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불기 2567년 담마와나 선원 안거 입재 법회 (20230730)

담마마-마까 2023. 7. 30. 22:04

https://youtu.be/H7D__KhA5-0

* 불기 2567년 담마와나 선원 안거 입재 법회 (20230730)

 

<13:52 이후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편하게 앉으십시오.

우리 애기는 방학인가? 방학했어? (네)

 

수행은 잘하고 있습니까?

여름이니까 더우니까 하기 좀 힘들죠?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데도 마찬가집니다. 더우면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점령당하는 게 수면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게으름 부리고 하는 그런 것들이 대부분 반복됩니다. 그런 것들에 점령당해버리면 노력하는 마음들은 일어나질 않습니다.

이게 표가 납니다. 하루 지나고 나서 그 사람 얼굴을 보면 얼굴이 틀려져 있거든.

근데 똑같애. 쉽게 말하면 노력은 결과가 나와야 그게 바른 노력이 되는데, 그렇게 노력을 안 하고 있다는 얘기라. 그러면은 똑같은 얼굴로서 마주보게 됩니다.

그러면 뭔 얘기들을 할까? 스님들이 만나면? 대부분 쓸데없는 얘기들입니다.

어떻게 지냈느냐 하는 얘기부터 해가지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쓸데없는 얘기들, 그리고 절을 가지고 있는 스님이면 절에 뭘 지었니 어쨌니 하는 그런 얘기들, 아마 그런 얘기들을 할 겁니다.

 

부처님께서도 출가한 비구들한테 되게 뭐라 했던 유형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사띠해서 대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비구들한테 그거는 엄격하게 많이 나무라셨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 하면 게으름 부리는 것들입니다. 해마다 부처님한테 가서 인사를 드리고 하면 뭔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보여야 되는데 그런 모습이 안 보이고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면 부처님이 게으름 부리지 말라고 되게 뭐라 합니다. 그런 유형들이 있고,

 

그다음에 또 다른 유형들이 조금 전에 얘기했던 쓸데없는 일이라든지, 그다음에 일에 관한 내용들, 일을 떠날려고 출가했는데.

일에 관한 얘기들입니다. 사원건축이든 뭐든 다 일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것들을 즐기면 그냥 수행은 절단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생활하다가 생활에 쫓기다 보면 수행하는 시간들을 못내는 거하고 꼭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모였으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법에 대한 얘기들을 해야 뭔가 유익한 것들이 있을 건데 그거 안 하거든. 대부분이 보면.

그러면 세월은 가는데 마음은 성장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 유형들은 출가자들한테 되게 뭐라 했습니다.

 

특히 이 안거에 들어갈 때 안거에 부처님이 법을 설한 내용들을 쭉 훑어보면 대부분이 보면 비구스님들한테 당부하는 얘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재가자들한테 당부하는 내용들은 또 따로 있습니다.

뭘 당부를 했을까요, 여러분들한테?

인제 며칠 뒤면 안거에 들어가지죠? 보통 8월 1일, 8월 2일날 그렇게 들어가집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수행 부분을 딱 빼고 봅시다.

바라밀을 쌓는 것들을 대부분이 보면 참 많이 하십니다.

"바라밀이 성숙해야만이 수행의 단계에서 한단계씩 건너뛰기가 수월하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바라밀을 쌓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어떤 바라밀일까?

그냥 오늘 스님들 오셨으니까 공양올리고 보시올리고 하는 걸 얘기했을까, 부처님이? 부처님은 그건 낯간지러워서 그런 얘기를 안 하셨을 겁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말하는 바라밀이라는 것은, 혹시 경험해보신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수행에서 한 단계를 넘어가야 되는데 넘어가지 못할 때 뭐가 원인인지를 알아낸 사람들이 있어요? 대부분은 계율입니다. 계율들. 계를 지키지 못했을 때 못치고 올라가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러면은 어쨌든 계가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무르익어야 됩니다. 계율부분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하고,

 

그다음에 또 부처님이 얘기하는 바라밀 부분이 뭐냐면, 육근을 방호하라는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들어오는 어떤 것이든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되지, 그걸 그냥 보이는 대로 집착하고 멀리하고 거기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들을 일으키고 이렇게 해가지고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육근을 방호하는 것들이 중요한 부분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가 뭐냐면, 먹는 것들을 조절하는 것.

주석서에서는 그런 얘기들을 적어놓은 것을 예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밥을 소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우리는 보통 두세 시간이면 다 소화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주석서에서는 여덟 시간으로 적어놓았습니다. 그마만큼 장기가 완전하게 밥을 소화하는데 에너지를 뺏기지 않는 시간이 그 정도의 긴 시간이 요구되는 겁니다.

그런데 보통은 습관적으로 아침 지나고 나면 점심 먹어야 되고, 점심 지나고 나면 저녁 먹어야 되고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 패턴으로부터 먼저 벗어나라고 얘기합니다. 배가 고플 때 그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습관적으로 자꾸 먹다 보면, 몸은 정확합니다. 먹었으면 그걸 소화를 해야 됩니다. 에너지를 쏟아야 됩니다.

