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8 붓다야나선원법문

다섯 가지 얻기 어려운 일 (170728. 대구)

담마마-마까 2022. 5. 7. 09:00

https://youtu.be/x3UPBQZSFus

* 다섯 가지 얻기 어려운 일 (170728. 대구)

 

1. Buddhuppadā dullabhā(붓둡빠다- 둘라바-)

부처님의 가르침과 만나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다.

 

2. Manussattabhavā dullabhā(마눗삿따바와- 둘라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다.

 

3. Saddhammasavana dullabhā(삿담마사와나 둘라바-)

올바른 법을 듣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다.

 

4. Saddhā sampatti dullabhā(삿다- 삼빳띠 둘라바-)

믿는 마음으로 채워지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다.

 

5. Pabbajjita dullabhā(빱밧지따 둘라바-)

부처님의 가르침 아래에서 출가하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다.

 

 

경전에는 인간으로서 얻기 어려운 것은 네 가지라고 하는 부분이 있고, 또 다섯 가지라고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으로 두 종류가 있습니다.

 

왜 인간이라고 했을까? 부처님이, 첫마디에.

범천이 얻기 어려운 것이나 아니면 축생들이 얻기 어려운 것 이렇게 얘기를 하든가 해야 되는데, 인간으로서 얻기 어려운 것이라고 이렇게 토를 달아놨습니다.

그마만큼 인간의 존엄성, 인간이 가지는 능력은 참 많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에 이를 조건, 완전한 아라한에 이를 조건이 되는 것들은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참 힘이 드는 부분입니다. 불환과에 이르러서 범천에 태어났다가 거기서 아라한이 되는 특별한 경우가 있지만 그런 특별한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나서 수행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은 아라한이 돼서 윤회로부터 뛰어넘는 것, 그게 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좋은 일인데, 그마만큼 뛰어난 힘이 있어야 되는 것이라 해서, 그렇게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도 어렵고, 또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얻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어떤 경우는 다섯 가지 어떤 경우는 네 가지로 해놨는데, 여기에서는 지금 다섯 가지로 얘기해놨는데,

네 가지로 얘기할 때는 마지막에 "출가자가 되기 어렵다"는 부분이 빠지고, 그다음에 "믿음을 얻기 어렵다"는 부분이 빠지고, 그 대신에 하나가 "사람 몸으로 태어나서 오래 살기 어렵다" 하는 부분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 부분만, 네 번째 부분이 "오래 살기 어렵다" 하는 부분으로 바뀌고, 다섯 번째는 없어져버립니다. 그렇게 네 가지 부분이 됩니다.

 

여기서는 다섯 가지 부분으로써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붓다 웁빠다 라고 해서 "붓둡빠다 둘라바-" 그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 만나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있고, 부처님 가르침과 만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 있고, 두 가지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웁빠다'라고 해석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빠다'로 해석할 것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여러분이 부처님을 못 만났죠? 부처님을 못 만났습니다.

어찌 보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기간은 부처님이 출가해서 성도하고 나서 살아계실 동안 45년 동안 그 당시로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치니까 너무 한정되고, 이 넓은 기간 동안에 계속 지구가 존재하는 한은 인간은 거스를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부처님과 만나기 어렵다는 단어보다는 어떨 때는 해석을 달리하면 부처되기 어렵다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부처되기 어렵습니까? 한국에서는 성불이 큰 목적이잖아. 부처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사실은 어렵습니다. 부처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게 열 가지 바라밀을 완전하게 30가지로 구족했느냐 하는 부분들이 여러분들의 지금 상태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바라밀을 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할 것 같으면 그래도 무수한 과거생부터 바라밀을 열심히 행하고 왔다는 얘기가 될 것이고, 바라밀 행하는 것이 참 힘들다 할 것 같으면 아직은 그것들을 닦아야 되는 것들이고. 그런 것들을 봤을 때는 그리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그 대신에 부처가 되는 것은 사실은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뭐냐면, 부처가 되려면 과거의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어야 되는데, 수기 받았다는 확증이 없다는 거라. 그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은 없다는 거라. 그런 것들로 인해서 부처되기 어렵다는 얘기들을 하긴 하는데.

