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자애수행할 때 주의깊게 봐야되는 부분_자애수행으로 선정에 들도록(20240420)

담마마-마까 2024. 4. 21. 21:20

 

https://youtu.be/ZZwyDXtbiDU?si=mrdERvxTpFvsMgb1

 

* 자애수행할 때 주의깊게 봐야되는 부분_자애수행으로 선정에 들도록(20240420)

오늘은 「자애수행 할 때 좀 주의 깊게 봐야 되는 부분」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자애수행은 왜 하죠? 왜 하는 거라?

왜 여기 다 벙어리들만 있어? 말을 안 해.

(수행자 대답 : 그중에 한 가지는 예비수행으로 하기도 하고...)

(수행자 대답 :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서 합니다.)

음. 보통 자애수행을 요런 식으로 하니까 자애수행이 안 느는 거라.

대부분 문답하는 사람들이 “스님, 자애수행이 참 잘 안됩니다. 오래 못합니다”

대부분 다 잘 깨진다는 얘기죠, 자애가.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왜 깨질까?

 

자애수행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자애수행은 어떠한 경우든지 '내가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 자애수행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말하는 거나 생각하는 거나 그다음에 행동하는 것들이 항상 자애를 지니고 하면서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행복한 생활조건들이 계속적으로 되도록 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고,

더욱더 하다 보면 자애수행으로 인해서 첫째, 둘째, 셋째 선정까지는 충분히 도달할 수가 있어서, 그 집중하는 힘들이 다른 것들로 인해서 삼매를 개발하는 것보다도 훨씬 빠르고 강합니다.

그게 위빳사나로 전환됐을 때는 빨리 성취들을 가져오는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 두 번째 부분을 사람들이 그냥 잊어버립니다.

그냥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행복하기를’ 그러고는 계속 갈려고 합니다.

삼매에 들 생각은 전혀 안 한다는 거라.

그래서 “자애수행 하는 게 참 힘듭니다” 하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다시 물어봅니다.

“고집이 세죠?” 대부분은 뭐라는지 알아요?

“고집 안 센데요” 고집이 안 세답니다.

 

고집이 세지 않으면 자애수행 할 때 자애의 대상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고집이 세다"는 건 뭐냐 하면, 자기에게 나쁜 방향으로 악감정들이 계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는데 그것들을 방치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내가 행복하기를’ 하고 있다.

그럼 ‘내가 행복하기를’ 해야 되는데 어디다 집중을 해야 됩니까?

나에게 집중해야 됩니까?

아니면 행복하기를 하는데 집중해야 됩니까?

나에게 집중하면 안 되지!

 

나에게 집중하면 어떤 게 생깁니까?

나로 인해서 내가 좋은 점들 나쁜 점들 이런 것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나쁜 것으로 인해서는 당연히 싫은 마음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고, 좋은 것은 집착하게끔 되는 거고.

 

자애수행을 할 때는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됩니다.

감정으로부터 떠나서 순수하게 이성적인 마음으로 행복하기를해야 되는데, 본인이 악감정이 생겨나면,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감정이 생겨난 것들을 방치를 자꾸 해둬버리고 그냥 ‘행복하기를’ 계속하고 있는 거라.

아무 의미 없어져버리는 거라.

 

그래서 자애수행을 할 때 맨 처음에 해야되는 것이 감정이 생겨나는지 안 생겨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됩니다.

생겨나면 일단 자애수행하는 것을 스톱해야 됩니다.

스톱 하고 나서 마음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먼저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괴로움이 없기를 해야’ 되는 건데 그냥 무시해버리고 계속 하게 됩니다. 그 얘기는 뭐냐하면,

왜 처음에 고집이 세다고 얘기했느냐면, 안 바꿀려고 하는 거라. 그 패턴들을. 자기가 하던 방향대로 그냥 해나가는 거라. 그리하면 일정 시간 동안은 거기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걸 안 바꿀려고 그럽니다.

 

아무리 수행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행복하기를’ 하도 있으면 1분을 거기에 집중하기가 힘이 듭니다. 아무리 악감정이 없이 그냥 평온하게 그것을 집중하고 있어도. 그런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거보다도 훨씬 못하게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인데도 그냥 그대로 해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먼저 감정이 생겨나는 것들을 빨리 차단을 시켜라.

