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08~2010 일상수행법문

천신의 부러움 (20091203)

담마마-마까 2021. 3. 10. 10:07

https://youtu.be/jsFAywfL_Wc

* 천신의 부러움 (20091203)

 

저번 시간까지 둑카부분을 하다가 아마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린트물 둑카가 아마 스물몇 페이지 넘어 나갔죠? 그냥 그거 다 참고하십시오. 다 통째로 외운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 둑카에 대한 것들은 반드시 정립을 해놓도록 하십시오.

 

오늘은 천신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스님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승려장을 지내주는 경우가 딱 세 가지 승려장을 지내줍니다. 어떤 경우인지 아세요? 좌선하다 돌아가셨을 경우, 그다음에 경행하다가 돌아가셨을 경우, 경행하다가 경행처 위에 몸을 쭉 빼놓고 돌아가셨다든지 경행처 위에 가사를 걸어놓고 나서 돌아가셨다든지 어쨌든 경행하다가 돌아가셨을 경우, 그다음에 세 번째가 법문하다가 돌아가셨을 경우 이럴 때는 상가장을 지내줍니다. 스님에게.

나머지 경우는 상가장을 안 지냅니다.

 

그 경우는 뭐라고 얘기하느냐면 할 일을 하다가 죽었다고 그렇게 얘기하거든. 자기 할 일을 하다가 죽었다는 거라. 그러니까 스님들은 그거 하라는 거라. 자기 수행하고 남을 가르치는 것, 그게 스님들의 임무이기 때문에 그거 하다가 죽으라는 거라. 물론 아라한이 되면 더 좋지. 또 수다원부터 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더 좋은데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자기 할 일을 하다가 죽으라는 거라. 그러면은 틀림없이 스님들을 그 스님을 존경하면서 승려장을 지내준다는 거라.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승려장을 안 지내줘. 그게 일반인하고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승려장을 지내고 나서 스님들에게 보통 하는 얘기가 뭐라고 합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스님들 승려장 하면 뭐라고 그럽니까? 큰스님들 어디 갔다고 그래요? 열반의 세계로 가셨다고 그렇게 얘기하죠? 그건 아마 똑같은 거 같애. 저기에서도 천상세계에 가셨다 하고 얘기합니다.

이거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않은 스님들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냥 일반적으로 자기 승려생활 하다가 아까 얘기한 세 가지 경우에 해당이 됐을 경우에 그래서 승려장을 지냈을 경우에 아, 스님이 천상세계에 가셨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또 언제 천상세계로 가셨다고 얘기를 하느냐면 왕족들이 돌아가셨을 경우에, 왕족이 다음 세계의 부분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 천상세계로 가셨다고 얘기합니다. 우리 한국말로 극락왕생하셨다 하는 이런 얘기있지? 극락왕생하셨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실제로 극락왕생했는지 어떤지는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르지? 그런데 인제 예의상 그렇게 얘기합니다.

 

경전 곳곳에 그런 부분이 많이 나오죠? 부처님에게 누가 돌아가시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부처님 저분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천상에 태어났다. 뭐 천상중에 어디 도솔천에 태어났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물론 부처님은 예의상 그러지는 않겠지?

그런데 지금 동남아시아의 전통에서 볼 경우에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말이라도 천상에 태어나니까. 그리고 실제로 천상에 태어나는 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불자들은 최종 목표를 뭘로 잡고 있습니까?

천상에 태어나는 걸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극락왕생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더 이상 바라지도 안 해. 그러니까 수행의 도와 과를 이루는 거 이런 거는 도저히 힘들고 어려워서 못 따라가겠다. 나는 마 이생에서는 포기해버린다는 거라. ‘포기해버리고 잘 해갖고 천상에나 태어나자’ 이런 생각들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뭐 여러분들은 안 그럴 거 같애요? 극락왕생하면 좋지 뭐. 안 그래요? 극락왕생의 이상 가는 것은 없다고 보는 경우가 있는데, 왜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왜 그럴 것 같아요? 목표를 좀 크게 안 잡고 쪼맨하게 천상에 태어나는 거라.

그런데 참 우스운 게 천상세계에 있는 천신들은 죽음을 맞이할 때가 되면 어떤 생각을 가질까? 뭐로 태어나고 싶어 할까? 혹시 의문 가져본 사람 있어요?

(수행자 질문) 천상도 윤회세계니까 죽지.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도 있습니다.

(수행자 질문) 그럼요. 당연히 죽죠. 당연히 죽습니다. 조금 있다 얘기해드릴게요.

어쨌든 천신들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수행자 대답) 예? 인간인 것 같애요? 그럼 천신이 너를 부러워하겠구만.

(수행자 질문) 천신이 뭐 한다고 인간을 부러워할 거라?

(수행자 대답) 정답! 가장 부러워하는 게 아라한(수다원)입니다. 인간(천신)이 돼서 죽을 때 돼서 다음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 아라한(수다원)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아라한(수다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천상에도 있을 수가 있는데 거의 대다수는 인간의 몸입니다. 인간이라도 다 똑같은 인간입니까? 니 같은 인간을 얘기하는 건 아니고 아라한(수다원). (ㅎㅎㅎ)

어쨌든 천신들도 부러워하는 게 아라한 아, 아라한이란다, 수다원입니다. 아라한이 아니고 내가 말을 잘못했어요. 수다원입니다. 수다원! 아라한이면 이미 윤회를 벗어나기 때문에.

