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사띠 위빳사나[고급반]

대상을 알아차리는 법-있는 그대로 관찰 (20081002)

담마마-마까 2020. 1. 25. 01:38

https://youtu.be/fTI9ahpn5_E

* 대상을 알아차리는 법 - 있는 그대로 관찰 (20081002)

 

저번 시간에 어디까지 얘기를 했습니까? 새가 하늘을 날 때의 얘기를 했죠! 기억나십니까? 그때 어떤 방법들을 쓰라고 얘기를 했습니까? 세 가지 방법을 스님이 얘기를 했죠! 노력의 세 가지 예를 들면서 시작하는 노력과 새가 날개짓을 해서 한참 창공을 날아갈 때, 그때의 노력의 방법들을 세 가지로 얘기를 했습니다.

 

첫 번째가 대상을 잘게 쪼개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그냥 '일어남, 사라짐' '왼발, 오른발' 하고 명칭 붙이지 말고 명칭을 좀 더 잘게 쪼개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하려다 보면 아무래도 좀 천천히 하게끔 됩니다. 호흡이야 자연스러운 호흡이기 때문에 천천히 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해야 되는데 경행을 한다든지 아니면 일상생활을 할 때든지 이럴 때는 조금 더 천천히 하면서 대상 자체를 잘게 쪼개라 하고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든 아니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밖의 대상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그 모든 대상들을 잘게 쪼개라 그랬습니다. 고통도 '고통' '고통' 하고 관찰하지 말고 고통 그 자체를 잘게 쪼개라. 아픔이면 '아픔', 쑤시면 '쑤심', 아리면 '아림', 저리면 '저림' 그때에 맞게끔 잘게 쪼개라. 그리고 그때에 일어나는 느낌들을 또한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명칭을 붙이라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게 첫 번째 방법이고.

 

두 번째 방법은, 대상에서 좀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봐라 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게 꼭 벌이 꽃에 있는 먹을거리를 취하듯이 그렇게 살포시 대상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살포시 대상에서 빠져나오고 이런 방법을 쓰는 겁니다. 그럴 때는 대상을 객관화시켜서 멀찍이 떨어져서 그 대상에 다가갔다가 다시 또 빠져나오고 다시 다가가고 빠져나오고 하는 방법을 쓰라.

그렇게 해서 그 대상자체가 분명하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는 상태를 알 때는 그때는 빠져나오면 안되겠죠. 그때는 대상자체를 다시 잘게 부수면서 들어가도록 그렇게 해야된다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되면 어떻게 하라 그랬어요? 내버리라 그랬죠! 그 대상자체가 아예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써 판단을 하고 내버리라고 그랬습니다.

통증이 일어나는 데 통증을 잘게 부수어서 관찰해보기도 하고, 대상 자체를 멀찍이 떨어뜨려서 그 통증을 관찰해보기도 하고 그리해도 안 된다. 그럴 땐 어떻게 하라고 그랬습니까? 대상 자체가 아예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써 치부를 해버리고 완전히 거기서 빠져나와버리라고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거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대상 자체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들은. 그런 방법을 동원을 해서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하는 길들을 택하도록 하라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거기에서 덧붙여가지고 조금 더 잘게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뭡니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일하는 겁니다. 살아가는 것이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그런 작용들입니다. 그런 자극이 없으면 대부분 살아간다고 얘기를 안합니다. 인간뿐 아니라 여기 며칠 전에 들어온 저기 저 거북이도 마찬가집니다. 가만히 있다가도 등을 이렇게 툭 건드리면 자극이 있으니까 어떻게 해? 꿈틀하고 움직입니다. 그전에는 거북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잘 모릅니다. 내 눈에 보기에는 자극을 주니까 살아있는 걸 아는 거라.

 

일반적인 사람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코로 냄새 맡는다는 자극, 입으로 먹으면서 얻는 자극, 보면서 색깔이나 형상에 대한 자극, 이런 자극으로 인해서 살아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게 없다고 할 거 같으면, 자극받을 일이 없다고 할 거 같으면 참 좋겠는데, 그렇죠!

옆에서 자극 안주면 내가 참 행복하게 살아가겠는데 자극 주니까 못살겠죠? 옆에서 무슨무슨 소리하니까 자극을 주니까 그것에 대해서 기분 나빠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화가 나기도 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욕심이 일어나기도 한단 말이라. 이놈의 자극만 안 주면, 가만히 나를 나둬버리면 나는 참 선인이 될 건데, 그놈의 자극 때문에 내가 악한 사람이 되는 거라.

