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8~2022 일상수행법문

2022년 담마와나선원 까티나축제 법문_빠라미 디빠니(공덕바라밀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것들) (20221106)

담마마-마까 2022. 11. 12. 21:06

https://youtu.be/J5eSvsgOiQQ?feature=shared 

* 2022년 담마와나선원 까티나축제_빠라미 디빠니(공덕바라밀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것들) (20221106)

(28:28 이후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편하게 앉으십시요.

까티나 가사를 한국말로 하면 뭐라고 그래요? 「공덕의」라고 그렇게 얘기하죠. '공덕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가사'다 해서 공덕의(功德衣)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오늘은 스님이 법문 제목을 「빠라미 디빠니(Parami-dipani)」 라고 해서 「공덕바라밀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얘기들을 좀 하겠습니다.

 

계속 수행지도하고 법문하면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수행의 단계에서 넘어가지지 못할 때는 항상 돌아보면 뭔가 바라밀이 빠져있는 부분이 있다"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보통 여러분들은 열 가지 바라밀은 잘 알죠? 열 가지 바라밀은 잘 아는데, 수행에서 얻어지는 바라밀에 대한 얘기들을 잘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한글로는 번역이 됐는지 모르겠는데 「빠라미 디빠니」라고 해서 거기 보면 '과거전생에서부터 뭘 많이 쌓아와야 되고...' 하는 것들이 잘 나와있는 책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게요. 바라밀이 그냥 보시하는 것들만 바라밀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마하깟짜야나 같은 경우를 예를 들어놨습니다. 경에서는.

노파가 우물가에서 울고 있으니까 마하깟짜야나 스님이 탁발하러 나갔다가 그 모습을 보고 “왜 울고 계십니까?” 하니까 “나는 집도 없고 자식도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남의 밑에서 허드렛일 하고 있는데 그래서 내 처지가 슬퍼가지고 울고 있습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때 마하 깟짜야나 존자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보시를 하십시요. 그러면은 가난한 거는 면할 거 아닙니까?” 하니까, 이 할머니가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했는데 줄 게 있을 거 같으면 내가 먹지 뭐 보시할 것이 뭐 있어' 이런 마음이 들어서 “뭐 아무것도 줄 게 없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때 마하깟짜야나 존자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보시는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 보시입니다. 할머니 물 좀 줄 수 있겠어요?”

우물가니까 물은 줄 수 있을 거 아니라? “예. 드릴게요.” 하고 마하 깟짜야나 존자에게 드립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천상세계에 천신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거기서 중요한 게 뭐냐면 보시는 물질적인 보시도 있지만 마음으로 베푸는 보시가 더 수승하다 하는 겁니다. 물질적인 보시도 마음으로 베풀지 않으면 그것은 공덕을 낳을 수가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시대에 태어난 거 잘한 거 같습니까?

스님은 억울해 죽겠어요. 내가 좀 더 공덕 많이 쌓아가지고 부처님 있을 때 확 태어나버리지 뭐하러 인제사 태어나가지고 이렇게 고생을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그러냐면 수행을 하다 보면 부처님 시대일 거 같으면 금방 아라한과에 이를 거 같은데 너무 힘들거든. 그래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좀 일찍 태어났으면' 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못 태어났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공덕을 쌓는 것하고, 또 하나는 내가 서원을 세우는 것.

수행 끝나고 나서 서원 세우는 사람들 있어요?

아니면 수행 시작할 때 서원 세우는 사람 있어요? 그럼 과거전생부터도 안 해왔다는 얘기라. 오늘 까티나 가사 올리는데 내가 이런 소망을 마음속에 담고 한 사람이 있느냐는 거라.