 

수다원인데, 목표를 왜 대부분 극락왕생하는 것으로 잡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인간이 보통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오욕락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오욕락이 뭐 뭡니까? 쉽게 얘기하면 잘먹고 잘사는 겁니다.

그게 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 그걸 오욕락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수면욕하니까 찔려?

(수행자 대답 : 스님께서 맹애욕이라고... ㅎㅎㅎㅎ)

경상도라서 그래. 그거는 안 고쳐진다. 그거는 마 기대하지 말고 말투가 그런 걸. 어쨌든 명! 예! 욕! 하고 이렇게 다섯 가진데, 이 다섯 가지를 보통 크게 나누면 뭘 얘기하느냐면 재욕하고 색욕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오욕에서는 재물 욕심을 보통 맨 첫 번째로 올려놓는데 불교에서는 그렇게 얘기하질 않습니다. 색욕을 맨 첫 번째로 놓습니다.

그 색욕이라는 게 뭡니까? 감각적인 욕망이죠!

그래서 감각적인 욕망이 우선이고, 그 나머지는 감각적인 욕망 말고 나머지 네 가지는 하나로 묶어버립니다. 그걸 쉽게 말하면 견해, 사견에 포함을 시켜버립니다.

 

그 정도로 나머지는 크게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겨버리는데, 가장 우려하는 것이 감각적인 욕망이라고 하는 색욕 부분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들 주변에 TV광고 한 번 보십시오. 감각적인 자극들만 유도하는 것들입니다. 그거 아닌 거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하이타이(세제) 선전하는데 잘빠진 미녀가 등장할 이유가 뭐 있어? 그런데 하이타이 선전할 때 어쨌든 미녀를 등장을 시켜야 이걸 사는 거야. 다 그래요, 지금은. 어쨌든 감각적인 것들을 등장하지 않으면 그것을 마켓팅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질 안 해. 그러니까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그런 자극을 준다는 거라. 그런 자극을 주면 그걸 가지고 사람들은 ‘아, 좋다’ 하는 필이 꽂힐 거 아니라. 필이 꽂히면 어떻게 돼요? ‘저거 사야되겠다’ 하고 마음을 먹게 되는 거지. 그러면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되면 어떻게 돼? 못 사면 안달이 나는 거야. 어쨌든 그거 사야 돼. 이런 패턴들을 유도하게 됩니다.

 

감각적인 욕망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게 뭡니까? 12연기의 도표에서. 일어나는 게 뭐에요? 느낌이 일어나집니다. 느낌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게 뭡니까? 집착이 일어나집니다. 집착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게 뭡니까? 업욕! 업이 형성되는 거라. 그럼 업이 형성되면 어떻게 돼요? 윤회하게 되는 거라. 다시 또 태어나게 되는 거고.

이런 과정을 겪는 거라. 광고 마켓팅라는 게 꼭 같습니다. 부처님이 말한 윤회의 고리하고 다른 게 하나도 없어요. 다른 게 어딨어? 다 똑같은데. 감각적인 욕망을 일으키게 만들고 그거로 인해서 ‘아, 좋다 싫다’하는 느낌을 일어나게끔 만들어야 되는 거고. 그래서 좋은 느낌 있으면 어떻게 돼요? 취할려고 해야 되는 거라. 집착하게끔 돼있는 거고. 그 집착을 하면 어떻게 돼요? 안 사고는 못 배기게 되는 거라.

그게 업입니다. 업의 흐름에 이미 들어버렸기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는 거라. 이미 업이 형성이 돼버리는 거라. 그래서 좋으면 어떻게 해요? 좋다고 해야 되는 거고 싫으면 어떻게 해요? 싫다고 해야 되는 거고. 그거 쉽게 끊는 사람 있습니까? 못한다는 거라.

 

그걸 부처님은 업이라고 그럽니다. 업이 형성돼버립니다. 업이 형성돼버리면 어쩔 수 없이 업을 지어버려야 돼는 거라. 업을 지어버리니까 어떻게 돼요? 사버리게 되는 거지. 안 그러면 여러분들 같은 경우에는 성질났으면 성질 난 걸 단절 못 하고 탁 큰소리 질러버린다는 거라. 그렇게 해가지고 업을 지어버린다는 거라. 지어버리면 어떻게 돼? 요것으로 인해서 다른 게 또 생겨나는 거죠. 그러니까 새로운 탄생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라. 이거 외에는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봤을 때는 오욕락이 뭐 어쩌고 저쩌고 해도 '감각적인 욕망' 이거 이상, 그 뭐라고 할까? 다스리기 힘든 게 없다고 봐지는 거라. 가만히 부처님도 고민을 해보는 거라. 이걸 어떻게 해야만 이걸 끊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는가? 뭐겠어요? 뭐를 가지고 설명을 해줄 수가 있겠어요? 여러분들이 부처님이라면. 저거는 틀림없이 나쁜 건데 안 좋은 방향으로 계속 유도하는 건데 저걸 안 하도록 탁 만들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거기서 등장하는 것이 부처님이 얘기한 족쇄부분 입니다. 열 가지 자물쇠란 뜻입니다!

