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8 붓다야나선원법문

망상이 생길 때가 재기할 기회다. (20170310. 대구)

담마마-마까 2022. 4. 14. 09:00

https://youtu.be/mDefhsvfLAw

* 망상이 생길 때가 재기할 기회다. (20170310. 대구)

 

오늘은 「망상이 생길 때야말로 재기할 기회다」 라는 제목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집중수행들 해봤을 거니까 아마 경험을 했을 겁니다. 평소에 내가 그렇게 망상이 많은 줄 몰랐다 하고.

 

수행하다 보면 끊임없이 망상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보통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조금만 배를 ‘일어남’ ‘사라짐’ 하고 관찰하고 있으면 금방 망상이 튀어오르고, ‘망상’ 하고 나면 사라졌다가, 또 배를 ‘일어남’ ‘사라짐’ 하고 관찰하고 있다가 무슨 아픔이 일어나면 ‘아픔’ ‘아픔’ 하고 관찰하면 또 아픔도 사라졌다가, 또다시 배를 관찰하고, 계속 1시간 내내 그렇게 반복을 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이게 "슬럼프에 빠졌다" 하고 얘기합니다. 사띠를 놓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끊임없이 망상이나 다른 것들이 나를 괴롭히는 형태를 띠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적으로 알아차려나가는 대상은 바뀌어나가고 하는데 계속 빙글빙글빙글 도는 거라, 이 굴레를. 그러다 보면 ‘아, 이거 계속 이렇게 해가지고 되나 안 되나?’ 하는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분명히 사띠는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사띠를 놓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끊임없이 대상들이 일어나서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또 호흡으로 돌아오고, 또 다른 것이 나타나고 또 돌아오고 계속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한 것 같은데, 망상들이나 아픔들이나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일어납니다.

감각기관을 잘 수호하고 있을 것 같으면 그 접촉하는 느낌에서 느낌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사실은 간단한 건데, 그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조금 이제는 방법을 달리해야 될 때가 됐다 하는 뜻입니다.

 

수행도 잘하고 있고, 사띠도 잘하고 있는데, 그러한 것들이 자신을 괴롭힐 때, 그때는 보통 수행자들은 '아, 수행을 한 템포 쉴 때가 됐다' 하고 판단들을 합니다.

그럴 때 보통 많이 하는 것이 뭐냐면 법문 듣는 것, 끊임없이 올바른 법문을 계속해서 자꾸 듣게 됩니다. 아니면 경전을 독송한다든지, 그렇게 해서 마음에 조금 더 힘이 생기게끔 만듭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지나쳐버리면 이게 맹목적인 믿음으로 바뀌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정도 하다가 중단하고 다시 또 대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으로 돌아와야 되는데, 그렇게 안 하고 계속적으로 법문을 듣는다든지 경전을 독송하다 보면, 부처님이 최고다! 또는 우리 스님이 최고다! 이렇게 돼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실제적으로는 불교는 종교적인 부분은 아닌데, 자기 스스로 종교화시켜버립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종교가 돼버리고, 또 스님을 따르는 그런 집단으로 이렇게 바뀌어버리게 됩니다.

어쩌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 상태에서부터 빨리 탈출해야 됩니다. 내가 어디서부터 막혀서 이러는가? 하는 것들을 잘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럴 때 유용하게 필요한 게 '망상을 관찰하는 것'들이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통증을 관찰하든지 망상을 관찰하든지 그러한 것들은, 이러한 상태 사띠를 놓치지 않는데 사띠의 힘이 약한 상태를 빨리 발견해서 더 강하게 그 대상을 알아차리려는 훈련들을 하지 않으면은 그 상태가 계속 진행이 돼버립니다.

그럼 반복해가지고 또 법문 듣고 또 똑같은 상태에 빠지고, 아니면 맹목적인 믿음들은 더 오히려 강해져버리고 이런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그렇게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에게는 불만이 더 자꾸 쌓이는 거라.

자기 자신의 수행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게 되고, 다른 것들 뭐 스승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게 되고, 무엇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게 되고, 이렇게 됩니다.

