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37PoVNJtMug?si=C4hYy-3a55wMsqsQ
[ 안거종료 자자의식 및 수계식 법회의식이 진행됩니다. ]
<13:50초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 선원에서는 해제를 하는데, 근데 서울 너희들은 해제했는데 왜 와?
원래 해제를 하고 나면 그 부처님 당시 때는 공부가 인제 됐다고 판단을 하고 "포교를 위해서 만행을 나가라" 하고 얘기합니다.
인제 우리 선원 여기 지금, 여기 온 지도 지금 벌써 몇 년째죠? (수행자 : 7년째입니다.) 7년째입니까? 부산에서 한 십 년 있었고, 여기 7년째가 됐습니다.
인제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들도 알고 또 다른 사람들을 좀 잘 이끄는 그런 영역들도 생기고 그렇게 했으리라고 봅니다. 한 해 지나고 나면 ‘아, 내가 조금 더 달라져 있다’ 하는 것들을 안거 끝나면서 자꾸 스스로 돌아봐야 됩니다.
오늘 수계받는 사람은 두 사람이지만은 수계받을 자격을 갖췄을 때 수계를 받는 겁니다. 근데 수계는 여러분들은 뒤에 분들은 이미 다 받은 상태입니다. 이미 자격을 갖추었다는 얘기와 마찬가집니다.
그 수계받을 자격을 갖췄는지 스스로 한번 잘, 스님이 얘기하는 항목을 가지고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카마(khamā)'
'칸띠(khanti)'가 무슨 뜻이죠. '인내한다'는 거죠. 그냥 무엇에 대해서 인내하는 거죠? 여러 가지 외부적인 영향이든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그것들로 인해서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어주는 게 사실은 인내입니다. 그냥 춥고 배고프고 한 거 그거 꾹 눌러 참는 걸 인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 인내에서 나온 말이 '카마(khamā)'라는 거라. 잘 견디어나가는 훈련들이 돼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조건에 영향을 자꾸 받아서는 안 됩니다. 사회생활 하니깐 돈을 잘 벌기도 하고, 남한테 비난받기도 하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생기는데 그거는 결과로써 따라오는 것이지, 여러분이 그 결과에 자꾸 매여버리면은 그것으로 인해서 탐·진·치가 자꾸 일어나버리게 됩니다.
한발 한발 나아갈 때 최선을 다하게 될 때 거기에서 따라오는 결과들은 본인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럼 적어도 그것으로 인해서 탐진치는 안 일어나게 되는 거라. 그게 인제 외부적인 조건이든 내부적인 조건이든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항상 그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있게 되는 거라. 그래서 그걸 그냥 냉정하고 고요한 상태로써 바라보게 되는 거라. 그러면 그것은 자기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돼 버리는 거라.
왜 저렇게 비난하는 것이 많지? 하면 ‘어, 내가 뭔가 고칠 것이 있는가?’ 하고 돌아보게 되는 거고. 지나치게 칭찬한다 하더라도 ‘아니야, 내가 그 정도까진 아닌데’ 이렇게 칭찬을 받았으면 그러기 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적극 더욱 노력하게 되는 거라.
그걸 첫 번째 '카마(khamā)'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걸 '칭찬이나, 비난에 대해서 인내한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자가리야(jāgariyā)'라고 합니다.
'깨어 있어야 된다'는 얘긴데 사띠 안 하는 삶은 죽은 삶이죠? 그래서 과연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상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할 때 사띠를 얼마나 지니고 있느냐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깨어있지 못하게 되는 거라. 자신이 뭘 한 지를 모르는 상태가 돼 버리게 되고, 또 사띠 하지 않으면은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게 돼버리는 거라. 그걸 자가리야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제는 수행들이 어느 정도 무르익고 했으니까 자동적으로 사띠가 되면 가장 좋겠지만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아, 빨리 내가 또 사띠 놓쳤네 하고 다시 돌아올 줄 알아야 되는 거라. 그런 마음들이 자꾸 일어나지 않으면은 법을 배우는데 자꾸 더딜 수밖에 없는 거라. 그래서 그걸 자꾸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세 번째가 '웃타나(utthan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 게송을 부처님이 설할 때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여기 지금 법문 때문에 조용히 귀담아 듣고 있죠? 탁 나가서 점심 공양할 때 되면 오만 얘기들을 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뭐 먹는 음식에 대한 얘기.