감각적인 욕망은 벗어나기 참 힘들다. 우선 그렇게 인식이 돼죠? 그럼 처음부터 그거부터 벗어나라고는 안 해. 그럼 뭐부터 벗어나도록 만들어야 되겠어요? 그래서 그걸 열 가지로 만들어 놨어요.

※ 오하분결 : 유신견, 회의적 의심, 계금취, 감각적인 욕망, 악의

오상분결 : 색계욕, 무색계욕, 아만, 들뜸, 무명

 

그래서 수다원에 이르르면 떨어지게 되는 것 세 가지, 그다음에 아나함에 이르르면 떨어지는 세 가지와 엷어지는 두 가지, 불환과에 이르르면 떨어지는 다섯 가지, 아라한에 이르르면 떨어지는 열 가지, 그렇게 해가지고 토탈해서 열 가지! 제시를 해놨습니다. 그래서 순차적으로 제거를 해나가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감각적인 욕망은 그중에 어디에 해당이 되느냐면 네 번째에 해당이 되는데, 일단 도의 흐름에 드는 수다원이 돼도 수다원은 몇 가지 떨어진다고 그랬어요? 세 가지 떨어진다고 그랬죠! 세 가지 밖이니까 안 떨어지는 거라. 감각적인 욕망이.

그러니까 수다원에서 도의 흐름에 들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욕망을 먼저 떨어뜨릴려고 하기 보다는 다른 걸 떨어뜨리는 게 오히려 순차적이다는 거라.

그게 뭐냐면 유신견, 회의적 의심, 계금취 그렇게 돼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유신견'-'나'라고 하는 견해를 가지는 것, 그다음에 '회의적 의심', 그다음에 자기가 하는 것들이 최고다, 위빳사나 수행이 최고다, 아니면 관세음보살 염불하는 게 최고다 하는 이런 걸 '계금취'라고 그럽니다. 자기가 견해를 세운 것들에 대해서 붙잡는 것들입니다.

이 세 가지는 가만히 보면 '견해'에 포함이 되죠. 견해에! 견해에 포함이 됩니다. 대부분이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생겨나는 것들이 이것들입니다. 이걸 떨어트려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뭘까 하고 부처님이 고민을 하거든.

 

어쨌든 도의 흐름에 들어야 하거든. 도의 흐름에 든다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다시는 다른 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가지고 물이 있으면 물에다가 몸을 탁 띄워놓으면 뭐 내가 그렇게 노력을 하지 않아도 동동동동 물살을 타고 이렇게 바다로 간다는 얘기거든. 그런데 이 물에다가 사람을 탁 띄워놓기가 힘들다는 거라. 왜? 감각적인 욕망들이 있어가지고 요길 안 갈라고 하는 거라 사람들이. 그래서 물에다가 먼저 띄워놓는 작업을 먼저 해야 되겠다 싶어서 앞에 세 가지를 부처님이 제시를 해놔놓습니다.

 

자! 그런 형태들을 띠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 부처님이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범부중생'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범부'라고 하는 것은 쉽게 얘기하면 '도와 과를 지향하지 않는 사람들' 이걸 범부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내가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일어나는 마음이 그다음에 마음이 향하는 곳을 알 수가 있습니까? 모르죠? 내 마음도 내가 어디로 갈지를 모르는 거라. 어디로 튈지를 모른다는 거라. 이런 걸 '범부중생'이라고 그럽니다. 방향을 못 잡는다는 얘깁니다. 갈피를 못 잡는다는 얘기이고.

그런데 마음을 분명하게 내가 알고 있으면 내가 현재에만 계속 머물고 있을 거 같으면 그다음에 마음이 향하는 걸 또 알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범부중생이 아니고 '아리야'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성인이다' 합니다.

 

그런데 범부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향하고자 하는 방향을 전혀 모른다는 거라. 지금 현재도 내가 마음이 어디로 튈지를 모른다는 얘기는, 죽고 나서 내가 어디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죽고 나서 여러분들 어디로 태어날지 압니까? 모른다는 거라. 그런데 성인들은 죽고 나서 내가 가야되는 길을 알아. 어디로 태어나는지를 분명하게 알아. 깨달음에 이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예류과에 들어버리면 아, 다시는 내가 미천한 세계, 네 개의 세계에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압니다. 내가 갈 곳을 알아. 그런데 범부중생은 그걸 모른다는 거라.

 

똑 마찬가지로 하나는 뭐냐 하면 '믿음' 부분입니다. 요거 좋다 하면 요거 탁 믿었다 하고 다른 거 좋다 하면 또 다른 거 탁 믿었다 하고 마 그냥 천갈래 만갈래 그냥 튀죠? 어떤 때는 이 절에 뭐가 좋다 하면 요기에 갔다가, 또 뭐가 좋다 하면 저기에 갔다가 한다는 거라. 믿음도 마찬가지라. 한결같지가 못하고 그것도 어디로 갈지를 모른다는 거라. 어디로 갈지를.

 

그다음에 '계율', 불교도의 가장 기본은 계율입니다. 계율도 마찬가집니다. 잘 지키다가도 어떨 때는 실수해가지고 잘 못지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잘 지키다가도 언제 또 잘못할지도 모르고. 언제 잘못할지를 모른다는 거라. 언제 실수할지를 모른다는 거라. 갈피를 못잡는다는 거라.