사실은 그렇게 불만을 가진다는 것도 망상인데, 망상이 불만을 오히려 더 증식시키고 그런 불만은 더욱 더 자기자신을 강화시켜버리는 거라. 「나」라고 하는 것들이 더 강화되는 역할들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아까는 수행에서 ‘일어남 사라짐 아픔’ ‘일어남 사라짐 망상’ 이 사이클을 계속 도는 것이, 이제는 망상에서 또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게끔 됩니다.

불만이 일어나고 또 망상이 일어나고 또 자기 자신이 강화되고이 사이클로써 계속 돌게끔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잘못하면 터져버립니다.

자기 스스로 망상을 강화해가지고 현상들을 만들어내가지고 막 춤을 춘다든지, 아니면 뭔가 자기가 잘하던 기도가 있으면 내내 절을 하면서 기도를 한다든지. “스님, 나는 이게 내 안에 누군가가 나를 시켜가지고 이러는 거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자기 자신이 진짜 그러는 것처럼 느끼는 거라. 아니면 과대망상증에 빠져가지고 ‘아, 내가 뭔가 잘하고 있다’고 착각을 해버린다든지.

그래서 참 위험한 부분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수행에 대해서 다른 사람하고 자꾸 논쟁을 할려고 합니다. 자기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니면 법에 대해서 논쟁을 한다든지.

이게 끊임없이 탐진치가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구조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거라. 그래서 그 사이클은 어쨌든 빨리 끊어내지 않으면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힘들다 하는 사실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 중에서 누군가가 그런 상태에 도달했다. 그러면 스스로 한번 체크를 해 보십시요.

 

이러한 생각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이러한 것들이 결론이 있는 것인가?

그런데 결론이 없든지, 아니면 결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견해에 의해서 스스로 내린 결론들은 결론이 사실은 없는 겁니다. 누가 보더라도 똑같은 결론들이 나야 되는데 그런 결론이 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이러한 것들이 수행이나 일상생활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과도하게 자기 자신이 망상에 빠져가지고 춤을 춘다든지 계속적으로 절을 한다든지 일상생활을 방해하게 되는 거라. 아주 예리하게 알아차리는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굴레에 그냥 갇혀있게 되는 거라. 수행에 당연히 방해를 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이것이 내가 제압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내 스스로 이러한 망상들이 일어났을 때 이것들을 무시해버리고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것에 휘말려들어가가지고 계속적으로 일으키는 구조를 띠고 있는지, 그걸 잘 판단해봐야 됩니다.

 

이 4가지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해당이 되면은 '어, 내가 지금의 상태에서 망상을 하고 있구나' 하고 판단들을 해야 됩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는 망상이 자꾸 습관화돼가지고 자기 자신과 연결되고 있다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망상이 생길 때야 말로 아까 제목에서 얘기했다시피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수행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하고 알아야 됩니다.

 

실제로 이 단계에 이르면은 통증이나 이런 거보다도 망상이 극렬하게 자꾸 일어납니다. 계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사띠를 하고 있는데, 알아차림을 하고 있는데, 습관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자극이 없어요. 마음에 뭔가 자극을 줘야 되는데, 자극을 안 주니까 마음이 스스로 망상을 하게끔 되는 거라. 그런데 사띠는 분명히 있기 때문에 힘이 약하기 때문에 사띠로 인해가지고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는데, 너무 많이 일어나는 거라. 그렇게 되는 거라.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아이고 스님, 수행을 안 할 때는 내가 망상을 안 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수행하다 보니까 망상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망상으로 인해서 수행을 못할 정도라. 조금만 ‘일어남’ ‘사라짐’ 하고 관찰하면 한두 번 하다 보면 바로 또 망상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하게 되는 거라.

그래서 습관적으로 이렇게 하면 마음에 자극을 못 받으면 망상은 굉장한 기세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럴 때는 그것들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아, 이것은 좋은 기회 만났다. 내가 수행에서 한 단계 탁 뛰어넘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 하고 탁 생각을 먼저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만 할 것이 아니고, 그러면 그렇게 아까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망상이 끊임없이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면은 그것을 알아차릴 때 망상이라고 알아차리면 안 됩니다. 통증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통증하고 알아차리면 안 됩니다.

통증도 분해해 봐야 됩니다. 어떤 통증인지.

망상도 그게 어떤 망상인지를 구분해봐야 됩니다.