사실은 여러분들이 완전히 부처님과 같은 분이 되어서 삼명이 열렸을 때, 과거생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아는 능력이 생겼을 때 그때야 아, 내가 그래도 부처 될 능력이 있었구나 하는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이지, 지금 현재는 어느 누구도 여러분들이 부처가 될 수 있다, 없다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이다, 아닐 것이다 하는 것도 어느 누구도 사실은 알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 정도로 앞으로의 일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은 부처가 된 자의 고유한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데에 괜히 현혹되지 않도록 해야 되는 것이고.

 

그 대신에 이 문장의 '붓둡빠다' 라고 하는 것을 대부분의 스승들은 '부처님 가르침'으로 해석을 합니다. 보통 붓둡빠다를 '붓다 사사나' 라고 하는 부처님 가르침으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기 어렵다 하는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무엇을 가지고 부처님 가르침이라고 할 것이냐 하는 것도 사실은 문제이긴 합니다.

 

단지 하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부처님이 설한 경전에서, 또 부처님이 설한 율에서 어긋남이 없느냐 하는 것들이 첫 번째 부분입니다.

누가 가르치든 아니면 어느 경전에 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 가르침은 어떠한 경우든지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것과 고·집·멸·도라고 하는 네 가지입니다. 그걸 따르는 팔정도라는 길이 있고, 그래서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난 것이 아닌 것인가?

그리고 부처님이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 제정해놓은 율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재가자는 재가자의 율이 있고, 출가자는 출가자의 율이 있는데 그 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그 법과 율을 비추어봤을 때 그것들과 부합하는지를 판단기준으로 삼기도 하고,

 

또 하나는 그것을 따랐을 때 내가 마음이 얼마만큼 향상되는가?

또 그것을 따랐을 때 내가 얼마만큼 도와 과에 다가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자기가 간 길은 자신이 분명하게 돌아볼 수 있고, 자신이 위치한 곳은 자신이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냥 뜬구름 잡듯이 그냥 내가 이 정도 왔을 것이다, 아니면 이 정도 남았을 것이다 하고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분명하게 됐을 때 이것은 부처님 가르침과 맞다 하고 얘기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습니까?

만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이 뭐냐면, 유신견이라고 하는 겁니다.

쉽게 얘기하면 여러분들이 누구와도 다툼이 없고, 누구의 의견이나 이런 것에도 수긍하고 받아들일 줄 알게 되고, 또 자신이 주장하는 것들을 내세울 때는 내세워야 되지만, 그것들을 내세우지 않아야 될 때는 내세우지 않을 줄 알게 되고,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다툼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게 될 때, 이걸 보통 "자신에 대한 견해·유신견이 사라졌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바른 법을 만나면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것들은 이 부분입니다. 자신의 것들이 맞으면 자신이 좋으면 되는 거지 그걸 굳이 다른 사람들하고 다퉈가면서 그것을 강제적으로 맞다 안맞다 하고 주장할 경우는 전혀 없다는 거라.

그래서 바른 법을 만나는 사람들은 맨 처음에 깨지는 것이 바로 유신견에 대한 것들입니다. 이 유신견이 깨져야만이 조금 더 닦고 하면서 아, 내가 바른 견해로써 이렇게 살아지게 되는 구나. 그리고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게 의식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수행방법에 대한 것이든, 그 어떠한 것들에 대해서도 얽매이지 않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고, 그래서 도와 과에 이르게 되고 하는 과정들을 겪어나가게 됩니다.

