 몸에서 막 경련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고통스런 느낌들이 온데서 쑤시는 느낌들도 일어나지고, 그리고 따가운 느낌들도 일어나지고, 뜨거운 느낌들도 일어나지고, 그럴 겁니다. 틀림없이.

그러다가 그것도 지나고 나면 아주 큰 고통들이 느껴질 겁니다. 맞습니까? 안 해봐서 모르겠어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 호흡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알아차리는 사대요소들이 뭡니까? 조금 전에 스님 설명한 겁니다. 쑤시고 따갑고 뜨겁고 딱딱하고 무겁고 하는 그런 느낌들입니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호흡을 관찰하라 그러면 그거 관찰 잘 못하거든. 숨을 인위적으로 짧게 하든 길게 하든 아니면 멈추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 느낌들을 아는 거라. 그 느낌들을 인제 이해하겠습니까? 할 수 있겠어요?

 

호흡을 이렇게 인위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처음에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서 이런 느낌들이 차례대로 와서 그 차례대로 오는 것들이 도저히 못 견디겠다 하는 상태까지 이르르면 통상적으로 불쾌감이 옵니다. 그전까지는 따갑고 뜨겁고 이런 느낌들이 올 때는 불쾌감이라는 것보다는 그냥 맨느낌들로서만 다가와집니다. 정신적인 느낌이 아니라 육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와 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지나고 나면 인제는 정신적인 느낌으로 다가와집니다. 아주 불쾌해서 도저히 못 참겠다는 느낌! 육체적인 느낌으로 인해서 정신적인 느낌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틀림없이 보게 됩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를 적어도 5분 정도 해보라. 그러면서 그 느낌들을 관찰하라.

두 번째는 숨을 짧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서 그 느낌들을 관찰하도록 해보라.

틀림없이 숨을 길게 쉬었을 때 하고 짧게 쉬었을 때 하고 오는 느낌들이 다 다릅니다. 지금 현재는 고통스런 느낌에 대한 얘기를 말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숨을 멈추었을 때 그 느낌들을 관찰하도록 해보라. 멈추었을 때는 느낌이 또 다릅니다.

숨을 멈추어 버리면 이러한, 조금 전에 느꼈던 느낌들이 순차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파도치듯이 확 다가와집니다. 거기서 그러한 불쾌감이라도 하는 불쾌한 느낌들까지 일어나는 상황까지 해서 더 나아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해도 숨을 쉬지 말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보십시오. 숨 안 쉬어질 거 같습니까? 안 쉬어질 것 같애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안 쉬어집니다. 안 쉬어지는데, 숨을 들이쉰 상태에서 안 내쉬고 있다고 하면 이런 쪽으로 막 다 터져나와 버립니다. 몸이 참 교활한 겁니다.

 

그 느낌들을 한번 경험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고통스런 느낌에 대해서 극복을 하게 됩니다. 고통스런 느낌이 지 스스로 사라져버리는 거라. 숨을 그렇게 멈췄을 때. 그런 과정들을 한번 겪도록 해보십시오.

그래서 훈련하기 위한 과정, 가장 좋은 방법은 세 시간 동안 앉아가지고 고통스런 느낌들을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입니다.

통상적으로 그렇지 못하거든. 못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해야 됩니다. 인위적으로 할 때는 느낌조차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 느낌이 없다 하는 상태까지 올 때까지 계속하도록 한 번 해보십시오.

 

세 시간 동안 수행을 해보면 언제 느낌에 대해서 관찰을 안 하게 됩니까?

아무런 느낌이 안 날 때입니다. 느낌이 증폭돼가지고 도저히 못 참을 때까지 있다가 지가 스르르 사라져버립니다. 스르르 사라져버리는 경우인데, 어떨 때는 바위 절벽 위에서 툭 떨어지듯이 툭 떨어져버려서 없어져버립니다. 느낌이 사라져버립니다. 그러고 나면 느낌에 대한 관찰을 안 합니다.

안 하는데 또 다른 데서 또 일어나집니다. 또 다른 데서 또 일어나집니다. 이렇기 때문에 어쨌든 하나는 넘었다는 얘깁니다. 그것이 살갗에 있는 것이든 아니면 피부에 있는 것이든 아니면 뼛속에 있는 것이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넘었다는 거라.

