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7 일상수행법문

꽃은 진리의 눈을 뜨게 한다. (20160414)

담마마-마까 2022. 1. 30. 13:40

https://youtu.be/Sf54QIFifX0

* 꽃은 진리의 눈을 뜨게 한다. (20160414)

 

오늘은 「꽃은 진리의 눈을 뜨게 한다」 하는 제목으로 얘기하겠습니다.

 

한 15년 전이죠. 태종사에 있을 때 스님이 실수한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그 수국축제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 스님이 처음 수국축제를 시작할 때의 의도는, 수국꽃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오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불교의 진리에 대해서 세미나도 하고 또 여러 가지 강연들도 하고, 그래서 '아, 조금 더 사람들이 바른 진리에 눈을 뜨게 했으면' 하는 생각에 수국축제를 시작했는데, 첫해하고 나서 스님이 태종사를 나왔죠? 그 뒤에도 해마다 수국축제를 지금까지도 태종사에서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번도 사람들이 꽃 보러 오지 진리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참 스님이 처음에 수국축제를 시작한 의도와 다르게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아, 내가 왜 그때 그걸 한다고 그렇게 했을까' 후회들을 할 때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 통도사 쪽에 있다가 스님이 점심 먹으러 가자 해가지고 점심먹으러 간 데가 마침 작천정이라는 데를 갔었어요. 거기는 벗꽃이 굉장히 유명한 데 거든. 사람들이 참 많이 와가지고 벗꽃 구경을 하고 하더라고. 그런데 재밌는 걸 봤어요. 벗꽃이 많이 떨어져가지고 밑에 바닥에 있는데, 물론 피어있는 벗꽃을 보고 즐거워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떨어진 꽃을 수북히 모아가지고 머리 위에다 휙 던져가지고 그렇게 떨어지는 걸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살아있는 것이 즐거운 건가? 아니면 죽은 것이 즐거운 거라? 어떤 게 즐거운 거라?

꽃잎은 떨어져 있으면 죽은 겁니다. 죽은 걸 보고 즐거워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곧 떨어질 거지만 어쨌든 지금은 살아있는 걸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냐면 그것이 살아있고 죽어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는 거라. 그 사람들은 꽃을 핑계로 자극을 구하고 있더라고. 그 나무 밑에서 술 마시고 맛있는 거 먹고 떠들고 놀고 그게 좋은 거라. 꽃놀이들 많이 갖다 왔지?

그걸 보면서 '아, 사람들은 핑계거리를 만들어가지고 저렇게 자극을 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꼭 꽃이 아니라도 오만 기념일, 무슨 행사, 빼빼로 데이, 무슨 데이 하면서 뭘 만들어서 계속적으로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살아가는 것이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고 하는 것들, 그냥 육근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에 계속 스물네 시간 자극을 구하고 있으면서도, 그것도 부족해가지고 또 특별한 뭔가를 하면서 자극을 더 구하고 있는 거라.

자극만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해가지고 하는데 만족하지 못할 거 같으면, 맛있는 밥 먹으러 갔는데 맛이 없을 거 같으면 성을 냅니다. 뭔가 기념일이 있는데 누군가가 기념일을 해주지 않았으면 또 성을 냅니다. 자극을 구하고 또 성냄을 가지고 계속적인 그 순환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걸 대상으로 해서 진리에 눈 뜨게 한다는 건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태종사에서 괜히 수국축제를 시작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그런 자극에 걸리도록 만들어주는 죄가 크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저기 우리 선원 저쪽에 꽃이 무슨 꽃인지 아세요? 무슨 꽃이라? 쟈스민이라.

저게 밤에 활짝 피고 생기가 있다고 해야 되겠죠. 낮에도 피어있지만 밤에 냄새가 훨씬 더 강합니다. 낮에는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덜한 편입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쪽에는 부처님이나 신에게 바치는 꽃 중에 최고로 치는 게 저 쟈스민 꽃입니다. 냄새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멀리까지 퍼지게 됩니다.

그런데 저 쟈스민 꽃은 지고 나면 되게 보기 흉합니다. 벗꽃은 지고 나더라도 갈색이 조금 있다고 하더라도 벗꽃잎이 여러개 많이 있을 때는 그렇게 흉한지는 모르는데 저 쟈스민 꽃은 탁 지고나서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금방 꼬들꼬들 해져서 아주 보기 흉하게 됩니다. 대부분 쟈스민 꽃은 그래서 하루를 못간다고 그럽니다. 탁 떨어지고 나면. 그래서 쟈스민 꽃을 올렸을 거 같으면 올리자마자 조금 있으면 한나절 정도 있으면 그 법당 청소하는 분들이 싹 쟈스민 꽃을 치워버립니다. 가장 좋다고 가장 많이 올리는 꽃인데도 그런 실정인 거라.