비구 스님들도 이제 출가한지 얼마 안 된 스님들도 그런 스님들이 많았던 모양이라. 들썩들썩 하는 걸 부처님이 가만히 보니깐 참 한심하거든. 그래서 목갈라나한테 얘기해가지고 “저놈들이 있는 건물을 신통력으로 들썩들썩하게 만들어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안에 있던 스님들 놀랜 거라. “왜 이 건물이 흔들리지?” 하는 거라. 그때 부처님이 스님들을 불러서 얘기를 합니다.
“너희들 마음이 왜 그렇게 흔들리고 들썩거리느냐?” 하는 거라. 이 건물이 들썩거리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 마음이 지금 곧 이 건물이 무너질 듯이 들썩거리듯이 마음이 그렇게 들썩거려 가지고 어떻게 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그게 인제 웃타나라고 하는 그 게송을 얘기하면서 부처님이 한 일화에 있습니다.
말미에 부처님이 뭐라고 하느냐면은 "죽음은 게으른 자의 몫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게으르면은 죽음으로 빨리 갈 수밖에 없다는 거라.
원래 이 '웃타나'의 의미 자체는 '활동적'이라는 얘긴데, 그냥 막 떠들고 노는데 활동적이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 '법을 체험하고 법을 이해하고 그 법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 활동적이 돼야 되는 것'이지. 다른 것들로 자꾸 활동적이 돼서는 안된다는 얘깁니다. 오늘 공양할 때도 법에 대한 이야기를 되도록이면 하고, 별 의미도 없는 얘기들로써 시간들을 보내지 않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자꾸 마음이 법을 향해서 기울어지도록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상위빠까(saṁ vipāka)'라고 그럽니다.
그래도 우리 선원 사람들은 이렇게 보면 그거는 좀 잘하는 거 같애. 초심자가 오고 하면 얼굴은 무뚝뚝하니 그러는데 법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목조목 이렇게 잘 설명을 해줍니다. 여러분들은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 법이 소중한 줄 알 것 같으면 그 소중한 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눌 줄 알아야 됩니다.
가끔씩 그런 얘기를 듣습니다. “스님, 저는 어디 가서 테라와다 불자라고 얘기를 못 합니다.” 하고. 왜 그렇게 이야기 하느냐 하니까, “테라와다 불자라고 하면 싫어합니다. 미워합니다. 자꾸 이렇게 내칠려고 하기 때문에 그럽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니가 행하는 것들이 바를 것 같으면 그 사람들은 너에게 뭘 수행하고 뭘 배우느냐 하고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나는 테라와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다’ 하고 얘기를 할 수 있는데, ‘니 스스로 자꾸 나는 테라와다가 수승하고 나는 테라와다를 한다’ 하고 자꾸 내세우는 거 아니냐?” 하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걸 내세우면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행하지도 못하면서 그거 자꾸 내세운다고 미워하게 되는 거라. 벽을 쌓게 되는 거라.
행위가 바를 때는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을 열심히 잘하고 있으면은 다른 사람들은 그 수행이나 법을 배울려고 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법들을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그냥 “이게 좋으니까 너도 이거 해봐” 하면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풍겨나오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이 배우게끔 만들어 주는 것들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걸 "가진 것을 나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법은 나누어지면 나누어질수록 그것은 커지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멧따와 까루나(mettā karuṇā)" '자비심을 가지라'
이거는 스님이 누누이 강조하기 때문에 "자비심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고 한마디 말도 하지 말고, 다른 어떤 대상들을 알아차리려고 하지도 말아라"는 거라. 탐진치에 젖어서 산 삶이 많지 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면서 사는 삶이 많지는 않다는 거라. 그럼 자비가 없으면은 나오는 행위들이나 말들은 대부분은 자기 이기적이 되고 남을 비난하는 것들이 되는 거라. 그래서 자비를 지니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익카나(ikkhan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왕 수행을 했으면 좀 지혜가 개발돼야 되지 않을까? 지혜가 개발되지 않으면 앞에 지금 여러 가지들을 하더라도 그건 억지로 만들어야 되는 거고, 다시 또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거라. 원래 '익카나'라는 뜻은 '신통력과 비슷한 예지력' 같은 그런 것들을 얘기하는데 그것보다는 여러분들에게는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적어도 더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지혜는 개발을 해야 된다'는 거라.