 

마음에 자극을 줄려면 어떤 식으로 해야 되겠어요? 마음이 빨리 움직이게끔 해야 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게 뭔지를 알아야 마음이 거기에 달라붙습니다.

벽에다가 진흙을 붙이면 착 붙듯이, 대상에 붙는 느낌이 들어야 됩니다.

또는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멀찍이 떨어져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하고 떨어져가지고 착 분리돼있는 것처럼 보여야만이 그렇게 되는 상태가 마음이 자극을 받은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그때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상태가 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망상을 3가지로 나누어서 보십시요. 탐·진·치로!

 

망상하고 있는데 뭔가 기분 좋다, 그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망상하고 있는 겁니다. 탐욕에 대한 망상입니다. 뭔가 대상을 알아차리는데 좋아하는 것이 뭔가 떠오른다, 그것이 물건에 대한 것이 떠오르는 것이든 아니면 마음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든 그건 전부 탐욕에 대한 겁니다.

그럴 때는 ‘망상’ ‘망상’ 하지 말고, ‘아, 탐욕이 있구나’ ‘탐욕에 대한 망상을 하고 있구나’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또는 싫은 것들이나 기분 나쁜 것들, 하기 싫은 것들 이런 것들이 탁 떠오른다, 아니면 내가 뭔가 아쉬운 부분들 못해준 부분들이 망상으로 탁 떠오른다, 그럼 그건 전부 성냄에 대한 망상이라는 거라.

그런 것들은 ‘망상’ 이라고 알아차리지 말고 ‘성냄’이라고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다음에 수행하고 있으면 뭔지는 모르는데 뭐 그냥 멍한 상태로 있게 된다, 대상을 놓쳐버리는 경우도 멍한 상태가 되고, 그런데 사실은 그것도 망상입니다.

아니면 뭐 그냥 수행하는데 ‘일어남’ ‘사라짐’ 이것만 편하게 해가지고 1시간 동안 있어도 편안하고 고요하기 때문에 ‘그냥 이거 해도 괜찮다’ 하고 생각이 떠오른다 하더라도 그것도 망상입니다.

그런 것들은 전부 ‘어리석음의 망상이다’ 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어, 내가 또 어리석음이 일어났네’

 

이렇게 자꾸 분리 해가지고 ‘아, 이거는 탐욕에 대한 망상이다’ ‘이거는 성냄에 대한 망상이다’ ‘이거는 의심에 대한 망상이다’ 하고 그걸 망상이라고 알고, ‘아, 이게 어리석음이면 어리석음이다’ 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아, 이게 탐욕이면 ‘탐욕이다’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망상은 망상이 진행되면 어떠한 경우든지 망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전부 처음에는 탐·진·치로 다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그걸 분리해가지고 그것을 알아차릴 때 수행은 조금 힘들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귀찮거든. 그냥 ‘망상’ ‘망상’ 해버리면 될 건데, 아 이걸 어떨 때는 분리를 할려다 보니까 이게 뭔지를 모를 때도 있고 헷갈릴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귀찮으니까 그걸 안 할려고 그래. 그러면 마음은 활기를 다시 또 잃어버리는 거라.

그러면 똑같이 아까같이 똑같은 현상으로 또 빠지게 되는 거라.

 

과감하게! 반드시 그럴 때는 처음에는 어떤 것이든 망상은 이 3가지 중에 다 포함이 된다 하고 마음을 먹고, 실제로는 3가지보다 더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3가지 중에 포함된다 하고 거기에다 넣어가지고 그것을 대상으로 해서 알아차려야 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이 좀 어렵다고 판단이 될 정도로 자꾸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띠라고 하는 알아차림을 조금 더 진지하게 행하게끔 하는 역할들을 하게 됩니다.

당분간은 계속 그렇게 해야 됩니다. 탐·진·치로 나눠가지고 망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릴려고.

그러면은 수행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일어남’ ‘사라짐’ 하다가, ‘아, 이거는 탐욕에 대한 망상이 일어났구나’ 하고 탐욕에 대해서 망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아, 이것은 탐욕이 아니고 성냄에 대한 망상이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다 보면 어느 정도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거기서 끝내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구분이 되고 나면은 탐·진·치의 반대의 망상이 틀림없이 일어나게끔 됩니다.