가야 할 곳도 갈피를 못 잡고, 믿음도 갈피를 못 잡고, 계율도 갈피를 못 잡고, 이걸 통상해가지고 '범부중생'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범부중생이라해도 다 똑같은 범부중생은 아니고,

범부중생이라고 하더라도 수행을 하는 범부중생이 있고,

수행하려는 마음조차도 내지않는 범부중생이 있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여기 오신 분들은 수행할려고 하는 마음이라도 낸 범부중생이라고 봅니다. 그것도 차이가 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수행할려고 마음조차도 내지 않는 범부중생은 최종적으로 가는 것들은 욕계천상 밖에 못가. 아무리 지가 잘해봐야!

수행할려는 마음을 내는 범부중생은 가는 곳이 색계, 무색계 천상으로 가는 거라. 죽고 나서, 예를 들어서 자기가 잘 공덕을 쌓았을 경우에. 수행했던 자는 적어도 욕계천상에는 가지 않는다는 거라.

 

육욕천이라고 그러죠! 육욕천이라고 하는 게 쉽게 말하면 어떤 거냐 하면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용왕이 이렇게 부처님의 몸을 감싸면서 추위와 비바람으로부터 피신시켜줬다 하는 그런 구절 나오죠? 그 세계가 쉽게 말하면 욕계천상입니다. 동물의 천상세계.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별주부에 나오는 용왕세계의 용왕 이런 것들이 욕계천상을 얘기합니다.

 

색계 천상하고 무색계 천상하고 다르죠! 색계하고 무색계하고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욕계는 감각적인 욕망을 지니고 있는 천상세계고, 색계는 감각적인 욕망은 없는데 몸, 이 몸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세계고. 그걸 색계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무색계는 이 몸에 대한 집착조차도 가지지 않는 세계 그걸 인제 무색계라고 그럽니다. 무색계라 해가지고 그걸 글자 그대로 몸도 없고 물질도 없고 정신도 없는 것으로 판단해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는 원래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몸에 대한 집착, 감각적인 집착조차도 가지지 않는 세계를 무색계 천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쨌든 그런 거기 때문에 욕계 천상하고 색계, 무색계하고는 천지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수행할려는 마음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수행을 한 사람하고, 그렇지않고 그런 것조차 전혀 모르고 범부중생으로 살던 사람이 똑같이 좋은 과보를 지었다 하더라도 가는 세계는 그렇게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이익이겠어요? 더더구나 수행하면 그 윤회의 세계조차도 벗어나버리게 됩니다. 천상세계조차도 벗어나버리게 되는 행복을 띠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좋은 거겠어요? 그런 것들입니다.

 

자! 그리하더라도 천신들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아세요?

그렇죠. 천신들은 화신으로 태어나죠. 저번에 한 번 설명했죠? 미소년 미소녀의 모습으로 뚝딱 태어나지게 된다는 거라. 그게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이 몸의 현상이 거의 바뀌지를 않아. 그리해도 몸은 끊임없이 늙어가고 변해가겠죠? 그렇지 않을 거 같으면 윤희의 세계에 있다고는 얘기하지 못하죠. 윤회의 세계에 있다는 것은 변하는 세계에 있다는 겁니다. 변하는 세계에! 그러니까 천신이라고 하더라도 변하는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데 그게 느리고, 그리고 그 느린 것들을 알아차리기 힘들기 때문에 안 변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천신이라고 해서 영원히 거기서 살 것처럼 되는 것은 없습니다. 천신도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몸도 그렇게 될 뿐 아니라 성내는 것을 벗어났기 때문에 성내는 것이 없습니다. 성내는 것이! 화를 내는 것이 없다는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 없다는 것이죠. 아까는 몸이 안 변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육체적인 고통이 없습니다. 늙고 병들어야 육체적인 고통이 있는데 이거는 뭐 거의 일정하니까 육체적인 고통이 없는데, 성냄이 없다는 것은 슬픔, 비탄, 이런 것이 없다는 거라. 정신적인 고통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적인 고통도 없고 정신적인 고통도 없다는 거라.

 

이런 세계에 있기 때문에 보통 우리가 천상세계를 뭐라 합니까?

항상 즐거운 세계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즐거움만 있겠어요? 거기도 틀림없이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는데 그 고통이 짧고 그렇다는 뜻이지, 어떨 때 고통이 있는가 하면 죽음에 임박하게 될 때. 천신들도 예지력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죽을 때를 압니다.

 

죽을 때가 되면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천상세계에서.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고, 천상신들 여기에는 탱화나 이런 것이 없는데, 천상신들 이렇게 보면 몸에 굉장히 장식들이 많죠? 몸에 있는 장식들이 시들어버린다는 겁니다. 갑작스럽게, 갑작스럽게 시들어버린다고 합니다. 몸에서 전에는 거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색깔들이었는데 몸에 색깔들이 변한다고 합니다. 색깔이 변해서 냄새가 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싫증이 나게 됩니다. 싫증이 난다는 것은 뭐냐 하면 그 천상세계에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된다는 겁니다. 내가 만약에 사천왕 자리에 있다. 사천왕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즐거움을 누려야 되는데 이거 하기가 싫어지는 거라. 그러니까 여기 기웃하고 저기 기웃하고 자꾸 하게 되는 거라.