그래야 남을 이끌 수가 있고, 좀 더 법을 나눌 수가 있고 그렇게 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은 언제든지 본인 자신이 떨어져버리게 되는 거라.
그래서 이런 것들이 적어도 안거를 지낸 분들, 그리고 남을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안거를 보냈습니다. 본인에게 부족한 것들이 이 6가지 중에 뭔지를 잘 판단해가지고 그것들을 자꾸 채우고 넘칠 수 있도록 자꾸 만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 수계법회 의식 ] <29:35초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자, 그러면 두 분 수계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가깝게 붙어 앉고, 다른 사람들은 좀 뒤로 물러나고.
원래 이 "우빠삼빠다(upasampadā)" 할 때는 두 사람이 팔을 뻗었을 때 팔이 닿을 수 있는 거리 내에 있어야 돼요.
다른 사람들은 팔을 뻗었을 때 그 팔이 닿을 수 없는 거리 밖으로 나가 있어야 돼요. 알겠죠.
... ... ...
[ 수계 법명 설명 ] <40:43초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이종철님은 수계 법명이 "삿다하-노(saddhahāno)" 입니다.
따라서 해보십시요. 삿다하노 (수행자 : 삿다하노)
수계 주는 스승은 빤냐와로입니다. 따라 해보십시오. 빤냐와로 (수행자 : 빤냐와로)
그다음에 권영훈님은 수계 법명이 "칸따르(khantar)"입니다.
칸따르 따라 해보십시오. (수행자 : 칸따르)
수계 법사는 빤냐와로입니다. 따라 해보십시요. (수행자 : 빤냐와로)
자기 수계명하고 스승의 이름은 잘 기억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분은 편하게 앉으십시오.
"삿다하-노(saddhahāno)"
이 이름은, 이 말이 많이 나오는 게 알라위까 야차가 부처님한테 물어볼 때 이 삿다하노 라는 게송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으뜸가는 재산이 뭘까? (수계자 : 삿다하노 입니다.)
그때 부처님이 얘기한 게 “삿다하노 입니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사띠를 하든지 법을 공부를 하든지 뭘 할 거 아니라. 그래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재산은 삿다하노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 받은 계, 또 불재일날은 팔계를 지키고 일반일일 때는 오계를 지키는 재가자의 삶을 살 때 계를 어기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점점 더 믿음들이 확신이 되도록 만들어진다는 거라.
그래서 그게 확립이 될 때 마음속에서는 재산을 딱 모으는 것처럼 마음이 가득 찬 것 처럼 된다는 거라. 그래서 더욱더 공부를 할려고 하고 더욱더 사띠를 할려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열반에 이르르고 아라한이 될 때까지 더욱더 노력을 하게 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윤회 많이 했죠? 알라위까가 다시 물어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윤회의 홍수를 건널 수 있습니까?” (수계자 : 삿다하노 입니다.)
그렇지. 삿다하노로써 홍수를 건널 수 있다는 거라. 아무리 어려운 게 닥치더라도 믿음이 확립이 돼 있으면은 적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게 되는 거라. 견고하게 뿌리 박힌 기둥과 같이 그게 확립이 되어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뭔가 휩쓸려 오더라도 나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뜻이라. 앞으로도 이생에서 깨달음을 이룰 수 없으면 또 윤회해야 됩니다. 끊임없이 윤회의 홍수에 휘말려 들어가야 되는데 그걸 지탱해 줄 수 있는 거는 삿다하노라는 거라.