 

그렇게 피부에 있는 것들을 완전하게 이해를 했다. 그러고 나면 이게 사라지고 나면 똑같은 지점인 것 같은데 더 깊숙이에서 다시 또 일어나집니다. 뼛속 같은 데서. 이거는 이거하고는 분명히 다른 것들입니다. 다른 느낌들이라는 거라. 이렇게 느낌들도 이동을 한다는 사실을 갖다가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영향을 덜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여러분들 다리병신 만들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수행으로 느낌을 관찰을 하다 보면 느낌으로 인해서 마음이 맑고 깨끗해질 수가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 인제 여러분들 교재를 보도록 하십시오.

통상적으로 느낌을 관찰하는 방법에 대한 것들입니다.

(수행자 질문) 가능하죠. 예를 들어봅시다.

왜 자연스럽게 되느냐 하면 보통 우리는 일상적인 현상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집니다. 일상적인 현상하고는! 왜 사람들이 즐거운 느낌을 찾고 괴로운 느낌을 배척하느냐 하면, 항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게 변한다는 사실을 부정할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변한다는 사실을 자기가 인정을 해버릴 것 같으면 간단한 문제입니다. 느낌도 그렇게 변하는 겁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을 짓고 그걸 붙잡으니까 문제가 항상 생기는 거라. 느낌을 관찰하는 이유는 변화되는 것들을 관찰해서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라는 거라.

그렇다고 해가지고, 세 시간 동안 하고 난다 해가지고 그다음에 좌선한다고 할 때 느낌이 안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느낌은 일어나는데 단지 강도가 달라집니다. 왜 강도가 다르느냐? 인제는 마음으로 이걸 받아들이게 된다는 거라.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 애가 죽었다. 내가 못 받아들이는 거라. 애가 죽은 것에 대해서. 못 받아들이니까 어떻게 돼? 애가 살아있는 것처럼 죽은 놈한테 가서 밥도 줘야 되는 거고, 일어나라 밥먹어라 해야 되는 거고, 그리하다가도 안 되면 어떻게 됩니까? 애 붙잡고 우는 거라.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마음으로 인제는 아프기 시작하는 거라.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애 죽었다 하고 인정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인정하고 나면 여러분들 뭐합니까? 당연히 애를 묻든지 화장하든지 할 거 아닙니까? 인정해야 만이 이 애를 묻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인정하지 않을 거 같으면 절대 사물의 실상을 바르게 볼 수가 없다는 거라.

 

빠따짜라가 자기 남편이나 아들 둘을 잃고 나서 왜 미치광이가 됐습니까?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인정하지 못하니까 그로 인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서 미쳐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부처님한테 갔을 때 부처님이 뭐라 합니까? "사람은 누구든지 죽는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 죽은 것에 대해서 인정하게 되니까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서 부처님 법을 갖다가 들을 수가 있게 되는 거라.

 

사물의 실상이라고 하는 것은, 변화되는 조건이 지어진 것은 변화되는 것이 사물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되는 것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게 돼있다는 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안정돼있는 것은 없습니다. 항상 불안정하게 돼있습니다. 불안정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내가 만족할 수 없는 거라. 그런데 우리는 안정되길 바라고 만족하길 바라고 그냥 가만히 있길 바란다는 거라. 그걸 깨부수기 위해서 이 느낌에 대한 관찰을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해가 됩니까?

(수행자 질문)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 되는 것은 아닌데 굉장히 느립니다. 느릴 뿐 아니라 쉽게 말하면 간단하게 하루만 하면 될 거를 이걸 일 년이나 걸려버린다는 거라.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느낌을 관찰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싸우듯이 관찰하는 방법이 있고, 그다음에 이걸 그냥 관찰대상으로써 바라보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이 속에서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특성들이 드러나도록 하기위해서 관찰하는 방법이 있고 그렇습니다.

원래 원칙대로 할 거 같으면 무상·고·무아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그걸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써 관찰하는 것이 가장 바른 방법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어떻게 합니까? 느낌관찰 할 때, '지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싸워버리는 거라. 그게 세 시간 동안 한 거죠? 그래가지고 어떤 사람은 진 거고 어떤 사람은 이긴 겁니다. 지고 이기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 그거는 의미가 없는 겁니다. 물론 이긴 사람은 '아! 더디지만은 내가 하나 극복해냈다' 하는, 그 당시 극복해냈다는 그런 위안은 가질 수 있지만, 그거 뭐 또 안 옵니까? 어떤 면에서는 극복하지 못한 사람과 똑같은 상태가 돼버리는 겁니다.

왜? 내가 그걸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사실들을! 무상·고·무아라는 걸. 그래서 투쟁하듯이 느낌들을 관찰해나가려고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어떤 느낌이든지.

 

자! 그 밑에 한번 봅시다.