그리고 본인이 인정해야 됩니다.

아, 내가 집중하고 있는 포인트가 ‘행복하기를’ 하는데 집중해야 되는데, 자꾸 '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화'를 시키는 거라.

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떠오르는 이미지화에 집중이 자꾸 되는 거라.

아,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인정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인정을 해야만이 바꿀려고 합니다.

 

테라와다 불교권에 가면, 그 사원에 만약에 갔다, 그러면 좋든 싫든 어느 한 스님하고 같이 앉아가지고 서로 삼배하고 참회게송을 합니다.

“내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저지른 잘못된 행위가 있으면 용서해주십시요.”

그러면 상대방도 “예, 당신을 용서합니다. 나도 그러한 잘못들이 있으면 나도 용서해주십시요.” 하고, 또 이쪽에서 “예, 나도 당신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하면서 그 참회하는 것을 먼저 하고 나야 그다음에 그 사원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그 사람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

근데 왜 그럴까? 자신도 모르게 잘못은 언제든지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감정이 안 생길라 하더라도 안 생길 수가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감정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된다는 거라.

그러고 나서, 인정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러한 것들이 생겨나면 , 내가 또 나라고 하는 데다 집중을 하고 있구나하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그럼 빨리 전환시켜야 되는 거라.

그냥 ‘행복하기를’ 그게 내 자식이든 아니면 누구든 해서 빨리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하게끔 됩니다.

 

가끔 스님이 선원에 있으면서 가만히 보면 뭔가 사람들이 뭘 만듭니다.

만드는 건 좋은데 인젠 좀 그만 만들어요. 너무 복잡해.

만드는 건 좋은데 만들 때 하는 것들을 보면 이익이 있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는데, 다른 한편은 괴로움을 당하는 것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쓰레받기나 뭔가 도구들을 꽃 위에다가 탁 놔놓는 것을 보게 됩니다.

뭐 꽃은 안 괴로워 그러면?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거라.

최대한 그러한 것들이 없이 이익이나 행복을 위해서 뭔가를 만들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만이 그 사람을 보고 ‘아, 그래도 저 사람은 마음속에서 자애를 가지고 뭔가를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체든 아니면 생명이 아닌 것이든 관계없이 평등하게 보고 그 모든 것들이 다 행복하고 괴로움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됩니다.

그래야 마음이 점점 더 넓어지게 되는 거라.

자애수행은 평상시 때는 그런 식으로 바뀌어져 나가야 됩니다.

말을 할 때든 행동할 때든 마음에서든 자애를 항상 지니고 뭔가를 하라는 거라.

 

수행을 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자애를 지닌 채 위빳사나 수행을 할 것 같으면 훨씬 수월하게 대상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분별하지 않게끔 되고, 견해를 내세우지 않게 되고, 거기에서 어떠한 감정들이 생겨나지 않는 상태에서 대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편안하게 대상을 볼 수가 있게 되는 거라. 있는 그대로.

그러면 수행도 위빳사나 수행도 훨씬 더 수월해지고, 일상생활도 모든 것들을 하면서 본인은 행복한 상태를 유지를 하게끔 됩니다.

그게 인제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근데 그것에서 끝나버리면 자애 수행은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뭘 해야 될까? 아까 두 번째 얘기했죠?

선정에 들도록은 해야 될 거 아니라? 자애수행으로!

근데 왜 자애수행을 하면서 그냥 위빳사나 수행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에 잠깐 뭐 마음이 고요하고 편해지고 행복해지는 그런 거 잠깐 경험하기 위해서 자애수행을 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자애수행을 하는 것은 일단은 내가 집중하는 힘이 생겨서 더 커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선정을 경험하는 단계까지는 가봐야 된다는 거라.

그게 초선정이든 이선정이든 삼선정이든.

삼선정 뒤에 다시 전환하는 것이 우뻭카로 전환할려면 어떻게 전환하는지를, 자애수행에서 우뻭카로 어떻게 전환하는지도 경험을 해봐야 됩니다.

 

왜 선정을 경험을 못해볼까?

다른 거 없습니다. 할려는 생각 자체를 일으키지를 않는 거라!

두 번째, 마음이 자꾸 왔다갔다 왔다갔다 합니다.

