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7 일상수행법문

자면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가 (20160818)

담마마-마까 2022. 3. 1. 09:00

https://youtu.be/4XM-g3U4Bow

* 자면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가 (20160818)

 

오늘은 「자면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자면서 수행하는 게 가능합니까? (수행자 대답 : 가능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몽중일여라고 하는 것은 배워서 가능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얘기를 해서 다음부터는 다시는 자면서 수행한다는 소리는 하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잠은 필요하죠? 인간은 보통 3분의 1을 잠으로 허비한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동물은 훨씬 많이 허비하죠? 동물은 반 이상을 잔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이 때 잠이 많죠? 어른이 되면 잠이 적어지죠? 왜 그럴까? 신체가 성장할 때는 잠이 필요합니다. 두뇌가 성장할 때도 잠이 필요하고. 그런데 마음이 성장할 때는 잠하고는 관계없이 성장합니다.

그래서 커나갈 때는 몸이 커나가고 그다음에 공부를 좀 많이 하고 할 때는 어느 정도의 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머리가 성장할 때는 몸이 성장할 때보다 잠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거의 반 이상을 자지만은 청소년기가 되면 자는 시간을 줄여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성장할 때가 되면은 잠하고는 관계가 없이 돼버리게 됩니다. 그게 일반적인 겁니다.

 

그런데 수행은 뭐로 하는 겁니까?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마음으로 몸과 마음에 대한 현상들을 관찰하는 겁니다.

수행은 마음의 성장에 관계된 것이지 몸이나 두뇌의 성장에 관계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단편적인 예를 들어봅시다. 운전할 때는 졸면서 운전을 하면 안 되죠? 아마 그렇게 하면 금방 사고가 나든지 아니면 뭔가 식별하는 것들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설혹 사고가 안 났다 하더라도 어떻게 운전했나 하는 것들을 기억을 못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수행도 똑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뭔가 대상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수행을 한다, 또는 자면서 그걸 수행이라고 착각을 한다, 그것은 자면서 운전하는 거와 꼭 마찬가집니다. 잤을 때는 운전은 하고 있지만 차는 나가고 있지만 그 상태를 모릅니다. 자는 것은 자는 시간 동안 이 잠이라고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 시간 동안은 내가 수행을 한다고 할 거 같으면 자면서 운전하는 거와 꼭 마찬가지 상태라는 거라. 뭔지 모르고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잘못 식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몽중일여가 될 때 여러 가지 일어나는 현상들을 사람들이 얘기를 합니다. 그거는 보면 각 개인마다 다 다릅니다. 뚜렷하게 식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라. 그리고 자기의 주관적인 판단, 자기의 주관적인 것들이 개입되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하고는 다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일이지 그것으로 인해서 수행이 진척됐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언제 잠 시간이 줄어들게 될까? 번뇌가 적어지면 수면시간이 짧아집니다. 번뇌가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수면시간은 짧아지게 됩니다. 최소한의 것만 몸이 필요로 할 때만 수면을 취할 수 있게끔 됩니다.

많이 생각하고 번뇌가 많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잘려고 해도 잠이 안 옵니다. 잠은 제대로 잘 자는 것이 맞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자기 위해서는 번뇌하는 것들 생각하고 하는 것들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부처님이 얘기한 것이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알아차림을 놓치지 말아라.

어떠한 경우든지 알아차림을 놓치지 말아라. 이때 알아차림을 놓치지 말아라고 하는 것은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알아차려라 하는 것이지, 자면서까지 알아차려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게송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아뚜라낭 히 까닛다(Āturānañ hi kā niddā)" 라고 하는 겁니다. "너는 지금 환자인데 잘 시간이 어디 있느냐?" 환자이기 때문에 깨어나서 치료해야 되는 시간인데 네가 잘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거라. 만약에 자면서까지 수행이 된다면 이 게송을 부처님이 얘길하지 않았겠죠. 자면서까지 수행하라 얘기하지, 잘 시간이 어디 있느냐 하고 얘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수면은 필요한 부분이지만 수면시간을 아껴가면서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하라고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항상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위험한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위험한 것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알아차림을 놓쳐버리면 위험한 것들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음식을 할 때든, 길을 갈 때든, 뭘 할 때든.

스님도 운전을 할 때 내가 아무리 주의해서 운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위험한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위험한 것들을 그래도 피해지는 것들이 뭐냐 하면 알아차림을 유지했을 때는 그걸 방어할 수 있는 능력들이 생겨난다는 겁니다.