그러면은 정신적으로 수행에서 대상을 알아차릴 에너지는 흩어질 수밖에 없는 거고, 분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식사량을 좀 줄이도록, '자기가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식사량이 뭔지'를 분명하게 자신이 파악을 해야 됩니다.

'이 정도 먹으면 충분하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이미 캐치를 해내고 그 양에 맞춰서 딱 중단할 때는 중단할 줄 알아야 되지 그냥 무작정 습관적으로 먹는 것들은 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바라밀을 뭘 얘기하느냐면 지금 뭐하는 시간이죠? 법을 듣는 시간이죠!

법을 듣는 시간은 무슨 시간일까? 수행에서 부처님 법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시간입니다. 법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대상에 마음이 가 있어서 부처님 법을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일상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러니까 지금 뭐하는 시간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법을 분명하게 아는 시간인데, 그것을 헛되게 보내지 말아라는 거라.

그걸 헛되게 보내는 것은 죽은 시간이고 그거는 여러분들하고 관계가 없는 시간입니다. 습관을 자꾸 내가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사띠하면서 그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되고 살아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지, 죽어있는 시간으로 보내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려는 습관들을 가지지 말아라는 거라.

 

바라밀이 열 가지 바라밀 또 삼십 가지 바라밀, 여러 가지 바라밀들이 또 많이 있지만 대부분 수행하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들이 이런 바라밀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단계 단계들을 올라가는데 디딤돌 역할들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 일상생활에서는 그것들을 자꾸 보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인제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 바라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이거는 여러분들이 반드시 해내야 됩니다!!!

 

스님 소리 들리죠? 물질적인 현상이죠!

누가 알아차립니까? 여러분들 마음이 알아차리고 있는 거죠!

정신적인 현상과 육체적인 현상이 구분이 됩니까? 가장 기본적인 이걸 해야 가능합니다. 그게 바라밀 중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거 못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고 삼매에 들 수도 없고 어떤 도와 과하고도 관계없는 것이 됩니다.

 

스님의 음성이 계속 들리는 것은 아니죠?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말을 했을 때 음성이 나가서 그 파동으로 여러분들의 귀를 때려서 접촉이 있어서 그것으로 인해서 여러분들에게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원인·결과를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물질적인 현상도 분명히 원인·결과가 있고, 정신적인 현상도 원인·결과가 있습니다. 듣고자 하지 않을 거 같으면 안 들려버립니다. 원인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구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또 중요한 마지막 세 번째가 뭐냐면 그 어떤 것이든 들리는 소리이든 내게 일어나는 마음이든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무상한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무상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그 정신적인 현상과 육체적인 현상은 변하기 때문에 나는 만족하지 못하는 거고, 항상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고,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 스스로 왔다가 지 스스로 사라지는 것들이 돼야 됩니다. 내가 집착할 수 있는 대상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집착하는 것들이 자꾸 엷어져서 생활속에서도 집착하는 것들이 계속 떨어져 나가야 됩니다.

최고 먼저 떨어지는 것이 유신견이 먼저 떨어져나갑니다.

그런 식으로 발전이 되어나가는 게 이게 세 번째에 해당이 됩니다.

 

이 세 가지도 바라밀의 영역에 속하면서도 지혜의 영역에 속합니다.

수행은 이렇게 서로가 두 가지 패턴이 어울리면서 단계들을 올려주게끔 됩니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시간들은 이런 안거철입니다.

안거철이 되면 스님들은 의무적으로 수행을 해야 됩니다.

안거철에 안거에 정주해야 되는 것이고, 싫든 좋든 어쨌든 공부를 해나가야 됩니다.

 

스님이 태국에 있으면서 참 많이 들었던 것이 뭐냐면 자꾸 수행할려고 하니까 스승들이 자꾸 만류를 합니다. “공부해라” 왜 젊은 나이에, 스님이 20대에 들어갔으니까, 젊은 나이에 공부를 안 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아무리 수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막힌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수행을 할 때 계가 받침이 되지를 않고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하고 고요해지지 않으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수행을 하는데 그것을 스승한테 만날 물어볼 수도 없는 거고, 누구한테 가서 그걸 증명을 받고 확인을 받을 거라?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스님들 법문을 듣든지 아니면 책을 통하든지 뭘 하든지 해서 계속 공부를 해나가야 됩니다. '바훗수또' 라고 그럽니다.

진물이 나도록 그것들을 배워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냥 죽어있는 경을 알고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살아 움직여서 수행에서 확인이 될 수 있는 경이 되어야 됩니다.

 

경을 배우든지 그렇지 않으면 수행을 통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될 거 아니라? 안거철인데.

마음을 단단하게 고요하게 잡아야 됩니다.

