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붓다야나선원법문

의지를 관리하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20151218. 대구)

담마마-마까 2022. 1. 5. 09:00

https://youtu.be/IoqJFBKpfiY

* 의지를 관리하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20151218. 대구)

 

오늘 제목은 「의지를 관리하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는 제목입니다.

의지! 여러분 뜻대로 이거 하는 거죠? 신의 뜻대로 하는 것은 아니죠?

의지, 여러분들의 뜻대로 하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보고 듣고 가고 앉고 하는 것 다 여러분 뜻대로 하는 거지 여러분 뜻대로 안 하는 게 아니죠? 또는 내가 남을 칭찬한다든지 아니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든지, 아니면 내가 도둑질을 안 한다든지 이런 것도 내 뜻대로 그렇게 하게 됩니다.

그런데 눈을 깜빡이는 것, 호흡하는 것, 위에서 소화시키는 것, 이것도 여러분 뜻대로 하는 걸까? (수행자 : 아니요. 자율신경이...) 그래? 그럼 그거는 누가 시켜서 하는 거라? (수행자 : 자유의지로 하는...) 그럼 그거는 신의 영역이야? 신이 그렇게 하라고 만들어가지고 그렇게 하는 거라?

 

여러분들의 의지가 곧 업이 되기 때문에, 업 부분에 의해서 여러분들이 태어나게 됐는데, 그럼 쉽게 말하면 그것도 다 여러분들의 의지대로 해야 된다는 건데, 의지의 영역에 속해야 되는 건데 그거는 왜 그래?

모르니까 호흡하고 이런 것들은 내 뜻대로 안 된다고 그러는데, 호흡도 자기 뜻대로 하는 사람들도 있죠? 멸진정에 든 사람들은 자기가 호흡 안 합니다. 일주일 동안! 그럼 그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호흡 안 합니다. 그런 그거는 여러분들 얘기대로 할 것 같으면 틀리게 될 거 아니라.

또는 소화시키는 것도 여러분 뜻이 아니고 그냥 장기들 활동이다, 그럴 것 같으면 내가 좋은 마음 가지고 뭔가를 먹으면 소화 잘 시키는데, 나쁜 마음 먹고 먹으면 소화불량이 되는 건 누가 그런 거라? 자동적으로 될 것 같으면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든지 간에 그건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해야 되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렇지는 않잖아?

 

그래서 그걸 착각하면 안 되는 거라. 그걸 자꾸 무의식이라는 영역으로 포함시키면 큰일납니다. 그건 불교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의지 부분은 이렇게 보면 됩니다.

 

업(業)이 되는 의지가 있고, 업이 되지 않는 의지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전에 얘기했지만 자연스럽게 되는 것들, 눈을 깜빡인다든지 아니면 소화시키는 거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호흡하는 거라든지 이런 것들은 업이 되는 영역에는 속하지 않는 그런 거지만 그것도 의지의 영역에 속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보고 듣고 가고 앉고 하는 것, 그거는 업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죠? 내가 봤으면 업이 될 거고, 내가 봤으니까 예쁘다 하고 아니면 싫다 하고 마음이 일어나면 그건 업이 되는 거고, 내가 보지 않고 탁 보여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라? 그건 내 업이 아니죠?

쉽게 말하면 누군가 뭔가를 주었다, 받으면 내 것이 되는 거고, 안 받으면 그걸 나한테 줬다고 하더라도 내가 안 받으면 내 것이 안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거라. 그래서 그런 것들은 어떤 것은 업이 되고, 어떤 것은 업이 되지 않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런데 어떠한 경우든 업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을 비난하는 것, 칭찬하는 것, 아니면 남에게 도움 주는 것, 아니면 도둑질하는 것, 이거는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아니죠? 자기가 스스로 하는 겁니다. 자기가 자유의지로 인해서. 그래서 그런 것들은 전부다 업이 되는 것들입니다. 업이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가지고 그것이 업이 안 된다고 해가지고 의지가 없는 것이다 하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모든 행위들은 의지에 인해서 일어나지는 것들이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 "의지를 잘 관리하면 그래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들이 됩니다.