'느낌에는 세 가지 바르지 못한 성향이라는-보통 잠재적인 성향이라 그럽니다. 그런 것들이 있다. 즐거운 느낌에는 탐욕이라고 하는 바르지 못한 성향이 있고, 괴로운 느낌에는 성냄이라고 하는 바르지 못한 성향이 있고, 무덤덤한 느낌에는 어리석음이라는 바르지 못한 성향이 있다.' 하고 그렇게 적어놨습니다.

 

탐·진·치는 바른 것은 아니죠? 업이 되는 것이니까! 바르지 못한 겁니다.

왜 탐욕이라는 성향이 있다고 그랬을까? 즐거운 것에. 즐거우면 더 즐거울려고 하게 돼있다는 거라. 괴로운 것에는 왜 성냄이 있습니까? 괴롭고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무덤덤한 느낌에는 어리석음이라는 바르지 못한 성향들이 있습니다.

무덤덤한 느낌은 통상적으로 여러분들이 일어나는 느낌들입니다. 느낌인 줄을 모르고 지나치는 느낌들. 노력할려는 마음도 안 생깁니다. 많이 생기질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아차려야 되겠다는 마음도 잘 들지를 않는다는 거라. 지금 해야 되는 게 뭔데? 알아차리고 노력하고 집중하고 해야 되는 것들이란 말이라. 살아가는 것은. 그런데 그걸 모르고 살아가 버리니까 그건 어리석은 거지.

 

이걸 관찰할 때 괴로운 느낌은 뭐와 같이 관찰하라고 그랬습니까?

'괴로운 느낌은 화살과 같이 관찰하라.' 괴로운 느낌은 여기에 있는 성냄이라는 바르지 못한 성향, 성냄이라는 건 뭡니까? 정신적인 현상입니다. 괴로운 육체적인 느낌이든 정신적인 느낌이든 그 느낌으로 인해서 정신적인 성냄이라는 것이 일어납니다. 이거는 뭡니까?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으로 인해서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거라. 화살을 육체적인 느낌 하나만 받아야 되는데, 그거로 인해서 정신적인 성냄이라는 두 번째 화살도 받게 되고, 성내니까 어떻게 돼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벌컥 내버리니까 세 번째 화살도 받게 되고, 이렇게 넘어가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괴로운 느낌을 관찰할 때는 화살과 같이 관찰하라' 하고 얘길 합니다.

화살은 맞으면 맞을수록 아픕니다. 안 맞으면 좋긴 좋은데 안 맞을 순 없죠. 괴로운 느낌은 받게 돼있습니다. 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상태내에서는.

육체의 속성이 뭡니까? 늙고 병들고 죽게 돼있는 게 육체의 속성입니다. 그럼 그거는 괴로운 느낌을 안 받을 수 있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아라한도 받게 돼있습니다. 아라한은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이 없을 거 같애요? 당연히 있습니다. 단지 두 번째 화살을 안 받는다는 거라. 정신적인 괴로움을 받지를 않는다는 거라.

육체적인 느낌으로서 괴로운 느낌을 관찰해서 끝내버리기 때문에 정신적인 것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괴로운 느낌은 화살과 같이 관찰하라.'

 

즐거운 느낌은, 즐거운 느낌은 더 가질려고 그러죠. 그래서 욕심내죠. 즐거운 느낌을 만약에 괴롭다고 생각할 거 같으면 어떻게 됩니까? 안 가질려고 하겠죠? 그래서 '즐거운 느낌은 괴로운 것으로 알아차려라.'

왜 즐거운 것이 괴로운 것이 됩니까? 변하기 때문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불안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으로써 알아차려라.

 

'무덤덤한 느낌은 무상한 것으로 알아차려라.' 무상한 것으로. 내가 무상한 줄을 알 거 같으면, 세상 사람들은 아, 무상하다 할 거 같으면 어떻게 합니까? 자살해버리겠죠?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참 무상하구나. 뭐 합니까? 사과나무 심습니까?

그렇지! 그렇게 돼야지. 무상함을 알 거 같으면 더욱더 노력해야 됩니다. 내일 죽을 건데 죽기 전에 내가 요걸 해야 된단 말이라. 안 아까워? 살아있는 게? 사형선고 받은 사람 한번 보십시오. 죽기 전에 뭐든지 할려고 그럽니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자포자기 해버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무덤덤한 느낌은 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라 하는 겁니다.

 

아직 괴로운 느낌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첫 번째 생겨나는 요소는 말하는 음파입니다. 이거는 치는 요소입니다.' 하는 듣는 것을 예로 들어서 하는 부분부터 다음 시간에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