그런 것들이 탁 나타나면 그다음으로 바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든지 아니면 다시 천상으로 태어나든지 아니면 뭐 축생으로 태어나든지 이렇게 변하게 된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마지막 그 죽음의 순간에 천신들이 공통적으로 일으키는 생각 하나가 있습니다. 아, 내가 차라리 천신으로 태어나지 않고 이렇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뭐라고요? 아까 얘기했잖아. 수다원! 수다원입니다. , 내가 차라리 수다원으로 태어났으면!

수다원은 뭡니까? 수다원은 일곱생 이내에 이 윤회의 세계를 뛰어넘어버리는 거라.

그런데 천신들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죽음을 맞게 되니까 죽고 나서 또 윤회, 어디로 태어날지 자기도 모르는 거라. 왜? 천신으로 태어난 분들도 수행했던 천신도 있고 수행하지 않은 천신도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수행했던 범부중생, 수행하지 않았던 범부중생이 가는 곳이 이 천상세계라.

 

수행을 완성하지 않은 범부중생인데, 범부중생이 가는 길은 아까 범부중생은 뭐라 그랬어요? 모른다고 했죠! 갈피를 못 잡는다는 거라. 믿음에 대해서도 갈피를 못 잡는 거고, 계율에 대해서도 갈피를 못 잡는 거고, 그리고 죽고 나서 갈 곳도 갈피를 못 잡는 거고, 갈피를 못 잡는 건데 당연히 죽고 나서 어디로 갈지 어떻게 알겠어? 자기가. 또 얼마나 윤회할 줄을 알아서? 모른다는 거라. 그러니까 부러워하는 게 수다원이라는 거라. 적어도 그분들은 일곱생 이내에 요놈의 윤회고를 벗어나버리니까 얼마나 다행일까 하고 생각한다는 거라. 그래서 최고로 바라는 게 수다원으로 태어나기를 바란다는 거라.

 

그거는 자기가 태어나고 싶다해서 태어나지는 건가? 절대 자기가 원한다 해서 태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다음생에 뭐로 태어나기를, 그거 소원 다 들어줄 거 같으면 윤회가 뭔 필요가 있겠어요. 소원만 빌고 앉아만 있지.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거라. 그런 것이 수다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까 수다원은 뭐라고 그랬어요? 세 가지만, 세 가지만 끊어버리면 적어도 수다원에 이르른다는 겁니다. 대부분 견해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거 좀 쉽지 않겠어요? 견해 끊는 건데. 안 쉬워요?

 

그 길을 부처님이 얘기해놓은 것이 뭐냐 하면, 견해라고 하는 것은 뭡니까?

정신적인 현상입니까? 육체적인 현상입니까? 정신적인 현상이죠!

모든 정신적인 현상은 뭐로 압니까? 느낌으로 아는 겁니다. 느낌으로!

느낌으로 알지 뭐로 알아? 다른 거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은 느낌으로 끝나버리면 되는 겁니다. 다른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느낌으로만 끝나버리면 게임 끝이라! 쉽잖아! 수다원 되기!

 

안 그래요? 좋은 느낌이면 좋은 느낌이다 하고 끝나버리면 돼. 싫은 느낌이면 싫은 느낌이다 하고 끝나버리면 돼. 그 이상 뭐 할 게 있어? 되게 쉬운 건데 얼마나 쉬운 거라!

예를 들어서 욕심이 막 일어났다. 머릿속에. 그러면 아, 욕심이 일어났다, 욕심이 일어나면 어떻게 돼요? 좋은 느낌이 일어나겠지. 그러면 아, 좋은 느낌이 일어났다 하고만 알아차리면 끝나버린다는 거라. 좋은 느낌으로 인해서 그걸 집착할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거라. 느낌으로 끝나버리면. 그런데 이 느낌으로 끝나지 못하니까, 그리고 이 느낌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어떻게 돼요? 집착하게 되고 또 그다음에 집착으로 인해서 존재의 이유가 되고 업이 형성되고 그거로 인해서 윤회를 하게 된다는 거라. 느낌으로 끝나는 겁니다.

 

"정신적인 것들은 반드시 느낌으로 끝나야 한다." 부처님이 일렀던 말입니다.

"그것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오직 유일한 길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다른 거 없다는 겁니다. 윤회를 벗어나는 게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십이연기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수(受)-느낌에서만 끊을 수 있다." 다른 것에서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라.

 

자! 그러면 느낌에서 윤회를 끊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당장 '나는 마 도저히 그거는 못하겠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면은 "지금은 못 해도 다음생에서 하시오" 하면서,

그러면 이생에서는 죽고 나서 어디로 갈 거라? 적어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든지 천상으로 태어나든지 이렇게 해야 될 거 아니라? 그래야 희망이라도 있지. 축생이나 아수라로 태어나면 그건 진짜 골치 아픕니다.

왜? 거기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확률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왜 그렇겠어요? 습이 그 부류들은 남을 죽이고 남을 해꼬지 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습인데, 그걸 습으로 살아가는 부류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그럼 나쁜 일 했으면 내가 잘못했다고 알아차리고 마음에 죄책감이라도 들고 이런 부류까지 올라설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안돼요. 거의 안돼.

