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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모다나(anumodanā, 공덕회향) (20091215)

담마마-마까 2020. 11. 3. 13:05

* 아누모다나(anumodanā, 공덕회향) (20091215)

https://youtu.be/oZtGhYl9AVE

 

공덕회향 게송이라고 하는 게 있죠? 아누모다나(隨喜)라고 하는 공덕회향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아누모다나(anumodanā)' 라고 할 거 같으면 보통 '공덕을 지은 것들을 회향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공덕은 여러분들 보통 빨리어로 뭐라 그럽니까? '뿐냐(puñña)'라고 얘기하죠! '빳따(pattā)'라고도 얘기합니다. 그래서 '빳따아누모다나(pattānumodāna)' 그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무디따(muditā, 喜)' 무디따라고 알죠? 사무량심의 무디따가 뭡니까? '함께 기뻐한다'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모-다띠(modati)'라고 하는 '기뻐한다'는 그런 말에서 유래한 명사형이 무디따라고 하는 겁니다.

'아누모-다나' 할 때의 '모-다나(modana)' 그게 어디서 왔느냐 하면, 모-다띠라고 하는 기뻐한다는 말에서 온 겁니다. 고마움을 '아누(anu) 따라간다' '고마워하는 것을 함께 따라가면서 기뻐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아누모다나 라고 할 거 같으면 '공덕을 함께 나눈다' 하는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산스크리트어에서는 '빠리나마나(pariṇāmanā)' 라고 해서 그것을 '공덕회향'이라고 하는 그런 뜻으로 쓰이는데, 빨리어에서는 '아누모다나(anumodanā)'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어떻게 기뻐하는가? 내가 지은 선한 행위를 내 스스로는 어떻게 합니까? 만족합니다. 내가 지었으니까! 선한 공덕을 지은 것에 대해서 내 스스로 기뻐하고 만족하고 ‘아, 내가 참 잘했구나’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좀 더 명료하게 되는 것을 '만족한다'라고 불교에서는 봅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든, 보시를 하든, 다른 사람을 도와주든, 아니면 자원봉사를 하든지, 아니면 뭐 설법을 듣던지 아니면 뭐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든지 또는 모르는 동물들한테라도 먹을 것을 나누어주든지 이렇게 하는 것들을 '선행을 한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선행을 하면 스스로가 만족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불교에서는 '공덕'이라고 얘길 합니다.

공덕이라고 하는 것은 행복하게 되기 위한 필요한 에너지인데, 그것은 그 에너지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것을 회향한다는 것은 선행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기쁨의 행위들, 그런 공덕들을 그 밖의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준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내가 한 좋은 공덕을 나누어주니까 ‘상대방도 행복하기를’ 하고 바라는 것이 아누모다나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회향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그런 공덕을 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덕을 쌓는 방법은 부처님이 여러 가지로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그중에서는 사무량심을 닦는 것, 또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것이 공덕을 쌓는데 가장 크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왜 쌓은 공덕을 자기가 혼자 다 가지지 않고 나누어야 될까?

우리는 보통 자신이 바른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했으면 ‘자기 자신이 했다’하는 그런 마음을 많이 가집니다. '아만심'을 가지게 되죠. 그래서 그것을 회향을 하므로 인해가지고 마음을 조금 더 깨끗하게 하기 위한 그런 행위라고 보시면 됩니다. 만약에 똑같은 공덕이라고 하더라도 공덕을 쌓는데, 쌓아지는 것이 있고 쌓아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인제 제사 같은 거를 지낸다. 태종사에 있을 때 그런 것들을 많이 봤는데, 돈만 주고 사람이 안 옵니다. 또는 제사지내러 와가지고 그 가족끼리 제사는 뒷전이고 형제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뭐 재산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다른 것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근데 공덕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써 짓는 것이기 때문에! 근데 돈만 주면 다 그 공덕을 쌓는 것으로 생각을 해버릴 것 같으면 부자는 공덕을 많이 쌓게 되겠지. 근데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거라.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선한 공덕을 쌓게도 하고, 쌓지 않게도 한다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공덕을 쌓으면 사람들은 스스로 기쁨을 가지게 되고, 그 기쁨을 충만 되게 할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연말이니까 다른 어떤 기관에 가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러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참 기쁘거든. 그걸 얘기하는 겁니다. 그 기쁜 에너지, 그걸 공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기쁜 마음을 갖다가 같이 나누도록 한다. 다른 사람에게 전해준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전해주는데 상대방이 그 공덕을 받지 않으면, 그 상대방은 나와 같은 그런 기쁨이나 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돌아가신 이에게 공덕을 회향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일견 맞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거라.