왜 그랬을까 하고 하는 것들이 경전에 나와있는 게 부처님 당시 때 상수제자로 태어난 사리뿟따나 목갈라나 존자 같은 경우에는 바라밀을 무수한 생부터 해왔습니다. 그걸 경전에서는 뭐라고 했느냐면 "1아승지겁과 10만겁 동안 윤회를 반복하면서 계속적으로 바라밀과 그리고 서원을 세웠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부처님 태어날 때 태어나도록 해도." "부처님 상수제자가 되도록 해도." 이런 서원들을 같이 했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 당시 때 태어난 큰 장로스님들도 그보다는 못하지만 10만겁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무수한 세월 동안 이 2가지를 해왔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걸 빨리어로는 아디까라(adhikāra)빳타나(Paṭṭhān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서원, 소망을 세워가지고 내가 앞으로 이뤘으면 좋겠다 하고 서원을 세우고 결정심을 내는 것들을 빳타나(Paṭṭhāna)라고 얘기합니다. 마음의 영역에서는 찬다(chanda)의 영역에 속하죠.

그다음에 아디까라(adhikāra) 라고 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면으로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오늘 얘기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방법에 대한 것들을 스님이 조금 상세하게 얘길하겠습니다.

 

특히 수행하는 사람들은 잘 들어야 됩니다. 수행하다가 막힐 때 오늘 스님이 얘기한 이 아디까라(adhikāra) 부분이 어디 부분에서 내가 부족한가 하는 것을 잘 체크 해서 그 부분을 자꾸 보충해줘야 됩니다.

 

보통 수행에서 공덕을 쌓는 종류 다섯 가지를 예를 들어 하겠습니다.

 

그게 뭐냐면, 여러분들 일요일마다 선원에 와서 수행하죠? 반복해서 계속적으로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뭔 일이 있어서 빼먹어버리면 안 돼. 내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공덕을 쌓는 부분이 보충돼야만이 단계단계를 넘어간다 할 것 같으면 그 부분을 반드시 채워줘야 됩니다. 정해놨으면 일요일은 나와서 수행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걸 반복적으로 하는 걸 얘기하는데 뿝바요가(pubba-yoga) 그렇게 얘기합니다. 숙달되도록 계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숙달되도록 하는 것은 반복해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거는 여러분들이 빼먹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아디가마(adhigama) 라고 해서 수행하는 방법은 잘 알죠? 대부분 인제는 수행방법에 대해서는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대상이 나타났을 때 이걸 심념처로서 알아차릴 것인지 아니면 수념처로서 알아차릴 것인지 그런 것들이 헷갈릴 겁니다. 그럴 때는 스승들한테 물어봐서 효과적인 방법들을 빨리 알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 방법에 대해서 잘 이해해서 그것들이 수행하는데 사띠가 연속되도록 만드는 것, 그걸 아디가마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수행에서 여기는 심념처 수행처라 해가지고 심념처만 한다? 그것도 가능합니다. 계속 심념처만 해나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념처를 다 알아놔요. 다 알고 그때그때 사띠하는 것들이 마음이 될지 느낌이 될지 몸이 될지 그것들을 놓쳐버린 상태에서 심념처만 해가지고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대상은 어떤 경우든지 일어나게 돼있습니다. 마음이 훨씬 많이 일어나지만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꼭 마음이 된다고 보장은 못 합니다. 그러면은 여러 가지 대상들을 여러분은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빠리얏띠(Pariyatti) 라고 해서 수행이 숙달되도록 하는 것도 해당이 되는데 여기서는 어느 정도 내가 이해할 필요는 있습니다. 경전공부든지 아니면 법문을 통해서든지 뭘 통해서든지 수행의 방법에 대한 것들도 '아, 위빳사나 수행도 16가지 지혜의 단계가 있구나, 사마타도 어떻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들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것이 수행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데 이해가 있다해가지고 수행에 직접적으로 뛰어들면은 그것은 장애가 되지를 않습니다. 수행은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수행하는 것이 훨씬 진보의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사와나(savaṇa) 라고 해가지고 법문 듣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됩니다. 그 스님이 법문을 잘하든 못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어긋나지 않으면 그 법문은 들을 가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수준에서 여러분에게 맞는 법문만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스님이든. 각자가 근기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스님이든 법문이 있다 할 거 같으면 그 법문은 자주자주 듣도록 해야 됩니다. 특히 요즘 같은 경우에는 그냥 무작위로 인터넷을 통해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 스님, 저 스님 법문을. , 그 법문이 부처님 가르침에 맞는 법문이 돼야 되는 것이지, 자기 얘기를 하는 법문은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자주자주 법문을 통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잘 안 하는 것들입니다.