 

첫 번째, 「사는 것은 행위이다.」

 

살아가는 것들은 모든 것들은 행위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행위가 없으면 산다고 하지를 않는 거죠. 그래서 밥을 먹든 아니면 뭔 생각을 하든 하는 것들은 전부 행위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 행위들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행위를 안 하고, 그 행위라고 하는 것은 말이나 몸으로나 아니면 생각하는 것으로나 신·구·의를 통해서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없을 거 같으면 본인은 아마 산다고 얘기를 못할 거라.

 

그러면은 치매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은 보면 뇌세포의 일부가 파괴되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행동 범위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본인이 밥솥에다가 밥을 해야 될 때 그냥 쌀을 씻지도 않고, 거기다가 물도 붓지도 않고 쌀을 밥솥에다가 그냥 집어넣어 놓고 버튼을 탁 누릅니다. 그런 경우를 보거든요. 그런데 본인은 분명히 쌀을 하고 있는 거라.

단지 머리의 일부 영역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인식 못하는 것뿐인 것이지 어쨌든 본인이 행위를 하는 겁니다. 그런 경우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하더라도 그것도 일반적인 행위하고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겁니다. 그래서 치매에 걸렸든 또는 아주 안 좋은 상태에 있어놔서 식물인간 같이 누워있다고 하더라도 완전하게 이 행위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내가 말을 못하는 것뿐이지 듣는 거는 또 가능하고, 또 내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뿐이지 감각은 있는 경우도 있고, 그것도 치매와 마찬가지로 일부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딱 죽어버리는 상태일 거 같으면 행위 자체는 할 수가 없는데 살아있는 경우에는 어떤 경우든지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행위를 일으키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의지가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은 의지로 인해서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아까 처음에 호흡이라든지 소화시키는 거라든지 눈을 깜빡이는 거라든지 이런 것들은 자신의 의지라는 생각을 항상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걸 지금 대승불교 같이 육식(六識) 말고 다른 무의식(無意識) 그다음에 칠식(七識) 팔식(八識) 이렇게 엉뚱한 얘기들을 하게끔 됩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끔 그런 거 있죠? 식물인간이 됐을 때 그 생명을 뺏을 권리를 의사로 인해가지고 그걸 합법화하는 데도 있고 합법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볼 거 같으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설혹 식물인간의 상태라고 하더라도 그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하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그렇게 봅니다.

 

래서 "행위를 일으키는 것들은 의지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걸 밑에 부분에 쭉 적어놨습니다. 왜 그럴까? 탁 죽음에 이르게 되면, 죽음에 이를 때가 되면 살고 싶은 마음이 탁 일어나게 됩니다. 그전에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줄 알았는데 탁 그게 일어나거든. 그걸 '생존욕구'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생존욕구는 누가 만드는 겁니까?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자기 의지대로 만드는 거지 남이 나에게 너 더 살아라 하고 하는 것들은 아니라는 거라. 어떤 다른 특정한 개체가 나에게 그렇게 만들어준 것은 아니라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행위들은 특히 무의식이라고 일부에서 알고 있는 것들은,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무의식이 아니고 단지 내가 그것을 잘 알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특정한 상황이 되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럴 것 같으면 만약에 멸진정에 들었다. 호흡도 멈추고 인식하는 것도 멈추고 어찌 보면은 죽은 송장과 마찬가집니다. 체온도 서서히 떨어지게 돼있는 거고. 죽고 나서 체온이 떨어지는 거하고 멸진정에 든 사람하고 체온이 떨어지는 거는 또 다릅니다. 그런데 뭐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멸진정에서 깨어날까? 생존욕구가 있어서! 생존 욕구가 있기때문에.

그래서 생존욕구라고 하는 것들도 의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무의식은 없다 하는 것입니다.

 

단지 생존욕구가 강하겠어요? 아니면 내가 밥을 먹을려고 하는 마음이 욕구가 강하겠어요? 생존욕구가 훨씬 강하거든. 쉽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들이 훨씬 의지가 강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의지가 더 강렬한 걸 여러분들은 모르고 있다는 거라.