적어도 여러분이 바른 법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다고 하면은 하루빨리 유신견에 대한 것들을 제거할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것이 가장 큰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기 어렵다는 그런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으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나는 인간보다는 더 나쁜 세상에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설혹 내가 어떤 일로 인해서 갑작스럽게 죽든지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아서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죽고 나서 나쁜 곳에 빠진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없는 곳에 태어나지 않는다"고 경전에는 그렇게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서 그것에 대해서 이해를 한 사람들은, 다음 생에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계속 윤회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부처님 가르침 바른 가르침이 없는 곳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적어도 그런 확신들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이생에서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루면 참 좋지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면 또 윤회를 해야 되는데, 윤회하는 곳에서 바른 가르침을 만날 수 없다면 그럼 그 생은 그냥 허비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가르침을 만났다는 그런 확신이 들 수 있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주석서에 나와 있는 얘기들을 하겠습니다.

부처님 가르침과 만나는 사람들에 갖추어지는 특징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히리마나'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히리'는 알죠? '히리-옷땁빠' 해가지고 악행하는 것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악행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게 되는 것, 그걸 히리-옷땁빠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지금 몸으로 행하고 말로 행하고 마음으로 행하는 것들이 선업일 때는 그것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탁 나쁜 말이 튀어나올여고 한다, 나쁜 말을 해버리면 이미 악업이 돼버리는데, 나쁜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는데 어, 내가 이거 나쁜 말을 해가지고는 안돼 하고 그것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그런 말 하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줄 알고 그래서 나쁜 말을 안 하게 될 때 그걸 '히리마나'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죄짓고 나서 아이고, 내가 부끄러운 짓 했다, 나쁜 짓 했다, 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하기 전에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것.

자신이 행한 것들은 전부 업이 됩니다. 그 업은 어느 누구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언젠가는 받아야 되는 것들입니다.

 

아까 맨 처음 서두에 인간으로서 만나기 어려운 네 가지 부분에 대한 경전이 있다고 했는데, 그 경전이 설해진 배경이 뭐냐면 바라나시 근처에 용왕에게 부처님이 설한 겁니다.

용왕, 너는 아무리 애를 써봐야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다. 너는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기 어렵다.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한 건데, 그 용왕이 여러분들에게는 좋은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축생입니다. 축생! 쉽게 말하면.

그렇게 태어나서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 이해를 할 줄 알아야만이 그것을 따라서 수행을 하면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데,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알아듣기는 하는데 알아듣는 거하고 이해하는 거하고는 다릅니다. 알아듣는 거는 듣고 나서 보자기 쌌다가 보자기 풀러버리듯이 그냥 도르르 흘려버리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해한다는 것은 그걸 듣고 나서 자기 것이 되어서 그대로 실천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 능력은 어떤 경우는 주체가 되지 않습니다. 습관은 지어줄 수는 있겠죠. 여러분들 키우는 가정의 애완견 같은 경우를 예를 들면은 습관을 들일 수는 있습니다.

습관을 들일 수 있다 해가지고 그 습관이 계속적으로 유지가 돼나가냐면 사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언젠가 다른 조건이 딱 돼버리면 그 습관은 없어져버리고 자기 원래의 것들이 다시 나와버립니다. 조그만한 충격에도. 그게 축생이라는 겁니다. 그게 알아는 듣는데 이해하는 능력은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용왕이 과거생에서 배를 타고 건너다가 배 저쪽 언덕에 도착할 때쯤 돼가지고 내릴려고 하는데 거기 미끄러지고 풀을 탁 잡았어요. 풀을 잡아가지고 미끄러졌는데 풀이 쏙 뽑혀버렸어요.

그런데 출가한 스님들은 풀을 못 베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게 없는데 출가한 스님들에게는 그래서 절에서 농사짓고 하는 거 아예 못합니다. 농사지으려면 풀을 뽑고 그렇게 해야 가능한 건데 풀이 무성한 상태에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건데, 농사를 짓지 마라는 규정도 있지만, 풀을 뽑지마라는 규정도 있습니다.