 

그런데 그런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벗꽃도 꼭 마찬가지로 떨어지고 나면, 이미 생명이 다한 거기 때문에 죽음이 없는 죽음의 과정을 겪고 있는 거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말라가고 있고 보기 흉해집니다. 그걸 좋다고 머리 위로 휙 던지는 건 또 뭐 하는 거라? 여러분들이 죽은 동물들 보고 그거 좋아하지는 않을 거라. 또는 죽은 사람들보고 그거 좋다고 그러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이 적어도 꽃을 봤을 때 느껴야 되는 것들이 뭔가 하는 것들을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살아있는 것을 즐겨야 되는 거라? 죽은 것을 즐겨야 되는 것이라? 어떤 것을 즐겨야 되는 것이라? 그것은 어떤 경우든지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것은 그것은 계속 살아있을 수 없고 곧 죽게 돼있는 거라. 죽어있는 것들을 보고 우리는 그것을 좋다고 해야 될 이유들도 전혀 없는 거라.

오히려 그것을 보고 우리는 욕구만 계속적으로 더 일어난다는 거라. 새로운 욕구를 끊임없이 갈구한다는 거라. 벗꽃 지고 나면 무슨 꽃, 무슨 꽃, 무슨 꽃, 기념일 이거 지나면 또 어떤 기념일, 어떤 기념일.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하는 것일 뿐인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욕구를 일으키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분노를 일으킵니다.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는 것은 그래서 주관적인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주관적인 것은 개개인마다 보는 개개의 생명마다 다 다릅니다.

우리가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감정을 느낄 때, 그 밑에 있는 개들은 꽃을 보고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먹고 던지는 고깃덩어리가 더 즐거운 것이지.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주관적인 것들이라는 거라. 그리고 그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외부적인 세계로 인해가지고 그 감정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밖에 것들은 어떠한 것이든지 외부적인 대상일 뿐입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맛보는 것들은 내가 지금 보고 듣고 맛보고 하는 것이지 밖에 있는 대상이 나에게 그렇게 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는 벗꽃을 보더라도 그것에 즐거워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것들로 인해서 즐거움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런데 왜 자꾸 그 주관적인 감정에 휩쓸려가지고 그 감정을 탐·진·치를 일으키는데 계속적으로 휘말려 들어가느냐는 거라.

 

감정을 쫓아 돌아다니다가 보면은 끊임없이 자극을 구하게 돼있습니다.

자극을 구하면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관계없이 자신의 감정대로 자꾸 살려고 하게 됩니다. 변하지 않고 또 그것이 실체가 있는 것들이라고 할 것 같으면 그리해도 괜찮겠지만 변하지 않고 실체로써 존재해 있고 그것이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라.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저 쟈스민 꽃이 조금 있으면 지금 저기 보라색이 됐다가 하얀색으로 바뀌고 나면 하얀색이 점점 엷어지면서 꽃이 하나 툭 떨어집니다.

여러분들 몸에 붙어있는 탐욕이라고 하는 것, 아니면 성냄이라고 하는 것, 저 꽃과 같이 하나씩 툭 떨어뜨려 줄 수 없는가?

꽃은 자기가 버거우면은 그것을 떨어뜨려 내버립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가지고 있는 것들이 버겁지는 않느냐는 거라. 계속적으로 그것으로 인해서 실패를 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으면은 그것을 떨어뜨릴 방법이 없습니다.

 

탐·진·치가 일어나는 것은 밖의 것과 관계가 없습니다.

주관적이기 때문에 밖의 세계와는 더더구나 관계가 없습니다. 밖의 것과 관계가 있을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객관적이 되어야 됩니다. 누구든지 그것을 맛보면 누구든지 맛있어야 되는 거고,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그것이 아름다워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실은 그렇게 되지를 못하고 있다는 거라.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것들은 여러분들에게는 대상이 되지를 못합니다. 수행에서도 객관적으로 대상을 알아차림 해야 되듯이 주관을 가지고 대상을 알아차릴 수는 없는 겁니다.

 

밖에 벗꽃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것은 보여지는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면 내가 알아야 되는 것은 그냥 보여지는 겁니다. 설혹 보여지는 것으로 인해서 아름답다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회입니다. 한 번뿐인 겁니다. 아름다운 감정이 지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아름답다 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되는 것이지, 그 아름다운 것들을 계속적으로 유지할려고 해서는 집착이 항상 생겨나게 된다는 거라.

