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덩이에 빠지지 마라 (20120217)
오늘은 「구덩이에 빠지지 마라」라는 얘기로써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경전에 이런 게 있어요. 왕이 어떤 길을 지나가다가 맛있는 망고나무들을 발견을 했어. 그런데 지금은 다른 볼일들을 보러가는 중이기 때문에 따질 못하고 아! 내가 돌아오면서 저걸 따야겠다 생각을 가지고 지나 갔어. 그러고 나서 일을 보고 다시 그 망고나무가 있는 숲에 도착을 했는데 망고가 하나도 없는 거라. 왜 그럴까?
원숭이가 아무리 따먹어도 망고나무를 그렇게 다 따먹지는 않을 건데, 그런데다가 나뭇가지들도 막 부러져있고 이러거든.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해요. 그 왕이 '아, 이거 맛있게 생겼으니까 따먹어야지' 이렇게 생각할 거 같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 생각을 하게 돼있다는 거라.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거는 경험을 해봤을 거라. 그러니까 왕이 맨 앞에서 지나가게 되면 뒤에 오는 다른 사람들은 그걸 그냥 따먹습니다. 왕이 그런 생각을 했든 어쨌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닌 거고. 맛있겠다 싶으니까 그 사람들은 직접 그때 따먹어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나무 위에 있는 것들은 올라가서 가지를 부러뜨려서라도 따 먹게 되는 거고.
그러니까 당연히 왕이 돌아올 때가 되니까 망고가 하나도 없는 거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라. 그래가지고 왕이 실망을 해가지고 있다가 정원을 거닐게 됐어요. 정원을 거니는데 똑같은 망고나무가 정원에 있는 거라. 그런데 거기 정원에는 망고가 그대로 달려있을 뿐 아니라 나뭇가지도 부러진 게 없거든.
그때 탁 깨달았습니다. 뭘 깨달았을까?
"세상의 생활 방식에 관여를 하지 않게 되면 고요하고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생활방식에 관여하게 될 것 같으면 아까와 같이 상처나게 되고 또 부러지기도 하고 또 소중한 것을 잃게도 되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관여로부터 벗어난 상태, 왕의 동산에 있는 거는 대신들이 따먹질 못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탐스럽게 잘 익고 그대로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생활방식은 부처님이, 많이 돈을 모으기를 바라고, 또 명성이 높아지기를 바라고, 또 좀 더 오래 살기를 바라고 이런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는 잘 안되죠? 그대로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걸 스님은 비유를 해서 "구덩이"라고 그럽니다. 그런 구덩이에는 적어도 빠지지 마라라는 얘깁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 남에게 비난 안 받고, 또 자기가 애지중지 하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또 손해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거는 부처님이라도 마찬가집니다.
그 훌륭한 부처님이지만 밤에 칼을 든 사람이 달려와가지고 부처님을 죽일려고도 했고, 또 코끼리가 달려와가지고 부처님을 죽일려고도 하고, 돌이 굴러떨어져 가지고 몸에 상처가 나기도 하고.
또 하나의 일화는 순다리라고 하는 분입니다. 부처님의 명성이 자꾸 높아지고 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닌데 일부는 질투를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겁니다. 주변에 누가 돈 많이 벌었다. 아니면 자기보다 직급이 높아졌다 할 거 같으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걸 시기 질투를 하게끔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좋아하게 된 것들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외모가 훌륭하다든지 또는 그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 왕이 되는 것들을 포기해버리고 출가를 했다든지, 또는 부처님이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루신 붓다라든지 이런 것들로 인해서 존경하고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그러한 법을 설해줘서 내가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어줬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클 겁니다. 아무리 훌륭한 외모를 지녔고, 왕이 될 사람이고,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내하고 관계없는 것 같으면 사람들은 거의 존경하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법을 설하는 걸 들어보니까 아, 내가 따라가야 될 부분이고, 또 그렇게 하다 보니까 마음이 고요해지고, 또 깨달음에 한 발짝씩 다가가지는 거고, 그러니까 부처님을 좋아하게 되는 거고.
아무리 계급이 어떻고 해서 부처님이 그 계급들 다 쓸데없는 거니까 계급을 타파하는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해당이 안 되는 사람들은 사실은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이익이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좋아들 하는데 그 반대쪽에서는 부처님을 오히려 시기 질투를 하게 됩니다.