 

그것이 불탐·불진·불치라고 하는 3가지입니다.

그 3가지가 더 일어나게끔 되는 게 망상의 구조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탐욕에 대한 망상과 불탐에 대한 망상은 비슷합니다.

기분 좋은 것은 똑같습니다. 욕구로부터 멀리 떠나도 마음이 즐겁고 기분 좋습니다. ‘어, 내가 욕구로부터 떠났네’ 해도 기분이 좋고, 욕심을 부려갖고 그것을 망상을 하더라도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은 별 구분이 안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어떨 때는 그런 욕구나 아니면은 불탐의 망상이 아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거 구분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런데 구분을 해야 됩니다.

 

조금 더 세밀하게 볼 거 같으면 탐욕의 망상은 뭔가 달라붙을려고 하는 것들이 틀림없이 그속에는 있습니다.

그런데 탐욕으로부터 멀리 떠난 망상은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달라붙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걸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 같으면 사띠는 굉장히 발전돼있습니다.

 

그대신에 욕구와 불탐의 망상은 구분하기가 좀 어려운데, 분노에 대한 거는 구분하기 쉽습니다.

성냄은 분명히 어두워지고 기분나빠지는데, 반대로 불진의 망상- 분노가 없는 망상은 마음에 자애의 기분이 듭니다. ‘아, 누가 행복하기를’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괴로움이 없기를’ 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바꾸어줄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

싫어하는 마음이 어느 대상에 대해서 탁 일어났다 할 것 같으면 마음을 ‘아, 그 사람도 행복하기를’ 하는 마음으로 탁 바꾸어줄 수가 있습니다.

 

똑같은 망상의 종류 중에 하나지만 분노가 있는 망상하고 분노가 없이 자애가 있는

마음은 이렇게 틀립니다. 그거는 바꾸어주기 쉽습니다. 그런데 분명하게 자기 자신은 구분합니다. ‘아, 이거는 분노가 있는 마음에서 내가 분노가 없이 자애의 마음으로 바꿨다’ 하고.

그래서 아주 싫은 사람이 떠오를 때 ‘아, 내가 성냄의 망상이 일어났구나’ 하고 알고 나서는 바로 자애의 마음으로 바꿀 수가 있게끔 됩니다. 마음은 더욱 더 빨리 대상을 알아차리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무지의 망상과 지혜의 망상은 이렇게 구분해보면 됩니다.

어리석음은 뭘 하는지 잘 모를 때, 뭔가 망상을 하고 있고 아니면 대상을 놓친 것처럼 멍한 상태에 있는 상태를 어리석음의 망상이라고 하는데, 지혜의 망상은 아주 냉정해지면서 대상이 깨끗하게 보입니다. 망상이 일어난 것이 깨끗하게 보입니다.

냉정하면서도 그 대상이 보여질 때 , 이것은 지혜의 망상이다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적어도 6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인제는 이 망상으로부터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망상이 완전히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망상을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돼야만이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반복해가지고 해야 만이 알아차림이 강해져버립니다. 대상이 선명하게 자꾸 드러나집니다.

그래서 원인·결과에 대한 것들, 그리고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들에 대한 것들, 이런 것들이 선명하게 자꾸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망상은 그것이 일어났을 때 ‘아, 내가 수행에 참 좋은 대상을 만났다’ 하고 자꾸 판단을 해야 되는 것이지, ‘아, 또 망상이 일어났네’ 하고 자꾸 터부시해버리고 멀리 할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라.

 

처음 수행을 할 때는 망상이 그냥 ‘망상’ ‘망상’ 하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수행이 진행되고 나서 사띠가 잘 될 때 일어나는 망상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거는 원인·결과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가 열리기 위한 조건입니다. 그러한 망상들이.

그럴 때 이 망상을 잘 잡기만 할 것 같으면 적어도 망상은 여러분들에게는 ‘아, 이게 하나의 대상이다’ 하고 보여집니다. 배를 관찰하는 것도 하나의 대상인 것이고, 보는 것도 하나의 대상이고, 듣는 것도 하나의 대상이 되듯이, 망상도 대상으로써만 접근을 하게끔 되는 거라. 그래서 그 대상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 망상이 분명하게 보이면은 이제는 이 사띠도 굉장히 무르익은 상태가 되고, 수행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상태가 됩니다. 당연히 이제는 수행을 하더라도 망상이 일어나든 아니면 아픔이 일어나든 아니면 줄기차게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걸 관찰하고 하더라도 그게 변화되는 것들이 그대로 보이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수행에서 슬럼프를 탁 탈출하는 상태가 되게 됩니다.