근데 경전에 보면 여러분들 항상 마지막에 하는 까라니야 멧따숫따(자애경) 거기 내용을 보면, <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아니면 짧은 것이든 긴 것이든 멀리 사는 것이든 가까이 사는 것이든 이미 태어난 것이든 태어나지 않는 것이든 모든 이들에게 이 기쁨을 같이 나누기를 > 하는 그런 대목이 있습니다.

 

부처님도 경전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이 있었습니다.

'뻬따낭 닥키낭 닷자(petānaṃ dakkhiṇaṃ dajjā)'라 해가지고 "쌓은 공덕을 돌아가신 분에게 꼭 회향하도록 하십시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또 인제 대반열반경에는 보면 "자신이 쌓은 공덕을 인간과 천신에게 회향하도록 하십시오" 하는 부분도 나옵니다. 그래서 공덕은 혼자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향하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누구에게 회향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조금 전에 얘기했지만 돌아가신 분에게 회향하면 될 것인가, 아니면 내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만 회향하면 될 것인가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겁니다. 주변 가족들은 당연히 여러분들이 좋은 행위를 지었으면 그걸 함께 기뻐할 겁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공덕이 회향이 됩니다.

 

돌아가신 분은 그 공덕회향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원칙적으로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 공덕을 함께 기뻐해줘야 만이 그것이 회향이 되는데,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조건이 안 될 때는, 그것을 회향을 받을 수가 없다 하는 얘깁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왜 "인간과 천신에게 또는 돌아가신 이들에게 이 공덕을 회향하십시오" 하고 경전에는 얘기를 해놨느냐는 거라.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차별 없이 하라'는 거라. 공덕을 회향하는 대상을 나 혼자 가지면 그것은 회향이 되지 않는 것이고, 또 돌아가신 분 한 분에게 회향하더라도 그 한 분에게 한정될 수가 있는데, 그것을 한 분에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회향하도록 하라'는 의미로써 그런 말씀을 해놨습니다. '무제한적으로 이 기쁨을 같이 나누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내가 지은 선한 공덕으로 인해서 모든 생명이 행복하기를'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회향을 받는 일도 선한 행위입니다.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지은 선한 행위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 자기 자신의 견해를 약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오빠나이꼬(opaneyiko)'라고 하는 불교 경전에 있습니다. '스스로 이해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열반을 향해서 나아간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앗따- 히 앗따노- 나토-(Attā hi attano nātho)" 라고 해서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여야 한다"

"-히 나-- 빠로- 시야-(ko hi nātho paro siyā)" 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을 의지해서 나아가야 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공덕의 회향은 이런 것하고는 경우가 다릅니다. 스스로 노력해가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인해서 그러한 상태를 만들고 또 그 윤회를 뛰어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근데 그게 안 될 때,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뻬따(peta, 아귀), 아귀계에 있는 자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덕회향으로 인해서만 음식물을 취할 수가 있다 하는 거라. 그것으로 인해서 만족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는 수밖에 없다 하는 거라. 그래서 엄밀하게 얘기하면 돌아가신 분들에게 공덕을 회향하는 것은, 모든 다른 부류에 해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아귀계에만 해당이 된다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에게, 모든 살아있는 중생에게 공덕을 회향하라" 하는 것은 윤회계에 있기 때문에, 어떤 부류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부류에 항상 있질 못하고, 반드시 생과 사를 거듭하게 된다는 거라. 생과 사를 거듭하기 때문에 또 다른 부류에 들어가게 됐을 때 내가 지은 행위에 대해서 공덕을 회향하는 것들을 받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하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은 모든 대상, 살아있는 자, 인간이든 천상세계이든, 또 돌아가신 분들이 어떤 세계에 있든지 그분들에게 공덕을 회향하라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공덕을 회향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함께 그 기쁨을 느껴서 그것을 받는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죄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사마디야띠(samadiyati)'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죄를 받는다는 것은 뭐냐면 그 의미자체는 '죄를 달라고' 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가지고 그것에 대해서 같이 기쁨을 느끼면 어떻게 돼요? 그것은 죄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같이 기뻐했기 때문에, 죄를 같이 기뻐했기 때문에 죄를 달라고 한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죄를 범한다'고 할 때는 '사마디야띠'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죄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는 거라.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가지고 죄를 달라고 해서 스스로 짓는 것도 있지만, 다른 부류들이 지은 것들을 그것이 악행인데 그것을 같이 동조한다든지 기뻐할 거 같으면 그것은 죄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는 겁니다.