똑같이 가르치는 자의 입장입니다.
스님도 가끔씩 그런 것들을 경험을 하는데, 이번주 토요일에는 통도사 옆에 있는 영축사라는 데 가서 수행지도를 해줘야 됩니다.
옛날에 한번 거기서 법문을 해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듣고 있다가 자꾸 주지스님을 조르는 거라. “우리 그 스님 초청해서 법문듣고 수행 좀 해봅시다.”
이때까지 계속 안된다고 한거야. 주지스님의 입장에서는 내가 주지인데 나를 좋아하지 왜 엉뚱하게 한번씩 와가지고 법문해주는 스님을 초청해가지고 하자니까 기분이 안 좋은 거라. 그렇다고 신도들한테 그걸 얘기도 못하는 거고. 그러다가 사람들이 계속 조르니까 어쩔 수없이 그 수행법회를 개설했어.
그러면서 개설을 하면서 나한테 하는 얘기가 나는 이때까지 죄많이 짓고 살았으니까, 만날 사람들한테 돈내놔라, 돈내놔라, 뭔 기도한다, 뭔 제사한다 뭐한다 하면서 만날 돈내라 해가지고 솔직히 마음이 좀 안 좋았다는 거라. 좋을리가 있나, 그게. 마음이 안 좋았는데 한번 착한일 해볼려고 그런다는 거라.
그래서 뭔 뜬금없이 착한일을 한다고 그러나 했는데, 수행을 개설해가지고 사람들에게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다고. 그런데 이 스님은 그것도 하나의 돈벌이로 생각을 한 거야. 이때까지 습관이 그렇게 들어와있으니까. 그러면 저거 수행법회를 개설하면 일인당 돈을 얼마씩 받고 하면, 요렇게 계산 타진을 하는 거라. 그런데 그게 눈에 탁 읽혀.
그래서 첫마디가 너 착한일 할려고 할 것 같으면 수행법회 만들어서 돈받지 말고 그냥 무료로 해줘라. 그럴 것 같으면 내가 와서 해줄게. 그리하니까 처음에는 아무 얘기를 안 하더라고. 야, 이거 괜히 했다가는 또 돈도 안 벌고 무료로 해줄거 같으면 뭐하러 해주느냐 싶었던 거라. 그런데도 사람들이 해달라고 하니까 거절은 못하고 어쩔수 없이 하게 됐는데, 거기서 그 스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처음에는 자기가 자존심이 굉장히 상했다는 거라. 그런데 한편으로 돌아보니까 아이고 나도 이참에 만날 죄짓고 사는 것보다도 그래도 나도 수행도 좀 해보고 법문도 들어보고 하겠다 하는 마음이 약간은, 하도 주변에서 쑤셔싸니까 일어난 거라.
스님들도 그러는데 일반인들은 더 그렇습니다. 일반인들은 주변에서 그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걸 뛰어넘지를 잘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그 구덩이에 빠지게끔 됩니다. 적어도 여러분들은 그 구덩이에는 빠지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이 일화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구덩이에 안 빠지는가 하는 것들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명성이 높아지니까 다른 종교지도자들이 순다리라는 여자를 시켜가지고 거짓말을 하게끔 합니다. 여러분들 여기 열 시 되면 우리 선원에 왔죠? 그러면은 열 시 전후로 순다리는 이 선원에서 나가는 거라. 그리고 여러분들은 오후되면 선원을 나갑니다. 또는 저녁때까지 하는 분은 저녁 때가 되면 선원을 나갑니다. 그러면 순다리는 그때 선원으로 들어오는 거라. 여러분들 하고 거꾸로 하는 거라.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니라. ‘저녁에 뭐 하러 여기 선원에 와? 스님 혼자 있는데’
그래서 “지금 왜 오십니까?” 할 거 같으면 “부처님이 날 좀 보자고 해서 온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아침에 나갈 때는 “나는 부처님하고 일을 다 끝내고 인제 나간다” 하고 하는 거라.
당연히 사람들은 그말만 듣고는 이상하게 생각을 하는 거라. ‘저 여자가 밤새 부처님하고 뭘 어찌 했나’ 그게 일주일이 되니까 소문이 삽시간에 나버리는 거라.
실제 부처님이 그리했고 안 했고는 둘째 문제고. 그리고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한마디도 한 적도 없고 부처님 제자들도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그 얘기만 듣고 그렇게 된 거라.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에 이 이교도가 순다리를 죽여버립니다.