그러면 적어도 인간이나 천상세계에는 태어나야 희망을 가질 거 아니라.

 

그 태어나는 방법이, 잘 들으십시오 이! 수행 안 할려면 이거라도 해!

첫 번째가 '삿짱 바네(saccaṁ bhane)' 거짓말하지 마라.

절대 거짓말하지 말아라. 진실을 말하라. 앞으로는 적어도 인간 이상 태어날려면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다음에, '나 꿋제이야(na kujjheyya)' 이렇게 말합니다. 거짓말 안 하는 것보다 이게 더 쉬울지도 몰라요. 화내지 않는 것. 화내지 않는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재가인이고 스님이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뭐냐 하면 화를 내느냐 안 내느냐 하는 겁니다. 아무리 큰스님이라도 화 한번 탁 냈다. 그러면 딱 보는 눈이 탁 달라집니다. 화를 안 내는 거 어려운 거 같죠? 오히려 거짓말 안 하는 것보다도 쉬워. 거짓말 안 할려고 마음을 먹는 그런 용기만 있으면 화 안 내게 됩니다. 그래서 거짓말하지 말고 그다음에 화내지 말고.

 

그다음에 또 하나가 필요한 게, '닷자 압빠스밍 삐야찌또(dajjā appasmiṁ pi yācito)' 그렇게 얘기합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걸 그 사람이 필요할 경우에 나누어 주는 것. 나누어 주라는 거라. 오히려 한국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이게 더 하기 쉽겠다. 잘 주잖아. 어쨌든 그게 나에게도 필요한데도 아, 내보다도 저 사람이 더 필요하다 싶으면 나눠준다는 거라. 그런데 보통 자기한테 필요한 거는 안 나눠주지? 필요 없는 거만 막 다 나눠주지? 그거는 그 사람에게도 필요 없어! 나에게도 필요한 게 그 사람에게도 필요한 거지 뭐 나는 필요 없는데 그 사람에게는 필요하겠어?

전에 한번 태종사에서 바자회 보니까 아이고, 오만 쓰레기는 다 모아놓게 되대. (모두 ㅎㅎㅎㅎ) 아, 진짜요! 오만 쓰레기는 다 모아놓게 되드라고요.

어쨌든 나에게도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필요할 경우엔 그걸 선뜻 나눠줄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는 적어도 해야 된다는 거라. 세 가지는 그래도 습관을 들여놔야 만이 적어도 죽고 나서 인간, 천상세계로는 태어나고, 그리고 이생에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살아있을 동안에 "아이고, 고놈 잘 살았다" 하는 소리는 듣는다는 거라. 수행 안 할라면 이거 해!

이거 세 개는 반드시 지켜나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수행하는 범부중생이 되고자 할 경우.

수행하고자 하는 범부중생은 천상에 태어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천상에서도 벗어나는 길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뭘 해야 될까? 아까는 세 가지 일을 하라고 그랬는데. 이번엔 몇 가지일까? 더 많을 거 같애요? 한 가지! 위빳사나!

 

이거 내 얘기 아닙니다. 내 얘기 아닙니다. 스님이 자꾸 위빳사나 하라 위빳사나 하라 그러니까 스님 얘기인 줄 알고 있는데 부처님 얘기에요. 부처님! 부처님이 딱 한 가지만 하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그 경전 구절을 얘기해볼게요.

"신속히 피난하기 위한 모든 도는 바로 네가 닦아야 할 위빳사나의 팔정도이다."

위빳사나의 팔정도라는 거라. 그것이, 그것 하나만이 니가 닦아나가야 될 길이라는 거라.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거라. 윤회를 벗어나는 길은 그 길 외에는 없다는 거라. 그리고 수행을 한 범부중생이 천신으로 태어나는 길도 이 길밖에 없다는 거라. 다른 길이 없는데 어떡하냐는 거라.

다른 길이 있으면 내가 가르쳐줘버리고 말겠는데 없대. 부처님이! 절대 없대!

 

무엇을 관찰해서 위빳사나 수행을 할 것인가?

그럼 위빳사나 외에는 없다니까 뭘 관찰해야 될 거라? 위빳사나 수행할 때?

오온! 오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경전을, 지금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들려주는 겁니다. 내 얘기 아닙니다.

오온! 오온이 뭡니까?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을 그냥 있는 그대로.

색, 이 몸뚱이면 이 몸뚱이라고 알아만 차리면 되고, 느낌이 있으면 느낌이라고, 아프면 통증이 있다고 알아차리는 거고, 그다음 뭘 인식했다면 인식했다고 알아차리는 거고, 내가 마음을 기울이면 어, 내가 의도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고, 이런 것들을 하라는 거라. 오온을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러면 언제 오온을 알아차립니까? 부처님한테 물어봅니다.

언제 오온을 알아차려야 되겠어요? 내일 알아차리면 되겠어요? 지금!

경전에 "집착을 끊기 위해서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려라."

