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정진 329

호흡 관찰하는 데서 일어나는 두 가지 잘못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 호흡 관찰하는 데서 일어나는 두 가지 잘못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호흡의 전체 길이를 따라가지 마라. 코에서부터 해서 배까지 쭉 따라가고 또 따라나오고 하는 것은 일절 하지마라. 두 번째는 대상을 인위적으로 해서도 안되지만 또 마음을 인위적으로 옮겨서도 안됩니다. 수행이 잘 안된다 해서 또 인위적이라 해서 그 대상을 놓아버리고 호흡이 일어나는 다른 곳에다가 집중할려고 하지마라. 호흡은 여러분들에게 가장 알아차리기 쉬운 대상 중에 하납니다. 근데 이 호흡을 전체 이동 경로를 따라서 코에서 일어나서 가슴이나 배에까지 가는 길을 알아차리는 것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또 여기 한 지점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호흡의 길이, 호흡의 시작과 끝을 인위적으로 맞추고 있는 거라. 맞추고 있으니까 꼭 마찬가..

아나빠나 사띠(Ānāpānasati). 상카라를 고요하게 가라앉히려면

* 아나빠나 사띠(Ānāpānasati). 상카라를 고요하게 가라앉히려면 몸에 대해서 관찰하는 것(신념처)도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것이 있고, 몸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 있고, 몸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있고, 몸에서 담마를 관찰하는 것이 있고. 그렇게 네 개씩 항목이니까 16개가 되게 됩니다. 호흡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느낌 4가지, 호흡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마음의 네 가지, 호흡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담마라고 하는 네 가지를 관찰하는 것이 있습니다. 몸에 대한 관찰은 마음으로 아는 겁니다. 마음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느낌으로 압니다. 현상들도 꼭 마찬가지로 느낌으로써 내가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모든 현상은 느낌이다’ 하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아-나-빠-나 사띠(Ā..

삶과 죽음에 대한 게송 Jīvitaṁ aniyataṁ, maraṇaṁ niyataṁ

◈ Jīvitaṁ aniyataṁ, maraṇaṁ niyataṁ (지-위땅 아니야땅, 마라낭 니야땅) Addhuvaṁ me jīvitaṁ, 앗두왕 메- 지-위땅, dhuvaṁ me maraṇaṁ. 두왕 메- 마라낭. avassaṁ mayā maritabbameva, 아왓상 마야- 마리땁바메-와, maraṇapariyosānaṁ me jīvitaṁ. 마라나빠리요-사-낭 메- 지-위땅. Jīvitameva aniyataṁ, maraṇaṁ niyataṁ. 지-위따메-와 아니야땅, 마라낭 니야땅. Anabbhito tato āga, 아납비또- 따또- 아-가, ananuññāto ito gato. 아나눈냐-또- 이또- 가또-. Yathāgato tathā gato, 야타-가또- 따타- 가또-, tattha kā ..

Kāmadasutta 까-마다 숫따

Kāmadasutta 까-마다 숫따 『 Saɱyutta Nikāya 』2-6 Evam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에왕 메 수땅. 에-깡 사마양 바가와-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사-왓티양 위하라띠 제-따와네- 아나-타삔디깟사 아-라-메-. Ekamantaṁ ṭhito kho Kāmado devaputto 에-까만땅 티또- 코- 까-마도- 데-와뿟또- Bhagavantaṁ etadavoca 바가완땅 에-따다오-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한때 얼굴이 아주 기묘한 까마다 천신이 새벽에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한 후 한쪽에 물러나 ..

우다나(자설게) 37번 게송- 아디쩨따소 압빠맛자또

『 Udāna 』 4. Meghiya vagga - 7. Sāriputta sutta Adhicetaso appamajjato, 아디쩨-따소- 압빠맛자또-, Munino monapathesu sikkhato.; 무니노- 모-나빠테-수 식카또-; Sokā na bhavanti tādino, 소-까- 나 바완띠 따-디노-, Upasantassa sadā satīmato. 우빠산땃사 사다- 사띠-마또-. 초월한 마음상태를 가지고 불방일 하고, 적묵의 길을 걸어 묵자(성자)가 되어 있네. 평안에 이르러 항상 알아차리고 (sati) 있는, 그러한 사람에게 슬픔은 없다. “번뇌를 여의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를 가지고 항상 노력하라. 성자의 길을 걸어서 성자가 되도록 하라. 지혜에 이르기 위해서 항상 사띠하도록 ..

개념에 붙잡혀있을 때

수행이 잘 돼나갑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져가고 하면은 ‘일어남’ ‘사라짐’ 하는 것이 분명하게 알아집니다. 그것도 그냥 움직임이 분명한 것이 아니고 불러올 때 여러 가지 느낌들, 또 꺼질 때 여러 가지 느낌들을 그대로 그냥 알아차려 나가집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멍해져 버려. 분명히 일어나고 사라지는 건 아는데도 그냥 움직임만 알고 있고 어떤 느낌들이 변하는 것들이 없어. 사라질 때도 꼭 마찬가지라. 왜 그렇게 바뀌어버렸을까? 마음이 붙잡혀버리니까! 자기는 인식을 못했지만 그 느낌들이 좋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딱 붙잡히는 아주 짧은 순간에 그 현상들은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면 마음은 깨어있으니까 움직임만 알아가는 거라. 배가 불러오는 것만 알고 꺼지는 것만 알게 되고, 한 시간 동안 내 그러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가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길이고, 또 어려울 것 같지만 누구든지 나아가야 될 길입니다. 부처님이 위대하고 성인들, 네 부류의 성인들이 위대하다는 것은 우리와 똑같은 조건에서 깨달음을 이뤘기 때문에 그것이 더 위대한 겁니다. 우리가 오르지 못할 길이고,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을 위대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발밑으로부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가면 진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 길을 헤매지 않고 깨달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아짠 진용 빤냐와로 스님 법문 中

수행의 포인트는

♠ 수행의 포인트는 천천히 하고,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 그리고 느낌을 관찰하고, 느낌이 일어났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을 관찰하도록 하라. 그게 수행의 기본 포인트입니다. 수행은 하나의 초점이라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끼도록 하십시오. 마음으로 몸 전체를 가만히 주시한다 하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서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끼도록 하십시오.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은 가슴을 관찰해야 됩니다. 지금 내 마음의 상태는? 그 움직임에서 일어나는 느낌들과 함께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작용들이 일어날 때의 느낌과 그 느낌의 성품을 사대요소로써 보아야 합니다. 또 사대요소의 변화를 보아야합니다. ..

신축년 정월 보름날 작은방에서...

대상을 알아차려 나갈 때는 대상이 있고 또 그 대상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두 개가 일치가 되고 나면, 두 개가 다 떨어져 나가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로 일치됐다 하는 느낌들이 꼭 송곳이 두 개가 톡톡 부딪치듯이 이렇게 느껴집니다. 모양과 형태를 놓아버려야 만이 특성들이 드러나집니다. 노력과 집중이 균형을 맞춰주는데도 그 특성을 드러내지를 못하는 것은 모양과 형태에 딱 매여있어서 그런 거라. 그래서 모양과 형태를 갖다가 놓아버릴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처음에는 움직임만 보다가, 움직임을 보다가 그 움직임조차도 서서히 놓아가면서 그 느낌의 특성들이 딱 드러나 집니다. 호흡을 들이쉬었으면 내쉬어야 됩니다. 내쉬는 그게 사라지는 현상입니다. 요소는 요소대로, 현상은 현상대로 알아차리도록..