음식을 할 때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을 거 같으면 알아차림을 자꾸 놓쳐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위험한 것들은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 닥쳐오는 위험뿐아니라 여러분들에게 내재된 위험들은 더 많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야 된다는 것. 그거는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그런데 그 위험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위험한 것들이 항상 내 옆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경각심을 일으켜서 자꾸 알아차리려고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알아차림을 지속해나가기가 힘들어진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여러분들이 명심을 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수면시간을 줄여가면서까지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지, 자면서 알아차림을 한다는 것은 경전 어디에도 없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경각심을 항상 지닌 채 알아차림을 해나가라 하는 얘깁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아주 예민하게 잘될 때, 잠을 잘 때 분명하게 잠이 듭니다. 그런데 잠을 자다가 꿈을 꾸는 경우들이 있죠? 자고 일어나서 '아, 내가 무슨 꿈을 꿨다' 하고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차림이 강한 사람들은 꿈을 꿨을 때 어떻게 알까?

자면서 '어, 내가 꿈꾸고 있네' 하면서 분명하게 인식을 합니다. 그러고는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 무엇만 기억하게 될까?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만 기억을 합니다. 꿈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꿈을 뭘 꾸었는지 하는 것은 전혀 모릅니다. 단지 내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그 내용만 인식하게 됩니다. 그거는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수행자 질문 : 그때는 내용까지 다 알아야지 예)

아닙니다.

(수행자 질문 : 스님, 그러면은 꿈이라는 걸 알고 그 꿈에서 내가 그 꿈속에 들어가는 그런 거는 뭐라고 생각해야 됩니까?)

그거는 자기 자신이 꿈에 투영된 거고, 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자기화시켜 가지고 그 속에서 자기가 꿈을 알게 되고 꾸게 되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은 쉽게 말하면 그렇게 꿈을 꾸는 동안에 잠을 편안하게 자지 못했다는 거거든. 그래서 그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은 무슨 꿈을 꾸었는지를 어렴풋이라도 알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거는 알아차림이 부족한 상태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알아차림이 강한 사람들은 꿈 내용을 모릅니다. 전혀 기억을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알아차림이 강한 사람들은 잘 때 꿈을 꾸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압니다. 기억을 못하고, 그냥 그대로 잠에 폭 떨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짧게 자더라도 꿈을 꾸지 않고 잠을 잘 수가 있고 또 설혹 꿈을 꾼다고 하더라도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없이 깨어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아침에 일어날 때 내가 무슨 꿈을 꿨다고 아는 것이 아니고, 아예 꿈을 꾸지 않고 잘잤다 하고 마음이 들 때가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간혹 밤에 '아, 내가 꿈을 꾸었다'고 인식한 것들을 아는 경우들은 간혹 있습니다. 그거는 평생 가다가 몇 번 안 돼요. 몇번 안 일어납니다. 그거는 매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의 없다고 봐도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꿈이 없다고, 그래서 알아차림이 분명하고 알아차림이 잘되는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하고 얘기하는 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와 같이 잠과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게 구분이 돼있다 하고 알아야 됩니다.

 

정리를 좀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 장애 중에서 몸과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가 '티나-밋다(thīna-middha)' 라고 있습니다. '혼침과 수면'입니다.

수면은 여러분들 마음이 성장하는데 방해요소이지 그것이 수행하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는 겁니다. 잠은 잠일 뿐이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첫 번째, 마음을 성장시키는 것은 자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수행으로 열반에 이르는 길에서는 잠을 자는 것으로서는 그것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라. 그래서 수행이 성장하고 마음이 성장하는 것은 잠하고는 전혀 무관하다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수면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 없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잠하고는 관계가 없는 겁니다. 단지 육체적인 필요에 인해서 잠이 필요한 거고, 육체적인 성장이나 두뇌의 성장에 잠이 필요한 것일 뿐인 것이지 마음의 성장하고 잠하고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꼭 수면이 필요하다고 불교에서는 말하는 법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되도록이면 지금 여러분들은 나이가 많은 분들도 있습니다. 잠 시간이 적습니다. 잠 시간을 줄여나가더라도 크게 활동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얘깁니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대신에 정신적인 성장을 하는데 잠이 부족하지 않는 상태에서 잠 시간이 줄어든 만큼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수면시간이 줄어들어가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는 수행으로 인해서 수면 시간이 줄어들어가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라. 며칠 안 잔다고 해가지고 인간은 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은 잠을 안 자면 죽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마음의 성장하고 동물하고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 동물들은 육체의 성장과 몸의 노병사의 주기에 맞춰서 잠이 필요한 동물이기 때문에 잠이 없으면 며칠이라도 잠을 못 잘 것 같으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렸을 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잠을 안 잔다 해가지고 죽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음의 성장은 잠하고는 관계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세 번째, 감정에 이끌려서 혼동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수면 중에 어떻게든 그것을 꿈으로써 마음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꿈을 많이 꾸게 됩니다.