 

그런데 참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렇게 알지 못하고 우리 마음은 굉장히 약하다는 거라. 밖에 것으로 인해서 휩쓸려 버린다는 거라. 그러니까 벗꽃을 보고 즐길려고 하는 거고, 또 그 즐기는 것이 대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감정으로 휩쓸려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벗꽃이 지든 아니면 벗꽃이 없는 장소이든 놀려고 할 것 같으면 얼마든지 놀게 되는 거라.

감정을 콘트롤 하지 못하면은 마음은 항상 밖의 세계에 빠져들어가 버린다는 거라. 마음은 그렇게 휩싸여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뭔가를 기대하게 되고 또 뭔가를 밀쳐낼려고 하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땅 위에 올라온 물고기와 같이 마음은 항상 팔딱거린다" 물 속에 있어야 될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서 땅 위에 있을 거 같으면 그 물고기는 항상 팔딱거리게 됩니다. 제자리로 돌아가야 됩니다. 여러분 마음이 밖에 것에 휩싸여 들어갈 거 같으면 항상 마음은 탐·진·치에 팔딱거릴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래서 항상 마음에서 탐진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밖에 것들로 인해서 좋고 싫음들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하는 거라.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알았을 거 같으면 아름답다고 분명히 알고 있을 거 같으면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서 더 이상의 작용은 하지 않습니다. 꽃이 떨어졌으면 꽃이 떨어졌다고 알게 되는 거고, 그래서 마음에서는 그것을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지를 않게 되는 겁니다.

 

밖의 세계에 마음을 두어야 될 것이 아니고, 내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안에다가 마음을 두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꽃잎이 하나 떨어질 때, 나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붙어있는 탐욕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 툭 떨어져 나가버리게 되는 것이고, 나에게 붙어있는 성냄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 툭 떨어져 나가도록 해야 되는 것이고, 자연의 것은 자연 그대로의 법칙에 인해서 꽃이 피고 꽃이 집니다. 그래서 버거우면 떨어뜨려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붙어있는 탐·진치·를 얼마만큼 떨어뜨리고 있느냐는 거라.

 

무상한 것이 보이지 않을 거 같으면 그 무상한 것들은 알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서 '아, 참 나는 괴롭다'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무상함을 보지 못하면 그것이 항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찾게 된다는 겁니다.

찾는다고 해가지고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또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나에게는 끊임없이 괴로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도 해야 됩니다. 무상함을 보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괴로움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게 괴로움이 일어난다고 할 것 같으면 그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더욱 더 강화시켜 줍니다. 괴로워하지 않을 방향으로 나아갈려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괴로움을 알지 못하면 무아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하나로써 연결돼있지만 각각의 역할은 다 다르게 돼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적어도 꽃을 보면서도 그 대상으로 인해서 무상한 것을 봐야 되는 것이고, 그 꽃으로 인해서 내 마음이 변하고 있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 꽃으로 인해서 변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다는 무아의 사실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알게 될 때 꽃잎이 하나 떨어지듯이 나에게는 집착하는 것이 하나 툭 떨어지게끔 됩니다. 나에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 하나씩 툭툭 떨어져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꽃이 여러분들에게 진리를 알게끔 해주는 겁니다.

그렇게 알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살아있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 죽음을 즐기는 것인지 모르고 살게 되는 거라. 피어있는 꽃에 대해서 즐거워하게 되는 거고, 지어있는 꽃잎을 들고 그거 버리면서 또 즐거워하게 돼있다는 거라.

무엇 가지고 즐거워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들이 바른 인생은 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더욱 더 외부적인 자극에 의존을 하게 됩니다. 외부적인 자극은 여러분의 감정을 좌지우지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감정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여러분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고요하게 있음으로 인해서 수행으로 인해서 즐거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달을 보고 즐거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술을 마시면서 즐거움을 일으키기도 하는 겁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 감정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주관적인 것들입니다.

주관적인 것들은 여러분들에게는 오히려 「나」를 강화시켜 줄 뿐입니다. 윤회로부터 더욱더 단단한 고리를 만들어줄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현명하다고 할 것 같으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무상한 것들을 보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꽃은 무상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일어난 탐·진·치도 무상한 것들입니다.

그렇게 무상한 것으로서 알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꽃은 여러분들에게 진리의 눈을 뜨게 해줍니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고

외부적인 대상에 취해서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