자애수행 했다가 호흡관찰 했다가, 소리들리면 소리들리는 데로 집중했다가, 또다시 자애수행을 했다가...

왜 그렇게 하고 있는 거라?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데 어떻게 선정에 들 거라?

 

경전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자애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에서 계속 일어나게 하고, 지속적으로 마음에 새기면서 수행하는 것을 자애수행이라 한다.」

지속적으로 자애의 마음이 일어나야 하는 거고, 그것이 가슴에 새겨져야 된다는 거라.

 

우리 선원 올 때 저 밑에 표지판이 몇 개 있는지 아는 사람? 저 밑에 큰길에서부터 몇 개 있어요?

(수행자 대답 : 4개인가 있습니다.)

맞아요. 요 앞에 거 빼고 나면 4개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없어졌는데.

(수행자 대답 : 일부 떼 갖고 만들었었는데 그게 좀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가지고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아,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가지고?

 

자애수행은 안내표지판과 같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올려면, 모르는 길을 갈려면 그 안내표지판을 보고 ‘어, 요리 가라하네’ 하고 요리 가야 되고, ‘요리 가라하네’ 하고 요리 가야되고, 그렇게 해가지고 와야 되는 겁니다.

안내표지판이 있어야만이 자애의 마음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하는 것들을 계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가다 중간에 다른 데로 가버립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안 하고 호흡을 관찰한다? 자애는 사라져버린다는 거라. 다른 데로 가버린다는 거라.

 

수행을 할 때는 그 수행의 안내표지판을 잘 보고 따라가야 됩니다.

그게 ‘내가 행복하기를’ 하는 것이 가슴에 딱 새겨져야만이,

그다음에는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이 있습니다.

뭐가 일어날까? 진짜 행복한 게 돼야 됩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시원해지고 뭔가 행복한 마음들이 자꾸 생겨나고 그러면서 기쁨들이 탁 일어나면서 선정으로 탁 들어가게 되는 거라.

왜 자꾸 표지판을 안 보고 딴 길로 자꾸 새고 다시 또 돌아오고 또 돌아오고 하느냐는 거라.

 

안내표지판이 잘못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자애 문구가 너무 길 때.

문구는 짧게 두 개 아니면 세 개 정도 해야 됩니다.

‘행복하기를’

‘괴로움이 없기를’

‘내가 빨리 열반에 이르기를’

이런 짧은 구절들이 돼야 되는 거지, 길게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거 기억하고 그대로 또 따라 할려고 할 것 같으면 그게 자꾸 이미지화 돼버리는 거라.

‘행복하기를’ 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이미지화'에 집중하는 거라.

나에게 집중되어서 나로 인해서 감정이 생기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문구 자체가 이미지화 돼버립니다.

 

이미지화 되는 것은 어떨 때는 좋은 경우들도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이미지화돼서 딱 고정될 것 같으면 그거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문구 자체를 줄여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내 자식 누가 행복하기를, 나의 부모가 행복하기를, 누가 행복하기를, 우리 스승이 행복하기를’ 한 10분 아니면 5분 동안 내내 그거 하고 있습니다.

다른 거 그렇게 할 이유가 있어요?

 

내가 행복하기를하고 나면 자애가 가득하고 확장되고 넘치면, 그것을 나의 자식에게 향하면 그게 자식에게 가집니다. 또는 나의 부모에게 향하면 나의 부모에게 향해집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마음이, 자기에게 자기가 느끼는 느낌이 행복하게 가득찼을 때 다른 사람들을 향할 때 그게 자애가 방사되고 방출되는 것이지, 그냥 말로만 내가 행복하기를, 자식이 행복하기를, 부모가 행복하기를 한다 해가지고 그게 그렇게 자식이나 부모에게 향해지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또 어떤 사람들은 괜히 폼 잡는다고 빨리어로 합니다.

‘삽베 삿따 아웨라 혼뚜(sabbe sattā averā hontu)’

‘수키따 혼뚜(sukhitā hontu)’

뭐 이렇게 합니다. 그럴 이유가 여러분에게 전혀 없습니다.

아웨라(averā)가 뭔지 수키따(sukhitā)가 뭔지 어렴풋이는 압니다.