또 하나 물어봅니다.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수계자 : 삿다하노 입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필요하겠죠.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에 대한 믿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성자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 이 사람들의 가르침입니다. 이 사람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딱 믿음이 확립돼있다는 거라. 그러면 본인은 지혜를 얻게 되는 거라. 그게 삿다하노라고 하는 겁니다.
그게 확립이 돼야만이 노력하게 되고, 방일하지 않게 되고, 사띠를 하게 되고, 믿음이 있어야 사띠를 하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 더욱더 열심히 듣고 실천할려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어서 도와 과에 이르른다는 그런 뜻입니다. 알겠죠.
그다음에 "칸따르(khantar)"
'큰 인내'의 의미로 가지고 법명을 지어달라고 했는데 칸띠는 여성형입니다. 그래서 칸띠로 가지고는 남성에게는 쓸 수 없는 겁니다. 칸따가 된다든지 칸또가 된다든지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칸띠와 똑같은 의미를 지닌 칸따르라고 지었습니다. 칸띠에서 파생된 겁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 용왕이 무칠란다 용왕이 부처님이 선정삼매에 일주일간 들어 있을 때 이렇게 보호했다는 거 알죠. 그 용왕이 왜 괜히 부처님을 추위와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줬을까? 왜 그랬어요?
추위와 배고픔이나 여러 가지로부터 능히 그것을 견뎌내는 모습을 보고 ‘아, 저분은 깨달음에 이르신 분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고, 그래서 그분을 보호해주려는 마음이 생기는 거라. 그냥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이 오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칸따르'라는 용어는 4가지 조건 중에 하나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 '소따르(sotar)'라 해가지고 '부처님의 법을 들을 수 있는 자'
이제 부처님 가르침을 들을 수 있겠어요? 듣는다라는 건 듣기만 해가지고 까먹어버리면 그건 의미가 없는 거라. 그걸 기억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거라. 하나를 배웠으면 하나를 실천할 수 있는 것, 실천했으면 또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 생겨야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한따르(hantar)'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마음속에 번뇌들은 많이 일어나죠? (수계자 : 예. 많습니다.) 그거 없앨려고 하는 시도해 본 적 있어요?
시도해 봐야 됩니다. 번뇌가 일어나 가지고 본인에게 이롭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로운 법은 없습니다. 그걸 왜 지니고 있느냐는 거라. 그걸 자꾸 없앨려고 해야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속에서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끔 그리고 그 일어나는 것들은 빨리 없앨려고 빨리 제거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거라.
그다음에 세 번째가 '칸따르(khantar)'라고 합니다.
'외부적인 조건이 어떠한 경우든지 그대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만들어라'는 거라. 그런데 밖의 표정은 보면 아주 온화하게 되는 거라. 온화하고 평온해 보인다는 거라. 그게 영향을 못 미치는 거라. 불이든 바람이든 비바람이든 부처님한테 영향을 못 미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그게 세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간따르(gantar)'라고 얘기합니다.
'잘 실천하고 잘 사띠하는 습관이 들어있다'는 거라. 바라밀을 쌓는 것도 실천하는데 해당이 됩니다. 사띠하는 것도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실천하는 것에 해당이 됩니다. 공덕을 쌓고 지혜를 개발하는데 그게 습관이 돼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무칠란다 용왕이 봤을 때 딱 저 분이 보니까 이 4가지 조건을 딱 갖췄거든. 그러니까 어떻게 해? 보호할 수밖에 없는 거라. 본인도 마찬가지라는 거라. 그 4가지 조건을 자꾸 갖추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항상 마음은 부동의 상태가 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온화한 모습을 지닌 자가 될 수 있도록 자꾸 만들어라는 거라.
그게 슬픔이나 고통으로부터 그것을 견뎌내고 참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인욕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칸따르 입니다.
그래서 두 분은 오늘 법명이 삿다하-노, 그다음에 칸따르라고 합니다.
두 분은 무릎 꿇고, 게송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이 증명하는 게송을 할 동안에 마음속으로 잘 받아지녀서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살아가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 계사스님께서 수계자를 증명하는 빨리어 게송 독송 ]
[ 대중 모두 공덕회향 게송 ]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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