그냥 때가 됐으니까 그냥 안거 보낼려고 그리 생각하지 말고 그래도 ‘이번 안거에는 뭔가 내가 성취한 것이 있었구나’ 하고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안거 시간들이 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러기 위해 가장 걸림돌이 여기 올 정도의 사람들이면 시간이 없어서 수행을 못한다 소리는 못 할 거라. 그렇죠? 시간들은 하루 중에 다만 한 시간 두 시간이라도 빼낼 수는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럼 그 시간은 그냥 ‘수행 외에는 나에게는 다른 시간이 없다’ 생각하고 수행들을 해야 됩니다.

 

에어컨 밑에서 시원하게 할 거 같으면 수행 잘 될 거 같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조건이 맞아야만이 수행은 무르익어가집니다.

아까 뭐라고 그랬죠? 여름철 특히 안거철 되면 습하고 하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좋은 마음의 상태가 돼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은 짜증도 좀 많이 일어나게끔 되고, 그래서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이 전에보다 더 훨씬 더 적어요.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되는데 마음이 이미 하기 싫어.

그러면 금방 수행시간을 단축해버리고 일어나버립니다. 안 그러면 잠자는 것처럼 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앉아서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하품을 한다든지 아니면 게으름을 부린다든지.

우짜면 좋노? 어떻게 할래요?

 

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이고, 내가 또 놓쳤네’ 하고 판단하고, 다시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만들고 나서 대상을 알아차리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노력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스님이 가서 아무리 끄잡아가지고 공부한다 하더라도 수행은 지가 하는 거지 스님이 대신 해주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마음을 먹어보십시오.

자꾸 큰 목표를 잡지 말고, '나는 아라한이 될 것이다', '나는 수다원에 이를 것이다' 그런 목표는 결의를 세울 때나 가능한 것이지, 그리고 그런 결의를 세우는 것은 아쉽게도 지금의 시대에서는 별로 효용가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바라밀의 영역에는 그런 결의도 포함이 돼있는데, 그런 결의가 통용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런 큰 결의 보다는 대상을 놓치지 않겠다하고 마음을 먹고 알아차려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놓쳤으면 그냥 후회할려는 마음보다는 ‘음, 놓쳤네’ 하고 다시 또 대상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해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그런 수행시간을 늘려나가는 방법이 좋은 방법이지, 너무 큰 목표만 잡아가지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건 의미가 없어져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노력하는 것들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결과가 나지 않으면, 노력하는 결과가 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시간 좌선수행 했죠? 뭔가 결과가 나와야 될 거 아니라?

그 시간 동안에 망상을 피운 것도 결과고, 잠을 잔 것도 결과고, 그 순간에 뭔가 신비한 빛을 본 것도 결과고, 대상을 막 취해가지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도 결과입니다.

어떤 결과가 좋을까? 다 틀렸습니다.

그 결과들은 전부 여러분들 수행의 장애이지 수행을 잘해서 일어나는 결과가 되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좋은 게 일어났으면, 좋은 것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일시적인 건데 꼭 붙잡혀 있으니까 그게 좋은 게 마음속에 딱 남아있어요.

수행의 장애는 장애로써 인식을 해야 되는 것이지, 그것이 아무리 좋은 현상이든 그것이 나쁜 현상이든 그것들에 계속 붙잡혀 있어버리면 잠이면 잠에 계속 빠져있게 되는 거고 빛이면 빛에 그냥 감싸여져가지고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거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간들입니다.

 

결과가 난다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대상을 알아차려나가는데 어떤 식으로 알아차려나가느냐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된다는 거라.

‘어, 내가 이번 시간에는 해보니까 대상이 분명히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으로 구분이 되네’ 그건 좋은 결과가 됩니다.

또 해보니까 ‘그거 구분은 안 되는데 마음이 대상으로부터 떠나지 않은 상태가 되네’ 그것도 좋은 결과입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나는 노력하지 않았다" 라고 마음을 먹어라는 거라.

수행은 그런 결과들이 모였을 때 한단계 한단계를 밟아나가게끔 됩니다.

여러분들 시간이, 특히 다가와지는 안거 시간은 헛되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이생을 마칠 정도 되어서 적어도 호흡은 알아차리면서 죽어야 될 거 아니라?

지금부터 하면 그래도 몇십년은 할 거 아니라.

그런데 죽는 순간에 지가 무슨 호흡하면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고 할 거 같으면 헛되게 산 거라.

아무리 내가 재산이 많았든 명성이 높았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죽음의 순간에는 그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라.

다음생이 있든 없든 간에 죽는 순간은 잘 죽어야 됩니다.

그럴려면 대상을 놓치지 않고 대상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능력들이 평소에 키워져야만이 가능합니다.

 

한번 여러분들 마음에 결정들을 해보십시오.

"결과를 내지 않는 것은 노력한 것이 아니다"

수행의 결과들은 경전 곳곳에 잘 쓰여져 있습니다.

한꺼번에 쭉 결과를 낼 수도 있고,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밟아나갈 수도 있습니다. 조급해하지만 않으면 누구든지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안거는 여러분들에게 부처님이 선물해준 수행하기 참 좋은 시간입니다.

다른 종교하고 다르게 안거를 도입한 것은 여러분들에게 수행하라고 안거의 시간을 준겁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