하물며 바리때 씻은 물을 풀에도 뿌리지도 못하게끔 하는 규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 같은 경우에는 풀을 뽑아버리고 있으니까 규정에 어긋난 겁니다.

그걸 '둘라바' 라고 그럽니다. 그걸 쉽게 말하면 치우기 힘든 문제를 저질렀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출가한 스님들에게 내리는 벌 중에 빠찟띠야 라고 하는 벌이 있는데, 둘라바 라고 하는 참회하는 벌이 있습니다. 둘라바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반드시 자기보다 어른 스님한테 가서 아, 스님 내가 잘못해가지고 풀을 뽑았습니다. 하고 참회를 반드시 해야만이 그 죄가 없어집니다. 행한 행위는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만 그 죄에 대해서 받아야 될 것들은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렇게 참회를 해야 되는데 고마 까먹어버립니다. 까먹어버리고 그냥 이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축생으로 태어났다는 겁니다. 용왕으로서. 그래도 출가해가지고 수행을 열심히 한 공덕은 있어가지고 축생으로 태어나도 용왕으로 태어났겠지. 그래도 어쨌든 축생이라.

 

그마만큼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참 힘이 드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죄를 범한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과보를 받게끔 돼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사람들은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고,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적어도 여러분이 부처님 가르침을 잘 만났는지 하는 것들을 잘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삿다(saddhā)라고 하는 건데, 밑에 네 번째 부분에 있는 것들과 조금 연결된 부분입니다. 삿다는 보통 네 가지로 얘기합니다.

 

'빠사다 삿다'라 해가지고 뭐든지 자신감이 생깁니다. 어, 내가 수행하면 수행하다 보니까 마음이 조금 더 선한 마음이 자꾸 일어나고 상대방에게 해코지 할려는 마음이 없고, 그럴수록 자신감이 생겨. 그래서 화가 일어나면 화를 관찰하니까 화가 사라진다. ‘어, 내가 인제 화 안 내고 살 수 있겠네’ 하는 그런 자신감이 생깁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알아서 적어도 그런 자신감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 자기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그것들을 바꾸어나갈 수 있는 자신감, 그걸 빠사다 삿다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오깝빠나 삿다'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확립된다는 뜻입니다. 맞아! 그게 맞아! 이 길 따라 갈 거 같으면 적어도 내가 분명하게 깨달음에 이르겠지만 지금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 보다는 조금 더 나을 거야. 자기 자신이 그런 것들에 대해서 확립이 되고, 어떤 가르침도 부처님 가르침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 한눈을 팔지 않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아가마니야 삿다'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걸 잘못 해석하면 운명적인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것은 운명이야 그건 아닙니다. 아가마니야를 잘못 이해하면 그렇게 숙명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 업에 대한 분명한 이해라고 하는 습을 얘기하는 거고.

나쁜 일을 했으면 나쁜 과보를 받아야 되는 것이고, 선한 일을 했으면 선한 과보를 받는 것이지 내가 한 것들을 다른 사람 핑계댄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걸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자신이 행한 것들에 대해서 자신이 받게 된다는 것, 그게 선한 과보이든 악한 과보이든 자신이 받게 된다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완전하게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그 과보는 언제든지 드러날 수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아디가마 삿다'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가르침을 접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고 조금 얻은 것이 뭐가 있어요? 조그만 거라도 얻은 게 있어요? 그걸 성취함에 대한 확신이 드느냐는 거라.

어, 내가 이거는 얻었어. 기분이 좋아. 여러분들에게 10원을 벌었으면 10원 얻은 것에 대해서 되게 좋아하잖아. 조금 더 노력하면 20원 벌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또 희망을 가지고 또 20원을 벌게 되고, 그래서 20원을 벌면 20원 벌었다는 것이 확립이 돼.