빠리뿟차(paripucchā) 라고 해서 수행문답에 대한 것들, 질문하고 그것에 대해서 답을 구하고 하는 것들. 질의응답하는 것들은 수행을 하고 나면 조그만 거라도 반드시 스님한테 질문하고 그거에 대해서 답변을 받아라.

답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습관들을 들여놔야만이, 내가 내 방식대로 하는 것들로부터 탈피를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별 도움이 안된다 해가지고 안 해버리면 그냥 자기 방식대로만 해나가게 됩니다.

 

이게 보통 수행에서의 다섯 종류의 바라밀(pāramī)에 해당이 됩니다. 그게 수행에서 공덕을 쌓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여러분들이 수행을 해나가면서 부족한 것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꾸 채워나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아까 서원을 세우는 것하고, 그다음에 공덕을 쌓는 부분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부처님 명호중에 윗자짜라나삼빤노(vijjā caraṇa sampanno) 라고 하는 것 있죠?

그걸 뭐라고 그래요? (명행족) 명행족(明行足)이라고 그럽니다.

그 명행, 윗자(vijjā)와 짜라나(caraṇa) 이 두 개를 뭐라고 할까? 쉽게 말하면 그것이 공덕(puñña)입니다.

주석서에도 분명하게 "윗자짜라나(vijjā caraṇa)라고 하는 뿐냐(puñña)는 바로 아디까라(adhikāra)라고 한다" 하고 주석서에는 분명하게 기록을 해놓았습니다. 그게 공덕을 쌓는 것들입니다.

 

윗자(vijjā)는 수행하면서 얻어지는 것들이죠!

뭐가 있죠? 대표적으로 신통같은 것들, 막 분신을 하고 뭐 어디를 막 날아가고 무슨 소리 다 듣고, 뭐 그런 것들도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윗자 부분에서는? (누진통) 예. 누진통도 있죠. 그건 아라한이 돼야 가능한 것이고.

그전에 무상··무아에 대해서 분명하게 내가 이해하는 것! 그게 윗자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수행하는데 무상 고 무아에 대해서 모르면 그건 수행을 헛하고 있는 거라. 어떤 대상이든 분명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들을 봐야만이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질 않는 거라.

번뇌들이 떨어져나가는 것은 그것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보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변하는 것이고, 이것은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면 그걸 누가 그걸 자기 것으로 집착할려고 그래? 뱀 보니까 무섭고 물면 아플 거 같으니까 뱀 보면 피하는 거잖아. 번뇌는 그것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게 될 때 그것들로부터 멀어져버리게 되고 두려움을 일으키고 그것으로부터 분명하게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할 때는 무상·고·무아가 드러나지 않으면 일단은 수행을 스톱을 하라는 거라. 어떤 수행을 하든지! 그 속에 무상 고 무아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속에 마음이 붙잡혀있다는 얘깁니다. 수행 대상에.

 

여기서 윗자의 여덟 가지 종류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쉽게 말하면 천이통부터 해가지고 천안통 누진통 부터 쭉 다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무상·고·무아에 대해서 분명하게 아는 것! 그래서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마음에서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그것들을 해나가면서 얻어지는 윗자 부분에 해당이 됩니다.

 

그다음에 짜라나(caraṇa) 부분, 이게 보통 보면 공덕을 쌓는 부분입니다. 지금 현생에서 쌓는 부분들이 해당이 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윗자하고 짜라나 하고 구분을 하느냐 하면 여러분은 윗자를 과거전생부터 많이 해가지고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짜라나를 많이 해가지고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여러분들이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선원에 와가지고 까티나에 참석을 할 정도가 될 것 같으면 어느 정도씩은 조금씩은 과거생부터 갖추었겠죠.