그래가지고는 부처님이 있는 기원정사의 땅에다가 묻어놔 버립니다.
그러면서 순다리가 갑자기 없어졌다 하고 얘기를 하는 거라. 그래서 소문을 뭐라고 냈느냐면 부처님이 나쁜 행위를 한 거를 제자들이 보고 제자들이 그걸 감추기 위해서 순다리를 죽여버렸다. 이렇게 소문을 낸 거라.
실제가 어떻게 됐든 간에 그렇게 되다 보니까, 이거는 부처님 제자들이 탁발을 나가도 어디 뭐 탁발할 수가 있나. 만날 가면 사람들이 비난하는 말만 해쌌지, 어떨 때는 돌을 던지기도 하지, 나쁜 놈의 자식들 어쩌고 하면서. 그러니까 도저히 못 살겠는 거야.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우리 여기서 떠납시다. 여기 아니면 살 데 없는 것도 아니고 저기 기원정사가 안되면 다른데 선원에 가서 있으면 될 거 아니냐, 떠나자고 그럽니다.
문제에 봉착해버리면 사람들은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 버리려고.
그런데 부처님은 안 그런 거라. 니가 여기서 도망친다 해가지고 그 비난하는 마음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는 거라. 떠났다면 비난은 잠잠해지겠지. 그런데 언젠가는 볼 거 같으면 그 생각이 나게 돼있다는 거라.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나쁜 마음을 계속적으로 심어주게 되고 그 비난은 오히려 더 증가할 것이다. 그러니까 "떠나지 말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비난을 받으면 자기 반론을 합니다. 아니다! 법적으로 하든지 명예훼손 했다고 고소를 하든지 뭘 하든지 해가지고 그 비난하는 걸 증명을 할려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뭐라고 했느냐면 "출가한 스님들은 비난받아도 그것을 침묵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맞대응해가지고 그걸 밝힐려고 하지 말아라. 그게 출가한 스님들에게 주어지는 계율조건입니다. 그러니까 스님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러는 거라. 그래서 다시 부처님한테 가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부처님이 그때 얘기한 게 뭐냐면, 그런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결하는 방법들입니다.
탁발을 나가가지고 탁발할 때 사람들이 비난을 하든 돌멩이를 던지든 뭘 하든 그럴 거 같으면 이 말을 하여라 하고 얘기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
"뭔가를 한 사람이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
"사람이 나쁜 행위를 할 거 같으면 나쁜 결과를 받는다."
이렇게만 얘기하라.
누군가는 거짓말 한 사람이 있다는 거라. 그럼 거짓말 한 사람은 '거짓말 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 할 거 같으면 가슴이 뜨끔 할 거고, 또 확인해 보지도 않고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지옥에 떨어지니까 가슴이 뜨끔할 거고, 나쁜 행위를 한 사람은 나쁜 결과를 받는다고 하니까 내가 나쁜 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거라. 나쁜 결과를 받을 거를 뭐 하러 하겠어?
직접 대고 그 사람에게 얘기하는 것은 아닌데도 누구든지 그 말을 들으면 가슴이 뜨끔한 거라. 비난을 한 사람이든 비난을 하지 않는 사람이든.
그게 사실은 부처님의 진리입니다. 나쁜 행위를 했으면 나쁜 결과를 받는다는 것!
그 얘기를 한 것 뿐이라. 그런데 점차적으로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 나쁜 행위를 하면 나쁜 결과를 받는다고 알고 있고 가르치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설마 나쁜 행위를 했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까 그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그 순다리를 죽인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는 거라.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대부분 사람들은 보면 자기 가족한테 얘기하겠지. 남편이면 아내한테 얘기하든지 참회하듯이 "아이, 참 내가 그걸 괜히 해가지고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이렇게. 그런데 그 소문이 어디 안 나나? 그 얘기를 또 누가 들었는 거라.
그래서 왕이 그 사람을 잡습니다. 순다리를 죽인 사람과 순다리에게 거짓말을 시켰던 그 이교도들을 잡습니다. 옛날 같으면 그걸 처형을 시켰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하고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한테 와서 물어봅니다.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사형을 시킬까요?"