그 뜻을 여러분들이 잘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나 부처님 제자들 아라한들은 자극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같이 그렇게 반응하진 않죠! 자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버립니다.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것을 소리 들리는 것에 대해서 아! 저 사람이 나에게 싫은 말을 한다 하고 듣는데, 아라한들은 단지 소리로만 들려버립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자극이라 하더라도 반응하는 게 다르죠? 우리는 자극에 대해서 그것을 취해버립니다. 들떠서 살아가게 되는데, 아라한들은 그것을 단지 대상으로써만 받아들이게 됩니다. 수행은 육근을 통해서 들어오는 대상을 그대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아라한들의 삶입니다. 또 수행하는 자의 삶이고.

 

그런데 여러분들은 보면 단지 보기만 하는가? 들으면 듣기만 하는가? 냄새 맡으면 냄새 맡기만 하는가? 분명하게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죠? 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얼마 전에 TV에 보니까 어느 연예인들을 출연시켜가지고 눈을 감겨가지고 음식의 맛을 봐라고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평소에 자주 먹던 음식입니다. 그런데 전혀 이 음식에 대한 것들을 모르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을 맞춘 연예인은 열 명 중에 딱 하나밖에 없었어요. 아홉 명은 그 음식이 무슨 음식인 줄을 몰라. 틀림없이 맛을 아는 것은 눈으로 맛을 아는 것이 아니고, 혀로써 맛을 아는데 평상시 그렇게 즐겨먹었던 건데도 단지 눈을 감겼다는 것으로 인해서 그 맛을 아홉 명은 몰랐어요.

 

또 하나 더, 자갈치에서 연예인들의 눈을 감겨가지고 수족관에 손을 넣어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뭔지를 맞춰라 하니까, 대부분 연예인들이 어떻게 반응을 했느냐면, 두려움이 일어나니까 그 수족관에 쑥 손을 넣지를 못해. 오락프로이기 때문에 그렇다기보다는 일반적인 것들입니다, 그것이. 진짜 그것을 만지더라도 생물이 아니고 지푸라기 비슷한 것을 놓아뒀다고 하더라도 뱀이나 이런 것들로서 착각을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눈을 감기고 수족관에 손을 넣었을 때 닿는 느낌들, 눈을 뜨고 그 대상에 손을 넣어서 감촉을 느꼈을 거 같으면 금방 알았겠죠. 그런데 단지 눈을 감긴 것으로 인해서 모르는 거라.

 

인간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자극에 인해서 살아가는데 사실은 그 자극조차도 분명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는 얘깁니다. 여러분들 한번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들은 수행자니까 알고 있을 거 같죠?

지암님, 한번 일어나봐요. 앞에 나와서 눈을 감고 두발짝만 경행을 한번 해보십시오. 평상시 천천히 하던 걸음으로. ..... 자! 돌아서서 제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어떤 차이가 있어요? 왜 안 잡혀요? 틀림없이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

경행을 할 때는 앞을 보고 경행을 하는 것은 아니죠? 내가 마음을, 의식을 어디에다 두고 있습니까? 발에다 두고 있습니다. 눈을 감는다 해서 거기에 의식을 안 두는 것은 아니죠? 똑같이 의식을 두고 있는데, 왜 눈을 감았는데 경행하는 것이 흐트러집니까? 평형감각은 눈을 감는다 해가지고 평형감각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집중력이 있을 거 같으면 흔들리진 않겠죠! 그거보다 가장 큰 이유가 뭐냐면 두려움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죽기 싫다는 두려움이죠. 살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 두려움의 형태로서 표출이 되어나갑니다. 눈을 감고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는 생각 때문에 그런 두려움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것이 작든 크든. 두려움이 작게 일어날 거 같으면 그 전에 경행하는 거하고 비슷하게 해나갈 것이고, 두려움이 클 거 같으면 많이 몸이 흔들릴 것이고 그런 겁니다. 두려움은 마음에서 오는 겁니다. 알아차리는 것도 마음에서 알아차리는 겁니다. 경행하는 것들도 알아차리는 것이고, 그런데 단지 눈을 감았다는 것 하나의 이유 때문에 경행이 그렇게 흐트러져버린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수행을 전심전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가 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수행 안됩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수행을 자꾸 할려고 해야 됩니다.

 

다시 한번 더 얘기를 합니다.

볼 때는 볼려고만 하고, 들을 때는 들을려고만 하고, 냄새 맡을 때는 냄새만 맡을려고 노력을 해보십시오. 그 훈련들은 스스로 자꾸 할 수가 있습니다.

볼 때는 보는 것만 하다가 즉시 마음을 귀로 기울여보고, 그래서 소리들리는 것만 또 들리고, 그때는 보이는 것이 안 보이고, 그다음에 냄새맡는 것을 코로 마음을 돌려서 냄새만 맡을 때는 들리는 것이나 보이는 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게끔 되고.