일어나는 순간 그 오온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고? 집착을 해버린다는 거라. 화나는 거, 화나는 느낌 탁 알아차리면 되는데 요걸 못 알아차리면 어떻게 돼요? 이미 도를 넘어서버린다는 거라. 집착해가지고 그다음에 업을 생성하고 이렇게 자꾸 번져나가버리는 상태가 돼버린다는 거라. 그러니까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 집착을 끊어버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돼요? 지금 현재 알아차리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리지 못하면 영원하다고 판단해버리는 거라. 나, 나의 것, 나의 영혼이라고, 영원하다고 판단을 해버린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얘기하는데! 내 거 왜 가져가느냐? '나'라고 하는 것들이 딱 걸려버린다는 거라. 그건 왜 그렇겠어요? 이미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리지 못하면 집착에 빌미를 줘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집착하는데 빌미를 줘버리면 이미 틀렸다는 거라.

"오온이 일어나는 순간순간마다 알아차려서 집착을 제거하라. 오온에서 무상··무아를 통찰하도록 하라. 그것이 오직 유일한 길이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다른 길 없죠? 다른 길 없다는 거라. 스님 거짓말 안 합니다. 다른 길 없어요. 이거 외에는 없어. 다른 거 할라고 하지 마.

 

그럼 오온의 예를 들어볼게요.

눈을 예로 들면 보는 눈, 그리고 그 보여지는 대상 이거는 뭡니까? 색에 해당이 되죠. 보는 눈이 있고 보이는 대상이 있어야 내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색온이다, 물질의 덩어리다 하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눈을 감아버리면 보이는 대상이 있어도 내가 볼 수가 없습니다. 눈이 있어도, 대상이 없으면, 아니면 껌껌하면 대상이 보이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내 눈과 보이는 대상이 있어야 만이 내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에 해당이 된다고? 물질에 해당이 되는 거라. 색온이라는 거라.

물질에 해당이 되는 것이지 이것이 내 것이 아니라.

물질하고 내 것하고는 다릅니다.

내 것이라는 것은 물질과 마음이 같이 합해진 것이 내 것이라.

그런데 물질만 있을 때는 어떻게 돼요? 내 것이 아니라.

 

죽고 나서 숨 탁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돼요? 누가 건드려도 몰라요, 당연히. 왜? 마음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없고 물질만 있을 경우엔 그거는 아무짝에도 못 쓰는 거거든. 그렇게 생각하라는 거라. 이 눈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이라는 거라 물질!

단순히 눈이라고 하는 물질. 손이라고 하는 물질, 발이라고 하는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해야 되는 거라. 이게 그게 색온이라. 물질의 집합체가 이 몸이라는 거라.

 

그래서 몸을 서른두 가지로 부처님이 나눠놨어요. 머리털, 손톱, 발톱, 이빨 이렇게 그 하나하나는 다, 여러분들 머리털 이거 하나 뺀다 해가지고 아까워합니까? 물론 그것도 아까워하는 사람도 있을거라. 대부분 사람들은 요거 하나 빠져가지고, 요 밑에 돌아다닌다 해서 요거 아까워 안 합니다.

그런데 요것도 물질이고 이것도 물질인데, 왜 요건 아까워하느냐는 거라. 누가 내 시선에 눈에 뭐가 보인다. 그럼 왜 자기 마음으로 판단한 거 가지고 그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느냐는 거라. 눈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질인 것뿐인데. 머리카락하고 똑 마찬가지라는 거라. 그렇게 판단을 하라는 거라. 이거는 물질이라는 거라.

 

여기 있는 것만 그러냐? 밖에 있는 대상도 마찬가지라는 거라.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 똑같은 물질이라고 봐버리면, 잘생긴 사람에 대해서 좋아하고 못생긴 사람에 대해서 싫어하고 하질 않는다는 거라. 물질로 봐라는 거라. 그것이 색온이라는 거라. 색온 이해하겠습니까?

 

그다음에 수온, 보는 눈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느낌. 느낌은 어떤 게 일어납니까?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무덤덤한 느낌. 그 느낌들을 수온이라 하는 거라. 즐거운 느낌이라고 집착하고 괴로운 느낌이라고 배척하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수온으로 알아차리라는 거라. 느낌은 느낌일 뿐이라. 왜? 느낌이 안 변하면 참 좋겠는데 이놈은 변하거든 느낌은. 아무리 즐겁다 하더라도 옆에서 “불이야” 할 거 같으면 화들짝 괴로워. 변한다는 거라 느낌이. 변하는 그거 어디에서 항상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며 변하는 그 느낌을 집착할 이유가 어딨느냐는 거라. 느낌은 그때의 느낌일 뿐이라는 거라. 그때의 즐거운 느낌일 뿐인 거고, 그때의 괴로운 느낌일 뿐이라는 거라. 이걸 수온이라고 하는 거라.

 

느낌으로써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즐겁기 때문에 즐거운 느낌이 항상한다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내가 집착하게 된다는 거라. 항상 안 한다고만 알아차릴 거 같으면 집착 절대 안 해. 느낌의 집합 덩어리라는 거라. 괴로운 느낌의 집합 덩어리, 즐거운 느낌의 집합 덩어리, 무덤덤한 느낌의 집합 덩어리. 그렇게 알아차리지 못하면 수취온이 돼버리는 거라. 느낌에 대해서 집착하게 된다는 거라.