부처님은 "사형을 시키지 말아라. 용서해줘라. 이미 그사람들은 자기의 결과를 다 받았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왕의 입장에서는 돌아가서 생각해보니까 이걸 그대로 둘 수가 없거든. 그렇다고 부처님 말대로 처형을 시키지 않을 수도 없고. 왕이 현명한 왕이었지. 생각해낸 게 뭐냐면, 이 사람들에게 마을을 돌면서 얘기를 하게끔 합니다.
"내가 순다리를 죽였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그 얘기를 그대로 전했습니다. "아! 저사람이 거짓말 했구나." "저사람이 죽였구나."
그렇다고 해가지고 그 죽이고 거짓말한 사람이 못사는 건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남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되고 또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부처님에게 비난됐던 것들은 그대로 깨끗하게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오히려 더 부처님을 우러러 보게끔 되는 거라.
"천한 행위를 한 사람들은 반드시 천한 결과를 부른다."
직접적으로 나에게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비난했던 사람들을 그대로 비난해버릴 것 같으면 그 사람은 또 악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그 사실을 그대로 덮고 내가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이번에 정치인들 문제가 자꾸 저렇게 번지는게 그거거든. 그거 그냥 덮어둘려고 자꾸 하는 거라. 그것으로부터 도망칠려고 하고. 처음부터 그냥 아, 그거 그렇게 됐으니까 내가 잘못했습니다. 했을 거 같으면 절대 문제되지 않을건데도 자꾸 문제를 번지게 한다는 거라. 인제는 걷잡을 수가 없게 되는 거라.
적어도 여러분들은 그런 일들에는 많이 빠질 겁니다. 세상사에서는.
내가 무슨 손해를 본다든지, 아니면 나를 다른 사람들이 업신여긴다든지, 좀 건강했으면 싶은데 건강 안 하고 만날 아파죽겠고 그럴 때라든지, 이런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걸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할 거 같으면 그 구렁텅이에 빠져버린다는 거라.
돈을 번다고 하더라도 또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고 하더라도 잃게끔 돼 있는 것이 이치입니다. 명예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고 내 건강도 꼭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변하지 않을 거 같으면 천년만년 살게 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다 이루게끔 되지 왜 지금 변하도록 만들어져 있겠어요? 그거는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는 거라.
그걸 이해하면서도 나는 자꾸 그 구렁텅이에 빠져버리는 거라.
출가한 스님들은 세속 일을 떠난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바라지도 않고 명예가 높아지는 걸 바라지도 않고 또 건강해지는 것들도 바라지도 않고 그럽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변해있더라도, 부처님이 침묵하라고 그러는 거라. 그건 너희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거라. 출가한 자들은 그것이 할 일이 아니라는 거라.
오로지 법을 익히고 그 법에 따라서 살아가고 그래서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하는 게 출가자들이 해야 될 일인데, 거 왜 세상일들이 돌아가는 이치에 일희일비 하느냐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은 그런 일들에 대해서 관여를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래서 침묵하라는 거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완전히 무결한 것을 바란다든지, 아니면 나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말아야 됩니다.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단지 내가 한 행위는 내가 반드시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을 자꾸 해야 됩니다.
남들이 한 일은 남들이 한 대로 놔두어라는 거라. 남이 나를 비난하든 아니면 나를 칭찬하든 그거 냅두라는 거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키라는 거라.
내가 그것으로 인해서 나쁜 마음을 먹고 나쁜 말을 하고 그런 행위를 하게 되면 그 나쁜 결과는 누가 받는 거라? 내가 받는다고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다는 거라.
부처님이 여러분들을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부처님이 설한 담마(法)가 그리고 부처님이 설한 위나야(律)가, 법(法)과 율(律)이 여러분들을 지켜줄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법을 따라서 살아가고 그 계율에 따라서 행하게 될 거 같으면 그것이 여러분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나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나 내 것을 뺏어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비난하지 말아라는 거라. 미워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 사람은 용서를 해줘야 됩니다. 그 사람이 참회하면 참회를 받아줘야 되고, 단지 그 사람이 저지른 죄까지도 용서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 업을 소멸시켜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건 그 사람이 그대로 받는 거라. "내가 거짓말 했소" 말함으로 해서 내가 그걸 받아들이게 되는 거라. 그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라.
그래서 세상사에 빠지지 않을려고 할 거 같으면,
맨 먼저 해야 되는 것이, 나와 남을 구분하는 아상(我相), 그 아상에 밥을 주면 안됩니다.