 

그게 인제 망상이 수행에서는 방해요소-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하는 그런 이유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망상들은 여러분들이 잘 관찰해야 되는 것들이다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

 

그전에는 수행에 대해서 막 미주알 고주알 누구하고 다투고 자기 견해를 내세우고 했는데, 그런 것이 탁 없어져버립니다.

그것이 이때까지 자기의 세계에서의 견해라는 것들을 알기 때문에 그걸 내세우는 것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견해나 의견들이나 믿음들이나 또 살아가는 방식들 이런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좋고 싫어하는 것들이 없이, 당황하는 법이 없어져버리게 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은 지루하거나 싫증 내는 것들이 없이 그냥 선명한 상태로써 계속 있다는것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 상태에 이르르게 될 때 "견해가 확립됐다" 하고 얘기합니다. "어떠한 견해에도 얽매이지 않는 상태에 도달했다" 하고 얘기하게 됩니다.

망상 하나 관찰했을 뿐인데, 나는 수행이 굉장히 진척이 된 상태가 돼있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상태에 도달할 것 같으면 부처님이 말하는 말씀과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진리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분명히 구분됩니다.

부처님이 말한 견해와 세상의 견해는 다르다는 것이 보입니다. 똑같은 것 같이 보이죠? 세상에서도 다 잘 살아가고 거짓말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마라, 부처님도 똑같이 얘기했는데, 똑같은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이 상태에 이르면 이게 다르게 보입니다.

부처님의 견해가 확립된 자는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는 마음이 확고하게 유지가 돼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견해를 따를려고 하는 마음들이 안 일어나는데, 세상의 견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이해타산이 먼저이게 됩니다. 항상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있도록 한다든지 아니면 좀 더 화합하고 잘 살아가기 위한 것들이지, 그것이 진리하고는 관계없다는 것이 보여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맹목적으로 믿는 성향들은 사라지고 확신이 듭니다.

부처님에 대한 확신, 스승에 대한 확신, 그런 확신들이 들어야 설혹 자기 자신이 스승보다 더 뛰어난 상태가 돼도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는 겁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앗사지 존자보다도 능력이 뒤떨어지겠어? 뭐가 뒤떨어지겠어? 그런데도 왜 앗사지 존자한테 항상 아침 저녁으로 그 방향을 향해서 삼배의 예를 올리겠어요? 그건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법에 대한 확신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 확신들을 들게끔 만들어준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마음입니다.

내가 설혹 다른 수행법을 배우고 하더라도 또 거기에서 그런 스승들을 만나게 되는 거라. 그래서 여러 스승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스승들이 자기 자신에게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설혹 자기 자신이 그 스승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스승은 스승인 것이지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라.

 

그리고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기능이 거의 끊어져버립니다.

그거 하는 것들이 얼마나 불편하고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수행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것들을 단지 알아차릴 대상일 뿐이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 알아차리다 보면 감각기관에 대해서 바르게 딱 수호를 하게 됩니다. 그럼 생각하고 하는 기능들이 거의 끊어져버립니다.

 

이런 것들이 망상을 관찰했을 때 여러분들에게 오는 이익들입니다.

 

그래서 항상 대상을 알아차릴 때 평온한 마음을 유지를 하게끔 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분을 해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얘깁니다.

망상은 여러분들에게 수행에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이고, 여러분들을 재기시킬 수 있는 때라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이게 여러분들을 택법각지로써 탁 올려주기도 하고, 택법각지에서 그다음 단계의 노력의 단계로서 더 강한 노력을 일으키게끔 하고, 또 사마디가 형성되게끔 하고 하는 것이 망상이다 하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망상과 마찬가지로 통증이 일어났을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구분해서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될 때 마음은 다시 활기를 찾게끔 된다 하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망상은 좋은 수행대상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대상으로써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