 

보통 여러분들이 인식하는 범위 내에 있는 의지들은 굉장히 약합니다. 그래서 많이 바뀌죠? 책을 읽을라고 했다가도 금새 딴마음이 들어오면 그 의지가 탁 다른 것으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여러분들이 하는 그 의지는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내가 개발시켜주지 않으면 그 의지대로 계속해나가지 못하는 거라.

 

그리고 생존욕구 같이 굉장히 강렬한 것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거는 수행을 통해서 죽여버려야 될 것들, 없애버려야 될 것들입니다. 쉽게 말하면. 숨 쉴려는 거, 살고 싶어하는 거, 이런 것들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점점 더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거라.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거꾸로 살아가고 있는 형태들이라는 거라.

 

그다음 밑에 보면, 「자아는 사실을 속인다.」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그것이 자아가 자신을 속이고 실재하는 것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실체는 없는 거죠? 조건 따라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일어난 것들은 반드시 사라지게 돼있는 거고, 그 연속인 것뿐인데 자아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자꾸 여러분들이 아까 얘기했던 여러분들이 무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생존욕구가 강한 것들은 다른 영역으로 자꾸 생각을 해버린다는 거라. 사실을 자꾸 속여버리게 되는 거라. 그런 것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 밑에 「인식할 수 있는 의지」 부분입니다.

 

의지는 2종류라고 조금 전에 얘기했습니다. 크게 나누면 세 종류가 됩니다. 업의 영역으로 했을 때, 업이 되는 것, 업이 되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그다음에 업이 안 되는 것, 이렇게 업의 영역으로 나누면 세 가지인데, 그것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의지, 인식하지 못하는 의지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인식하는 의지는 어떠한 경우든지 약하다는 거라. 그래서 남에게 도움을 주고 도둑질을 하고 이런 것들은 내가 인식하고 내가 또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강화시켜줘야 되는 거라. 강화시키는 것은 나쁜 거 강화시키면 안 되겠죠? 좋은걸 강화시켜줘야 됩니다.

 

그래서 보는 것도 내가 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보여지도록 자꾸 해야 되는 거고, 그래서 약한 의지들은 자꾸 인식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호흡하는 것도 인식할려고 해야 되는 거고, 그냥 걸어가고 있을 때는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려고 해야 되는 거고, 밥을 먹을 때도 밥을 먹는다고 분명하게 인식할려고 자꾸 노력해야 되는 거고, 그래서 그걸 "알아차림"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알아차려야만이 알아차림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때 그 의지는 강해지게 되는 거라. 왜 그럴까? 그게 강하지 않으면은 마음은 항상 나쁜 방향으로 그리고 행복을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은 움직이게끔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여러분들은 행복을 바라죠?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겁니다.

"수카까마 부따니(sukhakāma bhūtāni)" 그럽니다. "모든 존재는 행복을 바란다."

 

행복을 바라는데도 행복하게 안 되는 것들은, 그 인식하는 의지들을 강하게 만들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뭐가 그렇게 만들까?

 

첫 번째 게으름부리는 것, '알라시얀(ālasiyaṁ)' 이라고 그럽니다.

게으름 부리는 것들은 이 알라시얀이 생겨날 것 같으면 꼭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몸 안에 딱 바이러스가 들어옵니다. 그러면은 감기 들어오면 몸에서는 그걸 몰아낼려고 하지만 마음은 어떻게 돼요? 뭘 하기 싫어집니다. 뭘 할려는 마음들이 자꾸 없어집니다. 그걸 알라시안이라고 그럽니다. 그런 것들은 어쨌든 약을 먹든지 아니면 뭐 주사를 맞든지 아니면 따뜻하게 한다든지 이런 노력으로 인해서 그 감기들을 몰아낼 수가 있는 겁니다. 병이 걸렸을 때도 그렇게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게으름 부리는 알라시안의 바이러스가 들어올 것 같으면 그걸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그걸 몰아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됩니다. '위리야(vīriya)'라고 하는 노력의 힘으로써 그것을 끊임없이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행복을 바라면서 행복하지 않는 것은 인식하는 의지들을, 약해진 의지들을 강하게 안 만들었기 때문에 그걸 강하게 만들려면 자기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거라. 끊임없이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또 행복하게 되는데 장애요인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거부하는 것! 그걸 빨리어 용어로 '도사(dosa)'라고 그럽니다.