내 자신을 자꾸 드러낼려고 하고, 내 자신을 높일려고 하고, 내 것을 가질려고 하는 그런 것들에 밥을 줘버리면 안됩니다. 명예가 높아지기도 하고, 돈을 더 벌기도 하고, 또 건강해지기도 할 겁니다. 점점 더 젊어지기도 할 겁니다. 그리하더라도 그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알 거 같으면 그것이 다른 쪽으로 변하더라도 나는 그것에 대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거라.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 그것에 자꾸 밥을 주지 말아라는 거라. 안되는 걸 억지로 할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안 벌어지는 돈을 억지로 벌려고 할 거 같으면 거짓말을 해서 남을 속여가지고 벌게 되어있는 거고, 늙어갈 수밖에 없는 건데 그걸 안 늙을려고 할 거 같으면 보톡스 맞고 자꾸 인위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거라.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따르도록 하고, 자기 자신을 내세울려고 하고 높일려고 하는 아상에 밥을 주면 안됩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한 발자국 떨어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한 것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라는 거라.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탔던 망고나무는 열매도 다 없어져 버리고 가지도 부러져버리지만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정원에 있는 망고나무는 생생하게 그 모습을 가집니다.
비난을 받든 아니면 돈을 적게 벌든 명예가 떨어지든 그것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보라는 거라. 떨어져버리면 큰 문제 안됩니다.
조금씩 벌면 되지,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되지, 내가 바르게 계율 따라 살아가고, 부처님 법 따라서 지켜나가면서 살아가면 되지 하는 마음을 가져버릴 것 같으면 아주 간단해져버립니다. 왜? 그것들도 다 변하는 것들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변하는 거니까 언젠가는 돈도 벌게 되는 거고, 언젠가는 조금 더 건강해지게 되는 것이고, 당장 벼락치기 하듯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거라. 한발짝 반드시 떨어져서 보라는 거라.
세 번째는 부처가 되는 공부를 하려고 하지 말고, 부처로 사는 공부를 하십시오.
부처가 되는 공부를 할려다 보면 남을 돌아보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이 부처와 같이 사는 공부를 하게 되면 남을 돌아보게 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이 부족한 것들을 채울려고 하고 남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들을 가지게끔 됩니다.
수행을 하는데, 부처되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경행하는 자리가 이렇게 있다고 할 거 같으면 그 자리를 고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들이 그 자리를 하고 경행하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런데 부처로 사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누가 거기에서 경행을 할 거 같으면 내가 다른 자리에 가서 한다든지, 아니면 경행 길이를 좁히든지 해서 불편하지 않게끔 배려를 하게 되는 거라. 어떤 게 부처님의 마음일까?
부처되는 공부만 해가지고는 부처가 안됩니다. 부처로 사는 공부들을 해야 만이 부처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네 가지들이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은 적어도 살아가면서 여러 구렁텅이를 만나더라도 적어도 그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언제까지 해야 될까? 그런 공부를? 죽을 때까지 해야 되는 거에요? 그 물을 파낼 때까지 해야 됩니다!
지하수를 뚫을 때 백미터 밑에 지하수가 흐를 거 같으면 백미터까지 파야 됩니다. 여기에 파가지고 오십미터 파니까 안 나오니까 여기 없다 하고, 또 다른데 가서 도 한 칠십미터 파니까 또 없다하고 그럽니다.
그냥 한곳에 계속적으로 파내려 갔으면 오십미터 없으면 칠십미터를 파고, 칠십미터 없으면 구십미터를 파고, 그래도 없으면 백미터까지 팔 거 같으면 물이 나옵니다. 지하수가 필요하면 지하수의 깊이만큼 파나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게 이익이 있다고 할 거 같으면 그 담마의 선물을 받고 싶어 할 거 같으면 그마만큼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지하수의 시원함을 맛볼 수가 있는 겁니다. 담마에 대해서 담마를 공부하고 또 그것 따라서 살아가면서 아! 이것의 즐거움을 모르고, 또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이로움을 모른다고 할 거 같으면, 그런 것들이 올 때까지 계속적으로 해야 됩니다. 조금 했다가 또 다른 거하고, 조금 했다 다른 거 하고 할 거 같으면 그거는 언제까지라도 그 시원함을 못보게 된다는 겁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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