 

아누모다나 라고 하는 것도 꼭 마찬가집니다.

받는 자의 입장에서는 그 지은 행위로 인해서 일어나는 기쁨들, 행복들을 나에게 달라고 하는 거라. 어떤 곳에서든지 그걸 달라고 하고 있다는 거라.

그러면 회향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줄 거 같으면 그 한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는 거라. 그래서 아누모다나를 할 때는 반드시 ‘모든 이들이, 모든 살아있는 이들이 행복하기를’ 하는 마음을 가져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이것이 바르게 회향하는 방법이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하므로 인해서 스스로는 마음이 더욱더 풍족해지고, 또 기쁨을 누리게 되고, 끝없는 모든 생명에게 회향하는 것으로 인해서, 스스로는 자비를 실천하게 되고, 공덕도 무제한적으로 증가하게끔 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는 그 공덕을 회향하는 마음을 자꾸 가짐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또 '나 자신'이라는 그런 고집들, 아만들을 가지는 것들을 점차적으로 없앨 수가 있고, 그래서 마음을 증장시켜 주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지은 행위들에 대해서 공덕을 회향하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거기 마지막에 "우리가 탁발을 하든 아니면 계를 잘 지키든 수행을 하든 이럴 때 이 공덕을 모든 이들에게 회향합니다" 하는 게송들을 하게끔 됩니다.

 

마지막 끝에 부분 한번 읽어보십시오. 아누모다나 부분.

실천 수행하는 것으로써 삼보에 예경한다 하는 그런 부분이 있고, 그리고 스스로는 그런 실천수행으로 인해서 윤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래야 되는 거고, 그러고 나서는 이 공덕을 회향하는 게송 - 내가 남들에게 베풀었으면 그 베푼 것들로 인해서 내 스스로는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계행을 지은 것들 또 수행을 한 것으로 인해서 삼매 성취를 하고 도와 과를 이루고 이렇게 한 것들을, 이러한 공덕들은 어떤 것이든 스스로 실천한 것이기 때문에 수행은 공덕이 됩니다. 그래서 그 공덕들을 일체 중생들에게 회향한다. 어떤 특정인에게 회향한다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회향한다.

이것이 공덕의 힘이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공덕의 힘은 언제까지 해야 됩니까? 내가 깨달음을 성취할 때까지!

깨달음을 성취하고 나서도 그 공덕은 회향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하는 거라. 삿되고 어리석은 길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길이고 그것이 바르고 지혜로운 길이다 하는 거라. 그래서 그 길을 계속 따르겠다 하는 거라.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언제든지 우리는 잘못된 생각들을 하게끔 된다는 거라. 그래서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데 그것을 이런 회향을 하므로 인해가지고, ‘아, 내가 바른 길로 가고 있구나. 내가 죄를 범하지 않고 바른 공덕을 쌓고 있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기뻐하고 행복하게 되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아누모다나 라고 하는 겁니다.

 

수행을 끝내고 나면 반드시 여러분들은 공덕을 회향을 해야 됩니다.

한 시간 좌선을 했든 두 시간 좌선을 했든 좌선을 하고 나면 그렇게 평화롭고 고요해진 마음으로 ‘아, 이러한 좌선수행의 공덕을 일체중생들에게 회향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그러면은 그 공덕의 힘을 다른 부류들도 같이 나누게 된다는 겁니다. 또 공덕의 힘으로 인해서 ‘아, 내가 이 길을 계속 가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더욱더 다잡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 바른 길로 가게 되지, 다른 길로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끔 방호하는 역할들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아누모다나(anumodanā, 공덕회향) 라고 하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