'분노'라고 얘기하는데, 분노는 어떠한 경우든지 거부하는 겁니다. 대상도 거부하게 되고, 자기 자신도 거부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거부하게 될 것 같으면 죽음을 자살할려고 하게 됩니다. 남을 거부하게 될 것 같으면 그걸 미워하게 되는 거고. 그래서 거부하는 것이 있을 것 같으면 행복하고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의지를 키워주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의지들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좋지 않은 의지들을 키워주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그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나는 것들은 굉장히 경계를 해야 됩니다.

게으름부리는 거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뭔가를 해야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방어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분노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노력해가지고 그걸 다스리지 않으면 끊임없이 옷을 바꿔가지고 나타나게 되는 거라. 미워하는 것 뿐아니라 나를 내세울려고도 하고, 의심하는 것도 생겨나는 거고, 여러 가지 옷을 바꿔가면서 자꾸 나타나게 된다는 거라. 전부다 거부하는 현상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반드시 경계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할 때든 아니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싫은 마음이 일어난다고 할 거 같으면 ‘아, 내가 도사가 일어났구나’ 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남 잘되는 걸 보게 될 것 같으면 그걸 칭찬해주고 함께 기뻐해줘야 되는 것이지 그걸 배 아파 할 이유가 없는 것들이라는 거라. 남들이 다른 수행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래 너는 참 잘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도 배워볼려고 하고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려고 해야 되는 것이지, 너는 틀렸다 이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라.

 

그래서 거부하는 마음들이 일어났을 때에는 그 반대적인 것 '무디따(muditā)' 항상 마음에 기쁨을 자꾸 일으키도록 해야 됩니다. 기쁨을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그 도사라고 하는 것들은 몰아낼 수가 있는 겁니다. 마음에 자꾸 기쁨들이 일어날 것 같으면 특히 진리에 대해서 자꾸 기뻐하는 마음들이 일어날 것 같으면 잔잔한 것 이런 것들은 마음에 와닿지도 않습니다.

니가 무슨 수행을 하든 간에 지는 지가 좋아 죽겠는데 남이 뭘 하든 뭔 관계있어? 놔둬버리면 되지. 자기가 마음대로 하게. 그것이 설혹 다른 방향으로 가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것들이 내가 지금 할 수 있으면 하지만, 그게 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할 거 같으면 적어도 마음에서 그것을 거부하려는 마음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라.

 

그다음에 그 '도사'의 영역에는 '잇사(issā)'라고 하는 질투하는 영역도 포함이 됩니다.

그다음에 '맛차리야(macchariya)'라고 해서 인색한 것들 그런 것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도사는 어떤 면에서는 보면 굉장히 많은 영역들입니다. 단지 성만 내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굉장히 많은 영역들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꾹꿋짜(kukkucca)'라고 해서 후회하는 영역들도 다 포함이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자기 자신을 행복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는 생각을 반드시 해야 됩니다. 그런 것들을 자꾸 몰아낼려고 했을 때 자신의 의지들은 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의지가 강해져야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거 아니라? 자기가 행복을 바라면 그럼 “행복하세요” 할 것 같으면 “예” 하고 행복한 방향으로 나갈 거 아니라.

 

그다음에 또 하나가 뭐냐면 비교하는 것 '마나(māna)'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꾸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을 내세울려고 하고, 아니면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비교하는 마음들도 마찬가지로 행복해지는 것들을 방해하는 요인들입니다.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의지를 강하게 해야 됩니다.

 

행복해질 수 있는 의지를 강하게 만들어라는 거라. 그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애수행도 하는 거고, 그다음에 무디따 수행도 하는 거고, 평온한 마음을 지니는 수행을 하는 거고, 이런 각각의 수행들을 하고 하면서, 현상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띠하는 것 알아차릴려고 하는 거고, 그것들을 해나가는 거라.