 

그런데 부처님하고 부처님 당시 때 토론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토론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보면 윗자 부분을 과거생부터 쌓아온 것이 적었어요. 쉽게 말하면 무상·고·무아를 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뭔가 '내가 있다' 한국에서 많이 하는 '불멸하는 영혼이 있다, 진아가 있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관념에 쌓여가지고 세월들을 보내온 사람들입니다. 그대신에 뛰어난 스승인 부처님이 저기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기 찾아갈 정도가 될 것 같으면 짜라나 부분은 어느 정도 갖추었다는 얘깁니다.

왜? 이익된 것들을 보면 쫓아가는 것도 공덕의 부분이라는 겁니다.

 

미얀마에 지금 유명한 파욱 스님 같은 경우에는 그런 얘기를 한 게 있습니다.

"윗자 부분은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고, 짜라나 부분은 우리 몸의 손발과 같아서 좋은 자리가 있으면 찾아가 가지고 법을 듣는 역할들을 한다" 하는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일견 맞기는 맞습니다.

짜라나를 많이 갖추면 좋기는 한데 쉽게 말하면 피곤해집니다. 그래서 윗자하고 짜라나 하고는 반드시 같이 갖추어져야 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짜라나(caraṇa)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짜라나 부분은 열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몇계 받았죠? 5계 받았습니다. 오계는 지킬거죠? 지킬거라 봅니다. 그러면 짜라나 하나 했습니다. (silasaṁvara) 그렇죠?

그다음에 오늘 마음에서 보시를 했습니까? 마음에서 베푸는 역할을 했습니까? 왜 했습니까? 삼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삼보에게 베푼 겁니다. 각각의 개인 스님한테 한 것이 아니고.

그래서 그 삼보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원인·결과에 대해서 아, 내가 그래도 오늘 착한 일을 했으니까 마음은 선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선한 결과들이 있게 됩니다.

업과 업의 결과를, 삼보와 마찬가지로 그것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 그것도 여러분들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못하고 있는 게 뭘까? 여러분 지금 어디 보고 있습니까? 지금 스님이 법문하면 여러분들 마음이 어디에 있어야 돼요? 귀에 있어야 돼죠! 다른 거는 닫아야 됩니다. 스님을 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뭐하러 보느냐는 거라.

육근을 잘 방어해서 사띠로서 방호하는 것! 인드리야상와라(indriyasaṃvara)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뭘 하고 있으면 뭘 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을 해가지고 그것들을 인식을 해야 됩니다. 소리가 들리면 소리 들리는데 사띠를 해야 되는 것이지, 다른 것에 사띠를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말을 할 때는 말을 하는데 사띠를 둬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그 말하는 것 속에 내가 자애가 있는지, 말을 하는데 선한 말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 거 아닙니까?

사띠를 둘 곳은 여러분들 육근입니다. 그외 다른 데다가 사띠를 둘려고 하지 마십시요. 저 앞에 있는 스님, 저기 예쁜 꽃, 그거는 여러분들 사띠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나에게 와닿는 것이 눈이면 눈에다 두어야 되는 것이고 귀면 귀에다 두어야 되는 것이지 다른데다 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이거는 아마 여러분들이 잘 알겁니다.

적절한 식사량을 잘 아는 것. 보자네 맛딴뉴따(bhojane mattaññutā) 라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밥 먹을 때 밥 먹는 양만큼만 딱 놔놔놓고 먹을 수 있습니까? 그거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쩌면 다른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적절할 때 적절한 양만큼 식사하는 것입니다. 그걸 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들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탐욕부터 해서 성욕까지 굉장히 많은 번뇌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반드시 식사량을 조절하라. 여러분 몸을 위해서도 그리고 여러분들 수행을 위해서도 적절한 식사량은 조절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자가리야 뉴요고(jāgariyānuyogo) 라고 해가지고 이거는 뭐냐 하면 수행을 하다보면 잠이 필요가 없게 되는 때들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저녁에 잠자는 시간이 여섯 시간이다, 그러면 여섯 시간을 삼등분을 합니다. 삼등분 해가지고 한 덩어리만 남겨놔놓고 그건 잠을 자고 나머지 두 덩어리는 수행에 보탭니다. 딱 필요한 잠만 자고 나머지는 불철주야 수행하는데 보태도록 노력합니다.