부처님 재산에서 부처님이 남긴 유산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과연 여러분들이 얻은 것들이 뭐가 있느냐는 거라. 그런 자기 자신을 확립한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는 거라. 한 개 얻었다, 두 개 얻었다 아니면 이거는 요만큼 얻었다. 적어도 그것에 대한 것들은 분명하게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것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 얻어지는 이익, 그걸 보통 삿다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냥 믿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배우고 또 실천하는 것으로 인해서 내가 확신이 딱 서는 상태, 이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아랏다 위리야(āraddhaviriya)'라고 그렇게 돼있습니다.

노력하는 것들이 굳건해진다 하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게으름 부리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라하고 얘기했습니다. 적어도 게으름 부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들이 몸에 딱 붙어버린 상태! 어떠한 경우든지 스님이 사띠를 놓치지 말아라 했다. 놓치더라도 그걸 사띠를 할려는 마음이 있으면 그러한 노력이 굳건하게 돼있으면 언제든지 사띠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 노력하는 힘이 약하면 한참 지나고 나서 ‘어, 내가 사띠 놓쳤네’ 이렇게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따르다 보면 좋은데, 왜 그걸 안 할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느냐는 거라. 좋으면 따라 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래서 그것들에 대해서 더욱 더 공부할려고 하게 되고, 더욱 더 실천하려고 하는 것이 확립이 돼서 그것이 굳건해진다는 겁니다. 그런 노력들이 굳건해진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바훗수또(bahussuto)'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테라담마 열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또 테라와다 불자들이 가르침을 배우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 바훗수또 라는 것입니다.

배우는 것, 바르게 배울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지 배움 없이, 조금 배우고 나서 ‘어, 내가 인젠 다할 수 있어’ 하면서 그냥 스승이든 아니면 다른 경전이든 이런 것들을 팽개쳐버리고 자기 나름대로 그것을 해석할려고 하고 이래 버리면 그거는 배움이 끝났다는 거라.

그러면 자기 나름대로 부처님 가르침을 해석할 수밖에 없고, 자기 나름대로 수행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거라. 잘못된 길로 가기 위한 것이지, 그건 바른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삼장을 다 외우고 다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또 다른 주석서를 볼려고 하고, 또 이 법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법문하는가? 어떻게 설명하는가 하는 것을 또 듣고 배웁니다. 다 알고 있는데도.

그래서 바훗수또라고 하는 것은 테라와다 불자라고 할 것 같으면 지나친 부분이 없습니다.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바훗수또는 여러분들이 갖추어야 될 부분입니다. 더욱 더 자꾸 배울려고 해야 됩니다.

여기 금요일날 붓다야나 선원에 와서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또 다른 곳에서 테라와다 수행하거나 테라와다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시간되면 자꾸 쫓아가는 거라.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그마만큼 여러분들에게 소중한 겁니다. 그래서 배우는 것들을 등한시하지 않게끔 해야 됩니다. 그게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면서 얻어지는 효과들입니다. 이익들입니다.

 

그다음에 '우빳티따 사띠(upaṭṭhita sati)'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띠는 사띠인데 사띠에 머무른다,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놓치지 않고 분명하게 알아차려 나간다는 뜻입니다.

알아차려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신·구·의를 통해서 불선한 것들을 행할 여지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런 자리를 내주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자꾸 확립되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을 얘기할 때 보통 '사띠 빳타나' 라고 그렇게 합니다. 여기는 '우빳티따' 이죠. 사띠가 분명하게 확립될 수 있는 토대들을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입니다. 그걸 네 가지로 얘기하면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과 그다음에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상(法)들, 이러한 대상들 그 대상이 뭔지 분명하게 확립해라. 대상이 아닌 것을 수행대상으로 삼으면 안됩니다.