‘적의(敵意)로부터 벗어나기를’, ‘행복이 충만되기를’ 의미는 알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가슴에 와닿지를 않는 단어들입니다.

 

그럼 그거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냥 ‘행복하기를’ 할 거 같으면 될 거를 갖다가 왜 그걸 어렵게 자꾸 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그거는 출가한 스님들이나 빨리어에 대해서 정통할 때 그것 문구들이 자애의 문구가 될 수가 있는 것이지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짧게!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자애의 문구로 삼도록 자꾸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애를 할려면 마음을 자꾸 키워나가야 됩니다.

자애의 마음을 자꾸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럴려면 어떠한 경우든지 거기에다가 집중을 해야 되지 다른 데 집중을 할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집중할 때 일어나는 현상들을 아까 얘기했죠? 그런 현상들이 안 일어날 때는 그런 현상들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자애에다가 집중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집중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잘되고 해서 마음에서 기쁨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걸 내 자식에게 향해보라고.

 

향할 때 두 가지 패턴들이 있습니다.

"나와 자식이라는 구분이 없이 되는 사람이 있고, 구분이 되는 사람이 있고" 합니다.

구분이 되면 일단은 스톱을 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다시 돌아와야 됩니다.

분명히 자식에게 향했는데 그게 구분이 안 되고, 그냥 마음에서 느낌에 나와 자식이라고 하는 것이 동일하게 되면서 행복하기를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쭉 된다 할 거 같으면 그거는 구분이 없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마음이 이미 나와 남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는 도달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애가 계속적으로 될 때는 마음은 오롯하게 내가 행복하기를 하는 데다가 계속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럼 거기서 기쁨들도 있고 뭔가도 있지만, 아직 불완전하다는 것이 계속적으로 보여지면은 나중에는 분명히 내 자식을 향해 있었지만,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느냐면 '집중하는데' 가 있는 거라. 그리고 집중하는 문구! ‘행복하기를 하는 거기에만 향하고 있는 거라.

그러면서 마음에서는 기쁨으로 인해서 요동치는 게 아니고, 마음이 진짜 쫘악 퍼져나가는 게 보입니다.

'행복한 것과 집중하는 것'이 있음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됩니다.

 

자애수행을 할 때는 그렇게까지 돼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라고 하는 것들을 내세우는 것들이 점점 점점 약해져 있습니다.

마음이 행복한데 성질부릴 수 있을까? 아니면 욕심부릴 수 있을까?

그게 보여집니다.

집중을 조금만 열심히 잘하고 있어도 아, 이게 마음에서 일어날려고 할 것 같으면 그게 일어나는 게 보인다는 거라. 그러면서 어느 순간에 욕심부리고 성내고 하는 것들이 엷어져 가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탁 떨어져버립니다.

대상이 자애수행의 대상에서, 선정수행의 대상에서 위빳사나수행으로 딱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도와 과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자애수행입니다.

 

자애수행은 여러분들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잘 살기 위해서 행복하게 이익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집중해서 선정을 이루는데도 가장 간단한 문구인데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위빳사나 수행으로 전환했을 때 도와 과를 이루기에 가장 수월한 방법 중에 하나라는 거라.

 

그게 「자애수행」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집중이 안 되고, 그냥 단순하게 위빳사나 수행을 위한 예비단계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것이 위빳사나와 접목했을 때 어떤 반응들을 보이는지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렇게 수행을 해야 됩니다.

 

수행은 어떤 것이든 그 대상 자체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 방편들을 함부로 소홀하게 다루지 않도록 그렇게 수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행문답]

Q수행자 질문 : 자애수행에서 ‘내가 행복하기를’ 했을 때 결국 집중의 대상이 행복이 되어야 되고, 그것이 이미지가 되면 결국은 하나의 니밋따로서의 집중의 대상으로 그렇게 발전해가는 겁니까?

 

A큰스님 답변 : 처음에 수행을 잘 못하는 수행자들은 일정 부분 이미지화시키는 것도 좋습니다. 자애가 무슨 뜻인지 모를 때.

자애가 뭔 뜻인지를 모르면 ‘내가 행복하기를’ 하더라도 뭘 어떻게 하는지를 모릅니다.

행복했을 때 어떤 느낌들이 일어나죠?