수행하다가 보면 대부분 걸리는 부분들이 뭐냐면 음식량 조절하는 것하고 이 잠자는 부분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거는 게으름하고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단계를 넘어설 때는 강한 힘이 뒷받침이 되어야 되는데, 자기 할 거 다 하고 잠잘 거 다 하고, 요즘 수능도 얼마 안 남았죠? 그렇게 해가지고는 안된다는 거라.

수행은 그 모든 걸 쪼개가지고 수행시간으로 할애를 해야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좋은 공덕 일곱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아까 얘기한 삼보와 업과 업의 원인·결과에 대한 것이 삿다(saddhā, 신심) 부분으로 첫 번째에 나오고,

 

그다음에 두 번째와 세 번째가 히리와 옷땁빠(hiri-ottappa) 입니다. 이 부분은 굳이 스님이 설명 안 해도 될 겁니다. 나쁜 일 저지르고 나서 '아, 내가 잘못했네' '아이고, 어쩌지' 이런 두려움들이 일어나고 하는 이런 걸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나기 전에 그것들을 알고 저지르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것이 히리와 옷땁빠 부분에 해당이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바훗수따(bahussua)라고 해서 많이 듣는 것. 부처님 법을 많이 듣듯이 법문도 많이 듣고 해서 그것들에 대해서 알음알이를 가지라는 것이 아니고 수행에 보탬이 되도록 하라는 겁니다.

스님도 태국에 있으면서 이 바훗수따 덕을 참 많이 봤습니다. 거기는 수행을 하다가 막히면 스승한테 가서 질문하면 질문에 대한 답이 잘 안 나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은 열심히 주석서나 이런 것을 막 찾아봅니다. 그러면 막힌 부분이 나와요. 아, 그럼 여기 부분이 잘못됐구나 하는 걸 알고 다시 넘어가기도 하고, 덕을 많이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걸 게을리하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선한 일을 잘 구분해서 지금 해야 될 일을 잘 구분해서, 지금 해야 될 일들을 하고 선한 일을 하는 것! (viriya)

일단은 악한 말이든 악한 행동이든 악한 생각이든 올라올 것 같으면 스톱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지금 해야 될 것이 아닐 것 같으면 그거 하지 말아라는 거라. 시간 낭비하지 말아라는 거라. 생사를 다투는 급한 일일 거 같으면 해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 같으면 남겨두고 그냥 수행하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사띠마(satimā)라고 해서 이거는 여러분들이 잘 알겁니다. 어떤 경우든지 수행대상은 일어나게 됩니다. 그 수행대상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됩니다. 사띠하는 버릇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수행에서 중요한 것 무상·고·무아에 대한 통찰, 그게 빤냐(paññā) 부분에 해당이 됩니다. 어떤 경우든지 수행을 했을 때는 무상 고 무아의 삼특상 중에 하나가 반드시 드러나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다음에 항상 스님이 얘기하지만 선정이 사띠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선정에 드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1, 2, 3, 4 선정에 대한 것들을 개발을 자꾸 하도록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전체가 짜라나(caraṇa) 부분에 해당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잘 보면 윗자가 부족한지 짜라나가 부족한지 하는 것들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수행에서도 틀림없이 자신이 부족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 부분들은 자꾸 보충해서 수행에서 단계를 넘는데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오늘은 까티나 공덕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공덕이 여러분들 수행에서 얻을 수가 있고, 그리고 공덕들이 여러분들을 해탈로 이끌어준다는 사실을 수행을 통해서 자꾸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