남 화나는 것? 남 화나는 것이 수행대상이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렸으니까 그 소리가 들린 것을 수행대상으로 삼아야지 남 화난 것에 대해서 수행대상으로 삼아버리면은 사띠는 달아나버리게 됩니다. 그것에 휩쓸려버립니다. 그래서 사띠를 할 때도 대상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확립하는 것을 사띠빳타나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띠가 확립돼서 머물도록 해야 되는 것이지, 그 대상에 머물러야 되는 것이지, 다른 데에 사띠가 머물러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에 사띠가 항상 머물러 있도록 되는 것, 그게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것들로 인한 이익들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빤냐완또(paññāvanto)'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빤냐는 여러분들 알다시피 지혜입니다. 소유한다는 뜻입니다. '지혜를 소유한다. 지혜를 지녔다'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지닌 자 빤냐완또가 되든지, 아니면 빤냐와로라고 해서 지혜가 가장 뛰어난 자가 되든지. 그걸 빤냐완또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지혜를 지녔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가지면서 아. 지혜가 일어나지 않으면 빨리 지혜가 일어나도록 강구해야 됩니다. 아, 이게 물질적인 것이고, 이게 정신적인 것이고, 이것은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집착할 대상은 아니다, 이런 정도는 적어도 처음에는 열릴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이게 첫 번째 '붓다웁빠다' 아니면 '붓다둡빠다' '붓둡빠다 둘라바' 부처님 가르침 만나는 것을 얻기 어렵다 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여러분들은 인제는 접했으니까 부처님 가르침을 빨리 얻도록 그래서 조금 더 많이 얻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마눗삿따바와- 둘라바-"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다.

 

지구에 인구가 몇억이죠? 한 50억 되죠. 되게 인간으로 태어나기 쉬울 것 같죠?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꼭 우주를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구를 예를 들더라도 다른 생명체는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들 인간의 생명체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요 앞에 가서 풀 하나 하나만 봐도 굉장히 많다는 거라. 풀 밑에 있는 것들부터 해가지고 그 풀 위에 있는 공중에 있는 것까지 전체 다 해서, 그리고 조그만한 박테리아들, 실제로는 여러분이 다음생에 뭐로 태어날지 모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그마만큼 얻기 어려운 것들을 여러분은 얻은 겁니다.

 

경전의 주석서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얘기해놓았습니다.

뭐로 가지고 태어날까? 과거 무수한 생에서 욕계선업을 지었을 때!

말하는 것이든, 행동하는 것이든, 마음으로 짓는 것이든 그것이 선업을 지었을 때. 욕계선업을 지은 자만이 욕계 천상과 범천이나, 아니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다 하고 명확하게 규정을 해놨습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마음 쓰는 것들이 선한 업을 짓지 않으면, 지금 여러분들이 사는 곳은 전부 욕계입니다. 색계나 무색계는 아닙니다. 색계는 쉽게 말하면 선정에 들어있는 상태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물질로 생활하는 세계. 무색계는 여러분들이 생활하기가 좀 힘든 특정한 것들이 대상으로서.

 

어쨌든 지금 현재 신구의를 통해가지고 선업을 계속 쌓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기 힘들어집니다.

과거생에 여러분들은 그걸 지어놨기 때문에 지금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거라.

욕계선업을 쌓는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보시, 그다음에 지계, 그다음에 계정혜를 잘 지키는 사람들에 대해서 존경하는 것, 그다음에 법을 많이 듣는 것,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설하는 것, 그다음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 이런 것들이 대표적으로 선업, 욕계선업을 짓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다음 생에서 또 인간으로 태어나려고 할 것 같으면 그 선업 짓는 것들을 등한시 해서는 안됩니다.

어쨌든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 힘이 드는데 여러분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할 거 같으면 적어도 거기에 맞는 일들을, 욕계 선업 쌓는 일들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5분밖에 안 남아서 빨리 하겠습니다.

 

세 번째, "삿담마사와나 둘라바-" 올바른 법을 듣는 것을 얻기 어렵다 하는 뜻입니다.

 

왜 바른 법을 자꾸 들어라고 그럴까?