그런다고 해가지고 그게 정리되는 작업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런 식으로 정리를 할려고 합니다. 그래서 꿈을 많이 꾸는 사람들은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일상 생활에서 감정적인 것들이 많이 일어나고 번뇌들에 많이 휩싸였다고 보면 됩니다. 그대신에 이런 꿈이 많은 사람들은 결코 좋은 방향은 아니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네 번째, 위빳사나 수행하는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정리하는 작업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이 무르익어가면 갈수록 수면시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육체의 피로로 인해서 수면이 필요 할 경우라고 하더라도 육체의 피로를 위빳사나 수행으로 인해서 어느 정도 해소를 하게 될 것 같으면 수면시간은 줄어들게 됩니다. 그건 반드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수면시간에도 틀림없이 관여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수행자 질문 : 스님, 그러면 기본적인 수면시간은 몇 시간 정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수행자 질문 : 그래도 기본적인 것이 4시간이라든지 5시간이라든지...)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의학적으로는 기본적인 사이클이 3시간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랬을 거 같으면 부처님은 이미 돌아가셔야 되겠죠. 그렇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필요한 것은 부처님의 예를 들더라도 2시간 이상은 자야 됩니다. 적어도 육체적인 피로를 몰아내는 것들을 수면으로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2시간 이상은 불필요한 것이다 생각을 하면 됩니다.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위빳사나 수행을 하면서 정리작업이 잘 돼있다고 할 것 같으면 수면시간은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그런 뜻입니다.

 

다섯 번째, 조금 전에 얘기했지만 수행을 잘하는 사람은 밤에 자면서도 정리작업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까 꿈을 꾸었으면 아,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틀림없이 있다는 거라. 그대신에 꿈 내용은 전혀 기억을 못합니다. 꿈 내용을 기억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자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꿈 내용을 기억을 합니다. 기억을 할 정도가 될 것 같으면 그것은 자지 않아야 기억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침에 기억하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그런데 잠을 푹 잘 경우에는 '어, 내가 꿈을 꾸고 있네' 하고 인식작용만 하고 꿈은 거기서 끝나버립니다.

 

여러분들이 뭔가 대상을 보고 있으면 대상을 보고 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면 거기서 인식기능은 끝나버립니다. 그런데 보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할 것 같으면 끊임없이 그 대상은 어떠한 형태로든 모양과 색깔을 바꿔가면서 보이게끔 됩니다.

꿈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을 잘하는 사람들은 그런 정리작업을 하는 것들이 간혹 있을 수가 있다. 그런데 그거는 일평생에 몇번 안 된다는 겁니다. 거의 없이 지나가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하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여섯 번째, 번뇌와 감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장시간의 수면이 필요하지만 알아차림을 잘 유지하는 사람은 짧은 시간 수면으로 만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거라.

 

일곱 번째, 행주좌와 라고 하는 불교수행법이 있습니다. 누워서 수행할 때는 언제 수행합니까? 많이 피곤하고 할 때 그럴 때는 누워서 수행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잠들기 직전에만 하라고 그러지 다른 때 일상생활하면서 피곤하다 해가지고 누워서 수행하라고 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누워서 수행할 경우에는 잠들기 직전에만 반드시 하라 그럽니다. 왜 그러냐면 누워서 수행할 것 같으면 게으름을 자꾸 피울 수가 있기 때문에 그 게으름 피울 수 있는 것들은 막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을 할 때는 항상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로켓트를 예를 들어봅시다. 로켓을 쏠 때 그 기술자들이 중시하는 것이 세 군데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발사단계, 발사단계에서 실패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발사 단계를 하고 나서 1단추진체 2단추진체 3단추진체가 떨어져나가는 그 과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추진체가 떨어져나갈 때까지를 쭉 지켜보는 그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세 번째는 그 로켓이 대기권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마지막 힘을 탁 쏟을 때, 그러니까 마지막 발사체를 떨어뜨리면서 마지막 힘을 다 쏟아서 연료를 다 소진하고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단계, 이 세 단계를 기술자들은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거기에 기술을 거의 대부분 투여를 합니다. 그것만 잘 될 것 같으면 로켓은 대기권으로 날아간다고 합니다.