 

그다음에 상온, 보통 상()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그럽니다. 대상을 인식하거나 기억하는 것을 상온이라 그럽니다. 탁 봤을 때 '음 누구네' 하고 요렇게 알아차리는 것을 상온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상온을 상온으로 보지 않으면 상취온이 돼버립니다.

내하고 의견이 맞는 사람이니까 "응 어서와" 미워하는 사람이 탁 왔는데 그냥 상온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저놈의 자식이 왜 왔노' 요렇게 돼버리는 거라. 상온은 상온으로써 알아차려라는 거라. 기억한 것, 기억돼있는 것, 이것을 인식한 것뿐이라. 그래서 '여자다, 남자다' 이런 개념일 뿐이라는 거라.

개념은 실재하고 다릅니다. 왜? 아무리 내하고 싫은 사람일지라도 그때 여기 탁 다가왔을 때는 내한테 뭐 맛있는 거 줄라고 왔는지 아니면 내가 잘못했다 하고 참회할려고 오는 건지 어떻게 내가 알아?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은 옛날에 나쁜짓 했을 때의 그 상온인데, 이 사람이 실제로 왔을 때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상온하고는 달라.

그런데 왜 똑같이 봐버리느냐는 거라. 상온으로써 못 보기 때문에 그리된다는 거라. '옛날에 기억' 요걸 붙잡고 있다는 거라. 그러지 마라라는 거라. 상온은 상온으로써 봐라. 이해하겠어요?

 

행, 조금 있으면 마칠게요. 막 지겨워가지고 그런다.

(),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 의도를 내는 거라. 의지를 일으키는 거라. 의지를 일으켜서 그 대상에 기울이는 것. 내가 뭘 '하고자 한다' 할 때 그걸 행온이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가고자 할 때 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갈 수가 없죠? 모든 것이 의도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행위들은 실제적으로 보면 의도로 인해서 다 이루어집니다. 의도가 일어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숨쉬는 것 하나조차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인제 행온입니다.

그런데 의도도 실재적으로 보면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변하지 않으면 그건 인간이 아니고 로봇이라. 탁 입력해놓은 그거 하나만 하고 딱 끝나버리면 아무것도 없는데, 로봇이 되면. 인간은 안 그렇거든. 인간은 끊임없이 뭔가를 생각하든지 생각을 안 하면 뭘 만지작거리든지 뭔가 하여튼 해.

살아있다는 게 뭡니까? 의도의 움직임이라! 의도가 계속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있다고 안 합니다. 그래서 그 의도는 그냥 의도로써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래서 조금 전에 일으켰던 의도, 조금 후에 일으켰던 의도 다 다르다고 봐야 되는 거라. 의도를 의도로써 알아차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온입니다.

 

그다음에 식온, 식온은 여러분들이 알 겁니다. '명확하게 인식하는 상태'. 대상에 대해서 그것을 인식하는 걸 그것을 식온이라고 합니다. 식온도 꼭 마찬가집니다. 정신적인 자극이기 때문에 지금 인식하는 것하고, 그전에 인식하는 것하고 다 다릅니다. 그래서 변하는 형태들을 띱니다. 어떤 경우든지 느낌도 변하고 행온도 변하고 그다음에 상온도 변화하듯이 식온도 변하게 됩니다. 변하는 무리에 포함이 되는 거지 그 어떤 것도 아니라. 그래서 모든 것들은 변하게 돼있다는 거라.

 

그런데 변한다고 판단을 안 하기 때문에 인식한 것, 내가 명확하게 결론 내린 것, 요거는 불변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거라. 불변하니까 어떻게 돼요? 다른 사람하고 의견이 다르면 싸우게 되는 거라. 자기 생각도 변한다는 생각을 못 하게 되는 거라. 어떤 경우든 인식한 것들은 변하게 돼있습니다. 그때 인식인 것뿐인 것이지 그때 순간순간 일어난 것뿐입니다.

의도가 그때 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나서 다른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집니다. 그다음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서 사라지고 나서 다시 또 다른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뿐이라는 거라. 그 범주에 속한다는 거라. 식온이라는 것도.

내가 명확하게 인식한 것 같지만 그것도 앞에 조건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뿐이라. 그 식온도 사라지고 나야 또 다음 마음이 일어나지는 거라. 그 연속선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라. 이렇게 봐라는 거라. 볼 때.

 

조금 전에 보는 것 가지고 얘기했습니다. 듣는 것도 꼭 마찬가집니다.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몸으로 접촉하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오온의 범주에 속한다는 거라.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거라. 이렇게 알아차려야 만이 윤회를 벗어날 수가 있다는 거라.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아까 얘기했죠?

 

견해! 견해의 세 가지 범주, 그거 벗어나버리면 수다원이 되는 거라.

수다원이 되든지, 설혹 견해의 범주를 못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윤회하더라도 어디에 태어난다고? 색계 무색계 천상세계에. 인간으로 태어나든지. 그러니까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라. 그 얼마나 좋은 거라? 조금만 공부하면 돼! 알겠죠?

자! 이제 시간이 됐으니까, 오온에 대한 걸 하나밖에 못 했네. 그래도 뭐 다 이해할 거라고 봅니다.

 

다음 시간에는 희망과 욕망 부분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프린트물 공부해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