이렇게 빨리 마음을 전환시켜 주게 될 때 그때야만이 육근을 통해서 일어나는 감각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거 같으면 오취온으로서 살아가지게 됩니다.

 

수행자라고 하면서 수행을 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경행을 할 때 단지 눈감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흔들리게 되는 거라. 좌선을 하고 앉아있을 거 같으면 대부분 눈을 감고 좌선을 할 거라. 눈을 뜨고 좌선을 하고 있는데 틀림없이 배에 집중을 하고 있다고 할 거 같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앞에 대상이 안보여야 돼.

육근을 통해서 이동하는 것들을 자꾸 연습들을 해야 됩니다.

 

통상적으로는 좌선을 할 때 눈을 감고 좌선을 하고, 경행을 할 때는 눈을 뜨고 경행을 합니다. 육근을 통해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릴려고 할 거 같으면 반대로 자꾸 노력들을 해봐야 됩니다. 그리고 대상 자체를 재빨리 이동시켜주는 훈련들을 자꾸 쌓아야 됩니다. '소리들림' 하면서 귓바퀴에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다시 '보임' 하면서 앞에 있는 대상이 눈을 통해 들어올 때 눈에다가 마음을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이런 식으로 자꾸 대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다가 보면 틀림없이 하나의 마음에서는 하나의 대상만 알아차린다 하는 사실을 알게끔 됩니다.

그걸 알지 못하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두세 개가 같이 들어오면 같이 그냥 받아버립니다. 반드시 하나의 일어난 마음에는 하나의 대상만 알아차릴 수 있다 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육근에 의존하는 습성들을 빨리 탈피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기 게송이 있습니다. 빨리어로는

'안다 부또 아양 로꼬 따누껫타 위빳사띠( Andha bhūto ayaɱ loko tanuk'ettha vipassati)' '모든 생명은 맹목적이라는 거라'

육근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거라. 그것을, 육근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들을 관찰-위빳사띠, 관찰하고 위빳사나를 통해서 통찰해서 알아차리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는 거라.

그래서 세상에는 그물을 찢어서 자유롭게 되는 새는 드물 듯이 해탈에 이르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위빳사띠-알아차리면 그 사람은 해탈에 이른다 하는 얘깁니다.

 

새 중에서 가장 영리한 새가, 여러 종류들이 있겠지만 까마귀가 참 영리하다고 그럽니다. 쓰레기통에 음식물이 들어있으면 까마귀는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버립니다. 다른 새는 그 뚜껑을 감히 열지를 못하는데 까마귀는 그걸 엽니다. 그래서 그 안에 비닐봉지에 있으면 비닐봉지를 찢어서 그 안에 음식물을 먹습니다. 망을 씌워두면 망을 날카로운 부리로써 짜릅니다. 짤라가지고 그 속으로 부리를 넣든지 아니면 자기 몸을 넣어가지고 그 음식물을 섭취합니다.

 

그런데 이놈도 망을 뚫고 들어가서 음식물은 섭취는 했는데 나올 때는 빠져나오질 못해. 자기가 뚫어놓은 망을 알아차려서 그 사이로 나오면 간단하게 빠져나올 건데 그 나오는 법은 모르는 모양이라. 분명히 그물을 찢어서 들어갔기는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나오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파다닥 거린다는 거라. 감히 그 그물을 다시 짜를 생각들을 못한다고 그럽니다. 그물 속에서 파다닥 거리면 그물은 더 조이게 되는 거라. 그래서 결국 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물고기들이 투망 속에서 잡히는 것도 꼭 마찬가지라고 그럽니다. 들어갈 때 몸하고 나올 때 몸하고 변화가 그렇게 없기 때문에 명확하게만 알아차리면 들어가는 길대로 다시 또 나오면 됩니다. 아주 이치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걸 못한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육근을 통해서 일어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물망에 쪼여지는 거와 꼭 마찬가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맹목적으로 살아간다 하는 거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사람은 그물을 빠져나와가지고 해탈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평생 그 그물 속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이왕 여러분들이 수행한다고 할 거 같으면 적어도 그 그물은 발견을 하고, 그 그물을 찢을려고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그 그물을 빠져나올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 거라.

 

이제는 날개짓 하는 법을 배워서 나는 법은 압니다. 그러면 인제는 바르게 날아야 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해야 될 몫들입니다.

저번 시간에 이어서 수행을 해나가는 방법은 육근을 통해서 일어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도록 훈련들을 해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대상을 빨리빨리 전환시켜주면서 대상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자꾸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