 

여러분 수행은 안 그럴 것 같습니까? 노력의 단계도 마찬가집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노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알아차릴려고 하지 않을 거 같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보고 알아차리려고 하는 마음은 계속 일으켜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달아나버리게 됩니다.

로켓이 처음에 발사를 못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경우든지 놓쳤으면 다시 또 알아차리고 놓쳤으면 다시 또 알아차리고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해줘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로켓이 쭉 1단 2단 3단으로 분리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쭉 수행을 진행해나가면서 그것을 놓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따라갈려고 하는 것들입니다. 대상은 일어났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그것들은 변하게끔 돼있습니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대상은 없습니다. 그럼 그것을 따라가면서 그 변하는 것들을 그대로 봐야 됩니다. 일어났으면 사라지는 과정들을 그대로 보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수행이 재미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대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쭉 따라가면서 생겨났으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사라지는 것까지 자꾸 볼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로켓이 1단 2단 3단 분리되면서 쭉 진행돼나가는 것이 그대로 잘 진행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수행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다음에 로켓이 마지막 대기권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힘을 다 쏟아서 떨어뜨려 내버려야만이 대기권으로 진입을 하게 됩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갖가지 장애들이 일어납니다. 조금 전에 얘기하고 있는 수면, 망상, 갖가지 장애들이 일어납니다. 그 장애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수행은 본궤도에 이르지를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수면이 있을 때는 이것은 장애라고 생각을 해서 그것을 극복해야 되는 것이지 수면을 일부러 취할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가끔씩 좌선하는 경우들을 보면 일부러 앉아서 그냥 수면을 불러오는 경우들을 가끔 봅니다. 몰아낼려고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어, 내가 피곤하니까 자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실제로는 그건 마음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지 그런다 해가지고 그 피곤한 것들이 경감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적으로만 아, 경감됐다고 느끼는 것뿐이지 실제로 경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자는 것으로 인해서 피로가 경감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누워서 자지 뭐하러 그렇게 앉아가지고 자고 있어? 마음을 그렇게 먹지 말아라는 거라.

 

경계에 부딪쳤을 거 같으면 그것은 그것을 뚫고 넘어가야 된다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수행에 본궤도에 오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의 행주좌와 중에 서 누워서 하는 수행은 반드시 자기 직전에만 하라는 거라.

마찬가지로 앉아서도 졸음이 올 경우에 수면에 빠지지 말고 그것은 물리쳐야 되는 것이지 그것을 즐기고 게으름 피워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라.

 

여덟 번째, 누워서 수행할 경우에도 어떠한 경우든지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관찰해야 됩니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하는 수행도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것을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관찰해야 되는 것이지 잠이 온다고 관찰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누워서 수행하다 보면 몸의 신체적인 것도 편안하고 숨쉬는 것도 관찰하기가 쉽기 때문에 오히려 더 뚜렷하게 관찰이 잘 되어나갑니다. 그럴 것 같으면 그대로 관찰해가지고 밤을 세워도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앉아가지고 수행을 해야 되는 것이지, 누워서 인제는 자야 될 시간이라고 의무적으로 그냥 숨 쉬는 것을 중단해버리고 잠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거라. 그게 여덟 번째입니다.

 

아홉 번째, 불교 경전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수면 중의 수행이라고 하는 부분은 없다. 그거는 분명하다.

만약에 그런 것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부처님도 경전 중에 가끔씩 "눈을 뜨라!" "눈을 뜨라!" 뭐하러 눈을 뜨라고 그래요? 수면 중에서도 그냥 수행이 가능한데, 그런 법은 없다는 거라. 진리의 눈을 뜨라! 그다음에 명확하게 알아차리라고 하는 것은 수면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걸 여러분들은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게 아홉 가지입니다.

수면 중의 수행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자기 위해서 수행한다 또는 자면서 수행한다고 하는 핑계들은 대지 않고 수행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