바른 법을 자꾸 들어야만이 바른 견해가 생깁니다. 정견이 생기도록 만들어주어야 되는 것이고, 바른 법을 듣고 해야만이 적어도 수다원에 이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 속에서 정견이 생기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성인, 사쌍팔배라는 성인들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마만큼 부처님 가르침은 다른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고 다른 것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부처님의 올바른 법을 들어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의 법을 자꾸 듣지 않을 거 같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부처님 가르침을 자꾸 들을려고 해야 됩니다. 그럴려면 법문을 자꾸 들어야 되고, 마음을 가지는 것도 올바른 방향으로 자꾸 되도록 그렇게 유도를 해야 되고, 그리고 여러분들 주위에 바른 법을 자꾸 들을려고 하고 수행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자꾸 많아야 됩니다. 도반들이, 좋은 사람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이지, 자기 혼자만 선한 법을 자꾸 들을려고 한다고 해서 주변이 그렇게 놔두지를 않습니다. 자꾸 선한 법을 듣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네 번째가 "삿다- 삼빳띠 둘라바-" 믿는 마음으로 채워지는 것, 믿음을 확립하는 것들이 어렵다.

 

아까 믿음의 네 가지 부분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적어도 유신견이 제거가 되도록 만들면 믿음은 확립이 됩니다.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것들을 항상 나는 아직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똑같이 다른 사람도 불완전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를 하고 그것들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용서하고 화합하는 것들을 자꾸 즐기도록 하십시오.

 

다섯 번째가 "빱밧지따 둘라바-" 부처님의 가르침 아래에서 출가하는 것들이 어렵다.

 

빱밧지따는 꼭 출가만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집을 떠나서 여기 선원에 와있습니다. 그러면 그걸 빱밧지따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이 선원이 여러분들 것이 아니죠? 지금 현재 집을 떠나와서 여러분들이 여기에 머무르고 있다고 할 거 같으면 적어도 여기에서 해야 될 것들을 해나가야 됩니다.

법을 듣고 수행하고 그래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것들에 대해서 확립하고 체험하는 것들, 그걸 쉽게 말하면 빱밧지따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 부처님은 사부대중이라는 개념을 도입을 해놓은 겁니다.

출가자의 집단이 있고, 재가자의 집단이 있고, 재가자는 어떠한 경우든지 집에 있어가지고는 부처님 가르침을 올바로 따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일주일에 한번씩은 불재일이라 해서 절에 와가지고 지내면서 청정한 생활들을 하도록 만들어라는 겁니다.

그럴 경우엔 여러분들도 바로 빱밧지따라고 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출가자나 다름없는 생활들을 하는데, 나는 계속 출가하겠다 그러면 진짜 출가해버리고 그러는 겁니다.

 

어쨌든 출가자도 그냥 형식만 형태만의 출가가 아니라 진정한 출가가 되어야 되는 것이고, 여러분들도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그냥 세속에서 그것들을 유익하게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도와 과에 이르고 또 하루빨리 여러분들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운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해탈을 구하는 것은 출가와 재가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한 상태를 만들기가, 항상 그런 상태가 되도록 만들기 어렵다 하는 뜻입니다.

그래도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얻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들을 자꾸 얻을려고 노력을 해보라는 거라.

 

밑에 < 정리하면 >을 보면

1. 부처님의 가르침이 돋보이는 시기를 만나는 것은 얻기 어렵다.

2. 그 시기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얻기 어렵다.

3. 부처님이 말씀하신 올바른 법을 좋은 스승으로부터 법을 듣는 것,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은 얻기 어렵다.

4. 법을 듣고 실천하는 것에 의해 믿는 마음으로 채워지는 것은 얻기 어렵다.

5. 부처님의 가르침 아래에서 출가하는 것은 얻기 어렵다.

 

이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러기 위해서

[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

악을 행하지 말고, 어떠한 경우라도 신·구·의를 통해서 선을 행하도록 해야 되는 거고, 그리고 마음을 청정하게 해서 깨달음을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거고, 그렇게 부지런히 노력하게 될 때 그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고 부처님 가르침에 맞게끔 인간으로 태어나서 해야 되는 일이다 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