마음이 포근하고 고요합니다. 푸근하고 누가 잘못하더라도 ‘그거 뭐 별 문제 없어.’ 그리고 남이 하듯이 내가 뭘 잘못하더라도 내가 ‘아, 그건 아니지’ 하면서 자기 스스로도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행복하기를’ 하고, 아니면 자애가 뭔지를 모를 때는 그걸 이미지화시킬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스님들은 자애를 처음 이미지화할 때 스승을 떠올립니다.

스승이 했던 행위들이나 말들이나 그 표정들을 보면서 얼굴에 미소가 잔잔하게 있으면서 사람을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그걸 떠올려서 이미지화를 시킵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집니다. 가장 편한 친구를 떠올리면서 내가 아무렇게나 하더라도 허물이 없고 다 받아주는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이미지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미지화시킬 때 이미지가 계속적으로 가는 사람이 있고,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거라.

그래서 내가 행복하기를하는데 그 이미지화가 딱 겹쳐지면서 행복한 느낌들이 몸으로 쫙 퍼져나갈 거 같으면 그거는 잘한 겁니다. 이미지화를 잘한 겁니다.

그런데 이미지화를 시켰는데 행복한 느낌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거기에서 감정들이 탁 일어난다 할 것 같으면 일단은 스톱! 해야 된다는 거라.

 

그래서 이미지화를 시키지 말아라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화를 시켰을 때 감정들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지화가 되어야지, 감정이 일어나면, 그러니까 좋은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감정들이 일어날 거 같으면 스톱을 하라는 그런 뜻입니다.

 

Q수행자 질문 : 그러면 '행복'이라는 언어 개념 자체를 이미지화하면 어떻게 됩니까?

A큰스님 답변 : 아니요! 그거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행복했을 때 내가 일어나는 느낌들, 그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반응들이 돼야 되는 것이지, '행복'은 그냥 그것은 개념일 뿐입니다. 그걸 이미지화해서는 안됩니다.

됐습니까?

(수행자 : 예)

 

& 아래의 문답은 법회 끝나고 개별 인터뷰할 때의 문답 내용입니다.

 

Q수행자 질문 : 스님, 잠자기 전에 누워서 자애수행을 하면서 잠에 들면 어떨까요?

 

A큰스님 답변 : 선정을 자재할 수 있으면 몰라도 그것은 위험합니다. 못 깨어날 수가 있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 아래는 자애수행과 관련있는 법문들입니다.

 

https://alfl6843.tistory.com/1669

 

자애수행과 열반의 관계 (20151001.부산)

https://youtu.be/RtqBc6HPqN8 * 자애수행과 열반의 관계 (20151001) 오늘은 「자애수행과 열반의 관계」에 대한 것, "자애수행의 두 가지 방법"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보통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alfl6843.tistory.com

https://alfl6843.tistory.com/1291

 

압빠만냐 (appamaññā, 한량없이 스며듦) : 사무량심(20070120)

https://youtu.be/gx49UuBt5v0 [[ 교재 부분 < 한량없이 펼치는 청정심소 : 무량심소(無量心所 appamanna-cetasika (압빠만냐- 쩨-따시까) 2가지 > 따로 기르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부수로써 무량심소(無量心所)

alfl6843.tistory.com

https://alfl6843.tistory.com/1127

 

사무량심 수행을 하는 방법과 이유 (20150130.대구)

https://youtu.be/3gIfh9k4P1c * 사무량심 수행을 하는 방법과 이유 (20150130.대구) : 위빳사나와 사마타를 병행하면서 수행하는 방법 이번에 아파보면서 뇌가 마비되고 하는 게 뇌경색이라고 그러죠? 그래

alfl6843.tistory.com

https://alfl6843.tistory.com/1673

 

일상생활에서 자애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 (20151009.대구)

https://youtu.be/jVhYRIj7M3o * 일상생활에서 자애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 (20151009.대구) 저번에 그런 얘기했죠? 자애수행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일상생활에서 하는 자애수행 방법, 그다음에 하나는

alfl6843.tistory.com

 

 

*** 아래는 자애수행과 관련있는 법문의 법문교재 내용입니다.

 

https://alfl6843.tistory.com/1560

https://alfl6843.tistory.com/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