 

그 밑에 「강한 의지를 가진다는 것」 하고, 그 밑에 「인생은 선한 행위로부터 시작한다」 하는 부분입니다.

 

살아가는 것은 선한 행위가 있지 않을 거 같으면 그 인생은 참 잘못 산 겁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남을 봤을 때 ‘아, 그 사람이 예뻐죽겠다’ 하는 것이 좋겠어? ‘그 사람이 미워 죽겠다’ 하는 것이 좋겠어?

그래. 그거라. 선한 의지들이 강하게 될 거 같으면 남이 좋은 부분만 자꾸 보게 됩니다. 자기가 좋은데 좋은 말 하지 나쁜 말 하겠어? 그래서 그런 것들은 항상 강화시켜주어야 됩니다.

 

인생은, 자신이 잘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은 내가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강화시켜줬을 때 그렇게 돼나가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 생각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수행이 깊어질 거 같으면, 아까 여러분들이 잠재의식이라고 생각했던 업이 되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도 보여져버리는 거라.

호흡, 볼 수 있죠? 그전에 여러분들이 호흡을 알았습니까? 자기가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호흡하고 있는 거 알잖아. 그래서 호흡을 통해서 다른 것들도 다스려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거라.

 

호흡도 일정하지 않고 내 상태에 따라서 호흡도 변하고 있다는 걸 아는 거라. 마음이 평온하면은 호흡도 느려지고 고요해지게 되는 거고, 더 평온해지면 더 가늘게 쉬고 더 길어지는 거고, 그러다 보면 점점 더 호흡은 짧아지게 되는 거고.

그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호흡이 되는 것이지 이게 뭐 자연스럽게 생겨났으면 무조건 호흡한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눈 깜빡이는 것, 그것도 마찬가지고 아까 소화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의 마음, 단지 그것들은 실제로는 굉장히 강한 것인데, 그것들을 내가 다스리지 못하고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들의 영향을 받는 것뿐입니다.

 

결국에는 지금 현재 내가 모든 것들을 완성했다 할 거 같으면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면 생존욕구는 사라져버립니다. 잘 살았고 했는데 당연히 잘 갈 걸 알기 때문에 지금 목숨이 끊어진다고 하더라도 아까워해야 할 이유가 없어져버리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이 생존욕구라고 하는 것이 잠재되어있던 의지들을 드러나게끔 해주는 거라. 그래서 생존욕구를 끊음과 동시에 그 잠재되어 있는 것들도 분명하게 다스려버리게 된다는 거라. 그런 것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 마지막 페이지에 보면

이 부처님의 조언은 간단하다. 나쁜 것이라면 멈춰라. 선한 것이라면 해라. 그뿐이라. 그래서 그것이 더욱 더 견고해지도록 하라는 거라. 자기 행복하게 되지 않는 길을 하지마. 그리고 행복하게 되는 길들은 하라는 거라.

그래서 알라시안이나 도사나 아니면 마나나 이런 것들은 일으키지 말아라는 거라.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멧따라든지 사띠라든지 무디따라든지 이런 것들은 끊임없이 하라는 거라.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데 왜 안 하느냐는 거라.

 

부처님이 말한 것은 누구에게도 통용되는 것이고, 그리고 어떤 시대에도 통용이 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걸 진리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괜히 어떤 존재가 있어가지고 모든 것들을 관장한다든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의식이 있다든지 이런 헛된 망상들에, 그거는 어찌 보면 유희입니다. 유희! 개념에 빠져버리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휘말리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포인트는 보면

• 산다는 것은 행위를 하는 것이다.

• 의지가 행위를 일으킨다. 모든 행위는 의지가 일으키게 됩니다.

• 의지가 더러워지면 인생은 악의 길이 되는 거고

• 맑고 깨끗한 의지를 일으키면 인생은 행복하게 되는 거고, 그런 인생을 걸어가야 됩니다.

• 그래서 의지의 관리는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참 잘산다 하는 얘기를 들을려면 의지를 잘 관리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

의지를 관리하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길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자! 오늘은 태국에 출국하기 전에 간단하게 여기서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